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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Peanut butter Sandwich>









 축! 신장개업. 지민은 반짝거리는 새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SERENDIPITY

 드디어 오픈했다. 예쁜 간판을 단 꽃집은 오래 전부터 지민의 꿈이었다. 비록 안정된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지금 당장 그만 둘 생각을 없었지만, 이 대리 그 씹새끼가 계속 플러팅 걸어대는 걸 더 참을 생각도 없었다. 약 3달 전 술자리에서 야 이 새끼야 내 엉덩이 한 번만 더 만지면 죽여 버린댔지, 하고 숟가락으로 이 대리를 내리친 건 지금 생각해도 속이 다 시원했다. 물론 다음 주에 이 대리가 알고 보니 사장 아들이다, 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조금 후회했다.


 어쨌든. 사장 아들이 게이라는 소문을 내지 않기로 하고 퇴직금도 많이 받았겠다, 꿈에 그리던 꽃집을 차렸겠다. 앞으로 인생에는 꽃길만이 남아있을 거다.


 세렌디피티의 상권은 아주 좋았다. 엄청난 번화가 도시는 아니지만 동네는 적당히 살만 했고, 주변 상가 사람들도 지민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머, 나 꽃 좋아하는데. 안 그래도 이 동네에 꽃집이 많이 없어서. 근데 사장님이 아주 젊네. 열심히 잘 해봐요. 자주 놀러갈게요. 지민은 특유의 선한 미소와 함께 끄덕였다. 네! 열심히 할 거니까 많이 찾아와 주세요. 서비스로 영양제 같은 것두 더 넣어드릴게요.


 바야흐로 오늘이 정식 오픈 날이다. 지민은 가게 안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손님을 기다렸다. 가게를 열기까지의 우여곡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부동산을 들어가서 너무나도 높은 월세에 좌절하던 날들, 인테리어의 벽에 막혀 우울하던 날들, 화훼 수업에 가서 손이 긁히던 날들. 그 고생들은 끝났으니 웃을 일만 남았다.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헤헤. 혼자서도 웃음이 자꾸만 나와서 지민은 손님이 들어올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줄 거다. 가끔 입구를 흘끔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미어캣마냥 벌떡 일어나 그쪽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준비 됐어요, 예쁘게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그렇게 기다리길 2시간. 아직 아무 손님도 오지 않았다. 아침이라 그런가 봐. 열정이 앞섰다고 생각하며 지민은 점심을 먹고 다시 열심히 기다렸다.


 오후 2시. 아무도 오지 않는다. 왜지? 지민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아직 여기에 가게 생긴 지 몰라서 그런가 봐. 아침 꽃시장에서 가져온 꽃들을 돌보며 기다렸다.


 오후 5시. 아무도 오지 않는다. 슬슬 지민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왤까. 왜지? 점차 불안했지만 아직 퇴근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믿었다.


 오후 7시. 아무도 오지 않는다.



“…….”



 오늘이 월요일이라 그런 걸까. 다들 직장에서 죽어있는 날이라서? 아니면 인류가 나만 남고 모두 멸망해버렸나. 부동산에서는 분명 이곳의 상권이 아주 좋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도 없는 꽃집이 생겨서 좋다고 했다. 그런데 왜? 어떻게 단 한명도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지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야근이다. 오후 9시. 지민은 누구든 제발 한 명만 들어오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밖에 나가서 전단지라도 뿌려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꽃 한 송이씩 주는 이벤트라도….


 마침내 밤 11시. 지민은 털썩 가게 의자에 주저앉았다. 완전히 컴컴해져서 유리창 앞이 보이지도 않는다. 폰을 열어 여러 가지 검색을 했다. 가게 첫날 오픈 손님 0명. 부동산 재계약 방법. 상권 사기. 털썩.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안 오냐구우.”



 다시 회사에 퇴직금 물을 테니 입사시켜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까지 퍼졌을 무렵이다. 그리고 힐끔 시선을 들었을 때. 가게 앞을 기웃거리는 인영이 보인다. 가게가 열렸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손님! 드디어…! 제일 예쁘게 만들어 드려야지. 지민은 쪼르르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이 첫 논님을 향한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아직 장사해요!”



 우울한 오늘을 구원해줄 첫 손님. 손님은 머리를 뒤로 쫙 넘기고 덩치가 무척이나 컸다. 곰을 닮았다. 꼭 보디가드마냥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화색을 보였다.



“그렇습니까? 무척이나 잘 됐네요. 잠시만요.”



 남자가 도로 앞 차로 뛰어간다. 이렇게 외치며.



“형님! 문 열었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누가 나온다. 그 남자 역시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셔츠마저 검은색으로 입은 남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하얗다. 저승사자처럼 창백하다. 그리고 어딘지 아주아주 위험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 우락부락하진 않다. 꼭 그래 마치….



“서육파 큰 형님 장례식에는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직 집안에서 애지중지 자란 도련님 후계자 같은. 불곰 같은 남자가 다행이라며 뒷짐을 지고 머리를 꾸벅 숙였다. 하얀 얼굴의 남자는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는 흥미 없는 표정으로, 정확히는 귀찮은 무표정이었다. 친히 밖으로 마중 나온 지민이 끼기긱 고장 난 로봇처럼 그들을 본다. 첫 손님이 조폭, 아니 마피아, 아니 뭔지 모르겠지만 당장 감옥에 가야할 직업이라니.


 존나 망했다. 오픈 날 첫 손님이 조폭이라니. 이 동네 상권이 망해버린 이유가 있었다. 남고를 나와 대학 4년제에, 회사 생활까지 흔한 20대의 길을 빠르게 겪고 나온 28세 박지민은 당황해 굳어버렸다. 개무섭다. 그냥 오늘 손님은 없는 게 낫겠어. 지민이 슬쩍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조직 도련님과 지민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멈칫한다. 꽃이라고는 장례식장에서 하얀 국화밖에 모를 것 같은 남자다. 그는 지민을 보고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리고는 지민을 아주 뚫어지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날…. 지민이 움찔 떨었다. 뱀에게 걸린 병아리처럼 꼼짝도 못하고 굳어버린다. 서육파의 큰 형님과 내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나. 웬수같은 놈인 걸까. 왜 날 노려보는 거지? 내가 싫어하는 얼굴상인가. 남자는 도무지 지민에게 고정한 시선을 떼지 않을 것 같아서, 지민은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꾸벅 인사했다.



“어, 어서 오세요….”



 지민의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하지. 이때 호객행위라니. 지민은 제 입을 찰싹 때리고 싶었다. 그런데 할 인사가 정말 그거밖에 없었다. 불곰마저 멈춘 남자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련님?”

“…다웅이 넌 안에 있어라. 꽃은 내가 사온다.”

“예? 아 옙.”



 명령 불복종은 사살이라는 것마냥 불곰이 뒷짐을 쥔 채 꾸벅 인사까지 한다. 다녀오십시오! 동시에 지민이 탄식했다. 오 신이시여.


 남자는 지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까이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그가 다가올수록 지민은 저승사자가 제게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첫 가게 오픈, 첫 손님, 그리고 나의 첫 장례식….



“영업합니까?”



 목소리가 밑바닥에 깔리듯 저음이다. 점점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얼굴은 의외로 멀끔했다. 아니, 날카로운 턱선과 예민한 인상이 얼핏 보면 연예인 같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쪼그리며 지민이 고개가 떨어져나가라 대답했다.



“네, 네. 지금 하고 있어요.”



 안 했다간 날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지민은 저승사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납작 수긍했다. 제발 절 때리지만 마세요. 남자는 지민의 얼굴을 아직도 뚫어져라 본다. 정말 내가 서육파의 큰 형님을 죽인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걸까? 덜덜 떠는데, 남자가 돌연 큼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한다. 아! 비킨 시선이 문 쪽을 향한다. 지민은 추측했다.



“들어오세요!”



