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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위크의 숙소는 열악했다. 곧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구식 집에서 성인 남자 다섯 명이 엉겨 붙어 잤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으로 관리를 해서 망정이지, 체구가 조금이라도 큰 사람이 있었다면 한 사람은 서서 자야 할 사이즈였다. 방은 딱 하나가 있었다. 옷과 소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하는 방의 사정도 터지지 일보 직전이었다. 뉴위크의 숙소보다 햄스터의 케이지가 더 살기 편한 곳임은 확실했다.


 지민은 거실 겸 침실 겸 식당 겸인 숙소 한 구석에 누워있었다. 유통기한 지난 호떡처럼 짜부라져 거의 바닥에 기어들어갈 태세였다. 컴컴한 안개구름이 그의 주변으로 가득 퍼졌다. 그때 숙소의 문이 덜컹 열리고 막내 정국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온 그는 오자마자 구석에 처박혀있는 형체를 확인했다.



“와 지민이 형 너무해. 아는 척도 안 해주네.”

“어…정국이야? 왔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숨기듯 지민이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앉았다.



“운동 다른 때보다 엄청 일찍 끝냈네.”

“저 오늘 두 시간 하고 왔는데요.”



 지민이 머쓱하게 헛기침을 했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 하하하…. 정국은 커다란 눈을 휘휘 굴리며 재빨리 지민을 분석했다. 역시나. 맛이 갔구만. 약 일주일전부터 박지민의 상태는 상해있었다. 한 달 전쯤에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더니, 돌연 이번 주가 되어서는 이랬다. 맨날 편의점에서 라면만 먹어가지고 이렇게 된 건가? 정국은 지민의 불균형한 식단을 떠올렸다.



“형 무슨 일 있죠.”

“일은 무슨 일. 아무것도 없지…스케줄이 없는지 오래지….”

“아잇 그 스케줄 말고요. 형 지금, 음 굉장히 찌그러진 만두 같아요.”

“찌그러진 만…너 말에 형이란 단어만 넣으면 다 되는 줄 알아?”



 지민이 정국을 샐쭉하게 노려보았다. 그마저도 공격력이 없어 정국은 가뿐히 무시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하도 붙어있다 보니 이 정도 장난쯤이야 능숙했다. 일주일 전부터 내내 무슨 일 있냐고 지겹도록 물어봤지만 말해주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정국이 관찰하듯 지민을 봤다.



“형 진짜 원래 이렇게 안 생겼는데.”

“…원래 이렇게 생긴 사람한테 너 방금 굉장히 상처 주는 말 했어.”



 잘생긴 놈들은 다 재수없어. 지민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놈도 재수가 없나. 한달 전에 만난 재벌을 떠올리니 다시 이가 으득 갈렸다. 재수없기만 하냐. 한대 패줘도 시원찮다. 이번에는 우울한 먹구름을 쫓아내고 누구 한 명쯤은 갈아 마실 만큼 험악해진 얼굴에 정국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형…진짜 힘든가 봐. 정국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뗐다.



“저 공부 좀 하고 있을게요.”



 정국이 옷장 겸 창고 방에 마련해놓은 간이 책상 공부방으로 떠났다. 우리 정국이 파이팅. 열심히 해. 영혼 없는 인사를 건넨 지민은 다시금 숙소 한 가운데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하….”



 세상은 역시 믿을 게 못 된다. 지민은 유독 창백하리만치 하얬던 스폰서를 떠올렸다. 이 사기꾼. 기다리라느니, 기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더니만 지민은 한 달째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사장님의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오늘도 아무런 소식이 없느냐 묻길 3주, 포기한 지민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냥 귀찮은 어린애가 매달리니까 대충 떼어낸 게 분명하다. 진짜 나쁜 놈이다. 거짓말은 왜 해. 지난 한 달 동안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처음에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사장님! 해주신데요! 정말 착하신 분이었어요. 승전보를 전하는 파병처럼 돌아와 윤기의 칭찬을 한 가득 들어놓았던 게 가장 수치스럽다. 멤버들한테도 곧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우리는 잘 될 거라고 들떠 말해놨던 자신의 입을 꿰매놓고 싶었다.


