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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22

by 토페 posted Dec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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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위크의 컴백이 임박했다. 자정부터 하나 둘 풀리기 시작한 티저는 반응부터 달랐다. 순식간에 몇 십만의 사람들이 게시글에 반응했고, 온갖 매체에서 뉴위크의 컴백을 알리는 보도를 했다. 곡은 뭄바톤 트랩의 리듬감과 화려한 춤이 돋보이는 장르였다.


 멤버 개인별 하나 둘 풀리는 영상 티저와 컴백 포토가 지나가고 대망의 공개 날이 다가왔다. 이번 컴백 곡은 이전 곡과도 달랐다. 하나 둘 천천히 올라갔던 이전 타이틀과 달리 단숨에 차트 3위를 뚫었다. 그 이후로 한 계단씩 쭉쭉 오르더니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으악! 으아악! 멤버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고 절하는 눈물의 사진을 SNS에 공개했다.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의 퇴폐적인 비주얼과 표정연기도 주목 받았다. 초록빛의 안개 같은 연기를 헤집으며 군무를 추는 모습은 케이팝 최고의 안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지민은 흑청색으로 탈색한 머리에 체인을 몸에 주렁주렁 걸었다. 이날만을 위해 닭가슴살과 동고동락하며 산 보람이 있었다.



[윤기형! 이거 봐요.]



 지민이 윤기에게 짧은 영상을 두 개 보냈다. 도로 위 외제차 안. 태블릿으로 문서를 넘겨보던 윤기는 일을 끊고 폰을 집었다. 영상을 재생하니 하얀색 고양이 귀 삔을 꽂은 박지민이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팬싸인회 중간에 찍은 듯했다. 다른 하나는 꽃다발 모양의 판넬이었다. 얼굴을 넣으면 자동으로 꽃다발 중간에 위치하는 모양새였다.



[짠! 형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예쁘죠ㅎㅎ]

[뭐가 선물인 건데]

[당연히 꽃인 저죠!]

[도로 가져가. 생물은 안 키워]

[윤기 형이 안 키워도 돼요. 이미 다 컸거든요. 그리고 알아서 자라는 서비스도 있어요.]



 굴하지 않은 지민이 또 다른 애교 영상을 보내왔다. 브이를 하더니, 볼을 부풀리며 콕 찌르고 윙크를 쉴 새 없이 날려댄다. 윤기는 영상을 꼬박 다 본 후 답장을 보냈다.



[우리 지민이 돈 버느라 고생하네]



 말과 달리 그는 지민의 영상을 모조리 저장했다. 입꼬리도 슬쩍 빗겨 올라가있었다. 답장한지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윤기형 취향은 대체 뭐예요?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언제 혀 짧은 소리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운동화랑 후드티랑…그거 좋아하잖아요.]

“그걸 좋아한다고 이런 걸 다 좋아하지 않아.”

[이상하다. 팬들은 귀엽다고 해줬는데….]



 지민이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윤기 형도 내 팬이면서. 지민이 너무하다며 한 마디 하자 윤기는 느물거리는 어조로 넘어갔다.



“그래? 그럼 실제로 보면 귀엽나 보네. 그때 다시 봐줄게.”

[그, 그럴까요? 저 요새 개발중인 애교도 있어요.]



 지민이 귀여운 일본어 노래에 어울리는 애교가 유행이라며 필사의 연습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다음에 실물로 봐줘야 하나. 정말요? 저 엄청 열심히 연습할게요! 목소리는 차분하나 무표정했던 윤기의 하얀 얼굴에는 웃음기가 스며있었다.


 그 모습에 조용히 곁을 지키던 비서가 윤기 쪽을 외면하듯 정면을 보던 시선을 반대쪽 창틀로 돌렸다. 왜 저 통화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돌의 목소리와 윤기의 목소리를 들으니 자꾸 직장 상사분에게 불손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도둑 같지….


 남의 시선에 어떻게 비춰지든 말든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이어갔다.



“오늘 출국한다며.”

[안 그래도 지금 공항이에요. 안쪽에서 대기 중이었어요.]

“내려서 전화해.”

[네! 근데요, 형. 그거 봤어요? 저 음악방송 1위 후보 올랐는데….]



 컴백한지 일주일 만에 달성한 성과였다. 쟁쟁한 여자 아이돌 그룹이 상대인지라 큰 가망성은 없어 보였다. 뉴위크 내에서조차 모두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봤어. 성공했던데, 박지민.”

