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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은행 경호원 겸 안내직원이 친절하게 방금 입장한 남자에게 말을 건다. 분홍머리의 남자는 다소 긴장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제가 통장을 하나 만들러 왔는데요…가장 먼저 번호 줄? 줄을 서라고….”

“번호표요? 네, 도와드릴게요. 먼저 이 종이 작성해주세요.”



 경호원이 선한 웃음을 띠며 펜과 함께 종이를 건네주었다. 딱 봐도 어리숙하게 보이는 분홍머리의 남자는 양손으로 종이를 받곤 쑥스럽게 웃었다. 펜을 잡고 한자한자 또박또박 써내려 간 다음 다시 경호원을 바라본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대놓고 얼굴에 쓰여있는 질문에 경호원은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서 번호 오실 때까지 대기해주시면 돼요. 네에. 잠시만요. 쭈뼛거리며 딱 한자리 남은 의자에 앉는다. 어색한 티를 팍팍 내며 앉아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은행에 처음 온 사람 같았다. 띵동 알림음이 울리고 웃는 얼굴의 은행원이 다음 번호를 부른다.



“284번 고객님.”



 지민의 옆에 앉아있던 나이 든 노인이 일어선다. 지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종이에 적힌 번호는 285번. 번호는 빠르게 단축됐다.



“285번 고객님.”

“저요!”



 지민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허둥지둥 달려 나온 지민을 보고도 은행직원은 친절한 미소를 유지했다.



“바쁘게 오셨나 봐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제가요 어, 통장을 만들고 싶은데요.”

“네, 어떤 통장으로 만들어드릴까요?”

“네? 어떤…통장이요?”



 통장도 종류가 있어? 지민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오기 전 들었던 당부를 떠올려보았다. 은행직원이 묻는 말에만 대답할 것. 길에서 누가 말을 걸어도 무시할 것. 가면 알아서 다 해주니 얌전히 따르기만 할 것.


 지민을 앉혀놓고 끊임없이 주입시키던 주인은 어떤 통장이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알겠지?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그대로 다시 읊어봐. 주인을 따라 세 번이나 복창한 사항만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어어…. 지민이 곤란해하며 입만 뻐끔거리니 은행직원이 별 문제 없다는 듯 착 안내서를 펼쳐 들었다.



“괜찮아요, 고객님. 설명해드릴게요.”



 지민이 감동 받은 눈으로 볼을 발그레 붉혔다. 감사합니다. 은행직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세대에 보기 드문 부끄럼 많은 귀여운 소년이다.



“통장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고객님께선….”

“다 꼼짝 마!”



 탕탕탕! 커다란 총성과 함께 검은 복면을 머리에 쓴 갱단이 난입했다. 입구에서 문을 열어주었던 경호원이 제일 먼저 총을 맞고 죽었다. 피비린내가 공중으로 빠르게 퍼졌다. 갱단이 허공으로 위협하며 총을 갈겼다.



“모두 무릎 꿇고 손 들어!”



 은행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아이고, 아이고. 살려주세요. 곳곳에서 공포에 덜덜 떨었다. 그 가운데 지민이 어리둥절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뽀얀 얼굴은 주위를 둘러보곤 이내 눈치껏 같이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세 명의 침입자 중 한 명이 지민의 통장을 안내해주던 은행직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여기에 돈 다 쓸어 담아.”



 사색이 된 은행직원이 강도의 명령대로 돈을 자루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강도가 연이어 지민을 총구로 툭툭 쳤다.



“거기 너.”

“…저요?”

“너도 옆에 가서 같이 담아.”



 지민이 은행에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움직이질 않고 있으니 복면을 쓴 남자가 지민을 총구로 겨냥했다.



“죽고 싶어?”



 지민은 주인이 가르친 문구들을 다시금 되새겼다. 자 따라 해라, 박지민. 오늘 나는 아무 사건사고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다녀올 것을 맹세한다.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빨리 따라 해. 안 해? 너 그럼 안 내보내줄 거야.


 폭 한숨을 쉰 지민이 천천히 일어났다. 분명 주인과 약속했다. 하기 싫은데…. 짜증 가득한 얼굴로 복면을 쓴 강도의 옆을 지났다. 느릿한 움직임에 강도가 지민의 머리를 총구로 툭툭 쳤다. 작은 머리통이 까딱거리며 밀렸다.



“빨리 빨리 움직여.”



 지민이 발을 뚝 멈췄다. 그 자세 그대로 복면을 쓴 강도를 올려다봤다. 그들의 키는 거진 머리 하나만큼 차이가 났다.



“뭐야. 이 새끼, 눈을 왜 이렇게 떠.”



