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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22:21

[국민] 고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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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이루리- 구남친 랩소디>


*거지왕 후속편










 연애란 무엇인가. 전정국 인생사전에 의하면 이렇게 적혀있다. 자기만족의 최상위권 행동. 에이즈의 위협이 없는 안정적인 상대와 성적인 쾌락을 찾고, 간혹 애틋하게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는 행동. 쉽게 설명하면 즐기려고 한다는 말이다. 정국은 충실히 그 뜻을 지켰다. 떡이 치고 싶으면 쳤고, 질리면 찼고, 귀찮아져도 찼다. 대부분 연애라는 관계의 정의보다는 섹스파트너라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정국은 최근 들어 연애의 정의를 바꿨다. 연애란 삽질이다. 우리 서로 좋아죽고 못 사니 이리저리 얽힌 길을 간다는 뜻이 아니다. 정국은 실제로 삽을 들고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상추모종을 옮겨 심고 있었다. 송글송글 맺힌 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고, 상의는 샤워라도 한 것처럼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정국의 입에서는 욕이 끊이질 않았다. 존나 더워. 시발 지구온난화, 시발 프레임가스. 사람새끼들 왜이렇게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어놨어? 얼음이 없어서 북극곰이, 어, 시발 북극곰이 죽어가잖아. 사람새끼들을 다 쏴죽여버려야 한다는 결말을 도출한 정국은 결국 삽을 밭에 팩 던져버렸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정국은 텃밭 가꾸기 같은 이따위 보람찬 일을 선호하는 성격이 추호도 아니다. 마트에서 일등급 야채코너에서 상추 백 개를 사면 샀지, 미쳤다고 직접 키워서 먹냐 하는 생각이 그의 뇌 주름 가득가득 차있었다. 누가 권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의향이 충분했다. 정말 그랬다. 그 ‘누가’의 기준에 번호를 딴 예쁜 순둥섹시고양이 박지민이 들어오기 전까진. 정국은 털퍽 주저앉았다.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는 취지는 좋다. 참 좋긴 하다. 좋은데…. 이 상추새끼들 태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뒤지겠다 시발….”

“정국씨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널부러진 정국에게 저쪽에서부터 멀리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정국은 허겁지겁 밀짚모자를 고쳐쓰며 허리를 폈다. 성난 북극곰처럼 크아앙 울부짖으며 속으로 짜증을 부리던 정국이 해사하게 웃었다.



“지민씨.”

“많이 힘들죠?”

“아니요. 체력 원래 진짜 좋거든요. 맡겨주세요.”



 정국이 배추광고CF에나 나올법한 미소를 보이며 텃밭을 가리켜보였다. 꽤나 큰 텃밭은 넷이 달라붙어야 할 양이었다. 다 제가 했어요. 벌써 다섯줄이나 했는데. 이제 두 줄 남았어요. 지민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요? 와 대단하다. 정국씨 진짜 대단해요.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든 지민을 바라보며 정국이 흐뭇하게 웃었다. 고이 눈꼬리를 접은 예쁜 겉가죽과 달리 속은 음흉했다. 존나 예쁘네…. 어떻게 땀이 흥건해도 예쁘지? 이 예쁜 걸 흙더미에서 보는 게 말이 되나.



“지민씨는 일 다 해가요?”

“저는 좀 남았어요. 딸기가 생각보다 양이 많아가지구…제가 진짜 열심히 해서 정국씨 옆에 오고 싶었는데…정국씨가 제 옆에 먼저 오겠네요. 그래도 너무 다행이에요. 주말에 이렇게 같이 있어서. 아 사실 쫌 놀랐어요. 정국씨도 취미활동이 봉사라고 하셔서. 우리 너무 잘 통하네요. 그쵸?”



 지민이 배시시 웃었다.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우리 진짜 잘 어울리네요. 정국은 속으로 조용히 후회했다. 그때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번호를 따고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잘 보이려고 거짓말 하나 좀 했더니, 이런 식으로 크게 상황이 잘못 돌아갈 줄은 몰랐다. 약속을 잡는 족족 강아지 똥을 치우거나, 삽을 들고 상추를 치우거나, 연탄을 나르거나. 마음 같아선 그만하자고 하고 싶지만.



“정국씨 그런데 좀 쉬면서 하세요. 땀 엄청 나요.”



 지민이 걱정된다는 듯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정국의 이마를 꾹꾹 조심스레 눌렀다. 정국은 생각했다. 상추만 심으랴. 이 손길이면 천년 넘은 고목나무도 옮겨 심을 수 있다.



