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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보이지 않는 도시 01

by 토페 posted Jul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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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Red Hot Chili Peppers - Go Robot>










 간밤 동물병원에 환자들이 밀어닥쳤다. 길을 잃은 산양떼가 무인수송차량들과 부딪혀 동네 모든 동물병원에 비상등불이 켜졌다. 다리가 부러진 산양, 뿔이 부러진 산양. 목숨이 간당간당한 생명들을 수술하는 윤기 옆자리를 퇴근시간이 훨씬 넘어가도록 지켰다. 달을 마주보며 퇴근한 지민은 평생 파묻혀 있고 싶은 이불에 몸을 더욱 말고 웅크렸다. 살짝 눈을 뜨니 어슴푸레 새벽빛이 보인다. 뭐야 되게 오래 잔 거 같은데 아직 해도 안 떴네. 조금 더 자도 되겠…. 순간 눈 감은 채 바닥을 더듬더듬 손으로 짚었다. 폭신한 이불이 아닌 꺼끌거리는 시멘트 바닥이다. 시발. 지민은 경기 일으키듯 일어나 눈을 부릅 떴다.


 폐허 같은 텅 빈 건물은 새벽빛이 떠오르는 푸른 색이었다. 깨진 유리창으로 반사되어오는 빛줄기가 투명하다. 바닥에 널부러진 유리조각과 녹슨 파이프, 천장에 줄이 끊어진 채 늘어진 전깃줄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겨왔다. 건물은 수천년 전 문을 닫은 출입금지 실험실보다 녹슬어 있었다. 지민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끙끙거리며 일으켰다. 맨발이 새벽빛이 드문드문 파고든 공장 시멘트바닥을 가로질렀다. 발자국이 동그랗게 남은 자리마다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가라앉는다. 지민은 경계심 가득한 태도로 주변을 살피고 살그머니 입구 밖으로 빠져나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지금처럼만 가면…!"



 탕, 총성이 울렸다. 부푼 기대감을 가진 빵실한 얼굴이 구겨진다.



"아…시, 바알…."



 없는 줄 알았는데. 터벅거리는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대체 이 괴물 같은 자식은 발걸음 소리도 안나 왜. 가상현실 게임에서 튀어나온 캐릭터도 이런 능력치는 안 가지고 있을 텐데. 그래 꿈이니까. 꿈이라 놈이 존재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다. 잠옷으로 입고 있던 하얀색 반팔의 가슴팍으로 퐁퐁 피가 솟아올라 붉게 물든다. 어찌나 과녁을 빈틈없이 노리는지 정확히 심장에 원샷원킬로 총알을 꽂아박는다. 더럽게 아파. 어떻게 이렇게 아파. 지민은 무너지듯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남자가 다가온다. 남자는 지민의 앞에 선 채로 가만히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야…이씨…아프…잖…아."

"……."

"맨날…심장…."



 불에 지져지는 것처럼 화끈거리는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기똥차게 아팠다. 그러니까, 이번이 몇 번째 죽는 날이더라. 지민은 흐릿해지는 머릿속으로 꼽아보았다. 헤드샷 맞은 날이 엊그제니까, 그리고 도망가다 다리 한 발 맞고 심장 뚫린 건 5일전, 처음 놈의 얼굴을 보고 죽은 날이 약 10일전. 모르겠다. 지민은 점점 뜨기 힘들어지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개자…식…이제…한방에…죽, 헉, 여주지도, 흐으…않…냐."

"……."

"짜증…나…."



 화가 난다. 왜 얼굴은 잘 생긴 거야? 왜 내 취향이냐고.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총을 쥐고있었다. 확인사살까지 하려는 듯 총구를 겨냥한다. 이마에 닿은 차가운 총구를 느낀 지민은 총알에 꿰뚫린 심장이 아픈 건지, 아니면 분노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생각했다. 제발 얼굴 같은 거 이제 안 따질 테니까 이 후끈한 통증에서만 벗어났으면 싶다. 이미 바닥에 피웅덩이가 흥건히 고여있다.



"존…나 짜증…나…."



 총성이 또 한번 꽝 울렸다.








***








 약 10일전부터다. 미친 꿈에 처음 끌려들어가게 된 건. 지민은 피곤에 찌든 퀭한 얼굴로 거울 속 자신을 마주보았다. 너 왜 더 지쳐 있어. 살아는 있는 거지, 지민아. 살아있는 미라같이 퍼석한 피부색을 보고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윤기가 맞으라 했던 로봇캡슐영양제나 맞을 걸 그랬다. 한대에 네 월급보다 비싸니까 그냥 받지 그래. 윤기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나노로봇들이 직접 혈관을 타고 몸상태를 관리해주는 로봇캡슐영양제는 어지간한 서민 한 달치 월급 가격과 맞먹는다.


