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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윤석철트리오-여대 앞에 사는 남자>











  개학이다. 지민은 방학 동안 옷장 안에 고이 모셔둔 교복을 꺼냈다. 무럭무럭 클 줄 알고 한 치수는 더 크게 산 교복은 여전히 헐렁했다.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다 폰을 확인했다. 메시지들이 우수수 쏟아져있었다. 개학 실화냐. 우리 여름방학 언제 하지. 오늘이 개학이야 미친놈아. 자퇴같이 할 사람 구함. 낄낄거리는 틈으로 지민은 메시지 한 개를 추가했다. 2학년된 거 현실인가. 몇 번 더 메시지를 주고 받고 키득거리다 집을 나섰다.

  지민은 일학년때보다 한 층을 더 올라 3반을 찾았다. 침을 꿀꺽 삼키고 교실문을 열었다. 시선이 잠깐 쏠리고, 새학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색한 기류가 감돈다. 몇몇 1학년때부터 친했던 무리가 떠드는 것 빼고는 다들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함부로 아무나 사귀지 말고 조신하게 있자. 지민은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맨 뒷자리 구석을 찾아 앉았다. 눈을 꽉 감고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멀쩡한 친구랑 짝하게 해주세요. 가능하면, 그래, 멀쩡한 친구를 설명해 보자면. 내가 원하는 짝은.


  "야 들었어? 김태형도 우리 반이래."
  "뭐? 미친. 아 2학년 망했다."


  앞자리에서 들려오는 대화였다. 지민은 하마터면 대화 사이를 가르고 끼어들 뻔 했다. 그런 무서운 거짓말 치지 마! 앞의 대화는 쭉쭉 이어져갔다.


  "김태형 걔 이번 방학 때도 사람 팼다면서? 막 내 친구의 친구 누나가 술집 앞에 지나쳐가다가 봤는데 누가 사람을 존나 미친 듯 패고 있었다는 거야. 그 사람 막, 막 이렇게 피 줄줄 나면서 서있지도 못하고. 근데 자세히 보니까 우리 학교 교복 입고 있었다는 거지."
  "야 우리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 김태형한테 잘못 보이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눈 뒤집힌다며. 1학년때 어떤 애가 의자 빼는 소리 때문에 잠 깼다고 팼대. 걔 그때 턱받이 같은 거 하고 있었다면서 책상에 턱 김태형이 박아버렸는데 안 닫혀서."
  "으 제발 김태형이랑만 짝 안 했으면 좋겠다."


  나도. 조용히 공감한 지민은 소원을 바꿨다. 제발 김태형이랑만 짝 안 되게 해주세요. 김태형. 얌전히 좋은 대학을 소망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태형은 쉬쉬하는 존재였다. 태형에게 무수히 붙은 소문은 많지만 정리하면 한 단어로 정리 가능했다. 바로 그 무서운 일진 양아치.

  김태형은 유명했다. 1학년으로 학교에 들어온 순간부터 수많은 사건사고를 달고 살았다. 오죽하면 건물 자체가 달랐던 지민의 귀까지 사건사고는 흘러 들어왔다. 아주 다양했다. 애 팔을 분질러버렸다더라, 애 코를 묵사발을 내놨다더라. 주로 누군가의 신체부위를 조립식로봇처럼 망가뜨린 이야기였다. 태형의 악명은 지민도 실제로 목격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처음 올라와, 교복조차 낯선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창문 밖으로 의자가 날라갔다. 시발, 놔두라고! 거친 욕설이 섞인 대화가 깨진 창문 밖으로 숭숭 흘러나왔다. 김태형이라 불린 인물은 자리에서 떴고, 지민은 부숴진 창문과 남은 유리파편을 마주했다. 학주와 눈이 마주쳐 반 아이들과 함께 유리조각을 치웠다.

  지민은 침을 꼴깍 삼키고 문을 통과하는 인물들을 살폈다. 김태형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어도 실제 본 적은 없다. 문을 발로 깨부수면서 들어오진 않을까? 의자를 그렇게 날려버렸으면 덩치도 엄청 클 거야. 나 같은 건 모기처럼 한방에 짓밟히겠지. 눈을 데룩데룩 굴리길 한참, 여타 덩치가 조금 큰 아이들이 들어왔을 때도 교실은 잠잠했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반갑다. 앞으로 1년동안 함께 할 담임이다. 수학시간에 봐서 알지들? 내 자리는 일층 교무실에 있으니까 볼일 있으면 찾아오고."


  담임은 연이어 잔소리를 쏟아냈다. 2학년이 되었으면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는 지루한 이야기다. 지민은 단정했다. 2학년은 그냥 망한 거 같아. 모든 아이들을 첫날부터 잠재울 기세로 이야기하던 담임은 한참이 지나서야 출석부를 펼쳤다. 술술 흘러가던 이름들이 턱 막힌 순간은 문제의 그 유명한 이름이 나오는 구간이었다.


  "김태형."


  반 분위기가 눈에 띠게 흠칫한다. 담임은 반을 구석구석 살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김태형?"
  "……."
  "김태형 없어? 첫날부터 결석이야?"


  담임은 무언가 가득 쏘아붙이고 싶은 말을 눌러 참듯 혀를 찼다. 김태형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가 거기 또 있었다. 아무도 김태형을 건드리지 못한다. 어마어마한 집 자식이라 했다. 교장이 김태형이 팬 아이 부모와 김태형의 부모를 모셔놓고 김태형의 부모에게 굽신거린 상황은 암암리에 가득 퍼졌다. 빛나는 대머리보다 더 빛나는 웃음을 만면에 가득 담았다던가.


  "자리는 제비뽑기로 뽑아. 한 학기 내내 이 자리로 간다. 너랑 너, 나와서 칠판에 자리 그리고 번호 써."


  담임은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을 가리켰다. 지민은 두 손을 모았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제비를 뽑는다. 제발, 제발. 김태형만 아니면 되고, 칠판이 잘 보이는 앞자리였으면 좋겠고, 짝은 공부를 아예 못하지만 않아서 수학문제를 조금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고. 하찮으면서 소박한 꿈을 염원하며 제비를 뽑았다. 27번. 짝을 찾아 반이 웅성거린다.


  "너 몇 번이야?"
  "나 3번. 넌?"
  "15번. 아싸, 뒷자리 당첨."
  "개부럽. 바꾸실?"


  지민은 칠판을 확인했다. 뭐야, 맨 뒤잖아. 자리는 망했으니 짝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지민은 제비뽑기 종이를 꽉 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27번의 짝은 28번.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담임이 가리키고 칠판 자리에 번호 대신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다.


  "13번?"
  "저요!"


  지민은 모범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28번이 아닌 다른 번호에 손을 들 때마다 아쉬워했다. 괜찮아, 공부할 때 내가 잘 들으면 되지. 스스로를 다독거리던 위로의 형태가 점점 바뀌어갔다. 시끄럽게 떠드는 애만 아니면 괜찮아, 공부 안하고 괴롭히지만 않으면 괜찮아, 김태형만 아니면 괜찮아. 그러나 한 명 한 명 줄어가도 28번은 나오지 않았다. 묘하게 불안하다. 아냐, 괜찮아 지민아. 괜찮을 거야. 김태형만 아니면 되니까. 결국 마지막 아이가 불릴 때까지도 28번은 침묵했다. 지민은 손을 들고 조심스레 질문했다.


  "선생님, 제 옆자리가 비었어요!"
  "박지민? 몇 번이야."
  "27번이요!"


  담임은 칠판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평범한 어조로 폭탄을 투하했다.


  "남은 자리에 김태형 이름 써. 이상, 조회 끝."


