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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18

by 토페 posted Dec 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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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에 적막이 낙하한다. 홍조가 번진 올망졸망한 얼굴이 이젠 서서히 하얗게 탈색된다. 이미 예상한 광경이었으면서도 윤기는 그 모습을 보니 입안이 썼다. 몇 달이나 됐다고. 입양한 펫이 슬퍼하니 달래주고 싶어서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윤기는 울멍거리는 지민을 냉정하게 관람만 했다. 확실하게 잘라내야 한다. 박지민을 위해서. 그것이 박지민의 고백 대참사 이후 고심한 민윤기의 결론이었다.


 민윤기가 볼 땐 그랬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창창한 앞날의 아이돌 앞에 스폰서와의 스캔들을 뿌려놓을 순 없었다. 어지간한 삼류 찌라시는 제 선에서 막긴 하겠지만 지민의 귀에 들리는 완전한 소문까지 차단하긴 힘들 거였다. 듣는다면 바짝 굳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이나 뚝뚝 흘리겠지. 음악방송 1등 수상소감으로 오열을 하던 지민을 떠올리며 윤기는 제멋대로 추측했다.


 민윤기는 지민을 신뢰하지 않았다. 어린 애가 뭘 알겠어. 치기 어린 감정일 게 분명했다. 순간의 정에 휩쓸려 생긴 감정의 파장. 거기에 같이 어울려 지민을 잃고 싶진 않았다. 지민은 달랐다. 귀찮음에 카드나 던져주고 세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갈아 끼던 옛 인연들과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기는 자신의 앞에 앉은 지민의 얼굴과 작은 체구를 뜯어 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이 화인 맞은 것처럼 조금 찔려왔다. 이미 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패륜아의 낙인이 찍혔을 때도 멀쩡했던 양심이 말이다. 말 못하는 네 발 짐승들도 어린 새끼는 안 잡아 먹는다. 입 맞출 때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어린 애한테 동했단 것만으로도 쓰레기 짓은 충분하다.


 지민은 충격에 빠진 건지 멍하니 말이 없다. 윤기는 차분히 말했다.



“네가 아직 어려서 착각하는 거야. 힘들 때 도움 받아서. 그 나이 땐 동경과 다른 감정을 쉽게 헷갈리지.”



 더 냉정하게 쏘아붙여서 마음 정리를 시켜야 한다. 차가운 가면을 쓰고 상대 가슴에 비수를 툭툭 꽂는 말을 하는 건 익숙한 종류였다. 하지만 영 풀 죽은 슈크림이 된 지민의 얼굴을 보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윤기가 헛기침을 했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에 실수는 한번쯤 해.”

“…….”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가면 돼. 지금처럼. 별로 어렵진 않을 거야.”

“…….”

“그깟 철 없는 고백 하나 했다고 자금줄 끊는 옹졸한 인간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깔끔하군. 윤기가 마무리 지었다. 충격 받아 멍하던 지민의 눈빛에 초점이 돌아온다.



“…그깟 철 없는 고백이요? 착각?”



 지민이 어이없다는 듯 하, 했다. 윤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눈물 젖은 말랑말랑 빵이 아니라 전투적인 슈크림 빵.



“실수 아니에요. 착각도 아니고요. 멋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물 젖은 가여운 새끼고양이였는데? 돌연 발톱을 꺼내들고 컁컁거리니 윤기가 멈칫했다. 지민이 와다다 퍼부었다.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예전처럼 못 돌아가요. 부사장님 보면 만나자마자 이제 키스부터 하고 싶은데 어떻게 예전처럼 돌아가요? 우리 처음에 키스 한 것도 기억 잘 안 나서 얼마나 억울….”

“그만, 그만 말해.”



 넌 아이돌이라는 게 조심성이라고는 왜 하나도 탑재가 안 됐니. 윤기가 급히 틀어막았다. 라운지 전체를 봉쇄해서 모두 접근 금지로 두긴 했지만 저도 모르게 찔렸다. 주변이 듣건 말건 지민이 씩씩댔다. 또박또박 따지는 게 당찼다. 



“그만 못해요. 부사장님도 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리고 저 어리게 취급하지 마세요. 이제 알 거 다 아는 나이고 성인이에요.”



 윤기는 난감하다는 듯 입매를 문질렀다. 저 이제 다 컸어요, 주장하는 모습이 진짜 어리게 보였다.