 윤기를 만난 지 2주가 넘어갈 때쯤엔 조금 불안했지만 스스로를 달랬었다. 일이 바쁘신가 봐, 잠깐 사정이 있으시겠지. 날 잊은 건 아니실 거야. 그리고 4주째가 되었을 때 신뢰는 바닥 쳤고.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실망하는 지민을 사장이 달랬었다. 지민아. 괜찮아. 송영이 뭐 대수라고. 그런 거 없이도 우린 잘할 수 있잖니.


 어른은 무슨. 지민은 뉴스에서도 송영의 이름이 나오면 싸해진 눈빛으로 노려보다 등을 돌리곤 했다.



“…….”



 지민은 스스로도 한심하다고 평가했다. 남이 줄 기회나 기다리고 있고. 정신 차리자, 지민아. 다시 연습이나 하자. 연습실로 가려고 막 일어난 참이었다. 쾅쾅. 계단을 때려부술듯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문이 떨어질 것처럼 쾅 열렸다.



“하준아. 그러다 진짜 문 부숴져. 제발 살살 닫아줄래? 그거 고치려면 수리도구 빌려와야 하는데 어디서 빌려오니. 네 미국에 있는 본가에서 가져올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못이랑 목장갑이며 부자재가 얼만 줄은 알아? 우리는 피 같은 월세를 내면서 살고 있는 거라고. 나는 너가 이럴 때마다 심장이 덜컹덜컹….”

“형 시끄러워요.”

“흑흑. 우리 하준이는 언제까지 형을 개똥으로 알까.”



 누가 봐도 와 연예인이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잘생긴 남자 세 명이 줄줄이 들어왔다. 지민이 그들을 보자마자 도도도 현관으로 다가왔다.



“형들 왔어요? 어쩐 일이에요. 지금 시간에.”



 망돌의 길로 접어선지 오래된 지금, 개인 시간이 많다 보니 전체가 모이는 일은 흔치 않아졌다. 리더 의성이 눈물을 훔치는 척을 하며 지민을 보자마자 꽉 끌어안았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 잘 있었어? 연습실 안 갔네.



“지민이가 용케 하준이를 안 닮아서 다행이야.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이 팀에 둘이나 있었다면 이미 이 리더는 죽었을 거예요.”

“허 박지민이 왜 날 닮아요. 내가 낳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형 그러고 있는 거 엄청 가식적인 거 알죠. 애 불편하게 왜 안아.”

“야 인마. 지민이는 내가 안아주는 거 좋아해.”

“…형은 정말 본인이 형이란 거에 고마워해야 돼요.”



 의성이 끌어안은 지민을 보고 물었다. 아니지? 지민아. 형이랑 이러고 있는 거 좋지? 정신 없이 몰아치는 대화에도 익숙한 듯 지민은 냉큼 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전 좋아요! 하준이 혀를 쯧쯧 찼다. 세뇌당했구만. 그리고 그 사이 멀뚱히 서있던 제일 장신의 남자가 하얀 봉투를 들어올렸다.



“…이러면 다 식는데.”



 치킨 봉투다. 지민의 눈의 동그래졌다. 한 달에 한번이나 먹을까 말까 한, 뉴위크 멤버들 사이에서는 사치스러운 메뉴였다.



“형! 무슨 돈이 있어서 이걸 다 사왔어요.”

“치킨 먹고 싶으니까.”



 길가는 사람 한 명쯤은 돌아볼 만큼 잘생긴 이담이 무뚝뚝한 로봇처럼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아는데요, 형. 이담은 팀에서도 가장 독특한 멤버였다. 지민이 어어, 하며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이걸 먹으면 내일 당장은 굶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담이 다시금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치킨!?”

