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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자마자 산 위로 향했다. 동굴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윤기가 지민을 부축하여 이동하면 그 끝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돌탑이 놓여있었다. 윤기에겐 익숙한 곳이었다. 작은 손으로 지민과 같이 쌓아 올린 아버지의 묘.
“옆에 놓아주세요.”
지민이 부모의 유품을 가리켰다. 윤기가 머뭇거렸다. 양반의 묘가 백정 옆이라니. 이런 모욕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지민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게 지금 최선일 테지. 결국 윤기가 칼과 노리개를 돌탑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그 위에 흙을 퍼 올렸다. 양반 체면 말이 아니다. 옆에 있는 돌탑이 나아 보일 만큼 형편 없다.
“아버지, 어머니.”
지민이 작은 흙더미에 절을 올린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휘청거릴 뻔하여 윤기가 급히 부축했다. 지민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찌르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마저 절을 올렸다. 이어 그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
“소자,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해 송구합니다.”
밤새 윤기의 품에서 울어 조금 부은 얼굴로 다시금 투명한 물이 흐른다. 한 순간에 모조리 몰살당했다. 부모도, 친우도, 종들까지. 그러나 지민은 지난 밤처럼 흐느끼지 않고 금방 옷자락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불효자는 평생 이 죄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겠나이다. 벌은 나중에 달게 받겠습니다.”
“…….”
“약조를 지키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약조란 혼인을 말하는 건가. 아무래도 이런 누추한 곳에 부모를 모셨으니 죄책감이 들 터였다. 그래서 윤기는 유독 지민의 표정이 좋지 않다고 여겼다. 지민이 잠시 눈을 깊게 감았다 뜬다. 그리고는 다시금 윤기에게 일으켜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윤기는 작은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었다.
윤기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묘에 절을 올리고 바닥에 엎어져 우는 자신을 쓸며 다시 일으켜준 건 박지민이었는데. 그때 이 작은 손을 잡으며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두려운 앞날을 극복해내겠다는 다짐, 허망한 마음을 달래주던 다정함. 그런 것들을 알기에 윤기는 지민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지민 역시 그 손을 풀지 않고 그저 내주었다.
“형님도 아버지께 인사 드려야지요.”
“…넌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거냐.”
“네. 가야지요.”
지민이 고개를 들어 해를 돌아본다.
“앞으로 가야지요. 남은 건 모두 이곳에 묻었습니다. 그러니 꼭 가야 돼요.”
슬픔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지만, 살아야만이, 그 슬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기 역시 지민의 다짐이 느껴져 제 아버지의 묘에 절을 올렸다.
허리를 펴고 일어나 자신을 기다리는 도련님을 본다. 순진하고 말간 얼굴. 지민은 모든 것을 이곳에 묻었다고 했지만 윤기는 제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 사내라는 게 말이다, 꼭 자기 마음 준 정인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거다. 술에 취해 떠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순간 귀를 메운다.
지켜야지. 어떻게든. 윤기는 그대로 한쪽 무릎만 펴고 앉아 지민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라. 해가 짧다며. 어여 가야지.”
“무거울 터인데….”
“어릴 때는 덥석덥석 잘만 업히더니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고.”
“저는 다 형님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산이 험하지 않습니까. 또 그때처럼 가벼운 무게도 아니니 통증이야 조금 참고 내려가면….”
“나도 너 생각해서 그런 거다. 잔말 말고 업혀라. 해 저물길 기다릴 거냐? 말 많은 도련님아.”
지민이 머뭇거리다 이내 등에 업힌다. 넓은 등은 예나 지금이나 지민이 한 품에 폭 들어찬다. 목을 감싸는 팔을 느끼며 윤기는 가뿐히 땅에서 일어났다. 이런 주제에 무슨 무겁다고 걱정을 해. 우리 도련님 잘 먹고 다니는데 왜이리 가볍나. 안전한 곳에 가면 지민이 좋아하는 달달한 유과를 가득 입에 물려주어야겠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윤기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뒤에 매달린 무게가 불면 날아갈까 허벅지를 꽉 쥐며.
마을에서 성주로 가는 길은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 부지런히 말을 타고 간다면 그리 멀지 않은 위치다. 윤기는 마구간에 묶여 도망가지 못한 말들 중 한 마리를 데려왔다. 지민을 먼저 앉히고 자신이 그 뒤에 타 자리잡았다.
“그러고 보니 형님 말을 다루는 법은 언제 아신 겁니까?”
“한 번 해보니 잘 되던데.”
