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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26

by 토페 posted Jan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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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은 좋은 양분이 된다. 지민은 깨달았다. 코디와 메이크업에 관해서 스스로 관여해서 안 된다는 사실을. 또 오페라의 유령이 될 순 없다. 하물며 이번에는 심지어 윤기의 집안 행사였다. 어떻게 해주면 될까요? 친절한 샵 스태프에게 지민이 또랑또랑하게 답했다. 수트 입을 건데요. 예쁘고 멋지게 알아서 해주세요. 스태프는 걱정 말라며 눈을 빛냈다. 그 말만을 기다렸어요, 지민씨.


 스태프는 영혼을 쏟아 부었다. 단장이 끝난 후 거울에 선 지민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작품이 되어있었다. 검은 수트는 핏이 딱 맞아 보기 좋았고, 얇은 프릴이 달린 화이트 이너는 목선과 잘 어울렸다. 거기에 깔끔한 메이크업까지 더하니, 잘 꾸민 그 나이 대 소년 같았다. 적당히 강조된 통통한 입술이 귀엽기까지 했다. 지민도 거울을 보며 끄덕였다. 이 정도면 어디를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비주얼이다. 달에서 막 상륙한 어린 왕자 같았다.



“오늘 엄청 중요한 스케줄 하러 가나 봐요.”



 지민이 눈웃음을 작게 휘었다. 네, 오늘 엄청 중요해요. 덕분에 잘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활기찬 인사는 덤이다.


 초대장은 겉부터 화려했다. 지민은 전달 받은 장소를 확인했다. 송영호텔 라운지였다. 이미 윤기와 몇 번 방문한 곳이었다. 샵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민 앞에 값비싼 차량이 매끄럽게 선다. 윤기의 비서가 보낸 것이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예의 바른 아이돌은 인사도 잊지 않았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지난 번 광고 촬영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다. 깜짝 놀라면서도 기뻐할 윤기를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들떴다. 분명 저와 같은 마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떨리고, 행복하고, 싱그럽고. 어서 만나고 싶다. 보면 우선 윤기를 끌어안고 예쁜 말들을 가득 속삭여주고 싶었다. 저 많이 보고 싶었죠?


 도착은 빨랐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릴 때도 잊지 않고 인사한 지민은 호텔 로비에 입장했다. 도착하니 주 비서의 말대로 안내인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민을 보자마자 친절하게 인사했다.



“주 비서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지민은 안내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도착 장소는 라운지가 아니라 호텔 룸이었다. 윤기 형이 여기 계신가? 의아해하는 눈초리에 안내인이 설명을 더했다.



“아직 식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꽤 남았으니 기다리고 계시면 오실 겁니다.”

“앗 감사합니다.”



 어쩐지 로비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송영이라는 그룹의 이름을 생각해본다면 아마 파티가 시작될 즈음엔 수많은 사람이 밀려들어올 거 같았다. 이제 조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지민정도야 그 사이에서 휩쓸려나가는 모래알 같을 것이다. 그 사이 주목 받는 사람이 윤기일 거라 생각하니, 지민은 왠지 자신이 심장 떨렸다.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서 윤기 옆 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지민은 꿈 꾸듯 상상했다. 무대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혼자 올라가는 것과 멤버들과 같이 올라가는 것.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축복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자신은 윤기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윤기의 애 취급부터 벗어나야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있었다. 힘든 짝사랑도 결국 성공하지 않았는가. 오지 않은 그 날이 무척이나 기대됐다.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걷던 지민은 시계를 확인했다. 곧 오신다고 했는데. 괜히 긴장이 됐다.



“음….”



 지민은 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나름대로 선물이니까. 숨어있다가 전화를 하면서, 로맨틱하게 윤기가 보고 싶다고 하면 요정처럼 나타나는 거다. 결심한 지민은 욕실 안쪽으로 향했다. 윤기에게 연락을 보냈다.



[형, 지금 뭐하고 있어요?]

[오늘 저 쉬는데!]

