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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Flying Pickets - Only You>





* 슈짐윤

*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홍콩

* 유혈 및 폭력 주의











 버려진 것들은 한데 고이고 묶여 썩는다. 난민들이 몰려와 터잡은 지역은 콘크리트 건물을 우후죽순으로 쌓아 올렸다. 그리하여 버려진 인생들이 한데 모여 성이 됐다. 구룡성채. 미로처럼 얽힌 고층 슬럼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건 사람 목숨이었고, 가장 쉽게 소모되는 것도 사람 목숨이었다. 미세한 불빛 아래 모인 하루살이들은 냄새 나고 더러운 이곳에서 자유를 누렸다. 법도 치안도 조도 아무것도 없으니 방종이나 마찬가지다.


 지민은 이 방종의 땅으로 15살에 건너왔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사망한 이후 삼촌 손에 맡겨졌고, 삼촌이라는 새끼는 세상팔방 욕이 아까운 씹새끼였다. 도박에 빠져 빚을 가득 떠안은 그는 마지막 보루로 홍콩에 지민을 이끌고 도망 왔다. 한국에 있는 빚쟁이들은 홍콩이라는 땅에 숨어버린 바퀴벌레를 찾지 못했다. 삼촌은 며칠 숨을 죽이고 있더니, 금방 다시 도박을 시작했다.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살림살이를 다 팔아먹으며 그는 그 생활을 일삼았고, 마침내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동났다. 그의 눈에 구석에 처박혀 무릎을 말고 쪼그려 앉아있는 조카에게 닿았다.



“이 새끼 빠릿빠릿하게 안 따라와?”

“아, 아파요 삼촌….”



 마른 팔을 질질 끌고 가는 남자는 홍등을 밝히는 건물 안으로 향했다. 불법 매매상. 그는 지민을 주인장 앞으로 내팽개치듯이 던졌다. 안경을 쓴 채 재떨이에 담배를 털던 주인이 그를 흘끔 본다. 주인은 익숙하다는 듯 지민을 슥 훑어보고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삼촌이 화를 냈다. 지민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광동어였다. 언성을 높이던 삼촌이 보라는 듯 지민의 얼굴을 잡아 채 주인장 앞에 들이밀었다. 주인장이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야 이 씨발놈아 그간 키운 게 있는데 고작 그거라고? 양심도 없는 개새끼들.”



 조카까지 팔아 치우는 제일 양심 없는 새끼가 양심을 논했다. 한국어로 중얼거린 그는 주인장에게 계속 무슨 요구를 했다. 주인장은 혀를 쯧쯧 차더니 손가락 하나를 더 폈다. 퉤. 지민의 삼촌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폐 다발이 그에게 내밀어진다. 300달러였다. 지폐를 꼼꼼히 확인한 그는 바지춤에 그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미련도 없이 뒤를 돌아 나간다. 지민이 그를 쫓았다.



“삼촌!”



 그러나 그는 모른 척했다. 삼촌! 나도 데려가! 매일같이 맞고 바닥에 굴려져도 유일한 혈육이다. 지민이 그를 따라가려 했으나 가게 안쪽에서 나온 커다란 덩치들이 지민의 몸을 꽉 붙잡았다. 안 돼, 삼촌 제발 나 버리지마. 한국어를 모르는 남자들은 엉엉 우는 지민을 가게 안쪽으로 짐짝처럼 날라 철창 안에 처박았다.


 지민은 버림 받았다.




 소년은 그 안에서 바짝 말라갔다. 사람을 팔다 팔다 안 팔리면 결국 장기를 빼내 파는 곳에서 지민은 영 볼품없는 상품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마켓 뒤를 어슬렁거리며 철창 사이를 걸어 다녔고, 손님처럼 보이는 사람의 손짓에 철창 안의 사람들이 팔려 나갔다. 그 사이에서 마르고 어린 지민은 늘 제외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지민은 자신처럼 팔리지 않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옮겨졌다. 바겐세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안 팔리는 물건을 싸게 떨이하는 블랙마켓이다.


 짝짝! 박수를 쳐 주의를 모은 경매사가 지민의 철창을 소개했다. 아무도 지민에게는 번호판을 들지 않았다. 경매사가 시끄러운 광동어와 함께 지민의 철창을 막대기로 친다. 캉캉거리는 시끄러운 소음에 지민이 무릎에 파묻은 고개를 더욱 묻었다.



“出售!”



 낙찰! 경매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친다. 어느 여성이 번호판 팻말을 들고 있었다. 진한 화장에 머리를 주황색으로 염색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지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코를 틀어쥐었다. 경매사에게 무어라 말하니, 경매사는 손을 휘저으며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겉만 이렇지 제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대충 그런 뜻이었다.