 


 정국이 고함을 치며 방에서 뛰쳐나왔다. 봉투까지 뜯어먹을 자세로 이담이 들고 있던 치킨을 넘겨받아 소중하게 껴안았다. 와 이거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어떻게 알고 사왔어요 형. 하준이 못마땅하게 일침을 놨다.



“야 너 형들은 안 보이고 치킨이 먼저냐?”

“형도 내가 치킨 사오면 저 안보일 거잖아요.”

“…상 펴라.”



 큼. 헛기침을 하며 하준이 물러가자 정국이 방긋 웃었다. 네, 형. 의성이 힘차게 상을 가지러 가는 정국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막내…선택적으로 싸가지 없게 잘 컸네. 잘 컸어. 그리고는 지민을 보며 말했다.



“우리 강아지는 걱정 말고 먹기만 해요.”



 톡톡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 지민이 마지못해 걱정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은 무척이나 재빨랐다. 순식간에 상을 번쩍 들고 날라 봉투를 챙겨왔다. 다섯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작은 앉은뱅이 상이 거실에 펼쳐졌다. 치킨 상자를 열자마자 전투적으로 정국과 하준이 냉큼 달려들었다. 의성이 놓치지 않고 잔소리했다.



“얘들아 아무도 안 뺏어먹으니까 천천히 먹어. 전부 다 체하겠다.”

“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지민만이 대답했다. 의성이 허허 웃었다. 그래…먹어라 애들아…. 지민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치킨 다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얼마 만에 먹는 기름진 음식인가. 스폰 자리에선 속이 얹힌 것 같은 기분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었다. 한참 상자에 얼굴을 파묻고 먹고 있을 때였다.



“형 이거 먹어요.”



 정국이 툭 제일 큰 치킨 조각을 지민에게 내밀었다. 동시에 하준이 빈 지민의 컵에 콜라를 채워주었다. 의성도 지민의 앞으로 맛이 다른 치킨을 덜어 내밀었다. 이것도 먹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담이 말없이 스윽 치킨 무를 지민의 곁으로 밀어주었다. 멤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짜맞춘 듯 움직였다.


 그 사이에서 지민은 문득 깨달았다. 형들이 갑자기 시간을 모은 이유. 치킨을 사온 이유. 정국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본 이유. 쏟아지는 관심들은 섬세하고 다정했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애정에 지민이 울컥했다. 나는 이것도 모르고. 지민의 눈에서 눈물이 툭툭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지민이 형 왜 갑자기 안 먹…형 울어요?!”

“뭐? 운다고?”

“지민아!”



 의성이 냅다 바로 지민의 옆자리로 날아왔다. 왜 울어? 엉? 목에 뼈 걸렸어? 지민은 그에 더욱 수도꼭지라도 튼 것처럼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하준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넌 무슨 치킨 먹다 오열하냐. 술도 안 마시고.”

“지민이 형 왜 울어요.”

“끕! 끅!”



 멤버들이 시선을 주고 받았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상태가 오히려 더 심각해졌는데? 누가 우리 넷째 울렸냐. 어떤 새끼냐. 끅끅거리는 지민에게 이담이 조용히 휴지를 내밀었다. 그렇게 울면 내일 눈 없어진다, 지민아. 정국마저도 젓가락질도 멈춘 채 난감하게 지민을 보다가 웅얼거렸다.



“…너무 맛있어서 감동 받아서 그래요?”

“그게 할 말이냐.”



 하준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지민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치킨이…치킨이 너무 맛있어요, 형, 흑.”



 그걸 맞다고 하네…쟤는 전정국 말이면 다 들어준다니까. 하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민이 엉엉 오열하며 주장했다.



“지, 진짜 치킨이, 너무, 너무 맛있, 흐윽, 어요. 이렇게 맛있는, 흑, 치킨은 태어나서, 처음…처음 먹어요.”

“…쟤 진짜인가 봐.”