  쿠르르쾅쾅 천둥번개가 머리위로 꽂힌 기분이다. 아니면 사람이 미라로 굳어지면 아마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뻣뻣하게 굳은 지민 쪽으로 단숨에 동정의 시선들이 와르르 박힌다. 시선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쟤가 김태형 짝이래. 지민은 강물로 떠내려가는 정신을 허우적거리며 붙잡았다. 이건 아니다. 안돼, 안돼. 2학년이 망한 게 아니라 생명이 망할 수도 있다. 강력한 생존본능으로 지민은 팔을 번쩍 들었다.


  "서, 선생님!"
  "음?"
  "저…저…!"


  살고 싶어요. 아니 이게 아니고. 지민은 태형과 짝을 하기 싫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차마 뱉을 수 없었다. 소심한 생각이 지방방송을 틀었다. 왕따주도자로 보이고 싶어? 담임한테 찍히면 끝인 거 알잖아. 지민이 입만 달싹거리고 있자, 담임이 재촉한다.


  "곧 수업 들어가야 하니까 빨리 말해."


  이대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웃길 텐데. 지민은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생각나는 핑계를 급히 만들어 뱉었다.


  "임시반장은 정해주시고 가야…."
  "반장? 오 그렇군."


  담임은 2차 폭탄을 투하했다.


  "박지민 학생이 말했으니 박지민 학생이 임시반장을 맡도록. 임시반장은 종례 전시간 마다 교무실로 와서 유입물 받아가."
  "…네…."


  무덤자리를 팠다. 동정의 눈길이 한층 더 진해진다. 쟤가 김태형 짝인데, 임시반장까지 떠맡은 애야. 지민은 순탄치 않을 새학기를 직감하며 생각했다. 방학까지 며칠 남았더라….






*   *   *





  지민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굴렸다. 뜬 눈으로 잠까지 설쳤다. 만약 김태형이 오면 얼굴부터 방어하는 거야. 진지하게 얼굴은 티가 나서 안 되니까 등짝을 때려달라고 하면 때려주지 않을까. 내가 못 때리게 한다는 것도 아니고 때리라고 대주는데. 설마 자기가 때리고 싶은 부위 못 때린다고 더 화내려나. 죽은 듯이 살아야지. 숨 안 쉬는 법이라도 연습해 갈까. 지민은 눈 밑 다크서클을 한아름 들고 등교했다. 의자를 조심조심 소리나지 않게 빼고 앉아 올 옆자리의 주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김태형? 또 결석이야?"
  "……."


  담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태형은 종례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민은 하루 연장된 생명에 감사함을 표했다. 마찬가지로 잠을 설쳤다. 일진들은 원래 학교 2일 정도 빠져주잖아. 오늘에야 말로 올 수도 있어. 붕대와 밴드를 동시에 책가방에 넣으려다 결국 밴드 몇 개만 챙겼다. 지민은 빳빳이 굳어 침을 꿀꺽 삼켰다.


  "김태형."
  "……."
  "연락 닿는 사람? 없어?"


  반은 침묵했다. 담임은 진한 한숨을 쉬었다. 태형은 그날도 학교에 출몰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 첫 일주일이 끝나고 주말이 닥칠 때까지도 지민의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지민은 안심하는 대신 더욱 오들오들 떨었다. 빈자리의 주인은 등교하지도 않으면서, 어찌나 많은 소식을 물어다 주는지 하루에 하나씩 커다란 사건들이 들려왔다.


  "그거 알아? 김태형 지금 학교 안 오는 거 경찰조사 받고 있어서래."
  "헐 진심? 야 그럼 너 그것도 아냐? 걔가 1학년 때 교생 따먹어서 교생 임신해서 애 지웠다잖아."
  "걔 애 지운 사람이 한 둘이겠냐? 지금 학교 안 나오는 거 그거 때문인가?"
  "그럼 진짜 대박."


  무럭무럭 추가되는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태형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사방팔방에서 굴러다녔다. 진짜 조직폭력배한테 스카우트제의 들어와서 안 오는 거래. 길에서 싸움 붙었는데 죽기 직전까지 패서 식물인간 되가지고 이건 부모님도 못 막아서 못 오는 거래. 방학 때 싸움 붙었는데 칼 맞아서 못 오는 거라던데. 내가 듣기로는 손가락이 하나 잘렸다던데. 지민은 소문만으로도 연약한 토끼처럼 바들바들 몸을 사렸다.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소문들은 태형을 상상하는 것조차 무섭게 만들었다. 진짜 김태형한테는 눈이 세 개가 달린 게 아닐까. 팔은 사실 여섯 개가 달려있고 피부는 초록색일지도 모른다.

  지민은 매번 살얼음판을 걷듯 등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옆자리는 무려 2주동안이나 비어있었다. 담임은 김태형의 이름을 언급도 하지 않고 곧장 결석체크했다. 반장도 뽑았다. 지원자가 없어 고민하던 담임은 별 무리없이 지민에게 또 일을 맡겼다. 임시반장 해봤으니까 반장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민은 어설픈 웃음을 띄우며 체념했다. 생활기록부에 좋게 써주시겠지. 나름 친하게 어울리는 무리도 생겼고, 반 분위기도 어색함이 사라지고 시장바닥 같은 소음이 그 자리를 메꿨다.

  개학하고 세번 째 맞는 금요일. 지민은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비어있는 옆자리는 편하게 책을 올려놓거나, 필통을 잠깐 올려놓는 용도로 썼다. 가끔 친해진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앉아 떠들기도 했다. 역시 너무 긴장했던 것이다. 그 많은 소문 중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김태형은 학교를 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반장은 오늘 4교시 끝나고 이거 농구 수행평가 본 거 점수 칠판에 붙여놔."
  "네."


  4교시 체육시간이 끝나자마자 같이 밥을 먹는 무리는 매정하게 지민을 버렸다. 우루루 고릴라떼처럼 급식실로 달려갔다. 지민은 종종걸음으로 뛰어 교실로 달려올라갔다. 빨리 붙이고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교실문을 급하게 열어젖혔다. 냉큼 칠판에 붙이고 나가려는데,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잡혔다.

  누군가 계속 비어있던 지민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어…."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는 정확히 엎어져 자고있었다. 익숙해진 반아이들의 뒷모습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처음 본다. 설마. 지민은 최악의 등장인물을 떠올렸다. 이내 엎어진 체구를 보고 고개를 붕붕 흔들어 생각을 지웠다. 필시 악명 높은 김태형은, 사람 다섯 명은 가볍게 빈대떡처럼 짜부라뜨릴 수 있는 김태형은 어마어마한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머리도 주황색이라고 소문난 것과 달리 검은색이다.

  저기서 자면 큰일나는데. 지민은 발을 동동 굴렀다. 김태형이 학교를 오지는 않지만 저렇게 겁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백분의 일 확률로도 반에 피바람이 부는 건 원치 않았다. 어깨를 잡고 조심조심 부드럽게 흔들었다. 졸린 눈으로 엎어진 남자아이가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지민은 이름표의 자리를 확인했다. 놓고 온 건지 가슴팍이 휑하다.


  "야야, 잠깐만 일어나봐."


  남자아이는 자다 깨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반만 뜬 눈. 작게 찡그린 눈. 지민은 짧게 감탄했다. 와, 왕자 같다. 작은 얼굴에 섬세하고도 시원시원하게 뻗은 이목구비는 모델 같았다. 반 여자아이들이 오빠라 부르며 심장을 부여잡고 엉엉 우는 아이돌보다도 잘생겼다. 한순간이나마 태형일까, 의심한 지민은 완전히 안심했다.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게 생긴 아이가 그 흉악한 소문을 달고 다니는 김태형일리가 없다. 남자아이는 점차 정신이 드는지 살짝 찌푸린 눈으로 지민을 쳐다보았다. 잠을 방해 받아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지민은 아, 하고는 허겁지겁 말했다.


  "여기 말고 다른 책상으로 갈래?"
  "왜?"
  "그야 여기가 김태형 자리니까."