 문을 안 열어줘서 열이 받은 거다. 지민이 쪼르르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노란 앞치마를 입고 꽃집 안에 선 청년은 노예근성이 깃들기라도 한 것처럼 문까지 친히 열고 남자를 기다렸다. 다행히 그게 정답이었는지 남자는 지민을 노려보는 대신 안쪽으로 들어와 꽃집을 둘러보았다.



“찾으시는 꽃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예.”



 저음으로 대답한 남자는 팔짱을 끼고 꽃집을 둘러본다. 지민은 조용히 멘트를 치고 구석에서 짜그라져 기다렸다. 그는 종종 지민이 있는 곳을 흘끔거리기도 했다. 뭐지. 설명을 하라는 건가. 그러나 차마 남자의 곁에 다정하게 붙어 서서 말을 할 용기가 없다. 어쩌지? 어떡하지? 설명해주다가 말이 꼬이면 한 대 맞는 거 아닌가. 지민이 달달 떨며 서있었다.



“…하얀 국화 꽃 부탁드립니다.”

“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민이 후다닥 꽃 진열장을 열었다. 준비하는 지민을 남자는 대놓고 빤히 쳐다보았다. 노란 앞치마를 입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지민은 남자의 시선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손을 놀렸다.


“얼마나 드릴까요?”



 남자는 잠시 고민한다. 가늠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전부 다.”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나 보다. 정말 위험한 업계다. 지민이 순간 덜덜 떨었다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넵!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조그만 손이 분주하게 신문지에 국화꽃을 옮기며 포장한다. 남자는 그 손도 빤히 바라보았다.



“총 16만원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오픈한 터라 꽃이 많이 없긴 했다. 남자는 카드를 내밀었다. 블랙카드다. 지민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아니 미래에도 못할 그 카드. 부럽다는 생각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불법적인 구조로 모았을 돈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민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제 끝났다! 계산만 무사히 안전하게 넘기면 된다. 퇴직금 탈탈 털어 마련한 가게에 조폭이 오는 건 처음으로 족하다. 내 목숨도 이제 괜찮다. 지민은 정성껏 포장하여 남자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남자가 잠시 가만 꽃다발을 내미는 지민을 바라본다. 눈을 가늘게 좁힌 그는 다시금 큼,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해 꽃다발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불곰처럼 구십도로 꾸벅 인사했다. 인사를 받은 남자가 곧장 뒤돌아 나간다. 노란 앞치마를 꼭 묶은 청년은 안도했다. 휴, 목숨은 건졌다. 그리고 기도했다. 다시는 조폭 도련님이 들리지 않기를.









 신은 죽은 게 분명하다. 도련님은 다음날 바로 또 왔다. 그리고 다다음날도. 다다다음날도. 다다다다음…. 대체 또 누가 죽은 걸까. 저 업계는 정말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죽나 보다. 대한민국에 내가 모르는 살인사건이 이렇게나 많다니. 한국 경찰은 이렇게나 부패했구나. 인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도련님한테 돈을 어마어마하게 받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민은 통탄했다.


 윤기를 볼 때마다 지민은 수십 번도 생각했다. 그냥 차라리 일주일 만에 폐점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좋은 인생 공부를 했다 치면 나쁘지 않다. 아니, 심지어 목숨이 걸려있다. 그러나 폐점 역시 지민의 목숨이 걸려있었다. 퇴직금도 몽땅 털어 넣어서 남은 게 없다. 은행 빚만 가득 떠안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게 뻔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거기다 장사라도 좀 잘 되면 그나마 기분이 나을 텐데, 이놈의 상권은 얼마나 폭삭 망한 건지 손님은 하루에 둘셋 오면 많이 오는 편이었다. 그 둘셋에서 꼭 포함되는 하나가 바로 이 조폭 도련님이다. 지민이 오픈하기 이전 가게가 월매출 억을 찍었다고 한 그 부동산을 기필코 고소하고 말리라 지민은 다짐했다.


 하루치 매상을 죄다 올려주는 도련님은 가게에 오면 항상 꽃을 유심히 이것저것 보았다. 그는 꽤나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하얀 얼굴로 얌전히 꽃을 바라보는 남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지민은 황급히 고개를 탈탈 흔들었다. 아냐! 저 사람은 조직폭력배야! 나 같은 건 하루 만에 죽여 버릴 수도 있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지민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고하기라도 하듯 남자는 늘 국화꽃만 사갔다. 그것도 하얀 색의. 장례식장을 운영하나 하는 의심도 들만치 사간다. 지민은 늘 조용히 남자의 뜻을 받들어 포장을 해주고 결제를 했다.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남자에게 말을 걸 때는 가격을 읊어줄 때뿐이었다. 도련님은 쿨하게 카드를 긁고, 꽃다발을 받고 퇴장한다. 결제하는 동안 지민을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간이 꽤 지나다 보니 지민은 남자가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망한 꽃집에 와서 거의 10일 만에 300만원을 넘게 써줬다. 게다가 데리고 다니는 조직원도 많이 무섭고, 풍기는 분위기도 얼음 같고 좀 살벌하긴 하지만 가게 안에서는 조용하지 않은가. 지민에게 위협적인 말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쿨하게 꽃다발을 받고 등을 돌린다.



“저…손님!”



 지민이 처음으로 남자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조그만 손이 리본을 단 장미를 건넨다. 하얀 장미 꽃다발이다.



“매일 들려주시는데…너무 감사해서요. 이거는 그, 서비스예요.”



 지민이 조금 쑥스럽다는 듯, 약간은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자는 물끄러미 지민을 보더니 작은 손이 내미는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화분에 꽂아두시면 될 거예요.”



 간단한 설명을 해주니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은 진작 서비스를 줘야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잘 받아주는데. 그리고 설명이 끝난 뒤, 남자는 다른 날처럼 나가지 않고 멀뚱멀뚱 서있었다.



“…….”

“…….”



 왜지. 왜 안 가는 거지. 장미를 안 좋아하나? 하얀색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가. 맨날 국화꽃은 하얀 색만 사갔는데. 뭔가 빠뜨린 게 있나. 카드도 돌려줬는데. 포장이 마음에 안 드나. 지민이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다 지레 찔려 먼저 물었다.



“뭐 더 필요하신 거라두….”



 남자는 아주 과묵하다. 그는 머지않아 자켓 주머니 안에서 지갑을 꺼냈다. 명함을 지민에게 내민다.


슈가 캐피탈 사장 민윤기.


 드디어 2주일 만에 지민은 도련님의 이름을 알았다. 도련님이 운영하는 회사는 이름부터 돈세탁을 한다고 떠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걸 나한테 왜…? 두 손으로 명함을 받은 지민이 명함을 한 번, 윤기를 한 번 번갈아 본다.



“가능하다면 사무실 인테리어 장식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네?”

“꽃이 좀 필요합니다.”



 지민은 어버버 명함을 들고 있었다. 금융 회사에서 왜 꽃 인테리어가 필요하지? 


 지민은 너무나도 하기 싫었다. 여기서 깡패와 더 엮일 수는 없다. 인테리어라면 한두 번을 가는 게 아닐 텐데, 가서 움직이는 검은 정장 무리를 본다면 수명이 하루하루 줄어들 거다. 오늘 하루치 매상일, 아니 오픈 뒤 매출 대부분을 다 결제해준 깡패는 고맙긴 했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건 사양이다. 지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민윤기라는 남자는 생각보다 아주 얌전하게 기다려준다. 분위기도 다소 살벌하긴 하지만 무섭게 위협을 하는 목소리도 아니다. 거절한다고 당장 때리진 않을 것 같았다.


 지민이 아주 정중하게, 사회생활적인 부드러운 미소, 그러니까 너무 하고 싶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안타까워하는 뜻을 담아 말하려고 할 때였다.



“도련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오늘은 하도 나오지 않으셔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문을 열고 들어온 불곰에게 윤기가 살기를 담아 말한다. 돌아보는 시선은 칼로 찌르는 것처럼 살벌하다. 아니면 총이거나. 불곰이 당황하며 크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정말 머리를 땅에 박을 기세였다. 그리고 윤기의 말을 받들어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

“…….”