[조금이라도 보고 싶지 않아요?ㅎㅎ]



 괜히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가다듬길 한참.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난다. 윤기 형이다! 지민의 얼굴에 단번에 반가운 웃음이 걸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후우. 깊은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윤기야, 고맙다. 이렇게 와줘서.”



 지민이 문고리를 쥔 채 멈췄다. 누가 같이 오셨네. 잠깐이면 될 테니, 당장 튀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








 민서욱은 분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다. 민윤기가 본가에 다녀간 날. 그날 이후 아버지가 저를 보는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네가 이러고도 내 핏줄이냐. 어떻게 4년을 다녀와서도 이 모양이냐. 윤기가 벌어들인 주식이 얼마인 줄 알고나 있는 게냐. 이번이 네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이 집안에 어울리려면 사람 구실이라도 해.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뒤 몇 가지 업무를 던져주었다. 송영을 이을 후계자 수업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이었다.


 대체 무슨 말이 오갔길래. 민서욱은 손톱을 까득까득 씹었다. 민윤기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다. 서욱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 줄기 변명이라도 더 할 속셈으로 그는 아버지의 서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장을 마련할 변명이 아닌,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찾았다.


 엔터 회사. 아이돌. 뉴위크. 자본 투자.


 서랍에서 찾은 서류들에 쓰여있는 단어였다. 민윤기가 굴리는 자본이 한낱 이름 모를 엔터 회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류를 면밀히 살핀 서욱은 쾌재를 불렀다. 월척을 낚았다. 그는 비서에게 시켜놓았다. 여기 엔터사 송영바이오 관련으로 캐내 와봐.


 총알이 생겼으니, 이제는 쏠 상대만 보면 된다. 그는 즐겁게 제 사촌 동생을 볼 날만을 꼽았다. 마침내 기회는 생겼다. 자선파티였다. 서욱은 윤기의 도착 소식을 듣자마자 호텔로 친히 찾아가는 부지런함을 보였다.



“윤기야, 고맙다. 이렇게 와줘서.”

“별 말씀을요.”



 재수없는 하얀 얼굴은 여전하다. 잠시 뒤 저 얼굴이 부숴질 생각을 하며 서욱은 벙글거리며 웃었다.



“윤기 너 요새 재미있게 살더라.”



 윤기는 귀찮은 서욱이 어서 말하고 사라지기를 바랐다. 시비를 걸기 좋아하는 인간이니 또 찾아온 모양이다. 어디서 어줍잖은 소식이라도 들은 건지 유난히 자신 있어하는 얼굴이 같잖았다. 서욱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 터였다. 저 모자란 머리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몇 시간 뒤 열릴 행사를 생각하면 적당히 상대하는 게 옳다.



“저야 늘 잘 살고 있죠.”

“스폰 준다며.”



 듣고 꽤 놀랐다, 야. 자켓을 정리하던 윤기의 손동작이 천천히 멈춘다. 윤기는 룸에 들어와 처음으로 서욱에게 시선을 던졌다. 서욱은 이가 드러나도록 웃는다. 



“너 절대 스폰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는데.”

“…….”

“이제야 좀 다르게 보이네. 혼자 그렇게 손 털고 깨끗한 척, 고고한 척하더니. 응? 이제야 사람 냄새가 나.”

“…….”

“아이돌은 어때? 난 배우가 좋았던 거 같은데.”



 아이돌들은 어린 애들이 많아서 그런가. 좀 물리더라고. 서욱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웃는다. 윤기의 표정이 다른 때보다 더 가라앉는다. 그는 잠시간의 침묵 후 평소와 다름 없는 말투로 말했다.



“형님께선 한국에 오셔도 할 일이 없나 봅니다. 제 사생활에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다 주고.”

“에이. 바쁜 시간 쪼개가며 아는 거지. 사촌 동생 일이니까.”



 서욱의 반질한 얼굴을 보며 윤기는 자꾸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핏대 서는 손은 금방이라도 서욱의 얼굴을 쳐버릴 듯 했다. 서욱은 윤기를 면밀히 관찰했다.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인다면 총알이 제대로 박힌 거다. 그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윤기를 자극했다.