  성가시다는 기색이 가득하던 남자아이가 멈칫한다. 대단한 헛소리를 들은 것마냥 지민을 황당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지민은 남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확신했다. 심지어 김태형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듯 하다. 그래서 명찰도 없구나. 김태형의 무서움을 모르는 가련한 어린양을 구하기 위해 친절한 반장의 면모가 빛을 발휘했다.


  "걔랑 마주치지 않는 게 좋아. 자리는 내가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서 다른 데로 줄게."


  남자아이는 가만히 지민을 들여다보았다. 몸을 일으켜 다른 자리를 갈 생각도 충고에도 별 커다란 반응이 없었다. 그러더니 툭 물었다.


  "왜? 걔랑 왜 마주치면 안 돼?"
  "어?"


  남자아이가 궁금하다는 듯 천진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충고에도 꼼짝도 안 하는 게 겁이 없어 보인다. 지민은 그 순간 전학을 온 남자아이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내가 아니라 진짜 김태형이 와서 비키라고 해도 왜 비키냐고 했겠지. 전학을 온 잘생긴 친구가 김태형의 손에 묵사발이 나는 참사는 나선 안 된다.


  "일진이거든."
  "아 그래?"
  "만약 와서 자기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걸 보면 엄청 화낼 거야."
  "그렇구나."


  남자아이는 어쩐지 조금 흥미가 생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 큰일 날 녀석이다. 전학을 온 아이는 겁이 없어도 많이 없는 듯 했다. 지민은 김태형의 무서움을 친절히 늘어놓았다.


  "창문으로 의자도 던지구, 선생님한테도 막 대들고. 친구들도 엄청 심하게 때리고. 1학년때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애도 있었어. 그리고 지금 학교 안 오고 있는데 그 이유가…."
  "이유가?"


  지민은 긴장감 넘치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곤 비밀이야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사람 죽여서래."


  남자아이가 순간적으로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어깨까지 들썩이며 거세게 웃는다. 긴장한 지민이 무색할 정도로 유쾌한 웃음이었다. 뭐야, 왜 웃지. 지민은 일순 기분이 왈칵 상했다.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말한 건데, 상대는 한낱 농담이라도 들은 것마냥 깔깔거리고 있으니 자신이 별 것도 아닌 일에 무서워하는 겁쟁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왜 웃는 거야?"
  "그거 누구 한테 들었어? 김태형이 사람 죽였대?"
  "반 아이들이 다 그러던데…."


  남자아이는 한참을 웃다 호흡을 진정하고서 말했다.


  "넌 이름이 뭐야?"
  "박지민."
  "여기 반?"
  "응. 그런데 빨리 자리 옮겨. 내 자리에 앉아있을래? 내가 밥 먹고 선생님한테 들려서 말씀 드릴게."
  "너 자리 어딘데."


  지민이 남자아이가 앉아있는 옆자리를 가리켰다. 책상을 확인한 남자아이는 작게 한번 더 웃었다. 상황이 재미있는 듯 했다.


  "김태형 짝?"
  "응. 빨리 하자. 나 배고파"
  "배고프면 안 되지."


  남자아이가 픽픽 웃으며 일어났다. 지민은 남자아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계속 픽픽 웃고 그러는 거야. 잘생긴 얼굴만 아니라면 기분 나쁠 것이다. 아니, 실제로 잘생긴 얼굴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불쾌했다. 남자아이는 지민의 자리에 앉아 제 볼을 양손으로 감싸고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히죽 웃는 잘생긴 얼굴은 지민을 향해 호감을 물씬 드러내고 있었다.


  "응, 네 말대로 나 여기 앉아 있을게."


  …그래도 생각보다 이상한 애는 아닌 거 같은데. 착하긴 한 거 같은데 다소 분위기를 못 맞추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몇 가지 당부를 더 하고 나가려는 찰나였다.


  "와 진짜 왔네."


  문이 덜컹 열렸다. 왁자지껄 파도처럼 밀려들어온 무리는 곧장 지민과 남자아이가 있는 곳을 응시하며 다가왔다. 지민은 움찔했다. 학교에서 김태형과 어울리며 온갖 말썽을 부리는 무리였다. 무리가 저지른 말썽에 교무실에 갈 때 선생들이 모여 골치 아픈 한숨을 쉬는 걸 본 적도 많았다. 본능적으로 소심하게 몸을 사리려는데, 남아있는 전학생이 걸렸다. 아 데리고 가야 하나. 역시나 겁이 없는 남자아이는 무리를 보고도 쪼는 기색이 없었다. 커다란 덩치들이 때리면 남자아이는 힘도 못 쓰고 나가떨어져 붕대를 칭칭 감을 것이다. 남자아이를 향해 문을 눈짓하는데, 그 순간 달려온 무리가 순식간에 남자아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김태형의 책상 위로 앉았다.


  "왔으면 말을 하지, 태형아."
  "그래 그러면 바로 왔을 텐데."


  지민은 잠깐 자신의 이해능력에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했다. 김태형, 그러니까 김태형. 지민은 멍하니 다시 되짚어보았다. 의자를 사람에게 냅다 던져버리는 무개념이고, 전치 한달이 나올 정도로 패는 무자비함을 가지고 있고, 신경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주먹부터 휘두르는 잔혹함을 가진 대상이. 무리는 그 대상의 주인공으로 전학생을 가리켰다. 아니야. 설마 아니야. 김태형이라는 이름을 전학생도 가지고 있는 건가. 둘일 가능성도 있다. 세상에는 여러 박지민이 있고 김태형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민재가 껄렁하게 말했다.


  "야 넌 뭐야. 할 말이라도 있냐?"


  그런데 그 전학생이 학교에 전학 오자마자 일진무리와 아는 사이일 가능성은? 그래 그럴 가능성은 없다. 전학생이 아니라 김태형이 학교에 온 거다. 정리된 사태에 지민은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파노라마처럼 휙휙 지나간다. 난 그럼 이제 의자도 맞고 책상으로도 맞고. 딱딱하게 얼어버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기만 했다. 이 새끼 뭐야. 민재가 무시당했다 여겨 인상을 구길 즈음이었다.


  "반장 선생님이 반장 교무실로 오라고…어…?"


  앞문을 열고 구원자가 등장했다. 뭉쳐있는 무리와 지민을 번갈아 쳐다보며 당황한다. 일진무리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지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와다다 뛰었다. 허겁지겁 사자로부터 겁 먹어 뛰쳐나가는 사슴을 닮았다. 어찌나 급하게 나가는지 중간에 책상에 허벅지도 찧었다. 그마저도 아픈지 모르고 다시 뛴다. 태형은 마른 몸이 황급히 사라지자마자 커다란 웃음을 다시 터뜨렸다. 무리는 당황하다 서로 고개를 마주보고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빛을 주고 받다 어깨를 으쓱했다. 민후가 화제를 털며 입을 뗐다.


  "태형아 근데 걱정했잖아. 안 와서. 연락도 안 되고. 왜 학교 안 온 거야?"
  "개학이 오늘인 줄 알았어."
  "…아 그래? 우리는 너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무리가 놀랐다는 듯 웃음을 억지로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한다. 태형은 속에 끼어 대화하긴커녕 머릿속에 훅 들어온 이름을 되뇌었다. 박지민, 짝.








*   *   *







  "아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아닌데 밥을 왜 이렇게 못 먹어?"
  "그냥 속이 좀 안 좋아서요. 괜찮아요."


