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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3:36

[슈짐] 잭팟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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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전세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될 거다. 그리고 그게 구남친의 옆자리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민은 흐릿한 동태눈으로 창 밖만을 바라보았다. 새벽같이 이른 시간이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여행만 다녀오면 모든 게 정리되어 있을 거라는 민윤기의 말에 혹하고 말았다. 지민의 속이 심란하거나 말거나 민윤기는 평이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그거 알아? 전세기는 탈 때 신발 벗어야 돼.”

“안 믿어요.”

“진짠데. 일반 비행기랑 전세기는 달라. 처음 타보니까 네가 잘 모르는 거야. 나도 처음에 놀랐어.”



 민윤기는 솔선수범하여 신발까지 벗었다. 그대로 기지개를 쭉 켜더니 책을 집어 든다. 진짜인가…? 고민하던 지민이 얌전히 신발을 벗었다. 작은 맨발이 뾱 튀어나온다. 맨발로 화장실까지 다녀오고 나니 승무원이 다가왔다. 어머, 손님! 실내화를 제공해드릴까요? 지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곧이어 지민은 좌석에서 소리 죽여 끅끅 웃고 있는 민윤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익! 지민이 이를 뿌득 갈다가, 곧 짜게 식은 얼굴로 포기했다. 그래. 미친놈은 상대하는 게 아닐지니.


 이후 비행기는 조용한 침묵 속에서 비행했다. 화났어? 민윤기가 말 붙여도 무시하고 자는 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졸았다. 착륙했을 때 즈음 눈을 뜬 지민은 어쩐지 머리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민윤기 어깨 위에 대놓고 기대 있었다. 으엥. 스스로 놀라 허우적거렸다. 이제 차 타고 가야 돼. 가만 어깨를 내주던 민윤기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먼저 내렸다. 하씨. 이게 아닌데. 자괴감에 잠시 빠졌다가 피곤해서 어쩔 수 없다며 합리화를 했다.


 차로 갈아타고 나선 꽤나 먼 거리를 달렸다. 점점 길이 외진 곳으로 이어진다. 지민이 운전하는 윤기를 영 수상쩍게 바라보았다.



“눈길이 뜨거운데. 왜. 새삼 잘생겼나.”

“왜 이렇게 멀리 가요?”

“납치 중이니까 멀리 가야지. 가까운 곳으로 가면 도망갈 거 아냐.”

“…….”

“농담이야. 도착하면 알아. 기대해도 좋을 거야.”



 좋아 봤자 얼마나 좋겠어. 지민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잠이나 마저 자야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민이 제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눈을 꿈뻑거리며 떴다.


 차창 밖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세상이 온통 하얗다. 눈이다. 새하얀 설탕을 흩뿌린 듯 겨울이 펼쳐져 있었다. 지민이 눈을 비비적거렸다. 아직도 꿈 속인가?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 여름이었는데, 순식간에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12월의 한 겨울로 변했다. 잠깐 잔 사이 이런 일이 가능한가?


 지민이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눈이 뽀드득거리며 발 아래서 부서진다. 제법 쌀쌀하다. 하아, 입김을 내뱉으니 공중에서 뿌옇게 흩어진다. 머지않아 지민은 어깨에 닿아오는 감촉에 움찔했다. 따뜻한 코트가 덮여있었다. 민윤기였다.



“앞으로 돌아봐.”



 민윤기는 지민을 김밥 감싸듯 코트를 목 끝까지 올려주었다. 바짝 붙어선 거리는 제법 가까웠다. 뒤에서 누가 등을 밀면 얼굴이 닿을 거리였다. 기대 안 한다던 지민이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어요?”

“시애틀.”



 만년설. 국립공원이야. 오기 힘들긴 하네. 대답하며 윤기는 지민의 살이 보이지 않게 덮은 뒤 만족한 듯 손을 뗐다. 본인은 아직 셔츠만 입은 그대로다. 그리고서는 춥지도 않은지 씨익 웃어 보인다.



“너 눈 좋아하잖아. 데려다 주고 싶었어.”



 지민은 일순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민윤기는 사랑했던 그 시절의 얼굴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박지민이 사랑한 그 웃는 얼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떠나버린 사람이 여전히 사랑을 품고 있을 리 없는데.


