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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난춘 3, 完

by 토페 posted Dec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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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노아님이랑 같이 씁니다 3편은 여기서 열람해주세요!

_짭근 소재 주의

_완결 성인편은 여기서 열람 가능합니다











 금기. 으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그렇게 부른다. 지민은 민윤기와의 입맞춤을 지웠다.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까. 민윤기와 자신은 가족이고 가족끼리는 그래선 안 되니까. 엄마와 새 아빠가 알았다간 모든 게 지옥이 될 거다. 우리 아들 여름 방학에 여행 같이 다녀올까. 엄마의 행복을 깨서는 안 됐다. 어떻게 가진 건데, 이제 와서 자신의 손으로 산산조각 낼 수는 없었다.


 없던 일로 하면 모든 게 다시 평화로워질 거다. 우애 좋은 형제로,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리기만 한다면.



“우리 형제잖아요. 없던 일로 하면은.”



 그러나 민윤기는 동의하지 않았다. 



“누가 형제야. 있지도 않은 일 떠들고 다니면 죽는다.”

“……”

“나가. 그만 쨍알대고.”



 딱 그 테이블에서 처음 만난 사이로 돌아왔다. 귀찮고 성가시고 호의적이지 않은 민윤기. 아니, 오히려 처음보다 더 멀어진 것만 같았다. 의식적으로 얼굴을 피하려고 했으니까. 더는 독서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비어있는 자리를 볼 때마다 가슴 한 켠이 휑하니 시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 앞에서나 민윤기를 볼 수 있었다. 윤기 형. 이름 부르려 달싹이던 입술을 지민은 윤기 옆에 가득한 사람들 보고는 다시 다물었다. 일진 친구들이야 그렇다 쳐도 안 보이던 인물이 있었다. 여자친구인가? 민윤기 옆에 딱 붙어서 웃고 있는 얼굴은 친구들이 그 누나 예쁘다며 몇 번 언급해 지민도 알고 있었다.



“아 민윤기 뭐해. 여기 한번 봐봐.”



 여자친구가 민윤기의 얼굴에 폰을 들이밀며 찍는다. 여자친구랑 이야기하는 얼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책가방 끈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민은 급히 사라지듯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비켜갔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와서 대충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책가방을 방바닥에 던져두고 침대에 머리를 파묻었다.


 정말 모든 게 없던 일이 됐다. 공원 벤치에서 입맞춤 나눴던 건 한 순간의 충동으로 남았다. 가짜 형은 소문 달고 다니던 대로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박지민이 요청했던 대로, 아니 그보다도 더 착실하게 원래의 관계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왜 여자친구와 같이 있는 민윤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빠지질 않는 걸까. 지민은 생각을 털 듯 머리를 흔들었다. 신경 쓰면 안돼. 앞으로 상관하지 말자. 그저 지금 예민해서, 스쳐 지나가는 관심일 거야. 평소대로만 행동하면 된다고, 스스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독서실에서 나온 날. 구석진 편의점 옆 골목길에서 민윤기를 발견했을 때다.



“…….”



 여자친구와 키스하고 있었다. 굳은 채 그 장면 발견한 지민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뛰었다. 웃기게도 너무 당황하니 집이 아니라 이미 걸어온 독서실 방향으로 뛰고 말았다. 하아, 하아. 터질 것 같은 폐부를 느끼며 지민은 가슴팍을 들썩였다. 근데 왜 내가 도망 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당황했다. 집에 가야지. 여기로 다시 왜 왔는데. 그냥, 가짜 친형의 사생활이 갑작스러워서 그랬던 게 분명해.


 지민은 다시금 걸어갔던 길을 또 걸어 편의점 앞으로 향했다. 민윤기와 여자친구는 편의점 앞 노상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이번에도 다른 날처럼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웃으면서 민윤기의 옷소매를 잡는 걸 본 순간. 깨닫기도 전에 발이 먼저 그 앞으로 향했다.



“저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책가방 끈 쥔 손에 긴장되어 땀이 고인다. 황당하다는 듯 미간 찌푸린 민윤기는 의외로 지민의 말을 따랐다. 아이스크림까지 사주고 편의점 안까지 같이 갔다. 그래서 그런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온 충동은 한번 더 일었다.



“같이 들어가요.”



 괜히 긴장되어 심장이 콩콩 뛰었다. 민윤기는 이번에도 별 일 아닌 것처럼 고개 끄덕였다. 그러든지. 그 말에 여태 졸여졌던 가슴이 활짝 펴진다. 지민조차도 인지 못한 초조함과 불안함이 한결 가신다. 먼저 편의점 빠져나가는 민윤기의 등을 보면서 지민은 안도했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아이스크림 까며 뒤쫓는데.



“우리도 거기 갈까?”

“그러던지.”



 민윤기가 저지를 벗어 여자친구한테 줬다. 조금 전, 민윤기의 키스 장면을 봤을 때 느낀 감정과 엇비슷한 게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저거 형이 제일 좋아하는 옷 아닌가? 다시 돌아가려고 준 건가? 나랑 같이 갔다가 또 나갈 건가? 안 되는데. 한 번도 알지 못한 감정이 지민의 발목을 잡고 미끄러뜨린다.


