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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잭팟 03

by 토페 posted Aug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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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 좋은 한 쌍의 연인처럼 윤기와 지민이 붙어 룸 안으로 들어온다. 마스터에게 주어지는 룸은 호화스러웠다. 명품 가구 브랜드에서 전세계 300개밖에 없다는 쇼파와 테이블. 화려한 전경이 깔리는 뷰와 개인 수영장. 뿐만 아니라 시어터까지 아래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문화생활을 호텔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로 밖을 나갈 필요가 없다. 1박에 몇 억이라며 방송에서 소개된 초호화 호텔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룸이다.


 쿵. 지민은 문이 닫히자마자 진저리 치듯 윤기의 손을 탁 뿌리쳤다. 그러더니 냉큼 거리를 벌리며 하악질하는 고양이처럼 멀리 떨어져 선다. 윤기는 내쳐진 손목을 휘휘 돌리더니 그대로 지민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안으로 슥슥 발걸음을 옮긴다.




“뭐라도 마실래? 와인? 위스키?”

“…….”

“소주? 아니면…나부터?”




 장난스럽게 덧붙인 민윤기는 정말 손님이라도 초대한 것마냥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빈 와인잔을 흔들었다. 지민은 어이가 한 마리의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분을 느꼈다. 민윤기의 평소와 다름없는 무던한 표정은, 얼굴 마주보자마자 물어뜯어놓겠다는 결심을 푹 맥 빠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참. 이런 건 안 변했다.




“너 뭐야?”

“이상하네. 형이라는 걸 까먹을 만큼 시간이 오래 지난 것 같진 않은데.”

“미쳤어?”

“미치긴. 지극히 정상이야.”

“하.”

“우선 마셔.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붉은 포도주가 잔에 담긴다. 윤기는 지민의 몫이라는 듯 내민다. 지민은 팔짱을 낀 채로 짓씹듯 말했다.




“나인 거 언제부터 알았어?”

“보자마자.”

“…어떻게?”

“그딴 허접한 가죽에 몰라보는 새끼가 이상한 새끼 아닌가. 설마 내가 널 몰라볼 거라고 생각했어? 그건 좀 상처인데.”

“개소리 작작해.”




 지민의 눈꼬리가 뾰족하게 올라간다. 헤어진 지 반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과거의 박지민은 민윤기를 애타게 찾아 다녔다. 한 때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이 많았다. 왜 날 떠났는지. 왜 그렇게 배신했는지. 왜 갑자기 날 사랑하게 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날 사랑한 적이 있긴 한 건지. 수십 번의 상상을 하며 민윤기로부터 어떤 대답이 나올지 추측하고 혼자 괴로워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온전히 민윤기와 박지민으로, 현재에서 마주하니 지민은 그 어떤 질문도 꺼낼 수 없었다. 어떠한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 다시 과거에 휩쓸려 갈 것 같다는 예감.


 이미 헤어진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민은 민윤기를 외면하기로 했다. 어차피 민윤기와 설전을 벌일 시간도 없었다. 태형이는 잘 빠져 나갔으려나. 갑자기 끊겨버린 연락이 못내 신경이 계속 쓰였다.




“구해준 은혜는 네가 나 뒤통수 친 거 갚았다고 생각할게. 앞으로 다신 보지 말자.”




 그럼 이만. 지민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윤기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지금 나가면 그대로 다시 잡힐걸. 호텔 안에 경찰 있어.”

“…….”

“범인 잡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나갈 거야. 그 보석 주인이 워낙 지랄 맞아서 내 말도 잘 듣질 않거든. 그러니까 얌전히 여기서 머무르다 사태 진정되면 내보내줄게. 그때 나가.”

“네 도움 필요 없….”

“김태형도여전히 같이 다니지? 걔 소식도 찾아봐 줄게.”




 가장 큰 유혹이 되는 말이다. 민윤기의 달라진 위상이라면 확실히 도움이 될 거다. 지민은 그럼에도 단호했다.




“찾을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이렇게 형이 나 찾아낸 거 소름 끼쳐. 다신 아는 척 하지마.”

“음.”




 윤기가 턱을 매만진다.




“그런데 지민아. 그 문장에는 큰 오류가 있어. 일단 나는 여기 호텔에서 일하고, 여기로 온 건 너니까. 네가 날 찾아온 거지.”

“…탐정이나 하시지 그랬어요? 인과관계 따지는 거 엄청 좋아하시네요.”




 맞는 말이긴 했다. 박지민이 돈에 홀려 민윤기 호텔을 털러 들어온 거니까. 지민은 윤기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반발심이 들었다. 죽더라도 더는 민윤기와 엮이기 싫다. 아직도 민윤기가 사라진 그 날. 배신감에 치를 떨던 감정이 선연했다.



“위험하다니까. 잡혀가고 싶어?”



 어느새 뒤쫓아온 윤기의 지민의 팔뚝을 잡아챘다.



“놔.”

“위험하다고.”

“형이 뭔 상관인데. 아무 상관도 없잖아? 내가 감옥에 영영 갇히든 말든. 어차피 우리는 두 번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아 붙잡히면 형은 계속 보겠네. 티비로 내 얼굴이나 봐. 대서특필로 실리게 할 거니까.”



 윤기는 자신을 칠 듯 노려보는 지민을 보면서, 감상하듯 말했다.



“…아직도 어리네.”