  지민은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반 이상이나 남겼다. 세상 다 잃은 사람처럼 터덜터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보약이라도 하나 지어서 먹어야 할까요. 부모님의 대화소리가 들렸지만 지민은 침대에 털썩 누웠을 뿐이다. 김태형이 나를 꾸깃하게 구겨서 통조림 통에 쑤셔박아버리는 건 아닐까. 보약으로 해결되는 문제였으면 좋겠다. 보약보다는 링겔이 필요하다. 추가로 붕대랑 수혈봉투랑 부목이랑. 어디가 부러질지 모르니 부위별로 준비하고, 아니 바로 무덤으로 가는 건가. 지민은 무덤에 묻히는 상황을 상상하다 창백하게 질려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태형은 없었다. 자유분방한 출석 일수를 찍는 김태형이 학교에 왔다는 사실은 금방 퍼졌다. 게임이라면 상태메시지에 아마 이렇게 표시 됐을 것이다. 박지민님의 생명이 2일 연장되셨습니다. 아냐, 박지민. 해결책을 찾자. 이미 태형에게 맞는 상상은 뇌가 닳을 만큼 했다. 지민은 진지하게 성형수술을 할까도 고민했다. 전체를 다 갈으면 견적이 얼마나 나올까? 돈은? 전학을 가볼까. 부모님께는 그럼 뭐라 말해야 하지? 생각은 하다하다 속세를 떠나는 사항까지 뻗어나갔다. 머리를 모두 밀고 절로 들어가는건.


  "으아아 나 이제 진짜 어떡하지 허엉!"


  깔끔하게 샌드백이 되는 게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그 악명 높은 김태형이 자비를 베풀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지민은 함박 웃던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다 울적하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분명 나중에 팰 샌드백을 구해서 해맑게 웃는 거다. 차라리 주말 동안 김태형이 계단에서 엎어져 머리를 박아 기억상실증에 걸린다거나, 학교에 운석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게 현실성 있을 터였다. 축 늘어져 있던 지민의 머릿속으로 번뜩 한 아이디어가 스쳤다.


  "…좋아!"


  가능한 구차하게 보이는 거야. 때리면 양심이 아프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작거나 불쌍한 걸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한다. 지민은 맹렬히 폰을 들고 검색했다. 무릎 잘 꿇는 방법. 눈물 금방 흘리는 방법. 지민은 그날 몇 번이나 영상을 돌려보며 침대 다리를 태형의 다리 삼아 매달려 연습했다.





  사형선고날, 대망의 월요일. 지민은 친한 척 지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비굴한 미소를 짜냈다.


  "재현아 나 자리 좀 바꿔줄 수 있어?"
  "나 공부할 거야."
  "너 운동으로 대학간다며!"
  "요즘 수학이 그렇게 재밌더라."
  "거짓말. 어제 로그도 모른다구 알려달라고 막 그랬으면서."
  "로그? 그런게 수학에 있었냐. 아아 맞아 스타워즈 로그원. 야야, 진유현 너 영화 보러갈래?"


  재현은 딴짓을 하고 있던 유현의 등짝을 쳤다. 뒷자리와 낄낄거리며 이야기하던 유현이 지민을 본다.


  "영화? 남자새끼들끼리 뭔 영화냐. 징그럽게. 당연히, 어? 여자랑 보고 싶다는 거지."
  "글치? 그리고 어차피 예매해봤자 한 자리 취소해야 되잖아. 박지민 자리."
  "왜? 내 자리 왜?"
  "김태형 어제 학교 왔다며. 야야, 오늘부터 박지민 병원 깁스 언제 메러 가는지 내기 하실 분?"
  "깁스 말고 장례식장으로 간다에 걸어도 되는 거? 박지민 장례식 한달 내로 생긴다 인정?"
  "인정."


  지민은 박지민 제사상을 두고 반찬종류 내기를 펼치는 무리를 흘겨보았다. 남 일이라고 아주 막한다. 지민은 책상을 발로 밀 듯 팍팍 찼다. 오올, 반장 화났다. 놀리듯 야유가 터진다. 놀리지 마라. 나름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고 말해도 무리는 낄낄거리기 바빴다. 그러다 지민의 눈초리가 세모꼴로 변하는 모양을 보고 재현이 나름 일리 있는 말을 던졌다.


  "야 아무리 그래도 김태형이 가만히 있는 널 패겠냐? 아무짓도 안 했는데? 그냥 숨도 안 쉰다고 생각하고 입 다물고 있으면 되지. 자기 신경만 안 거스르면 가만히 있는다며, 그래도."
  "그래 그리고 어제 진짜 잠깐 왔다며. 그 사이에 뭐 있을 리도 없고. 걔 너 얼굴도 모를걸?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지. 쫄보 박지민이 김태형한테 뭘 할 수나 있겠냐. 그만 쫄아라. 안 그래도 박지민 어깨 좁은 거 완전히 실종하겠다. 너 키 더 작아져, 임마."


  그 잠깐 사이에 뭐가 있었으면 어떻게 해? 지민은 차마 목구멍까지 차오는 말을 뱉지 못했다. 무리는 근심 걱정으로 창백해진 지민의 상태가 심각해보이자, 위로의 말을 하나 둘씩 얹어주었다.


  "솔직히 김태형이 너 보자마자 이 새끼 면상 너무 구려서 기분 나빠졌다고 패기야 하겠냐."
  "맞아. 지민아, 너는 괜찮다. 김대진 이 새끼 면상은 좀 위험한데 넌 생긴 걸론 안전빵이야. 귀엽게 생겼잖아."
  "뒤질래, 새끼야."


  대진이 목소리를 높인다. 지민은 왁자지껄한 무리 속에서 얌전히 자리로 돌아와 착석했다. 나는 대체 어쩌자고 김태형을 먼저 건드린 거지. 인생은 역시 외길이다. 김태형이 들어오면. 지민은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최고의 불쌍함을 선보이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태형은 4교시가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구걸멘트를 수백번도 외우던 지민은 긴장으로 움푹 수그렸던 허리를 폈다. 안심하기 무섭게 졸음이 쏟아진다. 이미 교실은 문학 선생이 쓰러뜨린 잠든 시체들이 한가득 했다. 수업 들어야하는데, 필기해야 되는데…. 따사로운 햇살, 고전문학 자장가는 버티기 어려운 적군이었다. 햇볕에 나들이 나온 고양이처럼 고개가 까딱거린다. 지민은 결국 책에 고개를 묻었다. 간밤 불쌍한 박지민 인생 결말들을 예측하다 보니 채 두 시간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세 페지이가 넘어갈 때 문학 선생이 줄줄 읽고 있던 해설문이 잠깐 멈추었다.


  "…큼, 자리에 앉고. 57페이지다."


  느껴지는 인기척에도 지민은 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누군가 팔뚝을 툭툭 친다. 선생님인가. 지민은 비척비척 책에서 고개를 묻은 자세로 눈만 떴다. 안녕. 밝게 웃는 눈웃음이 인사했다. 반쯤 잠에 잠긴 눈이 훅 뜨였다.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왁 터져나올 뻔했다.


  "김…! 헙!"


  지민은 입을 손으로 막았다. 기습공격이라도 당한 사슴처럼 펄쩍 놀란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했다. 앞을 보자 문학 선생은 혼자만의 책읽기에 빠져있었다. 생존한 몇몇 아이들만 김태형을 발견하고 흘끔흘끔 뒤를 구경했다. 왜 하필 지금 온 거지? 나른한 분위기는 내쫓고 곧장 식은땀이 손바닥을 꽉 메웠다. 태형은 연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책을 읽고 있는 문학 선생만큼 크게.


  "지민아 일어났어?"
  "방금 구절에서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표현…."
  "아직도 졸려? 더 잘 거야?"
  "뿐만 아니라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도 담겨있…."
  "왜 말 안해?"


  당연히 수업시간이니까…. 태형은 아예 몸을 틀어 지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중파 문학선생의 목소리에 섞이는 김태형의 지방방송 탓에 하나 둘 아이들이 눈을 떴다. 지민은 차라리 울고 싶었다. 아니면 학교 연못에서 파닥거리는 개구리와 영혼이 바뀌고 싶었다. 문학 선생의 시선과 반 아이들의 시선이 태형에게 자연스레 꽂히고, 태형이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지민에게 이어서 꽂힌다. 김태형은 아무래도 수업시간도 상관없이 자신을 어서 때리고 싶은 것 같았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지민은 강력한 신호를 눈빛으로 선생에게 요청했다. 문학 선생은 오해한 건지 큼 기침을 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시의 대부분은 유배기간동안 쓴 것들로…."
  "지민아?"
  "거기 둘."


