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Cradle Waltz>
왕족이 신분을 밝힐 땐 으레 두 가지의 반응으로 나뉜다. 놀라 입이 벌어지거나, 냉큼 바닥에 엎드리거나. 지민은 당연히 이어져 나올 슈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슈가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말갛게 웃으며 소개를 마친 지민을 보는 시선이 어딘가 의미 모르게 깊어 보였다. 이어지는 침묵에 지민이 슬슬 의아해할 때 즈음, 슈가가 툭 말했다.
“정말 다치진 않았나 보군요. 여기서 그런 인사까지 할 정도인 걸 보면.”
지민이 다소 어벙하게 입을 벙긋거렸다. 왕족으로 살면서 이런 예절 밥 말아먹은 언사는 처음이었다. 슈가가 이어 말했다.
“가능한 빨리 걷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이 구역에는 아까 본 나무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으니까요.”
“…….”
“인간이라면 치를 떠는 존재들이니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릅니다. 이번에 깨어나면 잡아먹겠다고 난리를 부릴 텐데….”
슈가가 다시 저택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주변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나무들. 촉수 같은 뿌리들이 떼로 솟아오르는 상상을 끝마친 지민이 냉큼 슈가의 곁에 달라붙었다. 어느새 슈가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슈가의 뒤를 졸졸 쫓아오느라 지민이 거친 숨을 헥헥거렸다. 눈밭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일에는 커다란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생각보다, 헥, 엄청 멀리, 헥, 왔었네요. 뛰는 와중에도 쫑알거렸다. 그렇게 한참이나 뛰어 잡혀 먹어도 되니 조금만 천천히 가달라고 슈가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질 때 즈음, 저택이 등장했다. 출발할 땐 3시간이 걸렸으나 돌아올 땐 2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며칠 저택에 머물렀다고 정원에 들어오니 안심이 된다.
“정말, 헥, 엄청난 여정이었어요.”
보고 온 건 숲 밖에 없었지만…. 슈가는 지민의 말을 무시했다. 마법사는 원래 말이 별로 없나? 지민은 이어서 쫑알거렸다.
“그래도 구해주신 덕분에 살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아니었다면 나무한테 뜯겨서 형체도 없이 죽어갔을 거예요.”
또 답이 없다. 슈가? 지민이 의아해하며 저택의 문을 여는 슈가의 곁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슈가가 가볍게 손을 휘저은 순간, 지민은 다시금 시골 촌뜨기 왕자가 되어 입을 크게 벌렸다.
“와….”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일제히 옆으로 밀려나며 햇살이 드러난다. 동시에 장작들이 알아서 벽난로로 착착 날아 들어갔다. 어디서 불어온 지 모를 얕은 바람이 놀란 지민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고 지나가며, 샹들리에를 흔들었다. 찰그랑거리는 맑은 소리가 흡사 어서 돌아오라고 확인하듯 울려 퍼졌다.
“너무 대단해요…!”
지민이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집중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광경이! 이 저택에서 가장 멋진 건 눈인 줄 알았는데 더욱 대단한 게 있었다.
“앉아 주시겠습니까.”
어느 새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슈가가 지민을 불렀다. 앗. 지민이 작게 볼을 붉혔다. 귀족간의 대화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슈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여전히 무던한 표정이었다. 지민이 총총 다가가 쇼파에 앉았다. 맨 맞은 편이 아니라 슈가 근처의 쇼파 자리였다. 슈가가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왜요?”
“…거기 앉으실 겁니까?”
“네? 네.”
지민이 순수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오히려 반문했다. 혹시 여기 앉으면 안 되나요? 다른 곳으로 갈까요? 공적인 자리가 아니면 지민은 늘 사람들의 곁에 가까이 다가갔다. 대화할 때 보이는 표정과 제스처를 가까이 관찰할 수 있어 좋았다. 슈가는 시선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상관 없으니 앉으세요.
“…당신이 아까 말한 이름이 제 이름이 맞습니다. 필요한 게 있을 땐 이름을 불러주시면 됩니다.”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가는 지민이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셨겠지만 이 저택은 아까와 같은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추운 시기라 먹을 것이 없어 가장 예민한 시기죠. 살아있는 것만 보면 눈이 돌아갑니다.”
