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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망이 안 닿는 곳이 없다고 하는 서울이지만, 이 동네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윤기는 합당한 의심을 했다. 왜냐하면 어느 날을 기점으로 지민으로부터 연락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



 윤기는 미간을 모았다. 윤기 형, 윤기 형. 쫄쫄거리며 따라오던 애가 없으니 허전했다. 원래의 박지민 행동반경을 민윤기는 다 알고 있었다. 저 엄청 재미있는 영화 골랐어요. 윤기 형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특유의 별 박은 눈을 하고 옆에서 떠들겠지. 그런데 폰은 고요하기만 했다. 무슨 일이 있나. 컴백 스케줄로 탈진이라는 가설까지 세우며 문자를 던져보았다.



[몸이 안 좋니.]



 답장은 반나절이 넘어서야 왔다. 이것도 이상하다. 스케줄이 없는 시간이면 바로 바로 날라왔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수상한데. 윤기는 펴질 줄 모르는 얼굴로 책상을 언짢게 톡톡 두들겼다. 결국 그는 선택했다. 연인에게 간단한 연락 한 마디를 못해서 권력을 쓰는 쪽으로.



“무슨 일 있나 확인해보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지민 주변으로.”



 주 비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간단한 스케줄 말고는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은지 꽤 됐었다. 그러나 시키면 하는 게 그의 일이라서, 주 비서는 금방 소식을 물어다 바쳤다.



“큰 일은 없습니다. 스케줄은 추가 없이 이전 고지된 대로 진행됐고, 건강 역시 양호하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합니다. 더 알아볼까요?”

“됐습니다. 나가보세요.”



 정말 아무런 것도 없다고 한다. 대체 왜? 윤기의 미간에 패인 고민이 더욱 심화된다. 윤기는 가슴속이 허전하고 지민의 반달로 접히는 눈이 머릿속을 아른거렸다. 이런 감정은 뭐지. 마음을 연 게 처음이라 낯설었다. 그의 상태는 감정을 처음 느껴본 로봇 같았다. 자꾸만 떠오르는 지민을 그리며 그는 결론을 도출했다. 네가 말했던 게 이거구나. 보고 싶다, 그리움, 그런 감정들.


 지민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3일이 지난 뒤였다. 비서에게 보고를 듣던 윤기가 손을 까딱해 당장 말을 멈췄다. 그는 진동이 여러 차례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세요?]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 윤기는 인상을 썼다. 목소리가 이 따위인데 멀쩡하다고? 관리 체계가 쓰레기다. 그는 다시금 회사에 관여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디 아프니.”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거짓말을 하려면 티 안 나게 해야지. 너 지금 무덤에서 방금 일어난 시체 같은 건 알고 말하니. 윤기가 입을 떼려는 찰나였다. 지민이 선수 치며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 만나는 날이요. 곧장 윤기 형 집으로 가면 돼요?]

“…그래. 차 보낼 거야. 타고 와.”



 네. 그날 봐요. 급히 잘라내듯 지민이 전화를 끊었다. 가늠하듯 윤기의 눈이 가늘어진다. 윤기는 끊긴 화면만 보다가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박지민 관해서 더 알아보세요. 주변에 또 얼쩡거리는 놈이 있는지.







***







 도착했습니다. 기사가 안내했다. 달리는 내내 창 밖만 바라보던 지민이 그제야 아, 하며 인사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중으로 잠금 되어 있는 시스템은 무슨 연락이라도 받은 건지 알아서 열린다. 그에 지민이 움찔했다. 자동인가? 돌 계단 한 짝조차 비쌀 집은 두 번을 봐도 놀랍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런 거 하나하나에 놀랄 때가 아니다.


 계단을 쭉 올라가 집안으로 이어지는 문 앞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하며, 벨을 누르려는 순간. 덜컹. 문이 열린다.



“악!”



 놀란 지민이 허둥거리며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큰 손이 튀어나와 뒷목을 안전하게 고정한다. 으어…. 쿵쿵 빠르게 뛰는 가슴만 끌어안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묵직한 음성이 내려앉는다.



“도둑도 아니고 왜 이렇게 놀라.”



 뭐 훔치게? 윤기가 낮고 가볍게 웃는다. 지민이 고개를 확 들어 올렸다.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에 윤기가 있었다. 차라리 넘어지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흠칫한 지민이 급히 윤기와 마주친 시선을 피했다.



“놔, 놔주세요.”

“생각보다는 팔팔하네.”