 지민은 커다란 남자들의 감시를 받으며 그녀를 따라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골목길을 지나 어느 가게에 도착했다. 꾀죄죄한 소년은 가게의 외양을 보고 눈을 댕그랗게 떴다. 홍콩에서 보는 가장 화려한 것이다. 그 안에는 요정처럼 꾸민 여성들이 사근사근 웃고 있었다. 구룡에서는 흔한 성매매 업소였다. 여성이 넋을 놓고 있는 지민을 툭툭 쳤다. 여성은 자신을 가리키며 스스로를 ‘마마’라고 소개했다.



“마마…?”



 마마는 맞다는 듯 끄덕이며 지민을 방 안 쪽 샤워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연신 귀찮다는 눈빛으로 지민을 대하더니, 씻고 보송하게 변한 지민이 나오자마자 반색했다. 어머. 박수를 짝 친 그녀는 다짜고짜 지민의 턱을 잡더니 고개를 돌려보며 지민의 얼굴을 살펴보고 옷을 들추어 보았다. 지민이 화들짝 놀라 급히 몸을 가렸다. 그녀는 가늘어진 눈으로 이곳 저곳을 살펴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주 싼 가격에 보석을 건져왔는데?


 가게는 매우 바쁘고 시끄러운 곳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 사이에서 지민은 유일하게 방치되었다. 깨끗하게 씻기고 입혀져 영문도 모른 채 그 수많은 사람 앞에 섰지만, 사람들은 지민이 아닌 지민 옆의 다른 아가씨들을 손짓했다. 그럼 그 아가씨와 손님은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거지? 지민이 순수한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느 손님이 지민을 손짓했다. 누런 이에 털이 많은 남자였다. 마마가 난감한 얼굴로 다가와 손님에게 무어라 했지만 손님은 지민을 가리킨 손가락을 치우지 않았다. 마마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지민을 내주었다. 지민은 털이 수북한 남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마마는 닫힌 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도 하나 시체로 나오겠네.


 진상 손님은 취향이 무척이나 더러웠다. 상대가 피를 볼 때까지 두들겨 패며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저 남자는 설설 눈치를 보며 피하곤 했다. 쫓아내고 싶지만 남자는 중요한 마약 거래처 중 하나였으므로 그녀의 마음대로 내쫓을 수 없었다. 애초 이 가게도 그녀의 것이 아니다. 삼합회의 해체 이후 구룡을 무서운 속도로 흡수하는 흑령회의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아직 빼짝 마른 소년이니 속수무책으로 수갑에 묶여 뼈가 부러질 때까지 맞을 것이다. 기껏 사온 일꾼으로 소년이 예쁘장하게 생겨 좋아했더니만. 얘, 너 미리 청소 준비 해. 피는 굳으면 잘 안 지워지니까 바로 세탁하고. 일꾼에게 당부하며 지민이 들어간 문 쪽을 가리켰을 때였다.



“마마! 마마!”



 지민이 문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셔츠를 입은 등에는 핏자국이 번져있었다. 채찍이다. 지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지민이 다짜고짜 그녀를 붙잡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국어를 쏟아냈다. 



“저 이거 싫어요, 이거 안 할래요. 싫어요, 아픈 건 싫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아프기 싫어요! 흐윽!”



 지민이 애원했다. 술 마신 삼촌은 지민에게 주먹을 휘두르곤 했다. 어느 날 잘못 맞아 2일을 내리 기절해있던 이후, 지민은 극도로 통증을 두려워했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만 같았다. 지민이 엉엉 울었다. 그 사이 뛰쳐나온 방 안에서 화가 난 남자가 씩씩대며 걸어 나왔다. 그는 지민의 머리채를 휘어 잡았다. 지민은 더욱 마마의 다리를 부여잡고 늘어졌다.



“다른 거 시키는 거 다 할게요. 이건 싫어요. 이거만 안 할래요. 정말 잘 할게요. 저 청소도 잘하고 다른 것도 잘 해요. 네? 마마, 제발요.”



 그러나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민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안 돼, 싫어. 지민이 힘에 의해 끌려가려는 순간이었다. 가게 안이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진다. 입구에서부터 누군가 들어왔다. 잘 빠진 수트를 입은 남자다. 무척이나 좋은 재질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쪽 눈에는 짙게 그어진 상처가 있었다. 가게 안의 모든 이가 그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지민의 목덜미를 잡고 끌던 남자도 그에게 손을 까딱이며 인사했다.



“흐윽….”



 지민이 울망이는 눈으로 들어온 이를 확인했다. 온통 시커먼 옷에 무서운 인상이다. 영화에서 보면 나올 법한 악당 같은.


 그 악당 같은 남자가 지민을 눈짓했다. 낮은 저음의 광동어가 들린다. 그러자 마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지민은 눈물이 함뿍 담긴 눈망울을 여러 차례 깜빡이며 그와 주변을 살폈다. 저 사람이 들어오니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인다. 모두가 저 사람의 말을 중시한다. 여기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은 바로. 지민은 냅다 남자에게 뛰었다. 그리고 품에 뛰어들 듯 폭 안겨 붙잡고 애원했다.