“아까 그 나무…같은 걸 말하시는 건가요?”
“예. 나무 외에도 조심해야 할 괴물들이 몇 있는데….”
슈가가 지민을 잠시 위아래로 훑었다. 체구 작은 어깨. 부러질 것 같은 허리와 손목. 가늘고 곧게 뻗은 목까지 확인하고는 짤막한 설명으로 압축했다.
“살아있는 건 무조건 모두 피하면 됩니다. 당신이 이길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지민이 작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나름대로 궁에서 열심히 검술을 연마한 기사였는데, 여기서는 아무 것도 못한 채 도망만 다녀야 한다니. 지민의 어깨가 시무룩하게 조금 쳐졌다. 그러나 아까 겪은 나무의 아찔한 공격을 떠올리며 얌전히 수긍했다. 그렇군요….
“저택 안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겠네요.”
그 대답에 슈가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슈가는 내려간 지민의 어깨를 흘긋 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가 지나면 숲을 지나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지민이 강아지처럼 쫑긋 귀를 세웠다.
“밖이라면…? 제가 원래 왔던…?”
슈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 벌떡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사실상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이곳에서 갇혀 죽는 게 아닐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안감이 차올랐었다.
“정말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예.”
지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으로. 비보를 듣고 놀라고 슬픔에 잠겨있을 가족들을 위로해주며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건강히, 무사히 돌아오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다.
지민이 기쁨에 겨워하는 사이 슈가는 의미 모를 눈으로 지민을 응시했다. 감격해마지 않는 표정. 그는 이내 사무적으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는 좋아서 다행이군요. 힘이 덜 들겠어요. 잘 알아들으신 것 같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슈가는 용건은 끝났다는 듯 성큼성큼 멀어졌다. 지민이 다급히 슈가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멈춘 채 지민을 돌아본다. 지민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사실 이런 선택지는 지민의 예상 안에 없었다. 생명의 은인이 목숨만 덜렁 구해줘 놓고 외면하는 행위 같은. 지민은 조금 더 아름다운 만남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 인사 전하기, 생명의 은인과 차라도 한잔 마시며 이 넓은 저택에 대해 이야기 듣기. 따뜻하고 아름다운 광경들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런 달달한 요청들을 하기엔, 슈가의 표정이 무척이나 무감정해 보였다. 게다가 이상하게 아까보다 더욱 차가워진 듯 보였다. 왜 불렀냐는 듯한 표정의 하얀 얼굴에 지민이 아무 질문이나 우선 떠오르는 대로 던졌다.
“어…다, 다른 사람들도 슈가 같은 능력을 쓰는 건가요? 여기 저택에 있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 저택에 사는 건 저 혼자니까요.”
슈가의 목소리는 괴물들을 설명할 때와 똑같이 무던했다. 다음 질문도 대충 아무렇게나 던지고 차나 같이 한잔 하려고 물으려던 지민이 동작을 뚝 멈췄다.
“이 저택에 혼자요?”
“예.”
“여기에요?”
“예.”
“정말 혼자요?”
슈가가 미간을 찡그렸다.
“괴물 천지인 이 숲에 어떤 미친 인간이 들어와 살겠습니까.”
“…….”
“당신이 살던 남부와 이곳은 다릅니다. 왕국에서도 이 땅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지민이 작게 탄식했다. 맞다. 왕궁에서도 북부는 없는 땅 취급을 했다. 세금이 잘 걷히지도 않을뿐더러, 사는 국민조차 몇 없는 곳이었으니. 지민은 이곳에서의 며칠을 떠올렸다. 끝없는 적막과 외로움 속에서 고통스럽던 나날들. 이 사람은 이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온 거다.
내가 왕궁에서 방관한 사이 이 사람은 혼자…. 죄책감으로 가슴이 불편하게 내려앉았다. 조금만 더 잘 알아봤더라면 북부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됐을 수도 있는데. 가슴 안에 피어 오른 죄책감은 어떤 강력한 책임감까지 낳았다. 태생이 선한 왕자는 이 문제를 끌어안기로 했다.