 윤기가 다시 지민을 본다. 그는 이전처럼 차분했다. 지민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럼요!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 해보겠습니다.”

“예. 시간은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인간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뭐든 한다고 하지 않는가. 입이 제 멋대로 움직인 거다. 윤기는 까딱 고개로 인사한 뒤 문밖으로 향한다. 멀어지는 넓은 등을 보며 지민은 돌처럼 굳어있었다. 윤기가 퇴장하며 딸랑, 종이 청량하게 울린다. 혼자 남은 지민이 중얼거렸다.



“…참고 회사 다닐걸.”



 꽃들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아빠 힘내! 먹고는 살아야지!




***




 민윤기는 지민에게 직접 전화해 일정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박지민씨 맞으십니까. 전화는 그리 길지 않았고 그때에도 너무 낮은 윤기의 목소리에 지민은 어깨를 잘게 떨었다. 조폭이면서 목소리는 바닥을 긁는 게 어디 가서 멋진 역할의 성우를 해도 될 것 같다.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지민이 언젠가 한 번은 부럽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다. 아마 터프해 보이고 싶던 사춘기 시절 고등학교 때 꿈꿨던 것 같다. 네, 네, 제가 박지민입니다. 대답하다 지민은 문득 떠올렸다. 내가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었나…. 역시 가게를 첫날 윤기를 보자마자 폐업했어야 했다.



“여기 맞는 것 같은데.”



 지민은 고개를 들어 6층짜리 건물을 확인했다. 슈가 캐피탈. 아주 신식 건물이다. 지민이 월세로 입주한 곳보다 훨씬 좋다. 최근에 지어진 걸 자랑이라도 하듯 건물은 입구부터 번쩍번쩍 광이 낫다.


 건물을 더 감상할 정신은 없었다. 지민의 마음이 심란하다. 하아. 제발 목숨만 부지해서 나갔으면 좋겠다. 인테리어가 망하면 나도 끝이야. 정신 차리자. 합! 지민은 파이팅을 외치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윤기의 사무실은 6층이라고 했다.


 띵. 6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안내데스크가 나온다. 자동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데스크에 있는 검은 수트의 직원이 지민을 보고 인사한다. 그 역시 다소 살벌한 안색이다. 이 사람은 불곰보다 덩치가 작았지만 눈 쪽에 미세한 상처가 있었다. 꼭 칼로 그인 것만 같았다. 벌써부터 다리가 풀릴 것만 같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돈 빌리는 건 이쪽이 아닙니다만.”

“저…인테리어를 하기로 연락 받아서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그, 꽃집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꽃집?”



 남자가 고개를 갸웃한다. 다소 껄렁한 말투였다.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남자가 그의 뒤통수를 퍽 쳤다.



“이분이 그분이잖냐. 불곰 형님이 말씀하신.”

“아!”



 흉터가 난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 도련님께서 맨날 꽃 사오는 거기! 그는 아주 반갑게 지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이구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자자, 어여 들어가시고.”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안쪽 문을 노크했다. 도련님, 손님 오셨습니다.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불곰이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아마 그가 윤기를 제일 측근에서 모시는 인물인 듯했다. 이를 테면 오른팔 같은 건가. 지민은 추측했다.



“아, 안녕하세요!”



 깔끔한 올 블랙의 방 안에는 책상과 소파, 그리고 협탁만 덜렁 놓여있을 뿐이다. 책상에 걸터앉아있던 윤기가 일어난다. 불곰은 지민을 보자마자 꾸벅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대화 하십시오.”



 불곰이 문을 닫고 나간다. 검은 방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꽃집이 아니라 그런 건가. 다소 어색한 지민이 쭈뼛거리며 천천히 소파로 다가왔다. 윤기 역시 천천히 움직여 지민의 맞은 편 소파에 앉는다.


 윤기는 업무적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협조 요청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매번 찾아와주시는데 이렇게 도와드리게 돼서 너무 기뻐요.”



 지민은 절로 식은땀이 나는 손을 허벅지에 비볐다. 윤기는 더는 말을 섞을 생각이 없는지 팔짱을 낀 채 입을 다물어버렸고, 지민 역시 긴장해 말을 못하니 대화는 금세 멈췄다. 숨 막히는 침묵이 버거운 지민이 눈을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혹시 인테리어는 어디를 하면 될까요?”

“제 사무실과 휴게실을 부탁드립니다.”

“아…여기 말씀하시는 거죠?”

“예.”



 지민이 윤기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온통 검은색뿐인 방은 꽃의 허락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삭막하다. 상당히 꾸미기 난감했다. 애초 지민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꽃집 사장일 뿐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잘 해내야만 했다. 제 목숨이 달려있으므로.



“음, 혹시 좀 둘러봐도 될까요?”

“편하신 대로.”



 윤기가 흔쾌히 끄덕인다. 지민이 하나하나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사무실을 살피며 돌아다닌다. 그사이 윤기는 움직이는 지민을 눈으로 쫓아가고 있었다. 노란 앞치마만 입고 있던 꽃집 청년은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어두운 사무실 책상 크기를 재고 있었다.



“혹시 원하는 컬러나 분위기가 있으세요?”

“알아서 해주세요.”



 도련님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을 넣었다. 알아서 잘. 지민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사무실의 견적을 대충 다 확인한 지민이 다시 쇼파로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저는 조화가 아니라서요. 인테리어 작업을 끝내도 시들 수가 있는데…차라리 조화를 사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금액적으로도 그게 이득이시니까 추천해드리는 거예요.”

“지민 씨가 조화도 팝니까?”

“아, 저는 아니구요! 좋은 조화 가게를 알아서 연결해드릴 수 있어요.”

“조화는 됐습니다. 생화가 좋아서요.”

“아…그러시구나.”



 살아있는 걸 좋아한다면서 장례식을 그렇게 많이 가다니. 지민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며칠만 지나도 꽃이 시들 수 있어요. 잘 관리하셔도 기간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서…괜찮으신가요?”

“예.”



 윤기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윤기의 눈이 은근히 빛이 난다.



“지민 씨께서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갈아주시면 되겠군요.”

“아…제가….”



 저도 모르게 내가 하는 거였냐고 물어 보려던 지민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윤기의 시선에 황급히 말을 닫았다.



“네, 네! 괜찮습니다. 시간도 많아서요. 어차피 손님도 몇 분 오지 않아서, 하하.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비용이 쪼끔, 음 이게 자주 출장방문을 하면 쪼금 나갈 수도 있어서요. 물론 윤기 씨께서는 단골 고객이니까 비싸게 받을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부담이 되실까봐 서요. 무리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조화로 전환하셔도 돼요!”

“올 때마다 백이면 됩니까.”

“…네?”

“삼백?”

“그, 그, 그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지민이 손을 휘저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금액이었다. 윤기는 고민하더니 금액을 수정했다.



“이백은 괜찮습니까.”

“네에? 아뇨! 그것도 너무…아 배, 백으로 할게요.”

“그럽시다.”



 도련님은 금전 감각도 딱히 없는 듯했다. 지민이 화들짝 놀라 말하려다가, 윤기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는 급히 수긍했다. 사채업자와 돈 거래를 논하려 하다니.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게 나을 거 같다. 이 정도 금액이면 진짜 내 목숨값이 될지도…. 손이 흥건하게 젖은 지민이 청바지에 더 벅벅 문질러 닦았다.



“저 그럼 직원 휴게실도 볼 수 있을까요…?”

“안내해드리죠.”



 윤기가 일어난다. 지민은 쫄쫄 윤기의 뒤를 따랐다.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의 등은 무척이나 넓었다. 키는 자신과 비슷했는데, 아마 위압감이 드는 건 이것 때문이 아닐까 지민은 그런 추측을 했다. 그리고 직원 휴게실로 가는 그 짧은 사이, 인생에서 다시없을 경험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검은 수트를 입은 사람들은 윤기를 만날 때마다 구십도로 허리를 접어가며 인사했다. 윤기는 무시하며 지나간다. 덩달아 뒤에서 따라오는 지민이 지나갈 때도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윤기 대신 지민이 어색하게 인사하며 지나갔다.



