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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몸을 섞은 날 이후 놀랍게도 인생은 평범하게 돌아갔다. 다시는 같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는, 처참하게 호텔 쪽 경력을 망친 것 말고 지민은 일상을 보냈다. 학교를 가고 과제를 했으며 시험도 봤고 과외도 했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나날들이었다.


 지민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텔에, 그것도 그런 파티가 열릴 때 묵는 사람이라면 돈이 많은 인물이었을 터다. 그쪽에서 본격적으로 호텔에 룸의 보안을 문제 삼아 컴플레인을 걸었다면 이리 가볍게 끝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하룻밤을 보낸 상대방은 이런 원나잇이 익숙한 인물일 것이라 추측하며 지민도 이와 관련된 일은 모조리 털어버리기로 했다. 그냥 재수가 없던 거다. 하필 그날 아팠고, 어쩔 수 없는 사고일 뿐인 거다.


 종강 직전 마지막 강의가 끝나자마자 짐을 싸는 지민에게 태준이 후다닥 달려왔다.



“박지민! 너 또 튀려고 하지?”

“아, 깜짝이야. 형님 놀랐어요.”

“씁. 지금 또 튀려는 자세. 어어? 이거 봐. 가방 든 거. 오늘로 종강인데 애들이랑 같이 가서 밥만 먹고 가.”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뒤에 일이 있어서….”



 지민이 난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태준이 에휴, 한숨을 쉰다.



“그럴 줄은 알고 있지. 알고 있는데 너 밥 좀 먹이고 싶어서 그런다. 애가 갈수록 점점 바짝 말라가고 있어. 이러다가 소멸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괜찮아요, 형. 저 밥 많이 먹고 있어요.”

“많이 먹긴 개뿔이. 그날 이후로 왜 더 말라가는 거 같냐.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그거 진짜 신경 쓰지 말라니까. 내가 형한테도 이야기했더니 형도 어차피 일 마무리하는 쪽이었고 잘 해결됐다고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어.”

“알아요. 형님이 많이 신경 써주신 거. 그거 때문은 아니에요. 요새 환절기라 그런가 컨디션이 그냥 조금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래도 형 걱정 안 해주셔도 돼요! 아시잖아요, 저 엄청 튼튼한 거. 체력 없으면 아르바이트도 이렇게 많이 못 뛰어요.”

“그니까 몸 좀 아껴. 어휴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게 아니라 젊어서 죽겠다 죽겠어.”



 지민이 괜찮다며 근육을 보여준답시고 힘을 준다. 태준은 그 가냘픈 팔을 보고 더욱 측은한 표정을 했다. 이러다가 무덤에서 연락 주는 건 아니지? 아니라고 해라, 지민아. 사내놈 팔뚝이 이게 뭐냐고 뼈만 만져진다고 팔뚝을 눌러보던 태준이 문득 지민의 목 부근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너 열감이 좀 있는 거 같은데? 전체적으로 피부가 조금 빨개.”

“그래요?”

“엉. 어디 아파?”



 요새 며칠간 지민은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호텔에서 한 번 쓰러진 이후부터다. 때문에 익숙해서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목덜미며 어깨며 호텔을 나와 다음 날 거울을 확인해 보니 지민은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잇자국에 붉은 울혈에 누가 보면 늑대 밥상에 올려졌다 나온 꼴이었다.



“생긴 거만 그렇게 보이지 문제는 없는 거 같아요. 감기 오려는 거 같기도 하구.”

“그럼 다행이긴 한데….”



 태준은 괜히 지민이 계속 걱정이 되었다. 괜히 아르바이트를 소개 시켜줘서. 분명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애가 쓰러지냐고. 학교를 다니며 태준이 본 지민은 굉장히 튼튼한 편이었다. 그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교수를 졸졸 따라다니며 끝까지 물어보곤 했었다.



“멀쩡해요!”

“네가 그렇다면야…관리 잘 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형님. 형도 재미있게 놀다 들어가세요.”