“슈가.”
지민이 결연히 작은 손으로 슈가의 손을 꼭 붙잡아왔다. 비장미까지 넘친다. 슈가의 손은 크고 핏줄이 도드라져있어, 붙잡고 있는 지민의 손이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대체 뭘 하는지 슈가는 구경하듯 지민을 놔두었다.
“앞으로는 제가 곁에 있어 드릴게요.”
“…….”
“이곳을 꼭 살만한 땅으로 만들어볼게요.”
지민의 눈이 아침 햇살처럼 반짝거렸다. 슈가는 잠시간 침묵했다. 지민과 마주친 눈동자에 어렴풋이 미묘한 감정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똑같군.”
“네?”
“아닙니다.”
작게 중얼거린 슈가는 손을 빼냈다.
“할 이야기는 전부 다 끝난 것 같군요.”
쉬십시오. 발을 돌려 사라지는 슈가의 뒤로 지민이 고민했다. 똑같다고? 뭐가 똑같다는 거지. 그러나 곧 신경은 다른 쪽으로 흩어졌다. 왕자는 결심했다. 이 북부를 머리와 눈에 꽉 담아 바꿔보기로.
***
이 눈 내리는 숲에서 평생을 혼자 살아온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이름도 없이 이렇게 불렸다. 이 괴물. 어디를 가도 그 말부터 들어서 처음에는 괴물이 자신의 이름인 줄 알았다. 어찌어찌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한참이나 그렇게 불리며 돌아다녔다. 괴물아, 이 괴물새끼.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툭 치면 죽어버리는 인간들과 난 다르니 맞는 말이지. 아주 늦게 생긴 슈가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그는 일평생을 괴물로 불린 채 살았을 터였다.
저택에서 보내는 슈가의 하루는 단순했다. 일어나서 저택을 관리하고, 숲을 돌아다니며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다. 쌓인 건 눈밖에 없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게 그거였다. 그 누구도 오지 않는 저택에서 조용히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하루아침 사이 저택에 뚝 떨어진 왕자에 대하여.
숲에서 돌아와 저택에 누워있는 왕자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그는 인간과 가능한 붙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다. 인간과 얽히면 좋은 일이라곤 생길 수 없을 테니. 그러나 행동력 높은 왕자는 기어코 그를 쫓아 돌아다녔고, 기어이 그의 모습까지 드러내게 했다. 분명 이 모습을 보면 기겁하여 졸도하지나 않을까 했는데, 왕자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겁이 없었다.
“…….”
괴물한테 목까지 졸려놓고도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앞으로는 제가 곁에 있어드릴게요. 그 대답에 슈가는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 속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지금보다 볼이 통통한 왕자가 말갛게 웃고 있었다.
“…….”
저택의 탑 꼭대기에서 숲을 내려다보던 슈가는 검은 로브를 펄럭 털어냈다. 이어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자의 패턴으로 볼 때 이 시간이 되면 슬금슬금 침실에서 기어 나와 다이닝룸으로 향하곤 했다.
그러나 다이닝룸은 텅 비어있었다. 저택은 슈가 혼자 있을 때와 똑같았다. 죽을 듯한 침묵만이 존재했다. 눈동자를 굴려 왕자의 흔적을 찾던 슈가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
어이없군. 고작 그 한 마디 들었다고 기대하고 있던 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왕자를 상대로? 스스로가 우스웠다. 이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그토록 기뻐한 왕자가 아닌가. 그는 냉소를 머금었다. 거짓말까지 하며 다음날이 되자마자 냉큼 도망이나 치다니. 아주 형편없는 인간으로 자랐구나.
슈가는 금세 지루해진 안색으로 고민했다. 아직 왕자에게 붙여놓은 시종들에게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왕자가 아직 살아있는 건 분명했다. 숲으로 가서 데려올까. 어차피 죽게 놔둬도 상관 없지 않은가. 이제는 한낱 상관 없는 인간일 뿐인데. 그러나 후련하게 왕자를 잊자니 무언가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때, 슈가의 뒤로 명랑한 목소리가 퍼졌다.
