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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JENNIE & Dominic Fike - Love Hangover>







“좋은 아침이에요!”



 지민이 힘차게 등장했다. 어, 지민씨 왔어요? 지민이 형 오늘 옷은 뭐 패션쇼 나가요? 청소하다가 다 버려요. 나 이거 잠옷이야 괜찮아. 정국이 못마땅한 표정을 하는 것을 뒤로 다른 직원들도 전부 아는 척을 해온다. 여기까지는 일상이다. 지민이 막 테이블을 청소하려는 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고 민윤기가 등장했다. 오셨어요. 이어져야 할 인사들이 민윤기를 보고는 모두 쏙 들어갔다.


 저 사람 뭐야? 모두들 경악했다. 세팅한 머리와 저, 저 일부러 챙겨 쓴 거 같은 안경은 뭐지? 심지어 주방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때문에 늘 대충 걸치고 오던 인간이 셔츠에 핏 매끄러운 바지를 걸쳐 입고 왔다. 척 보기에도 한두 푼 하는 옷이 아니다. 여기가 레스토랑이 아니라 패션쇼였나. 혼란스러운 얼굴로 직원들이 서로의 얼굴만을 흘끔거렸다. 혹시 뭐, 셰프님 상견례 한대요? 나도 몰라. 눈으로만 바쁜 대화가 오간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박지민만이 민윤기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민윤기는 심드렁하게 먼저 말을 꺼냈다.



“다들 인사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거야? 좋은 아침.”

“윤기 형 오늘 뭐 약속 있어요?”

“없는데.”



 정국이 윤기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는다. 윤기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이 오픈 준비부터 체크했다. 준비 얼마나 됐어. 재료 손질은 다 한 거야? 전복 그거 잘 손질해야 된다. 외관만 다를 뿐 잔소리는 다름 없다. 그에 다들 민윤기의 변화는 어물쩡 넘겼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까칠하지만 일은 잘했다.



“이거 이렇게 하지 말고 더 박박 밀어야 돼. 내 주방에서 일한 게 몇 년인데 아직도 이런 재료손질까지 하나하나 손봐줘야 하는 거야. 이 정도로 뭘 배워서 나가.”

“셰프님.”



 윤기가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내고 있을 때. 지민이 뒤로 다가와 윤기의 등을 콕콕 찔렀다. 혼나고 있던 보조 셰프가 식겁했다. 이럴 때의 민윤기는 흡사 악마였다. 일과 관련해서 누가 건드리는 건 재앙을 불러오는 것과 다름 없었다.


 아니, 지민 씨는 잘 알면서. 저대로 둔다면 분명…! 설마 날 지켜주려고? 민윤기의 주방에서 유일하게 햇살을 머금고 있는 박지민마저 폭격 당하고 쫓겨날 지도 모른다. 보조 셰프는 천사 같은 지민을 살리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지민씨! 전 괜찮아요. 이건 제가 잘못한 거예요. 셰프님, 죄송합니다. 이 부분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네가 뭔데.”

“…네?”



 윤기가 바로 더 낮은 저음으로, 오히려 조금 더 기분 안 좋아진 채 말한다.



“네가 뭔데 괜찮아. 박지민이 네 대신 사과한 것도 아닌데.”



 보조 셰프는 어안이 벙벙했다. 예? 어, 그, 그렇긴 하죠? 지민이 윤기의 옷자락을 잡아온다.



“셰프님 저 이거 재료 헷갈려서 그런데…잠깐 가서 알려주시면 안 돼요?”



 지민이 재료창고 쪽을 눈짓했다. 보조 셰프는 또 한 번 기함했다. 재료창고까지 같이 가자고? 이 바쁜 오픈 시간에? 지민씨가 오늘은 대체 뭘 잘못 먹었나. 오픈 시간에 민윤기가 얼마나 예민한데. 그날 주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침에 정해진다며,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때였다. 아니 내가 살려줬는데 왜 또 다시 전쟁터로 들어오는 거야. 심각하게 눈치 없다고 생각하며 보조 셰프가 다시 한번 몸을 날려 막았다.



“지민씨! 그건 제가 같이 알려드릴….”

“그래. 뭐가 헷갈리는데. 봐봐.”



 윤기가 냉큼 지민을 따라 몸을 돌린다. 이걸 그냥 간다고? 보조 셰프는 보나베띠에 취업한 이후 이례 없이 당황했다. 지민을 따라 터벅터벅 재료창고로 가고 있는 민윤기의 뒷모습을 멍하니 봤다. 영혼이라도 어디 바뀌어왔나. 아니면 어딘가 편찮으신가? 그러나 민윤기는 머지않아 정상임을 증명했다. 뒤를 돌아보며 빨리 재료를 손질하라는, 무언의 사나운 눈빛을 보낸다. 냉큼 전복을 잡았다. 정상이네, 정상이셔.







 재료창고는 그리 크지 않았다. 조그마한 창고를 개조한 것으로써 한 명이 들어가면 딱 알맞았고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찬다. 윤기가 큼, 헛기침을 했다.



“헷갈리는 게 뭔데.”

“이거요! 나물이 헷갈려요.”