 덫에 걸린 새끼짐승 풀어주듯 놓자마자, 지민이 후다닥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닿으면 곤란하다는 듯이. 그 작은 반응들을 윤기는 무감한 얼굴로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안 쪽으로 먼저 발을 움직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돌은 무슨 영화를 골라오셨을까.”

“저 드릴 이야기 있어요.”

“밥 먹으면서 해.”

“아니요. 괜찮아요. 이야기만 하면 될 거 같아요.”



 윤기의 걸음이 멈춘다. 지민을 흘끔 돌아보는 표정은 여전히 무감하다. 지민은 이 표정이 익숙했다. 자신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한 이 표정. 매달릴 때나 윤기는 마지못해 관심 한 조각씩만 던져줄 뿐이었다.



“그래 그럼. 먼저 이야기부터 해.”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윤기가 쇼파 건너편을 가리킨다. 지민이 앉는 그 사이, 윤기는 지민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로 스캔했다. 고작 몇 주 사이에 살이 확 내렸다. 빤히 닿는 시선도 알아채지 못한 채, 지민이 입을 열었다.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형한테 저는…뭐예요?”

“뜬금없이 무슨 말이니. 네가 박지민이지 뭐긴 뭐야.”

“그러니까, 그게….”

“배고파서 말이 잘 안 나오는 모양인데? 일어나. 밥 해줄게.”

“절 사랑하세요?”



 말했다. 지민은 긴장으로 손이 말라왔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게 울고 불고 남한테 못 볼 꼴까지 보이며 숙소로 도착해서 며칠이나 고민 끝에 지민이 내린 결론이다. 직접 물어보는 거다. 자꾸만 윤기에게 달라붙는 마음은 작별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다. 이 대답 한 마디면 지민은 윤기 곁에 다시 모른 척 붙어있을 수 있었다. 사랑이라고 하시잖아. 날 좋아한다고 하시잖아.


 일어나려던 윤기는 그 질문에 지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면까지 들여다볼 것만 같은 시선이다. 그는 다시 쇼파에 앉아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지민은 윤기의 반응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평소와 똑같이 무감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응당 나올 긍정적인 반응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입맞춤을 몇 번 나눈 사이 치고는 무척이나 드라이한 표정에 지민은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사랑이라고, 좋아한다는 그 한 마디면 되는데.



“글쎄.”



 윤기는 혀로 한쪽 입안을 쓸었다. 흔히 연인들이 밀당하며 내뱉는 수준이 아니라, 그는 사랑을 몰랐다. 정말로. 어렸을 때 이후로 민윤기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거기다 줄 생각도 없었으며, 누군가에게 받을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사랑인가. 이게?


 저를 세상 전부라도 되는 것마냥 쳐다봐주는 지민의 시선을 보면 퍽 만족스럽다. 도톰한 입술 사이로 하는 사랑스러운 말들도 마음에 든다. 누구에게도 이런 지민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입 맞추면 할딱거리는 호흡도 제법. 윤기는 잠깐의 생각 끝에 말했다.



“네가 사랑이라며.”

“…….”

“그럼 사랑이겠지.”



 성의 없는 대답은 가차없이 지민을 찔러댔다. 이건 더 아팠다. 훔쳐 들었던 대화에서 당한 물건 취급보다도 더. 차라리 묻지 않는 게 나았을 거다. 겁먹고 도망갈 걸. 윤기를 보는 지민의 눈에 불꽃이 시든다.



“제가…단순히 사랑이라고 해서, 사랑이라는 거예요?”

“어.”



 원래 사랑이 뭔지는 정의하기 어려워. 윤기는 태연하게 덧붙였다. 작은 손의 떨림이 멈춘다.



“…그만해요, 우리.”

“뭐?”

“제가 착각했어요.”



 지민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한번 마음이 죽고 나니 차가워진다. 윤기가 미간을 좁혔다.



“왜. 누가 너 스폰했다는 거 알았어?”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오래 생각해 본 거예요.”



 길게 쇼파에 기댔던 윤기가 등을 뗐다. 윤기가 입매를 어루만졌다. 갑자기 당황스럽군.



“새로운 장난이면 신선하긴 해.”

“장난 아니에요. 진지해요.”

박지민, 지금 너 네가 뭘 말하는지 생각하고 하는….”



 지민은 주저 없이 윤기의 말 중간에 끼어들었다.



“형은 9살 어린 애는 연애상대로 못 본다고 했고, 키스했던 거 실수라고도 했잖아요.”