“…진짜 형님이야말로 무과에 갔어야 합니다.”
지민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윤기는 동그란 뒤통수를 피식 웃으며 쓰다듬었다. 말하면 말하는 대로 의심 한 점 없이 다 믿는다. 복슬한 머리칼이 손에서 가볍게 흩어진다. 꼭 강아지를 쓰다듬는 거 같다. 그에 지민이 돌아본다.
“왜 그럽니까?”
“그냥 만져봤다. 왜. 안 되느냐.”
“그건 아니온데….”
“꽉 붙잡아라.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내게 몸을 많이 기대라.”
윤기가 지민의 등에 바짝 몸을 붙인다. 거의 안기다시피 한 자세가 되었다. 고개는 숙여라. 땅을 보며 중심을 잘 잡아. 그리 말하며 끈을 잡고 양팔로 지민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둔 자세로, 윤기는 발을 굴렀다. 말이 길게 울음을 내며 출발한다. 흙먼지가 뒤로 휘날린다. 텅 빈 마을을 두 사람을 태운 말이 날래게 빠져나간다.
어느덧 해가 중천을 넘어 서서히 지어간다. 윤기는 거리를 가늠했다. 성주는 박 대감과 함께 사냥을 간다는 목적으로 몇 번 들락날락했으므로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박 대감은 실제로 양반들과 어울리며 사냥을 했고, 민윤기는 그곳에서 박 대감이 붙여준 병사와 함께 기마술, 검술, 낙법 무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배웠다.
“다리는 어떠냐.”
“괜찮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많이 나은 거 같아요.”
지민이 씩씩하게 말했다. 윤기는 천으로 대충 꽉 묶어놓은 지민의 다리가 신경 쓰였다. 괜찮긴. 피를 쏟아 기절할 정도로 깊게 박혔었다. 말을 타고 오는 반동 때문에 계속해서 통증이 올라올 거다.
“조금만 참아라. 곧 도착이다.”
“더 빠르게 가도 됩니다. 걱정 마셔요.”
지민이 가슴팍을 탕탕 친다. 윤기는 픽 웃으며 지민의 머리를 푹 눌렀다. 다시 고개 숙여라. 그리고는 이전보다 조금 속력을 낮춰 말을 몰았다.
지나가며 만난 마을은 죄다 텅 비어있었다. 침략이라도 당한 것만 같았다. 나뒹구는 소쿠리와 짚신들, 핏자국까지 낭자되어 있으니 폐허가 된 자신들의 마을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윤기는 지민을 더욱 감싸듯 몸을 붙였다. 사람 하나 없는 마을을 금방 빠져나오니 곧 아는 길목이 나온다. 해는 아직 저물지 않으니 예측대로라면 성주에 도착하고 오늘부터는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거다.
“도착이다. 이제 고개 들어도 된다.”
“벌써 말입니까?”
마침내 성곽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그 끝에 붉은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속도를 낮추어 그 앞으로 다가갔다. 들어가기만 하면 됐으니.
그러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관문 앞에는 이미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윤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민 역시 그 광경을 발견하고는 사람들이 왜 다 저기…, 하고 중얼거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온갖 고함들과 욕설이 난무했다.
“문 열어어! 이 개놈들아! 우리는 다 죽으란 말이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우리 애만이라도 제발!”
“문을 대체 왜 안 여는 건데! 여기 이 사람들 다 죽일 생각이야! 이런 쌍놈의 자식들을 봤나!”
“돌아가라! 관문은 이미 봉쇄되었다! 너희들이 들어올 일은 없으니 다 썩 물럿거라!”
성곽 위 병사들이 외친다. 우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라고 두드리는 손길들이 점점 더 거세진다. 윤기와 지민은 할 말을 잃었다. 관문을 닫는다는 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몰살시키겠다는 뜻이다. 군중 사이에서 비단 옷을 입은 자가 크게 외쳤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양반이다! 여기 있는 천 것들과는 다르단 말이다! 나는 좌상대감 외가의 셋째 아들이다! 당장 이 문을 열어라! 감히 너네가 누구의 길을 막고 있는지 아는 거냐! 들어가기만 하면 네 놈들은 다 죽은 목숨이야!”
병사들이 그 말에 흠칫하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몇몇이 아래로 빠져나간다. 얼마 뒤 관복을 입은 사내가 올라온다. 지민도 아는 얼굴이다. 아버지와 종종 같이 있던 자다. 양반이 되고 싶어 일방적으로 박 대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이들 중 하나였다.
“아이고, 양반 나으리가 있으신 줄은 모르고 그랬습니다.”