 지민이 바닥에 늘어선 나물들을 보여준다. 정리를 해두지 않은 것이 요리를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헷갈릴 만도 했다. 윤기는 끄덕이며 간단히 알려주었다. 이번엔 이거만 가지고 나오면 돼. 나머진 끝나고 다듬을 거니까. 네! 그에 지민이 끄덕이며 바로 나물을 챙겨 나가려고 한다. 홀랑 나가려는 지민을 윤기가 손을 덥석 붙잡아 막았다.



“이대로 간다고.”

“네? 그럼요? 뭐 더 가지고 가실 거 있어요?”



 윤기는 말을 잃었다. 집까지 데려가서 꼬시려고 작정한 인간은 어딜 가고. 박지민은 왜 중간이 없냐.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돼. 솔직하게 제 모든 감정을 말하는 게 낯선 민윤기는 뒷목만 매만졌다. 뭐. 딱히 없어.


 영 석연찮아 하는 윤기를 빤히 보던 지민이 베실베실 웃는다. 몸을 베베 꼬더니 쑥스러워하면서도 솔직하게 덤빈다.



“사실 키스하려고 데리고 왔는데…. 저 아직 잘 못하는 거 같아서….”

“…….”

“셰프님은 왜 그런 것도 잘해요? 제가 좀 더 열심히 준비해서…!”



 조금은 달아올라 통통한 입술로 우물거린다. 윤기는 거기서 참지 못하고 지민의 뺨을 붙잡아 잡아당겼다. 유달리 두꺼운 입술은 무는 맛이 났다. 왜 이렇게 달까? 신이 박지민을 만들 때 설탕을 와르르 쏟았나. 그래서 단 말만하고 단 촉감을 주나. 민윤기를 정신 못 차리게 했다. 여태 민윤기가 시식해본 그 어떤 음식보다 자극적이었다.



“웅, 잠, 하, 잠깐만요….”

“왜.”

“이거 불편한….”



 윤기가 안경을 벗어 대충 바닥에 던지고 지민이 들고 있던 야채까지 뺏어 던져둔다. 다시금 입이 맞닿았다. 지민이 윤기의 옷을 잡고 매달렸다. 늘 정갈하던 윤기의 검은 유니폼이 구겨진다. 이제는 완전히 서로밖에 없어서, 서로만 있는 세상에 빠져 들었다. 지민의 등이 문에 닿는다. 열렬히 매달리며 서로 남김없이 혀와 숨을 섞었다.


 푸흐. 지민이 숨이 찰 즈음 윤기가 입을 뗀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숨을 색색거린다. 윤기는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몸을 느끼며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좆됐다. 아래쪽에서 반응이 올 것 같았다. 오픈이 코 앞인데.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셰프님.”



 지민이 윤기를 바라보더니 대뜸 히죽 웃는다. 그러더니 열기 오른 얼굴로 상큼하게 웃으면서 윤기의 가슴팍에 달라붙는다.



“그날 안 잔 거 후회하죠?”

“…….”

“우리 그냥 처음부터 자도 됐을 거 같지 않아요?”



 지민이 아직도 열감이 남아있는 얼굴로 생글생글거린다. 윤기는 빤히 지민을 바라보다 결국 픽 웃고 말았다.



“놀리는 거야?”

“네! 그러니까 제가 그냥 하라고 했잖아요.”

“말하는 게 이제 아주 겁이 없어.”



 윤기가 마찬가지로 지민을 품에 당겨 안는다. 완전히 가슴팍이 밀착됐다. 놀라서 토끼 눈 뜨고 있는 애를 어떻게 바로 잡아 먹나. 양심이 있지. 지난 일이라고 놀리며 한껏 여유 부리는 지민이 귀여웠다. 당시만해도 허우적거리며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니. 지민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선 윤기의 품 안에서 놀았다.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리고 히히 웃는다.



“셰프님 향 좋아요.”



 귀여움 한번 잘 떤다. 윤기가 볼록 튀어나온 지민의 뺨을 한 손으로 꾹 잡았다.



“넌 뭐 방앗간에서 갓 나왔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있어.”



 윤기는 부풀 것 같은 아래를 참으며 영문 몰라 하는 지민을 마음껏 주물렀다. 어째 욕구는 점점 쌓여만 가는데, 기이하게도 가슴 안에 만족스러운 파문이 인다. 역시 이게 맞는 길이었다. 민윤기는 지민의 귓불을 작게 씹었다.



“아야!”

“떡 상태 괜찮나 씹어본 거야.”

“이거 놀려서 그런 거죠.”

“아닌데.”



 지민이 맞지 않느냐며 불퉁거린다. 윤기는 바람 새는 웃음을 흘리며 지민의 뒤통수를 문질렀다. 지민의 젖은 입술을 엄지 손으로 문질러 닦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우니까 관심이 가는 거다. 세기의 사랑인지, 박지민 아니면 안 된다는 건 아닌데 그냥. 이 감정이 얼마나 큰지 고민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박지민이랑 이렇게 같이 있는 게 민윤기는 퍽 마음에 들었다.


 셰프님! 밖에서 민윤기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그에 오히려 지민이 나쁜 짓 하다 걸린 것마냥 화들짝 놀란다. 윤기는 지민의 옷 매무새까지 가다듬어주었다. 그러니 지민이 시무룩한 떡이 됐다. 셰프님이랑 벌써부터 같이 있고 싶어요. 표현 못하는 남자가 말없이 지민의 머리마저 정리해주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에 지민이 황당하다는 듯 보다가도 웃는다. 그저 민윤기가 좋아서. 민윤기도 같이 웃었다. 박지민이 웃어서.