“아, 안녕하세요.”



 같이 꾸벅꾸벅 허리를 접다보니 제 뒤통수에 닿아오는 윤기의 시선이 느껴진다. 안하는 건가 보다. 지민이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그런 의미로 본 거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의미로 본 거지. 지민은 두려움에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머지않아 직원 휴게실에 도착했다. 휴게실은 2층이었다. 6층과 달리 방이 꽤 있었는데,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실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자판기, 소파와 왜 있는지 모를 아령 같은 운동기구들이 있었다. 윤기는 도착하자마자 멀쩡하게 쉬고 있는 직원들을 내쫓았다.



“모두 나가라.”

“예, 형님!”



 일제히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간다. 워낙 덩치가 큰 사람들이 많아서 지민은 저도 모르게 윤기의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몇 주간 봤다고 그런 건지 아니면 얌전한 그의 성격 때문인지 이 조직의 두목이 가장 안전해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겼다. 우루루 검은 수트 집단이 마지막까지 다 빠져나가고 문을 닫았을 때.


 윤기가 뒤돌아 바짝 붙어있는 지민을 물끄러미 본다. 문 쪽을 보던 지민이 윤기의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후다닥 떨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윤기는 조금 느리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쩐지 그의 하얀 얼굴에서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식겁한 지민은 눈치 채지 못했다. 조직 보스의 심기를 거스를 뻔 하다니. 더 단단히 정신을 붙잡기로 한다.



“저 그럼 둘러볼게요! 앉아계셔도 돼요.”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세요. 아는 한 말해드리겠습니다.”



 윤기는 사양하며 이곳저곳을 살피는 지민의 곁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가왔다. 아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조직 보스의 친절을 무시할 수 없어서 지민은 윤기를 달고 탐사를 시작했다. 가능한 조용하고 빠르게 보고 탈출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감시하는 조직 보스를 의식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여기는 어느 정도나 있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스탠딩도 있고 아니면 자그맣게 만들어서 테이블 위에만 놔둬도 예쁠 것 같아요.”

“가능한 많은 게 좋습니다.”

“그럼 관리하기가 더 힘드실 텐데요?”

“지민 씨가 더 자주 오게 되는 겁니까?”

“…아, 무, 물론! 제가 열심히 해드릴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많게, 화려하게 해드릴게요! 맡겨만 주세요.”



 하하하. 지민이 파이팅 포즈를 취해보였다.


 이후 지민은 윤기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했다. 컬러는 어느 계열이 좋으세요. 작업 관련 질문을 꽤나 했는데, 윤기가 막힘없이 대답하다 보니 질문이 몽땅 떨어졌다. 침묵을 참을 수 없어서 질문은 다른 곳까지 넘어간다.



“윤기 씨는 직원 분들을 엄청 상냥하게 챙기시네요. 손수 사무실까지 꾸며주시구.”

“그렇게 보입니까.”

“네.”



 윤기는 의외로 지민이 하는 말에 뭐든 대답해주었다. 질문은 그 정도 했으면 됐으니 그만하라 짜증을 낼 것만 같았는데, 대화는 꽤나 잘 이어졌다. 직원들이 간혹 이곳에서 숙면을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민은 얼떨결에 사채업을 하는 직원들의 생활 패턴까지 알게 되었다.



“정시퇴근을 권하는데도 듣지 않는 직원들도 몇 있죠.”

“아…그렇구나….”

“그래도 꽃이 상할까봐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말해놓으면 잘 지키긴 합니다. 접근하지 말라고 해놓겠습니다.”



 먼저 나서서 꽃의 상태까지 지킨다. 지민은 문득 생각했다. 이사람, 진짜 꽃을 좋아하나 보구나.


 매번 매장을 찾아와서 한참 구경을 하기도 하고. 꽃이 시들까 봐 걱정하기도 하고. 사무실을 꽃으로 꾸며놓고 싶어서 출장까지도 부르지 않는가. 꽃이라고는 밟고만 지나갈 것처럼 생겼는데. 새삼 그게 신기하다. 아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도 공통점이 있을 수가 있구나.



“윤기 씨는 꽃을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저돈데.”



 지민이 생긋 작게 웃었다. 여러 차례의 질문으로 분위기가 조금 편안해지기도 했다. 윤기는 지민이 웃는 모습을 보더니 작게 멈칫한다.



“…예, 많이 좋아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했어요?”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와! 저도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그랬을 것 같군요.”

“네?”

“저도 그랬습니다.”



 지민이 또 찾은 공통점에 한층 더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반가워요. 학교 다닐 때 남자애가 무슨 꽃을 좋아하냐고 놀림도 받았었는데. 이렇게 저랑 같은 사람을 찾다니 너무 반가워요. 윤기 씨는 무슨 꽃 좋아해요? 국화꽃?”



 막힘 없이 대답하던 윤기가 머뭇거린다. 지민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답변을 기다린다. 윤기가 입매를 슬쩍 만진다.



“장미도 좋고….”



 윤기가 지민을 조용히 바라본다. 눈빛이 진지해서 지민은 새삼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그때 준 게 장미여서.



“그럼 여기 장미로 많이 꾸밀까요?”

“괜찮겠네요. 기대됩니다.”



 윤기가 흔쾌히 끄덕인다.



“지민 씨가 원하는 대로 꾸며주세요. 꽃이라면 뭐든 괜찮을 것 같으니.”



 윤기는 조용조용 안심시키듯 말한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는 조직의 도련님이 아닌 어디 유명한 회사의 높은 직급을 담당하는 듯했다.


 꽃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는데. 생각과 다른 사람일지두…. 지민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





 부동산 주인은 정말 개새끼가 맞다. 장사는 여전히 안 됐다. 놀러온다던 동네 상가 사람들과 아주 몇몇 손님들을 제외하고 여전히 손님은 민윤기뿐이었다. 물론 그가 아주 파격적인 가격으로 방문 출장 인테리어를 부르는 바람에 월세를 충당할 수 있긴 했지만.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지민은 정말로 한 달 만에 폐업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터다. 부케 꽃다발을 몇 개 만들고 가게를 청소하며 지민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딸랑, 종소리가 난다. 앗! 지민이 강아지처럼 쪼르르 문을 본다. 윤기였다. 그래도 한 번 대화를 잘 해봤다고 얼굴을 보니 예전처럼 바짝 얼어붙지는 않는다. 노란 앞치마를 두른 지민은 나름 반가워하며 윤기를 마중 갔다.



“오늘은 낮에 오셨네요?”

“잠깐 시간이 나서.”



 윤기는 주로 밤에 오고는 했는데, 해가 떠있을 때 오는 건 처음이다. 여전히 무섭게 생긴 수트는 그대로였지만.



“오늘 예쁜 꽃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구경하실래요?”



 윤기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민은 윤기를 안내하며 옆에 붙어 서서 쫑알쫑알 떠들었다. 이거 새로 온 장미인데요. 빨간색 너무 예쁘죠. 시장에 가자마자 보고 반해버렸어요. 윤기는 꽃을 보며 그런 설명을 하는 지민을 바라봤다. 그렇군요. 예쁘네요. 그쵸. 그리구 여기 튤립도 있는데요. 이 아이도 색 한 번 보세요.


 지민은 신이 났다. 사람과 조곤조곤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으니 매번 침묵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니면 영상을 보거나. 윤기가 지민이 설명해준 새빨간 장미로 골랐다.



“오늘은 이 장미로 주세요.”

“어? 또 사요?”



 이미 한 번에 백만 원씩이라는 파격적인 구매를 하고 있으면서. 사무실에는 새로운 꽃이 장식될 테고. 생각해보니 대체 그 많은 국화꽃은 어디다 가져놓는단 말인가.