 지민이 꾸벅 인사한다. 태준은 짧은 인사를 한 뒤 강의실을 나왔다. 재촉연락으로 난리가 나 있는 메시지 창에는 간단한 결과만 던져놓았다. 박지민 못 온 댄다. 주르륵 뜨는 답장은 대충 훑어 내렸다. ‘안 돼 지민 오빠 보고 싶었는데ㅜㅜ’, ‘감귤이 못 와?ㅜㅜ 하 이제 칙칙한 새끼들밖에 안 남았네 우울하다’. 태준이 헛웃음을 쳤다. 다 박지민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난리인 인간들이다. 아니 거기다가 알파인 여선배는 지민을 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쯧쯧, 알파면서 베타 남성에 미쳐가지고.


 그러고 보니. 태준은 가만 지민을 떠올렸다. 원래도 지민이 사람의 호감을 사는 인간형임은 분명하지만 요새는 조금 달랐다.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묘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느낌이 더 생겼다. 아파서 처연해 보이는 건가. 태준은 지민이 베타로 태어나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사람은 한 치 앞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무탈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사건 이후 더 커다란 사건이 지민의 앞에 떨어졌다.



“저기요. 페로몬 조절 좀 하세요.”

“네?”

“페로몬이요.”



 지나가던 남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지민이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베타한테 무슨 페로몬 조절. 공공장소에서는 조절하는 게 매너라는 것도 모릅니까? 그는 지민이 일부러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크흠 헛기침을 하며 그대로 지민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저게 무슨 소리지? 나한테 냄새 나나. 지민이 킁킁거리며 팔을 들어 옷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섬유유연제 냄새만 날 뿐이었다. 돈이 없지 체면이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과외 받는 학생들은 집이 좋으니 하고 다니는 차림은 늘 중요했다. 늘 깔끔하고 단정하게 다녔으니, 냄새가 날 리는 없을 텐데. 괜히 남자가 시비를 걸고 싶어했다는 쪽으로 지민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지민에게 알 수 없는 세계가 펼쳐졌다. 사람으로부터 향이 난다. 초콜릿 같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향. 포도주같이 씁쓰름한 향. 방향제 같은 향. 카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술집 골목을 통해 집으로 가던 길 지민은 버티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역했다. 처음 맡는 온갖 복잡한 향의 침입은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귤이야? 어머, 생긴 것도 귀엽네.”



 술집 입구에서 거의 헐벗은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지민은 정확히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집으로 도망친 지민은 숨을 헉헉거리며 몰아 쉬었다. 이건 아니다. 진짜 뭔가가 잘못 됐다. 단순한 감기 몸살 증상이 아니라 몸이 망가지는 신호였나? 아무리 지민이라도 더럭 겁이 났다. 조금 전의 냄새로 인한 폭격이 충격적이라 손이 조금 떨려왔다.


 결국 병원을 제 발로 걸어갔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 아파도 꾸역꾸역 참고 오지 않았으니 손에 꼽는 방문 횟수였다. 검사는 몇 가지가 진행됐고 의사는 지민을 앞에 앉혀두고 무표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뒤늦게 발현하셨네요.”

“네?”

“오메가로 발현하셨습니다. 증상이 발현열과 매우 유사해서 시도했는데, 여기 보이시죠. 수치 전부 다 나온 거.”



 의사는 진단과 함께 지민에게 검사서를 내밀었다. 형질 발현 양성. 페로몬 측정 양성. 죽죽 이어지는 그래프 맨 아래에 박힌 굵은 글씨가 지민의 두 눈에 들어왔다. 박지민님은 우성 오메가로 진단됩니다. 지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검사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탈탈 털어보았다.



“이, 이런 발현이 가능해요? 저는 이미 25살인데요?”

“흔치 않은 케이스는 아닙니다만, 가능합니다. 해외에서는 사례가 꽤나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지는 않게 나왔습니다.”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혼란스러우신 것 압니다. 하지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후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대처가 빨라져요.”



 발현은 대부분 십대 청소년 시절에 끝이 난다. 늦어봤자 17살까지는 발현이 전부 완료된다는 것이다. 의사는 안심하라며 대처만 잘 한다면 이상이 없다고 몇몇 논문과 원리들을 소개해주었지만 당장 머리가 어지러운 지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메가에서 베타로, 또는 베타에서 알파로, 알파에서 우성알파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민이 허, 기가 막힌 헛숨을 쉬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갑자기 오메가라니. 이 무슨. 알파와 오메가, 형질인들의 세계. 비형질인인 베타로 살며 사정 복잡한 남의 이야기로만 멀찍이 취급했을 뿐이었다.