“누가 우리 지민이 굶겼니?”



 의성이 지민을 달랬다. 그래. 형이 치킨 백마리 사줄게. 지민아. 뚝. 지민이 눈물을 슥슥 훔치며 휴지로 얼굴을 벅벅 닦았다. 코끝은 붉어진 채 눈은 야망과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흡사 열 받은 복숭아 같았다.



“저 진짜,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우리 그룹 알려질 때까지, 진짜로.”

“안 그래도 연습실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열심히….”



 이담이 하준을 툭 쳐 저지시켰다. 하준이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의성과 정국이 지민을 지지했다. 그래! 더 열심히 하자! 우리 뜰 수 있어! 모두 건배. 멤버들이 한데 모아 콜라가 든 종이컵을 마주 댄 순간이었다.


 쾅. 숙소의 문이 부숴질 듯 다시 열렸다.



“애들아!”



 컥. 종이컵들이 흔들리고 콜라가 상 위에 흩뿌려졌다. 정국이 악, 비명을 질렀다. 내 치킨! 의성이 냉큼 일어나 맨 앞에 섰다.



“사장님 이 치킨은 제가 따로 사비로 빼서 산 거고요. 절대로 식비로 주신 돈을 쓴 건 아니니까….”

“그런 치킨이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국이 흘러내리는 콜라를 피해 냉큼 닭다리 하나를 구조했다. 이담이 치킨 상자 뚜껑을 덮었고, 지민은 눈물을 닦던 휴지를 그대로 내려 콜라를 닦았다. 사장은 무척이나 급하게 뛰어온 건지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사장님 곧 죽으시는 거 아냐. 하준이 태평하게 말했다. 사장은 무릎까지 짚으며 커다란 숨을 내뱉으며 의성에게 조용히 해보란 제스처를 취했다. 모두 놀라지 말고 들어라.



“우리 행사 잡혔다.”



 멤버들은 모두 모르는 언어를 듣는 거마냥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행사라면…. 리더인 의성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무슨 행사요? 마트 식품코너 행사인가요? 군만두 투 플러스 원?”

“너 또 몰래 아르바이트…, 아니. 그건 나중에 따로 보고.”



 사장이 숨을 훅훅 골랐다.



“송영카드 메이크 콘서트 첫무대다!”



 정국의 손에서 닭다리가 툭 떨어졌다. 지민이 아직 닦지 못한 콜라에 빠지고 말았으나, 아무도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가 놀라 굳어버렸다.



“…사장님 농담하시는 거예요?”

“내가 그런 농담을 왜 하겠니! 진짜다! 우리를 첫무대에 세우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미쳤네.”



 하준이 넋을 잃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툭하면 거친 입버릇을 고치라 지적하던 사장도 그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럴만했다.


 메이크 콘서트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유명했다. 해외 팝스타며 국내 최정상 아이돌까지 아우르는 최고의 콘서트다.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타야 가는 곳이었고, 상 몇 개씩은 탄 아이돌 그룹들이나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자리라, 패기 좋은 신인 때나 목표로 했던 곳이었다.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진 가운데, 지민은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송영이라면. 그건. 아직 네 기회 끝나지 않았다 무심하게 했던 약속이 어제 들은 것마냥 귓가에 생생했다. 드디어 그렇게나 기다리던 기회였다.








***





 뉴위크는 다들 믿기지 않는 소식에 어리둥절하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우리를 왜? 혹시 잘못 섭외한 거 아니래요? 뉴위크가 아니라 위켄드였다던지. 팝스타 있잖아요. 믿지 못하던 그들은 행사 관련으로 날아온 문서를 보고서야 믿었다. 라인업 명단에 올려진 뉴위크라는 이름에 지민은 잠을 설쳤다. 이게 현실이라니. 꼬집어도 진짜였고 연습실에서 넘어져도 진짜였다. 꿈이라면 계속 꾸고 싶었다.


