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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지구 마지막 날 04

by 토페 posted Oct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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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지민 보호자분 이번에는 일찍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모처럼 시간이 나서 오늘 왔어요. 지민이 간호사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꼬박꼬박 병원을 드나들었더니 이제는 간호사가 먼저 지민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오기도 했다. 병실에 어머니가 누워 계신지 햇수로 어언 4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는 무해해 보이는 작은 얼굴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솟아났다. 이렇게 어린 애가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꼬박꼬박 대고 있다. 있는 가족이라고는 동생밖에 없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얼마나 본인을 혹사시키며 사는지 매일같이 수척해지는 얼굴을 모르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요새는 잠도 잘 주무시고 식사도 잘 챙기고 계세요. 차도도 조금 있구요. 어찌나 일어나실 때마다 그으렇게 지민씨랑 지강씨 자랑을 하시는지. 기특하고 예쁜데 아들 둘이 사이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같은 병실 분들이 지민씨 손주 사위로 들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계세요. 그런데 지민 씨 어머니께서 택도 없다고 하셔서 원성이 요즘 자자해요.”



 잘 지내셨네요. 지민이 멋쩍게 웃었다. 병실에 앉아계시면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검사 결과 자세히 알려주실 거예요. 이어진 안내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낸 지민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익숙하디 익숙한 복도를 건너 4인실 병실에 들어가니 창가 쪽 병실 침대 위에 주름이 많이 진 얼굴의 여성이 누워있었다.


 주무시는 구나. 지민은 그녀를 깨우지 않고 조심스럽게 보호자 간이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의 주름과 흰 머리에서 흘러간 세월이 많이 느껴진다. 사업을 실패한 아버지가 빚만 남긴 채 자살한 이후 충격으로 쓰러지고, 그 후부터 어머니의 시계는 급격히 빨라졌다.


 잠을 자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몸을 혹사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이나 정해진 시간에 짧게 오는 게 고작이었고, 어머니는 그 순간만을 기다린 듯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지민을 기다려주다 들어오면 반겨주곤 했다. 우리 아들 왔니. 많이 고생했지. 암이 온 몸에 퍼져 힘든 와중에도 지민을 정자세로 반겨주었다. 때문에 지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의사가 국내에서는 가망이 없다며, 해외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를 해도, 점차 말라가는 그녀를 봐도 놓지 못한다. 가족만이 지민이 가진 유일한 끈이었다.


 엄마,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사실 제가 오메가로 발현했는데, 그 덕분에 돈을 더 벌어서 빚을 빨리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민은 속에 아주 꽁꽁 감춰놨던, 바라던 미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어머니는 수술을 받아 완쾌했고, 동생은 평범한 대학생활을 누리는 꿈을.



“…….”



 지민은 문득 VIP 손님을 떠올렸다. 유달리 하얗던 그 남자. 그는 너그럽게 자신의 실수도 넘어가주고 매너 있게 행동했다. 자신을 보며 기뻐했던 그 표정은 아마 치료를 받을 수 있음에 나온 것 같았다.


 운명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지민은 돈이 필요했고, 민윤기라는 부자는 페로몬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아주 필요한 타이밍에 만나게 됐다. 그래 어쩌면 오메가로 발현한 게 마냥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신이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 아등바등 벌던 돈을 페로몬 하나로 한 방에 벌게 됐으니.


 VIP손님이 좋은 분이셔서 다행이야. 생각하며 지민은 잠든 어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모든 게 잘 될 거예요.






***






 전망이 탁 트인 고층 빌딩의 사무실. 윤기의 뒤로 멋들어진 한강 뷰가 펼쳐져 있었다. 대충 삐딱한 자세로 턱을 괸 채 앉은 윤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서류들을 휙휙 넘겼다. 돈세탁을 늙은이가 얼마나 쳐해대는 건지 쉴 새 없이 윤기를 얼굴마담으로 밀며 주요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본인도 느끼는지 슬슬 윤기를 밀어주는 일에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아. 이딴 좆 같은 영감들이나 봐야 하느라 감귤이를 못 보다니. 탄식하며 한숨을 쉰 윤기는 이내 서류를 휙 던졌다.