“아저씨! 살려 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어느 누구도 상관 없다. 자신을 구해줄 수만 있다면 악당이 대수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다. 이미 악마 같은 인간의 밑에서 버림 받으며 살아왔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지민이 물기 맺힌 눈으로 남자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려다 보았다.



“살려주시면 무슨 일이든 다 할게요. 저 정말 다 할 수 있어요.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주세요, 아저씨, 제발요. 제발….”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경악했다. 마마, 그리고 남자가 달고 온 뒤에 선 덩치 큰 인간들, 그리고 가게 안의 아가씨들. 모두 숨을 헉, 집어먹으며 탄식했다.


 그러나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민을 내려다 본다. 모든 일에 무감한 어른의 눈과 간절한 소년의 눈이 마주친다. 비쩍 마른 지민이지만 유일하게 눈동자만은 살아있었다. 언젠가는 도약하겠다는 듯, 이 곳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呢個仆街癫咗咩?!”



 남자 뒤에 있던 덩치 커다란 인간이 튀어나와 지민을 냅다 잡아 채 밀쳤다. 한 방에 지민은 맥없이 떨어져 나간다. 남자의 셔츠에 지민의 눈물방울 자국이 작게 젖어 번졌다. 그런 지민에게 방에 같이 들어간 손님이 다시 다가왔다. 그는 지민의 목덜미를 쥐고 다시 방 안으로 끌고 가려 했다. 지민이 악을 썼다.



“싫어! 이거 놔!”



 그리고 손님의 손을 물어버린다. 아악! 비명소리가 들리며 여러 가게 직원들이 경악해서 달려온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마마는 개판인 이 상황에서도 꼿꼿이 눈에 상처 자국이 남은 남자만을 바라보았다. 그야 당연하다. 그가 바로 이 곳의 주인이다. 삼합회의 붕괴 이후 더욱 무법천지가 된 구룡을 제 발 아래에 깔고 무섭도록 치고 올라오는 흑령회의 수장. 슈가다.


 이 새끼 당장 죽여버리겠어! 식식거리며 손님이 지민에게 주먹질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停. ”



 슈가의 저음이 또 한 번 울린다. 그에 모두 짜기라도 한 것처럼 멈춘다. 지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마는 조금 놀란 안색으로 슈가를 보았다. 슈가가 손짓을 까딱 휘두른다. 그에 마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님에게 다가선다. 사근사근 웃으면서 그녀가 무어라 설명하며 손님을 이끌고 다른 방으로 사라진다. 손님은 몇 번 불만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외쳤지만 다른 덩치들이 그를 가로 막아 섰다.


 지민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지민을 그렇게나 괴롭힌 남자를 슈가는 손짓 하나에 치워버렸다. 슈가가 천천히 지민에게 다가온다. 그는 주저앉아있는 지민과 눈을 맞추듯 무릎을 굽혀 앉았다. 윗부분은 뜯어진 단추에 지민의 창백한 살결이 그대로 보인다. 구룡 밖으로 나가질 못해 눈처럼 하얗다.


 슈가는 지민의 눈을 관통하듯 빤히 바라본다. 지민은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투명한 유리창처럼 맑은 눈망울에 그대로 슈가가 투영되어 보인다.



“꼬마야.”



 홍콩으로 날아와 처음 듣는 한국어였다. 이곳에 온 후 지민이 쓰레기만도 못한 혈육을 제외하고 타인으로부터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사실 삼촌과도 지민은 말을 많이 섞지 못했다. 애초 도박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들어와도 술에 찌들어 지민을 폭행하는 게 전부였다. 타인과 교류하는 소통. 그 하나만으로 지민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뭐든 하겠다고?”

“네, 네. 할 수 있어요.”



 지민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 다,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어요.”



 슈가는 지민을 들여다본다. 지민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아직 어린 소년은 무서웠으나, 이것만이 유일한 살길임을 알았다. 잠시간의 정적 뒤, 슈가는 지민의 부러질 듯 가는 목을 보고는 굽혔던 무릎을 펴 일어났다. 지민이 그를 따라 바로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했다. 끙끙대고 있으니 지민의 머리칼에 손길이 닿는다. 커다란 손이 나폴거리는 머리카락 위를 가볍게 쓸었다. 안 일어나도 괜찮다는 것처럼.



“이름이 뭐냐.”

“지, 지민이에요.”



 지민이 슈가를 올려다 보았다. 박지민이요. 슈가의 입꼬리가 작게 당겨 올라간다. 그는 입을 뗐다.



“대충 사는 것치곤 괜찮은 이름이네.”