 민윤기가 다시 나가는 게 싫다. 여자친구랑 같이 있는 것도 싫다. 형한테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피 한 방울 안 섞인 자신이 뭐라고. 아까 키스도 했는데. 근데 키스는 나도 했는데. 아니다. 그건 이제 없던 일이 됐으니까. 혼란스러운 생각들의 홍수에 아이스크림조차도 지민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낑낑거리고 있으니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그걸 가져간다. 말없이 민윤기는 아이스크림 녹여 입에 내밀었다.


 고마워요. 웅얼거리면서 지민은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물었다. 뭉뚝한 손끝이 입안에 닿는다. 손 빼고 물리는 윤기를 보면서 아이스크림 입구를 질겅질겅 씹었다. 여자친구한테도 이렇게 다정하게 해줬겠지. 말없이 걷는 윤기 옆에서 지민은 마찬가지로 입을 닫았다. 열면 어떠한 감정이 참지 못하고 말로 올라올 거 같아서. 형 여자친구 만나러 안 가면 안 돼요? 같은 거.






***






 가짜 친형의 연애사정에 신경 쓰이는 감정은 지민을 예민하게 했다. 급식시간이 되면 밥을 먼저 먹고 나가는 3학년을 눈으로 바쁘게 훑었다. 검은 저지가 보인다. 민윤기가 아니라 민윤기의 여친이었다. 품이 남아도는 저지를 입고 친구들과 웃으며 나간다. 지민은 숟가락을 바로 내려놓았다. 입맛이 순식간에 뚝 떨어졌다.



“야 반장 왜 더 안 먹어.”

“나 쫌 속이 별로라서 먼저 교실 가볼게.”



 지민은 교실로 돌아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데 옷 빌려주면 민윤기는 뭐 입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참지 못하고 화가 났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자기 몸은 왜 신경 안 쓰는 거야. 여친 아무리 사랑해도 정도가 있지. 민윤기가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지민은 참지 못하고 바로 교실 문을 박차고 나와 3학년 층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셔츠 차림이다. 가디건을 내밀었다.



“왜 막 옷을 빌려주고 그래요.”

“걔 내 여친인데?”



 민윤기 감기 걸릴까 걱정은 자신만 하나 보다. 여자친구라면서 민윤기는 왜 신경 안 쓰는 건데. 민윤기는 이렇게 다 주는데. 지민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나 가디건을 냅다 펼쳤다.



“야… 이게 맞겠냐.”



 이게 왜 꽉 끼지. 키가 비슷해서 맞을 줄 알았는데. 심지어 제 가디건은 고등학교 들어가면 클 거라고 지민이 평소에 입는 사이즈보다 더 큰 것으로 구매한 거였다. 다, 다음 쉬는 시간에 다시 가져올게요. 기다려요! 훨씬 더 큰 체육복을 대체품으로 잡았다. 그런데 이것마저 여유공간 하나 없이 꽉 붙는다. 자신이 봐도 영 아니었지만 감기 걸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민윤기를 애써 무시하고 허둥지둥 교실로 돌아왔다. 괜히 쪽팔려서 귓가가 빨갛게 변했다. 입으라고 바락바락 우기면서 만진 어깨가 매우 단단했다. 운동 별로 하지도 않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크대.




 그날 밤 지민은 기절하듯 자고 말았다. 하루 종일 예민해진 신경 탓이다. 온 머릿속이 민윤기였다. 그런데 문득, 잠결 사이에 누군가 자신을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몽롱한 정신으로도 눈꺼풀을 올렸다.



“…….”

“…….”



 하얀 얼굴이 보인다. 오늘 내내 박지민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닌 그 얼굴이. 형이었다. 황급히 멀어지는 손과 얼굴을 보면서 지민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머리로도 붙잡았다. 급하게 손이었는데, 워낙 크기 차이가 많이 나서 엉성하게 손날 따위를 잡았다. 형이 손을 놓으려고 한다. 잠긴 목소리로 매달렸다.



“…형.”



 싫어. 가지마. 이대로 또 혼자 두지마. 나랑 있어. 여러 가지 딸려 나갈 것만 같은 뒷말들을 간신히 입안에서 씹었다. 그러나 형은 꼭 들은 것처럼 행동했다. 이전보다 더 쏟아져내려 자신의 위로 올라탄다. 어둠 속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야 사이로 희미하게 형의 얼굴이 보인다. 입술을 짓씹었다가 놓으며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거라고. 지민은 윤기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는 것을 본다. 그대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따뜻한 온기가 맞물린다. 두 번째 키스였다. 형인데. 이건 미친 짓인데. 그러나 그런 생각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봐봐. 형은 내가 더 소중하잖아. 누구한테 느끼는지 모를 기묘한 승리감과 함께 가슴이 타듯 뛰었다. 불길이 이는 것처럼 뜨거워진다.


 달라붙는 입술에 숨을 주고 뺏기면서 젖은 소리가 조금씩 울린다. 지민은 홀린 듯 윤기의 입술을 조금씩 빨아보았다. 키스를 알려준 게 형밖에 없어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맞나? 모르겠다. 그저 좋았다. 뺨이 더워진다. 으응. 저도 모르게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올 때쯤. 맨 허리에 손이 닿는다. 그 감각에 지민은 감은 눈을 번쩍 떴다. 히끅. 놀라 숨을 급히 들이켰다. 단숨에 닿았던 감촉이 사라진다. 입을 헤집던 혀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당황한 형의 얼굴이 보였다.



“학교… 학교 같이 가요 내일.”