  둘? 지민은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바짝 세웠다. 김태형과 같은 카테고리에 엮였다. 신나게 떠들다 걸린 친한 학생들처럼. 태형이 그제야 시선을 돌려 문학 선생을 바라본다.


  "떠들거면 수업 방해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떠들어라."
  "네! 지민아 가자."


  태형이 잘 됐다는 듯 웃고 지민의 손목을 잡아왔다. 네? 선생님 저는 한 마디도 안 했어요. 선생님 다시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비록 아까 신나게 자긴 했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엉덩이가 의자에 붙었으면 좋겠다는 지민의 바람과 달리 태형은 손쉽게 지민을 일으켜 끌어당겼다. 반아이들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걱정 반, 성실한 반장이 무슨 일을 당할지 놀라워하는 호기심 반이다. 지민은 마지막까지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무참히 씹힌 채 질질 끌려갔다. 복도를 넘어 건물 밖 벤치까지 갔다. 태형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실은 듯한 목소리로 말을 텄다.


  "나 주말 내내 너가 생각 났어 지민아."


  주말 내내 나를 팰 생각만 한 건가. 자비를 구하긴 틀렸다. 지민은 일말의 기대를 부쉈다. 막상 둘만 남은 상황이 닥치니 간밤 연습한 구걸멘트들이 입 안으로 쏙 숨어버렸다. 태형은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말을 붙였다.


  "1학년때 왜 널 못 만났지? 만났으면 엄청 좋았을 텐데."
  "……."
  "사실 오늘 학교 더 일찍 오고 싶었어. 나 학교 이렇게 오는 거 기대되는 거 엄청 오랜만이야."


  바쁜 머릿속은 태형의 말을 흡수하지 못했다. 지민은 속으로 다그쳤다. 말해. 박지민 말하는 거야. 지금이 기회야. 아직 김태형이 주먹을 안 들었잖아. 지금이라도 말하면 병원으로 안 실려갈 거야. 난 누굴 닮아서 이렇게 겁이 많은 거야. 헝헝거리는데, 신나 재잘거리던 태형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민아? 말 안해? 기분 안 좋아?"
  "아, 아니! 일부러 말 안하려는 건 아니야."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질렸어."


  태형이 손을 뻗는다. 히익, 한발 뒤로 물러난 지민은 절박하게 외쳤다. 간밤 연습했던 구걸멘트는 급한 탓에 뒤엉켜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왔다.


  "미, 미안해! 때려도 되, 되는데, 얼굴만 안 때리, 아냐 치, 치고 싶은 데 쳐! 근데 내가 그렇게 때리고 싶, 싶을까!?"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비싼 치아만은 지키기 위해 볼을 앙 다물었다. 하얀 볼이 빵실하게 부풀었다. 자라처럼 목을 꽉 아래로 숨기듯 붙이고, 보호하듯 가슴팍에 모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꽉 감은속눈썹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러나 반응은 고요했다. 이미 주먹이 다녀갔어도 한참은 다녀갔어야 할 타이밍이라, 지민은 살그머니 눈을 떴다. 태형이 눈을 깜빡깜빡거리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안 때리나. 지민이 소심하게 자라목을 뺀 순간이었다.


  "왜, 왜 그…."


  태형이 양손을 뻗었다. 지민이 질겁하며 다시 눈을 꽉 감았다. 치사하게 방심한 틈을 타 때리려는 속셈인가 보다. 생긴 얼굴이랑 다르게 엄청 비겁하잖아! 잘생긴 악당들은 그래도 정의로웠는데! 솥뚜껑만 한 커다란 손이 말랑한 볼 위에 덥석 얹어졌다.


  "너 빵떡 닮았다. 만져봐도 돼?"


  이미 허락은 필요 없었다. 태형은 히, 웃는 표정으로 신기한 생물체라도 발견한 것마냥 지민의 볼을 잡고 위아래로 잡아당겼다. 작게 눈을 연 지민은 으우우, 거리며 속절없이 흔들렸다. 엄지손가락으로 탄력테스트라도 하듯 꾹꾹 누르고, 찹쌀떡 주무르듯 연신 꼬집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무에게도 쉽게 내주지 않았던 볼을 김태형이 제 것처럼 마구 주물럭거렸다. 태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폴폴 풍기며 소감을 늘어놓았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해."
  "……."
  "느낌 완전 좋다. 진짜 빵떡 같아."


  지민은 곰곰이 빵떡이란 단어에 심한 욕이 담겨있나 고민해보았다. 몽글몽글하면서도 다소 하찮아 보이는 단어는 알기로 나쁜 뜻이 없다. 알아서 기라는 의미인가? 일진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단어? 때려야 하는 게 정상인데. 설마 이게 때리는 건가. 때리는 사람치고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다. 게다가 볼은 얼얼하긴 해도 여타 태형이 붙어 때려 눕혀 놨다던 소문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볼을 내준 채 지민은 눈만 핑글핑글 굴렸다. 약하게 주물러도 시간이 지나니 아파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으으…."
  "아 아파? 볼 엄청 빨개졌네."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패려면 그냥 한방에 패지. 지민이 저도 모르게 살짝 원망을 섞은 눈빛을 하자, 태형은 달래듯 볼을 살살 문질렀다.


  "피카츄 됐네, 미안. 너무 감촉이 좋아서…."
  "…괜찮아."


  지민이 태형의 손을 살짝 감싸 밀었다. 태형의 시선이 얼굴에서 자신의 손에 닿은 하얀 손으로 돌아간다. 태형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거렸다.


  "우와 손 봐봐."


  또 말 하기도 전에 태형은 손을 덥썩 낚아채갔다. 애기손이다, 애기손. 넌 어떻게 손도 빵떡 같아. 태형은 볼을 주무를 때처럼 손도 제 마음대로 막 주물렀다. 새끼손가락을 세워 길쭉한 제 손가락과 대어본다. 태형은 한 마디 이상 차이 나는 길이를 보고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동안 지민은 얼떨떨한 상태로 손만 얌전히 내어주고 있었다. 뭐지? 빵떡같다는 게 대체 뭔 말이길래. 심지어는 그 단어를 내뱉으며 좋아한다. 소문으로 듣던 태형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보복이다. 얼이 나가버려 불과 5분 전만해도 절대로 뱉지 못했을 질문을 던졌다.


  "…나 안 때려?"
  "내가 널 왜 때려."
  "내가 막…너 안 좋은 소문…헙."


  지민은 간신히 정신을 차려 스스로 때려 달라 재촉하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태형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아아, 했다.


  "너가 나 사람 죽였다고 한 거?"


  이제 진짜로 처맞는구나. 지민이 다시 긴장의 끈을 당겼다. 태형은 반대로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 죽이면 왜 학교 와. 감옥 가야지!"


  지민은 그 순간 태형이 여타 다름없는 또래 친구들 같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 소문으로만 태형을 접했다. 실제로 만난 태형은 소문과 다른 학생일지도 모른다. 지민은 우물쭈물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나 안 때려?"
  "왜 때려? 때려달라고 해도 안 때려 줄 거야. 너 때릴 곳도 없어. 너무 작아서. 내가 때리면 부숴질 거 같아."
  "앞으로도 계속?"
  "당연하지. 근데 너 손 엄청 귀엽다, 지민아. 장난 아냐."


  태형은 대화는 관심 밖이라는 듯 손을 주물거렸다. 손바닥을 마주 대고 크기를 비교하는 걸 너머, 심지어는 깍지까지 껴본다. 내 손에 딱 맞춤이다. 이상한 소리까지 더해 손을 감상한다. 생각보다 나쁜 애가 아닌가. 지민은 급작스럽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고 태형을 괴물로 판단했다. 아무래도 정식으로 사과를 해야겠다. 오해해서 미안하다 입을 떼는데, 태형의 폰이 징징 울었다. 받기 전 태형의 폰 화면이 지민의 눈에 스치듯 잡혔다.