 지민은 일하다가도 자꾸만 주방 쪽을 힐끔거리게 됐다. 안돼. 사내연애는 티 내면 안 돼. 사내연애는 금지라고 했던 민윤기의 입장을 생각하며 한껏 다잡았다. 셰프님 입장이 우스워지면 안 되니까…. 오늘따라 왜 더 잘생겼지. 한눈 파는 지민을 정국이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민이 형은 평소랑 똑같네.


 딸랑. 카운터에서 윤기만 바라보던 지민의 앞으로 손님이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지민이 멈칫했다.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어, 이야 치미씨를 여기서 다 만나네요?”



 유 기자였다. 그는 악의적으로 인플루언서 치미를 꼬집으며 헐뜯는 종자 중 하나였다. 이 미친놈이 여기는 왜 왔지? 지민의 표정이 대번에 싸늘하게 식는다. 지난 번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을 때 제일 신나서 기사를 싸질렀던 인간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식당에 오는 게 별 다른 목적이 있겠습니까, 하하. 먹으러 왔죠 뭘. 어, 그러고 보니, 이야. 지민씨 여기서 정말 일을 하는 거였어요? 자리는 어디로 앉으면 되려나.”



 유 기자는 벌써부터 흥미롭다는 기색이 만면에 가득했다. 이 새끼. 분명히 뜨는 목격담들을 보고 확인하러 온 거다. 또 가십거리를 써대려고. 윤기를 보며 퐁퐁 하트를 찍어내던 박지민은 완전히 사라지고 싸늘한 표정만 남는다. 하. 밥은 무슨. 유 기자님은 시간이 남아도시나 보네요, 하고 이를 드러내려는데.



“아 직원이 아니신가? 자리 안내는 다른 분한테 부탁해야 하나. 여기요.”



 차마 할 수 없었다. 민윤기의 가게였기 때문이다. 보나베띠. 민윤기가 매일같이 가꾸는 곳. 박지민이 사랑하는 민윤기가 사랑하는 곳.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말들을 꿀꺽 삼킨 지민이 메뉴판을 들었다.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주문하고 싶으실 때 불러주세요.”

“아아. 그런데 지민씨, 여기서 일하는 것도 괜찮아요? 뭐. 제가 기억하기로는 음. 여기 셰프님이 조오금 성격이 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기자님이 신경 쓰실 건 아닌 거 같은데요?”

“하하 뭐 그렇긴 하죠. 아니 지민씨 오늘따라 예민하시네. 기분이 좀 안 좋으신가? 저는 그냥 지민씨랑 오래 아는 사이다 보니 오지랖이 좀.”

“주문 지금 안 하실 거면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아이쿠, 주문 해야죠. 어디 보자.”



 기자는 메뉴를 보이는 대로 대충 주문했다. 메뉴판을 집어 드는 지민에게 넌지시 묻는다.



“지민씨 오너 셰프님이랑 많이 친해지신 거 같은데, 혹시 셰프님한테 한번 물어봐 줄 수 있어요? 인터뷰 가능한지.”

“…….”

“아니이, 요새 요리 프로그램들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나가면 또 좋고 하니까~ 나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참, 지민씨한테도 섭외 가지 않았어요?”



 기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운다. 지민은 이 기자가 펜 끝으로 제게 어떤 말들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논란 제조기. 상식 이하 인플루언서들의 실태. 금수저 의혹? 시도 때도 없이 지민을 무능한 재벌 진상으로 취급하며 깔아뭉갰다. 이 악랄함은 상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이런 새끼들이야 한 트럭으로 만나봐서 잘 알고 있었다. 꺼지라고 하는 게 정답이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주문 받았습니다.”



 사랑은 박지민을 참게 했다. 지민은 오픈형 키친에서 요리하고 있는 윤기를 본다. 늘 마주친 적 없었는데, 이번에는 눈이 마주친다. 민윤기는 이곳에 있을 때가 역시 가장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민윤기는 내가 지켜야지. 이 까짓 것. 지민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인플루언서와의 친분으로 뒷광고?>


 역시 씹새끼는 처음 봤을 때 죽여야 한다. 지민이 이를 득득 갈았다. 수 차례 인플루언서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B 레스토랑이 의혹을 받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는 해놨지만 누가 봐도 박지민임을 알 수 있었고, 위치는 보나베띠였다. 활동 안 한지도 꽤 됐는데 거머리가 따로 없었다. 모니터가 기자라도 되는 양 퍽퍽 친 지민은 후우, 심호흡을 했다. 진정해야 한다. 진정을….



“허엉!”



 못하겠다. 속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껏 민윤기를 돕겠다고 있던 건데 피해만 잔뜩 입히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후회도 된다. 진작 고소해서 뿌리를 뽑아놨어야 하는 건데! 식식거리며 기자를 조지지 못한 사실에 대해 통탄하다가, 우울해했다가, 다시금 끝은 민윤기 걱정이었다.