 또 처음 했던 입맞춤처럼 멀어질까 봐 되는 대로 붙잡았다. 민윤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간다. 여전히 침대 위에는 온기 남아있었다. 민윤기를 볼 때마다 내내 느낀 불안이 눈 녹듯 증발해있었다. 참 단 꿈이었다.







 모처럼 상쾌한 아침이다. 지민은 간밤 일이 꿈이었는지 되새김질해보고는 아침부터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일어나서 연 핸드폰 화면에 좋았던 기분은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였다.



[저녁에 가족외식 할 거니까 여기로 오렴. 아빠랑 엄마는 먼저 외출한다]



 고급 한우 식당과 여러 가지 후보가 그 아래 와있다. 지민은 기계적으로 답장했다. 좋아요. 네, 거기로 갈게요.


 어떻게 이걸 잊을 수 있지? 민윤기와 박지민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낭떠러지로 추락한 기분이었다.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검은 저지를 입고 있는 민윤기의 여친을 본 순간부터는 더 최악이 됐다. 밀어내라고 할 자격도 없으면서 뭘 질투한 건데, 난. 친형 여자친구를 왜 질투하는 건데.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반장 어디가? 나 이거 모르겠어.”

“아 나 잠깐만 다녀와서 알려줄게.”



 그럼에도 민윤기를 향한 걱정은 멈출 수 없었다. 문제집 들고 물어보는 반 친구도 뒤로하고 꾸역꾸역 사이즈 안 맞는 체육복을 민윤기의 교실에 가져다 놓았다. 나오면서 3학년들이 희한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그 사이에는 민윤기가 자주 어울려 다니는 일진들도 있었으나 신경 쓰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그냥 형이랑 사이 좋은 친동생으로 보일 테니까.






***







 가족 외식은 꽤 흔한 일이었다. 대부분은 지민과 부모님 3인의 약속이었으나 종종 민윤기도 같이 오긴 했다. 아마도 새 아빠가 꼭 참석하라고 언질을 넣는 듯했다. 지민은 먼저 식당에 도착해있었다. 요즘 공부는 어떠니. 힘들진 않고? 네, 괜찮아요. 이번 시험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판에 박힌 대답을 하니 새 아빠는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한지로 된 문이 드르륵 밀리고 민윤기가 나타났다. 오늘 제가 마음대로 건넨 체육복을 입고.



“빨리빨리 좀 다녀라.”

“네.”



 민윤기는 대충 대답하고 제 옆에 앉는다. 지민의 목울대가 꿀렁 울렸다. 자아가 두 개로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지킬 앤 하이드가 이럴까? 엄마 절대로 힘들게 하면 안돼. 말 잘 들어야 돼. 뼛속 깊이 새겨져 있던 착한 아이 자아와 민윤기가 신경 쓰이는 자아가 서로 싸운다. 새 아빠 옆에 앉아 웃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지민의 머릿속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아들이라고 삼았더니 형제끼리 붙어먹어? 더럽게. 당장 이혼해. 새 아빠와 갈라서고 그대로 웃음을 잃은 엄마. 그리고 그 모든 대가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지민아 왜 그랬어. 엄마 힘들어서 죽고 싶어.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 어렸을 때 술 마시고 들어온 엄마는 종종 자신을 붙들고 힘겨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때로 돌아가게 되는 거다. 그것만은 안 되는데. 젓가락을 쥔 지민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민지민. 괜찮겠지?”



 새 아빠가 말했다. 지민은 내내 웃었다. 요즘 민윤기와 함께할 때마다 새로 태어난 자아를 죽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민윤기가 일어난다.



“민윤기.”

“화장실요.”



 안 좋아지는 분위기에 지민이 슬쩍 눈치를 봤다. 저도 잠깐 다녀올게요! 급히 발 뻗어 윤기를 찾아 나서니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은커녕 구석으로 들어가 담배를 물고 있었다. 형, 들어가요. 붙잡았으나 날카롭게 치뜬 눈이 거부했다. 씨발 한두 번 보냐?


 이러면 또 아빠가 화날 텐데. 윤기 형 맞으면 안 되는데. 지민은 스스로를 위협에 방치하는 윤기를 보면서 불안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지민을 자극했다. 착한 아이로 엄마 옆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 민윤기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 갈피를 모르는 제 마음.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이.



“뭐가 문제에요. 형 이름도 아니고 제 이름 바뀌는 건데. 이럴 줄 몰랐어요? 아니잖아요. 알고 있었잖아요.”

“…….”

“두 분이 행복하면 된 거죠. 저 열 살 때부터 벌써…”



 거기까지 쏟아내다가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무언가를 눈치 챈 형의 눈이 보인다.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형….”



 동시에 상처 받은 눈빛. 이러고 싶었던 게 아닌데. 날카로운 눈이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한다. 지민은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형은 그대로 외면하고 멀어진다. 붙잡으려 손 뻗다가 멈칫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결국 민윤기를 그대로 보내고 말았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만 보다가, 완전히 형이 사라지고 나서야 바닥에 나뒹구는 체육복을 집어 들었다. 발자국이 찍힌 옷을 툭툭 털었다. 역시 이런 결혼은 하면 안 된다고 말렸어야 했던 걸까? 지민은 그대로 무릎 굽힌 채 주저앉아 체육복에 얼굴을 묻었다. 형의 냄새가 남아있었다. 눈물 자국이 체육복에 번져간다. 지켜주지 못해서. 동생인 게 미안해서.