“…….”

“생각해 보니 한 달만 만나달라고 했던 거였네. 그만할 것도 없네요.”

“…….”

“이제 형 말대로 할게요. 더는 안 매달릴게요.”



 윤기의 말문이 순간 턱 막혔다. 본인이 했던 말이다. 9살 어린 애랑은 만날 수 없다고 지민을 밀어내면서 했던 말. 지민은 여태 받았던 말들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사랑이 아니고 동경이었어요.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랬어요. 형이 스폰해주고 잘해주시니까, 홀렸었나 봐요.”

“…….”

“앞으로 귀찮게 안 할게요. 따로 연락하는 일도 없을 거예요.”

“…….”

“그리고 윤기 형도….”



 지민이 윤기를 흘끔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 부사장님도 따로 연락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 동안 저한테 스폰, 아니 스폰이라고 할 만한 대가를 전 한 게 없으니까…후원 해주셨던 거, 고맙게 생각해요. 혹시라도 그거랑 관련해서 부를 일 있으시다면 그땐 불러주세요.”



 지민이 고요히 윤기를 바라보았다.



“진짜 스폰 말하는 거예요, 부사장님.”



 윤기는 지민이 하는 말들을 얻어맞고만 있었다. 주워담을 수 없는 과거의 잔재들. 하. 윤기가 헛웃음을 쳤다.



“그간 상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예요.”



 지민이 윤기의 입을 다물게 하는 날도 왔다. 윤기는 처음으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전부 업보였다. 지민을 단념시키겠답시고 던졌던 것들.



“이만 가볼게요.”



 맑게 웃는 웃음소리도 없었으며, 가늘게 접히며 웃는 눈웃음도 없었고, 보고 싶었다는 애정도 없었다. 지민은 윤기를 삭막하게 돌아보았다. 꼭 윤기에게 배운 것처럼. 식어버린 눈동자가 윤기의 가슴을 쿡 찌른다. 지민은 볼 일은 전부 다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기는 밀려드는 초조함에 쇼파에서 참지 못하고 지민을 따라 일어났다.



“…왜요?”



 지민은 평소보다 조금 하얗게 변한 것만 같은 윤기를 보았다. 갑작스럽게 당한 타격에 윤기는 입안을 짓씹었다.



“…차 타고 가. 바로 대기시켜놓을 테니까.”

“괜찮아요. 사장님께서 와주기로 하셨어요.”



 지민은 정중하게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작별인사조차 예의 바르다. 딱 한 달. 윤기에게 한 달만 자신을 봐달라고, 증명해 보이겠다고 선언한 그 날. 실패와 과오만 남아버렸다.








***









 끝난 사랑의 색은 검정이다. 가슴이 시커먼 먼지구덩이에 처박힌 것처럼 답답하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강제종료 된 사랑으로 이로운 점은 하나 있었다. 다이어트를 안 해도 살이 미친 듯이 빠졌다. 지민은 의상 스태프에게 눈물 지은 걱정을 들었다. 지민아 살 또 뺐어? 허리가 또 안 맞아…밥 좀 먹어줘 제발.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죄송해요 누나. 저 진짜 많이 먹는데 요새. 그 광경을 정국이 옆에서 매처럼 빛나는 눈으로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지민이 형! 우리 고기 먹으러 가요.”



 정국이 벌컥 방을 열고 들어왔다.



“고기? 갑자기?”

“삼겹살 맛있는 곳 팬들한테 물어보니까 추천 받았어요. 옷 입어요. 빨리, 빨리.”



 정국은 옷장을 열어 지민에게 손수 옷까지 가지고 왔다. 형 별로 배 안 고픈데에. 지민이 말을 흐렸다. 정국은 아예 후드티를 지민의 머리 위에 끼워 넣었다.



“형이 같이 안 가주면 갈 사람 없단 말이에요.”

“다른 친구랑 가는 건 어때.”

“저 친구 없는데요?”



 어린 동생들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워지는 지민은 결국 정국과 고깃집으로 향했다. 정국은 무슨 생각인 건지 집게까지 뺏어서 열심히 구워 지민의 앞으로 고기를 대령했다. 형 여기는 이렇게 먹어야 맛있대요. 세 개씩 먹어요. 열심히 부리는 막내의 재롱에 지민도 웃고 말았다. 정국이 너 나중에 삼겹살 집 해야겠다. 정국이 웃는 지민을 보니 코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웃으니까 좀 보기 좋네.”

“왜. 형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와 뻔뻔한 거봐.”

