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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22:05

[슈짐] 야담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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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위령제>





_트리거워닝 잔인한 묘사










야담夜談







 지민이 눈을 떴다. 윽. 다리에서부터 타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미간을 찡그리다, 눈앞에 있는 얼굴을 보고는 숨을 잠시 멈췄다. 민윤기였다.



“…….”



 창백하게 흰 얼굴이 숨소리조차도 없이 자고 있었다. 지민은 자신을 옥죄듯 꽉 감싸 안은 팔을 느끼며 몸에 힘을 풀었다. 가장 안심되는 품 속이다. 반듯한 이마선과 눈썹을 보고 있는데, 홀연 눈 감기 전에 본 장면들이 머릿속을 관통한다.


 덕대에게 달려들어 뜯어먹던 사람들. 죽었다 살아난 여인. 뱃속이 뚫린 채 달려오던 괴물들.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끔찍한 비명과 괴물이 된 사람들의 괴상한 음성.



“우욱!”



 지민이 윤기의 품 안에서 다급히 벗어났다. 입을 틀어막고 구석에 처박혀 허리를 숙였다. 멀건 물만 올라온다. 그럼에도 헛구역질은 멈추지 않는다. 얼굴이 시뻘개진 채 눈물을 매달고 있는데, 돌연 등을 누군가 부드럽게 두들겨준다. 지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일어난 건지 윤기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뒤에 같이 주저앉아있었다.



“하아….”

“다행이네. 헛구역질 하는 걸 보니 괴물이 된 건 아니고.”

“…고맙습니다.”



 지민이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아직도 제게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는 역병이라니.



“형님…이게 꿈입니까?”

“그리 믿고 싶으시겠지만 현실이야.”

“덕대는.”



 지민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덕대는 죽은 거지요?”

“뭐…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거고 죽었다고 하면 죽은 거겠지. 다만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어디서 누군가를 뜯어먹고 있을 테지만.”

“진짜구나….”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이야. 지민이 헛웃음을 지었다. 윤기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민의 곁을 지켰다. 지민이 윤기를 올려다본다.



“…형님은 그것들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겁니까?”

“볼 리가 있니. 그런 흉측한 것들을 어디서. 나도 처음이다.”

“허면 제가 괴물이 되면 어찌하려고 절 데리고 있었습니까? 저도 덕대와 같이 거기 있었습니다.”

“네가 괴물이 되면 어쩔 수 없지. 나도 같이 물리는 거다.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윤기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제 목숨이 걸린 일인데 남일 말하듯 태연하다. 지민이 잠시 말을 잃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에서 진심을 발견한다. 아마 그때부터, 어릴 적에 목숨을 준다고 했던 그때부터 저 진심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민윤기는 그 어떤 상황에도 자신을 지켜내려고 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가면서.



“…윤기야.”



 경어가 아닌 어투다. 둘만 남아있는데도 이렇게 말한다는 건 양반으로서 말하고 있는 거다. 민윤기의 주인으로서.



“내가 물리거나 괴물이 될 것 같으면 버려라. 나를 지키려고 하지도 마라. 알겠느냐.”

“…….”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윤기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한다. 지민은 제 확고한 의지를 담아 윤기를 마주본다. 고집 센 저 얼굴. 민윤기도 이기지 못하는 거다. 백정을 제 시동으로 맞이한다고 며칠을 단식하여 얻은, 부모도 못 이기는 것 아닌가. 심사가 뒤틀린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윤기의 입매가 비틀린다.



“처음은 지킬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안 됩니다. 도련님이 멍청하게 서서 죽는 걸 보면 몸이 절로 움직입니다.”

“…그리 가만히 서서 죽진 않을 거야.”

“아무튼 간에요. 그럼 저도 똑같이 제안하나 하지요.”

“그래. 무엇이냐.”

“나중에 제가 청하는 것 세 가지를 들어주십시오. 단 그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셔야 합니다.”

“아니 나는 두 가지를 말했고 그 중 한 가지를 거절하였으면서 윤기 너는 세 가지나….”

“싫습니까? 그럼 마시던지요.”



 싫으면 마는 거지요. 도련님이 저보다 역병에 들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전 상관없습니다. 도련님과 같이 역병에 걸려 죽든, 어떻게 죽든. 도련님 곁이면 됩니다. 얄미운 소리를 골라하는 윤기를 지민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시정잡배도 그런 불공정한 거래는 하지 않는 법인데…! 그러나 여전히 뻔뻔한 윤기의 태도에 끙끙거리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알았다. 들어줄게.”