“약은 그럼 처방해드리겠습니다. 당분간은 꾸준히 복용하셔야 합니다. 이제 막 발현했기 때문에 페로몬이 불안정하고 몸 컨디션이 불규칙적일 수가 있어요. 두 달간은 꾸준히 병원에 들리셔서 계속 상태를 체크해 봐야 합니다.”

“…네? 꾸준히요?”



 급격히 먼 이야기에서 현실로 추락했다. 병원비와 약값. 언뜻 스쳐 본 뉴스에서는 형질인들이 고충이라며 억제제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앞으로의 꾸준한 지출. 지민의 안색이 단번에 파리하게 변했다.



“선생님, 그럼 다시 베타로 돌아올 수도 있는 건가요?”

“그런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아서…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의사는 모든 희망을 짓밟으며 무뚝뚝하게 이야기했다. 지민이 착잡한 얼굴로 슬쩍 묻는다.



“…혹시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런 가정을 벌써부터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환자분.”

“그, 혹시 만약이에요! 실수로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길거리 한 복판에서 히트사이클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민의 안색이 이번에는 표백제로 빤 것처럼 더 하얗게 질려버렸다.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거잖아. 의사는 점점 죽어가는 환자의 진료상태를 알아채고는 떡이라도 하나 던져주듯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를 추가했다.



“그래도 다행히 발현할 때 형질인이 가까이 있으셨나 봅니다. 운이 좋았어요. 수치가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형질인이요? 아….”



 지민은 기억이 삭제 된 호텔에서의 밤을 떠올렸다. 아마 그 사람이 알파였나 보다. 네…그랬던 거 같아요. 누구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듯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에 의사는 미간을 모았다. 어휴. 한숨을 쉰 그는 요새 청년들의 문란한 사생활을 걱정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덕분에 케어가 수월해졌습니다. 여기 약 꾸준히 복용하시고 일 주일 뒤에 찾아오세요. 페로몬 조절 방법도 터득해야 할 겁니다. 형질인 센터 같은 곳이라도 한 번 가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네…알겠습니다.”



 지민은 인사를 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약값을 지불하는 손이 살짝 떨렸다. 이렇게나 비쌌다니. 괜히 형질인들이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도와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베타에서 오메가가 됐다는 사실도,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이가 사실 알파였다는 것도 지민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돈이 또 나간다는 사실. 그저 그 사실만이 비극적으로 와 닿았다. 어머니 병원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빚은 또…. 발현열인지 뭔지 아니면 앞으로 펼쳐질 상황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지민은 덮어 쓴 후드티의 모자를 꾹 조여 묶으며 약을 꼭꼭 씹어 삼켰다. 내 어깨에 달린 건 나 하나만이 아니잖아. 꿋꿋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지민의 뒷모습이 곧다.






***






“하아….”


 지민은 퀭한 안색으로 탄식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는 했지만. 페로몬 조절이 되지 않으니 어디를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과외를 하는 집에다가는 양해를 구했고,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곳에도 당분간은 일이 힘들어 질 것 같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사인은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우선 둘러대었다. 구구절절 사정을 말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과외를 요청한 집은 베타 선생만을 구했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평범한 형질인들처럼 생활해야만 했다.


 다행히 지민은 영리했다. 페로몬 조절이라는 건 어설프게 나마 집에서 영상을 보고 익혔다. 그마저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중구난방으로 페로몬을 질질 흘리기 마련이었지만. 언제쯤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 초조해진 마음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더 없나 구직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지민의 눈을 사로잡는 구인구직 제목이 있었다.



[사이클 재활센터 우성 오메가 도우미 구합니다.]



 형질인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는 관심조차 둔 적이 없었다. 클릭하여 들어가서 스크롤을 죽죽 내려 읽었다.



[사이클이 불안정한 형질인들을 위한 전문 케어 시스템 센터]



 회사는 대기업의 계열사 중 하나였다. 직원도 꽤나 많은 큰 규모였고, 소개말도 굉장히 길었다.



“그래서 돈은 얼마 준다는 거야.”