“뭐예요? 그 동의하지 않는 것 같은 눈빛은?”

“…동의하지, 그럼. 동의해.”

“그래서 고작 나이 때문이라면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게 고작이 아니라고는 생각 안 해 봤니.”

“어차피 만나면 손해도 내가 보는 거 아니에요? 어린 쪽이 손해라면서요. 전 원래 손해 많이 봐서 괜찮아요. 행사 계약도 다 손해보면서 뛰었는데요?”



 지민이 강경하게 주장했다. 부사장님은 기업가니까 이득 봐요. 저는 망돌이니까 손해 봐도 돼요. 이제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르는 게 분명했다. 조금 진정해볼래. 그런 말을 하려다 윤기는 물어뜯을 기세로 덤비는 지민에 말을 골랐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문제 아니야.”

“복잡할 건 뭐가 있는데요?”

“스폰서와 아이돌 관계라면 간단한 건 아니겠지.”



 윤기가 팔짱을 꼈다.



“내가 너랑 만나면 넌 빼도 박고 못하고 진짜 스폰 뛰는 애 되는 거야.”



 윤기가 후원을 계속하며 만나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이렇게 정의된다. 돈으로 어리고 순진한 아이돌을 산 스폰서와 몸이며 마음까지 내준 망돌. 세상에 낙인 찍히는 관계는 그랬다. 지민은 당돌하게 대답했다. 그게 왜요.



“처음부터 뛸 생각으로 부사장님 만나러 나왔던 건데요?”

“…….” 

“저 그저 그런 애에요. 부사장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깨끗하고 순진하지 않아요. 그 자리에 부사장님 아니었어도 누구 됐든 가서 시키는 대로 돈 받고 뭐든 할….”

“박지민.”



 단숨에 윤기가 날카로워진다. 말 가려 해라. 억울함과 서러움으로 범벅 되어 눈 앞에 보이는 게 없던 지민도 움찔했다. 깨갱. 꼬리 말고 물러난다.



“…바, 방금은 잘못 말했어요. 죄송해요.”



 지민은 흘끔 윤기를 살피더니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무서워도 할 말은 마저 다 해야만 했다.



“…그치만 저는 쉽게 접지 않을 거예요!”

“…….”

“동경 같은 거 아니에요.”



 이게 어떻게 동경이야. 점점 목소리는 작게 변하더니 소멸한다. 지민이 통통한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이대로 윤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종종 간절함은 무모함을 부른다. 머리를 굴리던 지민이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외쳤다.



“그, 그럼 거래해요. 이거만 들어주시면 그 뒤로 부사장님 말대로 다 따를게요. 절대로 귀찮게 더 들러붙는 일 없을 거예요.”



 윤기는 생각하듯 말이 없다. 이내 손을 까닥였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한 달만.”

“…….”

“딱 한 달만 저만 봐주세요. 나이도, 후원도 그런 거 아무것도 상관 없이.”

“…….”

“그 뒤에 판단해주세요. 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그때도 아니라면 포기할게요.”



 지민이 마른 침을 삼켰다. 눈빛이 애원한다. 윤기는 이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난 날 후원을 해주겠다고 했을 때. 그때 꼭 이런 눈빛으로 증명해내겠다고, 멋진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박지민은 윤기에게 다짐했었다. 꿈을 바라는 자의 염원은 찬란하며 간절하다. 지민을 지켜보던 윤기가 마침내 입을 뗐다. 길다란 한숨과 함께.



“…딱 한 달이야.”

“진짜요? 진짜 들어주시는 거예요?”

“싫어? 그럼 취소하고.”

“아뇨! 하면 안돼요! 계속 해요!”



 지민이 활짝 웃으며 윤기를 본다. 별 박은 듯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빛난다. 자신감도 넘쳤다. 당신은 저를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반면 윤기가 고개를 젖히며 하아, 깊은 숨을 토한다. 얘는 대체 왜 이길 수가 없지.








***







 뉴위크의 앨범 준비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수록곡의 녹음 시간. 지민은 멤버 하준과 함께 다음 차례를 대기하고 있었다. 언제 앞 차례가 끝날지 모르는 대기시간은 길고 지루하다. 지민은 유행하는 예능 방송, 아니면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영상, 아니면 숙면으로 시간을 버티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맹렬히 검색을 하고 있었다. 폰에 남은 수많은 검색 기록은 이랬다. 데이트 장소 10선. 첫 데이트 추천 루트. 무조건 성공하는 플러팅 비결.