 셰프님은 이 기사 봤나. 나 때문에 평판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기자가 냄새를 맡은 이상 아무래도 당분간은 따라 붙을 게 분명했다. 원래대로라면 선글라스 끼고 찍던 말던 유명인의 삶을 받아들였겠지만 혼자 봐도 아까운 민윤기를 기자들의 악랄한 펜 끝에 굴릴 수 없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돼. 사랑하는 마시멜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쇼파에 눕혀 저를 잡아먹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민윤기를 박지민은 마시멜로로 봤다. 햇살 왕자 박지민은 불끈 결심했다.


 그럼 뭐부터 해야 되지? 지민은 논란이 났을 때의 매뉴얼을 떠올려보았다. 수도 없이 많이 내봐서 잘 안다. 이럴 땐 무조건 눈에 안 띄고 닥치고 있어야 한다. 완전히 조용해질 때까지. 더는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 하니까…. 차근차근 정리하니 가장 효과 좋은 계획이 하나 보인다.



“…….”



 인플루언서인 박지민이 민윤기 곁에서 떨어져있으면 된다. 보나베띠에 나가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논란 종결이다. 그러나 그 해결방안을 떠올리자마자 지민의 안색이 허옇게 둥둥 떴다.


 민윤기를 못 본다고…? 말이 되는가. 그 잘생긴 얼굴을? 어떻게 참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제 내 건데? 내가 물고 빨 일만 남았는데? 민윤기의 얼굴을 못 보는 건 박지민의 인생이 하루하루 낭비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 맙소사. 벌써부터 민윤기 부족증상이 이는 것 같았다. 지민이 힘없는 환자처럼 풀썩 침대에 엎어졌다.



“…….”



 그래도 셰프님은 내가 지키기로 했으니까…. 어차피 셰프님은 나 좀 안 본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실 테구….


 박지민은 민윤기보다 자신의 사랑이 더 크다고 여겼다. 슬프지만 아마 맞는 사실일 테다. 좋다고 졸졸 쫓아다닌 것도 자신이고, 꼬시려고 덤벼든 것도 자신이고. 민윤기는 그저 잠깐 흥미가 동한 입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제 막 관심이 생겼다고도 했으니.


 지민이 앓는 새끼강아지마냥 끙끙댔다. 그리고는 폰을 들어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문자를 보냈다.



[저 일이 생겨서 내일부터 가게 못 나갈 거 같아요(우는 병아리 이모티콘)]



 원래 왕자는 공주를 위기에서 멋있게 지켜야 하는 법이다. 흑. 지민은 어른스럽고 멋있는 모습을 민윤기에게 보여주겠다고 결심하며,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근데 벌써 보고 싶어….







***







 대체 뭘까? 상견례가 실패한 거 아니에요? 아니면 상견례가 아니라 고백하려던 거 아니에요? 차였나?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요. 저승사자가 따로 없는데 지금. 보나베띠 직원들이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민윤기의 외출에 냉큼 모여들어 토의했다. 그만큼 현재 민윤기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최소 일주일은 잠 못 잔 듯 푹 꺼진 안광은 칼을 들면 흠칫하게 한다. 요리할 재료를 썰 게 아니라, 사람을 썰 것만 같았다. 너무 무서워요. 하필 또 유니폼이 검은색이라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 보였다. 게다가 예민함은 더 극치를 달해서, 직원들은 실수하면 그 날로 목숨은 내놔야 한다 하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은 박지민이 보나베띠에 등장하지 않고 나서 생겼다.


 민윤기는 끊었던 담배가 간절해졌다. 말랑말랑한 하얀 얼굴을 생각하면 속이 바짝 타다 못해 가슴속이 답답하게 긁혔다. 못 나온다는 연락에 놀라 연락하니 풀 죽은 목소리로 집안에 일이 생겼다고 했다. 무슨 일인데. 물어보니 지민이 별 거 아니라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제 다른 일도 좀 서서히 배워보려구요. 여러 가지 공부도 해보고!


 이게 되도 않는 연기는 왜 하지. 민윤기는 박지민의 말을 단 한줌도 믿지 않았다. 분명 무슨 사정이 생긴 것 같은데, 그걸 자신한테 말해주려 하지 않는다.


 사실 박지민을 실토시키는 방법이야 쉬웠다. 박지민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민윤기에겐 그랬다. 어차피 그들과의 관계에서 아쉬운 건 없었고, 무슨 협박을 해서라도 얻어내면 됐다. 말로 사람을 후벼 파는 거야 자신 있었다. 네가 이런 되도 않는 연기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그러나 박지민한테는 그 방법이 적용되지 못했다. 박지민이 할퀴어지면 민윤기의 마음 역시 할퀴어졌다.


 왜지? 그냥 박지민이 알짱거리는 게 좀 귀여워서 관심이 가는 것뿐인데. 예쁨 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예쁘고 뭐. 애가 성격이 깜찍하잖아. 제 근간이 흔들릴 만큼 마음을 주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 치미의 딜리셔스! 새로운 글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최근에 입맛이 많이 없어서 리뷰를 올리지 못했어요ㅠㅠ 죄송해요

요새 날씨가 다시 또 많이 춥죠…? 그래서 그런가 눈물이 많이 나는 거 같아요

최근에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구요

옆에 있던 친구가 알려주기를 bts의 마이크드롭이라는 노래래요. 밥이 없으니 노래라도 추천해드릴게요

벙벙….

(사진)




댓글 201


[오빠ㅠㅠㅠ 왜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얼굴 너무 상한거 같은데ㅠㅠㅠ 무슨 일 있었어요?]





