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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15

by 토페 posted Nov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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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민의 뒤통수 치는 고백과 함께 마무리 한 식사 이후. 민윤기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하도윤 관련으로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내오세요. 비서는 흠칫하며 그의 상사를 잠시 바라보았다. 박지민도 모자라 하도윤까지? 잠시 수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비서가 긁어온 정보에는 대중들이 흔히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몽땅 적혀있었다. 소속사와의 계약 비율, 하도윤이 소유한 집들의 주소와 재산 규모, 심지어는 집에 가진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자세했다. 엄연한 사생활 침해 수준이었다. 수십 억이 표시된 재산규모는 페이지는 훌훌 넘겨 스태프들의 평과 스캔들 부분으로 넘어갔다.


 이성관계 깨끗. 파파라치 사진 한 장 남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연애. 촬영장에서 예의 바름. 술술 읽은 윤기는 곧 혀를 차며 종이를 대충 책상에 던져놓았다. 이딴 놈이 뭐가 좋다는 거야. 지극히 윤기의 기준으로 하도윤은 박지민 같은 물정 모르는 어린 애를 꼬시는 파렴치한이었으며, 부유하지도 않았고, 봐줄만한 건 키와 얼굴 하나뿐이다. 이것도 연예인 기준이라고 치면 미달이다. 윤기는 코웃음을 쳤다. 어디 물어올 게 없어서.


 윤기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은은한 짜증이 쌓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배시시 상기되어 웃던 지민의 얼굴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좋아해요. 조심스러우면서도 확실하게 토로하던 그 마음은 풋풋했고, 감정이 메마른 민윤기가 봐도 퍽 애틋해 보였다. 이제 막 시작해서 애지중지 돌보는 마음인 게 뻔히 보인다. 그래서 더욱 심기가 불편했다. 검증도 안 된 새끼한테 홀랑 다 줘버린 게 기가 막혔다. 대체 어디서 눈이 맞아 돌아왔단 말인가.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윤기의 기분은 침잠된다. 그날 식사 이후 안무 연습을 해야 한다고, 곧장 차에 올라타던 박지민의 뒷모습까지 이어 떠오르자 그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오늘은 저 이만 가서 안무 연습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선배님이랑 하는 건데,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렇게 시간 내주셨는데 죄송해요. 아련한 눈으로 정중히 거절하는 지민을 윤기는 뭐 문제되냐며 쿨하게 보냈었다. 네 일하러 가는 건데 뭐가 미안해.



“…….”



 근데 왜 지금 민윤기는 쿨하지 못하게 박지민의 사생활에 매달리고 있단 말인가. 따지면 민윤기에게 이럴 권리는 없었다. 후원하는 아이돌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참견하며 따질 권리는.


 윤기는 곧 뻔뻔하고 말끔하게 이성을 정리했다. 참견해야 할 명목은 있다. 집에 기르는 고양이가 밖에서 길냥이와 눈이 맞아도 신경이 쓰이는 법인데, 대상이 연습실에 처박혀 세상물정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돌이다. 그것도 이제 막 성인이 된. 박지민은 세밀한 관리가 필요한 애다. 제 말이면 당장 달이 별이라고 해도 믿는 앤데 어디서 등처먹히고 다닐 수도 있다. 뭘 믿고 방치해.


 윤기는 잠잠한 폰을 응시했다. 지민의 연락이 뜸해진 지도 며칠이다. 쉴 새 없이 울리던 폰은 간간히 안부만 물어왔다. 윤기의 사진첩에 하루가 멀게 저장된 지민의 셀카들이, 이제는 3일에 한번으로 간격이 띄워져 있었다. 그는 폰을 닫고 비서를 다시 호출했다.



“박지민 정보 실시간으로 보고 올려요. 뭘 하는지, 어디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아야 됩니다. 사람한테도 펫캠을 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건 다 그 놈이 어떤 놈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 없는 박지민을 위해 이러는 거다. 거리낌없이 사생활을 침해한 민윤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







 콜라보 촬영은 하도윤의 소속사 연습실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춤을 추는 컨텐츠에, 채널 주인이 하도윤이니 그곳으로 장소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객관적으로만 봐도 허름한 지민의 소속사 연습실과 번쩍거리는 대기업 엔터 회사의 연습실을 비교하면 당연히 그 선택이 되어야만 했다. 지민은 소속사 입구를 통과하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굿즈샵과 카페, 식당이 건물 아래층에 있었다. 이제 막 새로운 직원들을 뽑아 10명이 된 지민의 소속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예전에 여기 건물도 못 밟고 연습생 탈락했었는데 이렇게 들어오니까 너무 신기해요!”