“생긴 건 꽤나 귀엽게 생겼던데. 나도 한번 보여줘 봐. 난 괜찮아. 남이 쓰던 거 써도.”



 서욱은 한 마디, 한 마디 뱉으며 윤기의 구겨질 얼굴을 기대했다.



“잘 쓰고 돌려 줄게. 원래 빌린 물건은 깨끗이 써, 내가.”



 윤기는 값싼 도발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것은 계략이다. 서욱은 지금 측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얻은 패가 얼마나 쓸모 있을지. 이 역겨운 도발에 넘어가 발끈하면 모조리 드러내는 꼴이었다. 지민이 자신의 약점이라는 것을.


 윤기는 이 더러운 진창에 지민을 엮을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라도 지민에게 피해가 가선 안 된다. 그는 냉정하게 이 상황을 분석했다. 척박한 삶에서 배우며 얻은 것들이었다. 감정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 작게 미소 지었다.



“못 빌려 드립니다.”

“에이, 형제끼리 좋은 건 나눠 먹어야지. 콩 한 쪽도 나누는 게 우애 아니겠어.”

“손 타서 남한테는 안 가거든요.”

“…아 그래? 아쉽네. 주인 알아보도록 하는 게 쉽지가 않던데. 잘 키웠나 봐.”



 서욱이 여전히 윤기를 살피며 입맛을 다신다. 윤기는 가식으로 발린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더는 역겨운 도발을 들어 주기가 힘들다.



“그러고 보니 형님 친구분들도 오늘 오시는 거 같던데. 여기 있지 말고 그쪽에 인사하러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엔 서욱이 이를 꽉 깨물었다. 윤기가 가리키는 건 약을 같이 취했던 인물들이었다. 숨기고 또 숨겼는데 어떻게 안 거지? 빌어먹을 놈. 서욱은 윤기와 달리 초조함을 드러냈다. 일그러진 얼굴이 간신히 어색하게 웃는다.



“…그렇지, 슬슬 가봐야지.”

“큰 아버지께서 이래저래 형님 관해서 걱정이 많으신데 주의하세요.”



 중간에서 제 입장이 많이 난처합니다. 혈육 싸움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윤기가 뻔뻔하게 말했다. 서욱이 윤기와 관련된 정보를 빼낸 것처럼, 윤기의 서랍을 열면 서욱을 비롯해 가족들의 추악한 모습들이 전부 적혀 있을 거다. 서욱은 무너지는 표정을 다잡으며 간신히 답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서 밥 먹자고. 조금 뒤 보자.”

“예, 형님.”



 서욱이 호텔을 나선다. 윤기는 문이 닫히는 순간, 매고 있는 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밑바닥에서 들끓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처음으로 후회 됐다. 민서욱을 고작 해외로 보내는 게 아니라 숨통을 끊었어야 했다. 분노로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한다.


 하아. 윤기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우선 지민부터 지켜야 할 것 같다.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 놓으리라. 그런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똑똑 노크하고 들어온다. 비서였다.



“부사장님, 큰 아버지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곧 들리지.”



 윤기는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주 비서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윤기의 심기를 살피고, 룸을 흘끔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윤기가 그를 눈치채고 말했다.



“왜 그럽니까.”

“…아닙니다.”



 주 비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윤기는 폰을 확인했다. 지민으로부터 메시지가 와있었다. 지킬 게 생겼으니 움직여야 한다. 풀었던 타이를 다시 정리했다.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되는 시간이 왔다.



“갑시다.”



 평소와 다름없이 답장을 보낸 뒤 룸을 나섰다.












 쿵. 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도 지민은 석상처럼 서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세면대를 잡고 간신히 섰다. 대화를 듣는 중간부터 형편없이 떨려오는 손은 아직까지 멈추지 못했다.


 워낙 충격적인 말을 들으면 사람은 현실감이 사라진다. 꿈인가? 지민은 멍청하게 흘러나오는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스폰 준다며. 한번만 빌려줘. 남이 쓰던 물건. 자비 없이 찔러대는 말들이 지민을 아프게 찔러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픈 건 윤기의 목소리였다. 못 빌려 드립니다. 손 타서 남한테는 안 가거든요. 쉽게 쓰고 파는 물건이었다. 그 대화에서 자신의 위치는.