“좋습니다.”



 지민의 입술이 조금 삐죽 튀어나온다. 윤기가 픽 웃으며 지민의 뒤통수를 헤집듯 쓰다듬는다. 그러다 문득 지민의 창백한 안색이 신경 쓰였다. 피를 쏟고 대충 상처를 돌봤으니 통증도 상당할 게 자명했다. 사실상 지민이 깨어난 것이 기적이었다. 허기도 질 텐데, 대충 산적처럼 자란 자신은 그렇다 쳐도 곱게 자란 도련님은 아닐 터다. 요기거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난 밤 사태가 끝났으니 산 사람이 있다면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도움을 청하든,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곳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에 다녀올 거다.”

“아! 그렇다면 저도…윽!”



 황급히 따라 일어서던 지민이 비틀거리며 주저앉는다. 윤기는 혀를 차며 지민을 안듯 들어 동굴 안쪽에 앉혀주었다.



“그 꼴로 어디를 간다고. 여기 가만히 있어라.”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또 다른 아이들도 어찌 되었는지 찾아야….”

“내가 다녀오면 된다. 그 몸으로 따라나서는 게 더 거슬려. 그냥 여기 있어라. 시간이 지체될수록 좋지 않으니.”



 지민이 입술을 질근 씹으며 고개를 수그린다. 잔치 도중 몰래 빠져 나와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윤기의 말이 맞기에 지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옳지. 말도 잘 듣네.”



 윤기가 냉큼 일어난다. 그런데 지민이 떠나려는 윤기의 옷소매를 다급히 붙잡았다. 윤기가 뒤를 돌아 내려다본다. 늘 깨끗한 지민의 눈동자가 불안을 담고 있었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조심하셔야 해요.”



 윤기가 다시금 지민의 앞에 주저앉아 눈을 마주본다. 그리고는 다시금 머리를 툭 쓰다듬는다. 꼭 제 어린 피붙이 대하듯 군다.



“걱정 마라. 널 두고 먼저 죽을 일은 없을 테니.”



 민윤기의 손에는 신기한 약효가 돈다. 커다란 손이 제 머리나 어깨, 등을 만질 때마다 지민은 확신을 받았다. 불안한 마음이 잠잠해지며 언제나 민윤기가 곁에 있어줄 거라는 위안이 생긴다. 지민은 윤기의 손에 제 손을 올려 맞잡았다. 윤기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동굴 밖을 향했다. 저벅거리며 멀어지는 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민은 윤기를 시선에 담고 또 담았다.











 산에서 내려오며 윤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아직 중천이다. 칼을 손에 쥔 채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기던 윤기는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칼을 내렸다. 이토록 소음이 없던 적이 있는가. 아낙네들이 떠드는 소리, 아기가 우는 소리, 아이들이 뛰는 소리. 그 어느 것 하나 없었다.


 윤기는 본격적으로 집이 나오기 시작하자 담 너머를 확인했다. 소쿠리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문이 휑하니 열려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신이 없는 것을 보니 도망을 간 것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리라.


 가장 먼저 윤기는 박대감의 집으로 향했다. 박대감의 집을 향하려면 저잣거리를 통과해 지나가야만 한다. 괴물들과 다시 마주칠 수 있으므로 다시 칼을 추켜세웠다. 그리고 저잣거리의 초입구가 나왔을 때, 윤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지민과 함께 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것이다.


 바닥에 내팽개쳐져 굴러다니는 천과 소품들은 기본이고, 간혹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뜯겨있는 신체 일부가 있었다. 팔인가 다리인가. 거기에 바닥은 곳곳에 아직도 붉은 얼룩이 가득했다. 유혈사태가 일어난 지난 밤의 거리는 참혹하다. 잔치로 활기 넘치던 마을은 한 순간에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있었다. 윤기는 주변을 경계하며 앞으로 침착하게 나아갔다.


 기이하게도 그 소동이 있었던 저잣거리마저 고요하다. 윤기는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 수많은 괴물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람이 물리고 물려 수가 배로 불어났으니 결코 어디 숨기 쉽지 않을 터다.


 마침내 마을에서 제일 으리으리한 박대감의 기와집이 보인다. 박대감의 집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망을 치다 벗겨진 건지 사람들의 벗겨진 신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양반들이 신는 것과 천민들이 신는 것들이 다분히 섞여있었다. 윤기는 늘 굳게 잠겨있었으나, 이번에는 활짝 열려있는 문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



 안은 더욱 참담했다. 엎질러진 잔칫상 음식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윤기는 어질러진 귀한 육전이며 음식들을 밟아 사랑채로 향했다. 그리고 방 앞에 도착하자마자 활짝 열려있는 장지문을 보며 불안한 예감이 그를 엄습했다.


