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g>
너 그렇게 살다 단명한다. 김태형은 어렸을 적부터 이 이야기를 수십 번도 넘게 들어왔다. 그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거 멋진데? 화끈하고 굵게 사는 거 좋아.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그때 한번은 충고랍시고 진지하게 들어봤어야 했나? 태형은 이번에야말로 그 말이 현실로 이뤄지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저기요? 아무도 없나요? 여기 사람이 있는데요~?”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고 몸은 의자에 묶여있었다. 손이고 발이고 몽땅. 끙끙거리며 태형이 몸을 들썩였으나 끈은 느슨해지는 기미조차 없었다. 하 씨발. 한참이나 힘을 쓰던 태형은 몸에 힘을 탁 풀었다. 될 대로 되라. 죽이던지 살리던지. 이미 처맞은 뒤통수 한번 더 처맞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샤라에게 뒤통수를 맞고 기절하니 태형을 기다린 상황은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온몸이 꽉 묶인 채 감금되어 밤인지 낮인지 구분하지도 못했다. 문은 이러다 뒤지겠다 싶을 때쯤 딱 한번씩 열렸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돈이라면 다 드릴게요! 일단 비는 태형에게 묵묵히 다가와 입에 물병을 쑤셔 박고 몇 모금 주더니 그대로 조용히 떠났다.
대체 어떤 새끼지. 태형은 머릿속에 원한을 샀던 인물들을 추정해보았다. 데이트로 위장했다가 슈퍼카 훔치느라 늪에 혼자 버리고 온 알렉산드라? 술 먹여서 재우고 싸그리 털어버린 보석상? 그도 아니면 길에서 쉽게 친해진 뒤 지갑만 털고 버린 수많은 인간들. 하도 짚이는 게 많아 인물 리스트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뭐 어쨌든.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냐. 태형은 어떤 새끼가 등장하든 당황하지 않고 바로 후려친 다음 빠져나가겠단 계획을 짰다. 아무렴 도둑질로 벌어먹고 산 짬밥이 얼만데. 그 동안 성공시킨 판이 몇 개인데.
덜컹. 문이 열리고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태형은 냉큼 입부터 털었다.
“저희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한 번만 하면 안 될까요? 이렇게 무작정 가둬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이 물론, 무울론! 선생님께서 지금 무척! 많이 열 받으신 상황이란 거 압니다.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못했죠. 정말 제가 찢어 죽일 새끼입니다. 저도 여기 갇혀있는 동안 반성 많이 했어요. 어쩌자고 선생님께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흑. 회개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이래봬도 쓸모가 아주 많습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특히 이런 얼굴은 흔치 않아요. 아시잖아요? 그러니 우리 서로 마음을 열고 진실된 대화…으극!”
시끄럽다는 듯 말을 자르며 물병이 입에 쑤셔 박힌다. 어푸푸. 세수하듯 물을 반쯤 흘리고 왁왁 짖어댔다.
“이 씨바, 악마 새끼들아! 너네가 5일 굶어 봤어?! 사람을 이딴 식으로 대해? 내가 여기서 풀려나기만 해봐! 아주 다 뒤졌…!”
“5일 아니고 2일 지났어.”
안대가 벗겨진다. 쏟아지는 조명이 눈부셔 수 차례 눈을 감았다 뜬 태형이 잠시 뒤 초점을 잡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인물을 본 순간,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간다. 미친. 리스트에 올릴 생각조차 못한 범인이라 그만 꽥 비명을 질렀다. 으악.
“혀, 혀, 형이 왜 여기 있어요?”
“내 호텔이니까.”
태형이 입을 떡 벌렸다. 수많은 원수들을 떠올렸지만 그 원수가 친구의 원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명품 수트를 입은 민윤기는 김태형의 기억 속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똑같은 점은 있었다.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심드렁한 저 얼굴. 박지민을 제외한 모든 물체, 물론 사람을 포함해서 관심이 없다.
그러다 문득 태형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나를 여기 잡아다 놓은 게 민윤기면? 박지민도 똑같이 민윤기에게 잡혀있을 거다. 그리고 배신은 팀원 중 한 명이…. 태형의 잘생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거 다 형이 계획한 거예요?”
“뭐.”