 그래도 감귤이를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진다. 요새 민윤기는 매우 관대하고 너그러워졌으며, 기분이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렇게 뒤져가며 알아보던 감귤이 제 손에 툭 떨어졌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감귤이는 뭐 하고 있으려나. 윤기는 지민을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그 천막이 아니었다면 페로몬이 풀린 순간 당황하는 지민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때 똑똑 공손하게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들어와. 윤기의 말 한 마디에 들어온 건 관리실장이었다. 그는 윤기에게 공손히 태블릿을 내밀었다.



“말씀하신 박지민군 관련한 자료입니다.”

“밑바닥까지 싸그리 다 캐온 거 맞아?”

“네, 알 수 있는 정보는 다 넣어놓았습니다.”

“잘했네.”



 다리를 꼬고 앉은 윤기는 다소 들뜬 손놀림으로 태블릿을 받았다. 센터에서 나오자마자 내린 명령을 관리실장은 충실히 잘 이행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우성 오메가, 걔 좀 알아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데 민윤기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까보는 어린애마냥 들뜬 표정으로 글을 쭉쭉 읽어 내렸다.



“우성 오메가 발현이 이 시기라고?”

“예. 의사의 진단서에 적혀있는 날짜로부터 약 한 달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현이 매우 늦다. 윤기는 지민을 처음 만났던 시기를 떠올려 보았다. 교묘하게 맞물려있다. 뭣도 모른 채 발현한 뒤 자신을 마주친 거다. 발현이라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러웠을 테니 기억을 할 리가. 윤기는 혀를 찼다. 떠올리게 하려면 노력이 꽤 들 거 같다. 뭐 어차피 상관 있나. 그대로 다시 겪으면 죄다 기억해낼 텐데.


 윤기는 이어서 남은 정보들을 훑었다. 병원 진단서는 물론, 지민의 가족관계와 대학, 그리고 대학 교우관계까지 다 적혀있었다. 자료는 박지민이라는 인생을 글로 모조리 표현해놓은 것 같았다. CCTV까지 손아귀에서 주무르는데 개인의 신상정보쯤이야 얻는 일은 무척이나 쉬웠다. 그러다 문득 윤기가 한 부분에서 멈칫했다. 그의 눈빛에 흥미가 감돈다. 이건 또 뭐야.



“빚이 있어?”

“예. 지민군의 친부가 남겨놓은 것들입니다. 사채는 물론 악질인 4차 금융 쪽까지 전부 다 끌어다 쓴 모양입니다. 현재 친분의 상태는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했다고 합니다.”

“떠넘기고 자살? 가지가지 하네.”



 지민의 친부가 돈을 빌린 곳은 매우 악질적인 곳으로 유명했다. 이자율이 워낙 높은 건 물론 한번 문 사람은 결코 놓지 않는다. 원금이 이 정도 금액이면 일반인인 지민은 평생 이자를 갚아도 결코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정상적인 곳이라면 이미 지민은 원금의 반절보다 많이 갚았을 터였다.


 관리실장이 윤기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오래 윤기를 담당한 경력으로 미루어 볼 때, 윤기는 현재 이 우성오메가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메가라면 길가 나무 보는 것처럼 흥미 없어 하거나 싫어하던 이가 직접 조사까지 해오라니. 빚이 있다는 부분에서 생각하는 듯 눈을 떼지 않는 윤기를 보며 관리실장이 말을 올렸다.



원하신다면 해당 조직과 연락하여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윤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걸 왜? 좋은데? 그대로 놔둬.”



 약점이 있다면 더 틀어쥐기 쉽다. 이렇게 생존을 다투며 사는 경우에는 더욱. 지민에게는 자신이 구세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심 쓰며 지민이 필요한 것을 조금씩 나눠주는 순간 지민은 자신이 친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감귤이 손바닥 안에 완전히 떨어지는 순간이 멀지 않았다. 이건 신이 민윤기를 돕고 있는 증거다.