“…지민이 넌 아픈 과거를 엄청 해맑게 말하는구나.”

“어떻게든 들어왔으면 된 거잖아요.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되겠죠?”

“그럼! 더 크게 되지.”



 매니저가 호언장담을 하며 지민을 우쭈쭈 챙겨주었다. 고작 이런 건물만 세우겠어. 나라를 세우고도 남을 거야. 지민이 민망해하며 목을 긁적였다. 그것까진 아닌 거 같은데…. 아니야. 진짜라니까. 형은 벌써 여권도 끊어놨어. 한참을 매니저가 주접을 떨던 그때, 그의 폰이 울렸다. 그는 그 연락을 보자마자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죽어갔다.



“왜 그래요, 형?”

“어? 아냐, 아냐. 요새 사장님이 스케줄에 엄청 신경 쓰시네. 시간마다 보고를 해야 돼서.”

“외부 작업은 처음이라 많이 걱정되시나 봐요.”

“그런 것 치곤….”



 사생활 침해 수준이긴 한데. 매니저는 뒷말을 이으려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감동 받은 지민의 얼굴을 보고 말을 집어 넣었다. 그래…그러신가 보다…너희밖에 없는 분이시니까…. 지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한다. 꼭 조회수 1등의 완벽한 영상을 찍고 갈래요. 그때였다. 그들에게 한 인영이 안쪽에서 마중 나왔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는 촬영의 스태프였다. 지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았다. 웬 종일 머릿속을 헤집던 윤기도 그때만큼은 생각나지 않았다.


 도착한 연습실은 예견하긴 했지만 뉴위크 연습실의 3배 가까이 되어 보였다. 광이 나는 바닥과 커다란 전신 거울은 국가대표가 여기서 연습한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당당하게 입장했지만 어쩐지 조금 위축된다. 그런 지민을 반기는 건 하도윤이었다.



“일찍 왔네요.”



 그는 지민을 기다린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바로 곁으로 다가와 챙겼다. 후배님 엄청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더 반갑네. 온통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만난 하도윤은 생긋 꽃 같은 미소를 흩뿌렸다. 신기하게 긴장이 완화된다. 단 한번 만난 사람일지라도 반겨주니 그랬다. 지민은 허리를 구십 도로 접어가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위크 지민입니다!



“아직도 그렇게 바짝 얼어서 인사해야 할 사이예요, 우리?”

“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지민에겐 당연했다. 불편하신 건가. 쩔쩔 매는 지민에게 하도윤이 능청을 떨었다. 얼어서 뚝딱거리는 모습도 재미있긴 한데.



“나 그렇게 안 늙었어요. 편하게 해요. 후배님보다 5살밖에 안 많은데.”

“앗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죄송합니다 선배님.”

“뭐라고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이것도 인연인데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쪽으로 와요. 소개시켜줄게요. 우리 감독님이랑 피디님. 하도윤은 능숙하게 지민을 이끌고 스태프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정말 선배 같았다. 먼저 지민을 챙기고, 말을 붙여가며, 오늘 촬영 잘 부탁 드린다고 인사했다. 그 중 피디는 지민을 보고는 아아, 하며 아는 척을 해왔다. 반갑습니다.



“무대 준비 엄청 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준비 열심히 했습니다.”



 하도윤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답도 똘망똘망 잘하죠. 앞으로 가요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별. 지민이 민망해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선배님께서 좋은 말만 해주시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더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열심히 할 거예요…! 조회수 1등 할 거예요.”



 하도윤이 믿어 달라고 하는 지민을 보며 실실 웃었다. 그래요? 자신 있나 보네요. 1등하면 선물 보내줄게요. 가서 맞춰봐요. 도윤이 지민을 데리고 카메라 화면이 닿는 연습실 가운데로 향한다. 둘의 대화를 지켜본 피디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도윤이 게스트 와서 이렇게 좋아하는 티 내는 건 처음 보네.”