  [하반신3]


  태형은 다소 짜증이 깃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귀찮게…."


  잠깐 기다려봐. 태형은 잡았던 지민의 손을 놓고 전화를 받았다.


  "왜. 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연락하지 마. 이제 관심 없어. 너 그리고 나 말고도 많았잖아. 왜 질척거려."


  무어라무어라 통화 너머로 상대방이 외치는 게 지민 쪽으로도 들렸다. 지민은 움찔했다. 언제 다정하고 해맑은 웃음을 지었냐는 듯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풀풀 감도는 냉기는 당장 위험한 일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금방 소문과 실체 김태형을 다르다 판단한 이성이 쪼그라든다. 지민은 아예 얼어붙어 입도 뻐끔거리지 못했다. 태형은 위치가 어디냐 묻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쫄아있는 지민을 발견하고는 잠깐 표정을 풀고 얕게 웃었다.


  "학교에 몇 시까지 있을 거야?"
  "어, 어?"
  "끝날 때까지 있어?"
  "으응. 끝날 때까지 있을 거야…."
  "으음…그럼 얼마 못 만나겠네. 내일 보자."


  태형은 손을 뻗어 지민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러더니 덜렁 교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지민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내일이 영영 안 왔으면 좋겠다.






*   *   *






  빵떡. 받아들이기 난감한 이 단어는 어떠한 표현으로 분류되는가. 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빵과 떡을 섞어놓은 음식 종류인가. 김태형이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빵이나 떡처럼 납작해질 때까지 패고 싶다고? 하지만 때리진 않는다고 했다. 지민은 고민의 고민 끝에 빵셔틀로 사용하고 싶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이기로 분석했다. 너 빵셔틀 잘 하게 생겼다, 이런 말인 거다. 어감도 비슷하고 심지어 김태형은 볼이며 손을 마구 주무르며 확인했다. 그 의미 모를 무서운 터치들은 빵셔틀로 사용할 노예의 몸상태를 점검한 것이 분명하다.


  "지민아 배고파?"
  "어? 아니."
  "아침 먹었어?"
  "…아니…."


  태형은 키우는 강아지가 아픈 주인처럼 안타깝다는 얼굴색을 비추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를 턱하니 꺼내 지민에게 내밀었다.


  "매점 가서 아무거나 사와 봐."
  "…나?"
  "그럼 누가해."


  태형이 그걸 물을 이유가 있냐는 듯 답한다. 역시 확실하다. 김태형은 빵셔틀로 자신을 낙점한 것이다. 지민은 묵묵히 만 원짜리를 받아들었다. 동정심을 담은 시선들이 쏠린다. 지민은 가능한 약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부러 친근한 말을 붙였다.


  "그, 그래. 뭐로 사다줄까?"
  "너 볼 때 맛있게 생긴 걸로 사와."


  지민은 남은 아침조회 시간을 계산했다. 약 7분. 발에 모터를 달고 질주하면 딱 맞을 시간이다. 수학책 준비해 놔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지민은 착실히 뛰어 품 가득 빵과 우유를 사들고 돌아왔다. 심부름 마친 아이처럼 남은 잔돈까지 태형에게 돌려주었다. 산 같은 빵과 우유를 내려놓고 수학책을 가져오는데, 태형이 제 책상에 올려진 빵들을 다 지민의 책상으로 도로 올려놓았다. 맑은 웃음과 더불어 빵을 손수 뜯어 건넨다.


  "많이 먹어, 지민아."


  뭔가 좀 이상한데. 지민은 수학책을 들고 난감하게 멀뚱멀뚱 태형의 손을 바라보았다. 놀리는 건가 싶어도 빵을 건네는 손은 진심이다. 자. 태형이 재차 들이미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민은 어어, 하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간신히 말을 찾아냈다.


  "…으응, 고마워. 너도 많이 먹어."
  "그럴까?"


  태형은 서슴없이 지민이 입술을 붙였던 우유팩에 제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흐뭇하게 입술을 오물거리는 지민을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별처럼 쏘아지는 시선이 따끔거릴 정도라, 지민은 좋아하던 단팥크림빵이 목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단팥크림빵으로 뺨을 맞는 게 낫겠다. 태형은 고급사료를 선사한 주인처럼 선량하고도 뿌듯한 멘트를 흘렸다. 혼자 다 먹어 지민아. 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보고는, 그대로 책상 안에서 책을 아무거나 뽑아 베개처럼 쌓고 엎어진다.

  내가 메뉴를 너무 못 사온 건가. 귀찮은 김태형은 자신에게 버린 걸까. 결코 혼자는 다 못 먹을 양의 빵과 우유는 지민이 독차지했다. 평소 매점에서 무언가를 하나만 사도 벌떼처럼 달려들던 무리는 김태형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빵과 우유를 독극물 취급했다. 부담스럽고 먹기 싫었지만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한 시간마다 빵을 의무적으로 해치운 결과 복통을 얻었다. 지민은 반드시 다음 번 빵셔틀을 갈 땐 태형의 취향으로 사오겠다 다짐했다.



  태형은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뽑듯 제 마음대로 원하는 시간에 등교했다. 수업 중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상관 없이 당당하게 교실을 가로질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로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얼굴을 비춘다는 것이다. 지민은 밥알 개수를 셀 정도로 천천히 숟가락을 움직였다. 어울리는 무리는 변변찮은 위로도 건네주었다. 김태형이 사람 못 생겼다고 싫어하는 건 본 적 없는데, 힘내라 박지민. 병원은 대신 못 가주지만 병문안으로 과일세트 정도는 돈 모아서 사가도록 하겠다.


  김태형은 이상하다. 시도 때도 없이 손을 가져가서 주물럭거리거나 볼을 쿡쿡 찔러왔다. 어느 날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분명 자고 있던 태형이 일어나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잤어? 씨익 웃으면서 입모양으로만 말을 건넸다. 식겁한 지민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멋쩍게 일어나 책을 보는 척 고개를 푹 묻었다. 그러더니 또 손을 가져갔다. 귀여워. 킥킥 웃으면서 새끼강아지나 고양이 발바닥젤리를 만지듯 주물주물거렸다. 내가 진짜 지네집 강아지도 아니고. 지민은 소심하게 항의했다.


  "태형아 근데 내 손 있잖아."
  "왜."
  "따, 땀 차서 만지면 너 기분 나쁠 거 같은데…."
  "보송보송한데. 더워? 바람 불어줄까?"


  태형은 놓긴커녕 후후 입바람을 불었다. 이제 시원하지? 지민은 어설프게 끄덕거렸다. 응, 에어컨 같아…. 지민은 포기했다. 장난감 취급을 받아도 살려주니 그거라도 감지덕지다. 태형과 붙어있는 모든 순간이 힘들다 꼽지만, 가장 힘든 때는 태형의 친구들이 교실에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김태형과 그의 쫄병들.


  "야 김태형 너 가만히 있을 거야? 걔가 입 그렇게 존나 털고 다니는데?"
  "글쎄."


  태형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책상을 주변으로 김태형 무리가 앞뒤로 둘러싼다. 이미 교실은 김태형 무리가 들이닥친 순간부터 눈치를 살피고 목소리 볼륨을 낮추거나, 교실 밖으로 살금 빠져나갔다. 지민은 제 손을 주물럭거리는 태형이 신경 쓰여 죽을 것 같았다. 자기 친구들이랑 떠드는데 왜 나는 옆에 앉혀 놓는 거야. 냉큼 복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대담하게 김태형에게 붙들린 손을 빼내고 무리 사이를 가로지를 용기는 없었다. 지민은 숨 죽여 문제집을 펼쳐놓고 푸는 시늉을 했다.


  "너 가만히 있을거면 내가 조질까?"