윤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태형은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지민이 지금 형이 데리고 있어요?”
“그건 네가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고.”
“형 진짜 돌았어요? 설마 박지민 다시 잡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
“왜. 그럼 안 돼?”
“와.”
진짜 미친 새끼셨네. 당당한 태도에 태형이 헛웃음을 흘렸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천문학적인 금액인 보석은 단순한 미끼였고, 셀 수도 없이 매스컴에 뿌려진 기사와 영상들은 단 한 사람 박지민만을 위한 초대장이었으며, 자신의 앞날까지 도박으로 걸고 보석을 잃어먹는 쇼를 펼치며 지민을 가뒀다. 모든 게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민윤기 손바닥 위에 있던 거다. 고작 구남친 하나 잡겠다고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는 새끼가 있네.
태형은 지난 날의 지민과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것도 모르고 털어먹겠다고 여기를 온 거다. 호랑이 굴이 아니라 호랑이 아가리에 대가리를 넣고 있었는데.
“목적이 뭔데요? 지민이한테 그렇게 상처 주고 튀었으면 끝이지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예요?”
“그것도 네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고.”
윤기가 까딱 고갯짓을 한다. 그러자 윤기의 옆에 가만히 서있던 남성이 커다란 가방을 가져온다. 그 가방을 태형의 앞으로 던졌다. 제법 커다란 가방은 꽤나 무게가 나가는지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달러로 꽉 채웠어. 그 보석 털어서 나눈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야.”
태형의 눈이 튀어나오게 커진다. 윤기는 가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태형을 보고 다시 한번 손을 까딱 움직였다. 사용인이 태형의 의자에 다가가 모든 끈들을 풀어주었다. 자유롭게 된 신체에도 태형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윤기를 올려다보았다. 꿀꺽 목울대가 울린다.
“혀, 형님께서 이거를 저한테 왜….”
“형님 소리는 이렇게 하면 나오는 거였냐? 과거에도 한 번 못 들어본 걸 이렇게 듣네.”
“그니까 저는 이제 약간 조금 갑작스러워서….”
“별 거 없어. 네가 할 건 간단해.”
“…뭔데요?”
“그냥 그 돈 들고 박지민 눈에 안 띄는 곳 가서 얌전히 살아. 박지민이 신경 안 쓰게 하라고.”
“…….”
“그리고 너도 박지민한테는 신경 끄고.”
이 정도면 인간 대 인간으로 하는 대화는 충분하다고 보는데. 머리 위에 떨어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고저 없다. 태형은 윤기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이 미친 새끼께서 원하는 건 하나다. 자기가 박지민 낼름 잡아먹는 걸 방해하지 말란다.
친구 김태형으로서의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긴 했다. 민윤기가 어떤 새끼인지 잊었어? 그걸 다시 만나? 절대 안 된다며 도시락을 싸들고 지민을 뜯어말릴 거였다. 그러나….
태형은 무릎걸음으로 의자에서 슬금슬금 내려와 가방의 지퍼를 열어보았다. 오 마이. 씨발. 이 정도면. 빳빳한 돈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김태형의 워너비 머니다. 평생 놀고 먹고 살 수 있을, 그러니까 아무리 돈지랄을 해도 사라지지 않을 돈. 태형이 흘끔 윤기의 눈치를 보았다.
“…근데 지민이는 안전한 거 맞죠?”
“싹 다 잘라서 내 옆에 붙여둘 텐데 뭐가 문제야.”
미친놈의 확답을 보니 확실히 박지민만은 지킬 듯싶다. 물론 지민이가 싫어하긴 하겠지만. 태형의 머릿속으로 복잡한 장면들이 지나간다. 민윤기 이름만 나오면 이를 득득 갈던 박지민. 이곳으로 오기 전 함께 나눴던 약속들. 우리 돈 벌어서 어디로 놀러 갈까? 이제 완전히 손 털까? 태형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 돈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우정은 구할 수 없지. 저울의 무게가 점점 한 쪽으로 쏠린다.
“그래도 친구를 배신하는 건 이제 약간….”
태형이 아쉬움이 뚝뚝 흐르는 손길로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어? 태형의 눈이 조금 놀라 커진다. 윤기가 툭 말한다.