 감정에 솔직해. 그리고 그 말은 지민의 마지막 남은, 분노를 통제하는 이성을 뽑히게 하는 말이었다. 아직도 아기네. 아직도 어리네. 너는 언제 크냐. 민윤기는 연애를 할 적에도 매번 그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저 안 어리거든요? 우리 두 살밖에 차이 안 나요. 어린 취급 그만해요. 발끈해서 반박하면 민윤기는 귀엽다는 듯 머리칼을 쓰다듬고 남은 이야기들을 해주지 않았다. 어린 애는 자라. 그렇게 말하며 형 요즘 왜 힘들어 보이냐는 지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틀기 일쑤였다.



“저기요, 민윤기 씨. 단단히 착각하시는 게 있네요. 제 살 길은 제가 알아서 찾아요. 그쪽한테 품평 따위나 받을 이유 없어요.”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 신원보증 해줄 사람을 내가 못 구할 것 같아? 괜히 내가 남창 역할을 택한 줄 알아? 아무나 붙잡고 침대에서 뒹구는 거 일도 아니야.”

“야.”



 윤기의 얼굴이 굳는다. 지민은 시니컬하게 비웃듯 입꼬리를 한 쪽만 들어올렸다. 그 어떤 일에도 무던하던 얼굴이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니 뭔지 모를 만족감이 떠오른다. 자신으로 인해 화가 나는 민윤기. 균열이 가는 민윤기.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지민은 윤기를 계속 자극했다.



“형이 그렇게 돈 들고 나르고 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거 같아. 가진 거 다 내놓고 파니까 돈 버는 거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 사랑 없이 자는 거 어떻게 하냐고 했는데, 해보니까 생각보다 잘 되던데. 돈이 진짜 좋긴 좋아.”

“…….”

“그리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거든. 이별하니까 사람 온기가 그렇게 고프더라고.”



 민윤기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사라진다. 도발을 하려고 던지는 말이란 걸 안다. 그럼에도 민윤기는 자신을 똑바로 보며 다른 사람을 언급하는 박지민을 보며 가슴 밑바닥이 긁혔다. 이성은 냉정한데, 지민을 만난 뒤부터 주체하지 못할 감정이 자꾸만 그를 흔들었다. 윤기는 가느다랗게 남은 인내심을 붙들었다. 고작 말 따위에 흔들려서 날릴 재회가 아니다.


 민윤기의 속사정 따위 모르는 지민은 상대를 비웃으며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아 그거 하나는 고맙네. 형이랑 만날 때 잔뜩 뒹군 덕분에 일 하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어. 적성에 잘 맞더라고.”



 마지막 남은 민윤기의 이성이 휘발된다. 지민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팔뚝을 쥐고 있는 윤기의 손을 툭툭 쳤다.



“들었으면 이것 좀 놔줄래? 한 시가 바쁘고 비싼 몸이거든. 돈 많은 형이랑 다르게 나는 지금도 이거밖에 없어서.”

“…그래?”



 윤기가 순순히 지민의 팔뚝을 놓는다. 여유롭던 가면은 깨져있었다. 지민을 잡아먹을 듯 보는 시선에 어떤 열기가 이글거리며 불타고 있었다. 바쁘게 살았네, 박지민이.



“나한테 팔아.”

“…뭐?”

“내가 산다고. 비싸게 쳐줄게.“



 생각 못한 대화의 방향에 지민이 당황하여 버벅거리는 사이, 낮은 저음이 한 번 더 울렸다.



“한 시가 비싸고 바쁜 몸이라며. 지금 이 호텔에선 네 앞에 있는 내가 제일 잘 맞춰줄 수 있을 텐데. 아니야?”

“…….”

“싸구려처럼 아무 새끼 침대 들어가는 것보다 나 하나한테 박히는 게 너한테도 좋지 않겠어?”



 지민이 왈칵 인상을 찌푸린다. 무어라 반박하려는 찰나, 윤기가 한 발 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김태형 늦게 찾을수록 상태 안 좋아질 거야.”

“…….”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나만큼 후한 조건도 없을 테니.”



 입매를 비틀어 올린다. 덫을 던져놓은 사냥꾼 같았다. 지민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얼마나 비싸게 쳐줄 건데?”

“뭐. 네가 바라는 건 다 들어주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까. 지민은 입안 살을 씹다가, 제 팔을 붙잡은 민윤기의 체온을 느꼈다. 하.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깊게 감았다 뜬다. 진짜 이 씹새끼. 어떡하면 좋아. 민윤기가 말하는 걸 지키는 사람이라는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열 때문에 쓰러진 자신 옆에서 3일 밤낮을 꼴딱 새며 돌본 인물이니까.



“…빨리 해, 개자식아.”



 지민이 윤기에게 다가간다. 멱살을 잡고 잡아당기며 입술을 붙였다. 폭신한 입술이 얇은 입술에 틈 없이 맞물린다. 유달리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의 입꼬리가 잠시 올라갔다 내려간다. 네가 하는 거 봐서.











(성인 부분 생략)







 지금만큼은 모든 게 용인되는 시간이다. 생각하며 지민은 자신을 그때와 똑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눈빛의 민윤기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민윤기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는데. 그도 이 순간에 취해버린 게 분명하다. 마치 신데렐라가 잠시 무도회에 가는 마법 같은 순간. 그러니 지금은 잠시 착각하자. 꿈의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