 지민은 왜 이런 꿈 속으로 매번 빨려 들어가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인생은 평범하디 평범했다. 무난한 학도의 길을 걸어 대학을 졸업하고, 큰 병원은 아니지만 작은 동네 동물병원에 취업도 했다. 병원의 손님이 줄든 말든 손톱만큼도 신경 안 쓰는, 조금 이상한 성격의 의사. 그리고 무난한 성격의 동료 간호사들. 최근 동물병원을 찾는 사람이 줄어 직장이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애완동물 복제칩 반대 시위에라도 나가야 하나 고민까지도 해보았다. 교우관계도 동창회는 나름 꾸준히 참석해 결혼식 사진을 채울 친구 수만큼은 안다. 갑자기 일탈이 하고 싶어 특별한 행동을 찾아나선 것도 아니며, 지민은 현재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꿈은 반복 됐다. 아직도 폐허같은 도시에서 눈을 뜬 처음을 선명히 기억한다. 아마 무덤에 들어가 시체공중분해 서비스를 받는 도중에도 잊지 못할 것이다. 딱딱한 바닥,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총소리, 잿빛 하늘과 축축한 냄새가 섞인 공기. 눈을 떴을 땐 시멘트로 둘러진 회색 파이프 사이에 몸이 끼어있었다. 천둥같은 총소리와 거친 욕짓거리가 남은 잠을 흔들어 깨웠다. 지민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감싸던 손을 내리고 천천히 파이프 사이에서 고개만 들어올렸다. 영화나 공상체험에서 본 한 장면이 꿈으로 등장한 것이라 생각했다. 빗발치는 총성과 회색 빛 뿌연 먼지가 날리는 광경을 어찌 감히 현실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조금 기다리자 총성이 멈췄다.


 푸른색과 회색만 존재할 법 같은 도시 사이로 남자가 서있었다. 침침한 동굴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건물 입구들 사이에서 볼에 묻은 피를 대충 슥슥 문질러 닦는 남자의 발 밑으로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지민은 당시만해도 영화처럼 펼쳐진 꿈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옷을 맞춰 입은 시체들과 홀로 남은 잘생긴 남자. 철저한 외모지상주의사회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남자를 외면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직업정신까지 발휘해 파이프 사이에서 뛰쳐나가 남자를 끌어안고 부랴부랴 살폈다. 다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이 사람들이 괴롭힌 거예요? 상처 났어요? 걱정 어린 질문을 우다다다 쏟아내는 지민을 남자는 가만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남자는 대답대신 지민의 이마 위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꿈이라 믿을 수 없을만치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생생했다. 탕! 깔끔한 총성이 울리고 지민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땅으로 추락했다.


 첫만남은 헤드샷, 두번째 만남은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살피다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심장관통, 세번째 만남은 도망치다 오른쪽 다리에 한발, 왼팔에 한발, 가슴에 한발로 다단계 사망. 계속해서 남자의 손에 죽고, 죽고 또 죽고. 매일 밤 질릴만치 남자의 손에 계속 죽었다. 꿈은 죽음과 동시에 깨진다. 덕분에 없던 불면증과 헛구역질까지 얻었다. 지민은 요즘 한가지 소원만을 꿈꿨다. 뇌의 꿈을 기억하는 장치가 부숴져 남자를 만나지 않거나, 잠을 안 자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가지게 되거나.


 지민은 씻은 머리를 털며 부엌으로 나왔다. 여성 안드로이드의 목소리가 티비처럼 부엌을 웽웽 울린다.



「좋은 꿈 꾸셨나요? 오늘 식사는 단백질 위주의 식단입니다. 파프리카 샐러드와 닭가슴살, 그리고 노른자를 뺀 계란 3개. 칼로리는 612입니다.」

"계란 한 개랑 닭가슴살 몽땅 빼줘."

「500칼로리 이하로 떨어지게 되므로 식단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량을 드시길 권합니다. 그래도 빼시겠습니까?」

"응, 빼줘."



 죽고 난 아침은 입맛이 영 돌지를 않는다. 심장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머리에 총알까지 맞았는데 누가 멀쩡히 먹겠어. 지민은 식탁에 앉아 맥없는 손으로 샐러드를 휘적거렸다. 꿈에 관해서라면 생각은 무한정으로 확장됐다. 지민은 진지하게 추측했다. 과연 그건 정말 단순한 꿈일까. 가슴이 뚫리는 통증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늘 똑같은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가 많이, 현실이라는 이름을 달기 미안할 정도로 지민의 취향이라 더 꿈 쪽으로 추가 기울어지긴 한다.