***






 민윤기가 증발했다. 말 그대로 증발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민윤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새끼는 어디를 간 거야. 새 아빠는 걱정보다도 형을 비난했다. 엄마는 아빠 앞에선 윤기 형을 걱정하는 듯한 말을 흘렸으나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오로지 박지민만이 민윤기의 행방을 걱정했다. 형. 어디간 거야. 발을 동동 구르던 지민은 결국 3학년 교실을 찾았다.



“어, 너 윤기 동생 아니야.”



 윤기와 무리 지어 다니던 일진들 중 한 명이다. 안녕하세요. 종종 교실에 왔었지? 밝은 데서 보니까 더 귀엽게 생겼네. 민윤기의 친구는 지민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 내렸다.



“혹시 윤기 형 어디 있는지 아세요?”

“민윤기? 모르겠는데?”

“선배님들이랑 같이 있지 않았어요?”

“여친 생겼는데 뭐. 혼자서도 존나 잘 돌아다니지 걘.”



 일진이 히죽거린다. 지민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감을 꾹 참고 허리를 꾹 굽혔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막 돌아가려는데 일진이 지민의 팔목을 덥석 붙잡는다.



“형이랑도 놀까? 윤기 동생이면 내 동생이지. 어때. 형이 재미있는 곳 많이 아는데.”

“제가 요새 바빠서요. 다음에 같이 형이랑 인사 드릴게요.”



 지민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을 붙잡아 뺐다. 다시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일진이 다시 붙잡을 수 없게 빠른 속도로 교실을 나왔다. 민윤기 소식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이렇게 무작정 사라져버릴 사람이 아닌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교실로 돌아오니 반 친구들이 급히 지민을 붙잡았다. 왁자지껄 난리가 났다.



“반장 돌았어? 일진 선배들을 왜 찾아가!”

“잠깐 물어볼 게 있었어. 나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괜찮긴 뭘 괜찮아. 그 선배 존나 더럽게 놀기로 유명한데 뭔. 아 그러고 보니 그 선배 왜 요즘 안 보임? 민윤기 선배.”

“뻔하지. 존나 양아치 새끼가 뭐 하겠어. 편의점에 자기 무리들이랑 죽치고 있는 건 봤었음. 씨발 폐급 인생들 꺼져주면 안 되나.”

“화승아.”



 화승이 멈칫한다. 일진 양아치들을 맨 앞에서 주로 욕하던 애였다. 매번 다정하고 두루 여러 반 아이들을 챙기는 박지민이 정색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다. 피씨방을 가자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주던 반장이다.



“함부로 말하지마. 윤기 형이랑 대화해 본 적도 없잖아. 그 형이 직접 삥 뜯는 거 봤어? 아니잖아. 그 형 편의점에서 나 아이스크림 사준 거야. 내가 삥 뜯었어.”

“…어, 어?”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괜히 윤기 형한테 열폭하지 말고.”



 지민이 조곤조곤 말하고 뒤돈다. 아니 반장이 그 형이랑 언제부터 친했나. 벙 찐 화승이 어버버거리는 사이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중재한다. 아 윤화승 요새 말 존나 심하게 하긴 했음. 지민이 너 그 형이랑 아는 사이었어? 그럼 미리 말해주지. 야아 잘못했다고 해라. 지민은 화승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사과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대충 고개 끄덕이고 의자에 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민윤기가 그 속을 점령한다. 불안과 더불어 양립하는 감정이 있다. 민윤기 보고 싶다. 어디를 간 건지. 허전하게 빠져 버린 퍼즐 한 조각 자리가 너무 컸다. 친형이 아닌데, 가짜 형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고 보고 싶을 수 있나. 가족한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맞나? 혼란스러움이 점점 지민을 찔러왔다.


 불안은 지민을 움직이게 했다. 독서실을 빠지고 골목을 헤집었다. 검은 아디다스 저지. 교복 자락. 유달리 하얀 얼굴을 찾아 민윤기가 갔을 법한 곳을 전부 헤집었다. 공원, 편의점, 버스 정류장, 피시방 근처. 같이 걸었던 곳을 모두 돌아다녔다. 혹시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을까 숨이 벅차게 뛰어 다녔다. 하아, 하아. 민윤기만을 찾아 헤매며 지민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었다.


 형의 여자친구가 싫고. 형이 여자친구랑 손을 잡으면 화가 나고. 형이 나랑만 같이 있었으면 좋겠고. 형이 이렇게나 걱정되고 형이 조금이라도 다쳤을까 불안한데. 이렇게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과연 가족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일까? 형이랑 했던 키스를 다시 떠올리는 게 진짜 동생이 맞냐고. 입을 비빌 때 가슴이 쿵쿵거리는 게 정상이 맞아? 가슴이 답답하다. 매번 간신히 삼켜냈던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죽여도 죽여도 또 차오르고 만다.


 나는 윤기 형을 좋아하는 게, 그러니까 가족으로서가 아니고.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지민은 우산을 고쳐 쓰고 다시 한번 골목을 살펴보려 했다. 그때였다.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형 찾았어. 집에 왔으니 돌아오렴. 안도감과 함께 한달음에 내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무사한 하얀 얼굴을 봐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조차 아까웠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 여는데.



“왜 껴드는데요. 뭐 엄마라도 돼?”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커다란 말다툼 소리가 났다. 황급히 신발 벗어 던지고 지민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잔뜩 화가 난 새 아빠와 놀란 엄마가 보였다.



