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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17

by 토페 posted Dec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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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장 찍듯 꾹 붙인 입술은 부드럽고 폭신했다. 작은 손이 놓치기 싫어 욕심껏 윤기의 뺨을 감싸 쥔다. 그러나 어설픈 혀는 겉만 깨물고 할짝거렸을 뿐이다. 지민이 연신 윤기의 입술을 쪼듯 쪽쪽 빨아댔다. 마치 주인의 귀가를 반기는 강아지가 하는 짓과 비슷한 입맞춤이었다. 지민이 입술을 뗐다. 눈빛이 나른하고 몽롱했다.



“진짜 좋아해요….”



 빳빳이 굳어있는 윤기에게 지민이 한번 더 속삭였다. 사랑해요. 순진무구하게 대형폭탄을 던진 뒤 윤기의 뺨을 꼭 쥔 작은 두 손에 서서히 힘이 빠진다. 윤기는 그런 지민을 두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커다란 손이 지민의 뒤통수를 헤집듯 잡아 끌어당겼다. 다시 입술이 닿는다.


 아으, 응. 지민의 입을 벌리고 파고 들어가 제 것인 마냥 마음대로 성급하게 탐했다. 운전대에 마른 등이 아슬아슬하게 밀리며 닿는다. 움찔거리던 지민은 숨이 막히는지 끙끙대며 윤기의 어깨를 밀어댔다. 수움, 숨. 이거는 아닌, 것, 으응. 그럼에도 몇 번이나 윤기는 피하는 지민을 따라가 다시금 입을 맞물리고 숨을 빼앗아갔다. 입안에 머금은 단맛을 모조리 훔쳐갈 만큼 갈급했다. 끙끙거리는 지민이 더는 못 참을 지경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놓아준다.



“하아, 흐….”

“숨 쉬는 법도 모르네.”



 해본 적이 없어서. 탁한 저음이 윤기의 목을 비집고 나왔다. 윤기가 다시금 지민을 붙잡은 때였다. 지민이 윤기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주정뱅이의 정신력은 서서히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지민은 그대로 장렬히 정신을 놓았다.






***






 반짝, 지민은 눈을 떴다. 그리고 아침부터 인생의 불행 중 하나를 맛보았다. 바로 강렬한 숙취다. 우욱. 모든 장기가 뒤틀리는 것만 같은 기분에 지민이 낑낑거리며 신음했다. 생전 이런 고통은 또 처음이다. 어제 감독이 준 정체 모를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면 안됐단 사실을 온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죽을 것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으니 룸메이트 정국이 지민을 발견하고 놀라 달려왔다.



“형! 괜찮아요?”

“아니…죽을 것 같아….”

“그러게 누가 술을, 형 빨리 정신 차려봐요. 의성이 형 왔다간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형 손에 죽을지도 몰라요.”

“의성이 형…?”

“박지민 깼구나.”



 정국이 속삭이기 무섭게 의성이 입장했다. 허허실실 우리 지민이, 우리 지민이 노래를 부르던 박지민 부모 모드 대신 분노 모드가 장착되어 있었다.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 부분이 특히 그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한기를 느낀 지민이 울렁거리는 속으로도 냉큼 무릎을 꿇었다.



“형 잘못했어요. 제가 진짜 머리가 맛이 갔던 거 같아요.”

“넌 진짜 어? 형이 얼마나, 어우.”



 새벽에 온 매니저 전화 한 통에 의성은 날밤을 꼬박 새우며 지민을 기다렸다. 지민이 숙소 왔니. 연락이 안 되는데. 그 말 한 마디에 가슴이 꼬박 타 들어갔다. 오냐오냐 했더니 박지민 이게 진짜. 숙소에 들어오기만 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낸다던 다짐은 불쌍한 눈빛의 지민에 시름시름 녹고 말았다. 의성은 지민 한정으로 원체 마음이 약했다.



“또 그럴 거야?”

“아니요!”



 의성이 팔을 척 벌렸다. 혀어엉. 지민이 냉큼 애교 부리며 폴싹 안긴다. 어느새 뒤에서 지켜보던 하준이 못마땅해했다. 



“저럴 줄 알았지. 혼내긴 뭘 혼내. 야 박지민 술도 못 마시는 게 적당히 하고 다녀라. 기사 뜨고 싶냐.”

“…네에. 죄송해요.”

“그래 지민아. 하준이도 아니고 넌 그럼 안돼. 저놈은 어디 던져놔도 살아남을 놈이지만 어제 업혀 들어온 거 보고 형 기절할 뻔했어.”



 의성이 새벽을 떠올렸다. 웬 처음 보는 인물이 들어와 지민을 맡겼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저요? 업혀서요?”

“그래! 아예 기억이 안나?”



 지민이 끄덕였다. 꽉 채운 잔을 여섯 번인가, 여덟 번인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아예 기억이 잘려있었다. 지민은 대수롭지 않게 당시 술자리에 함께했던 멤버들을 떠올렸다.