 도시는 축축한 물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녹슬고 무너진 아스팔트 바닥과 빌딩, 그리고 도로 주변을 감싸고 도는 너른 바다. 그러나 아무리 의심을 해도 결국 그 젖은 도시 속 남자를 떠올리면 개꿈이구나,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긴 한다. 누가 뇌파를 쏜다거나, 거대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거나. 도시의 생생함은 한창 유행하던 드림트립과는 또 다르다. 꿈속에서 우주비행사가, 스파이가, 때로는 방탕한 성생활을 즐길 수도 있는 맞춤형 서비스 여행사는 몇 년 전 지민도 체험한 전적이 있다. 사바나 초원을 달리다 사자에게 물리는 바람에 와장창 망해버렸지만, 드림트립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통증의 단계까지 완벽하게 조절한다.



 지민은 이내 입맛이 떨어져 안드로이드에게 뉴스를 틀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허공에 가로로 선이 그어지고 열리며 화면이 생긴다.



「의료업계에서 또 한 차례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전국 모든 중소병원들이 참여하였고, 급한 환자는 대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의료 로봇화를 지지하는 한편,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있으며 정부는 파업 해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험동물 취급에 관한 문제도 표면에 떠올라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임상실험을 마친 약물은….」

"다른 소식."

「냉동인간 프로젝트로 큰 이윤을 남긴 미래기업이 또 다른 거대한 사업을 공표했습니다. 냉동인간 프로젝트를 잇는 거대한 프로젝트일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래기업은 누구도 아프지 않은 세상을 슬로건으로 걸고, 장님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리가 마비 된 환자는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언급하였습니다. 베일을 한 꺼풀 벗은 프로젝트는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차라리 나도 냉동인간 같은 거 되면 인생 살기 쉬울 텐데. 지겨운 출근도 안해도 되고, 기괴한 꿈도 안 만날 거고. 지민은 미적거리며 마지막 양상추 조각을 집어먹었다. 곧 출근시간이다. 안드로이드가 한번 더 말을 걸었다.



「약은 챙기셨나요?」

"아 맞다."



 지민은 식탁에 올려진 약통에서 알약을 꺼내 먹었다. 짤짤 흔들어보니 다섯 개도 남지 않았다. 천천히 씹어먹으며 안드로이드를 다시 불렀다.



"태형이한테 연락 좀 해줘. 약 떨어졌다고 곧 다시 받으러 간다고."

「메시지 전송 완료하였습니다.」



 약은 제법 효과가 좋았다. 먹고 나면 확실히 그날 하루는 몸 상태가 다른 때보다 괜찮았다. 지민아, 너 이게 뭔지 알아? 기적의 약이야. 내가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 먹으면 머리도 좋아지고 건강해지고 부자도 된다. 세트로 사주면 한통 더 줄게. 효과가 끝장난다며 진지하게 약을 팔던 태형에게 적선한다는 생각으로 산 약은 기대 이상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었다. 지민은 잘생긴 쓰레기가 나오는 꿈 따위는 잊고 집을 나섰다.









***








 눈을 뜬 지민은 잽싸게 주변을 훑었다. 부서지고 무너져 폐혀가 된 건물들 아래로 쓰레기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높다란 쓰레기산은 철사와 각목과, 부러진 쇼파나 침대 같은 큰 가구들이 대부분 차지했다. 드문드문 금이 간 아스팔트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꿈에서는 처음 보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민은 마침내 무식하게 주먹으로 해결을 봐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입 아픈 이야기는 먹히지 않을 테고, 힘으로 해결할 것이다. 지민은 고래고래 목청을 드높였다.



"나와! 이 새끼야!"



 이번엔 만나기만 해봐. 호락호락 죽어줄 줄 알아? 죽었어. 평화를 사랑하는 천사표 박지민은 약 10번의 총알로 관통 당해 죽어버렸다. 지민은 자기 전부터 세워놓은 계획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되짚었다. 첫번째 챕터, 놈이 총을 들면 달려든다. 두번째 챕터, 달려들어서 화려한 팔 꺾기를 시전하고, 총을 뺏고, 배를 주먹으로 친다. 그리고 마지막, 놈이 허리를 굽히는 순간 뒷목을 쳐서 기절시키는 거다. 그동안은 봐준 것일 뿐이고 이제부터가 본편이다.



"숨었냐! 무서워서 못 나오는 거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안개 낀 도시를 왕왕 울렸다. 지민은 낑낑대며 쓰레기산에서 뺀 각목을 붕붕 휘두르며 위협했다. 물기 어린 안개 뒤로 거뭇한 인영이 보인다. 남자가 분명하다. 안개 틈에서 빠져나와 모습이 온전히 보이기도 전, 각목을 휘두르며 튀어나갔으나 불운하게도 스텝이 꼬였다. 으각각 괴상한 비명과 함께 엎어진 지민을 보고 남자가 총을 든다. 지민은 허겁지겁 가슴을 손으로 감싸며 외쳤다.



