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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럭키 스트라이크 12

by 토페 posted Mar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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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Pentatonix - Can’t Sleep Love>












 지민은 손꼽아 정국의 휴일만을 기다렸다. 공사장 아르바이트의 대타를 구할 수는 없었고, 지민과 한 약속이라 정국은 술집 아르바이트 대타까지 구했다. 주말까지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뛰는 정국의 부탁에 매니저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여태 정국은 아르바이트 빠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낯선 부탁에 머뭇거리는 정국에 매니저는 이내 흔쾌히 허락했다. 잘 쉬고 오라며 어깨까지도 두들겨주었다.



“왔어요.”

“전정국!”



 정국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민이 깡총 뛰어 달려왔다. 맑게 웃으며 정국이 신발을 채 제대로 벗기도 전에 집안으로 손을 잡고 이끌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요. 천천히 가요.”

“안돼. 시간 없어. 빨리 와.”



 지민은 이미 옷을 빼입은 상태였다. 정국이 선물했던 셔츠에 스크래치가 난 청바지를 매치해 입었다. 머리까지 평소보다 손질한 티가 난다. 외출 준비는 완벽하게 끝나있었다. 지민이 쇼핑백을 들고 오더니 정국의 가슴팍에 안겨주었다.



“자 이걸로 갈아입고 와.”

“…이게 뭐예요?”

“나 환불하고 왔잖아. 거기서 줬어. 싸가지 없게 행동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거. 자필 편지까지 써줬어! 너한테 미안하대. 스스로 아주 크게 반성하고 있더라구. 자.”



 지민이 쇼핑백 안을 가리키자 정국은 쇼핑백 안을 뒤져 편지를 꺼내들었다. 죄송합니다 글씨가 에이포 용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흡사 고등학교시절 지독하게 혼나 울면서 써서 교무실에 내는 반성문 꼴이었다. 세상 사는 눈치가 빠른 정국은 의심 어린 눈으로 지민을 쳐다보았다. 이런걸 자발적으로 쓸만한 곳이 아니었는데. 강자는 약자를 누른다. 그런 콧대 높은 가게는 외부의 압력이 없는 한 먼저 굽히지 않는다. 세상만사에 퍼진 사실에서 정국은 약자였고, 가게는 강자였다.

 제 발 저린 지민이 움찔하고는 먼저 나섰다.



“나 아무 짓도 안 했거든!? 그냥 가서 환불만 하고 왔어!”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 눈은 좀 어찌하고 말해보지 그래. 아주 의심이 한 가득이거든? 나에 대한 불신이?”



 지민이 투덜거렸다. 아무래도 사실은 숨기는 게 좋겠다. 한판 벌인 현장을 정국이 알았다간 집을 떠나기도 전에 데이트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판단했다.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데이트가 파탄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정국의 구박에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지민은 자신할 수 있었다.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보다 더 개지랄을 떨면 떨었지, 더 적게 떨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은 너무 양반이었다. 고작 옷만 찢고 살벌하게 노려보기만했다. 너무 착해, 천사였지, 천사. 사랑을 하면 사람이 순해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정국은 편지를 훑고 접은다음 지민을 흘끔 보고는 가볍게 말했다.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네요.”

“뭐? 너 지금 그 점원 편드는 거야?”

“스스로 사과도 하고 선물도 줬다면서요.”

“야, 이건…!”



 지민은 도톰한 입술을 뗐다 붙이며 웅얼웅얼했다. 말하고는 싶은데, 분위기는 망치고 싶지 않고. 전진도 불가하고 후진도 불가하다. 미묘하게 지민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가장 기분 나쁜 건 따로 있다. 남의 편을 드는 정국은 싫다. 정국은 입술만 우물거리는 지민을 지켜보다 작게 웃으며 지민의 머리를 헤집었다. 지민의 추측과 다르게 정국은 꽤나 후련했다. 익숙함의 정도는 달라도 통증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뭘 숨겨요. 박지민씨 그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거짓말도 못하면서 괜히 연기하지 말아요.”

“씨, 야 난 너랑 한 약속 지키려고 했어.”

“약속 생각하긴 했어요?”

“엄청 했거든? 내가 그래서 반만 날뛰고 왔다구. 넌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교양 있게 말했는데.”

“다음에 거기 가게 다시 가도 돼요?”

“아니! 그건 안돼.”



 지민이 잽싸게 말을 막았다. 정국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다. 박지민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가진 건 깡밖에 없으면서, 무대포로 찾아가 일을 처리하고 온 걸 보면. 정국의 속마음을 모르는 지민은 화제를 바꿔 정국에게 옷을 다시 떠밀었다.