  공식을 쓰던 펜이 삐끗했다. 동시에 태형이 만지작거리는 손도 움찔거렸다. 태형은 무리에게 던졌던 시선을 돌려 지민을 잠시 쳐다보았다. 지민은 뻣뻣해진 고개를 책 쪽으로 더욱 숙였다. 듣지 말자. 듣지 마. 내가 지금 봐야하는 건 동그라미 안에 삼각형을 몇 개나 더 그릴 수 있냐는 거고….


  "뭐 어떻게 하게."
  "갈비뼈 한대 정도 손 봐야지." 


  또 삐끗했다. 아냐, 지민아. 원에 집중해. 원에 그러니까 삼각형이. 지민은 가능한 움찔거리지 않도록 펜을 꾸욱 힘을 주어 잡았다. 돌연 태형이 살짝 흥이 돋은 목소리로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갈비뼈 한대로 돼?"


  삼각형이, 삼각형이.


  "할 거면 갈비뼈 말고 다른 곳도 해야지."


  삼각형이 각목을 들고 사람을 찌르고…. 영혼까지 하얗게 탈색된다. 지민은 더는 문제도 풀지 못하고 눈만 굴렸다.


  "어쩐 일? 진심?"
  "야 다음에 얘기해. 너네 오늘은 이만 나가라."
  "왜? 지금 바로 연락해서…."
  "나가라니까."


  무리는 갑자기 뭔 일이냐고 하면서도 착실히 나갔다. 김태형은 무리 안에서도 쥐고 휘두르는 권력이 남달랐다. 김태형은 진짜 나쁜 놈이었어…. 비록 빵셔틀은 시키지만 때리지 않는다고 해서 나름 거짓인 소문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지민은 아예 태형으로부터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커다란 웃음이 우수수 터졌다.


  "큭큭, 지민아 나 봐봐."
  "……."
  "넌 왜 이렇게 귀여워?"


  태형은 지민을 마주보게 하고는 다짜고짜 볼을 꾹 잡아당겼다. 지민은 당황으로 눈만 깜빡거리며 정작 태형이 어디 가서 각목을 맞아온 건 아닐까 생각했다. 편하게 지내는 무리라면 형님 무시하지 마라, 하고 나름 장난이라도 할 텐데 태형은 진심을 담은 미소를 뽐내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너 볼 때마다 자꾸 웃겨.


  "근데 태형아 너 진짜 가는 거야?"
  "어디를?"
  "아까 대화 들으니까 갈비뼈랑 그, 그런 거…."
  "그런 거? 그런 거 왜?"
  "어? 막 그런 거 하면…물론, 진짜 당연히 당하는 아이가 물론 나쁜 짓을 해서 너가 화난 거겠지만, 그치만 때리는 너 주먹도 아플 거고…."


  지민은 빙글빙글 학교폭력이 싫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태형이 네 주먹이 아프고 귀찮을까 봐. 새삼 말하고 후회했다. 빵셔틀 주제에 일진 주먹을 걱정하다니. 그렇다고 따끔하게 그건 옳지 못한 짓이라 외칠 용기는 쫄보 박지민 안에 없었다. 곰곰이 듣던 태형은 어쩐지 진지한 기색이었다. 무언가 살짝 놀란 거 같기도 하고, 새삼 생전 처음 듣는 듯한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지민은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추가했다.


  "나는 그냥 너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게 아니구. 그러니까 어…참견은 절대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래 안 할게."


  태형은 척척 다시 전화도 걸어 무리에게 그냥 놔두라는 말도 전했다. 전화를 끊고 씨익 웃고는 다시 손을 가져갔다. 공부해. 턱짓으로 문제집을 가리키고는 엎어진다. 지민은 그 모든 과정 동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낯설어 했다. 뭐지. 방금 김태형이 내 말을 심각하게 잘 들어준 거 같은데. 잠든 태형의 길고 얇은 속눈썹을 보며 생각보다 더 이상한 아이 같다 생각했다.







*   *   *







  또래 남고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주제는 게임이었다. 단체채팅방은 고요하거나 가끔 게임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최근엔 김태형의 노예가 된 박지민 빵셔틀 경험담과 그에 관한 소감이 인기였다. 박지민 지난 번에 빵 들고 가는 거 보는데 진짜 짠하더라. 걔가 박지민 자기네 집 강아지 취급하더라. 지민은 폭발적으로 올라오는 메시지들을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손가락을 두드려서 어떤 말을 보태기엔, 글쎄.


  [김태형이 저번주에도 계속 박지민한테 빵 먹이는거 봄? ㄹㅇ 개취급 오짐]
  [박지민 얼굴 노랗게 뜬 것도 봄]
  [ㅇㅈ 난 바나나인줄 알았다]
  [ㅅㅂ 반장이 아무리 만만해도 그렇지]
  [그새끼는 양심이 없어]


  태형의 빵 심부름은 2주가 넘어도 계속됐다. 매일 만원씩 내미는 걸 보고 지민은 걱정마저 생겨났다. 김태형이 돈이 많다는 소문은 진짜인 거 같지만. 태형아 돈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살그머니 걱정을 건네자 태형은 해사하게 웃으며 너 먹이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하고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살짝은 빵셔틀인지도 헷갈린다. 꼭 용돈 주고 가서 까까 사먹어, 하고 어린아이들이 받는 취급 같았다. 그나마도 익숙해져 지민은 나름 매점에서 먹고 싶은 음료수와 빵을 착실히 골라 사갔다. 혼자 먹기는 무안해 태형의 입에 빵을 잘라 내밀었더니 손도 쓰지 않고 받아먹었다. 지민은 괜찮다 단체채팅방에 쳐 보냈으나 무리는 뭐가 괜찮냐며 광분했다.


  [글고 반장 잘 때 조심해라]
  [ㅇㅇ김태형이 존나 계속 쳐다보더라 때리려는줄 알고 개식겁함]
  [반장 얼굴 크기랑 김태형 주먹크기랑 똑같은 듯]


  가끔 밤 늦게까지 학원숙제를 하고 학교에서 조는 때가 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항상 김태형이 반겨주긴 했다. 잘 잤어? 책에 같이 엎드린 자세로 눈을 마주보고 씨익 웃는다. 그때마다 지민은 잘생긴 얼굴이 주는 효과를 절절히 체험하고 있었다. 반쯤 뜨인 눈으로 따사로운 햇살과 잘생긴 얼굴이 은은하게 웃어주는 광경이란. 김태형한테 후광이 나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리스로마 신화 안으로 빨려 들어간 건지. 그건 괴롭히는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잘생긴 얼굴에 좀 심장이 턱턱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는 정도다. 지민은 태형을 실컷 씹는 단체채팅방에서 실드를 시전하려다, 무언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박지민 죽음? 왜 읽씹하냐]
  [놔둬 박지민 김태형 이름 듣고 무서워서 화장실 감]
  [ㅋㅋ]
  [뭐래ㅡㅡ아니거든!!!]


  지민은 연이어 불꽃 같은 스피드로 와다다 타자를 쳤다.


  [김태형 생각만큼 그렇게 나쁜 애 아님! 그리고 김재현보다 잘생김]


  지민은 폰을 껐다. 화면 위로 팩트폭력 오진다, 메세지가 뭉텅이로 쏟아지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김태형은 좀 이상하고, 그런데 생각만큼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고. 나름 잘 지내면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김태형은 실제로 담배도 피고 지민이 보내는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에이, 무슨 김태형 생각이야. 지민은 고개를 휘젓고 문제집을 펼쳤다. 어서 빨리 한 학기가 끝나 자리가 바뀌었으면 싶다.






*   *   *








  "오늘은 소시지빵이네. 이거 맛있어?"
  "응 맛있어."
  "왜 우유는 맨날 바나나우유야?"
  "…싫어해?"
  "아니 그냥 너가 아기 같아서."