“안 사셔도 돼요. 다음에 제가 출장 갈 때 가지고 갈게요.”

“그래도….”

“에이, 진짜 괜찮아요. 가져갈게요. 대신 오셨으니까 이거.”



 지민이 장미 한 송이를 꺼내 가시를 제거하고 윤기에게 건넸다. 작은 손이 들고 있는 장미가 핏줄이 돋은 커다란 손에 옮겨간다. 지민이 들 때는 무척이나 커다란 장미가 윤기의 손에 옮겨가니 급격히 작아 보였다.



“감사합니다.”

“뭘요. 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굳이 번거롭게 오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은 관리하러 윤기 씨 사무실에 제가 가니까 전화 주시면 갈 때마다 챙겨 갈게요.”



 윤기가 팔짱을 끼고 조금 미간을 찡그린다.



“…괜찮습니다. 그리 멀지 않습니다. 제가 와서 챙겨가도 됩니다.”

“그래도 매번 시간 내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꽃도 생기를 머금었을 때 자주 봐줘야 해요.”

“…음.”



 윤기가 침묵한다. 하얀 얼굴이 드물게 언짢아하고 있었다. 무언가 아쉬워하고 있는 듯했다. 왜지? 지민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다 윤기의 시선이 꽃 진열장에 닿은 걸 보고 깨달았다.



“오셔서 직접 구경하고 싶은 거예요?”

“…예.”

“아이 그럼 오셔두 되죠. 대신 사진 말고 저랑 같이 구경하면서 떠들어요.”

“그거 좋군요.”



 윤기의 입매가 일순 작게 들썩인다. 이번에는 만족스러운 빛이 돌고 있었다. 내내 무표정하기만 하더니 새삼 알기 쉬운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민은 조금 웃음이 나왔다. 얼음 덩어리 도련님이 조금 귀엽다.



“내일은 투자 상담이 있으니 끝나고 오늘 시간과 비슷한 때에 들리겠습니다.”

“…투자 상담이요?”



 사채인가. 지민의 눈에 급격히 두려움이 생긴다. 역시 아무리 착해봐야 조폭은…. 거리를 둬야만…. 이 사람의 손에서 여러 사람들이 빚에 시달려 장기가 빠지고 죽어나갈 거다.



“예. 주식 장 열리기 전에 할 테니 일찍 끝날 겁니다.”

“주식이요?”



 지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윤기는 끄덕이며 대답한다.



“주식 투자 상담 관련 일을 합니다.”

“사, 사채가 아니고요? 주식?”



 놀란 지민이 연거푸 확인하다 입을 틀어막았다. 헉. 말해버렸다.


“죄, 죄송해요! 그, 저도 모르게 편견에 사로 잡혀서 그런 생각을. 죄송합니다.”

“뭐. 딱히 상관없습니다. 종종 듣는 말입니다.”



 윤기는 무던했다. 정말로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본 사람 같았다.


 이럴 수가. 죄책감이 지민을 푹푹 찔러댄다. 사람은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는데. 퇴사하기 전 회사에서도 그렇게 깔끔하고 매너 좋던 이 대리가 성희롱이나 하는 변태새끼일 줄은 몰랐잖은가. 윤기는 지민의 죄책감을 가중시키는 말을 추가했다.



“죄송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탓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오히려 지민 씨는 제게 잘 대해주셨지 않습니까. 이렇게 꽃도 주고.”



 윤기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인다. 고맙습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을 조폭으로 오해하다니. 지민의 눈에 죄책감에 더해 동정심이 생긴다. 지민이 윤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워낙 윤기의 손이 커서 반쯤밖에 붙잡지 못했지만. 동그란 눈동자가 열렬히 의지를 지닌다.



“그게 왜 윤기 씨 잘못이에요. 다 저처럼 편협한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잘못 된 거죠!”



 지민이 누구라도 민윤기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장서서 막아줄 기세로 말했다.



“장미 백 개든, 천 개든 다 드릴 수 있어요.”

“…천 개면 여기로 천 번은 와야겠네.”



 윤기가 픽 웃는다. 지민은 순간 멈칫했다. 작게 웃는 게 너무 예뻤다. 살짝 들썩이는 입꼬리가 무척이나 곱다. 세상에 이렇게 웃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지민이 본 어떤 꽃보다도 예뻤다. 와아. 감탄하며 보고 있는데, 윤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가 이번엔 반대로 지민의 손을 잡았다. 커다란 손에 작은 손이 쏙 감춰진다.


 지민은 순간 맞닿은 온기가 무척 뜨겁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놀라 손을 빼냈다. 지민의 뺨이 살짝 붉다. 마치 분홍빛 장미처럼. 지민이 윤기의 시선을 피해 부리 같은 입술로 쫑알거렸다.



“자, 잘 지내 봐요. 윤기 씨.”

“그래요. 지민 씨.”



 윤기가 놓쳐버린 작은 손을 보다가, 끄덕였다. 그의 눈이 딸기 우유같이 변한 오밀조밀한 얼굴을 보며 고요히 만족스레 빛난다.






***





 작은 우물에 갇혀있다 나오면 세상은 밝다. 편견을 깬 지민은 윤기와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 대학을 다닐 시절 얻은 강양이란 별명처럼 윤기에게 상냥하게 다가갔다.



윤기 씨, 오늘은 일찍 왔네요. 점심 같이 먹을래요? 앗 생각해보니 윤기 씨는 이런 거 안 드실 거 같긴 한데….”



 지민은 점심으로 매번 시켜먹는 분식집 메뉴판을 꺼냈다. 오므라이스, 순두부찌개, 치즈김밥. 흔히 직장인들이 끼니를 때우는 가게다. 출장비용으로 한 번에 백만 원씩 지불하는 윤기에게는 형편없는 메뉴일 터다. 윤기는 아예 검은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붙이고 조그마한 지민의 밥상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괜찮습니다. 한식 좋아합니다. 순두부찌개요.”

“우와 정말요? 저도 한식 진짜 좋아하는데!”



 의외로 윤기와 지민은 식성까지 잘 맞았다. 지민이 김치 볶음밥, 김치찜, 김치찌개, 그리고 반찬으로 김치까지 꺼냈다. 김치에 미친 사람처럼 꺼내도 윤기는 잘 먹었을 뿐이다.


 그는 밥을 사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자신이 사준다는 명목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물론 지민이 사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비싼 곳이었다. 소갈비 1인분이 지민이 산 점심보다 훨씬 비쌌다.



“이, 이건 너무 비싼 거 같아요.”

“저도 지민 씨한테 받은 만큼 대접하는 겁니다.”

“1인분에 순두부찌개 10그릇도 먹을 수 있어요, 윤기 씨. 정신을 차려 봐요.”

“차리고 말하는 겁니다. 갑자기 1인분에 순두부찌개 80그릇 정도 되는 코스 요리집으로 가고 싶네요.”



 지민은 얌전히 젓가락을 들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대접을 했단 말인가. 나도 잘해주고 싶은데…. 입술을 삐죽이고 있으니 윤기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꽃밭에서 먹는 게 엄청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경험이 돈보다 비싼 법이니까.”

“…윤기 씨 말 되게 잘하시네요.”



 그러니까 투자 상담으로 밥 벌어먹고 살죠. 윤기는 피식 웃으며 지민의 앞으로 구운 고기를 내밀었다. 지민은 윤기의 예쁜 미소에 투덜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하게 자신을 먹이면서 기분 좋아하는 윤기를 보니 감정이 이상했다. 윤기 씨는 웃는 게 진짜 왜 이렇게 예쁜 거야. 사람을 말도 못하게 한다.