 그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나 멀어진다. 그는 어느 방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지민은 멍하니 슈가를 응시했다. 아주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뿐인데, 아직까지도 온기가 달라붙어있는 것만 같았다.



“가, 감사합니다!”



 지민이 냉큼 외쳤다. 슈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첫 만남이다. 처음 쌓은 교류. 처음 가진 자신의 편. 그리고 맹세한 약속. 그리하여 지민은 무엇이든 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도. 슈가만이 지민이 사는 이유였다.







***







 8월의 홍콩은 찜통 같다. 무덥고, 습하고, 또 무더워서 죽는 게 나은 날씨였다. 홍콩에서 7번째 맞이하는 8월은 여전히 불쾌하다. 아마 8월의 홍콩이 더 불쾌한 건 지민이 유독 깔끔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땀나고 냄새 나고. 그런 거 싫잖아. 어릴 때 못 사는 집에서 맞고 자라 그런가, 지민은 청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씨. 지민은 인상을 쓰며 뺨을 문질렀다. 검붉은 피가 묻어 나온다. 얌전히 작업했는데. 휴, 오늘 하루도 너무 힘든 하루였어. 먹고 살기 힘들다. 부리 같은 입술로 꽁알거리며 옷을 이곳 저곳을 턴다. 작은 주먹으로 어깨까지 콩콩 치며 안마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깨에서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지민이 미간을 엷게 구겼다. 아야.


 지민이 어깨 쪽 옷을 잡아당겨 내렸다. 새하얀 어깨에 칼에 스치며 베인 건지 붉은 피가 솟고 있었다. 상처다. 지민의 안색이 순간 퍼렇게 질린다.



“미친.”



 식겁한 나머지 광동어 대신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잘못 본 거 아냐? 지민이 난장판이 된 미용실의 거울 앞에 다시금 확인 차 어깨를 들이밀었다. 아까 타깃과 몸싸움을 하며 반쯤 깨부숴진 거울이 지민을 여러 갈래로 비추었다. 진짜 제 피다. 백 번 확인해봐도 제 상처다. 망했다.



“아잇, 하필 잘 보이는 곳에.”



 지민이 울상을 지으며 흑흑거렸다. 차라리 배에 찔릴걸. 누군가의 차가운 얼굴을 떠올린 지민은 괜히 이미 이마에 총알이 박혀 죽어있는 시체들을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지민은 급히 정신을 잡았다.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지민은 배낭에 총과 칼, 압류한 마약을 대충 쑤셔 넣었다. 으차. 등에 둘러매니 영락없이 등교하는 학생 같았다.


 어느 외국 소설에 나온 시계토끼처럼 뛰며 지민은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거리를 헤집었다.








 마마, 저 왔어요! 지민이 달려 술집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담배를 문 여성이 지민을 보고는 인사를 건넨다. 왔니. 지민은 일분 일초 아까운 와중에도 가장 먼저 마마에게 달려와 폭 안겼다. 네! 잘 하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저 지금 바빠서, 나중에 인사 다시 할게요! 활짝 웃어 보인 맑은 눈망울의 소년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방 안으로 사라진다. 마마는 담배 연기를 공중에 흩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가게에서 뛰지 말라고 백 번을 말해도 안 들어먹어.


 그러다 그녀는 잠시 뒤 들어오는 누군가를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셨어요.


 지민은 허물처럼 옷을 벗어 던졌다. 슈가가 오기 전에 은폐해야 한다. 대충 물로 핏기를 씻어내고 샤워가운을 걸쳤다. 빨리 나가서 붕대라도 감아 처치해야지. 생각하며 샤워실의 문을 열고 나오니.



“씻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려.”

“아, 아저씨?”



 수트 재킷을 벗고 하얀 셔츠만 입은 슈가가 룸 테이블에 기대 앉아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그의 입에서 연기가 흩어진다. 그는 지민을 보자마자 담배를 비벼 껐다. 일순 당황하여 허둥거리던 지민은 금세 차분하게 가운을 질끈 동여 묶었다.



“일찍 오실 거면 알려주지.”

 


 지민이 눈꼬리를 접어가며 웃었다.



“저 보고 싶어서 일찍 온 거예요?”

“보고나 해.”



 슈가는 까딱 손짓했다. 지민이 부리같이 통통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잠깐 인사 같은 거라도 해주면 안 돼요?”

“귀찮게 하지 마.”

“치.”



 요새 아저씨 더 예민해진 거 같아. 아저씨는 나랑 이렇게 오랜만에 봤는데 반갑지도 않아요? 홍콩에서 가장 차가운 게 아저씨야. 아저씨는 체온도 영하죠? 말은 쫑알거리면서도 지민은 슈가의 냉정한 반응에 익숙하다는 듯 배낭을 열어 탈탈 털었다. 하얀 가루가 담긴 봉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빼돌린 거는 현장에 있는 것만 일단 회수했구. 그리고 여기 주소.”