“이거 어서 입어. 우리 시간 없어서 그런 이야기 못해.”

“왜요, 영화라도 봐요?”

“아니, 더 쩌는 거 보러 갈 거야.”

“그게 뭔데요.”

“기다려봐.”



 지민이 방에 널부러져 있는 종이 하나를 주워왔다. 짜잔! 상기된 얼굴로 지민이 종이 안을 턱 가리켰다.


「지역 경제발전 기념 폭죽 축제! 별의 공연을 보러 오세요!」


 화려한 문구보다 더 화려한 건 기대를 한아름 품은 지민의 얼굴이었다. 종이는 몇 주 전 정국이 가져온 음식 봉투에 끼어있던 전단지였다. 정국이 버리려 쌓아놓았던 종이뭉치에서 전단지를 발견한 지민은 본 순간 꼭 이 축제에 가야한다는 결심이 번쩍 섰다. 정국과 계속 붙어다닌다는 점이 좋았다. 일단 축제라는 점이 지민을 들뜨게 만들었다.



“재밌겠지! 우리 데이트로 딱이야. 이거 가자. 좋지?”

“나쁘지 않네요.”



 정국은 지금에서야 이해했다. 왜 지민이 그토록 오늘이어야만한다 노래를 부르고, 모든 일을 번갯불에 콩 볶듯 처리했는지. 덧붙여 대타 허락을 구할 때 술집사장 표정이 못내 어두웠는 지도 깨달았다. 허락은 내려도 부족한 일손이 걱정된 것이다. 전단지를 팔락팔락 흔든 지민이 정국을 재촉했다.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늦게 가면 폭죽 볼 자리도 없대. 빨리 준비해!”

“알았어요.”

“입고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왜요? 같이 나가요. 데이트라면서요.”

“…정말? 벌써? 너 벗은 몸 축제 끝나고 집에 와서 보려고 했는데…우리 그러면 축제 못가지 않을까?”



 지민이 프시시 엉큼한 미소를 보냈다. 정국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런 해맑은 얼굴에서 시커먼 속이 보일 수 있냔 말이다. 정국은 말없이 지민의 등을 한손으로 쭉 밀었다. 한손에도 지민이 어어, 하며 여지없이 밀려나갔다.



“뭐야! 같이 나가자며!”

“됐으니까 나가요. 나가서 기다려요.”



 지민은 몇 시간 뒤 두고보자며 우스운 선전포고를 마지막으로 떠밀려 내보내졌다. 정국은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자마자 눈치챘다. 같은 반팔 하얀 셔츠. 디자인은 조금 달랐지만 언뜻 보면 똑같은 스타일이다. 커플룩이었다. 다소 귀여운 준비에 얕은 웃음을 내비춘 정국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지민은 전단지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지민씨.”



 지민이 고개를 든다. 그러더니 정국을 보고 땡그랗게 커진 눈으로 입을 떡 벌렸다.



“와…너 너무 잘생겼다.”

“가요.”

“진짜 잘생겼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어! 역시 내 전정국이야. 나보고 웃어봐. 웃으면 더 잘생겼잖아. 웃어봐, 응?”

“버스정류장까지 놓고 가기 전에 빨리 와요.”



 정국은 계속 웃어보라는 지민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걸었다. 지민이 촐랑촐랑 따라걸으며 한번만 웃으면 오늘 밤은 봐줄 수 있다는 헛소리를 동반해 웃으라 재촉했다. 이내 안 먹히는 게 분한지 손을 꽉 붙잡고 손바닥을 전투적으로 간지럽힌다. 나폴나폴 향기로운 오메가의 향이 덩달아 애교를 부렸다.



“얼굴 닳아? 안 닳잖아. 내가 당장 잡아먹겠다는 것도 아니, 어, 웃었다! 웃었어!”

“갑시다, 그냥.”



 실소를 흘린 정국은 간지럼 피우는 작은 손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았다. 지민이 이건 편법이라며 옆에서 불만족스럽게 투정부린다. 그게 귀여워 정국은 설핏 웃었다. 합의 하에 이루어진 데이트의 시작은 무난했다.