“야 이 새끼야!”

“더럽게 바람난 주제에 소름 끼치게 씨발!”



 새 아빠가 형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지민은 그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 행동에는 어떤 생각도 끼어들지 않았다. 본능이었다. 계산도 없이 민윤기를 지켰다. 그게 박지민의 마음이었다. 경악하는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나 지민은 제 등 뒤에 있는 하얀 얼굴을 보호하는 게, 다시는 그 얼굴에 피가 맺히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엄마를 외면했다.



“안 돼요! 돌아왔잖아요. 때리지 마세요. 제발요.”



 새 아빠는 차마 자신을 때릴 수는 없어 손을 내리고 만다. 엄마는 이 상황을 믿기지 않는 눈으로 보다가, 새 아빠에게 다가갔다. 민윤기 너 이 새끼 방으로 썩 꺼져! 그 얼굴 보이면 가만 안 둔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외치는 새 아빠에 지민은 그제야 안심했다. 이번에는 민윤기를 지킬 수 있어서. 그리고 엄마의 불쾌한 신호를 눈치챈다. 와서 분위기를 풀라는 무언의 신호다. 지민이 맨날 납작 엎드리며 지킨 신호.



“…죄송해요. 갑자기 끼어들어서. 저도 방으로 들어가 있을게요.”



 그러나 외면했다. 지민은 꾸벅 인사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위해 이상적인 가족을 바라는가. 엄마. 가족끼리는 지켜줘야 한다면서요. 저도 그래서 지켰어요. 형을. 민윤기를.


 마침내 지민은 어떠한 확신이 섰다. 어느 쪽으로 제 선택이 기울지.







***







 형은 외출금지령을 받았다. 부모님은 둘이 기분전환 겸 외출을 했고, 박지민은 독서실에 갔다. 아슬한 균열 위로 평범한 일상이 흘렀다. 베이지 니트에 주머니 푹 넣고 걷던 지민은 편의점 앞에서 멈칫했다. 윤기와 어울려 다니는 일진들이 그 앞 노상 의자에 있었다. 피해 가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그들 중 한 명이 지민을 보자마자 아는 척을 했다.



“윤기 동생 아니야? 와 여기서 또 보네. 뭐 사러 왔어?”



 윤기가 잠적했을 때 3학년 교실에서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지민은 어색하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에 흘끔거리며 지켜보기만 하던 다른 일진들까지 말을 붙인다.



“야 이제 얼굴 자세히 보네. 니네 형이 동생이라고 존나 싸고 돌잖아. 어디, 와 솜털이 보송보송하네. 1학년이라 그런가.”

“박지민이지? 지민이 뭐 먹을래? 형이 사줄까? 얼굴 본지도 꽤 됐는데 편하게 불러.”



 언제 봤다고 친한 척 어깨동무를 해온다. 지민은 어정쩡하게 붙잡혀 당황했다가,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찮아요.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근데 지민아. 민윤기 여친님께서 개취해가지고 모셔가야 될 거 같은데. 너네 형이랑 연락 되냐?”

“…형이요?”

“요 며칠 개지랄을 떨더니 이젠 또 연락이 안 된다. 요새 존나 지 꼴리는 대로 살아, 아주. 여친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



 외출금지령이지만 언제 민윤기가 새 아빠 말을 잘 들었는가. 또 튀어나갈지도 모르는 게 형이었다. 민윤기가 여자친구와 만나는 게 싫다. 일진들은 고민하는 지민의 얼굴을 보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지민은 충동적으로 뱉었다.



“…형 외출금지령이라서요. 제가 대신 갈게요.”

“그럴래? 그럼 우리야 좋지. 니네 형이 맨날 말도 못 붙이게 해서 존나 궁금했는데.”

“형이 그랬어요?”

“어. 지 동생은 좋은 대학 갈 거라고 근본부터 다르다고 아주 유난이란 유난은, 씨발 존나 떨었지. 갈까?”



 왜 3학년 교실로 올라갔을 때 아무도 말을 붙이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지민은 그대로 어깨를 내준 채 일진 무리에 끼어 걸었다. 도착한 곳은 지하로 이어지는 허름한 노래방이었다. 낡고 습했다. 여기도 윤기 형이 자주 다니던 곳인가. 낯설어할 새도 없이 일진은 지민을 끌고 안 쪽으로 밀었다. 노래방 가장 구석진 방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리가 다 드러나는 치마를 입은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이. 그 중에 형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야 얘들아 내가 존나 재미있는 거 데려왔다.”



 일진이 지민의 등을 밀어 방 안으로 넣고 문을 닫는다.



“어! 윤기 동생이네!”



 형의 여자친구가 바로 아는 척을 해왔다. 여자친구는 취하긴커녕 멀쩡했다. 지민이 당황하여 바로 취했다고 말한 일진을 봤다. 아아 그새 깼나 보네. 일진이 히죽 웃는다. 낚였구나. 깨닫자마자 일진이 다시금 지민의 어깨에 팔을 감아왔다.



“지민이 술 마셔본 적 있어?”

“…아니요.”

“없어? 진짜 병아리 같네. 입술도 튀어나와선. 삐약삐약.”

“괜찮아요. 저 그런데 안 취하셨으면 전….”

“에이. 왔는데 바로 뺀다고?”