“우리 바꿔요. 제가 상추 심을게요. 딸기는 비닐하우스 안이라서 조금 괜찮아요.”

“지민씨도 많이 나는데요.”

“아니에요, 정국씨 쓰러지면 어떡해요. 정국씨가 딸기 따요.”

“괜찮아요. 마무리만 남아서.”



 어떻게 저 이쁜 걸 고생시켜. 정국은 상추농사 장인처럼 든든해 보이는 미소를 건넸다.



“한 시간이면 금방 심어요.”

“그래도….”

“그럼 다음에 지민씨가 밥 사주세요.”

“음, 제가 밥도 사고 자리도 바꾸면 안 돼요?”

“그건 안 돼요.”

“그럼…언제 시간 되세요?”

“저는 다음주 주말이요. 평일도 괜찮고.”



 사실 박지민이랑 만나기 위해서라면 다 뺄 수 있다. 지민은 좋다고 생긋 웃더니, 금방 아, 하고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어, 저 주말은 안 될 거 같아요.”

“예? 혹시 다른 사람 누구…?”

“아 태형이가 같이 미술관을 가자고 해서요.”



 일순 긴장했던 정국이 힘을 풀었다. 난 또 어떤 새끼가 치근거리는 줄 알았지. 정국은 넓은 아량을 발휘하며 넘겨 웃었다. 사실 넘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처지도 치근거리는 어떤 새끼 수준이었으므로.



“그럼 평일에 봐요.”

“그럴까요?”



 지민이 예쁘게 웃는다. 팔랑팔랑 귀엽게 손을 흔든다.



“그럼 좀 이따 빨리 끝내고 봐요. 정국씨 파이팅!”

“지민씨도요.”



 정국은 멀어지는 뒤통수를 바라보며 다시 삽을 쥐었다. 연애란 삽질, 아니 연애를 위해선 삽질을 해야 한다. 정국은 연애의 정의를 정정했다. 연애만 해봐. 아주, 시발, 지구온난화보다 더 뜨겁게.


 그렇다. 지금은 연애를 들먹일 수 없다.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






***







 지민은 생각보다 더 정국의 취향이었다. 전정국 연구소에서 나온 취향의 정석답게 모든 것이 완벽했다.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 취향이 아닌 것이 없다. 번호를 따고 정국은 난생처음 설렘을 느꼈다. 집에 와 폰만 들여다보며 연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사춘기 청소년처럼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구워삶아야, 어떻게 들이대야 나한테 홀랑 넘어올까. 때문에 내린 결정이 모든 지민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었다. 평생 해본 적 없는 봉사활동? 인생의 목적이 봉사활동인 사람처럼 굴 수 있다. 욕 안하고 예쁘게 웃는 사람? 입버릇이야 고치면 되고, 웃으면 원래 예쁘니까 오케이.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취향은 하나하나는 다 맞출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정국의 눈에 지민은 온실 속 화초였다. 평생 남의 취향 맞출 일이 없던 정국은 지민이 자신의 사생활을 안다면 기겁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칠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지민 앞에서 우연한 만남 모두 착실하고 친절한 법대생 아니었는가. 섹스는 사귄 다음에 해야겠고…가끔씩 마약도 일삼는 쓰레기통 무리와는 관계를 끊어야겠고…룸메이트라는 사람한테 질투도 많이 안해야겠고…. 이 정도면 새로 태어나는 백색의 천사 전정국이다.


 사실 이미 다 이미지메이킹을 그렇게 다 해놨다. 저도 술 잘 못해요. 여태 사귄 사람도 많이 없고. 지민씨랑 다 같아요. 우리 진짜 잘 통하네요. 팔자에도 없는 연기를 일삼으며 정국은 환하게 웃어오는 지민을 보고 양심이 조금 쿡쿡 찔렸다.



“정국씨 맛있어요?”

“네. 진짜 맛있네요. 지민씨도 드세요.”



 정국이 웃으며 스파게티를 돌돌 감았다. 돌돌 말고 싶은 건 이딴 면이 아니라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의 셔츠지만.



“미술관에서는 뭐 보셨어요?”

“아 고흐요. 태형이가 고흐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분이랑 되게 친하신가 봐요.”

“네, 태형이랑 오래됐어요. 좋은 친구예요. 맨날 새벽에 키보드 두드리면서 게임하는 거 빼면요.”