 뿔뿔이 흩어져 개인 시간을 보내던 멤버들은 연습실에 모두 다같이 모였다. 의성은 마트 아르바이트를 정리했으며, 정국도 수능 문제집을 냉큼 뒤로 미뤄두었다. 지민은 북적거리는 연습실의 풍경에 또 다시 감정이 울컥거렸다. 콘서트까지 남은 기간 동안 수없이 동선을 정리하고 안무를 점검했다. 마치 다시 데뷔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준비를 하는 과정 동안 지민은 급격히 윤기에게 미안해졌다. 믿지 못하고 좌절했던 것이 민망하기도 했다. 지민이 똑똑 조심스럽게 사장실을 노크하고 들어섰다.



“사장님. 혹시 연락 드려볼 수 있어요?”

“응? 아.”



 연락을 하고 싶은 인물이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눈치챈 사장이 난감해했다.



“안 그래도 나도 이 콘서트 소식 받고 다시 연락 드려봤는데 받질 않더구나. 비서 분께서 나중에 다시 연락이 갈 거라고만 하고 끊겼네.”

“아…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송영 같은 재벌이 직접 연락을 해오지 않는 이상, 지민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설령 직접 찾아간다 해도 당신 누구냐며 외부인으로 취급 받아 입구에서부터 가드들이 막아 쫓겨날 터였다.


 꼭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더불어 주신 기회 최선을 다해서 할 거라고, 믿어주셔서 기쁘다고. 그렇게도 말하고 싶었다. 지민은 다시 윤기를 만날 기회가 꼭 왔으면 좋겠다고, 그게 가능한 빠른 시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메이크 콘서트까지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평소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할 때는 그렇게 가지 않던 시간이 공연이 잡히니 순식간에 날아갔다. 라면으로 대충 때우던 끼니도 닭가슴살과 샐러드로 바꿔 몸을 관리했으며, 남는 시간에는 연습실에 틀어박혀 연습만 주구장창 했다. 정국이 이러다 염소가 되는 건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모두 다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그 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꿈의 날짜는 느리게, 또는 빠르게 다가왔다.


 메이크 콘서트 당일. 지민은 약간은 퀭한 얼굴 빛으로 일어났다. 어떡하지. 최고로 잘생겨야 되는데. 얼굴이 상했나 조금은 걱정됐지만, 마찬가지로 줄줄이 퀭한 빛의 멤버들을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심지어 픽업을 온 사장은 다크서클이 턱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쓰러지지 않는 게 용한 몰골이었다.



“애들아 떨지 말고. 잘하면 된다. 알았지.”

“…사장님이 제일 떠시는 것 같은데….”



 정국이 작게 말했다. 지민이 정국의 어깨를 툭 쳤다. 사장님 진짜 쓰러지실지도 몰라. 자극하면 안돼, 정국아. 정국은 쉽게 수긍했다. 알았어요. 콘서트장으로 가는 벤 안에는 묘한 긴장감과 전운 같은 것이 떠돌고 있었다.


 콘서트장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크기였다. 연말무대 시상식에조차 초대를 못 받아본 뉴위크 멤버들은 입만 떡 벌린 채 개인대기실로 안내 받았다. 개, 개인대기실을 정말 우리가 써도 되나요? 그들은 문 앞에 붙은 뉴위크 이름 종이에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뉴위크분들 이쪽으로 오실 게요.”



 스태프가 튀어나와 그들을 안내했다. 어리둥절한 멤버들은 스태프들의 손에 이끌려 거울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고, 의상을 갈아입었다. 사람 손을 처음 타보는 시골강아지마냥 얌전히 몸을 맡기던 지민은 문득 의문을 가졌다. 처음 보는 스타일의 메이크업과 의상이었다. 그간 했던 푸른색과 붉은색 메이크업이 없었다.



“사장님 저희 새로운 컨셉인 거예요?”

“어어? 그, 그렇지. 여기 콘서트 컨셉에 맞게 해야 되니까.”