 이건 착각이야. 지민이 머리를 흔들어 털었다. 부러 윤기로부터 뒤로 한 발자국 멀어진다. 윤기는 그럴 줄 알았단 것처럼 차에서 짐들을 꺼낼 뿐이다. 두 사람이 한 발작 한 발작 걸을 때마다 뽀독뽀독 눈이 밟힌다. 지민은 그게 참 소란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음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을 무시하며.






 시애틀에 자리잡은 눈 덮인 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년설이라는 평을 듣곤 한다. 하얀 지붕을 덮고 있는 산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그림이다. 한 여름에 눈을 찾아 온 사람들로 산장의 예약은 하늘에 별 따기가 된 그런 곳이다.


 지민은 말간 얼굴로 코가 빨개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깡총깡총 눈밭을 뛰어다녔다. 한창 눈밭에 눕고 구르면서 다니다가, 설치류 동물을 만나니 눈을 반짝거리며 가까이 다가가 관찰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까지 건넨다. 안녕. 너 진짜 귀엽게 생겼다. 지민이 활짝 웃었다.


 뒤에서 조용히 곁을 지키는 민윤기는, 그런 설치류 동물이 아니라 지민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년설이 옆에 있어도, 한 여름에 보는 눈도, 그림 같은 풍경들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속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는 박지민만을 바라봤다. 간혹 지민이 고개를 돌리면 시선을 급히 돌리거나, 설치류의 이름 등 잡학 상식들을 떠들며 딴청을 부렸다. 그리고 지민이 시선을 거두면 다시금 지민을 훔쳐보기 바빴다. 너무 아까워서 함부로 보기조차 아까운 사람처럼.


 눈밭을 뒹굴고. 웅장한 설산의 모습을 쉴 틈 없이 사진으로 담고. 눈사람까지 만들고. 실컷 즐긴 산장으로 돌아온 지민의 손엔 핫초코가 들려있었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잔을 손에 쥐고 설산의 뷰를 계속해서 구경했다. 커피를 든 윤기는 지민의 머리칼 위에 톡톡 떨어져있는 하얀 눈송이들을 발견했다. 손을 들어 살살 부드러운 머리칼을 넘긴다. 지민이 예민한 고양이처럼 흠칫하며 돌아본다.



“뭐예요?”

“눈 묻어서.”

“아.”



 큼큼. 지민이 헛기침을 한다. 조금 이따 털 거였어요. 민망한지 덧붙이더니 이내 다시금 설산을 구경한다. 발갛게 물들은 볼. 톡 튀어나온 입술. 민윤기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목숨과도 바꿀 만큼 사랑하는 것들. 산장에 수많은 사람이 북적거렸지만 그는 이 순간 오로지 지민과 자신만이 이곳에 있다고 느꼈다.


 윤기는 지민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도장 찍듯 눈에 담았다. 박지민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민윤기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지민의 말랑한 뺨이 달아올라 있다. 추운가. 뻗고 싶은 손을 윤기는 애써 주먹을 쥐어 꽉 참았다.



“이제 그만 내려갈까?”

“…벌써, 아니, 뭐 그래요.”

“아쉬워?”

“아뇨? 하나도요.”

“괜찮아.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그럴 일은 없어요. 영영.”



 고개를 팩 돌린 지민이 먼저 핫초코를 버리고 앞장서서 나간다. 윤기는 동그란 뒤통수를 보면서 커피를 삼켰다. 박지민이 저러는 건 마땅하다. 그러니 기꺼이 감내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민아. 나는 널 단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었어.









 민윤기 초호화 납치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시애틀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부자가 된 구남친은 실내에 풀수영장이 딸린 스위트룸을 선택했다. 민윤기가 내준 라스베가스의 방보다 작긴 했지만 일반 호텔치고는 꽤 준수한 편이었다. 발 아래 한 눈에 깔린 시애틀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아마 이 높이에서 본다면 오전에는 만년설의 하얀 지붕까지도 보일 거다.



“잠깐 있어. 요리 해줄 테니까.”

“직접 해요?”

“응.”



 지민은 멈칫했으나,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발코니로 나와 야경을 구경했다. 수많은 게 변한 것 같아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만 같다. 연애를 할 시절에도 요리는 민윤기가 담당했다. 살림이라고는 하나도 못하는 지민 대신 장까지 보고 식단을 신경 쓰고 온갖 빨래와 집안일을 죄다 담당했다. 나중에는 유모와 집안일 관련으로 따로 다니기까지 했던 거 같은데….


 똑똑. 유리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민이 돌아보니 윤기가 입모양으로 말한다. 다 됐어. 지민은 과거의 상념을 접어두고 식탁으로 향했다.