 우우. 윤기 동생 진짜 센스 없네.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낸다. 야 애기한테 뭐 하는 거야. 깔깔 웃으며 윤기의 여자친구가 지민의 볼을 꼬집었다. 길다란 네일이 지민의 볼을 아프게 푹 찌른다. 지민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니 일진이 잔에 술을 따라 지민의 앞으로 내밀었다.



“안 마시면 못 보내주지.”

“그래, 윤기 동생아. 이 형 무서운 형이야. 분위기 좋게 좋게 해야지.”



 다른 일진이 지민의 옆에 앉은 일진을 가리킨다. 우물쭈물하던 지민은 탈출구가 없음을 인지했다. 결국 양손으로 술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처음 마셔보는 술은 무척이나 썼다. 그대로 뱉고 싶을 만큼. 미간이 절로 찡그려진다. 그것을 보고 옆에 앉은 일진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왜 써? 아기 입맛이네. 그러더니 신선한 반응이 재미있다며 새로운 잔을 따라 권했다.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 사이 누군가 노래를 예약해 시끄러운 반주가 퍼졌다. 지민의 옆에 붙어 앉은 일진은 노래에 관심 없다는 듯 지민에게 말을 붙여왔다. 반주 때문에 시끄러워 얼굴을 귓가에 딱 붙인다. 기분 나쁜 숨결이 느껴져 지민이 어깨를 움츠렸다.



“민윤기가 왜 동생한테 끔뻑 죽는지 알겠네. 나 형밖에 없어서 모르거든. 원래 동생들은 다 이런가?”



 어깨를 감싼 손이 볼을 주물럭거렸다. 지민은 벗어나려 했지만 악력이 꽤 큰 탓에 쉽지 않았다.



“아니 네 형이 좀 재수 없긴 하거든. 집에 돈 좀 있다고 그런가. 예전에 여친도 먹고 버릴 거 나 달라고 했더니, 씨발 그건 또 쳐내대. 근데 넌 귀엽네.”

“…이거 놔주시면….”

“형이 좀 예뻐 해주는 게 싫어? 같은 남자끼리인데 뭐 어때.”



 함부로 볼을 매만지던 손이 이제는 지민의 뒷목까지 옮겨간다. 지민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에 일진은 귀엽다며 웃고는 어딜 가냐며 허리까지 척 감는다. 와, 지민인 허리가 존나 얇네. 부러지는 거 아냐? 지민은 습하게 달라붙어오는 숨에 몸을 뒤틀었다. 이건 아니다. 놔달라고 저항하는 순간이었다.


 쾅. 안 그래도 낡은 노래방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 민윤기!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 지민은 멍하니 보고 있었다. 몇 잔 마신 게 취기가 올라오는 건지 바로 인지가 안 됐다. 윤기의 눈은 바로 지민에게 꽂혀 들어갔다. 정확히는 지민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 쥔 손에. 그리고 지민의 바로 앞에 널려있는 술잔들에.



“이 씨발 새끼가.”



 잠깐 사이 옆에서 둔탁한 마찰음이 들린다. 지민이 정신 차렸을 땐 제 옆을 주물럭거리던 일진은 민윤기 발에 까여 바닥에 늘어져있었다. 꺄악. 높은 비명이 들린다. 이 씨발! 일진이 벌떡 일어나는데, 민윤기는 테이블에 있던 잔 말아 쥐고 그대로 머리에 내리쳤다. 억. 일진이 이마 감싸 쥐며 휘청거린다. 붉은 선혈이 손바닥 밖으로 번진다. 지민은 그대로 놀라 굳어버렸다. 눈앞이 아찔했다. 민윤기는 그것만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쓰러진 일진의 멱살을 붙잡았다.



“정한아, 얌전히 살라고 했는데 왜 내 말을 자꾸 안 들어 처먹어, 씨발. 내 동생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옆에 끼고 좆같이 호빠 취급을 하네? 뒤지고 싶어?”

“민윤기 너 이 새끼, 아 씨발!! 돈 좀 있다고 가오 잡는 거 개역겨웠어 씨바새끼야. 너 이거 살인미수야! 내가 씹, 그냥 넘어갈 거 같아?!”

“어. 어디든 가서 불어. 나도 더는 그냥 못 넘어가겠다. 니 여태 가게 턴 거 여자애들 술 먹이고 강간 친 거 죄다 불 거니까.”



 그 뒤는 마구잡이로 폭행이 이어진다. 민윤기가 그대로 올라타 얼굴을 내리친다. 정한의 얼굴이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간다. 야야, 씨바. 민윤기 말려! 이 새끼 눈깔 돌았잖아! 야! 죽는다고! 다른 일진들이 다가와 말렸으나 민윤기는 모든 걸 뿌리치고 또 주먹질을 해댔다. 여자친구는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러다 일어나선 굴러다니던 마이크 하나를 가져와 내리치려는 순간, 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안 돼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윤기의 등을 붙잡아 매달렸다.



“하지 마요. 그만해요. 제발….”



 배터리 뺀 로봇처럼 그제야 윤기가 뚝 멈춘다. 뒤를 돌아 지민을 본다.



“놔.”



 지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윤기의 얼굴이 복잡했다. 놓으라고. 끝내 윤기가 매달린 지민을 힘으로 떼어내려는데, 지민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형 잘못되면 어떡해… 이, 이런 거 때문에 다치는 거 싫어요… 제발 그만해요…..”