“그래! 어서 이것 좀 열어라.”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성곽 위가 웅성거린다. 아래도 난리가 났다. 다들 하나같이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그러나 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위에서 덜렁 끈과 나무로 엮어 만든 사다리가 내려온다.
“이걸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야야, 거기 꺼져!”
“우리도 살려주시오!”
“그래. 괴물이 섞여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찌 문을 열어! 저리 비켜라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나와라!”
양반이 사람 사이를 헤집으며 사다리를 향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도 좀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외친다. 지민이 그 광경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양반은 괴물이 아니 된답니까? 저리 받아줄 수 있다면 문을 열면 되는 것 아닙니까. 목숨에 경중이 어디 있답니까.”
윤기도 그를 보고 줄을 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저 사이에 있다면 자신도 한낱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겠지. 그러나 윤기는 제 품에 있는 이를 본다. 말에서 내려 지민의 손을 붙잡는다. 지민의 화살까지 죄다 챙겼다.
“가자.”
“형님! 지금 뭐 하는….”
“너도 양반이지 않느냐. 너는 들어갈 수 있다.”
“싫습니다!”
“그런 거 따질 때냐? 해가 곧 질 거다.”
이제 서서히 노을 빛이 깔리기 시작했다. 시간 내에 말을 돌려 몸을 피할 곳을 찾는 건 무리다. 자신은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 그러나 다리까지 다친 지민은 위험하다. 어떻게든 피할 곳을 마련해야만 했다. 윤기가 지민의 팔뚝을 붙잡고 끌었으나, 지민이 발에 힘을 주며 버틴다. 끙끙거리며 다친 다리로 어찌하지 못하고 주춤주춤 끌려간다.
“싫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형님은 그럼 어찌하고요. 형님이랑 더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왜이리 고집을 부려. 지금 네 다리로는 이게 최선이다.”
“가지 않을 겁니다!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지민이 아예 주저앉는다. 윤기를 똑똑히 올려다보며 말한다.
“저한테는 이제 형님밖에 남지 않았는데 제가 어찌 형님을 두고 갈 수 있습니까. 저는 죽더라도 형님과 함께할 겁니다.”
“아집 그만 부려라.”
“이게 아집 같습니까?”
지민이 윤기를 쏘아본다. 두 눈에 진심이 가득하다. 윤기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민을 바라보다가, 외면하며 아예 들쳐 업었다. 바동거리는 몸짓은 윤기 앞에서 일말의 힘도 주지 못했다. 형님, 윤기 형님! 지민이 불러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 윤기는 지민을 살리는 일이 중요했다. 지민을 업고 군중 무리를 파고 들었다. 그때였다. 사다리 앞에서 소란이 일었다.
“양반이 대수야?! 죽게 생겼는데! 갑시다!”
사람이 덥석 사다리에 오른다. 한 명이 하니 그 뒤를 따라 우수수 오른다.
“아니 이놈들이 미쳤나! 썩 꺼져라!”
“으아악!”
병사들이 끝까지 도달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대로 떨어진 사람은 고개가 기괴하게 꺾여 비명도 없이 숨을 거뒀다. 그 뒤로도 다른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부러짐에도 다시 또 오른다. 이, 이 새끼들이! 병사들이 창으로 사람들을 찌르며 떨어뜨린다. 그 사이 양반이 끝에 도달했다. 양반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도와주며 급히 외친다.
“이제 사다리를 치워라!”
“예! 사다리를, 억!”
“올라가라! 올라가!”
평민들이 틈을 파고들어 올라온다. 한 명이 올라가니 그 뒤로 우수수 사람들이 뒤따라간다. 아수라장이다. 이 새끼들 다시 내려가지 못해! 어차피 못 들어가면 죽은 목숨이다! 올라가자! 와아아! 평민들은 병사들을 밀어내고 끊임없이 올라간다. 함성과 비명이 온데 뒤섞여 빗발친다. 다투면서 성곽 아래로 사람들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윤기는 발걸음을 멈췄다. 빌어처먹을. 지민 역시 놀라 몸을 굳혔다.
그리고 그 사이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에 서서히 어둠이 깔린다. 해가 지고 있었다. 윤기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마을까지는 지척이다. 금방 괴물들이 이곳까지 올 게 뻔했다.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가자!”
성곽 위에서는 전투가 한창이다. 승기는 평민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밀어붙이는 평민들을 감당할 수 없는 탓이다. 문이 열리길 기다릴까? 그럼 지민은 살 수 있을 텐데. 갈등의 기로에 놓인 윤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난다. 지민이 윤기의 등에 딱 붙어 크게 외쳤다.