 하준이 하품을 쩍 했다.



“정국이 목 엄청 안 풀리나 보네. 오늘 못할지도 모르겠다. 안 그러냐. 저거 잠깐 끊었다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

“박지민?”



 뭘 하는데 왜 답이 없어. 하준이 열심히 검색하고 있는 지민을 살펴보았다. 키스 잘하는 방법. 화면에 떠있는 전혀 생각도 못한 글자에 하준이 허, 황당하다는 듯 소리 내어 읽었다.



“키스으? 키스으으? 요게 연애하느라 그날도 늦게 들어온 이유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형!”



 지민이 팔짝 뛰며 팔을 교차해 저었다. 과한 동작이 오히려 눈에 띄게 수상했다.



“우리 다음 컨셉 연습이에요, 연습.”



 지민이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퇴폐 컨셉인데! 이런 쪽도 필요할 거 아니에요. 섹시하고 귀공자 같고 막, 아무튼 그런 거요. 키스 하나 못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보고 있던 것뿐이에요. 화면에 잘 나오려면 해야죠. 그래야 팬들도 더 좋아하고! 하준은 눈을 가늘게 좁히고 듣다, 곧 됐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래, 쓸모 없는 변명 잘 들었다.



“쥐방울만한 게 뭔. 야 치워라. 그런 거 백날 검색해봐라. 실전만 못하지.”

“치…근데 형도 별로 못해봤으면서 왜 많이 하는 척해요?”

“모쏠인 너보단 많이 해봤어.”



 지민이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한번은 해봤는데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더 자존심 상했으며, 통탄스러운 건 그 한번조차 기억이 흐릿하단 거였다. 끝내주는 키스를 연습해야 조금 더 부사장님을 꼬시기 편할 텐데.



“본능이라는 게 있다고 했어요. 전 짐승이 될 거예요.”

“짐승? 뭐? 병아리?”

“이씨.”



 팬들이 붙여준 별명을 언급한 하준이 얄밉게 낄낄거렸다. 지민의 째림을 받아도 눈 하나 꿈쩍 안하더니 충고를 붙였다.



“스킨십 뭐 어떻게 됐든 서로 마음 통하는 게 중요하지.”

“…그래요? 육체적인 걸로도…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네가 한다고 해 봤자 상대도 딱히 기대 없을걸?”

“…….”

“농담이야, 인마. 눈 그만 흘겨라. 컨셉 연습이라면서 뭘.”



 하준은 여전히 관심 없다는 듯 건너편 녹음실을 보고 있었다. 졸라 안 끝나네. 아 허리 아파. 귀찮다며 쇼파 다른 쪽에 아예 드러눕는다. 지민이 눈동자를 도르륵 도르륵 굴렸다. 형, 근데요.



“…제 친구가요. 고민이 있다는데요.”

“아 다리가 좀 시린데. 비 오려나.”



 지민이 하준이 종아리를 냉큼 꾹꾹 주물렀다. 싹싹한 태도에 하준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애인이 연상인데, 데이트로 뭘 하면 좋을지가 고민이래요. 어떻게 하면 더 마음에 들지. 맨날 어린 취급만 한다고….”

“그래? 몇 살 차이인데.”

“한 9살정도?”

“뭐?”



 하준이 잠깐 벌떡 일어난다. 삐딱한 표정에 괘씸하다는 눈빛이 가득했다. 지민이 냉큼 윤기를 지지하는 설명을 갖다 붙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이 차이는 안 나요. 요새 연상연하 커플들도 많으니까….”



 하준은 지민을 빤히 보더니 곧 손을 휘저으며 다시 쇼파에 누웠다.



“그래서 9살 많은 연상을 꼬시는 방법이 고민이라고?”

“네.”



 하준이 턱을 긁적였다. 뭐 별게 있나.



“어린 취급이 문제면 어른스럽게 보이면 되는 거 아니냐? 어른스럽게 리드하는 모습을 보이면 되겠네.”



 옷도 좀 꾸미고. 대충 몇 마디 던진 하준은 이내 잔다며 눈을 감았다. 어른스러운 척, 어른스러운 척. 지민은 하준의 말을 되새기며 첫 데이트를 계획했다. 투지로 불타오르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여 데이트를 계획한 뒤 녹음실에 이어 들어갔다.