“사실을 말해라, 짜식아. 우리 외모 순위를 다시 세울 때가 됐어. 이제 내가 2등이지?”

“그건 진짜 아니거든요?”



 정국은 차마 입 안에 맴도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룸메이트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지민이 화려하게 꾸미고 눈이 팅팅 부어 숙소에 들어온 날. 아 이거. 영화 봤어. 감동적인 영화. 거기서 다롱이가 죽더라니까. 다롱이가 누구냐면 엄청 귀여운 하얀 고양이인데. 말하던 지민이 눈물을 다시 훌쩍거렸다. 아니 얼마나 슬픈 영화를 봤길래 이래요. 당황해서 휴지를 뽑아주던 정국은 지민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아차렸다. 잘 웃던 형이 순식간에 쓸쓸한 표정을 짓곤 했으니까.



“근데 왜 2등이에요? 1등도 아니고.”

“이담이 형은 너무 잘생겼잖아. 그건 신의 영역 같아.”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어? 다 먹었네. 더 먹어요, 더. 이거까지 다 먹으면 4등이라고 해줄게요. 지민의 접시에 고기를 밀어 넣으며 정국은 모처럼만에 밝게 미소 짓는 지민에 한시름 덜어냈다. 그리고 다짐했다. 우리 형 괴롭힌 새끼 나중에 만나면 죽여버린다고. 내 눈에 보이기만 해봐. 정국이 속으로 씩씩거렸다. 거의 친동생처럼 자신을 대해주는 지민에 한해선 애정이 높았다. 


 정국은 생각했다. 뭐 나 말고도 더 있지. 다른 멤버들 역시 지민이 시무룩하게 쳐진 걸 보니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준은 간혹 ‘도둑놈이 염치도 모르고’라고 언급하며 혀를 찼고, 의성은 지민을 조금이라도 먹이겠다며 산해진미를 구해왔다. 이담 역시 연습하는 지민에게 다가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식사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다 비워진 테이블에 텅 빈 접시들이 가득했다.



“으, 배 터질 거 같다. 정국이 너 더 안 먹어?”

“전 괜찮아요. 이제 그만 가요.”



 정국이 일어난다. 계산대 앞에 선 지민은 당연하다는 듯 제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에 정국이 후다닥 가로막더니 제 카드를 꺼냈다.



“어? 뭐야. 왜?”

“내가 먹자고 해서 온 거잖아요. 그리고 맨날 형이 사줬으니까…한 번은 사주고 싶었어요.”

“정국아….”



 지민이 감동 어린 눈으로 정국을 본다. 다음에 더 뜯어먹으려고 그러는 거니까 너무 감동 받진 마요. 민망해진 정국이 덧붙인다. 지민은 그게 귀여워 정국의 머리를 헤집듯 쓰다듬었다. 우리 막내 다 컸네.



“형 먼저 나가 있을게.”

“네.”



 지민은 가게 밖으로 나왔다. 점심 시간이라 아직 하늘이 밝았다. 모처럼 올려다보는 하늘이었다. 윤기 형이랑 있을 때는 보여준다고 자주 봤었는데…. 자연스럽게 머리를 차지하는 윤기 생각에 지민이 재빨리 머리를 흔들었다. 잊는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떠올리면 어쩌려는 거야. 지민이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때였다. 지민이 반대편 골목 쪽에서 재빨리 사라지는 사람을 봤다.



“…뭐지?”



 모자와 마스크까지 낀 사람은 지민이 그쪽을 보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손에 무언가 묵직한 것을 들고 있던 것도 같다. 팬 아니면 파파라치 둘 중 하나일 터다. 그러나 흔한 팬이라 보기에는 바로 도망친 것이 수상해 보였다. 무언가 찜찜하다. 기자인가? 지민은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더욱 푹 눌러 썼다. 뭐든 숨겨서 나쁠 건 없겠지.



“형 이제 가요. 다음 먹을 건 아이스크림이에요.”

“…우리 방금 밥 먹었는데?”

“밥 먹었으니까 당연히 밥 먹으러 가야죠. 오늘 3키로 찔 때까지 집에 못 가요.”



 정국이 지민을 이끌었다. 그거는 고문 쪽 아닐까…? 다음은 형이 사야 해요. 빨랑 와요. 손이 붙잡혀 질질 딸려가며 지민은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윤기를 조금씩 지워낼 수 있겠다고. 열병 같은 첫사랑도 쉽게 잊혀질 수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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