 지민이 하얀 종이를 슈가에게 내밀었다.



“타깃이 드나들던 곳이에요. 브로커랑 조만간 거래를 하기로 한 모양이던데, 여기로 사람 보내면 거래를 가로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규모는 그렇게 크진 않아요. 아무래도 아저씨가 무섭긴 했나 봐요. 엄청 뒤에서 숨기고 밑작업을 했더라구요.”



 슈가는 종이의 주소를 읽더니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지민이 이어 몇 가지 이번 작업 결과를 말했다. 상대 조직의 규모, 거래장소. 필요한 알짜정보는 모두 싸그리 캐왔다. 깔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민이 흑령회 내에서 슈가의 명령만을 전달받고 움직이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의뢰가 쏟아졌을 것이다.



“추가 작업은 안 해도 되겠군. 이번 건은 이대로 종료해.”

“정말요?”

“어.”



 지민이 폴짝 뛴다. 추가 작업이 없다는 건 완벽하다는 뜻이다. 별을 박은 듯 반짝거리는 눈망울이 슈가를 향한다. 그리고는 몸을 베베 꼬며 부끄러워한다. 동시에 조금 더 칭찬해달라는 듯 흘끔흘끔 바라보는 게 한 마리 강아지 같았다. 슈가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지령은 탕리가 줄 거야.”

“마마가요?”



 슈가는 끄덕이며 그대로 앉아있던 몸을 일으킨다. 으레 작업 결과만 확인하고 가곤 했으니, 이상한 건 아니다.



“가시는 거예요?”



 지민이 몇 발자국 떨어져있던 거리를 좁혀 슈가의 곁으로 총총 다가왔다. 다행이다. 눈치채지 못했다. 내내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있었는데, 이제야 조금 긴장이 놓인다.



“내일 아저씨한테 가도 돼요? 오랜만에 온 건데 아저씨 얼굴 못 본지 너무 오래돼서 까먹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쪽 아래에 물고기 가게가 하나 생겼어요! 오다가 봤는데 무지무지 예쁘게 생긴 금붕어가 있는 거예요. 지느러미가 황금색이에요. 저 그거 키워도…악!”



 순간 슈가가 가까이 다가온 지민의 목덜미를 확 붙잡아 당긴다. 지민이 휘청거리며 침대 위로 넘어간다. 으윽. 기척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슈가는 가뿐히 지민의 위에 올라타 제 아래 깔린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풀어진 가운 탓에 허옇게 드러난 어깨에 닿았다. 정확히 칼이 스친 곳이다.



“이거. 뭐야.”



 슈가의 손이 상처 부위 근처에 닿는다. 무심하던 얼굴이 여태 장난이었다는 듯 더욱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가 왜 이 구룡을 먹어 치울 수 있었는지 보여주듯 살벌했다. 지민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제 몸에 닿는 시선에 눈을 내리 깔았다. 왜인지 맹수 앞 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슈가의 앞에 설 때마다 종종 느끼는 기분이다. 특히 무언가 사고를 쳤을 때.


 작업 시 부상을 입으면 중단 후 복귀할 것. 부상이 크고 작든 상관 없다. 그것이 슈가가 지민에게 유일하게 건 조건이다.



“흠집내지 말랬지.”



 슈가는 지독히도 ‘제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물건, 점령한 구역,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지민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일부러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그냥, 보고 먼저 하려고….”



 그리고 중간에 다친 거 아니고 작업 마지막에 다쳐서 그런 거예요. 지민이 떠듬떠듬 변명을 이어갔다. 여기서 잘못 말했다간 훈련으로 며칠을 굴려질 거다. 훈련실 바닥에서 뒹굴며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지민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였다.



“너무 작아서 다친 줄도 몰랐어요.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에요.”

“그래? 눌러볼까? 비명 안 지르면 봐줄게.”

“…잘못했어요.”



 지민이 바로 깨갱 꼬리를 말았다. 슈가는 말을 단 한번도 허투루 한 적이 없다. 슈가에게 칼을 쓰는 법부터 몸을 쓰는 법, 모든 격투 기술을 배웠으니 그것은 지민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낑낑거리는 눈동자가 슈가를 향한다. 뽀얀 피부의 소년이 가슴팍까지 드러낸 채 애원하는 장면은 사람을 동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슈가는 여전히 무표정이다. 그가 탁 손을 털며 지민의 위에서 일어났다.



“내일부터는 훈련실로 와. 장호우가 갈 거야.”

“아저씨 그건…!”



 장호우는 슈가의 오른팔로 훈련실에서 지민을 가장 냉혹하게 대했다. 지민의 표정이 뚱하게 변한다. 씨이. 못 됐어. 아저씨는 왜 그렇게 못 됐어요? 지민이 원망하거나 말거나 슈가는 볼 일은 끝났다는 듯 그대로 문을 향한다. 매정하게 사라지는 넓은 등을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근데요, 아저씨.