“출장 일정 최대한 줄여놔. 그리고 끝나자마자 바로 호텔 하나 잡아놓고.”



 명령하며 윤기는 단 귤 내음을 떠올렸다. 벌써 입에 침이 고이는 것 같았다. 난생처음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정확히는 페로몬과 지민의 몸이지만. 불순한 의도를 품은 윤기는 흥얼거리며 태블릿 속 지민의 사진을 응시했다. 감귤은 역시 실물이 낫네.





***





 VIP와의 만남 이후 센터 담당자는 감격에 마지않은 목소리를 전화를 해왔다. 소식 들었어요! 지민씨 페로몬이 VIP분과 페로몬 상성이 맞는다면서요. 그녀는 구원자라도 만난 것마냥 지민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네? 제가 그렇게 한 일은 없는데…. 아니에요. 지민 씨는 정말! 정말 여러 명을 구했어요. 우리 센터 사람들이 전부 다 지민 씨에게 감사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단언하는 담당자에 지민은 멋쩍게 웃었다.


 이어서 그녀는 몇 가지 정보를 내주었다. VIP 전담 케어로 바뀌었으니 환자의 증상이 치유될 때까지 센터에는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VIP와 개인 소통을 통해 스케줄을 잡고 치료를 진행할 것. 말이 새로 신설한 VIP시스템이지 VIP 명령에 따라 넵, 넵, 수긍하며 납작 엎드려 꼬리를 흔들란 말이었다. 그렇게 예쁘게 포장된 말을 지민은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담당자는 다시 한 번 지민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혹시라도 무슨 문제 있으면, 정확히는 안위가 위험해진다면 언제든 연락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착하신 분인데….”



 아무래도 센터사람들이 윤기를 오해한 것 같다. 생각하며 지민은 윤기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제 시간을 바쁘게 보냈다.


 우선 부업 아르바이트를 등록했다. 피자박스 접기, 곰돌이 눈알 붙이기, 번역 아르바이트, 강아지 산책 시켜주기 등등. 윤기의 연락을 받으면 튀어나갈 수 있는 잡일들을 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대비한 것과 달리 윤기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척척 기계처럼 피자박스를 접으며 지민이 골몰했다.


 페로몬 치료가 필요하시다고 했는데. 먼저 연락을 해봐야 하나? 그런데 VIP분이신데. 내가 먼저 해도 되는 건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VIP손님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며 핸드폰만 쥐었다가 놓고 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딱 일주일 즈음 됐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신청해놓은 아르바이트 합격 전화인가 봐. 지민이 화면을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박지민입니다!”

[빨리 받네. 기다리는 전화라도 있었나 봐요.]



 동굴처럼 낮은 저음에 지민이 흠칫했다. 그리고는 곧장 전화를 고쳐 잡았다. 윤기가 보고 있지도 않은데 두 손으로 폰을 받쳐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아! 안녕하세요, 안 그래도 센터에 연락 드려보려고 했었어요.”

[그건 날 기다렸다는 거네.]



 그런 흐름이 아닌 거 같은데. 지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다린 건 맞긴…한데. 지민이 부정하지 않으니 전화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오늘 케어 받고 싶은데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언제든 가능해요.”

[좋네요.]

“센터로 바로 갈까요?”

[그럴 필요는 없고.]



 센터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지민이 연이어 의문을 품었다. 나름의 치료인데…. 그러나 센터에서 한 말이 지민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오른다. 모든 것은 VIP의 뜻대로. 지민이 순순히 수긍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돼요?”

[거기로 차 보내줄 테니 타고 와요.]

“네!”

[1시간 뒤에 도착할 거 같다는데. 잠시 뒤에 봅시다.]

“네, 조금 이따 뵐게요!”