 낯가려서 누가 와도 촬영 전에는 인사만 대충하던 놈이 입이 귀에 걸렸구만. 피디는 동작을 잡아보며 어느새 조금 어색함을 던 채 웃고 있는 둘을 보았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외침에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지민의 가슴팍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수를 치며 이곳 저곳에 인사를 하느라 바쁘다. 하도윤도 짧은 인사를 한 뒤 곧장 수건을 챙겨 지민에게 다가왔다. 물과 수건을 들고 대기하던 지민의 매니저가 어정쩡하게 걸음을 멈췄다. 고생했어요. 여기. 하도윤이 웃으며 곁을 차지했다.



“진짜 조회수 1등 찍겠는데. 뭐 가지고 싶어요.”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떨어질 거 같아요.”

“진심으로 한 말인데. 전용기 같은 거 빼고 다 돼요. 차까진 돼.”



 지민이 농담이어도 크다며 웃었다. 어느새 어색해진 기운은 많이 사라져있었다. 춤이란 게 그랬다. 같이 리듬에 맞춰 추고 땀을 흘리면 가까워진다. 게다가 동작을 수정하는 아이디어를 나누고, 작은 인터뷰까지 마치니, 친밀감을 느끼는 속도는 어느 때보다 빨랐다. 하도윤의 성격도 한 몫 했다. 쉴 새 없이 지민이 말을 할 때마다 집중하며 이끌어주는 그는 지민에게 어떻게든 다가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말해 봐요. 진짜 다 줄 수 있어요.”

“이미 같이 촬영한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에요.”



 지민이 손사래를 쳤다. 아쉽네. 나 같으면 한우 세트라도 보내달라고 할 텐데. 후배님이 아직 떼가 덜 탔어. 말하며 하도윤이 고민하더니 슬쩍 웃는다.



“그럼 이건 어때요. 1등하면 나한테 축하선물 주기.”

“그건 갑자기 너무 조건이 변한 거 같아요, 선배님.”

“뭐 어때. 받기 싫다는 사람한테 계속 줄 순 없지. 난 받고 싶어요.”

“…한우세트요?”



 지민이 순진하게 물었다. 하도윤이 황당하게 허, 숨소리를 내더니, 이내 크게 웃었다. 벼룩 간을 뜯어먹지. 내가 어떻게 후배님한테 얻어 먹어요.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후배님이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거예요. 지민이 살짝 고민하더니 끄덕였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면 들어드릴 게요.”

“후배님 엄청 착하네.”



 하도윤의 목소리는 무척 상냥하고 친절했다. 



“오늘 우리 스태프들 회식 있는데 거기 올래요? 같이 밥 먹어요.”

“…회식이요?”

“지민아! 하도윤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나온 거 같아서 기쁩니다.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 드려요.”



 매니저가 냉큼 고민하는 지민의 옆으로 튀어나와 끼어들었다. 하도윤은 지민의 매니저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저야말로 와주셔서 감사하죠. 이렇게 초대에 응해주셨으니. 매너 좋은 몇 마디 대화 후 매니저는 사회생활을 해볼 대로 해본 사람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우리 지민이를 친목 도모자리에 초대해주셔서 너무 영광스럽고 기쁘지만, 무척이나 함께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요.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서 그때는 언제든 나가기로….”

“아까 후배님은 없다 던데요?”



 하도윤이 지민을 눈짓했다. 매니저의 웃는 미소에 약간의 정적이 깃들었다. 이 놈, 이미 쉬는 시간에 이미 밑 작업을 쳐놨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매니저는 재빨리 입을 또 털었다.



“아아 그게, 지민이가 아니라 다른 멤버 스케줄이 있어서 말입니다. 제가 같이 참석할 수가 없으니. 매니저의 본분이 언제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티스트를 소중히 챙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음주가무는 아직 어린 나이기도 하고.”

“뭐 어떻습니까. 단순한 저녁식사고, 성인인데.”



 하도윤이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러더니 매니저가 입을 열기 전에 냉큼 지민 쪽으로 질문을 던졌다.



“후배님은 어때요.”

“저요?”



 고민이 된다. 연예계에서 처음으로 생긴 인연. 게다가 하도윤과 친한 인맥을 쌓는다면 팀의 인지도에도 도움이 될 거다. 또한 윤기가 도와준 게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쌓은 커리어다. 지민이 매니저를 보니, 매니저는 미약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서 더 팀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윤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저 혼자도 할 수 있어요, 형. 다녀올게요.”