“도윤이 형 소속사 직원 분이신가 봐요. 매니저 분이신가.”

“그러기엔….”



 의성이 얇게 눈가를 좁혔다. 검은 수트의 브랜드가 무척이나 좋아 보였는데. 지민이 큰 걱정 없이 말하니 의성도 고민을 접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지민도 무사히 돌아왔다. 매니저가 명품을 입지 말라는 법도 없긴 하지.



“으, 저 양치하고 올게요.”



 아직도 약간 울렁거리는 속을 느끼며 지민이 자리를 떴다. 의성은 밥을 준비한다고 나갔으며, 각자 할 일을 향해 흩어졌다. 지민은 치약을 쭉 짠 칫솔을 입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암전되어 아예 기억의 잘린 부분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혹시라도 취해서 헛소리를 지껄인 건 아니겠지. 하도윤 측으로 연락을 해봐야겠다. 혹시라도, 정말 만에 하나 혹시라도 부사장님 이야기를 했다거나….



“…….”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싸하다. 에이, 그래도 설마 처음 보는 감독님도 계셨는데. 아마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폰으로 도윤의 연락이 끊임없이 와있었을 것이다. 지민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칫솔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괴이한 장면이 지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현실에선 일어날 리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부사장님 어떻게 왔어요? 부사장님, 부사장님. 장면에는 무섭게 굳은 인상의 윤기와 그런 사람에게 겁도 없이 안아달라고 두 팔 벌려 칭얼거리는 제 모습이 있었다. 얼마 움직이지도 못한 지민의 칫솔질이 뚝 멈췄다.



“…아니야.”



 지민은 일단 부정했다. 에이 설마. 그 자리에 부사장님이 왜 오시겠어. 착각이다, 전부 다 허상.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뇌세포가 갈갈이 부숴져서 생기는 착각. 그러나 기억의 되새김질은 첫 번째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드문드문 끊겨있는 필름의 조각들이 괴로운 지민의 머릿속에 콕콕 박혀왔다.


 이거 너무 써요. 먹기 싫은데…너무 쓴데….

 부사장님 저랑 계속 같이 있어주면 안돼요?


 지민이 순간 휘청거리며 세면대를 붙잡았다. 이게, 대체? 그리고 마침내 기억해서는 안 될 장면까지 머릿속은 안간힘을 짜내 기억을 복구했다.


 좋아해요.


 운전석에 올라타서, 정확히는 부사장님 위에 올라타서. 진짜 좋아해요. 애틋하게 매달린 자신이 형용하기 힘든 느끼한 눈빛으로 부사장님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



 오 마이 갓. 지민의 손에서 칫솔이 타일로 툭 추락했다. 상상 속의, 아니 차라리 상상이었으면 좋을 과거의 박지민은 민윤기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기억은 모든 것을 다 살려내지 못했으면서 중요한 부분만큼은 잃지도 않고 기억했다. 쿠당탕. 지민이 타일로 좌절하며 엎어진다.



“뭔 일이야.”



 이담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희게 질린 지민을 본 이담이 다가온다.



“속 많이 안 좋으면 등 두들겨 줄게.”

“형….”



 지민이 넋 나간 유령처럼 웅얼거렸다. 난 망했어, 끝이야.



“가장 안 아프게 죽는 방법이 뭘까요?”

“아무래도 약이겠지?”



 충격적 현실에 헤롱거리는 지민을 이담이 차분히 안내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지민은 차라리 타일에 머리를 박고 다시금 기절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그대로 타일에 이마를 찧은 순간, 놀랍게도 마지막 기억의 파편까지 찾아왔다. 제 뒤통수를 잡아 끈 손. 영혼까지 빼앗아갈 것 같던 입맞춤.



“히끅.”



 지민이 딸꾹질을 했다. 표백제를 뒤집어 쓴 것처럼 질렸던 얼굴이 이제는 활활 타오른다. 히끅, 히끅. 이담은 지민을 골똘히 지켜보다 진단했다.



“병원 데려다 줄까. 아파 보여.”



 붉어진 얼굴과 함께 멈추지 않고 올라오는 딸꾹질까지 환상의 세트였다. 지민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쿵쿵거리는 심장만 부여잡고 있을 뿐이었다. 







***







 지민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뿐이랴. 밥을 먹는 내내, 안무연습을 하는 내내, 녹음을 하는 내내 혼을 빼고 다녔다. 작게 작게 잘린 기억의 파편들이 머리 안을 동동 떠다녔다. 부사장님도 나한테 키스를 했다는 건, 그건 부사장님도 날 좋아하신다는 건가? 세상에 때묻지 않은 소년은 스킨십은 곧 애정의 증표, 연애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에는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윤기의 연락이 없다는 거다.