 쿵 윤기의 손에서 마이크가 떨어진다. 삐익 귀를 찢는듯한 이명이 들린다. 하. 윤기가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머리를 거칠게 털고는 그대로 지민의 손을 붙잡고 이끈다. 바닥에 널브러진 일진이나, 놀란 여자친구나 안중에도 없었다. 습하고 어두운 노래방을 나오자마자 윤기는 지민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거 뭐야.”



 윤기가 미간을 찌푸리며 지민의 볼을 감싼다. 지민이 흠칫했다.



“별 거 아니에요. 손톱에 그냥 좀 긁혔어요.”



 윤기가 다시금 열이 받는지 노래방 쪽을 다시 바라본다. 지민은 다시금 윤기가 튀어갈까 봐 냉큼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 그 선배가 그런 거 아니에요!”

“선배는 씨발.”

“…아무튼 그 사람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군데.”

“…….”

“누구냐고.”



 지민이 입을 꾹 다문다. 눈을 도르륵 굴린다. 윤기는 그 노래방 안에 있던 인물들을 되짚어보는 듯 침묵하더니 한숨 쉰다.



“택시 불러줄 테니까 타고 가.”



 근처에 돌아다니는 택시를 하나 잡았다. 지민을 밀어 넣고 기사한테 주소를 말했다. 정작 본인은 쏙 빠진 채. 어? 기사님 잠시만요. 저 그냥 내릴게요. 지민이 다급하게 탔던 택시에서 내린다. 이미 골목길 안쪽까지 사라진 윤기를 붙잡았다. 담배를 피려는지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형, 형은 왜 같이 안 가요.”

“내가 왜 가.”

“형도 위험하잖아요. 같이 가야죠. 저랑 같이 가면 아빠도 모를 거예요. 그냥 독서실에서 조금 더 늦게 들어온 줄 알 테니까….”



 외출한 부모님이 돌아왔다면 아마 피곤해서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민은 발을 동동 굴렀다. 걱정 한 아름 담긴 눈에 윤기는 가만히 눈 마주치다 지민이 붙잡은 소매를 털어낸다. 눈에는 무언가를 억눌러 참는 빛이 역력했다.



“박지민. 정신차려. 니 저기서 남창 취급 받은 거 나 때문이야. 이런데도 내가 걱정 돼? 네가 할 건 화내고 욕하는 거라고. 날 걱정할 게 아니고.”

“그게 왜 형 때문이에요. 그냥 그건, 그건 운이 좀 없었을 뿐이에요. 독서실에서 나오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여서….”

“하, 운? 운이라고? 아아 그래. 너랑 내가 형제가 된 것도 운이 존나 없어서 그런 거네. 그걸 몰랐네.”

“…말 그런 식으로 하지 마요.”

“그러니까 건드리지마. 제발 더 걱정 안 해줘도 되니까 꺼지라고. 가족놀이 하고 싶으면 너나 실컷 해. 난 어울려줄 생각 좆도 없으니까.”



 윤기가 발걸음을 뗀다. 또 멀어진다. 가시 돋친 말로 상처 주고 멀어지는데, 지민은 어쩐지 그 모습이 도망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 형은 맨날 스스로를 상처 입힐까. 그게 형이 평생 택한 방법이라 그런 거야? 지민은 민윤기를 놓을 수 없었다. 다시금 지치지도 않고 또 다가간다. 윤기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하. 윤기는 이번에도 붙잡는 온기에 결국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전 형 포기 못해요.”

“진짜 지민아, 씨발 작작해. 네가 나랑 잘 거야? 어? 왜 자꾸 쫓아다녀.”

“…….”

“네 말대로 해주고 있는데 왜 넌 협조 안 해.”



 후회하지 말고 가라고. 윤기는 지민이 붙잡은 손을 털 힘도 없어 보인다. 참는데 모든 힘을 다 쓰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지쳤거나.



“형이 제 말대로 하는 게 뭔데요?”

“그걸 몰라서 물어?”

“가자고 하는 것도 안 가고 아빠 앞에서 담배 피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말 안 듣고. 여자친구한테 옷 빌려줘서 감기까지 다 달고 오고 가출까지 하는데 뭘 제 말대로 해주는 거냐고요.”

“…….”

“집으로 같이 가요.”



 지민은 윤기를 쥔 손에 힘준다. 윤기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고 말았다.



“진짜 모르네.”

“…….”

“아무 것도 없는 사이인 척 하고 있잖아. 없던 일로 해주고 있잖아. 좆 세우는 거, 박고 싶은 거 꾸역꾸역 참고 있잖아. 네가, 씨발 성까지 바꿔서 내 동생이 된다는데 깽판 안 부리고 가만히 두고 보고 있잖아.”



 지민이 우뚝 굳는다. 윤기는 차라리 후련한 듯 보였다. 그리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다.



“가족끼리 발정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

“넌 가서 착한 아들 해. 멀쩡히 보내줄 때 가. 내가 더는 못 참고 너까지 끌어내리기 전에 가라고.”



 지민은 민윤기가 온전히 토해낸 진심을 마주한다. 그 안에는 수 없는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뜨거운 것이 있었다. 박지민이 갈피를 못 잡아 수도 없이 헷갈린 것들이 똑같이 있었다. 형도 나랑 같았어. 결코 우애라고 할 수 없는 이것들이 똑같잖아. 여기까지 왔으면 더 이상 우리는 숨을 곳도 없잖아. 답장으로 제 진심도 윤기에게 펼쳐 보였다.