“슈가! 한참 찾아 다녔어요. 여기 계셨네요.”
슈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박지민이 있었다. 오리 모양의 커다란 눈뭉치를 들고.
“역시 이 저택은 너무 넓어요.”
슈가의 시선이 오리에 닿았다. 뭐냐는 듯한 시선에 지민이 작게 미소 지으며 쑥스러운 안색으로 설명했다. 아 이게 말이에요.
“구해주셨는데 당장은 보답해드릴 게 없어서…정원이 휑한 거 같아서 만들어봤어요.”
얼마나 눈을 만진 건지 작은 손은 빨갛다. 지민은 눈오리가 더욱 잘 보이도록 슈가를 향해 가까이 내밀었다. 오리를 들고 있는 입술이 통통한 왕자. 슈가의 시선이 오리와 지민의 얼굴에 번갈아 가며 머물렀다. 지민이 열심히 선물을 어필했다.
“어때요?”
“…….”
“느끼기에 따라서 선물이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는데.”
나름 좋은 선물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던 지민은 반응 없는 슈가에 점차 자신감이 추락했다. 사실 지민도 오리를 만드는 동안 느꼈다. 나는 진짜 손재주가 없구나. 비만 오리가 되어 부수고 다시 만든 것만 8개였다. 마지막으로 만든 이 오리만이 그나마 유일하게 살아남았는데, 사실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딱히 좋은 모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부리는 뭉뚝하고 몸통 표면은 군데군데 거칠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저택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을 선물이랍시고 줄 수는 없지 않는가. 숲으로는 목숨이 위험하니 나갈 수조차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아침 일찍 일어나 만들었다. 슬쩍 슈가의 눈치를 본 지민이 열심히 사족을 덧붙였다.
“이게 이렇게 보여도 문 앞에 놓으면 꽤 귀여울 거예요.”
“…….”
“여기 눈도 있어요!”
나름 중요한 포인트로 자그마한 검은 돌을 찾아 얼굴에 붙여주었다. 지민은 슈가가 잘 볼 수 있도록 오리의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슈가는 여전히 답이 없다. 아. 지민은 탄식했다. 설득에 실패했다. 얼려 죽일 듯 쏘아보는 걸 보니 엄청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추락한 자신감은 아예 땅바닥 끝으로 내려갔다. 그냥 가만히 있었어야 했나…. 이미 자신을 피하고 싶어서 저택에서 만나자마자 도망친 사람이니, 충분히 꺼려할 만도 했다. 지민이 수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좀 엉성하긴 하죠? 밖에 다시 가져가서 더 예쁘게….”
지민이 내밀었던 오리를 다시 품에 끌어안으려는데, 커다란 손이 등장해서 오리를 받아갔다.
“한 번도 못 받아본 종류긴 하네요.”
지민이 살짝 놀란 눈으로 슈가를 보았다. 슈가의 눈길이 추위 때문에 발갛게 변한 지민의 손에 잠깐 닿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진 않습니다.”
“…정말요?”
“문 앞에 두면 됩니까?”
지민이 활짝 웃었다. 그 누구보다 뿌듯해 보였다. 네! 문밖에 두면 돼요. 선물을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뻤다.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친해질 수 있는 가망성이 열린 것 같았다. 지민은 정원으로 향하는 슈가의 옆에 붙어 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만족스럽게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계속해서 보다 보면 더 귀여울 거예요!”
지민이 오리를 가리켰다. 그러나 슈가는 옆을 따라오는 지민을 곁눈질했다.
“…잘하면 그렇겠네.”
입구에 도착한 슈가는 지민의 뜻대로 입구에 오리를 두었다. 여기다 두면 됩니까? 네. 거기가 딱 좋아요. 커다란 문 앞에 덜렁 남겨진 오리는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지민은 만족하며 슈가를 향해 다시금 환하게 웃었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은 겉은 냉정해 보여도 좋은 사람임이 틀림 없다. 앞으로 슈가와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