“제가 잘 챙겨줄 테니 걱정 마세요.”



 하도윤이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하하…네, 그럼…. 매니저는 미소를 유지한 채 속으로 생각했다. 비상경보 발령, 비상경보 발령. 이 새끼 날도둑놈이네. 마지막 담보를 위해 이번만큼은 앞서서 그가 말했다.



“회식 장소 말해주시면 그쪽으로 지민이 태워갈게요. 그거까지는 시간이 있어서.”



 사장에게 연락해야 할 내용이 많다.








 매니저와 회식장소로 가는 차 안. 매니저는 귀청이 떨어지도록 주의 문구를 날렸다. 절대 술 많이 마시면 안 되고, 30분마다 한 번씩 형한테 문자 보내. 없으면 바로 사람 보낼 테니까. 알았지, 지민아. 막 웃고 잘해준다고 다 좋은 사람들이 아냐. 형이 이 바닥을 얼마나 굴러봤는데. 알지? 웃는 쓰레기들 제일 많이 걸어 다니는 곳이 바로 여기인데. 국민남편이라는 놈이 불륜을 하는 곳이라고. 절대! 절대! 하도윤을 믿으면 안 된다. 속이 시커멓게 보여. 그때 너 친구도 9살이나 많은 미친놈이 작업 건다며.


 지민은 흔들 인형처럼 네, 네 대답하다 마지막에선 살짝 수정을 해주었다. 딱히 작업이 아니었다고 했…. 그거나 그거나야. 단호한 매니저에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데자뷰를 겪고 있는 것만 같다. 처음 스폰이라며 윤기를 만나러 갔을 때 사장님이 이러셨었는데. 쏟아지는 잔소리와 함께 차가 달리니, 회식 장소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장소는 평범한 삼겹살 집이었다. 매니저가 안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 탁 트여있고 어두컴컴한 곳은 아니니까. 지민은 매니저에게 걱정 붙들어두라며 당당히 가슴팍을 열어 보였다. 형 걱정 마세요. 문자 꼬박꼬박 보낼게요. 매니저는 시름 어린 눈으로 지민을 보며 믿겠다고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매니저가 자리에서 떠나자마자 뒤이어 도착한 하도윤이 어김없이 지민에게 다가왔다. 우리 이쪽으로 가면 돼요. 그들이 앉은 테이블은 총 3명이었다. 지민과 하도윤, 그리고 피디. 하도윤은 익숙하게 회식 분위기를 주도했다. 모두 잘 드세요. 제가 쏘는 거니까.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머지않아 각 테이블마다 선홍 빛의 질 좋은 고기들이 세팅 되어 나왔다.



“후배님 삼겹살 좋아해?”

“네! 엄청 좋아해요.”

“잘됐네. 술은? 싫으면 사이다 마셔도 돼요.”



 하도윤이 메뉴판을 보며 권했다. 지민은 고민했다. 매니저 형도 귀가 닳도록 경계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하려는 때였다.



“에이, 아직 어린데 벌써부터 술맛을 알면 어떡해. 큰일이지.”



 피디가 껄껄 웃었다. 그의 멘트에는 요새 지민을 가장 자극하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어린데. 모두 그 놈의 나이 때문에 민윤기는 지민을 만날 때마다 어린 취급을 하고, 연애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너처럼 어린 애랑 뭘 하니. 그런 생각하면 혼난다. 순간적으로 욱했다. 지민이 호기롭게 외쳤다.



“저 많이는 안 마셔봤는데, 약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저도 술 마실 수 있어요.”



 아이구, 무리하진 말아요. 피디가 푸근한 옆집 아저씨처럼 말했다. 하도윤은 의미 모를 눈빛으로 지민을 보더니, 곧 알겠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먹기 힘들면 말해요. 사이다로 바꿔줄게요. 지민은 승부욕에 불타는 눈으로 호언장담 했다. 걱정 마세요.


 회식은 시끄럽고, 웃음이 쉽게 넘쳤고, 비어가는 술병도 넘쳐났다. 술이 마법의 물약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지민은 그 날 처음 알았다. 이게 뭔 맛이지. 너무 쓴데. 그러나 술잔을 하나 둘 비워내는 게 뭔가 멋있어 보였다. 지민은 첫 잔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으며 패기 있는 동작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오우, 지민씨 잘 마시네요. 피디의 칭찬이 불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지민은 어느덧 흐물거리는 몸동작과 함께 말랑한 눈웃음을 아무에게나 선 보이고 있었다.