 전화가 끊겼다. 지민은 부리나케 샤워를 한 뒤 옷을 꿰 입고 준비했다. 사실 준비라고 부를 것도 없었다. 평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의 복장처럼 간단한 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자켓을 입었다. 그리고 꽤나 시간을 남긴 채 집 밖으로 나섰다. 도착까진 20분가량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이나 좋다. 구름이 수채화처럼 번져 맑은 하늘을 수놓는다. 평소와 같다면 아르바이트와 과외에 치여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물끄러미 구경하던 지민은 문득 자신의 모습이 쥐구멍에 숨어있다 밖으로 고개를 내민 생쥐 같다고 생각했다. 볕이 낯설어 어색해하는 시궁쥐. 어색함에 바지자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서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량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재개발 거주지로 채택 된 이 동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차량이었다. 아 저거구나. 한 눈에 봐도 저것이 윤기가 보낸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가 앞에 멈추어 선 순간 지민이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옆 좌석의 문을 여니 보이는 건.



“일찍 기다리고 있었네요.”



 VIP, 그러니까 민윤기였다. 지민이 화들짝 놀라 멈춘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의외의 인물이 튀어나오면 그렇다. 어벙벙해진 지민이 더듬더듬 말했다.



“기, 기사 분을 보내주신 다고….”

“기사가 누구라는 말은 안 했는데.”



 그가 눈웃음을 치듯 웃는다.



“빨리 만나고 싶어서.”

 


 하얀 얼굴에 은은하게 스며든 웃음기가 그린 듯 어울린다. 지민은 순간 상황도 잊고 저도 모르게 흠칫하여 가방을 꼭 붙잡았다. 그대로 계속 서있을 거예요? 아. 윤기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쭈뼛쭈뼛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윤기의 알파 페로몬이 은은하게 베어있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빨리 뛰는 것만 같다. 이상반응에 지민이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윤기는 작은 손이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장면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지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글쎄요.”



 윤기는 흐음, 하며 고민하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빙긋 웃으며 지민을 돌아보았다.



“지민 씨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페로몬 케어는 신경 쓰지 말고.”

“네? 그럼 치료는….”

“괜찮아요. 근무 첫날은 원래 노는 날 아닌가.”



 직장인이 들었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윤기는 지민에게 부드럽게 권했다.



“어차피 지민 씨랑 붙어있기만 하면 상관 없어요. 지민 씨의 페로몬 존재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돼요. 그리고 페로몬 치료는 해주는 사람의 기분도 중요해요. 그래야 좋은 페로몬 향이 느껴지기 때문에 더 차도가 있고요.”



 사실상 개소리였다.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농도는 치료에 아주 미미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페로몬과 관련하여 잘 모르는 지민은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아, 했다. 그렇구나. 윤기는 순순히 끄덕거리는 지민을 보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내렸다.



“오늘은 지민 씨가 원하는 대로 해요.”



 제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니. 치료에 중요한 거구나. 지민은 골똘히 고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막상 떠올리려고 하니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곳? 지민은 항상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신경 쓰느라 바빴다. 한 번도 자신의 취향대로 무언가를 한 적이 없었다.



“가고 싶은 곳, 없어요?”

“그게….”



 지민이 어물쩡거리며 입술을 닫는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그런데 그때, 지민의 시야 안에 화단에 핀 꽃들이 보였다. 도시를 지나다니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였다. 노랗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꽃들. 항상 바쁘게 이동하며 버스 정류장에서 서있을 때. 지민은 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꽃들을 구경하곤 했다. 보면 어쩐지 기분이 몽글몽글하게 풀렸으니까. 지민이 홀린 듯 말했다.



“꽃….”

“흠?”

“저 꽃을 좋아해요.”



 지민이 윤기를 돌아본다. 긴장했던 눈빛이 생기를 품는다. 남에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은 처음이라 약간은 쑥스러웠다. 뜬금없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있는데, 윤기는 뭐,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많이 보면 되겠네.”



 지민 씨랑 잘 어울리네요. 덧붙이는 소리에 지민은 진정됐던 가슴이 다시금 약간 빠르게 뛰었다. 차가 매끄럽게 출발한다. 그렇게 첫 페로몬 케어 장소는 꽃밭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