 그들은 하나둘 꽃집을 벗어나 밖에서 만나는 약속까지 잡았다. 이 영화 무척 재미있대요! 지민이 올해 유행한다는 별점 10점짜리 멜로영화를 추천했다. 재미있겠네요. 보고 싶었던 겁니다. 정작 영화 내내 지민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윤기는 그런 지민을 구경했다. 왜, 끄윽, 저만 봐요? 윤기 씨는 뭐, 흑, 눈사람도 아니고, 왜 안 울, 흐윽. 오열하는 지민을 보더니 윤기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극장 안에서 혼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그를 미친놈처럼 쳐다보았다. 너무 슬퍼서 돌아버렸나…. 그러거나 말거나 윤기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지민 씨 불어난 우유찐빵 같네요.”

“사람이 어떻게 찐빵이에요? 그러는 윤기 씨는 언짢은 물만두 닮았어요.”

“왜 화내지. 귀여워서 한 말인데.”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지민은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그, 그, 그러면 봐줄게요. 말까지 더듬는 지민을 보며 윤기는 연신 귀엽다는 듯 웃었다.


 지민은 윤기와 만남을 가지면 가질수록 이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왜 심장이 두근거렸지? 말도 안 된다. 윤기가 웃는 게 예쁘긴 하지만 남자다. 박지민은 정도의 길을 걸어온, 정말 평범한 20대였다. 대학 때 여자 친구와 만나기도 했고, 물론 군대를 갔다 오면서 대차게 차여 얼마 하진 못했지만. 내가…내가 바이?


 물론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윤기와 마주 웃는 게 좋아 그를 거절하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게 맞다. 어쩌면 바이, 나 제법 소질 있을지도.


 이제는 윤기의 회사에 가도 무섭지 않았다. 그래. 이 우락부락하게 무서운, 운동을 극도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샐러리맨인 거다. 투자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았다. 인테리어를 하면서도 지민은 윤기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웃었다. 의외로 민윤기는 아는 지식이 많았고, 지민을 잘 웃겨주었다. 아 윤기 씨 왜 이렇게 웃겨요. 꺄르르 지민이 두 눈을 휘어 접어가며 웃을 때마다 실컷 말하던 윤기는 멈칫했다. 정신없이 지민이 웃는 모습을 보더니 급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지민은 윤기의 책상에 앉아서 달랑달랑 다리를 흔들었고, 윤기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있었다. 불곰은 두 사람이 만나면 무조건 자리를 피해주었다. 문득 그 모습을 보는 지민은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근데 왜 다웅이 형한테 다 불곰이라고 해요?”

“왜 형이 됐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윤기는 잠깐 침묵했다가, 살짝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하더니 지민이 재촉하자 그 기색을 치워냈다.



“닮았으니까.”

“아니 정말 그게 다예요?”

“나름 친목도모가 잘 되어있는 회사입니다.”



 지민이 그에 또 꺄르르 웃었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책상에서 또 몸이 쓰러져라 웃다보니, 정말 균형감각을 잃고 휘청거렸다. 어어. 허공에서 쓰러지려는 선 얇은 몸을 윤기가 잽싸게 받쳤다. 지민이 얼결에 의자에 앉아있는 윤기 위에 주저앉았다.


 통통한 지민의 엉덩이에 윤기의 하반신이 닿았다. 어, 어…? 묵직하게 닿는 이건.


 윤기는 지민의 얇은 허리를 손으로 꽉 쥐어 잡고 있었다. 허리는 얇아 윤기의 한 팔에 감길 것만 같았다. 윤기가 위에 올라타 앉은 지민을 올려다본다. 



“…….”

“…….”



 이, 이거 왜 이렇게 존재감이 큰…. 거기까지 생각한 지민의 얼굴이 확 붉어진다.



“죄, 죄, 죄송해요!”



 허둥지둥 일어나려다보니 몸은 주인의 말을 잘 따라주지 않는다. 오히려 엉덩이가 윤기의 하반신에 더욱 밀착되어 비벼진다. 으악. 으악. 차에 치인 것마냥 더 놀라는 지민을 윤기가 확 붙잡는다.



“천천히 일어나요. 괜찮으니까.”



 윤기의 목소리가 다른 때보다 유난히 낮게 들렸다면 착각일까. 발 먼저 내리고. 윤기가 지민에게 찬찬히 명령한다. 그 말에 따라 일어나면서, 지민의 엉덩이가 마지막으로 윤기의 것에 뭉개듯 비벼진다. 쿵쿵 심장 박동이 멈추질 않는다. 지민의 얼굴이 뺨은 물론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든다.



“오, 오, 오늘은 저 그만 가볼게요.”

“그래요.”



 지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잘 있어요!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며 빠져나가려는데, 돌연 손이 턱 붙잡혔다.


 윤기의 시선은 다른 때보다 짙었다. 꼭 이때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그가 말했다.



“내일도 갈게요.”



 세렌디피티. 지민의 동공에 지진이 난다. 윤기는 지민이 대답하기 전까지 절대 풀어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손을 붙잡는다.



“기다려줄 거죠.”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지민의 심장에 붉은 장미가 핀다. 붉은 장민의 꽃말은 사랑이다. 지민은 윤기와 눈을 맞추다가, 먼저 시선을 피하며 끄덕였다.

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






 나는 끝내주는 바이였구나.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맞는 말이다. 이 대리 새끼가 엉덩이를 주물렀을 때는 벌레라도 닿은 듯 오소소 소름이 돋고 열이 받아 남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기의 그…. 음. 지민은 여기서 잠깐 어쩔 수 없는 생각을 했다. 꽤나 훌륭한 그것이 닿고 비벼졌는데, 기분이 뭐랄까. 오히려 떨리고 좋았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키스부터 하는 걸까. 한 번 만난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잘 알 리가 없다. 안절부절 못하며 가게 안을 지민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꽃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얘들아, 아빠 어떡해? 키스부터 해도 될까? 그치만 벌써 엉덩이에 그게 닿았는데. 싫지 않았어. 어떡하니.



“…일단 준비를 해야지.”



 후. 깊은 심호흡을 하며 지민은 잠깐 외출 중 팻말을 꺼냈다. 어차피 올 사람이야 손에 꼽아서 없을 확률이 높겠지만. 콘돔과 젤, 그딴 것들을 찾아보며 편의점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꽃집 앞에서 대기하던 검은 벤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루루 내린다.



“박지민씨?”

“…네?”



 얼결에 대답하니 남자들이 시선을 교환한다. 뭐지. 윤기의 사무실을 자주 들락거려 겁이 아주 조금 상실된 지민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남자 둘이 지민에게 달라붙어 양 팔을 감싸고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



“뭐, 뭐야! 당신들 미쳤, 사, 사람 살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손날로 지민의 목뒤를 퍽 쳐 기절시켰다. 지민은 흐려지는 정신으로 어떤 얼굴을 하나 떠올렸다. 하얀 내 저승사자…. 민윤기 씨 보고는 죽어야 하는데….









 민윤기에게 꽃이 생겼다. 꽃이란 장례식장에서 보는 국화만이 전부였던 그에게 알록달록 폈다. 꽃은 아주 말간 눈웃음을 지녔고, 통통한 입술과 엉덩이를 지녔으며, 그의 취향인 목소리를 냈다. 지민은 윤기에게 여러 가지 색을 선사했다. 시커먼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노란 앞치마를 입고 포슬포슬 웃을 땐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고, 장미를 내밀며 붉은 사랑이 타오르게도 만들었다.


 처음 박지민을 만난 순간, 민윤기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오 맙소사. 노란 앞치마를 입은 박지민을 보자마자 순간 병아리인 줄 알았다. 지민의 주변으로 꽃잎이 흩날리고 꽃이 만개하는 효과가 입혀진다. 물론 실제로 지민의 뒤가 꽃집이라 꽃이 있긴 했다. 저렇게 귀엽게 생긴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 병아리는 꽃밭에서 거닐며 놀고 있었다. 잎을, 장미를 쫑쫑 물고 자신에게 오기도 했다. 덜덜 떨면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게 윤기의 마음을 더 자극했다. 오호라. 귀여운 병아리인데 배짱까지 있네.


