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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11

by 토페 posted Sep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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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Teddy Adhitya - In Your Wonderland>







 뉴위크 멤버는 컴백 주간이 끝나자마자 자체 예능 프로를 돌입했다. 개인 채널에 올라가는 영상들이었다. 주제는 매주마다 바뀐다. 이번 주는 3:2 물총 서바이벌 게임이 채택됐다. 유달리 체력적 능력이 떨어지는 하준을 깍두기로 의성과 이담이 한 팀이 되었고, 지민은 정국과 한 팀이 되었다. 이거 너무 불리한 거 아니에요? 항의는 두 명이 아닌 세 명이 있는 팀에서 나왔다.



“4:1로 정국이를 이겨라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박지민이랑 전정국이 한 팀이에요.”

“일단 이렇게 해보고 진행할게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한 명을. 피디가 허허 웃었다. 게임은 숲에서 진행된다는 설명을 들으며 멤버들은 방탄조끼를 착용했다.


 게임 시작 10분 후. 정국은 미친듯한 스나이퍼 능력을 선보였다. 정국이 게임에서 튀어나왔냐. 우리 막내 직업 언제 아이돌에서 킬러로 바꿨니. 5분만에 정국에게 잡힌 의성이 넋두리했다. 지민은 정국을 서포트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물론 숨어있던 이담에게 총을 맞고 탈락되긴 했지만. 형 잘했어요! 지민을 미끼로 쓴 정국이 나머지 둘을 원샷원킬로 끝내놓았다. 하준이 항의했다.



“감독님. 이거 계속 해야 됩니까? 학살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정국씨가 능력치가 좋네요. 잠시만 쉬었다가 진행할게요. 제작진 회의합니다!”



 당황한 감독이 급히 제작진을 불러모았다. 짧은 휴식시간이 강제로 주어졌다. 구석에서 대기하던 매니저가 냉큼 아이스크림을 사와 멤버들의 입에 물려주었다. 덥지? 자 어서 먹어. 멤버들이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감사합니다! 지민도 쭈쭈바를 하나 입에 물었다. 저 셀카 좀 찍고 올게요. 아무리 더워도 아이돌의 본분을 포기할 순 없다.


 씩씩하게 뛰어간 지민이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기 좋은 나무 그늘 밑에 앉았다. 브이 표시, 하트 표시 온갖 아이돌력을 끌어올려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됐다!”



 히히 웃으며 지민이 뿌듯하게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골라냈다. 팬들이 좋아하겠지. 이번 주에 방송이 나간 후 올릴 것들이다. 임무를 마친 지민은 고개를 젖혔다. 푸르른 나뭇잎 사이로 어여쁜 햇살이 쏟아지며 음영이 진다.



“…….”



 네 목소리가 내 취향이라서. 무심하고 나른한 목소리를 떠올리자마자 지민의 두 뺨이 발긋하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꽉 조여 들었다. 급격히 날씨가 더 더워진다. 아까 너무 열심히 뛰었나 봐. 자그만 손이 팔랑팔랑 손부채질을 한다. 또 다시금 민윤기와 관련된 생각이 이어진다.


 웃는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예쁠 수 있지? 무표정하고도 날 선 허연 얼굴이 환하게 피는 순간. 심지어 크게 활짝도 아니고 재미있다는 듯, 정말 간단한 미소였는데. 그 미소는 지민이 여태 본 어느 연예계 사람보다, 아니 평생 살면서 본 어떤 풍경보다 예뻤다. 한 장의 사진으로 찰칵 찍히더니 머릿속에 인화되어 아예 틀어박혀 버렸다. 연예인은 내가 아니라 부사장님이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어쩐지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간지러운 기분이다. 지민은 간지러운 기분을 떨치기 위해 꼼지락거리며 차가운 쭈쭈바를 뺨에 가져다 댔다. 윤기가 더욱 보고 싶어진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얼굴이 달아오르고 설레는지 아직 지민은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애 닳은 강아지가 되어 낑낑거리던 지민은 문득 호텔에서 뒷모습을 비추며 사라지던 비서를 기억해냈다. 지민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간다. 만약 내가 연락을 직접 드리면?