[아이 성공은 뭘요. 으, 너무너무 떨려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아요. 매일매일이 윤기 형이랑 같이 있을 때랑 비슷해요.]

“그 정도면 병원을 같이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다음 일정은 건강검진으로 잡아봐.”



 툭 던지니 지민이 별 말 아닌 말에도 꺄르르 웃었다. 웃기려고 한 말 아니야. 지민은 그럼에도 헤죽헤죽 웃었다. 그러다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잇는다.



[혹시 이거요. 음악방송 후보 오른 거, 이거도 형이 절….]



 그때, 전화 너머 지민 쪽이 웅성거린다. 지민이 형 언제 나와? 이제 곧 가야 돼. 어어, 알았어. 지금 곧 갈게!



“혹시 뭐.”

[아 아니에요. 별 말 아니었어요!]



 윤기는 미세하게 미간을 모았다. 뭔진 몰라도 영 석연찮은 느낌이다. 지민은 윤기에게 티 내고 싶지 않은 듯 금방 다른 이야기를 꺼내왔다.



[저 이번에 음악방송 1등하면 소원 하나만 들어주면 안돼요?]

“무슨 소원. 숙소 바꿔달라고 하는 건 지금도 바로 해줄 수 있어.”

[아잇, 그런 거 말구요. 저 그렇게 속물적인 사람 아니거든요.]



 윤기는 지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발 아래 깔아줄 의향이 있었다. 금전적인 이유라면 좋았고, 꿈을 위한 부탁이라면 더 좋았다. 단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대답했다.



“그래. 들어줄게.”

[약속했어요? 다음에 다른 말 하면 안돼요?]

“이런 거 안 해도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 거야.”



 지민이 잠시 답이 없더니 또 꿍얼거린다. 이미 전 넘어간 앤데, 자꾸 더 꼬시면 어떡해요? 네 착각이야. 그럴 의도 없었어. 지민은 이내 아쉽다는 듯 마무리 인사를 전했다.



[보고 싶으면 또 전화 할게요. 참, 내일 꼭 투표 해줘야 돼요!]



 알겠죠? 응. 활발한 목소리에 윤기가 꼬박꼬박 대답해주니 그제야 끊겼다. 윤기는 통화가 종료된 화면을 그 뒤에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채팅방에는 지민이 하트를 그리고 있는 셀카가 가득 떠있었다. 이 조그만 게 또 무슨 생각을 품고 있어선.



“…큼.”



 비서가 헛기침을 했다.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민윤기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지민의 애교영상이 다 끝날 때까지 고정했다. 영상이 끝이 나서야 폰을 닫는다.



“말하세요.”

“큰 아버님께서 본가에 들리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식사 초대의 취지는 좋았다. 화목한 가족간의 사랑을 도모하기 위해. 그러나 실상은 탐색전과 압박이 주를 이루었다. 비서는 윤기의 답을 알고 있었다. 분명 거절일 터였다. 종종 오는 연락이었지만 윤기도 가지 않았고, 초대를 한 이도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이가 대놓고 좋지 않은 사촌까지 귀국하여 참석한다.


 윤기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비서가 먼저 말했다.



“안 간다는 말씀을 전할까요.”

“아닙니다. 간다고 전하세요.”



 일정표를 적던 비서의 손이 멈칫한다. 윤기는 팔짱을 낀 채 창문 너머를 보았다.



“날 그렇게 찾으신다는데. 소중한 조카 입장으로 가서 얼굴 좀 보여드려야지.”



 안 그래요. 윤기가 말했다. 햇빛에 한강이 일렁인다.






***






 서울 가장 중심부의 땅덩어리를 차지한 본가는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재벌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집이 바로 송영 회장의 본가였다. 회장의 오더로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한옥집은 건축미가 무척이나 뛰어났다. 잘 조경된 정원과 연못 사이에 놓아진 돌계단을 걸으며 윤기는 생각했다. 집이란 원래 이렇게 낯설고 불편한 곳인가. 차라리 해외에서 아무데나 예약할 수 있는 쥐 나오는 모텔이 편할 것이다.


 윤기는 이 으리으리한 저택의 주인이면서도 집과는 인연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붙어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년기는 아픈 어머니를 보기 위해 병실을 매일같이 들락거렸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청소년기는 떠밀리듯 해외로 유학을 갔다. 머리가 커 돌아왔을 땐 윤기의 자리가 없었다. 작은 아버지 일가는 늘 경영권을 호시탐탐 노렸고, 아버지는 그로부터 늘 무관심했다.