“나랑 잘 거 아니면 내 침대에 올라오지 마요.”

“…….”

“자주지도 않으면서 폼은 엄청 잡아.”



 슈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곧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밖으로 퇴장했다. 지민은 그대로 침대에 풀썩 눕는다. 못 됐다, 못 됐어.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이래서 다치기 싫었다. 임무 복귀 후 상처가 발견되면 언제든 슈가가 일찍 떠나고 의사가 왔으니까. 이런 몸의 상처쯤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이만 많으면 뭐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데.


 지민은 슈가 대신 베개를 끌어안았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차갑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홍콩의 밤은 이렇게나 무더운데, 슈가의 가슴은 무척이나 시리다. 지민은 이 온도가 슈가의 가슴에도 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저씨를 생각하는 것처럼.






***






 한 번만 봐줘, 내가 잘할게. 슈가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훈련실 바닥을 굴러다니며 지민이 애원했다. 그러나 장호우는 냉정했다. 이것도 보스한테 말할 거야. 꾀부리면서 바닥에 반절은 누워있었다고. 아잇, 치사하게 진짜. 지민은 3일을 내내 훈련실에서 장호우의 넙대대한 얼굴을 상대하며 모든 영혼을 털렸다. 그 사이 슈가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하씨, 다 틀렸어. 아저씨랑 데이트하려고 했는데. 인생은 역시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


 다녀왔어요. 기절할 것만 같은 몸 상태로 가게에 귀환했다.



“자, 이번 임무.”

“어? 벌써요?”



 마마가 지민의 어깨를 툭툭 쳐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타깃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었다. 지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임무는 보통 몇 달을 간격으로 들어온다. 최근 임무를 끝낸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꽤나 밭았다. 요새 분위기가 안 좋은가? 의아했지만 동향을 살펴볼 때 흑령회가 이 구룡에서 가장 큰 조직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뭐 어때. 지민은 가타부타 없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슈가의 명령이 무엇이 됐든 따른다. 제 목숨은 그의 것이다.


 지민은 빠르게 준비를 끝냈다. 나이프, 총 두어 개, 그리고 탄창. 좋아하는 간식 초콜릿도 몇 개 넣었다.



“다녀올게요, 마마!”



 지민은 방싯 웃으며 마마를 다시금 끌어안았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손으로 지민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겨주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구룡은 위험한 곳이니까.







 지령은 다른 작업에 비해 단순했다. 배신자를 찾아 처단할 것. 최근 다른 조직과 내통하는 자들이 발견됐다. 단 두 명이 대상이었으니 작업 난이도는 지난 번보다 낮았다. 지민은 2주를 그들을 밟으며 그들의 패턴을 파악했다. 그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완탕면 가게를 방문했다. 그곳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약속 장소임이 틀림 없다. 지민은 그곳에서 작업을 이행하기로 판단했다.



“딤섬이랑 차오면 하나 주세요.”



 늦은 시간이라 가게는 한산했다. 주인도 장사에는 관심이 없는 듯 반쯤 졸고 있었다. 어차피 사람이 복잡한 시간대에도 손님이 몇 없는 망한 가게였으므로 맛은 기대되지 않는다. 지민은 테이블에 앉아 젓가락을 꺼냈다. 


 그런데 지민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이 한 명 더 들어온다. 지민이 인상을 살풋 모았다. 처리해야 할 인원이 늘면 번거로운데. 남자는 지민 근처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완탕면 주세요.”



 목소리는 무척이나 저음이었다. 모자를 눌러 써서 달싹이는 입 모양만 보인다. 무슨 상관이람. 지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 사람은 맛없는 밥 먹고 죽네. 어차피 죽을 사람 더 신경 쓰는 건 의미 없다. 지민은 입구를 주시했다. 조금 뒤 그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메뉴가 하나 둘 테이블로 올라온다. 주인은 요리 두 개를 하고는 오늘 너무 많은 일을 했다는 듯 어깨를 두들기며 주방 안 쪽으로 쏙 사라졌다.



“…끄흡….”



 무슨 소리지? 옆 테이블에서 들린다. 지민이 슬쩍 옆을 바라보았으나 곧 다시금 작업에 집중했다. 이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지.



“흐흑…흐어….”



 무시하면 된다.



“흐으윽…흑….”



무시.



“어흐흐흑….”

“…저기요.”



 훌쩍거리는 남자가 지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모자를 워낙 푹 눌러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아주 오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슬리면 작업에도 방해가 된다. 남자는 지민이 불러도 끅끅거리고 뺨을 부여잡았다. 아주 서럽게도 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 주세요. 나 사연 엄청 많아요. 대충 그런 뜻으로 보인다. 지민이 마지못해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별 건, 아니라 신경 쓰지 마세요.”