 미간을 살짝 모으며 주요페이지를 전부 휙휙 내리던 지민은 마지막 기본급 안내 페이지에서 마우스를 뚝 멈췄다. 눈에 보이는 숫자를 의심했다. 숫자가 한 자리 더 잘못 쓰여진 건 아닐까? 지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기본급여 500. 추가수당 별도 지급]



 500이면 지금 지민이 악착같이 한 달을 굴러 간신히 만드는 금액보다도 높았다. 어머니 병원비는 물론이고 동생 학비에, 빚까지 차감할 수 있었다. 알맞게 지금 생긴 약값까지도 지출할 여력이 됐다. 이거면, 이거만 된다면….


 지민은 홀린 듯이 신청버튼을 눌렀다.





***





 재활센터에서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학력도, 경력도 모조리 필요 없었다. 우성 오메가라는 성질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재활센터에서 우성 오메가라는 형질 확인을 다시 진단 받고 수업에 참여했다. 심지어는 수업조차 간단했다. 첫 번째, 고객의 정보는 기밀로서 절대 외부에 누설하지 않는다. 두 번째, 고객과 사적인 관계로 별도의 치료는 진행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페로몬을 어떻게 관리하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원리를 들었지만 아직 페로몬 조절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지민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서로 다른 형질인의 페로몬이 상대의 페로몬샘을 자극하여 주기를 원래대로 돌려놔줄 수 있다는 건데, 아마도 지민이 발현했을 때 의사가 다행이라며 했던 형질인 이야기와 비슷한 원리 같았다.



“지민 씨는 굉장히 습득이 빠르시네요! 아주 좋은 자세예요. 이제 바로 지민 씨 앞으로 스케줄이 잡힐 텐데요.”

“네? 이렇게 바로요?”



 입사조건이 간단하기는 해도 분명 수습기간이 약 한 달 정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지민이 의아한 얼굴을 하니 담당자는 어색한 얼굴로 하하 웃었다. 



“지금 상황이 매우 급하신 고객님이 계셔서요. 어차피 페로몬이 어느 정도 매칭률이 높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격적인 재활치료는 그 이후에 시행하니까요.”

“그래요…?”

“네, 이 고객님께서는 매칭률이 잘 나오는 분이 아니셔서…현재 센터에 있는 모든 우성 오메가들과 맞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에요. 아마 지민 씨도 맞지 않을 확률이 클 거예요.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아프신 분인가 봐. 담당자는 지민을 안내하며 고객과 관련된 정보를 줄줄 읊어주었다.



“고객님께서 굉장히! 조용한 걸 좋아하시는 타입인지라 가능하면 인사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행동이 굼뜬 것도 싫어하시니 페로몬이 안 맞을 경우에는 재빨리 방에서 나오시면 됩니다. 아마 처음에 페로몬을 풀면 바로 나가라고 하실 거예요. 그때 곧장 나오시면 됩니다.”



 어째 알려주는 정보들이 하나같이 심상찮다. 이 정보를 말하는 담당자는 그 고객을 떠올리는지 벌써 꽤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센터에 오는 사람들은 아프다 보니 성질이 안 좋은 가보다. 추측하며 지민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자는 순순히 응하며 네, 네 대답해주는 지민에게 안심한 건지 마지막 조건을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상벨은 누르시면 안 됩니다. 밖에 가드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꼭! 누르시면 안 돼요.”



 이 조건도 수상하다. 수업에서는 페로몬의 작용으로 고객에게나 스스로에게 이상징후가 발견될 경우 무조건 필수적으로 누르라 배웠다. 그러나 처음으로 고객과 만나게 되는 지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뿐이었다. 대기업이라 그런지 이미지 관리를 하나 보다. 과외를 맡기는 학부모 중에도 성적은 아무래도 좋으니 애 등교만 똑바로 시켜달라고 부탁하는 학부모도 겪어봤다.



“그런데 이쪽으로 가는 방향이 맞나요?”



 지민이 담당자가 안내하는 방향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치료실이 아닌 맨 꼭대기 층으로 가고 있었다.