 사장이 얼버무렸다.



“따로 상의해서 한 거지, 그럼. 자, 잠시 어디 좀 다녀올 테니까 대기하고 있으렴.”



 지민은 순순히 수긍했다. 무대를 앞에 두고 있어 따로 생각할 여력이 없기도 했다. 다 되셨습니다. 다음 멤버분 진행할게요. 감사합니다! 지민이 허리를 직각으로 접어 인사하며 일어났다.


 지민이 어색하게 의상을 훑어내려 보았다. 꼭 어느 외국의 하이틴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이 입을 것 같았다. 반바지에 모자를 쓰고, 하늘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의상이었다. 걸어 다니는 하늘색 솜사탕 같기도 했다. 멤버들도 어색한지 거울을 수십 번 들여다보았다. 어딜 내놔도 강철 심장을 유지하는 하준마저 조금 떨리는 안색으로 걱정했다.



“…우리 이렇게 정상인처럼 하고 무대 올라가도 되는 거냐?”

“어차피 이렇게 안 해도 전에 했던 컨셉 아무도 몰라요! 괜찮을 거 같아요…!”



 지민이 상냥하게 안심시켜주었다. 하준이 묘하게 찝찝한 얼굴로 고맙다 대답했다. 가끔 박지민이 제일 아프게 때려, 하고 중얼거리면서. 공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지민은 멤버들과 마지막으로 안무를 맞춰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제 곧…드디어. 심호흡을 하던 그때, 자리를 비웠던 사장이 질린 듯한 안색으로 돌아왔다.



“서러워서 원.”



 지민이 의아하게 돌아보자 사장이 후다닥 고개를 돌려 피했다. 공연 전에도 무척이나 수상한 움직임이었다. 지민이 은근슬쩍 사장의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속닥거렸다.



“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저희 뭐 문제 있어요?”

“어, 엉? 문제는 무슨. 아냐. 아무것도 없어. 공연에만 집중하면 충분하단다.”



 지민은 그럼에도 의심을 거두지 않고 빤히 사장을 보았다. 사장이 부산스레 땀을 닦으며 눈치를 보았다. 제일 말랑하게 생겨놓고 물러나질 않는다. 결국 사장이 한숨을 깊게 쉬고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별 건 아니고….



“그, 지민아. 궁금해 했잖니.”

“네? 어떤 걸….”

“VIP실에 있으실 거야.”



 오셨다고 해서 인사 드리려고 했는데 만나기가 힘드네. 어휴. 이번에도 누군지 주어는 없었다. 그러나 지민은 한번에 알아들었다. 그 분이….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스탭이 들어와 외쳤다.



“뉴위크 분들 무대 대기해주세요.”



 지민이 벌떡 일어나 스태프의 뒤를 멤버들과 좇았다. 긴장으로 눈앞이 하얘졌다가 까매진다. 스테이지 바로 아래에 도착하니 진행하는 MC들의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드디어 대망의 첫무대가 시작할 순간인데요.”



 의성이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동그랗게 원으로 모여 서로의 어깨를 둘러쌌다. 모두 떨지 말고. 우리 다 잘할 수 있는 거 알지.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잘할 수 있어요. 잘해야 돼요. 서로를 격려하며 무대 장치 아래에 섰다. MC들이 힘차게 외쳤다.



“매번 새로운 판타지를 선보이는 그룹, 뉴위크입니다!”



 지민이 길게 호흡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떴다. 뜨인 눈에는 빛나는 열정과 패기가 가득 차있었다. 보여줄 거야. 내가 쓸모 있다는 걸. 꼭 무기처럼 마이크를 꽉 쥐었다.



“삼, 이, 일.”



 올려주세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무대가 위로 상승했다. 와아! 귀가 멎을 것 같은 함성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빼곡한 관객의 숲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등장과 함께 번쩍 켜진 조명이 빠르게 점멸한다. 공연장을 꽉 채운 열기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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