 축제는 두시간전부터 인산인해였다. 공터는 사람만큼이나 돈이 빠져나가는 구석도 많았다. 노상점들과 일회용 카메라, 야광봉. 한쪽에서는 다트를 던지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장난감 물고기 뜨기를 하고 있었다. 정국은 다 돈귀신이라며 혀를 쯧쯧 찼다. 반면 지민은 별 먹은 눈빛을 빛내더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쏘다녔다. 지민은 직접 걸어 다니는 축제가 너무나도 신기했다. 매번 VIP자리에 앉아 즐기는 행사는 적당히 박수치고, 끈 자르고, 얼굴만 비추다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행사가 시작되면 초반만을 즐기다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는 차에 몸을 싣고 떠났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걸 그동안 안 했단 말이야. 지민은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포장마차에서 오뎅부터 손에 쥐고 정국을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올려다보았다. 이거요? 오뎅? 물주 정국은 군말 없이 가격을 내고 오뎅을 지민의 입에 물려주었다.



“나 이런 거 처음 먹는데 진짜 맛있다.”

“부잣집에 살았다면서요. 이런 것도 안 사줬…아니에요. 맛있게 드세요.”

“너도 먹을래?”



 지민이 먹고있는 길쭉한 오뎅을 내밀었다. 케찹과 머스타드 소스가 범벅된 통통한 오뎅은 입맛을 돋우는 자태를 자랑했다.



“됐어요. 박지민씨 드세요.”



 이런게 바로 자식 둔 마음일까…. 자식은커녕 스물 중반인 정국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지민에게 양보했다. 지민은 맛있는데 왜 안 먹냐며 몇 차례 정국에게 오뎅을 들이댔다. 아 됐다니까요. 정국이 밀치자 눈을 좁히고는 오뎅을 쪽쪽 빨았다.



“그래, 먹지마라. 나 혼자 다 먹을꺼다.”



 기름 탓에 도톰한 입술이 번들거렸다. 유독 톡 튀어나온 입술은 분홍빛이었다. 일순 정국은 흠칫했다. 왜 하필 오뎅은 살색이란 말인가. 길쭉한 오뎅에, 케찹과 머스타드가 범벅된 입술로 무언가를 연상한 정국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혼자 시작된 망상은 발갛게 달아올라 헐떡이는 숨을 내뱉는 지민까지 진도를 쫙쫙 뺐다. 정국은 급히 뭉게뭉게 피어나는 망상을 쫓아냈다. 이 사람은 진짜 이렇게 아무데서나. 집에서만 섹스하자 덤비더니 이제는 밖이야? 정국이 주변의 눈치를 보고 지민의 귀에 속닥거렸다.



“박지민씨, 여기 밖이거든요? 그런다고 안 넘어가요. 하지마세요.”

“뭘? 뭘 하지 마.”

“아 그거요.”



정국이 미간을 좁혔다. 손으로 오뎅을 가리키는데, 반대로 지민이 얼척 없다는 듯 오뎅을 입에서 뺐다.



“오뎅이 뭐.”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 떼지 말아요.”

“아니 내가 뭘 했는데!”

“지금 하고 있잖아요.”

“야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거 진짜 많은데 다 참고 있거든? 사람 억울하게 만드네, 이게.”



지민은 두 입 밖에 못 먹은 오뎅을 훑었다. 오뎅이 뭘 어쨌는데. 아무리 쳐다봐도 이상한 점이 없는데, 정국은 여전히 오뎅을 보고 있었다. 고민하던 지민이 아, 했다. 역시 그건가.



“오뎅값 때문에 그래? 치 다른 거 그럼 덜 먹으면 되잖아.”

“…….”

“안 먹는다니까?”



정국은 오뎅이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했다. 병신아, 날 보고 뭘 생각했냐.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박지민은 연기가 아닌, 실생활 거짓말을 못 친다.



“어? 너 얼굴 또 열 올라.”

“…괜찮아요.”

“요즘 계속 그랬잖아. 지난번에 잘 때도 거친 숨 쉬고.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뭐 이상 있는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요. 멀쩡해요.”



정국은 오뎅을 빨리 먹어 치워버리라 지민을 재촉했다. 지민은 씹어먹을 듯 오뎅을 노려보는 정국에 고개를 갸웃했다. 쟤 오뎅 싫어하나. 고민하던 지민이 나름 귀엽다는 듯 정국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너 편식해?”

“하, 뭔 그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해요. 빚쟁이가 음식 편식하는 거 봤어요?”

“오뎅 지금 싫어하잖아.”

“그건…!”

“편식하면 못 써. 이제보니 이거 순 꼬마네.”



지민이 주사맞기 싫어하는 아이 타이르듯 정국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뭐하는 거예요!”



정국이 기겁하며 손을 뿌리쳤다. 지민은 그럼에도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실실 웃으며 놀렸다.



“또 뭐 싫어해? 또 싫어하는 거 있어? 그럼 너 쓴 거 먹고 사탕도 먹어?”

“안 먹을거면 그냥 내놔요. 내가 다 먹게.”

“아 기다려봐. 먹을 거야.”