“…….”



 제법 괜찮다. 매일매일 연락하고 전화로 목소리도 듣고…. 지민의 광대가 방실 올라온다. 너무 좋아! 단숨에 폰을 열어 사장의 연락처를 뒤져냈다. 사장님 오늘 잠은 잘 주무셨나요. 지금 촬영장이라서 열심히 찍는 중인데 잠깐 휴식시간이라 문자 넣어요. 사장은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연락을 보내왔다. 



[우리 지민이 무슨 일로~^^?]

“형!”



 한창 메시지를 보내는데, 씩씩거리며 정국이 뛰어온다.



“왜 이렇게 못 들어요. 엄청 크게 부르면서 뛰어왔는데. 촬영 다시 시작한대요.”

“아 그래? 잠시마안….”



 정말 별 일은 아닌데요. 빙빙 돌려 쓴 몇 줄이나 되는 긴 장문은 ‘부사장님께 직접 연락하고 싶어요’로 끝이 났다. 그에 사장이 몇 번이나 쓰다 지우는 건지 작성 중 표시가 들쭉날쭉 했다. 이상하게 밝았던 첫 답장과 달리 느리고 우울한 이모티콘이 들어있었다.



[지민이 네가 그렇다면야…ㅜㅜ]



마침내 돌아온 답에 지민이 방긋 웃었다.



“이제 가자!”

“뭐 꾸며요? 왜 그렇게 수상하게 웃어.”

“수상…? 내가? 착각이야.”



 아닌 거 같은데. 정국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의심의 눈초리를 추가하니 지민이 잽싸게 화제를 바꿨다.



“근데 진짜 4:1 전정국을 이겨라 하는 거야?”

“하나랑 진짜로 4:1을 하겠대요.”



 정국이 툴툴거렸다. 내가 무슨 진짜 괴력 몬스터인줄 알아. 지민이 푸핫 웃더니 정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듯 말했다.



“걱정 마. 정국아 나는 살살 할게.”

“형은 굳이 살살 안 해도 그닥….”



 정국이 지민을 흘끔 내려다봤다. 이렇게 말하면 무시하냐며 발끈 할 때가 됐는데. 그러나 지민은 무언가에 기분이 아주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수상한데. 미친 듯이 수상한데. 의심하는 정국은 모른 채, 지민은 나폴나폴 나비가 날 듯 촬영장을 향했다. 처음 메시지는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하며.







***







 검은색으로 도배된 사무실 안. 윤기를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모셔온 주비서는 아무리 봐도 이 광경이 낯설었다. 삭막한 사막 같은 부사장실에 때아닌 아이돌이 출연해 있었다. 정확히는 음악방송이. 화질 좋은 모니터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이돌과 생생한 음질을 자랑하는 스피커로 들려오는 상큼한 아이돌 그룹 음악. 그리고 그 모습을 뉴스 안건 보듯 정색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송영의 도련님.



“…….”



 보면서도 믿기지 않은 광경이었다. 회사 내에서 얼음을 갈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도는 도련님이 진지하게 아이돌 음악방송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광경은. 주비서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의원님과의 식사 일정은 내일 다시 잡으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윤기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화면 안에 박힌 채였다. 마침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아이돌이 엔딩포즈를 귀엽게 취한다. 달칵 키보드가 눌리는 소리가 나더니, 화면이 정지된다. 지민의 얼굴이 한 가득 모니터를 차지했다.



“해당 일정 수정했습니다.”

“그래요.”