"타임, 타…!"



 탕! 총성이 여지없이 울렸다. 시발. 지민은 눈을 감으며 무표정한 남자를 향해 간신히 파들파들 떨며 가운데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기도로 피가 들어가 숨이 막혀온다. 이미 죽고 있지만 이때만큼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남자는 끝까지 무감정한 눈으로 지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저벅저벅 다가와 엿을 만들고 있는 손을 기분 나쁘다는 듯 발로 툭툭 건드렸다. 엿이 무엇인지는 아는구나, 개자식아….







 따끔하게 한 마디 쏘아주기로 결심한 뒤 지민은 꽥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약 8번의 죽음을 더 맞이했다. 현실에서 죽은 횟수만큼 장례식을 치뤘다면 이미 통장 잔고는 한 푼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지민은 20번째쯤 사망하고 나니 죽는 시점도 예측할 수 있었다. 총알이 여기쯤 박히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좀 아프고, 음 그래 한 3분 뒤면 사망하겠구나. 죽는 순간만큼은 어마어마한 고통에 잡생각을 할 순 없지만 남자를 욕하는 여유도 늘어났다. 총질 엄청 못하네. 왜 첫날에만 헤드샷 날리고 다른 건 안 날려.



"…으…."



 지민은 기분 나쁜 쎄함을 감지하며 눈을 떴다. 이 좆 같은 느낌은 확실하다. 아니나다를까 꿈 속 도시다. 다른 때처럼 긴장으로 몸을 웅크리기도 전에 지민은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다른 때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철로 된 밥그릇과 육포인지 뭔지 말린 붉은색 고기를 들고 두툼한 콘크리트 파이프 위에 앉아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막 밥을 먹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밥그릇을 기울이다 지민과 눈을 마주친 남자는 잠시 손동작을 멈추었다. 지민은 처음 보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약간 얼이 빠져버렸다.



"…밥 먹어?"



 무슨 꿈이 이렇게 디테일해. 꿈에 매번 같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등장인물이 밥도 먹고 있다. 잘하면 잠자고 화장실 가는 모습까지 보여줄 판이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번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쐈던 총은 바닥에 놓여있었다. 마찬가지로 지민이 황당함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밥그릇에 낙서 된 글씨가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제이케이?"



 지민이 멍하니 적힌 글씨를 따라읽었다. 남자가 흠칫한다. 남자와 다시 눈을 마주친 순간, 남자는 어느 샌가 바닥에 놓여있던 총을 손에 쥐고 있었다. 지민은 황급히 엉덩이걸음으로 물러나며 손을 휘저었다. 타임, 타임!



"기, 기다려봐!"

"……."

"우리 잠깐만 잘 생각해보면, 어, 어 그래, 바, 밥 먹는 중에 피 보면 기분 나쁘…켁!"



 총이 불을 뿜었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총알에 지민은 끅끅거리며 시발놈 재수없다를 온 힘을 다해 외치다가 사망했다. 그마저도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와 제대로 외칠 수 없었다. 남자는 좀비처럼 죽어갈 제 모습을 보고 비위가 상하지도 않는지 다시 철그릇을 기울였다. 언제 당황한 기색을 보였냐는 듯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 개자식. 먹다 체해라. 저주를 퍼부은 지민은 깊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억!"



 쿵쿵 총알을 맞은 심장이 가파르게 뛰고 있다. 가슴을 더듬거리며 심장의 상태를 확인한 지민은 놀란 감정을 서서히 분노로 변화시켰다. 이가 빠득 갈렸다.



"내가 지 앞에 오고 싶어서 오냐고!"



 빌어먹을 꿈은 계속 놈의 앞으로만 데려가 준다. 그 놈이 잘생겨서 무의식 중에 계속 만들어내는 건가. 혹시 자신도 모르게 죽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스러운 취향이 있었나 고민까지 한 지민은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뇌가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라 결론을 맺었다. 남자가 잘생긴 건 맞다. 큰 눈도, 탄탄한 허벅지도 취향이긴 하지만 일단 무표정한 얼굴로 총질을, 그것도 자신에게 탕탕 해대는 놈에게 사랑을 느낄 정도로 자신은 아직 맛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근데 꿈 주제에 무슨 이름도 있어."



 지민은 이니셜이 불린 순간 큰 눈이 유독 커진 남자를 떠올렸다. 제이케이. 가만 그럼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건가. 하도 가차없이 총을 쏘길래 원시인과 비슷한 지능으로 남자를 의심하고 있었다. 무작정 질리는 꿈이라 단정지을 게 아닌 듯도 하다. 지민은 어쩐지 욱신거리는 것 같은 가슴팍을 매만지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좀 더 관심을 쏟아볼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