데이트 상대가 싫어한다니 지민은 착실히 오뎅을 해치웠다. 느리게 먹으며 샐샐 웃자 정국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아예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 이어 목까지 붉게 물든다. 중간중간 지민이 다 먹었나 확인하며 쳐다보는 도중 일그러진 표정에서 오뎅을 잡아 뽑아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싶단 기색이 역력했다.



“됐지?”

“네.”



오뎅이 사라지자 건강한 혈색으로 돌아온 정국은 그제서야 지민을 쳐다볼 수 있었다.



“먹을 거 말고 다른 건 돈 써도 괜찮아?”

“…다른 먹을 거도 괜찮아요. 오뎅만 아니면.”

“어, 그런데 예전에 너 오뎅국은 잘 먹지 않았나? 그때 술집 사장이 포장해준 거 있었잖….”

“배 안고파요? 저거 먹으러 가요.”



 정국이 지민의 손을 붙들고 몰려있는 사람들 틈으로 파고 들었다. 닭꼬치, 솜사탕, 레모네이드. 경쟁이라도 하듯 지민에게 몽땅 들려주고 먹으라 일렀다. 지민은 신기하다는 듯 정국을 바라보다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며 정국의 입에도 음식들을 들이밀었다. 한참을 줄줄이 이어선 포장마차 사이를 건너다니며 배를 채우자 지민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정국아 우리 이거 해보자!”



 지민이 한창 다트를 던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석연찮은 정국은 지민 모르게 입맛을 쩝 다셨다. 장사꾼은 전부 사기꾼이다. 분명 함정을 설치해놓고 상품을 가져갈 수 없도록 꾀를 쓸 것이다. 뻔히 알고 있었지만, 정국은 얌전히 지민이 이끄는대로 딸려가주었다. 오늘은 지민이 선물이라 주장한 날이었다.



“두 사람이요.”

“백점은 티비, 구십점은 솜이불세트, 칠십점은 휴지랑 라면! 돌~리고, 돌~리고!”



 지민이 눈을 반짝거렸다. 솜이불이 탐난다. 혼자 놀 때 푹신한 게 좋은데. 정국과 살을 붙이고 잘땐 상관없지만, 정국이 일을 나가고 집에서 뒹굴거릴 때 불편했다. 살던 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가구는 푹신한 이불과 침대였다.



“정국아, 이불. 이불 알지? 2등해.”

“저 다트해본 적 없는데. 박지민씨 잘하는 거 아니었어요?”

“난 이런 거 직접해본 적 없는데?”

“그럼 이거 왜 하자고 했어요?”

“재미있어 보여서.”



 재미를 위해 돈 쓴지가 언제더라. 없는 거 같다. 생각하며 정국은 먼저 다트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며 유심히 살폈다. 다트의 룰은 간단했다. 한사람당 주어진 열 번의 기회안에 점수를 따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수를 내는 게 쉽지 않은지 애를 먹고 있다. 상품을 따는 목적보다는 축제에 나와 웃고 즐긴다는 쪽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정국은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고 과녁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면 할 만 할 거 같기도 한데. 거리를 가늠하듯 눈이 좁혀진다. 정국이 다트를 날렸다.



“헐, 대박. 너 어디서 해봤어?”



 9점이다. 지민이 거의 과녁 정중안에 꽂히듯 들어간 다트를 계속 쳐다보았다. 정국은 스스로 던지고도 얼떨떨했다. 덩달아 자신감을 얻은 지민이 다트를 던졌다. 2점. 지민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국은 풉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물었다.



“…못 본 걸로 해줄까요?”

“야 이건 손이 미끄러진 거거든.”

“여기 가운데를 잡고 던지면 좀 쉬워요. 이렇게요.”



 정국이 시범을 보였다. 이번엔 10점이었다. 이렇게? 지민은 정국의 자세를 따라 다트를 쐈다. 아까보다는 좀 나았다. 4점. 지민은 오기가 생겼다. 아니, 전정국은 잘 되는데 왜 난 안 돼? 지민이 다트를 연속해서 던졌다. 쏙쏙 꽂히는 다트는 돋보적으로 눈에 튀었다.



“2점! 5점! 3점! 이야, 이쪽에 신의 손이 계셨네!”



장사꾼이 유난히 튀는 지민의 점수에 시선이 몰렸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와르르 터졌다. 단박에 하얀 지민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손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서비스로 야광팔찌 세트 드리겠습니다!”