 윤기의 눈은 여전히 모니터 속 아이돌에게 박혀 있었다. 주비서는 고민했다. 대체 도련님에게 무슨 취미가 생겨선. 여태 윤기와 함께 지나온 시간을 비추어 볼 때 쓸 데 없는 궁금증은 넣어두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다. 가령 저 솜털이 보송한 아이돌을 대상으로 도련님이 파렴치하게 무언가를 하려는 건. 설마 그래서 그때 호텔에서 아이돌이 들어왔을 때…. 주비서는 그 이상의 생각은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강제로 생각을 절단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는 냉큼 퇴장했다. 윤기는 비서가 나간 뒤에도 화면 속 아이돌, 그러니까 컴백 무대를 선보인 뉴위크의 박지민 컷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



 빵떡 같은 얼굴이 강아지마냥 헤실헤실 거리더니 무대에서는 또 다르게 보인다. 아이돌은커녕 연예계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윤기조차 지민이 무대에서 행복해한다는 것을 느꼈다. 엔딩 포즈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생긋 웃는 게 싱그러운 잔디밭에 스프링쿨러 터지듯 청량했다. 윤기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것도 마음에 들긴 한데.



“…….”



 놀이공원에서 활짝 웃는 얼굴이 더 마음에 든다. 꺄르르 맑은 웃음소리까지 다시금 떠올려본 윤기는 턱을 매만졌다. 아이돌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사람들이 그에 미쳐 돌아서 연예인을 추앙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박지민을 뭐라고 분류하면 좋을까. 윤기의 무표정한 얼굴에 난감한 빛이 스쳤다. 9살 어린애랑 계속 만나서 뭐 하려고. 베이비 시터가 알고 보면 적성에 맞았나. 이쯤에서 그는 지민에 대한 평가가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개 후원하는 아이돌에서 조금 더 그에게 필요한 관계로. 뽀얀 신뢰가 가득 담긴 눈을 가진 이와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었다. 윤기의 눈이 여전히 화면을 꽉 채운 지민의 얼굴을 향했다. 웃느라 볼록 올라온 애교살과 반달로 가느다래진 눈.


 그래. 이건 길에서 방황하던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한 거다.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손길 한번에도 골골 울음소리를 내며 겁도 없이 덥석덥석 안겨오는 새끼고양이 한 마리. 한번 그쪽으로 방향을 트니 정리는 빨랐다. 경계심도 없고 지 앞날도 못 살피는 애라 잠시 돌봐주는 것뿐이다. 생긴 것도 뭐 비슷하네.



“됐군.”



 양심이 다소 가벼워진 윤기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 동물보호협회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입양한 동물은 끝까지 책임지라고. 윤기의 입가에 가뿐해진 미소가 은은하게 떠올랐다. 그때였다. 다시금 비서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뭡니까.”



 연락이 하나 왔습니다만. 비서는 꽤나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말을 질질 끄는 것을 싫어하는 윤기의 성격을 알고 있는 그들이니 상당히 난감한 연락인 모양이었다. 친척들인가. 좋았던 기분이 사라지고 가라앉을 즈음.



[…뉴위크 기획사측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요.”



 기획사 쪽에서 연락이 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비서를 통해 전부 해결하고 있었고, 애초 무릎 꿇고 도움을 받아가는 입장으로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곳이니 직접적인 연락은 비서와만 해도 충분했다.



[뉴위크의 지민군이 직접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뭐?”



 박지민이? 윤기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사이, 비서가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

[직접 연락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전달….]

“아닙니다. 가져오세요.”



 비서는 머지않아 연락이 담긴 폰을 들어 윤기에게 가져왔다. 수많은 전화 회선과 연결되어있는 것 중 하나였다. 윤기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많은 사업 관련 연락 속에서 유독 튀는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셀카 사진과 함께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부사장님!ㅎㅎ 저 지민이에요. 여기가 부사장님이랑 연락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전해 들어서요. 그때는 잘 들어가셨어요? 그날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어서 부사장님과 또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ㅎㅎ]



 셀카는 햇살 아래 나무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앞머리와 옷이 조금 젖어있었고,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브이를 한 채 이가 드러나도록 웃고 있었다. 하. 윤기가 기막힌 웃음을 토했다. 메시지는 심지어 윤기에게만 적은 게 아니었다. 그 아래로는 비서를 향한 내용도 있었다.