 지민은 이미 몇 가지 인사를 채팅방에 보내놓았다. 부사장님 잘 주무셨어요? 어제 저 데리러 와주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해요? 부사장님도 저 좋아하시는 거 맞죠. 혼자만의 릴레이로 이어진 메시지는 부사장님 보고 싶어요, 로 끝이 났다. 이게 아닌가? 연애는 이렇게 시작하는 게 아닌 건가? 모든 것이 처음인 지민은 확신이 없었다.


 설마…그게 꿈이었나? 지민은 급기야 갈수록 선명해지는 본인의 기억력을 의심했다. 사실 그 술에 마약이 들어있었다거나. 혹시나 싶은 지민은 의성에게 자신을 업고 온 사람의 외형을 설명했다. 형 그런데요, 그때 저 업고 오셨다는 분 엄청 귀엽게 잘생기지 않으셨어요? 의성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귀엽다고…? 어디가. 너가 아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지민은 객관적인 정보로 설명을 바꿨다. 검은색 옷에 목소리가 낮았어요? 의성이 손뼉을 쳤다. 어! 맞아! 우아한 조폭 같이 생겼었어! 지민은 고맙다며 인사했다. 확실히 민윤기였고, 만난 게 맞았다.


 그럼 역시 많이 부끄러우신 건가. 지민이 입술을 삐죽이며 윤기의 프로필 사진을 검색했다. 박지민이 수많은 셀카를 보내는 동안 민윤기는 단 한 장도 안 보냈기 때문에 마땅한 사진이 없는 탓이었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먹튀를 해? 정상인이라면 그렇게 반응을 했겠지만, 사랑에 빠진 소년은 순하게 오매불망 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주말이 꼬박 사라진 후였다. 새로 녹음할 곡의 파트를 연습하고 있는 연습실에서였다. 띠링. 폰이 울리는 소리에 지민이 후다닥 달려나갔다.



[내일 오후 9시. 숙소 앞에서 대기해.]



 으아아. 지민이 활짝 웃으며 목청껏 질러댔다. 정국이 한 마디 던졌다. 지민이 형 갑자기 메인 보컬도 할 기세네. 왜 저렇게 신났어.







 오후 운동 스케줄까지 뺀 채 지민은 홀로 숙소로 돌아와 윤기를 기다렸다. 지민을 반기는 건 윤기가 보낸 차량이었다. 고급 진 차량의 문이 열리더니 직장인용 수트를 입은 기사가 지민을 기다렸다. 타시면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바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로를 달리는 동안 가슴이 콩닥거리며 뛰었다.


 도착한 곳은 호텔의 스카이라운지 바였다. 별빛을 뿌려놓은 듯한 도시의 야경이 멋있게 깔려있었다. 지민은 그런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단숨에 윤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한 켠에 자리잡은 쇼파 테이블 자리에 윤기가 있었다.



“부사장님!”



 지민이 날 듯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방글방글 웃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지민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냈다. 당신이 너무 좋아요. 지금이 행복해요. 온 몸으로 외쳐댄다. 윤기는 고개를 휙 돌리며 의자를 눈짓했다.



“앉아줄래. 고개 아프거든.”

“네!”



 막상 윤기 앞에 앉으니 입안에 침이 마른다. 지민은 윤기를 흘끔거렸다. 이제부터 바로 여보 자기 당신, 그런 낯간지러운 호칭을 쓰기에는 하루 만에 바뀐 상황이었다. 허벅지를 손으로 문질거리며 들뜬 솜사탕처럼 온몸을 배배 꼰다.



“우리…오늘은 어디로 갈 거예요? 저는 어디든 좋아요.”

“아니. 아무데도 안 가. 할 말 있어서 부른 거야.”

“아무데도요? 그럼 여기 계속 호텔에서만….”



 놀란 지민의 눈이 휘둥그렇게 뜨인다. 그간 부끄러워서 연락을 피하신 게 아닌가? 그러나 어찌됐든 괜찮다. 지민이 곧 입술을 살짝 깨물며 뺨을 물들인다. 부사장님이 그런 타입이신 줄은 몰랐는데. 한층 더 몸을 꼰다.



“저도! 저도 빠른 거 나쁘지 않아요…! 사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는 못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

“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야.”



 윤기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뒷말을 잘랐다.



“넌 뭔 어린애가…됐다.”



 한숨을 짧게 쉰 그는 커피를 입에 댔다. 지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게 분위기가 심각했다. 윤기는 이곳으로 지민을 부른 목적을 말했다.



“척 보니 다 기억하는 거 같고. 까먹길 바랐는데 아쉽게 됐네.”

“…네?”

“그날은 내 실수였어. 사과하지.”

“그게 무슨…말이에요?”



 지민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린다. 실수라는 말은. 그건. 윤기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희망과 꿈을 모두 잘라내듯.



“난 나보다 9살 어린 애랑 연애 못해.”



 예전에도 말했다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