 날, 날 놀려? 정국은 파르르 떠는 지민의 손을 붙잡았다. 이 따위 다트게임 엎어버리겠다 성질을 부리려던 지민은 정국의 시선에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사기를 쓴 게 분명해. 내가 이렇게 못할 리가 없는데. 지민이 꿍얼거렸다. 정국은 튀어나온 입술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악, 뭐야!”

“그래도 잘했어요. 상품 탔잖아요.”

“씨이….”

“옆에서 봐봐요.”



 정국은 과녁을 향해 매처럼 눈을 빛냈다. 10점. 9점. 10점. 8점. 10점. 지민이 던질 때와 마찬가지로 시선이 쏠렸다. 이번에는 장사꾼이 뜨악한 얼굴이었다. 뭐, 뭐저렇게 잘 던져? 사람들도 감탄의 박수를 쳤다. 지민은 순식간에 94점을 찍은 정국에 입을 떡 벌렸다. 얘는 못하는 게 뭐야, 대체. 시선의 중심에서 정국이 씨익 웃었다. 시원하게 웃는 잘생긴 얼굴에 뭇 여성들이 얼굴을 붉혔다. 멋들어진 미소와 달리 정국은 시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원에 솜이불을 건지다니. 대횡재다. 올겨울에는 집에 붙은 사람이 늘어 이불을 새로 사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상품, 이불이죠? 저거 가져가면 되나요?”

“아 예, 예….”



 장사꾼은 장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털린 상품에 씁쓰름한 안색을 미처 감추지 못했다. 정국이 이불을 챙겨들고 다트 천막 안에서 나왔다. 지민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정국의 뒤를 쫓았다. 전정국이 내 꺼니까 전정국이 한 일이 곧 내 일이지 뭐.



“손 줘봐.”

“왜요?”

“넌 맨날 내가 뭐 하자고 하면 왜냐고 묻더라. 수상한 짓 안 할테니까 어서 줘봐.”



지민이 이불을 들지 않은 정국의 손을 가져가 야광팔찌를 끼워넣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목에도 야광팔찌를 끼워넣고 헤죽 웃었다. 손깍지를 엮고 맞잡은 손을 앞뒤로 붕붕 흔들었다.



“반지 대신으로 딱이다. 그치?”



정국은 뿌듯하게 하얀색 야광팔찌가 채워진 팔목을 번갈아보는 지민을 보고있자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너랑 내가 아무 사이도 아닌데 반지는 무슨 반지냐 정정해주는 대신 시간을 일러주었다. 곧 불꽃놀이 시작해요.









 축제의 메인이벤트 시간이 임박하니 사람들은 더욱 몰려들었다. 지민은 사람의 파도를 헤집고 명당을 찾겠다며 뽈뽈 돌아다녔다. 정국은 솜이불을 들고 지민의 뒤를 따라다녔다. 지민이 앞서며 걷다 솜이불을 들고있는 정국의 팔뚝에 돋아난 핏줄에 신경이 쓰여 자신이 들겠다 주장했지만 정국은 들은척도 안했다. 됐으니까 자리 찾아요. 덧붙여 걱정도 아끼지 않았다.



“천천히 가요. 넘어지면 얼굴 깨져요. 여기서는 빈대떡보다 납작해져요.”

“너야말로 잘 따라와. 지난번처럼 마트에서 나 잃고 길 헤매지 말구. 그런데 너 폭죽 봐본 적 있어?”

“아르바이트하다 티비에서 해주는 거 봤어요. 새해마다 해주잖아요.”

“실제로는?”

“없어요.”

“그럼 같이 하는 거 내가 처음이야?”



 지민은 입이 귀에 걸렸다. 정국도 자신의 기분과 같을까 궁금했다. 처음이라는 게, 둘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거 같은 게, 손만 잡고 있어도 좋은 게. 포실포실 웃으며 지민이 정국을 빤히 쳐다봐왔다.


 보인다, 보여. 시커먼 속이 보인다. 정국은 눈을 깜빡거리는 지민이 옆구리까지 쿡쿡 찔러오기 전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긍정한다면 다른 것도 처음이냐 줄줄이 물어올 것만 같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낯부끄러움이 차지했다. 모르는 척 유연하게 말을 돌렸다.



“뭐해요. 자리 더 안 찾아요? 명당자리는 이쪽이라면서요.”

“아 전정국 눈치 더럽게 없어.”



 무드 좀 잡아보려고 했더니 깬다. 지민은 팩 정국의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정국은 틱틱거리는 지민을 보고 솔직하게 말할걸 그랬나, 싶다가도 몇 발자국 걷지도 않고 다시 쪼르르 되돌아온 지민이 손을 잡아오자 새카맣게 잊었다.



“저쪽에 사람 없어보인다. 잘 잡고 따라와.”