 복면을 쓴 남자가 총으로 지민을 다시 저격한 그 순간. 지민의 동공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세로로 좁혀졌다.



“컥!”



 지민의 주먹이 남자의 배에 꽂혀 들어갔다. 남자의 허리가 기억 모양으로 꺾였다. 작은 주먹은 연이어 무릎이 복면을 쓴 강도의 얼굴을 강타했고, 남자가 고통에 허덕거리는 사이 손 마저 비틀어 꺾어 총을 뺐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은 짜여진 각본 같았다. 탕탕탕. 다시 총성이 세 번 울렸다. 앞에 있던 강도의 머리에 한 발, 인질을 붙잡고 있던 침입자 두 명의 머리에도 사이 좋게 한 발씩. 강도들이 슬로우 모션처럼 바닥으로 엎어진다. 허업. 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기분 나쁘게 왜 머리를 건드려….”



 투덜거리며 지민이 대충 바닥에 총을 던져서 버렸다. 괘씸해서 이미 죽어 있는 갱의 머리통을 발로 한대 더 깠다. 철퍽 신발에 피가 튄다. 악. 묻었어. 탈탈 발을 흔들어 털어낸 지민은 다시금 은행 안을 둘러보았다. 쓰러진 강도 셋. 경악하며 입을 떡 벌리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집에 있는 누군가.


 아 맞다. 약속.


 오늘 얌전히 돌아온다고 했었는데. 망했다. 고민하던 지민은 돈을 주워 담던 동작 그대로 멈춘 은행직원에게 다가갔다. 은행직원이 흠칫 떤다. 지민이 순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요.



“혹시 통장 계속 만들 수….”



 지민은 꼭 쥐고 있던 종이를 내밀다가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경호원의 안내로 정성껏 적은 종이가 피에 몽땅 젖어버렸다. 지민이 울상을 짓는다. 피도 눈물도 없이 강도들의 대가리를 터뜨려버린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아이 같았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다. 아쉬움에 미적거리던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잡히면 일이 더 커진다. 그럼 집에서 언제 오나 시계만 보고 기다리고 있을 주인, 민윤기의 속이 더 터질 거다.



“저기…아까 신분증 냈던 거 가져가도 되나요?”



 은행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헐레벌떡 지민의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지민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발을 뗀다. 그러다 곧 아! 하고는 다시 돌아온다.



“이거 가져가도 돼요?”



 지민이 은행의 통장과 카드의 설명이 적힌 카탈로그를 가리켰다. 은행직원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눈꼬리를 환하게 휘어 접은 지민이 품 안에 카탈로그를 넣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소년은 꾸벅 예의 바르게 허리까지 접어 인사한 뒤 팔랑팔랑 날 듯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





 슬금슬금 지민이 윤기의 눈치를 보며 들고 있던 양 팔을 내렸다. 뉴스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윤기가 단번에 쓰읍, 한다. 지민이 톡 튀어나온 입술로 꿍얼거렸다. 대체 이쪽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는 거야.



“똑바로 들어.”

“아이 혀엉….”

“애교부려도 소용없어. 하나도 안 귀여워.”

“아 그거 진짜루 내가 한 거 아냐.”



 지민은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다. 자신은 분명 윤기의 뜻대로 하려고 했다. 얌전히 통장만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데. 이렇게 많이 혼날 줄 알았으면 아까 그 자식 머리통을 그냥 반으로 쪼개주고 왔어야 했다. 그러나 변명을 들어줄 주인이 아니기에 지민은 반항의 의미로 입술만 삐죽거렸다. 윤기가 코웃음을 친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럼 네 운동화에 묻은 건 케챱이니.”

“아냐. 이건 길 가다가 잘못 밟아서…!”



 윤기가 폰으로 뉴스 화면을 지민의 앞에 들이밀었다. 은행강도 은행에서 사망, 용감한 시민이 나섰다는 목격자 증언 잇따라…. 그리고 부정하기도 민망하게끔 두껍고 커다란 글씨로 쓰여있었다. 용감한 시민은 분홍머리의 청년. 지민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분홍색이…꼭 나라는 법칙두 없구…요새 유행하기도 하구….”

“형이 가기 전에 뭐라고 했어. 다시 복창 실시.”

“…조용히 다녀온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손 똑바로 들어.”



 늘 그렇듯 민윤기는 틈이 없다. 풀이 죽은 지민이 꼼짝없이 손을 들었다. 머리에 고양이 귀라도 달려 있었으면 축 쳐졌을 모양새다.



“형 통화하고 올 거니까 벌 서고 있어. 알아들었어?”

“…….”

“대답 안 해?”

“…네에.”