 첫 눈에 반한 박지민은 보면 볼수록 더욱 좋았다. 생긴 것도 취향인데, 목소리까지 취향이고, 몸까지 취향이었다. 마치 민윤기 취향을 알고 신이 옛다, 하고 받아가라고 만들어놓은 선물 같았다. 특히나 지민이 꺄르르 웃을 때마다 윤기는 새가 지저귀는 착각이 들었다. 자그마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땐 정말 머리가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아, 참고로 아래 하반신까지.


 윤기는 아직도 지민이 자신의 위에 올라타 엉덩이를 댄 어제를 잊지 못했다. 짝사랑에 빠진 남자의 감상이 아니라, 실제로도 잊지 못했다. 민윤기 인생에서 사무실에서 자위를 하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주변에 넘쳐나는 게 사람인데, 혼자 3번은 풀고나서야 가라앉았다. 주변에서 알면 저놈 저거 조폭질 싫다고 집안 박차고 나와 때려 치더니 돌아버린 게 틀림없다고 손가락질을 했을 터다.



“도련님, 오늘 잡힌 저녁 약속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취소해라.”

“예. 꽃집 병아리 씨 보러 가시는 겁니까?”



 불곰이 물었다. 지민은 아래애들 사이에서 꽃집 병아리라고 불렸다. 사람 눈이 비슷하긴 한 건지, 노란 앞치마를 입고 인테리어를 한다고 건물을 돌아다니는 박지민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다.


 윤기는 눈썹을 치뜬다. 그러고 보니 대체 언제 친해진 건지 불곰에게 지민이 형이라고 불렀다. 자신은 아직도 윤기 씨, 윤기 씨 존칭을 꼬박꼬박 받고 있는데.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자신도 못 받은 호칭을 다른 이가 받고 있으니 무척이나 거슬린다.



“너 앞으로 박지민이랑 대화 1분 이상 금지다.”

“…예?”

“다른 애들한테도 전해. 박지민 올 때마다 휴게실 사용 금지라고. 보는 것도 금지.”



 불곰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도련님의 행패에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를 귀엽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윤기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모셔온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윤기의 아버지가 앞으로 네 주인이다, 라고 소개시켜준 순간부터 충성을 다했다. 평생 사람에게 관심은커녕 세상만사 다 귀찮아하는 도련님의 첫 순정이지 않은가.



“예, 알겠습니다.”

“차 대기시켜.”



 윤기는 거울을 보며 수트 매무새를 정리했다. 죄다 비싼 명품이었다. 머릿속에는 지민이 가득했다. 보자마자 날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꽃집은 그대로 두라고 할까. 하루 종일 지민을 옆에 끼고 보고 싶었지만, 꽃을 만지며 그 사이에 있는 지민을 보는 것도 그에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 꽃이 꽃들 옆에 있어야지.


 불곰은 금방 차를 대기시켰다. 윤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탔다. 이제 꽃을 소중히 유리병에 담아 자신이 간직할 때가 됐다.


 그리고 이런 윤기의 즐거운 기분은 채 꽃집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꽃집은 텅 비어있었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은 바닥에 떨어져있었고 누군가 헤집은 듯 가게가 온통 엉망이었다. 소중한 윤기의 꽃밭과 꽃을 뿌리채 뽑아간 듯했다.



“…씨발.”



 천박하다며 끊은 욕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불곰은 그날 처음 봤다. 민윤기가 진정으로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차가운 분노가 타오른다. 희번득 살기가 넘친다. 최근 들어 가장 순한 표정을 짓고 다니던 민윤기는, 세상 둘도 없을 야차 같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찾아내. 20분 준다.”



 어지간한 일에는 쫄지 않는 불곰도 그 기세가 워낙 어마어마해 위축되었다. 예, 알겠습니다. 윤기가 반쯤 맛이 간 눈깔이 되었을 즈음.


 윤기의 폰에 진동이 온다. 윤기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인은 형이다.


[집으로 오면 네가 원하는 게 있을 거다]


 아. 윤기는 올라오는 분노에 뒷목이 뻐근하다. 박지민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봐.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것조차 안 보이는 듯 윤기의 눈은 여전히 살기로 가득 차있었다.











 한국 최고의 사채업자 집안에서 태어난 민윤기는 날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 깡패새끼도 머리가 필요한 날이 올 거다. 윤기의 아버지는 윤기에게 돈을 굴리고 불리며 경영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머리 좋은 민윤기는 형보다 월등하게 돈 놀음을 잘했다. 옳다거니. 윤기의 아버지는 그를 후계자로 채택했으나,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윤기의 성격이다. 윤기는 이십대 초반 돈을 조 단위까지 한 번 만져보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흥미가 뚝 떨어졌다고 사채와 관련된 일에서는 손을 털었다. 재미없습니다. 다른 거 할래요. 그리하여 홀랑 집안을 떠났다.


 어디 이 괘씸한 놈. 민윤기의 아버지는 몇 달이 지나면 돌아올 거라 예측했다. 카드 막고, 차 뺏고, 집 뺏고. 모조리 다 막았다. 그러나 잡초 같고 영리한 민윤기는 알아서 잘만 살았다. 번듯하게 사업체를 세우고, 하나둘 고객을 유치하더니 양지에서도 떳떳한 기업을 일궈냈다. 심지어 자신을 따르는 세력까지 회사로 데려갔다. 행동력으로는 쓸만한 놈들만 죄다 쏙쏙 골라.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호랑이 새끼를. 윤기의 아버지는 포기했다. 그는 회유책을 선택했다. 윤기야 너는 천 년에 나올까 말까한 사채업의 인재다. 너의 재능을 이렇게 썩혀서 되겠니. 아들한테 사채하라고 권하는 아버지는 아버지의 재능이 없네요. 윤기는 쿨하게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윤기의 아버지는 복장이 터졌다. 그러나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식이지만 민윤기는 제 뜻대로 절대 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윤기의 큰 문제점을 발견했다. 사채업이 귀찮다며 나간 민윤기는 나름 투자업에 진심을 보이고 있었으나, 그도 어느 정도 되니 귀찮다는 듯 적당히만 굴리며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래도 뚱. 저래도 뚱. 재능은 많지만 귀찮다고 써먹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는 꽤나 여러 무리에서 어울리는 듯하더니, 사채놀음을 끝내면서 그것도 다 끝내버렸다. 허어. 그는 아들을 걱정했다. 이렇게 메말라선 세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놈인가. 온전히 홀로 이 세상을 사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건지, 그는 알고 있었다.


 같은 집안에 발 들이고 살면서, 윤기의 아버지는 윤기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마당만 같을 뿐 아예 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했지만 윤기가 좀체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 아들에게 요새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다. 아주아주 힘겹게 얻은 정보였다. 요새 자주 들리는 꽃집이 있으시답니다. 꽃집을 왜. 꽃을 보러 가시는 것 같기는 한데.


 윤기의 아버지는 그 무슨 해괴한 말인가 싶었다. 꽃이라고는 잡초와 꽃밖에 구분 못하는 놈이 제 아들이었다. 풀만 있으면 잡초, 색깔의 무언가가 달려있으면 꽃. 아는 꽃 이름도 장례식장을 다니며 본 국화밖에 없을 거다.


 그는 조금 더 정보를 캐보았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찾아냈다. 몰래 사람을 붙여 찍은 결과, 꽃집에서 밥을 나눠먹고 영화관을 가고 외식을 했다. 심지어 웃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했다. 아니, 이게 진짜인가. 윤기의 아버지는 사진을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 쇳덩어리 같은 제 아들을 바꿔놓은 게 누구인지.



“미안합니다 큼큼. 방식이 너무 날것이었지요. 잘 모셔오라고 했는데 이놈들이 허참, 또 말을 안 듣고.”

“우리 윤기 대체 어디가 좋았어요?”