 지민은 분주히 정국을 끌고 뛰듯 걸었다. 자리는 명당이었다. 사람도 적당히 없었고, 머리만 들면 검은 밤하늘이 펼쳐졌다. 달도 별도 뜨지 않는 밤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민은 옆에 앉은 정국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요.”

“내 허리에 팔 둘러.”

“……?”

“아 데이트잖아! 원래 이런 건 기본옵션 아냐? 하나하나 내가 다 일러줘야 돼? 너 연애해본 적 없지.”



 본인도 없었지만 지민은 당당하게 추궁했다. 정국은 순순히 대답했다.



“안 했어요. 귀찮아서.”



 정국은 연애할 의지도, 연애해본 적도, 연애를 안 한다고 해서 꿀린다거나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 잘생긴 얼굴 낭비야, 낭비. 주변에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정국은 일관된 생각을 유지했다. 연애는 돈낭비다. 그 퍽퍽한 관념을 말하면 사람들은 재미없는 삶이라 기겁했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신은 연애를 몇 번 해봤다느니, 몇 번이나 잠자리를 가졌다느니. 정국은 주변 사람들이 연애에 관해 뭐라 떠들든 상관없었다. 남은 남이고 자신은 자신이다. 누가 왈가왈부 해도 신경 안 쓰던 정국은 이상하게 지민의 입에서 연애 이야기가 튀어나오니 거슬렸다.



“그럼 박지민씨는 연애 많이 해봤어요? 그렇게 잘 알게?”

“나? 나는 작업 엄청 많이 받았어. 내가 안 한 거야.”

“뭐예요. 결론적으로 박지민씨도 없다는 거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하는 건지는 다 알지! 나 꼬셔보겠다고 덤벼든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지민은 대충 태형을 떠올렸다. 원활한 약혼이 진행되고 있다는 쇼윈도식 데이트는 몇 번 있었다. 결혼에서 도망치기 전 가장 최근 데이트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이었다. 바다가재요리는 돌을 씹는 것 같았고,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물뿐인 유람선은 차라리 바다에 뛰어드는 게 더 재미있어 보였다. 허리에 팔을 두르며 은근슬쩍 알파 페로몬으로 툭툭 건드는 태형이 무엇보다 짜증났다. 살벌하게 째려보며 안 치우면 이 가재 집게발로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며 난동을 피웠다. 파국으로 치달은 외출이었지만, 오메가와 알파 둘이고 약혼까지 되어있는 사이니 어찌됐건 데이트였다.

 정국은 은근히 기분이 불쾌했다. 까끌거리는 불씨가 가슴속에서 타닥거렸다. 그저 불쾌했다.



“예전에 말한 그…김태형? 그 사람이랑요?”

“어 기억하고 있네.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그 사람 싫다면서요. 싫다는 사람이랑 데이트를 왜 해요? 웃기네.”

“사정이 있었거든?”

“그럼, 그 사람이랑 키스도 하고 그랬어요? 사귀지도 않는데?”



 정국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는 건 난데 원래 다른 사람한테도 막 들이대고 다녀요? 바로 연이어 드는 의문이 스스로도 너무 옹졸한 것 같아서 정국은 괜스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척 고개를 들었다. 지민은 키스라는 단어에 지난번 정국과 했던 엉망진창 키스를 떠올렸다. 입술만 들이박고 아무것도 못 하다니. 아직도 쪽팔렸다. 인생에서 창피한 순간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지민은 평소 생각했던 본심을 술술 드러냈다.



“에이씨, 내가 해봤으면 그때 그렇게 못했겠냐! 그때 일 꺼내지 마!”

“…그게 첫키스였어요?”



정국이 멈칫하며 지민을 돌아보았다. 불쾌했던 기분이 갑자기 눈 녹듯 사라졌다. 불퉁함이 섞인 말투도 사라져있다. 그러나 지민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느라 정국의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억울함을 성토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래서 후회중이다! 김태형이 하자고 했을 때 해야 했는데! 쩌는 테크닉을 배워왔어야 했어!”



풀렸던 기분이 다시 아래로 처박혔다. 정국이 지민을 따라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요? 사귀지도 않는데 하겠다고요? 미쳤어요?!”

“야 걔 다른 사람들이랑 많이 해서 키스 잘한단 말이야. 이왕 배우려면 잘하는 사람한테 배워야지!”

“무슨 키스 자격증이라도 따요? 키스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끼리 해야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왜 해요, 하길! 박지민씨 그거 엄청 잘못된 생각인 거 알아요? 무슨 키스를 잘한다고 해서 가서 무작정 쪽쪽거리고 있어요?”