“이럴 리 없는데….”



 사랑이라고 했는데. 우리 윤기 형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데. 보고 싶다고 하면 바로 전화도 하라고 했는데. 힘들면 곁에 있어준다고 했는데. 내 편이라고 해줬는데. 믿기 싫은 지민은 부정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이건 내가 몰래 엿들은 거니까. 직접 물어볼 거야. 그럼 윤기 형은 분명 다른 사정이 있다고 말해줄 거야. 


 그럼에도 지민은 자꾸만 뜨겁고 붉어지는 눈시울을 꾹꾹 눌렀다. 잠시 뒤 윤기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 울면 안 된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앙 다물며 노력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진짜라고 하면? 정신 못 차리고 따라다니는 게 웃겨서 어울려줬다고 하면? 확인사살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가슴이 천 갈래로 찢길 거다. 그게 두렵다. 입술을 앙 다문 지민은 윤기를 만나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더는 상처받고 버틸 용기가 없었다. 조금 전 들은 잔인한 대화로 충분했다.


 그대로 도망치듯 룸을 벗어났다. 슬슬 시간이 가까워진 만큼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누군가에게 붙잡히지 않길 바랐다. 아무 곳이나 보이는 곳으로 빠져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어서 오세요. 택시 기사가 인사한다. 지민은 혹시라도 알아볼까 고개를 푹 숙이며 숙소의 주소를 불렀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그쪽으로 가주시면, 돼요.”

“…으응?”



 중년의 택시 기사가 뒤를 돌아본다. 척 봐도 어린 애가 무슨 사정이 있는 듯 보였다. 아이구, 어린 학생이 무슨 일이래.



“학생 괜찮아요?”

“네, 괜찮, 끄윽, 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인다. 멋진 옷과 머리를 꾸민 걸 보니 어디 중요한 곳에 간 거 같은데. 프러포즈라도 했다가 차였나. 아니. 이제 학교 다니는 거 같은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안 울려고 부득불 참는 어깨가 덜덜 떨리고 있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던 택시기사는 안쓰러운 마음에 휴지를 꺼내 넘겨주었다.



“이걸로라도 좀 닦아요. 우리 아들 또래인데 마음이 안 좋네.”

“…감사합, 흐으, 니다.”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내요.”



 꾸역꾸역 참던 눈물이 결국은 위로 한 마디에 흘러내리고 말았다. 닭똥같은 눈물이 한 방울씩 뚝뚝 흘러내리더니, 이내 주륵주륵 소나기처럼 지민의 얼굴을 적신다. 허엉. 흐윽. 끄윽. 저 신경 쓰지, 허어엉, 마세요. 괜찮으니까. 진짜 괜찮, 흐윽, 아요. 이 나쁜 놈. 진짜 나빠. 흐윽.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용서 절대 안 할, 흑, 거야. 지민이 끅끅거리며 내뱉은 호흡에 택시 기사는 짐작했다. 연애 문제구만.


 한 순간에 노닐던 구름 위에서 지하 밑바닥으로 패대기 쳐졌다. 사랑이 이렇게나 아픈 거였나? 마냥 달콤하고 설레는 게 아니었나? 이런 게 사랑이라면 하지 않았을 거다. 말로 할 수 없는 배신감과 원망, 그리고 슬픔이 지민의 속을 휘저었다. 내가 다 틀렸어.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만나지 말라고. 나쁜 추억이 되니까 또래 만나서 예쁜 연애하라고. 그렇게 할 걸 그랬다.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이 사랑은 동화 속에 나오는 해피엔딩 같은 사랑일 거라고 확신했는데 아니었다. 자신이 어리석었다. 영원히 맹세하는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 허상일 뿐이다.


 상처 입은 지민은 휴지로 볼을 꾹꾹 눌렀다. 열심히 차려입은 옷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메이크업이 번진다. 쓰라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