“후배님 괜찮아요?”

“네에! 괜찮습니다아…!”



 지민이 충성! 외치며 경례를 했다.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그러더니 또 혼자 배시시 웃는다. 어느 샌가 피디도 이미 자리를 떠나있었다.



“긍데 선배님 왜 계속 춤을 추고 계세여? 헤드뱅잉…중이신 거예요? 촬여엉?”

“후배님이 헤드뱅잉 중이에요.”



 하도윤이 흔들거리는 지민의 뒷목을 붙잡아주었다. 손가락에 닿는 선이 얇다. 그에 지민이 헤롱거린다. 선배님 이제 춤을 안 추시네요…. 하도윤은 어이가 없고 귀여워서 웃고 말았다. 다른 놈들이 술에 꼴아 개념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 늘 자리를 먼저 떠나던 그였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보자마자 흥미가 돋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무방비할 줄은 몰랐다. 아니면 아예 자신을 신경도 안 쓰는 쪽이거나. 술에 찌들을 때까지 마시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도윤은 지민의 상태를 체크하고는 멀쩡해 보이는 스태프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계산해요. 먼저 갑니다.



“후배님 일어나 봐요.”

“네, 형니임…! 제가 혼자 일어날 수 이써요.”

“혼자 일어나긴.”



 지민은 곧 죽어도 혼자 할 수 있다며 끙끙거리다가, 결국 하도윤의 어깨에 반쯤 걸쳐진 채 일어났다. 실제로 눈앞이 빙빙 돌고 있었다. 멤버들과 마실 때조차 이 지경이 된 적은 없었다. 회식이란 무서운 곳이었다.



“후배님, 숙소 위치 말해줄래요?”

“숙소…숙소 앞에는 찾아오지 마세여, 여러분. 거기 계쏘옥, 계시며느은 주민신고가 들어와요….”

“후배님, 지민씨.”

“네, 혀엉….”



 깜찍하게 바뀐 호칭에 하도윤이 어깨동무를 한 채 걷다 말고 지민을 보았다. 인사불성의 지민은 평소 가장 많이 부르는 호칭을 썼을 뿐이다. 멤버 형, 매니저 형. 하도윤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물고기를 낚은 어부처럼 태도를 돌변했다.



“어, 그래. 지민아 정신 좀 차려 봐. 집은 가야지?”

“네에….”



 지민이 눈 못 뜬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갈게요, 갈래요. 뺨은 취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꿀인 줄 알고 술을 흡수한 복숭아다. 하도윤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렇게 꼴아도 귀여운 애는 처음 보네.



“…지민아, 형은 오늘 정말 소소한 것만 원했거든.”



 그 이상을 보여주면 어떡하니. 시험 볼 생각도 없는데 시험을 주네. 하도윤은 맹세코 오늘 술 자리를 통해 번호교환이나 하고,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게 목표였을 뿐이다.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한 입장으로서, 뭐든 빠른 관계에 조금 환멸이 난 상태였다. 오랜만에 보는 깨끗한 동경과 지민의 넘치는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술이라도 좀 깬 다음 지민의 회사에 연락해야겠다. 지민아 형한테 더 매달려. 하도윤이 지민을 더욱 당겨 허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지민이 맥없이 안긴 채 딸려간다.



“형니임. 길도 춤을 춰요….”

“응, 그래 그래.”



 길에 댄 차에 도착해 뒷좌석 문을 열고 지민을 눕히려는 순간이었다. 어떤 커다란 손이 하도윤의 어깨를 잡아챘다. 응? 하도윤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트를 입은 남성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머리를 뒤로 넘긴 세팅과 명품 수트는 싸인 해달라며 붙는 팬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성의 얼굴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특히나 음영이 진 눈빛은 하도윤을 금방이라도 해칠 만큼 위협적이었다. 저도 모르게 하도윤이 움찔했다.



“…뭡니까?”

“어딜 데려가려고.”



 윤기가 지민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는 눌러 내리 참는듯한 표정이었다. 하도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답게, 차분히 질문부터 했다.



“누구신데 이러십니까.”



 윤기는 잠깐 침묵했다. 곧이어 거침없이 그의 입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데려가려는 애 보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