“형님! 이곳은 아닙니다. 다른 방도가 있을 겁니다. 여기서 우선 벗어나야 합니다. 저들이 이미 사람들을 그냥 죽게 두었다면 이 주변은 괴물들이 많을 거여요. 어서 도망가야 합니다.”
“…….”
“저를 믿으세요.”
윤기는 입술을 질끈 씹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자는 거냐.”
“여기에 나루가 있을 겁니다. 그곳으로 가서 배를 타는 게 나을 거여요.”
자주 와본 길인 길이므로 이미 나루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윤기가 끄덕이며 반대 방향을 향한다. 그리고 그때, 함성이 더없이 크게 울린다. 와아아! 관문이 열렸다. 동시에, 땅이 울린다. 윤기는 땅이 울리는 곳을 본다.
키에에! 그륵! 그르륵. 괴물들이 관문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으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관문 안으로 쏟아지고 막고 있던 성곽 위 병사들도 당황하여 대열이 무너진다. 괴물들이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열린 성곽 문 안으로 괴물들이 빠르게 파고들어 병사, 양반 상관 없이 입질을 해댔다. 윤기가 타고 온 말 역시 소동에 놀라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윤기는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발을 재게 놀렸다. 나루까지 멀지 않고 괴물들의 시선이 저곳에 쏠려 있으니 어서 가야 한다. 숨 하나 쉬지 않듯 뛰어 나루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키에에. 텅 비었던 집 채에서, 마루 밑에 숨어있던 괴물들이 빠져 나와 뒤에 따라붙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마침내 나루터에 도착했다. 배들이 묶여있었다. 그리고 이어 비명이 들린다.
“으아악!”
윤기의 것도, 지민의 것도 아니다. 다른 어떤 이였다. 지민을 업고 달리는 윤기를 쫓아 행낭을 매고 허겁지겁 따라오고 있었다. 윤기는 지민을 잽싸게 배에 올려놓고 묶여있는 배의 끈을 풀었다.
“나도, 나도 같이 가오! 살려주시오!”
행낭을 맨 사내는 혼비백산하여 윤기와 지민이 있는 곳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윤기는 그를 대번에 씹고 배를 물가에서 민다.
“사람이 오고 있습니다!”
“상관없다.”
“똑같은 생명입니다! 보고도 보지 못한 체 한다면 좀 전의 관군과 다른 게 무엇입니까!”
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민이 활을 들어 멀리서 뛰어오는 괴물들의 머리에 화살을 쐈다. 사내근처까지 다가온 괴물의 머리가 꿰뚫려 그대로 픽 쓰러진다.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말하며 윤기가 배를 다시 밀었다. 배가 뭍에서 서서히 밀린다. 그 사이 사내가 물에 뛰어들었다. 철벙거리며 물가를 건너 오더니 윤기와 같이 배를 민다.
“허억, 허억 감사하오! 으, 으아악! 괴물들이 오고 있소!”
괴물 다섯이 그 뒤를 맹렬히 쫓아 코앞까지 온다. 두 사람이 미는 힘에 배가 더욱 빨리 물에 뜬다. 사내가 먼저 배에 올라탔다. 하반신이 다 젖을 만큼 배를 밀고 나서야 윤기가 그 위에 올라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크르륵! 괴물 한 마리가 다리에서 뛰어 윤기에게 달려든다.
“형님!”
활이 바로 윤기 뒤의 괴물의 머리에 박힌다. 뇌수인지 모를 것이 터진다. 그르르륵. 괴물이 그대로 강바닥에 가라앉는다.
“오, 올라오시오!”
사내는 배에 매달린 윤기에게 다가가 끌어올려준다. 물에서 괴물들이 헤엄쳐 다가올까 경계하던 지민은 괴물들이 그대로 물에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활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윤기에게 다가가 반대쪽 팔을 잡고 끌어올린다. 으윽. 급하게 움직이며 다리의 상처가 터진 건지 지지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그럼에도 윤기를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드디어 윤기가 배 위로 온전히 올라왔다. 온통 푹 젖어있었다.
키에에에. 나루에서 괴물들이 울부짖는 괴기한 음이 울린다. 어느덧 나루에는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몰려서 있었다. 괴물들끼리 세 사람의 배를 노리며 한데 뭉쳐 움직이다 강에 빠지기도 한다. 강의 물결을 따라 배는 그로부터 천천히 멀어진다. 세 사람은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응시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달빛이 길을 인도하듯 물결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