 지민이 히히 웃었다. 정국은 그럼 새벽을 자신과 보내면 되겠다는 말을 꾹꾹 눌러 참았다. 이다음은 또 건전하게 영화나 봐야지, 생각을 하는 순간. 테이블에 올려놓은 정국이 폰 화면이 반짝 빛났다. 지민과 있는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돌려놓으려는데, 연락한 무리가 보낸 사진이 정국의 눈에 잡혔다. 지민과 애견센터 봉사활동을 갔을 때 찾아온 취재진 무리가 찍은 사진. 채팅방엔 정국이 술에 취해 누군가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사진이 동시에 올라와있었다.



[야 안 죽었네]

[전정국 생존소식 발견!!!!!!]

[ㅋㅋ자랑스럽다 전정국]

[여기있는 전정국 찾아요]



 이 시발놈들이….



“왜요? 정국씨 무슨 일 있어요?”

“네?”

“미간이 구겨지셔서….”

“아 별거 아니에요.”



 정국은 급하게 폰 화면을 끄고 돌려놓았다. 지민 앞에서 착하고 예의바르며 취미가 봉사활동인 전정국은 문란하게 노는 사람이 아니니까.



“밥 다 먹으면 영화 보러 갈까요?”

“좋아요! 정국씨는 액션영화 좋아해요?”

“저는 뭐 다 좋아요.”



 정국은 지민을 만나면 만날수록 한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깊게 새겼다. 들키면 좆 된다.






***







 정국은 메시지 딱 하나만을 보내고 어울리던 무리의 연락을 차단했다. 이제 다시 태어났으니까 꺼져라. 물론 무리는 반발했다. 이 새끼, 이거 변했네. 사랑을 택해서 우정을 버리는 거냐? 서로 술을 마실 때만 불렀으면서 무슨 우정이 있다고 하는 건지 그들은 끈질기게 천년의 우정 타령을 했다. 먼저 이따구로 살면 망한다며, 술에 찌든 삶을 청산하겠다며 떠난 민윤기는 이 우정타령을 어떻게 뚫고나간 걸까. 정국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단톡방을 나간 윤기처럼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민을 약점으로 잡고 흔들었다. 전정국을 되찾기 위해선 연애대상을 제거해야한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지민이 봉사활동을 하는 유기견 센터로 금방 처들어갈 듯 씩씩거렸다.


 정국은 옷장 구석으로 밀어놓았던 가죽바지를 꺼냈다. 가만 생각하니 밤에 이 옷을 입고 덩치 커다란 개와 산책을 나온 지민을 만났던 거 같은데. 정국은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이후로 한 달이 지나도 관계에 진전이 없다니. 뭐 아직은 지민을 만나기만해도 좋으니까. 생각하며 정국은 택시를 잡아 무리가 오라 초대한 클럽으로 발을 옮겼다.



“시발새끼들, 뒤지고 싶냐?”

“오 왔다왔다.”

“바로 삼십분 뒤에 나갈 거야.”

“뭘 가. 에이, 튕기기는. 오늘 물도 좋아.”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인 박대철이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독 잘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한 클럽은 어떤 뜨는 아이돌이 오늘 왔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정국은 흥미가 없었다. 아니, 흥미가 없다는 말 보다는 다 성에 차지 않았다. 박지민을 만나기 전이라면 눈길이라도 던져봤겠지만, 이미 최고의 취향을 만났으니.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른 반찬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됐어. 술만 마시다 갈 거니까. 부르지마.”



 정국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잔을 땄다. 오랜 금주생활로 술은 좀 고팠다. 그러나 그마저도 질린다. 룸에 한두 명씩 파트너를 데려와 쪽쪽거리는 새끼들 때문이었다. 안 오면 죽일 듯 난리를 치더니, 막상 오니 그들은 정국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긴. 이곳이야말로 단순히 하반신을 쓰기 위한 곳이니.


 정국은 점점 음란해지는 소음을 듣기 싫어 룸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다. 클럽에 오면 그래도 좀 끌리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몸까지 성실해지는 건가? 박지민이랑 있으면 섹스 말고도 다른 게 하고 싶기도 하고…. 그냥 같이 있는 검산으로도 꽤 좋으니까. 내 취향이 변한 건가? 아니면 거짓말을 하도 해서 헷갈리는 건가? 술냄새도 질리니 나가야겠다.


 정국이 안주를 집어먹은 손을 씻기 위해 수도꼭지를 돌린 그때. 화장실로 누군가가 들어온다.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 들어온 누군가의 눈이 댕그랗게 떠진다.



“…정국씨?”



 정국의 손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이 맴돌았다. 아, 좆됐다.