“두 배 줄게.”
“형님 우리 지민이 잘 부탁 드립니다.”
상냥하게 대해주세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태형은 냅다 일어나 냉큼 절까지 했다. 지민아 미안하다. 너도 이렇게 큰 돈이면 가져가라고 했을 거야. 사실상 우리 둘이 머리를 합쳐봤자 민윤기를 이기기도 힘들어 보이고. 그치? 너도 알지?
태형은 자신이 지금 지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소중한 친구에게 명복을 빌어주는 것. 어찌됐든 지민이 행복하길 바라는 건 진심이다.
***
볼레타 호텔은 단단히 자리를 차지한 라스베가스 호텔들 사이 꽤 뒤늦게 세워진 측에 속했다. 이미 명성이 드높은 호텔들 사이에서 스러져가는 호텔 중 하나가 될 운명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측했다. 그러나 혜성같이 등장한 새로운 마스터는 카지노에 최고급 술을 뿌리고, 빼어난 외모의 딜러와 직원들을 고용하였으며, 연신 화려한 이벤트로 볼레타의 이름을 기사 1면에 무조건 박아 넣었다.
볼레타는 카지노뿐만 아니라 정원과 쇼핑몰도 유명했다. 여러 쇼들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위해선 카지노만이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필수였다. 에메랄드 바다를 연상케 하는 수영장 정원은 보기만해도 황홀했다. 그 수많은 룸이 연일 매진으로 바쁜 이유가 있었다.
이 호텔 주인이 민윤기라니. 구남친이 알고 보니 재벌가. 스위트룸 침대에 멍하니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던 지민은 어이가 다시 한 번 털렸다. 하. 처음부터 지갑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었는데 왜 의심할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했을까. 그리고는 협탁에 올려진 카드를 민윤기라도 되는 듯 노려보았다.
놀 때 필요한 건 이걸로 써. 아침에 그 말과 함께 윤기가 카드를 내밀었다. 지민은 카드를 받지조차 않았다. 이딴 건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소식은 찾았어? 뭐가 이렇게 느려. 제대로 되고 있는 건 맞아? 그랬더니 민윤기는 카드를 협탁에 올려놓으며 또 다른 이야기만했다. 한식 요리사 새로 들였어. 김치볶음밥이랑 달라고 하면 새로 줄 거야. 그리고는 시간이 다 됐다며 밖으로 사라졌다. 호텔 도난 이슈로 바쁘긴 할 터였다.
“…….”
갑자기 또 열 받네. 가만히 누워있던 지민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작정 잠수 타고 사라지더니 이제 와서 도와준다고? 그때 그렇게 떠난 것부터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뼈에 사무친 이별은 아직도 지민의 머리를 달아오르게 했다. 이렇게 방치할 게 아니다. 티끌만한 거라도 민윤기를 엿 먹이고 싶다.
지민은 냅다 민윤기의 카드를 쥐고 룸 밖으로 뛰쳐나왔다. 첫 번째 행선지는 호텔 안에 자리잡은 명품 매장들이었다. 어깨가 끊어지도록 더 들 손이 없을 만큼 미어터지게 쇼핑했다. 두 번째 행선지는 카지노다. 지민은 딜러가 당황할 만큼 공격적으로 카지노 게임에 참여했다. 순식간에 잃은 돈은 그날 카지노 매출 1위를 찍어줬을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열 받겠지. 그렇게 쉴 새 없이 돌아다닌 지민은 쇼파에 앉아 민윤기를 기다렸다. 어서 이것들을 보고 민윤기의 얼굴이 일그러지길 기다리며.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린다. 그토록 기다리던 민윤기였다. 윤기가 쇼파에 앉은 지민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이어 지민의 주변에 널브러진 명품 쇼핑백들을 훑는다. 지민이 의기양양하게 다리를 척 꼬았다.
“왔어요? 형이 놀 때 쓰라며. 그래서 그걸로 샀어.”
“잘했네.”
이 정도는 꼼짝도 안 하는 모양이지. 지민은 장전한 다른 총알을 꺼내 보였다. 거만하게 턱을 척 치켜들었다.
“카지노도 갔어.”
“그래? 많이 땄어?”
“다 잃었는데요.”