 안에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훤히 보인다. 방 안은 난장판이었다. 도자기는 깨져있었고 박대감이 아끼던 그림에는 피가 흠뻑 튀어있었다. 바닥에는 피가 묻은 칼이 떨어져있었다. 척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명검은 박대감이 하사 받은 것이다. 윤기는 문지방을 넘기 전, 툇마루 밑 신발을 올려놓는 섬돌을 확인했다.


 박대감의 신과, 그 옆에는 지민의 어머니의 신도 같이 있었다.


 윤기는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지민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 짧게 묵념했다. 



“편히 쉬십시오.”



 감사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지민의 고집이 가장 큰 몫을 했지만, 그들 역시 윤기를 받아준 존재였다. 백정을 노비로 두는 것도 박대감 정도니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지민을 이 세상에 낳아준 자들이다. 민윤기 인생에서 가장 보물인 박지민을.


 윤기는 박대감의 검과 지민 어머니의 노리개를 챙겼다. 그리고 확인은 끝냈으니 그대로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먹을 거리와 지민의 상처에 쓸 것들을 챙겨야만 했다. 다행히도 잔칫상을 준비하여 음식은 충분했다. 자루가 꽉 찰 만큼 담았을 때였다.


 으아앙!


 윤기가 멈칫했다. 아기 울음소리다. 황급히 자루를 등에 들쳐 묶고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노비들이 생활하는 방 쪽이었다. 성씨의 방이다. 윤기는 성씨가 최근 박대감이 짝 지어준 다른 노비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생각보다 상대가 마음에 든다며 행복해하던 성씨의 웃는 모습까지 떠오른다.


 윤기는 장지문을 열어젖혔다. 으앙. 정답이었는지 더욱 커다란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 아기는 천이 덮인 바구니 안에 있었다. 윤기가 급히 바구니의 천을 열었다.



“욱!”



 순식간에 올라오는 매캐한 냄새에 윤기가 코를 틀어막았다. 살이 썩은 내다. 그르르르. 희뿌연 막이 쓰인 것처럼 흰 자가 유독 많은 아기가 윤기를 향해 짧둥한 손을 뻗는다. 작은 아기의 팔에는 잇자국이 있었다. 괴물이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어 손만 뻗으며 바구니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윤기는 말을 잃고 말았다. 아이 역시 가리지 않는 역병이라니. 이딴 극악무도한 병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욕지기가 나올 것 같았다. 얼굴을 메마른 손길로 쓸었다.


 그때였다. 햇빛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방 안을 비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아니, 아이의 울음소리보다는 괴물의 비명이었다. 카아악! 윤기는 얼굴을 가리던 손을 치우고 아이를 확인했다.


 아이의 피부가 햇빛에 타고 있었다. 흡사 불이라도 덴 것마냥 괴물은 몸을 꿈틀거리며 햇빛을 피하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칼로 찔러도 죽지 않던 것이, 내장을 쏟아도 죽지 않던 것이 햇빛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 설마. 윤기는 다시 아기의 바구니 위에 있던 천으로 아기를 덮어주었다. 그제야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천을 여니, 다시금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괴물은 빛을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윤기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와 허리를 숙여 바닥에 엎드렸다.


 그르륵! 키에엑! 빛이 들지 않는 툇마루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바구니 안에서 얌전히 잠들어있던 아기와 비슷한 모양새였으나, 윤기를 확인하자마자 괴기한 음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움직일라치면 빛에 닿아 살이 타 들어가니 꼼짝하지 못했다. 


 이것들은 빛이 없는 밤에만 활동한다. 빛이 없는 곳에서만. 그 많던 괴물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이리저리 마을 전체에 흩뿌려져서 밤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윤기는 지민을 숨겨놓고 온 곳을 떠올렸다. 동굴. 윤기의 안색이 순식간에 피가 싹 빠져나가 희게 질렸다. 만약, 만에 하나 그것들이 그곳으로 기어들어가 있었다면.


 윤기는 고개를 들어 해를 확인했다. 마을로 내려온 지 꽤 됐는지 벌써 뉘엿뉘엿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산까지, 지민이 있는 동굴까지 돌아가기에는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씹. 욕을 짓씹은 윤기가 단숨에 튀듯 일어났다. 한 시가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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