“이게 누구야.”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던 남자가 윤기를 불렀다. 얄쌍하게 생긴 얼굴은 꽤나 비열해 보였다. 윤기의 사촌, 민서욱이었다. 그가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해왔다.



“우리 윤기, 온다는 말 듣고 설마 했는데 진짜 왔네? 반갑다, 야. 이게 얼마 만이야.”



 그는 윤기보다 꽤 키가 컸는데, 생김새는 윤기와 단 한 군데도 닮은 곳이 없었다. 윤기가 차분히 어깨에 올라온 팔을 밀어냈다. 서욱은 제 팔을 밀어낸 윤기를 보며 잠깐 표정을 구겼다가, 금새 웃는 모양새로 바꿨다.



“글쎄. 한 4년만인가봅니다 형님.”

“푸하하. 여전하네. 이야, 너 키도 굉장히 많이 컸다.”

“유감스럽게도 그때 이후로 큰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럼 내가 줄은 건가?”



 민서욱은 빼물고 있던 담배를 끄고 윤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노골적인 탐색의 시선이었다. 역시나 예의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탐색을 끝낸 건지 서욱이 생글거렸다.



“네 덕분에 외국에 처박혀있다가 와서 그런가 봐. 공기가 별로 안 맞더라고? 그래서 줄었나. 오랜만에 한국 공기 마시니까 신선하드라, 야.”

“좋으셨겠네요.”

“그래. 무척 좋았지.”



 윤기는 이 대화에 흥미 없다는 듯 심드렁했다. 서욱은 민윤기의 이 무시하는 듯한 표정이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고고한 척하며 깔보는 눈동자는 파내고 싶을 만큼 괘씸했다. 매 순간 이 표정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약 거래장부를 제 아비에게 넘겼을 때도. 서욱은 그날을 상기할 때마다 윤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장난 삼아 낄낄대며 무시할 게 아니었다. 씨발, 어릴 때 한쪽이라도 진짜 파냈어야 했는데.


 민윤기에게 장부를 전달받은 서욱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네가 이러고도 사람 새끼야! 조용하게만 놀라고 했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감싸줬던 아버지에게 서욱은 처음으로 명패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머리에 붕대를 싸매고 쫓기듯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잠잠해질 때까지 숨 죽이고 있어. 다시 한번 또 사고 치면 그땐 호적에서 아예 파버릴 줄 알아라.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꼬인 것도, 보장 받았던 밥그릇을 뺏기게 생긴 것도 전부 다 앞에 있는 이 민윤기 때문이다. 어디서 주제도 모르는 게 튀어나와서. 서욱은 웃는 척 이를 으득 갈았다. 그는 민윤기가 추락하는 꼴을 봐야만 이 분노가 풀릴 것 같았다.



“더 할 이야기 있습니까? 없으면 이만 안으로 들어가봐도 될지. 다리가 아파서요.”



 윤기가 발목을 까딱거렸다.



“할 이야기는 우리 윤기가 있지 않을까?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면 위치가 지금이랑 달라질 텐데.”



 병실에 누워있는 윤기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윤기는 부모를 들먹이는 서욱에도 커다란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땐 제가 알아서 할 테니 형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동이네요. 4년 만에 만나서 본인 앞날보다 동생 앞날도 생각해주시다니.”



 윤기가 고저 없이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늘내일 사경을 헤매시지만 형님 아버지께선 화가 다 풀리지 않으신 것 같던데요. 물산에서 자리 하나 안 주시던데. 저와 다르게 있을 때 잘하셔야죠. 그래야 미움 받지 않고 자리라도 하나 받으실 텐데.”

“…하, 이 새끼 말하는 꼬라지 봐라. 사람 긁는 데엔 아주 타고 났어. 그치.”

“형제한테 새끼라니 호칭이 무척이나 유감이네요”



 서욱은 가식 섞어 웃던 모습을 그만두었다. 하. 어이가 없었다.



“둘이 있을 땐 그냥 시원하게 말하자. 너도 형제, 형제 하는 거 가증스럽지 않냐? 피라고는 단 한 방울도 안 섞였는데.”