“아쉽게 됐네. 다음에 내가 가르쳐 줄게.”
여전히 타격이 없다. 지민이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오히려 민윤기의 표정은 기분이 좋은 축에 속했다. 쇼파까지 가까이 다가오더니 조금 실실거리며 물어온다. 눈빛에는 지민이 기대한대로 짜증은커녕 이채가 돌았다.
“형 기다린 거야?”
“…….”
“기다림 받는 건 이런 기분이었구나. 좋네. 옛날에 같이 살 땐 내가 맨날 너 기다렸잖아.”
그때도 좋긴 했는데 이것도 좋네. 민윤기는 기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지민의 표정이 팍 시든다. 윤기가 은근하게 지민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아온다.
“박지민이 기다려주다니. 역사적인 날인데 술이라도 한잔 할까?”
“꺼져요.”
“왜. 기다렸다며. 아, 다른 대화라도 좀 먼저 하고 이 말 했어야 했나? 응 그래. 옷 산 거야? 다음에는 같이 쇼핑하러 갈까?”
“잘 거예요.”
“벌써? 그래. 형은 나쁘지 않아. 그럼 들어갈까?”
“내 침대 들어오기만 해봐. 죽여버릴 거니까 다른 데서 자요.”
지민이 윤기의 팔을 털어버리고 냉큼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훽 뒤집어 썼다. 쪽팔려서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민윤기 엿 먹이기 작전 실패. 그 이후로 대화하는 족족 지민은 민윤기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슬슬 플러팅을 해왔다. 이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살려줬더니 생명의 은인이다 뭐다하며 박지민을 다시 졸졸 쫓아다니던 민윤기 시절로. 형 미쳤어요? 응. 너한테. 그딴 정신 나간 멘트나 했다. 영화를 보자거나, 요리를 해주겠다며 자꾸만 데이트 신청 같은 것도 해왔다. 지민이 학을 뗐다.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뭐가.”
“이딴 짓 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뭐 설마. 진짜 설마해서 묻는데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죠?”
“그게 왜 말이 안 되지?”
이 미친 놈이 뭐라는 거야. 민윤기는 둘도 없는 진심인 듯 진지했다. 진짜로 박지민이 민윤기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 지민은 헛숨을 토하며 이 악물고 말했다.
“형 한 번 잤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럴 일 전혀 없으니까 헛소리 하지 마요.”
“…음.”
“나한테 형은 악몽일 뿐이에요.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야.”
지민이 윤기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민윤기는 꼼짝도 안 했다. 다음에 다시 나타나 똑같은 헛소리를 했다. 심지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 나 조건 좋잖아. 뭐, 얼굴은 원래 네 취향이고. 근데 이제 돈도 많아. 너한테 이득 아닌가? 다시 만나보고 정 별로라고 느껴지면 먹고 버려.”
아예 숨기는 내색조차 없다. 작정하고 덤벼들었다. 미친놈은 상대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결국 나중에는 지민이 일부러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얀 얼굴을 들이밀며 웃는 민윤기는 박지민을 자꾸만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려놓기 때문에 피해야만 했다. 지민은 민윤기가 들리는 아침과 밤에 룸이 아닌 다른 곳에 피해 있다가, 중간에만 룸으로 슬쩍 들어왔다. 가끔 마주칠 때조차 태형의 소식만 묻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게 피하는 것도 곧 불가능해졌다. 민윤기는 아예 일까지 내던지고 박지민의 곁에 종일 붙어있었다. 수영장을 가면 똑같이 수영장으로 따라오고 카지노로 가면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지민아 그거 말고 이걸로 해보는 건 어때. 형 말 들을 필요는 없고. 아, 가려고? 그래. 어디로 가고 싶은데.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니, 도난 사건으로 바쁜 거 아니었냐고. 지가 무슨 캔디야? 외로워도 슬퍼도 계속 플러팅만 치냐고.
무시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반복되는 술래잡기에 지민이 지쳐 나가 떨어졌다. 지민은 잔뜩 지친 얼굴로 하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민윤기는 여전히 지민의 옆에 우뚝 서있었다.
“뭘 원하는 건데요.”
윤기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었다. 여전히 웃는 거 하나는 예뻤다. 재수없게도.
“여행이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