 박지민의 블로그가 업로드 되자마자 윤기는 바로 클릭해 들어갔다. 같이 올린 셀카에는 한층 더 마른 박지민이 담겨있었다. 그 사실 하나에 민윤기의 가슴 안쪽이 꽉 조여 들었다.



“이럴 거면서 뭘 그만둬.”



 웃기게도 박지민이 그만두면서, 민윤기는 자신이 얼마나 박지민한테 빠져 있는지 조금 깨달았다. 이딴 이상한 글이나 써대는 박지민이 미친 듯이 걱정되고 보고 싶었다. 하 참나. 헤어진 것도 아니면서 이별 감상문 같은 건 왜 쓰는 건데. 추천해준 노래를 찾아 들어보니 비트 시끄러운 댄스 곡이었다.



“어딜 마음대로 헤어져.”



 헤어진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분명 작은 관심이고, 아직 그렇게까지 박지민한테 빠진 건 아니지만 헤어진다는 건 결코 안 되는 일이었다. 잠깐 떨어지는 것도 안 된다. 일분 일초가 아까웠다. 박지민이랑 같이 붙어있었지만 놓친 시간들이 얼만데. 애가 웃는 게 얼마나 예쁜데 맨날 웃겨줘도 모자랄 판에 이딴 글이나 쓰게 해.


 민윤기가 이를 갈았다. 뭔 일인데, 대체. 박지민이 거짓으로 꾸며내는 걸 보니 조금은 봐주고 싶었지만 점점 민윤기의 인내심이 닳아 없어진다. 연락하면 놀란 토끼마냥 이리저리 변명하며 토끼마냥 튀어대는 박지민을 더는 봐주기 힘들었다.


 블로그 속 박지민의 셀카를 저장하며 민윤기는 사냥을 준비했다. 우선 도시락부터 싸서 미끼를 준비하며.







 바로 다음날 다시금 멀끔한 옷차림으로 등장한 민윤기를 보며 보나베띠 직원들은 이제 포기했다. 새로운 사람이랑 상견례 하나 봐. 알아서 하시겠지. 더는 신경 쓰지 말자.


 민윤기는 자신을 둘러싸고 어떤 말들이 나도는지 모른 채 박지민을 어떤 메뉴부터 먹여야 할지 고민하기 바빴다. 김치볶음밥에 계란말이 같은 걸로는 박지민을 살 찌울 수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꼭 자신이 토실토실 해졌을 때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 같았다. 잡아먹는다는 게 똑 같은 목표라는 점에서 완전히 부정할 순 없었다.


 브레이크타임에는 쉬러 가긴커녕 5단 도시락을 쌌다. 정국이 와아, 감탄을 연발하며 주변을 얼쩡거렸다.



“형 누구 주려고요?”

“있어.”

“뭐, 친한 사람?”

“뭔데 옆에서 계속 알짱거리냐. 너 가서 안 쉬어?”

“아 뭐 질문 좀 했다고 엄청 구박하네.”



 기웃거리던 정국이 어깨 너머로 주시하며 연신 보더니 물러난다. 윤기는 만족스럽게 메뉴들을 확인했다. 불고기, 돈가스 튀김, 김치볶음밥, 잡채. 한식으로 박지민이 좋아하는 달달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탄단지 완벽하게 섞인 식단이다. 보온도시락에는 김치찌개를 넣었다. 동그랑땡도 할까. 잠깐의 고민 끝에 재료창고의 문을 열었다.



“윤기 형한테 물어봤는데 안 알려줘요. 아 그 형 요즘 이상해서 말 붙여도 대답 안 해줄 거 같은데. 형이야 맨날 윤기 형한테 깝쳐서 괜찮은 거지 전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기 때문…악!”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던 정국이 스산하게 다가온 인기척에 뒤를 돌아봤다가 비명을 질렀다. 와 미친. 진짜로 심장 삼키는 줄 알았어. 윤기가 팔짱을 끼고 정국을 노려보듯 고요히 응시한다. 저 형 왜 날 저렇게…. 정국이 침을 꿀꺽 삼키는 사이, 조용한 공간에 수하기 너머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린다.



[왜? 무슨 일 생겼어?]



 박지민이다. 희번덕 윤기의 눈이 빛난다. 윤기가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손짓을 한다. 뭐지…? 이 형 눈이 좀 돈 거 같은데. 정국은 저도 모르게 어떤 기운에 압도 당해 순순히 윤기의 말을 따랐다.



“어, 어 아니 벌레가 방금 지나가서.”

[식당에? 벌레가?]

“밖이에요, 밖….”



 윤기가 정국에게 손을 뻗어 폰을 요구한다. 정국이 머뭇거리며 내밀자 윤기는 스피커폰 모드를 틀더니 다시금 정국에게 내밀었다. 본인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한 채.



[아 밖이야? 아무튼 윤기 형한테 말하면 안 돼. 나 해외 가는 거. 알았지? 보나베띠 다른 직원들한테도 말하지마.]

“…….”

[그런데 진짜 친한 사람 누구. 내가 이대로 어떻게 비행기 타고….]

“박지민.”