***






 지민은 난생처음 커다란 고민에 직면했다.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그만두고 싶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온 봉사활동이 질릴 리는 없다. 다만 봉사활동을 같이 하는 사람 때문이다. 물론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해서. 잘생기고 예쁜 얼굴로 봉사활동에 집중하려는 지민의 정신을 앗아가서. 착하고 다정한 말투로 강아지한테 간식을 줄 때도 몇 개를 줬는지 까먹게 만들어서. 가장 큰 이유는 봉사활동이 아닌, 다른 일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 탓이다. 물론 보람차고 좋은 일이지만 정국과 같이 다른 일도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둘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거나, 뭐 은근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거나.


 그런데 정국씨가 봉사활동을 너무 좋아하니까….


 지민은 정국에게 문자를 해볼까, 말까 고민하던 중 새로운 메시지를 받았다. 야 니네 룸메이트 술 취했다 건져가라. 태형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다. 김태형 이 자식이 또. 이 중요한 순간에 뭐냐며 투덜거리면서도 지민은 택시를 잡아 태형의 친구들이 위치를 찍어준 클럽으로 향했다. 디제이의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귀를 뚫을 듯 들어온다. 야! 김태형! 여기 이대로 있으면 바닥에서 재운다! 흐물렁거리는 태형을 들어올리다 맥주가 소매에 콸콸 쏟아졌다. 지미나아, 진상을 부리는 태형을 꾹 노려보며 태형의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나 이거만 씻고 갈게. 애 먼저 택시에 좀 태워보내줘. 아주 죽었어, 김태형.


 그런 사정을 거쳐 화장실로 들어왔다.



“…….”

“…….”



 지민은 멍하니 눈만 깜빡거렸다. 정국은 분명 과제를 하고 있다했다. 미안해요, 지민씨 오늘은 과제가 많아요 하고 우는 이모티콘도 붙이면서. 억겁의 침묵 끝에 지민은 간신히, 정말 간신히 할 말을 찾아냈다.



“어어…과제는 다 하신 거예요…?”

“아….”



 정국은 미치겠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거짓말을 쳐놓고 이런 천사 같은 반응이라니. 전정국 인생 처음 찾은 운명의 상대를 이렇게 보내는 구나. 마른세수를 한 정국이 말했다. 양심이 찔려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네?”

“사실 나는 이렇게 살아요. 지민씨한테 다 거짓말했어요. 처음 지민씨 만났을 때도 그냥 꾀죄죄한 게 불쌍해보여서 적선한 거였어요. 내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

“봉사활동 같은 거 평생 해본 적도 없고 귀찮기만 하고 지금도 사실 건전한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지민씨 어떻게 해볼 생각만 가득해요.”

“…….”

“정 떨어지죠? 알아요. 그런데 이게 본심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연기해서 미안하고….”



 화장실은 침묵에 잠겼다. 쿵쿵거리는 클럽음악소리가 심정지 기계의 삐삐 울리는 소리같았다. 정국은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질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거짓말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착한 봉사활동 천사 지민이라면 기가 찰 거다. 다 털어놓았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정국이 나가려는 순간, 지민이 덥석 다급하게 정국의 소매를 잡았다.



“저는 정국씨 싫다고 안 했는데요?”

“…예?”



 정국은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놀라서 도망갈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민은 도망은커녕 정국을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왜, 왜 이렇게 가려는 거예요?”

“…….”

“거짓말 때문이에요? 거짓말이면 나, 나도 고백할 거 있어요.”

“…….”

“그게….”



 지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머뭇머뭇하더니 나가려는 정국의 모양새를 보고 소매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어제 샤워하면서 혼자 만졌어요.”

“…….”

“정국씨가 계속 생각이 나서….”

“…….”

“미안해요….”



 뭐라고? 정국은 눈만 크게 뜨고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말이 물이 되어 귓가를 주르륵 흐르는 기분이었다.



“우리 그러니까 서로 공평한 걸로 해요.”

“…….”

“그리고, 그리고 사실 나도 맨날 정국씨 보면서 막, 막….”



 왜 클럽 화장실에서 서로를 향한 고백을 이어나가게 된 걸까.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정국은 생각했다. 언젠가 어울리는 쓰레기 무리에게 밥을 한번 사야겠다고. 더불어 룸메이트 김태형씨에게 큰 절을 한 번 올리기로. 입술을 달싹거리며 씹던 지민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정국씨, 그러니까! 제가! 정말로!



“좋아….”



 지민의 말은 끊겼다. 정국이 하얀 두 볼을 붙잡아 입술을 붙였다. 고백의 수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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