“네, 특실에서 진행할 거예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고객은 상당히 돈이 많은 부류인가 보다. 지민이 멈칫했다. 그렇게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지민에게는 좋지 않았다. 이제라도 페로몬 조절이 미숙하다는 걸 말해야 하나. 고급 서비스만을 바라는 사람일 텐데. 고민 끝에 지민은 입을 꾹 닫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페로몬을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다시 주워담는 게 어려운 거지 내보내는 건 자신 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내리자마자 가드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지민이 움찔했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지민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안내를 마친 담당자가 사라진다. 지민은 괜히 가드들 앞에서 기가 죽는 기분을 느끼며 특실로 향했다. 어차피 매칭률만 오늘 검사해보는 거니까. 오백, 오백…. 자신감을 주는 숫자가 계속 지민의 머리 위에서 동동 떠다녔다.


 똑똑. 특실의 문을 노크한 뒤 문을 열었다. 특실은 병원이 아닌 좋은 호텔과 비슷했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방 한 군데를 가로지르며 하얀 휘장천이 쳐져 있었다.


 그 뒤로 검은 인영이 보인다. 이 방을 통째로 빌린, 까다롭다는 그 고객일 게 분명했다. 고객은 침대에 멀찍이 누워있는지 형체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지민이 보이지도 않을 고객을 향해 꾸벅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도우미 역할을 맡게 된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상대는 답이 없었다. 조용한 걸 좋아하신다니 정말 좋아하나 보다. 할 일만 잽싸게 끝내고 나가야겠다. 지민은 휘장 앞 간이의자에 앉아 곧장 수업에서 들었던 대로 일을 진행했다.



“매칭률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지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몽땅 쏟아내는 건 익숙해도 아직 페로몬을 조금 푸는 일은 어렵다. 수도꼭지를 반만 잠그는 느낌으로. 후우. 심호흡을 하며 지민은 페로몬을 아주 조금 풀었다.


 단 귤 내음이 은은하게 퍼진다. 지민이 활짝 웃었다. 성공이다! 시작이 좋았다. 일이 아주 잘 풀릴 것 같다.


 페로몬 향을 상대도 맡은 것인지 건너편의 인영이 움직이는 기척이 들린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천 너머의 인영이 지민의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담당자가 들려준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분명 매칭률이 아주 극악이 될 거라 하셨는데.


 그냥 일어나서 나가야 하나. 이대로 있어야 하나. 지민이 갈등하는 사이 낮은 저음이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좀 더 풀어보세요.”

“네? 아, 네!”



 좀 더…. 지민이 다시 한 번 긴장하여 손에 힘을 줬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조금만. 아까처럼만 하면 돼. 그러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낮은 상대의 목소리에 움찔해서인지 컨트롤은 지민의 예상보다 어려웠다.


 감귤 향이, 시트러스 과즙이 폭포처럼 우수수 쏟아진다.



“헉.”



 지민이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당황한 숨소리를 냈다. 망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페로몬 조절에 아직 미숙해서, 그러니까 어서 다시 조절하도록 하겠….”



 낑낑거리며 지민이 주워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잔뜩 당황한 나머지 페로몬이 쉽사리 말을 듣지 않았다. 가둬두려고 하자 오히려 반항하며 더 쏟아져 나온다. 어, 어떡하지. 지민이 입술을 짓씹었다. 안 되겠다. 우선 나가서 담당자를 불러오는 게 좋을 거 같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다른 담당자 분을 불러오도록….”



 말하며 지민이 일어나려는 그 순간, 드르륵 하얀 천이 열린다. 까만 눈이 휘둥그레 변한다. 휘장 천을 열지 않는 건 이 케어센터의 금칙 중 하나였다. 고객은 열어도 되는 것인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천 사이로 불쑥 남자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하얀 얼굴. 남자는 수트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날카로워 보이는 예민한 눈빛에 어쩐지 나른한 분위기가 풍긴다. 그도 마찬가지로 지민과 눈이 마주치고 지민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검은 눈이 순식간에 지민을 훑는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어이없다는 듯 하, 비껴 올라간다.



“…이렇게 어린 애였어?”



 지민이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고객의 정보를 주르륵 머릿속으로 재생했다. 케어 도우미에게는 지극히 제한적인 정보만이 주어졌는데, 바로 그것이 이름과 형질이다.


 민윤기, 그리고 우성 알파. 황당함과 어이없음으로 잘 버무려져 있던 남자가 곧 낮게 읊조렸다.



“드디어 찾았네.”



 그의 눈이 번뜩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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