  지민은 말문이 턱 막혔다. 태형은 솔직한 건지, 자신이 당황하는 게 좋은 건지 사람이 머뭇거릴 소리를 휙휙 잘 던졌다. 으응, 나 수업준비 하고 올게. 어색하게 우유를 내려놓은 지민은 수학책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사물함을 향해 도주했다. 김태형은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말하고 시원하게 씨익 웃는 걸 보면 당황하는 걸 즐기는 거 같기도 하다. 어울리는 무리도 가끔 몰래카메라라며 놀라게 만들긴 하는데, 그것과 이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


  내 수학책. 사물함에 꽂아 넣은 책 목록을 세 차례나 훑어도 없다. 아, 지민은 입술을 질끈 물고 탄식했다. 곧 중간고사가 다가온다는 이유로 몽땅 집에 교과서를 가져다 놓은 게 이제야 기억이 났다. 어제 결국 수학책 한 페이지도 안 봤는데 그냥 가져가지 말걸. 수학은 책 없으면 점수 깎이는데. 지민은 쿨하게 1점쯤이야, 하고 넘길 만큼 대범하지 못했다.


  "3반 오늘 수학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허겁지겁 옆반을 기웃거렸으나, 이미 수업이 시작했다. 지민은 발만 동동 굴렀다. 담임이 담당하는 과목이니 만큼 잘 보이고 싶지만, 그렇다고 같은 반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너는 점수에 별로 신경 안 쓰니 수학책을 내놓으라 강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망했다. 시무룩해진 지민은 나갈 때보다 약 다섯 배는 우울해진 걸음으로 돌아왔다. 나도 그럼 잠잘 준비를 하겠다며 책을 쌓아놓고 지민을 기다리던 태형이 어라, 했다.


  "지민아 왜?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냐, 없어."
  "표정 이상한데."


  태형이 조금 전만 해도 실실 웃던 얼굴을 굳히고 바깥쪽을 쳐다본다. 아니야, 괜찮아. 잘못은 주말의 박지민이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안 괜찮아 보여. 뭐야."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말 안할 거야?"
  "지,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민은 한사코 괜찮다 되풀이했다. 태형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돌연 의자를 밀고 일어난다. 풀풀 냉기를 풍기는 눈매는 옆자리에서 상황을 관람하던 학생이 침을 꿀꺽 삼킬 만큼 날카로웠다. 아니, 그냥 수학책 못 가져온 건데. 누구 하나쯤 가볍게 조져 걸레짝으로 만들 기세라 지민은 다급하게 태형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냥 수학책 안 가져와서 그랬어! 가지마!"


  태형이 옷자락을 잡은 손을 돌아본다. 눈만 꿈뻑꿈뻑거리다 파닥거리며 앉으라는 사인을 보내는 지민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수학책? 태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쌓아놓았던 교과서 중 수학이라 쓰인 책을 골라냈다. 미간을 쓰고 가만 책을 펼친다. 책은 샤프 한번 그은 적 없는 새것이었다.


  "자."


  태형은 뭐가 문제냐는 듯 책을 내밀었다.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주는 거야?"
  "응. 수학책 좋아하면 줄게. 영어책도 줄까? 그냥 원하는 거 골라서 가져가. 난 뭐뭐 있는지 몰라서."
  "아니야. 너 이거 없으면 점수 깎여."
  "대신 이거 주면 너한테는 점수 쌓이잖아."


  태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민은 그때 요상하게 심장이 덜컹거렸다. 수학책을 내밀고 다른 책도 주겠다며 새 책이나 다름없는 교과서를 쑥쑥 들이밀었다. 아 나 그래도 밸 건 있어야 돼. 중간에 도로 책 몇 권을 가져가 탑을 만든다. 지민은 황급하게 머리를 흔들고 쿵쿵거리는 박동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받으면 안돼. 이건 가짜점수야. 성실한 반장은 이런 희생으로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그건 내가 너 점수 훔치는 거잖아. 안돼."
  "괜찮아. 어차피 둘다 내꺼라서 훔치는 거 아니야."


  둘다 내꺼라는 게 무슨 말이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태형은 아예 지민 쪽으로 책을 밀어붙였다. 지민이 말도 안 된다며 다시 책을 돌려주려 해도 손바닥으로 밀며 받지 않는다.


  "난 안 써."
  "안 써도 가지고 있어."
  "지민아 내가 너 말이면 다 들어주겠는데, 난 진짜 필요 없어."


  왜 내 말이면 다 들어주는 건데,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보다 지민은 반장의 의무를 수행하는 게 중요했다.


  "너가 뭐라 해도 난 안 받을 거야. 주지 마."
  "그럼 난 너가 뭐라 해도 줄 건데."
  "…아무튼 안 받아!"


  태형은 지민이 연신 밀어내자 미간을 좁혔다. 지민에게 이게 필요한 거라는 건 알겠고, 이 종이뭉치 따위가 지민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겠는데, 지민이 자꾸 받지 않는다 우기니 난감했다. 찹쌀떡마냥 순하게 생겨서 고집을 피우는 지민을 보고 곰곰이 말을 고민하다 툭 뱉었다.


  "난 너 보러 학교 온 거야. 너 아니었으면 여기 없었어."
  "지금은 있잖아. 그러니까 너 써야지."
  "너가 이거 필요하잖아."
  "그럼 뭐, 책은 너가 가져온 걸로 하고 같이 보면 되지!"
  "그냥 너가 이거 주인하라니까?"


  아 몰라. 태형은 성가시다는 듯 책을 밀고 엎어졌다. 그 짧은 순간 지민은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결코 이 책은 받을 수 없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른다. 아마 박지민 인생에서 세번의 절대적인 용기를 낼 수 있다면 그 세번 중 한 번은 그때 썼을 것이다. 지민은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심호흡 한 뒤 똑 부러지게 말했다.


  "난 이 책보다 태형이 너가 이걸로 공부하는 거 보고 싶어. 보여줘."


  태형이 멈칫한다. 팔 사이에 묻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는데, 놀란 듯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있다. 지민은 수학책을 가져가 태형의 앞에 친히 펼쳐놓았다. 작은 손이 꼬물꼬물 움직여 제 필통에서 샤프를 꺼내 태형의 손에 들려준다. 자, 받아. 공부하는 학생의 자세를 세팅 시켜놓은 지민은 수학책을 손으로 가리켰다.


  "필기도 다 해야 돼."


  태형은 살짝 당황하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 글씨 잘 못쓰는데…."
  "내가 도와줄게."
  "수업 시작하자."


  수학선생이 들어온다. 태형은 샤프를 쥔 손이 낯선 듯 쥐었다 폈다 했다. 지민은 뿌듯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다, 문득 옆자리에서 오는 시선을 감지했다. 경악, 존경, 여러가지를 섞어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본다. 지민은 그제서야 방금 자신이 누구에게 명령 같은 부탁을 내렸는지 깨달았다. 그 김태형. 학교에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아라는 김태형. 스스로도 얼떨떨해 눈을 마주치고 당황하는 도중 수학선생이 말한다. 교과서 안 가져온 사람. 지민은 망설임없이 손을 번쩍 처들었다. 신기하게 점수가 깎이는 데도 그리 불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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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맹이 2017.07.03 06:58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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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뽐지민 2017.07.07 08:37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찹쌀떡 2017.07.20 02:40 SECRET

    "비밀글입니다."

  • ?
    토페님열혈팬 2017.10.13 23:24 SECRET

    "비밀글입니다."

  • ?
    포비 2017.11.02 18:36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매너모드오열ㅠㅠㅠ 2018.01.24 00:22
    bgm이 분위기랑 진짜 찰떡이라 어느 시점부터는 글이 아니라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어요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너무 귀여워서 무음모드로 오열하고 있는데 안 멈춰지네요, 살려주세요ㅜㅠㅠㅠㅠ댓글에 헛소리 적고 있어서 죄송해요, 토페님 사랑합니다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
  • ?
    랩터 2018.02.24 10:42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의기솝침 2018.08.03 00:51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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