 응? 윤기야. 대충대충 서욱을 상대하던 윤기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그가 대놓고 언급한 적은 처음이었다. 민윤기가 진짜 민씨 집안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윤기는 서욱이 대놓고 드러내는 혐오에 잠시 침묵했다. 해외에 처박아둔 건 성질머리를 고쳐오라는 뜻이었을 텐데, 민서욱은 4년을 죄다 쓰레기통에 처박은 모양이다. 이정도 되니 큰 아버지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비즈니스에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 놈한테 어떻게든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서 아등바등하다니.



“피는 안 섞여도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전 형님을 친형님처럼 따르니까요.”

“하.”



 슬슬 서욱이 귀찮았다. 이게 귀찮아서 해외로 보내놨던 건데, 그새 시간이 지나서 다시 와서 짖는다. 그는 서욱과 이런 말장난이나 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신경 쓰겠습니다. 이만 먼저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 얼굴 보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많이 기다리고 계신지라. 어른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형님께선 천천히 들어오세요. 까딱 가볍게 목례한 윤기가 등을 돌렸다. 목표는 큰아버지였다. 송영을 세운 할아버지로부터 인정 받지 못해 제 아버지에게 회장자리를 빼앗긴 그. 


 그는 열등감이 엄청난 인물이었다. 핏줄을 그렇게 중요시 하는 노인이 다른 이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까지 데려온 둘째에게 회장자리를 물려주었으니, 열등감은 뭉칠 대로 뭉쳐 있었다. 슬슬 경영권 승계 언급이 나오는 이 시점. 큰 아버지와의 거래는 윤기에게 필요했다.



“그래. 작은 아버지도 차라리 네 얼굴을 안 보고 가시는 게 낫겠다. 보면 얼마나 속이 터지시겠니.”

“…….”

“뻐꾸기 새끼가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

“염치 없는 건 핏줄 탓이냐? 너네 엄마처럼?”



 서욱의 외침에 서서히 걷던 윤기가 발걸음을 멈췄다. 처음으로 윤기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검은 눈에 섬뜩한 빛이 스친다. 그러나 서욱을 돌아봤을 땐 이전과 똑같이 무표정했다.



“염치가 없다라…글쎄요. 형님을 직접 감옥에 보내는 것 정도는 해야 들을 말인 거 같은데.”

“너 이 새끼가…!”

”아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피가 안 섞여서 보내놔도 평생 못 듣겠네요. 저런.”



 윤기가 안타깝다는 듯 과장된 모션을 취했다. 그렇지만 걱정 마세요. 한국에 오신지도 얼마 안 됐는데, 바로 답답한 곳에 보내는 염치 없는 새끼는 아니랍니다. 저도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왔잖아요. 덧붙이며 얄밉기 짝이 없게끔 싱긋 웃었다. 누구라도 한대 치지 않고는 못 버틸 만큼 아주 얄미웠다. 서욱이 부글부글 끓는 얼굴로 단숨에 달려와 윤기의 멱살을 잡아챘다.



“너 내가 가만 안 둔다.”



 윤기는 멱살을 잡힌 그대로 미동 없이 서있었다.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듯, 그대로 픽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4년전에도 못하셨던 일을요?”



 이 씨발. 서욱의 주먹이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윤기의 뺨을 향해 꽂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이 뭐 하는 짓이냐!”



 호랑이의 포효처럼 커다란 음성이 울렸다. 서욱이 화들짝 놀라며 윤기의 멱살을 놓았다.



“아, 아버지.”



 풍채가 큰 남성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큰 아버지였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서욱을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이 뭘 잘못했다고 보자마자 주먹질을 하려 들어?”

“아버지 그게….”

“네가 제 정신이냐?”

“고모부, 전 괜찮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오랜만에 얼굴 본 게 반가워서 조금 격한 농담을 했더니…안으로 들어가시죠.”



 윤기가 끼어들었다. 언제 양아치처럼 굴었냐는 듯 쩔쩔 매던 서욱이 윤기를 돌아본다. 눈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윤기에게 함부로 적의를 드러내진 못했다. 서욱은 입술을 잘근 물었다. 큰아버지는 윤기와 서욱을 관찰했다.



“괜찮으니 어서 들어가시죠. 음식들이 다 식겠어요.”



 윤기의 재촉에 큰아버지가 큼, 헛기침을 했다. 그래.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넘어간다. 서욱은 뒤에 남아 멀어지는 둘을 보았다. 윤기를 보는 눈에 더욱 큰 증오심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