[비서님 그때는 제대로 인사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ㅜㅜ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덕분에 잘 활동할 수 있었어요. 다음에는 제대로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꼭 이 연락이 비서님께 간다고 사장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괜찮다면 혹시 부사장님께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장님께서는 힘들 거라고 하셨지만 꼭 한번만 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 드리겠습니다ㅜㅜ]



 추신. 저 진짜 지민이 맞아요. 이 연락처 제 꺼예요. 혹시 모르니 사진도 같이 찍어 보내요! 깜찍한 말로 연락은 끝이 났다. 비서는 어이없다는 듯 픽픽 웃고 있는 윤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답은 어떻게 할까요.”

“줘봐요.”



 윤기는 비서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폰을 낚아채 곧장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조금 가고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받는다.



[여보세요…?]

“너 뭐야.”

[부사장님? 부사장님이에요?]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타박에도 목소리는 점점 피치가 올라가더니 와! 하며 방방 들뜬다. 이렇게 연락 받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부사장님이에요? 진짜로요? 사장님은 포기하라고 하셨었는데.]

“내가 진짜지. 가짜겠니. 그럴 장난 할 시간도 없다.”

[제 번호 보고 연락주신 거예요?]



 얘는 스폰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미 지민의 사회보장번호까지 다 꿸 수도 있는 수준이었지만, 윤기는 지민을 배려해 대충 얼버무렸다. 알았다간 순진한 아이돌은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뭐. 그런 편이지.



“네 얼굴은 왜 찍어 보낸 거야 대체. 그것도 모를까 봐.”

[혹시 낯선 번호로 왔다고 안 받으실 수도 있잖아요. 광고 전화라거나 막…요새 위험한 세상이잖아요.]



 그 위험한 세상 민윤기보다는 박지민에게 더 위험했다. 오히려 권력층인 민윤기는 살기 편한 쪽이었다. 윤기는 굳이 그 사실을 짚지 않았다. 지민이 헤헤 웃었다.



[부사장님 목소리 들으니까 너무 기뻐요.]



 애교 어린 말투다. 방금 박지민을 정의한 ‘고양이 키우기’에서 고양이가 또 주인을 알아보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정리하니 마음이 편하다. 윤기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앞으로는 여기로 연락하지마.”

[아….]



 지민의 목소리가 한 템포 느려진다. 네에…. 윤기가 한 차례 헛기침을 하고 말을 뒤이었다.



“개인번호 알려줄 테니까 거기로 연락해.”

[정말요?! 네! 제가 바로…, 앗 매니저 형. 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부사장님 저 촬영이 있어서 가볼게요. 부사장님 오늘 남은 하루 잘 보내세요!]



 지민이 전화를 급히 끊는다. 윤기는 끊긴 전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작게 입꼬리 들썩였다. 참나. 비서는 그 광경을 괴상하게 바라보다가, 급히 표정을 다잡았다. 민윤기는 끊긴 화면을 잠시 바라보더니, 곧 폰을 비서에게 내밀었다.



“방금 온 사진. 백업해서 나한테 보내요.”

“…네, 알겠습니다.”



 필사의 힘을 다해 표정을 다잡은 비서가 나간다. 윤기는 몇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자신의 개인 폰을 꺼냈다. 그곳에 새로운 연락처가 등록된다. 저장명을 가만히 보던 윤기는 약간의 고민시간을 가졌다. 성격대로라면 박지민, 이름 석자 쓰고 끝났을 테지만. 이왕 기르는 고양이. 입양하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는 하니. 박지민과 어울리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린 그는 빠르게 그 이름을 적어 넣었다.



 쪼꼬미.



 만족스러운 빛이 그의 하얀 얼굴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