***







 회의실에는 긴장된 기운이 감돌았다. 이번 회의는 한 분기의 송영 바이오 프로젝트 성과가 보고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 결과 보고에 따라 그간의 공로가 평가되니, 회의실에 있는 개발부원이 무거운 기운에 짓눌릴 듯 덜덜 떨었다. 쓰러져 누워있는 회장 대신 권력자라는 부사장은 날카롭고 차가운 게 얼음가시 같은 놈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눈을 치켜 뜨고 쏘아보는 게 그 자리에서 믹서기에 갈릴 뻔했다며, 회의 시간에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을 들을까.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개발부원이 손을 모아 쥐고 윤기의 평가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윤기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좋아 보이지도, 그렇다고 썩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펜을 휘휘 돌리던 윤기가 마이크를 잡은 때였다. 지잉. 진동이 울린다. 윤기의 폰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윤기가 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연락을 확인한 윤기가 마이크를 잡더니 한결 편해진 얼굴로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마음에 드네요.”

“가, 감사합니다!”

“대안으로 세워놓은 프로젝트는 나중에 따로 보고서 올리도록 하세요. 추가해서 쓸만할 것 같네요. 여기까지 합시다.”



 회의실의 빙하처럼 얼어있던 분위기가 사르르 녹는다. 윤기는 태연하게 회의실을 가장 먼저 빠져나갔다. 저 빙하로 만든 인간에게 무슨 변화가…. 모두의 놀란 시선이 등 뒤에 달라붙었으나, 당사자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윤기는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지민에게 받은 문자를 열어보았다. 



[내일 7시예요. 부사장님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와요!]



 글자만 봐도 어마어마한 준비를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슬슬 불안한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안도감이 비집고 올라왔다. 개 같은 새끼와 붙어 먹어 처리를 곤란하게 하는 쪽보단 이쪽이 낫다. 얌전히 자신을 좋아하는 쪽이.



“…….”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으로 종종 꼽히는 자신을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마음에 품었다는 점에서 이미 박지민 취향은 글러먹은 것 같다. 보는 눈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윤기는 생각했다. 잘 단념 시키면 된다. 좋은 말로 타이르면 될 거다. 생각하며 윤기는 지민에게 답장했다. 그래.










 지민이 선택한 대망의 첫 데이트 장소는 대극장이었다. 늘 윤기가 선택했던 룸 형식의 식사장소와는 달랐다. 이런 곳이 와보고 싶었나. 오페라가 상영하는 커다란 극장 홀 입구를 보며 윤기는 의심했다. 어렸을 때 해적이 되고 싶었다며,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는 걸로 봐선 결코 이런 취향이 아닌 걸로 보였다. 특히나 무겁고 우중충한 내용의 극일 경우. 어찌됐든 선택권은 지민에게 있으니 윤기는 잠자코 따르기로 했다.


 윤기는 시계를 확인했다. 지민이 오기 전까지는 15분이 남아있었다. 그는 지민을 적당히, 평범하게 무미건조하게 대할 작정이었다. 지민도 크게 변하진 못할 거다. 목석인 상대로 무얼 할 수 있으랴.


 약속시간 10분전. 커다란 벤이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윤기의 차량을 발견하더니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멈춘다. 윤기 역시 값비싼 차량에서 내려 벤 앞으로 다가왔다. 검게 코팅된 창문이 달린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민이 사뿐히 내려왔다.



“갑자기 오페라는 왜….”



 보려는 거야. 그렇게 말하려던 윤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유는 지민의 옷차림 탓이었다.


 화려하게 금발로 염색하여 뒤로 바짝 넘긴 머리. 시상식이라도 가는 것마냥 한껏 차려 입은 수트. 수트도 평범하지 않았다. 올 블랙에 허리라인을 바짝 조인 그 수트는 뮤비에서나 쓸 법했다. 화장은 대체 샵에서 어떤 주문을 한 건지 두 눈이 시커멓다. 강렬한 스모키 화장과 잿빛 섀도우가 어울려 겨울 판타지 특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 됐다. 호박마차를 타고 온 신데렐라도 이보다 화려하게 꾸미진 않았을 터였다.


 경악한 윤기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 지민이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윤기씨?”



 많이 기다렸나요? 지민이 한껏 어른스러운 척, 근엄한 왕자같이 묵중한 톤을 냈다. 신이여…. 윤기는 뒷목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