“오늘 네가 돌아다닌 양이 산에서 만난 그 동물친구보다 많을 거야. 많이 먹어.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

“그리고 밥 먹고 감기약 먹어. 좀만 추워도 문제 생기잖아, 너. 샤워는 찬물 좋다고 막하지 말고 따뜻한 물로 하고.”



 식탁에는 온통 온통 지민이 좋아하는 것뿐이다. 김치볶음밥과 계란찜, 김치찜. 한식에 미친 지민이 좋아하는 메뉴들이었다. 윤기는 식탁 위에 약까지 이미 챙겨놓았다. 박지민은 눈을 좋아하는 주제에, 몸을 섬세하게 챙기지는 못해서 눈만 구경했다 치면 감기에 걸리기 일쑤였다. 그것을 매번 돌보던 것도 민윤기였다.


 왜 민윤기는 이런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식기를 쥔 지민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서로의 습관에 길들여져 모든 걸 다 알고 있던 그 때처럼. 마치 자신처럼. 지민은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왜 나를 계속 착각하게 만드는 거야. 연기라는 걸 아는데. 그렇게 잔인하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인데. 이미 끝난 사이일 뿐인데.


 왜 자꾸. 저 눈이 가장 큰 문제다. 왜 자꾸 아직도 날 사랑하는 것 같은 눈으로 보는 거야.


 아니, 이건 머리가 고장 난 게 분명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민이 포크를 턱 내려놓고선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르륵 밀리는 의자에 윤기가 어리둥절하게 본다.



“왜.”

“머리 좀 식혀야겠어요.”

“갑자기? 무슨….”



 지민은 그대로 수영장으로 다가갔다. 야 너 뭐. 그리고 윤기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물에 몸을 던졌다. 풍덩. 커다란 물보라가 친다. 윤기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린다.



“야! 박지민!”



 지민이 빠진 자리 위로 보글보글 거품이 인다. 마찬가지로 민윤기의 손에서 식기가 나뒹굴며 바닥에 떨어진다. 꽤 시간이 지나도 지민은 물 위로 나오지 않는다. 이게 진짜. 민윤기는 그대로 지민을 따라 물로 뛰어들었다. 지민을 물 아래에서 건져냈다. 푸하. 물을 토하는 지민과 함께 윤기도 기침을 했다. 지민의 어깨를 붙들고 이리저리 괜찮나 확인부터 한 윤기가 외쳤다.



“너 미쳤어!?”

“켁, 아니, 고작 수영장에 빠진 거 가지고 유난은, 켁켁.”

“밥 먹다 뛰쳐나가서 다이빙하는데 유난을 안 떨게 생겼어? 제 정신이야? 못 본 사이에 왜 더 미친 거야?”

“나보다 더 미친 게 누군데.”



 그 말에는 또 할 말이 없다. 하. 윤기는 낮은 숨을 토하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하얀 셔츠를 입고 있는 덕분에 살갗이 그대로 다 보였다. 얇은 지민과는 달리 제법 두툼하다.



“말싸움 실력은 좀 늘었네.”

“그때도 그렇게 약하진 않았어요.”

“그래. 덕분에 같이 미쳐서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됐다.”



 윤기는 그대로 지민을 이끈다.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인데 알겠으니까.



“우선 나와서 이야기해.”



 지민은 저 때문에 홀딱 젖은 민윤기의 등을 보면서 인정해야만 했다. 머리를 식혔는데도 그대로다.


 사랑을 뿌리 채 뽑아 태웠다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씨앗이 남아있었다. 아직도 민윤기를 보며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밟고 또 밟아 죽여도 민윤기가 물을 주니 다시금 잿더미에서도 생명을 피워냈다. 썩지도 않는다. 질기기도 엄청 질겼다. 이것은 어떻게 손쓸 수 없다. 누른다고 해결 될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윤기 형.”



 윤기가 움찔한다. 재회한 이후 단 한 번도 불려본 적 없는 호칭 탓이다. 가끔 상대방의 호칭만으로 시간을 돌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윤기는 삐걱거리는 고개로 지민을 돌아보았다.



“왜 그때 날 떠났어요?”



 윤기가 멎는다. 지민은 올곧게 윤기를 마주보았다. 피할 의지가 없다. 사실상 거의 금기되어있던 질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단계. 그들의 위로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지민의 손을 쥐고 있던 윤기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진다. 윤기는 천천히 입을 뗐다.