“아 됐어. 다음에 너 나랑 할 때는 깜짝 놀랄 거다. 너무 잘해서.”

“지금 그 사람이랑 해오겠다는 거예요? 연습대상 삼아서?”

“어.”



 속에서 불이 났다. 뭐? 가서 키스를 배워오겠다고? 나 좋아한다면서. 밥까지 거부하고 끙끙 앓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해놓고서 다른 사람이랑 키스한단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난리가 난 정국의 속도 모르고 지민이 손가락을 꼽으며 고민하듯 중얼거렸다.



“한 다섯 번쯤 하면 잘하겠지.”

“그딴건 한 번도 안 되거든요? 좀 생각이란 걸 해봐요, 박지민씨. 키스는 그런 도구적인 게 아니라니까요? 사랑하니까 하는 거라고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예? 알겠어요?”

“너 은근히 섬세하다.”

“말 돌리지 마요. 그래서 지금 그 자식이랑 사랑하겠다는 거예요? 키스 배우려고?”

“뭐 어때.”

“아 진짜 더는 못 들어주겠네.”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정국은 충동적으로 내질렀다.



“그럼 차라리 나랑 해요! 내가 알려줄테니까!”



 지민과 정국 사이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민은 제 귀를 의심했다. 커진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방금, 전정국이 키스하자 했다. 언제쯤 넘어와 저런 말을 던질까 수없이 상상을 해봤었는데, 그게 지금 나왔다. 심장은 상상보다 훨씬 더 터질 것 같았다. 정국은 느닷없이 던지고 아차, 했지만 말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누구랑 키스를 하고 온다는 거야. 하물며 사랑까지 하겠단다. 지민이 자그맣게 되물었다.



“…너…방금 나랑 키스한다고 한 거지?”

“그 사람이랑은 하지 말아요. 절대. 만약 입술이 두 개였다고 해도 안 돼요.”

“지금 하자. 지금 하고 싶어. 알려줘 봐.”



 지민은 무작정 정국에게 달려들었다. 분위기는 전체관람가 연극에도 안 나올 만큼 진지함이 없었다. 정국은 다짜고짜 허벅지 위로 올라타려는 지민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냈다. 달달한 향이 확 풍겨오자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지민은 꽥 힘도 쓰지 못하고 밀려 풀밭 위에 나뒹굴 듯 주저앉았다.



“야! 아프잖아!”

“자, 잠깐만요. 지금은 아니에요.”

“아 왜! 하자며!”

“여긴 보는 눈도 많으니까 다음에 해요, 다음에. 공공장소예요 여기.”



지민은 정국을 찌릿 노려보며 이미 주변에서 입술을 겹치고 있는 커플들을 눈짓했다. 저건 키스 아니냐느 듯한 눈초리다. 크흠, 민망해진 정국이 딴청을 피우자 지민은 무릎을 털고 일어나 정국의 옆으로 앉았다.



“씨, 너 그냥 해본 말이지. 나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어? 내가 너 좋아한다고?”



정국은 제발 고백 좀 분위기 있게 해달라 빌고 싶은 지경이었다. 난 왜 갑자기 열이 받아서 내지른 거야. 지민이 눈을 세모꼴로 뜨며 삐쳤다는 신호를 가득 보냈다. 정국은 부랴부랴 뒷수습에 나섰다.



“다음에 좀, 준비가 잘 됐을 때 알려줄게요.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네, 때가 된 거 같으면 진짜 각 잡고 할게요.”



 못미더운 눈길을 계속 보내던 지민은 정국이 무마하듯 허리에 팔을 감아오고서야 이번만 봐준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진짜 약속 했다? 약속 했어? 재차 확인하며 새끼손가락으로 약속까지 걸었다. 엄지손가락이 서로 꾹 닿은 순간이었다.

 펑,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어, 시작한다!”



 누군가 외쳤다. 지민과 정국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하늘에 색색 퍼지는 폭죽은 찬란했다. 별이 없는 유독 검은 하늘에서 폭죽은 훨씬 더 빛이 났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수채화로 물감을 찍어바르듯 활짝 퍼지는 폭죽은 서로 자리를 찾아 어우러들었다. 지민이 호들갑을 떨며 하늘을 손가락으로 짚듯 가리켰다.



“와아, 저거 봐. 정국아. 어! 저거 봐, 저거! 토끼 닮았다! 너다!”



 토끼보다는 꽃에 가까웠다. 여러 가지가 겹친 폭죽은 모양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럼 저건 박지민씨 닮았네요.”

“어떤 거? 어디?”