“아 네.”

“흐흑.”

“…….”

“허으윽….”

“무슨 일이신데요.”



 남자는 훌쩍거리더니 떠듬떠듬 사연을 풀어놓았다.



“이별 했거든요….”

“아 애인이랑 헤어지셨구나.”



 지민이 심드렁하게 그렇구나, 하는 얼굴을 했다. 헤어진 거야 뭐. 이미 박지민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슈가에게 차여 실연을 겪고 있었다. 아저씨 저랑 한 번만 자요. 그렇게 말하면 거들떠도 보지 않거나 혐오의 시선을 던지곤 했다. 이 남자도 그런 시련을 한 백 번쯤 겪게 되면 괜찮아질 거다. 오늘 죽어서 그럴 기회는 없겠지만.



“애인이 아니에요. 우리 미미….”

“…미미?”

“길거리에서 친해진 고양이인데…오늘 보니 죽어있었, 어요.”



 남자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오열을 시작했다.



“고양이요?”

“네 아직 태어난 지 1년정도 밖에 안 된 새끼였어요.”



 이럴 수가. 고양이라니. 아니, 어떻게 그런 슬픈 일이. 지민은 단숨에 공감하며 남자의 위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남자로 격상시켜주었다. 눈썹이 축 모인다. 킬러로 활동하며 인간의 목숨에는 무던하지만 작은 생명들에겐 한없이 감성적이었다. 지민이 같이 슬픈 얼굴을 했다.



“괜찮으세요? 여기 물 좀 드실래요?”

“좋은 곳으로 갔겠죠…?”

“그럼요. 아기천사들은 잘못이 없잖아요.”



 지민이 제가 시키고 한 점도 먹지 않은 딤섬을 내밀었다. 여기, 이거 좀 드시겠어요? 많이 슬프지만 힘을 내야죠. 감사합니다. 남자가 훌쩍거린 것치곤 굉장히 탁한 저음으로 지민의 호의를 받는다.


 순수한 사람인가 봐. 이런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지민은 어깨가 축 처진 남자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갈팡질팡 흔들린다. 이런 착한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은데.


 지민은 완탕면에 젓가락만 꽂아 넣은 채 밥도 먹지 못하는 남자가 측은했다. 살려주자. 아직 그들이 오지 않았으니 남자를 살릴 수 있다. 밖으로 끌어내서 기절시켜놓자. 저기. 지민이 막 말을 건 그때였다.



“으아악!”



 주방장이 주방 안 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그가 테이블까지 밀치며 허둥지둥 도망간다. 지민이 순식간에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주방을 휙 쳐다보았다. 식재료들이 있는 안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민은 바깥을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너무 적막했다. 마치 태풍이 휘몰아치기 전처럼. 허벅지에 숨겨둔 총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러 발소리가 들리더니 흉기를 든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손은 이성의 판단보다 빨랐다. 지민은 홀스터에서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가장 먼저 가게에 들어온 사람이 맥없이 쓰러진다. 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우수수 들어온다. 상대 조직의 사냥개들인 듯했다. 지민이 테이블을 발로 찼다. 접시가 떨어지며 차오면이 바닥으로 나뒹군다. 테이블에 막혀 사냥개들이 멈칫하는 사이 총성이 몇 번 더 울렸다. 한 발 한 발이 정확하게 이마나 가슴팍을 관통한다.


 작업 위치가 새나간 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오로지 지민만이 모든 계획을 짜고 준비했다. 자신이 붙었다는 걸 놈들이 안 건가? 상대조직이 대처를 할 만큼 놈들의 덩치가 커졌나? 아니, 그건 아니다. 누군가 교묘하게 흩뜨려놓은 퍼즐처럼 앞뒤가 맞지 않았다.


 달칵, 달칵.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 지민은 홀스터에 총을 다시 끼워 넣고 반대쪽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지민의 작은 손에 딱 맞게 맞춘 나이프다. 지민은 달려드는 사냥개의 가슴에 바로 칼날을 찔러 넣었다. 빼자 피가 솟구친다. 지민은 반대쪽에서 달려드는 남자를 확인하고는 방금 찌른 사냥개의 몸을 그쪽으로 밀치듯 던졌다. 그리고 바지 안쪽에 넣어놓은 작은 총을 마저 꺼냈다. 탕탕.


 몇 놈이나 더 남았지? 지민은 달려드는 다른 사냥개를 허리를 숙여 피했다. 그리고 발에 한 방, 놈이 주저앉자 이마에 한 방을 더 쐈다. 지민이 가게 안을 확인했다. 남은 사냥개는 둘, 총알은 하나.



“…아이씨.”