“…사정이 있었어.”

“무슨 사정인데요?”

“말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이해는 제가 할게요. 형은 우선 말해요.”



 어물쩡 넘어갈 수 없다. 지민은 스스로를 알았다. 과거의 박지민은 민윤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사랑만이 전부였으니까. 민윤기가 별을 달이라고 알려주면 그도 그렇게 믿었다. 민윤기를 믿고 싶었으므로. 지금도 감정에 흔들린다면 그렇게 넘어갈 결말을 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결말이 어찌되었는가. 그들은 조각난 배 위에서 침몰했다.


 이미 한번 망가진 관계는 되살리는데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믿음, 신뢰. 그런 것들로 기반을 쌓아 올려야만 이전과는 다를 수 있을 터였다. 지민은 윤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지금이라도 그때의 진실을 알려준다면.


 마침내 입을 연다. 하아. 낮은 한숨을 크게 쉬고선.



“그냥 돈에 눈 돌아간 미친 새끼로 믿어주면 안 되냐, 지민아.”

“…….”

“한 번만, 딱 한 번만 그냥 형 봐주면 안 될까.”



 민윤기가 절실한 눈을 한다. 지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민윤기는 또 솔직해지지 않는다. 이마저도 언젠가 과거에서 들은 말과 똑같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하고 다시 만났는데, 어떻게 우리는 아직까지도 똑같단 말인가. 또 숨기는 민윤기와 결국 가까워질 수 없는 박지민.


 지민은 자신들의 결말을 눈치챘다. 어느 삼류영화의 소설 같은 결말인 것이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결말을 되풀이하는, 흔한 연인 사이 중 하나. 스르륵 눈을 뜬다. 지민은 민윤기의 검은 동공 안에 가득 차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 아직도 사랑해요?”



 사실은 이것이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깊은 심연 같은 눈에는 온통 지민뿐이다. 민윤기의 음성이 울린다. 단호하고 묵직했다.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

“모든 순간을 잊지 못했어. 정말 단 한 순간도.”



 지민은 그 말이, 그게 저를 이끄는 끈인 것처럼 천천히 윤기에게 다가간다. 윤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민을 홀린 듯 보고 있었다. 지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온전한 진심도 민윤기에게 내밀었다. 이 순간만큼은 서로 진심이 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형이 떠난 순간부터, 잊으려고 온갖 짓을 다 했는데 실패했어요.”

“…….”

“미치도록 그리웠어요.”



 지민이 윤기의 뺨을 붙잡아 당겨 입술을 포갰다. 차라리 싫어할 수 있었다면. 이 온기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다. 닿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전율이 흐를 만큼 좋지 않았더라면. 윤기는 나사 빠진 인형처럼 멍청히 서있었다. 짧게 키스하며 지민의 윤기의 등을 끌어안는다. 넓은 등은 여전히 단단했다.


 입술을 떼고 윤기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윤기는 제 셔츠에 어떤 것이 뜨겁게 번지는 것을 눈치 챘다. 이미 젖어버린 셔츠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온기였다. 윤기는 마주 지민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지민아.”



 지민이 고개를 다시금 들어올렸다. 언제 울었는지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멀쩡해 보였다. 지민은 눈을 휘며 웃었다.



“안아줘….”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윤기는 바로 지민의 입술을 감쳐 물었다.











 여행은 짧게 끝났다. 말이 여행이지, 사실상 설산을 다녀온 이후 호텔에서 내내 뒹굴기만 했다. 서로를 물고 빨며 이 시간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세상에 둘만 남아버린 것처럼, 주연이 우리인 영화처럼 서로를 탐닉했다.


 그리고 민윤기는 눈을 떴다. 침대 옆자리를 텅 비어있었다. 이미 꽤 오래 전에 빈 듯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민아?”



 윤기는 급히 스위트룸을 돌아다니며 지민을 찾았다. 기사에게까지 연락을 했다. 기사는 의아하다는 듯 대답했다. 마스터께서 피곤하셔서 곤히 주무신다고 깨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민윤기는 옷을 대충 꿰어 입은 채 그대로 호텔 씨씨티비를 월권으로 뜯어보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지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지민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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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말인데 재미있는 일이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열심히 써뒀던 비축본을 풀어봅니다.

힘들 땐 즐거운 일을 의도적으로 하면 좋다잖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합시다. 밥은 꼭 챙겨 드세요

우리 존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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