 지민이 윤기의 뺨을 붙잡아 키스했다. 입술이 맞닿아 눌린다. 눈을 크게 뜬 윤기가 지민의 어깨를 꽉 붙잡아 밀어내려고 했으나, 지민은 기를 쓰고 달라붙었다.


 나도 이렇게 뜨거워, 형. 그 어떤 것보다 형이 더 중요해졌어. 그 마음이 전해진 건지, 머뭇거리던 윤기가 지민의 뒤통수를 헤집듯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 바짝 붙였다. 지민이 했던 키스는 장난인양 윤기의 혀가 지민의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래가 비벼진다. 흥분감에 달 뜬 공기가 서로에게 눅진하게 녹는다. 지민이 숨이 벅차 끙끙거리자 윤기는 입을 떼었다가, 금방 다시 붙였다. 여태 닿지 못한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듯 급하게 얽혔다. 거의 지민의 허리가 꺾여질 쯤이 되어서야 윤기가 지민을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발간 볼로 숨을 진정하는 통통한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집 가요, 형.”



 지민은 윤기를 팔 벌려 안았다. 체구 차이 탓에 안았다기 보단 폭 안겼다. 윤기는 제 품에 쏟아져 들어온 지민을 꽉 끌어안았다. 금기는 깨지고 무너졌다.







***







 다행히 노래방에서의 일은 묻히고 지나갔다. 요새는 또 다른 소문이 돌았다. 3학년 일진 선배들 갈라섰다던데? 민윤기 형 버려졌대. 민윤기 형이 왕따 당할만한 위치는 아니지 않냐? 그런데 이게 되네. 무섭다, 일진들. 윤기가 무리에서 버려졌다는 소문에 지민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몰랐다. 아아…그래? 왕따 엔딩이 아니라 스스로 죄다 버려버린 엔딩이긴 했지만. 아무튼. 맞은 일진은 그간 저질러놓은 일들이 더 두려운 모양이었다.


 민윤기는 여전히 독서실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옆에서 잤다. 똑같이 독서실을 와서 옆자리에 앉아가지고. 신기하게도 지민이 공부를 다 할 때쯤 머리 털고 일어났다. 다 했냐. 가자. 알람 시계 맞춰놓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매번 이렇게 때 맞춰 일어나지? 지민은 얌전히 고개 끄덕이고 가방 쌌다. 집 가는 길, 두 인영이 나란히 걷는다. 며칠 동안 사라져 있었던 아디다스 저지가 다시금 윤기의 어깨 위에 걸쳐져 있었다.


 집안 분위기도 평화로웠다. 새 아빠는 요새 지민과 같이 독서실을 다닌다는 윤기를 보고 매우 만족했다. 엄마는 가끔 지민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지민은 생글생글 웃으며 부러 외면했다. 제 희생 필요한 건 나서서 하지 않았다. 민윤기 말이 맞았다. 도리 저버린 두 사람이 바라는 연극에 더 어울려줄 필요 없다. 성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부모님은 조금 당황했으나 새 아빠는 곧 끄덕였다. 지민이 네가 그게 좋으면 그렇게 해라. 엄마는 처음에 당황한 듯 했으나, 새 아빠를 보면 금방 잊고 그쪽으로 갔다. 지민은 차츰 깨달았다. 엄마한테도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아니었구나.



“졸업하면 자취방 구할 거야.”



 윤기는 대수롭지 않게 툭 말했다. 지민의 방에서 강제로 나란히 문제집을 펼쳐놓고 있을 때였다.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편해지겠네요.”

“뭘 하는데 편해져.”



 지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오른다. 윤기가 통통한 지민의 귓불을 툭 쳤다. 공부나 해라 쪼꼬미. 지민이 민망해서 왁왁 반항했다. 저, 저 막 그렇게 응큼한 생각 안 했거든요? 응 알지. 윤기가 혀 차며 은근 미소 띤 얼굴로 문제집 보고 있으니 지민이 욱했다. 제 말 듣고 있어요? 사람이 말을 하고 있잖아요. 어어. 들려. 귀 있는데 듣고 있지. 성의 없이 대꾸하는 윤기에 열이 받는다. 이씨. 노려보던 지민이 눈을 또르륵 굴린다. 그리고는 냅다 윤기의 뒤에 매달려 뒷목에 쪽 입 맞췄다.



“이 정도나 생각했는데.”



 윤기의 펜이 뚝 멈춘다. 지민은 이겼다는 듯 흐흥 웃고는 다시금 문제집을 본다. 공부를 한다고 가져온 고소한 우유를 머금었다. 그런데 냅다 뒷목이 붙잡혔다. 어? 의아할 사이도 없이 곧장 시야가 뒤집힌다. 맞닿은 시선 보고 움찔했다. 낮게 가라앉은 민윤기의 검은 눈빛은 다른 의미로 돌아있었다. 지민은 당황했으나 입 맞추는 윤기에 홀린 듯 응했다. 조금 겁났으나 형이라 좋았다.




(이하 성인본 생략)




윤기가 픽 웃으며 지민의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빨리 졸업해야겠네. 자취방 구하려면.”


지민이 아직은 발간 볼로 웃었다. 서로의 눈에 똑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그대로 다시 입 맞췄다. 이로써 영원히 서로에게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