 윤기가 정국의 폰을 낚아챘다. 낮은 저음이 으르렁거리듯 말한다. 전화 너머로 헉, 숨을 급히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정국도 움찔했다. 여태 본 민윤기 중 제일 흉흉하다. 아까 완두콩으로 강아지 만들던 인간이랑 같은 사람 맞나…?



“그 비행기 타지마. 경고했어. 그대로 거기 있어. 지금 갈 테니까.”



 윤기가 전화를 끊고 정국에게 돌려준다. 그리고는 냉큼 주방에서 쓰던 모자와 허리까지만 오는 앞치마를 잡아뜯듯 벗는다.



“형, 형 어디 가게요? 가게는요?”

“알아서 해라. 난 지금 가야 되니까.”

“네? 메인 셰프가 가면 주방을 누가, 아니 지민이 형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왜….”



 맛이 갔지, 하는 말은 정국의 입에서 뭉개졌다. 가게에 출근하지 않은 이후부터 하루에 하나씩 민윤기 사진을 찍어달라며 요청하는 박지민이나, 가게 영업은 때려 치고 당장 박지민을 잡으러 가겠다는 민윤기나. 한 가지의 가정으로 생각이 몰린다. 이게 그니까, 박지민의 단순한 팬심이 아니고.



“설마…설마 그 도시락 지민이 주는 거였어요? 그 하트 모양 소시지? 형 그 상견례 상대가 지민이 형이었어요?!”

“상견례는 무슨 헛소리야.”

“아니, 진짜 형 지민이 형 좋아해요!?”



 윤기가 멈칫한다. 관심이 있긴 한데. 바로 답할 만큼 좋아하는가. 그러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모든 감각이 박지민을 붙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네가 알 바 아니야.”



 그대로 민윤기가 정국의 앞에서 사라진다. 정국은 휑하니 사랑 찾아 떠난 민윤기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니긴. 누가 그냥 친한 사람 위해서 도시락을 그렇게 싸고 생업까지 포기하고 뛰어가는 데요. 세기의 사랑꾼 납셨네….









 왕자가 왜 신데렐라를 기어코 찾아 다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보지 않으면 왕자가 죽을 것 같기 때문이었던 게 분명하다. 지민은 민윤기 상사병을 앓았다. 민윤기랑 키스도 하고 손도 잡고 그리고 엉덩이도 좀 만져 보고…. 하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에 속이 탔다.


 그 와중에 윤기가 자신을 그렇게 찾지 않는 것을 보며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형은 역시 나만큼은 아닌가 봐. 실제로도 관심이 조금 생겼을 뿐이라고 하기도 했고. 민윤기는 단 한 번도 박지민처럼 대놓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보나베띠 앞을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기웃거렸을 때, 정국에게 들켰다.


 형 여기서 뭐해요…? 황당하다는 듯 물어오는 정국에 사람 잘못 보셨다고 버팅기던 지민이 결국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 나 안 좋게 기사 쓰던 사람이 노리고 있어서….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기자를 패러 갈 기세의 정국은 지민이 뜯어말린 끝에 얌전히 파수꾼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기자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는 게 계속 필요해! 그러니까 네가 윤기 형을 계속 찍어줘. 기자가 아니라 윤기 형을요? 의아해하는 정국에 지민은 보나베띠가 민윤기고 자체니 아무튼 찍어달라 주장했다. 마지못해 정국이 수락하여 사진을 받아볼 때까지만 해도 꽤나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은 그리 쉽게 일단락되지 않았다. 몰래 갔다가 정국에게 들킨 날. 지민은 깨달았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한 번 가니 또 가고 싶다. 민윤기가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도 좋았다. 살금살금 가서 또 보고 싶었다. 한 번 더 보나베띠의 염탐을 결심하며 갔을 때,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은 차량을 발견했다. 딱 봐도 기자새끼였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건 민윤기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민은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를 유배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비행기까지 타고 먼 나라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못 찾겠지. 거기서 2주일만 버티고 돌아오자. 어차피 부모님이 자선행사가 있으니 잠깐 해외에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으니 마침 딱이었다.


 지민은 눈물을 머금고 비행기표를 받았다. 어차피 윤기 형이랑은 만나면 안 되니까 도착해서 알려줘도 되겠지. 어차피 지금도 딱히 윤기로부터 온 연락은 없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막 공항에 내렸을 때. 정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윤기 형이 도시락 싸는데요? 친한 사람 준다는데.]

“뭐? 도시락?”



 지민이 발끈했다. 친한 사람? 누구? 질투심이 미친 듯이 끌어 올랐다. 그래도 민윤기가 가장 관심 있는 건 나 아니었어? 민윤기를 사회와 단절된 인간으로 치부하고 있던 지민이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댔다. 비행기표 따위 당장 취소하고 민윤기한테 날아가고 싶었다. 가슴이 미어지게 덥고 아팠다. 그런데, 그때 들려온 또 다른 목소리.



[그 비행기 타지마. 경고했어. 그대로 거기 있어. 지금 갈 테니까.]



 그 목소리 하나에 지민은 여태 쌓아 온 다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민윤기 보고 싶어어. 지민이 끌던 캐리어까지 내버려두고 공항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가 왜 민윤기랑 떨어져 있어야 돼. 그 씹새끼 고소해서 조져버릴 거야! 식식댔다가, 또 잠깐 강제 이별한 게 억울해서 힝구 눈썹이 축 쳐진다.