 지민은 근력이 약했다. 총이 없다면 좁은 공간 안에서 육탄전만큼 취약한 게 없었다. 덩치 큰 사냥개 둘이 동시에 달려든다. 지민은 다른 쪽에는 의자를 던지며 다른 쪽 사냥개의 가슴에 총알을 박았다. 지민이 총을 바닥에 버리고 칼을 고쳐 쥐었다. 의자를 치워낸 사냥개가 다시 고함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지민이 방어하며 칼을 피했다. 그러나 격통이 느껴진 건 허벅지였다. 흐윽!


 지민의 중심이 무너진다. 총을 맞아 바닥에 누운 놈이 발버둥치며 찌른 것이다. 지민은 넘어지며 놈의 가슴팍에 다시 칼을 박았다. 그 놈은 숨을 거뒀으나 남은 한 놈이 지민을 노렸다. 죽어! 남은 사냥개가 칼을 높이 쳐든다. 지민이 이를 악물었다.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슈가한테 진짜 혼나는데.


 그 순간, 어떤 물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사냥개를 향해 날아간다. 깡. 경쾌한 소리다. 수저통이 정확히 이마를 쳤다. 씨발! 사냥개가 이마를 부여잡는다. 지민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랜 동작으로 누군가 사냥개에게 달려든다. 지민은 그 움직임에서 호랑이를 연상했다. 슈가의 집에서 본 영화에 저런 동물이 있었던 것 같다. 사냥개의 위로 올라타 넘긴 그는 붉은 젓가락을 목덜미에 꽂아 넣었다. 뽑아내자 선혈이 물총처럼 튀었다. 정확히 두터운 핏줄을 찢은 거다. 물 흐르는 것처럼 깔끔하고 정확하다. 그 과정에서 남자의 모자가 벗겨진다. 그는 지민의 옆 테이블 순수남이었다.


 지민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사람이 왜…. 그 사이, 바깥문이 또 한번 딸랑 울린다. 지민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엔 타깃 둘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식당 안을 보고 있었다. 으아아. 곧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뒤돌아 뛰었다.


 뭐지? 왜 도망을 가는 거지? 저쪽과 내통하던 상대조직이 아닌가? 그럼 이 사람들은 뭐야? 지민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시체들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혼란스러운 건.



“얼굴 때문에 싸고도는 줄 알았더니.”



 손에서 피를 털고 있는 저 남자다. 지민은 다시금 칼을 고쳐 쥐었다. 살려두면 안 된다.



“실력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남자가 지민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입꼬리가 푹 패이며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다. 지민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손에서 힘이 빠져 저도 모르게 나이프를 놓쳤다.



“슈가…?”



 남자는 슈가와 무척이나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상처 자국이 없는 것만 뺀다면 도플갱어라고 믿을 만큼 비슷했다.



“무슨 그런 실례되는 말을.”



 남자가 혀를 쯧 차고는 지민에게 다가온다.



“민윤기. 그게 내 이름이야.”



 윤기는 지민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오열을 했던 것과 달리 윤기의 눈가는 전혀 붉어지지도, 부어 오르지도 않았다. 아주 말짱했다. 뺨에 튀어있는 피 몇 방울을 빼고는. 지민을 바라보는 윤기의 눈에 흥미가 깃든다. 지민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슈가가 이런 취향이었구나. 좀 상스럽네. 어린 애 좋아하는 그거는 처음 본다.”

“너 뭐야.”



 지민이 윤기를 노려보았다. 수상한 놈이다. 놓쳤던 나이프를 찾아 쥐었다. 단숨에 목을 노리며 휘둘렀다.



“사납네. 주인 욕했다고 뭐, 그건가?”



 으차. 가뿐히 피한 슈가가 지민의 손목을 틀어 잡았다. 그리고는 단숨에 반대 손으로 주머니에서 천을 꺼내 지민의 코와 입을 막는다. 읍. 지민이 손목을 빼내려 힘을 줬으나 악력이 매우 셌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 원래 되게 상식적이고 폭력은 싫어하는 매너 있는 사람인데. 잠시 양해 좀 구할게.”



 젓가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인 사람이 상식을 주장하며 지민의 호흡기를 틀어 막았다. 점점 저항하는 지민의 힘이 약해진다. 눈꺼풀이 서서히 감긴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슈가의 손을 떼어내려던 지민이 이내 툭 고개를 떨군다. 슈가가 설핏 눈웃음을 친다. 저음이 지민의 귓가에 속닥거린다.



“일어나면 좋은 곳일 거야.”



 마지막 말은 한국어였다. 이 나라에 와서 듣는 두 번째 한국어. 하나는 슈가고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한 명은 슈가와 꼭 닮은 얼굴을 가진 이다. 신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이비를 전도하는 교주마냥 윤기는 사근사근했다.



“이 개새….”

“응응, 그래 맞아. 난 개새끼지.”



 중얼거리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근데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는데? 슈가 그 새끼 존나 양심 없다. 아동 착취를 하네.


 지민은 정신을 놓았다. 완전한 블랙아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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