“협박이라도 당했나? 집안이랑 인연 끊고 나서 통 뭘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지민은 당황한 얼굴로 제 앞에 앉아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황할 만도 했다. 눈 뜨고 일어나니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저택 같은 집에, 윤기의 가족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인물들이 앉아있다. 엄마, 아빠, 형. 특히나 형이라는 사람은 윤기와 정말 비슷한 느낌이었다. 똑같은 얼음덩어리였는데, 안경을 썼고, 시큰둥한 표정을 주로 짓는 윤기보다 예민미가 넘쳐 보였다.



“어…그….”



 아직 만나는 사이 아닌데…. 지민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거기다 심지어 윤기는 투자업을 한다고 했지만, 그의 본가가 무얼 하는지 방금 알아차린 참이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굴러가지 않는다. 고민하며 말을 고르는데 가족들이 저마다 하나씩 말했다. 윤기의 어머니가 선두였다.



“많이 놀랐죠. 그런데 우리도 많이 놀랐어요. 우리는 그 아이 취향이 이렇게 귀여운 친구인지 처음 알았지 뭐예요.”

“도둑놈이 따로 없군. 사채업 하기 싫다고 뛰쳐나간 놈이 도둑질은 잘 하네.”



 형이 한 마디 추가한다. 지민이 한 마디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이, 형은 윤기를 향해 혀를 쯧쯧 차기까지 했다. 형제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저기….”



 지민이 막 입을 떼니 가족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우선 윤기 씨와 만나서 대화를 해봐야 만나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솔직하게 말하려는 그때였다.


 쾅. 현관문이 부서질 듯 열린다.



“민시현, 나한테 관심 가지면 죽여 버린다고 했지. 박지민 어디 있어. 조금이라도 건드렸으면 찢어죽일….”



 윤기가 서슬 퍼런 기색으로 들어왔다. 크르릉거리는 한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 지민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통통한 입술이 벌어진다. 얼이 빠진 시선이 윤기를 향했다.


 지민은 그때 깨달았다. 윤기가 자신에게 보여준 모습은 정제되고, 정말 가꾼 모습임을.



“…지민 씨.”



 윤기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지민을 보자마자 뚝 굳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흉흉하게 들어올 때는 언제고 매너 있는 말본새가 됐다. 가족들이 흘끔 서로의 눈치를 본다. 쟤 진짜네.


 그사이 지민이 머뭇거리다가 주먹을 꼭 쥔다. 그리고 일어났다.



“저 잠시 윤기 씨와 이야기를 해야 돼서요. 자리 비워도 될까요?”



 가족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우리 윤기가 이렇게 개념 있고 예의 있고 착한 애를 만나다니.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기를 응원했고, 형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이 도둑놈 새끼. 이래서 집안 뛰쳐나간 거 아닌가.


 지민은 윤기만을 보며 다가간다. 윤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잠깐…이야기 좀 할까요?”



 윤기는 언제 열을 냈냐는 듯 지민을 빤히 본다. 그리고는 온순한 고양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은 한국에 이런 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원은 멋들어지게 조경이 되어있었고, 연못에는 비단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본 집이다. 적당히 대화할 곳을 그들은 정원으로 정했다. 저기로 갈까요? 지민은 정원에 마련되어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윤기가 고개를 끄덕인다.


 둘은 한참을 대화 없이 가만히 있었다. 지민은 갑작스럽게 알아버린 정보들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모든 게 거짓이었던 거 같다.


 발을 빼려면 지금이 적기다. 아직 분명하게 시작한 게 아니니 아마 지금이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문득 지민의 눈에 조경되어 있는 꽃이 보인다. 지민은 그 꽃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윤기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기는 이대로 지민이 떠날까 불안했다. 아까 그렇게 들어오지 말걸. 꽃을 좋아하는 병아리는 무서워 할 확률이 높다. 안 그래도 이제야 조금 적응해서 대화도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돈 불리는 방법이라면 불법으로 즉석에서 열 개도 넘게 술술 말할 수 있는 윤기는, 지민 앞에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말을 고르고 또 고르며 윤기가 간신히 입을 뗀다.



“…이해합니다.”

“네? 어떤….”

“이런 내가 이제는 무섭고 싫겠지만….”

“잠깐만요! 저, 저 그런 말 안 했는데요?”



 지민이 윤기의 말을 비집고 들어왔다. 윤기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가만히 시선을 던지니 지민은 막상 명확히 말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음, 그게….”

“…….”

“사실 아까 윤기 씨를 보고 쪼끔 놀란 건 사실인데요.”

“…….”

“이 꽃들, 저한테 사간 거죠?”



 지민이 조경되어 있는 꽃들을 가리켰다. 하얀 국화꽃 밭이 있었다.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끔 살아있는 꽃을 사가기도 했는데, 어디에 두나 궁금했는데 여기 이렇게 피어있었다. 전부지민을 향한 윤기의 마음이 활짝 피어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 심어놨어요? 윤기 씨 번거로운 거 싫어하잖아요.”

“…지민 씨 손길이 거친 꽃들인데 어떻게 죽입니까.”



 윤기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정말 진심이라는 듯. 지민은 윤기의 깊은 눈과 눈을 맞춘다. 맞다. 지민이 아는 그 사람. 꾸준히 꽃집에 발 도장을 찍고, 같이 밥 먹으면서 웃고 떠들던 그 사람. 제 앞에서 보여준 감정은 전부 다 진심인 사람.



“저는 윤기 씨가…저랑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지민의 볼이 붉게 물든다. 꽃잎 물을 들인 것 같다.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지민은 윤기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 그래서 차근차근 윤기 씨를 알아가고 싶어요.”

“…….”

“윤기 씨는요?”



 지민이 답변을 고대하며 윤기를 본다. 떨리는 눈망울이다.


 꽃밭에서 꽃이 하는 고백. 윤기의 목울대가 울린다. 도망가고 피할 줄 알았는데. 그의 심장이 쾅, 하고 커다랗게 울린다. 지민을 본 처음부터 윤기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 붉은 장미가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긴장한 지민을 보면서 윤기는 같이 긴장이 된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민의 작은 손을 붙잡았다.


 어제 붙잡았던 것과 똑같이 뜨겁다.



“…빨라도 좋습니다.”



 지민이 움찔 눈을 크게 뜨더니, 곧 환하게 웃는다. 벚꽃이 날릴 듯 예쁜 웃음이다. 윤기도 잔잔히 입가에 예쁜 미소를 피어 올렸다. 하얀 진심으로 빼곡한 꽃밭에서 그들은 시작을 맹세했다.

 꼭 둘만의 웨딩을 올리는 듯했다.





***




 어서 오세요. 세렌디피티에.


 웨딩 부케로 특히나 유명한 그곳은 예약이 하늘에 별 따기다. 그곳이 유명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거기 가게 가봤어. 대박이지. 사장님 엄청 귀엽고 친절하시고. 그런데 더 대박인 이유가 뭐냐면 맨날 검은 옷만 입은 뚱한 표정의 알바 있는데, 사실 왜 안 잘리는지 모르겠거든.


 SNS에 떠도는 후기를 보며 지민은 꺄르르 웃었다. 검은 옷만 입은 뚱한 표정의 알바는 이번에도 지민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심기가 불편했다.



“대체 왜 꽃은 안 보고 네 후기를 올리는 건데.”

“형 관련한 후기도 있잖아요.”



 윤기는 침대에 나란히 누운 애인의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얼굴을 쿡 박으니 싱그러운 풀향이 난다. 윤기가 좋아하는 지민의 향이다. 너 요정 같아. 언젠가 던진 그 말 한마디에 지민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형은 진짜 가끔 대단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요. 윤기는 뻔뻔하게 말했다. 진짜라서 말하는 거야.


 윤기가 지민의 뒷머리를 잡아 당겨 입을 맞춘다. 알바를 하는 날은 윤기가 마음껏 지민을 포식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민은 미소 지으며 같이 깊이 숨을 엮었다. 아, 혀엉. 옷 속으로 파고드는 윤기의 손을 느끼며 지민도 마찬가지로 윤기의 뒷머리를 헤집었다.


 아직도 달달한 신혼이 확실하다. 몇 년이 지나도, 내내 그럴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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