“하아, 뭔데, 여기서 길 잃고 있냐.”



 전화는 전정국 전화만 받을 셈이야? 공항 바닥 다 뛰었네. 윤기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지민의 캐리어부터 잡아 제 쪽으로 끌어 뒤로 보내버린다.


 민윤기는 덩그러니 모두 바쁜 공항 안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있는 박지민을 발견한 순간 온몸에 힘이 쭉 풀렸다.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씨발. 나 박지민 존나 사랑하네. 이게 세상이 말하는 사랑인가 보다. 이 정도는 그냥 사랑이 아니었다. 여태껏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대한 빡침과 불안은 눈 녹듯 없다. 저 조그마한 얼굴이 그대로 여기 있어서, 제 눈 닿는 곳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셰프님?”



 지민이 수그리고 있던 머리를 빼꼼 든다. 박지민의 울망한 눈과 마주친 순간 민윤기는 확신했다. 그냥 관심 정도가 아니라, 제 삶에 아주 푹 박혔다는 걸. 보이지 않는 평생 노예 계약서에 도장이 찍혔다.



“비행기 안 타서 봐주는 거야. 이리….”

“민윤기!”



 윤기가 팔을 벌리기 무섭게 지민이 주인 찾은 강아지마냥 윤기의 품에 와락 안겨 들었다. 폭 안기더니 그대로 훌쩍거리며 목 께에 얼굴을 비볐다. 흐잉. 그리고는 서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셰프님 너무, 헝,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친한 사람 누구예요? 그 도시락, 저 말고 누구요? 그거 주지 마요. 내가 제일 좋다고 해요. 나는 셰프님이 제일 좋은데, 흐으, 셰프님도 나만 제일 좋아하면 좋겠어….”

“네 거야.”



 지민이 정신 없이 윤기의 향을 들이마시다가 고개를 든다. 물방울 맺힌 눈에 윤기의 검은 유니폼이 젖어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윤기가 지민의 허리를 잡은 손에 더 힘을 줬다.



“박지민 너 주려고 만든 거라고.”

“…진짜요? 그, 근데 연락이 없어서….”

“네가 기를 쓰고 피하는데 강제로 감금 시킬 것도 아니고 어떻게 만나. 몰래 찾아가야지.”

“…….”



 민윤기를 만나 부푼 감정에 미뤄두었던 사실들이 지민의 머릿속에서 하나 둘 떠올랐다. 아 맞다.



“그게요….”



 여기까지 와서 더 비밀로 할 순 없다. 지민이 여태 있던 일들을 설명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내가 책임져야죠. 형도 지켜야 하구….”

“하.”



 지켜준다. 성인이 되고는, 아니 아주 먼 과거부터 민윤기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다. 덩치는 제 반토막 정도 되는 게 지켜준다고 발톱 세우고 돌아다녔단다. 복잡한 감정이 윤기에게 밀어닥쳤다. 황당함, 일을 이렇게 만든 그 기자 새끼를 향한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 한 구석에서 차오르는 안도감.



“지민아 네가 그걸 왜 걱정해.”

“그래도 보나베띠인데, 셰프님한테는 엄청 소중한 거고….”

“그딴 거 몇 줄로 망할 장사였으면 진작 망하는 게 낫지. 근데 그 새끼 연락처부터 일단 줘봐.”



 이미 예전부터 미디어 매체와는 전쟁을 했던 윤기가 이를 까득 씹었다. 지민이 입을 벌린다. 멋진 왕자님처럼 지켜주려고 했는데, 보호받는 대상이 애초 필요 없었다며 보호막을 갈기갈기 찢고 나온다. 찢고 나올 뿐이랴, 조지겠다며 가장 앞서 나간다. 윤기가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이미 내 평판 바닥이야. 박지민 네가 가장 잘 알잖아. 그걸 왜 신경 써.”

“그건…그래도….”

“그래. 정 신경 쓰여서 네가 말한 대로 망한다고 하자. 그럼 뭣하면 네 집에서 살림이나 시켜줘. 너 돈 많다며. 이번엔 네가 날 고용해주면 되겠네. 네가 사장해.”



 멍하니 듣던 지민의 뺨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형이 집에서 살림하는 거면 그럼.



“이, 이거 혹시 프러포즈….”

“그거까진 아니고.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로 말한 거야.”

“…네에.”



 혼자 앞장서던 지민이 스스로도 이건 너무했지, 하고 생각했다. 결혼까지는 좀. 아무래도 안지 그렇게 되지도 않았는데. 윤기가 허공을 노려보며 줄줄 이야기한다.



“프러포즈인데 그걸 이렇게 대충할 순 없지.”

“…형 저랑 결혼할 거예요?”

“그럼. 넌 아냐?”



 윤기가 오히려 왈칵 인상을 구긴다. 지민이 입을 떡 벌린다. 가슴이 동동 뛰었다.



“셰프님 저 좋아해요?”

“안 좋아하는 놈 잡겠다고 바로 뛰쳐나오겠니.”

“그냥 관심 아니고?”

“넌 뭐 말로 해야만, 그래.”



 윤기는 짧은 한숨 쉬더니 지민의 뺨을 붙잡는다. 오로지 자신의 품 안에 갇혀있게.