 정국이 가리킨 것은 혼자 터진 파란색 폭죽이었다. 지민은 실망했다. 저는 기껏 좋은 걸 찾아줬더니, 정국은 가장 크기도 작고 외톨이 같은 폭죽을 가리켰다.



“뭐야, 왜 혼자 있는 거야. 내가 사회에서 왕따라는 거야? 친구도 없고?”

“…대체 왜 생각이 그렇게 튀는 거예요? 그냥 작아서 가리킨 거…아 알았어요. 취소할게요.”

“난 저거 할래.”



 지민이 가리킨 것은 아까 토끼모양 옆에 터진 폭죽이었다. 정국은 픽 웃었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온 마음을 다 내놓고 여기에 사랑이 있다며 보여준다. 지민은 생각을 반영하듯 정국에게 더 붙어왔다. 정국은 손쉽게 알 수 있으면서도 작게 웃으며 부러 물었다.



“왜요? 왜 저걸로 했어요?”

“내 마음이다, 왜. 불만이라도 있어?”

“아니요, 그냥 물어봤어요.”

“근데 폭죽 진짜 이쁘다. 이런 곳에서 보니까 더 이쁜 거 같아.”



 쉴새 없이 터지는 폭죽을 보면서 정국은 지민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팔에 힘을 주어 지민을 좀 더 당겨안았다. 불꽃에 정신을 뺏긴 지민은 그도 모르는 듯 했다. 정국은 하늘대신 옆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수천 개의 별처럼 터지는 폭죽만큼 심장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은 웬일로 얌전히 하늘을 구경하는 지민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다.

 

 종종 미래를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등에 얹혀진 빚더미를 정리하고 나면 나는 무얼할까. 메마른 꿈을 이루고 나면 내겐 무엇이 남을까. 겨우 발을 디딘 값비싼 평범에 한동안 감격은 할 것이다. 그럼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이 남겨진 평범한 삶에서 이제 어떤걸로 웃고 고민하고 진지해질 수 있을까? 두려워 찾아보지 않았던 꿈을 이룬 미래에 새로운 꿈의 색이 칠해졌다. 박지민이 아니라면 몰랐고, 몰랐을 것이다. 아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진 감정에 궁금해할 일도 없었을 터다.


 정국은 그때 일렁이는 여러 감정들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목구멍을 꽉 메어오다, 입밖으로 목소리를 꺼내는 순간 터지는 것을 느꼈다.



“박지민씨 저 좀 봐봐요.”

“응?”



 정신없이 폭죽을 구경하던 지민이 그제서야 정국을 마주보았다. 정국은 불러놓고도 한동안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가슴이 떨렸다.



“뭔데 불러놓고 말을 안해.”



 지민이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감탄 너머로 흐릿하게 전해지는 목소리는 떨림이 담겨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스라히 피고 지는 불꽃들이 하늘에서 펑펑 터졌다.



“…고마워요.”



 지민은 갑자기 얘가 왜이러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뭔 고마운 걸 했나. 지민은 제멋대로지만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분하지만 인정하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자신이 정국에게 보탬이 되는 존재는 아니다. 지민은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나름대로 추측을 해왔다.



“…오늘 내가 돈 많이 안 쓰게 해줘서? 물고기 낚시 하고 싶었는데 참았던 거 눈치 챈 거야?”



 정국은 푸핫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민을 마주보기 힘들 정도로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몰려와 큭큭 웃으며 어리둥절해하는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듯 헤집었다. 뭐야. 왜 웃어. 눈을 뾰족하게 만들며 뭐가 웃긴거냐 따지듯 물어오는데, 그게 또 일렁거리는 가슴속을 행복하게 채워왔다.



“아 왜 웃냐니까.”

“이거 보고 물고기 낚시하러 갈까요?”

“야 말 돌리지마.”



 정국은 짙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지민을 향해 손바닥을 펴 내밀었다.



“손.”

“…너 혹시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손 안 잡고 싶어요? 싫음 말고요.”

“아니! 잡을 거야.”



 지민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을 올렸다. 정국이 흘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기분이 좋아보여, 포기하기로 했다. 뭐 전정국이랑 손 잡았으니까 됐어. 지민은 히히덕거리며 단순명쾌하게 정국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비비적거렸다. 폭죽 예쁘다, 그치? 때마침 축제에서 마련한 특별한 폭죽이 터졌다.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 아래에서 정국이 나직하게 말했다.



“…내년에도 축제 같이 와요.”



 조금씩 물들여진다. 조금씩 번지고 스며든다. 차근차근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찾게 된다. 정국은 꼭꼭 빗장을 잠궈 가려놓았던 감정을 조금은 열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