“좋아해. 나 두고 가지마. 버리지도 말고. 그만 상처 줘. 넌 예쁜 말만 해주잖아 원래. 나도 그렇게 해줄게.”



 지민의 가슴속에 뭉쳐있던 어떤 것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흘러내린다. 박지민도 깨우쳤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엔 있다. 아니, 오히려 말이 다 담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 못할 끓는 눈빛과 뜨거운 체온으로 전해오는 감정들 같은 것. 민윤기가 열렬히 전해주고 있는 것들이다.



“가자. 더 드라마 게이 커플로 찍히기 전에.”



 윤기가 다시금 폭 안겨있는 지민에게 속닥거린다. 지민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윤기가 지민의 캐리어를 잡아 끌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바로 한국을 뜰 생각을 하냐. 내가 눈에 안 걸려?”

“근데 저 아예 가는 건 아니었어요! 할머니가 보러 오라고 해서…잠깐 여행 다녀오는 겸…. 이렇게 안 하면 형 보러 갈 거 같아서….”



 지민이 불현듯 윤기의 유니폼 옷자락을 덥석 붙잡는다.



“근데요. 셰프님. 저 비행기도 놓쳤고 셰프님도 오늘 일 안 하는데, 우리 집으로 가면 안 돼요?”

“…….”

“저 진짜 예쁜 말 많이 해줄 수 있는데….”



 신이시여. 이번엔 민윤기의 가슴이 터질 듯 뛴다. 발긋하게 물든 지민의 얼굴이 봄 딸기 같았다. 윤기는 지민의 손을 다시는 놓치지 않게 꽉 쥐었다.







***







 이불에 폭 쌓인 지민이 반쯤 눈을 떴다. 그러더니 새끼강아지처럼 절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아주 미세하고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문이 벌컥 열렸다.



“일어났어?”

“형은 왜 이렇게 체력이 좋아요…요리만 한 거 아니에요?”

“몸은.”



 지민이 일어나 발을 디딘다. 그런데 갓 태어난 밤비마냥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안쪽 허벅지 근육에서부터 퍼지는 고통이었다. 끙.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자마자 민윤기는 불면 날아갈까 바로 허리를 감싸 쥔다.



“이 정도는 안 해도 될 거 같은데요?”

“내가 불편해.”



 유난이란 유난은 다 떨었다. 그래도 그 관심이 싫지 않아 지민이 베싯 웃었다. 그리고는 눈을 장난스럽게 휘며 속닥거렸다.



“그래도 여태 여기서 먹은 거 중에 민윤기가 제일 맛있었어.”



 윤기가 픽 웃는다.



“별점 몇인데.”

“음….”

“고민을 해야 돼?”

“조금 힘들어서…. 그래도 5점 만점에 6점!”

“최고점이네.”



 윤기가 지민을 붙잡아 이마에 입맞춘다. 배고프지 밖에 밥 차려놨어. 먹으러 가자. 요리했어요? 어쩐지! 나는 형한테서 맛있는 냄새가 계속 나는 줄 알았어요. 메뉴 뭐예요? 팬케이크에 에그 스크램블. 지민이 테이블에 앉아 윤기가 잘라준 팬케이크를 포크로 찍으며 씨익 웃는다. 발로 맞은편에 앉은 윤기의 종아리를 장난치듯 살살 건드린다. 윤기가 하, 한숨을 쉬었다.



“내 메뉴는 박지민으로 해야겠네.”

“아니, 그게 아니라, 어제 많이 했잖아요! 나 아직 허리 아픈데….”

“봐봐.”



 윤기가 바로 옆에 앉아 지민의 허리를 매만진다. 지민이 윤기의 입 앞에 바로 포크에 찍은 팬케이크를 들이민다. 주방에서는 내내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진동했다. 두 사람이 같이 만든 사랑의 냄새였다.







***







 치미의 딜리셔스는 한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만에, 어느 날 짧은 글이 하나 올라온다.




[ 치미의 딜리셔스! 새로운 글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


오늘은 날이 너무 좋죠?

(사진)

잠깐 가족들 만나러 해외에 왔어요!

일어나자마자 햇살이 너무 좋아서 밖으로 나왔어요ㅎㅎ

이런 날이면 꼭 따뜻한 스프랑 초콜릿이 생각나는 거 같아요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녹아내려요

자연광에서 사진 찍어봤는데 잘 나온 거 같아요?

요새 매일 가는 미트볼 파이랑 같이 찍었어요! 진짜 크죠?

(사진)



덧글 309


[와 미트볼 파이가 오빠 얼굴만 해요 진짜 마싯어보임ㅜ]

[스프랑 초콜릿…?? 그게 뭔 맛이지]

   ㄴ 걍 가라 오빠 블로그에서 밥 먹으러 왔냐?

     ㄴ 여기 맛집 블로거인데 ㅋㅋ 실드 존나 치네 진짜

[오빠 얼굴이 제일 맛있어요]


.

.

.

.


[내가 해줄게 빨리와]

ㄴ(치미) ㅋㅋㅋ네에






난생 처음 달린 치미의 댓글에 블로그는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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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ㅇㄹ 2025.04.01 11:38
    아니 잠깐만요ㅠㅠㅠㅠ 너무 감동적이고 달달하고 민윤기 진짜 너무 멋잇고..하.. 박지민의 골때리는 귀여움을 감당할수잇는건 역시 민윤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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