 윤기는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얘를 대체 어떡하면 좋냐. 아예 목줄이라도 채워서 외출마다 질질 끌고 다니며 감시라도 해야 할 판이다. 아니면 발목에 위치 추적기라도 달아 놓던가. 윤기는 혀를 찼다. 하나도 안 컸네, 하나도 안 컸어. 어째 데려왔을 때랑 똑같다.



 때는 바야흐로 5년전. 윤기는 나라에서 진행한 대형 살상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만사 귀찮은 성격이지만 사람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관념에 따라 꾸역꾸역 참여한 실험이었다. 살상무기 개발이라는, 도덕적 결함이 가득한 프로젝트였으나 윤기는 큰 거리낌이 없었다. 어차피 허황된 프로젝트였으니까. 대체 어떤 놈이 생각해낸 기획인지 프로젝트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 유전자와 동물 유전자를 결합한 생체병기?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백퍼센트 완벽하게 결합한 생물을 탄생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 적당히 월급이나 떼먹다가 튀면 되지. 적당히 놀고 먹으려고 지원한 날 보너스로 커다란 티비를 질렀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스스로의 천재성에 대해.


 그날은 유난히도 일이 하기 싫은 날이었다. 대충 인간의 유전자를 뽑았고, 대충 매의 유전자를 뽑았으며, 이왕 하는 김에 고양이 유전자도 뽑았고, 대충 결합시켰다. 당연히 실패겠지.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가 어제 미처 다 못 본 영화나 봐야지 생각했다. 착착 머릿속 계획을 진행시키며 분명히 실패했을 실험관을 봤는데.


 윤기는 제 눈을 의심했다. 이게 되네? 성공이었다. 매와 고양이와 결합된 인간의 배아세포가 시험관을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기함하며 윤기는 말없는 배아세포를 향해 질문했다. 너 왜 태어났니? 너 왜 그래.


 그때부터 적당히 지루하며, 적당히 행복한 민윤기의 삶은 반쯤 박살이 났다. 아니, 씨발 이걸 보고를 해야 하나. 그럼 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윤기는 어렵지 않게 결말을 예측했다.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전쟁터에 굴려지다가 언제 죽은 지도 모르게 시체더미에 쌓이겠지. 아니면 평생 연구소에 갇혀 피를 뽑히며 살 거다.


 한 톨 남은 인간의 양심이 꿈틀거렸다. 아 어쩌지. 실험관 앞에서 고민하던 윤기는 스스로에게 하룻밤의 유예를 뒀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성공작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작업물을 원래 없던 것으로 돌려버리는 거다. 뜬눈으로 지새고 해가 뜨자마자 부리나케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 깨진 채 유리가 여기저기 튀겨있는 실험관, 그리고 바동거리며 뒤집기를 하고 있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아이를. 윤기는 탄식했다. 아, 내 인생은 이제 글러먹었구나. 그와 동시에 쐐기를 박듯 또 다시 문이 열리고 연구소장이 들이닥쳤다. 그는 함박웃음을 단 채 물었다. 아니 이 아이는 뭔가? 자네 설마…! 윤기는 성공작 1호를 얼결에 만든 희대의 실패작으로 둔갑시켰다. 인간 유전자를 잘못 조합해서 태어났습니다. 동물 유전자의 비율이 잘못 섞였어요. 소장은 그럼에도 윤기를 칭찬했다. 성과급을 두둑이 받았고 아이는 현재 최고의 결과라며 자세한 실험을 위해 새로운 방으로 옮겨졌다. 


 아이는 박지민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생체병기가 학습해야 할 정보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실험실의 하얀 가운을 입은 인간들에게 복종하도록 교육됐다. 그렇게 세달. 박지민은 매의 유전자가 결합된 키메라답게 성체로 빠르게 성장했다. 아무런 죄책감 없는 얼굴로 사람의 머리를 터뜨리는, 무지한 순수함을 지닌 채로.


 그런 지민을 보면서 윤기는 매일 죄책감을 느꼈다. 하필 박지민은 어떻게 안 건지 민윤기를 가장 잘 따랐다. 훈련하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다가도 민윤기가 찾아오기만 하면 활짝 웃으며 윤기에게 깡총 뛰어들어 안겼다. 윤기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민윤기는 제 허리까지 오는 지민을 안고 얼렀다. 어, 그래. 지민아. 저 이거 하면 선생님이 같이 있어줄 거예요? 연구소 동료들이 윤기를 향해 제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라며 압박을 넣었다. 투명한 눈동자에 결국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박지민은 그날 칼 쓰는 법을 익히다 배에 구멍이 세 방이나 뚫렸다. 바로 다음날 연구소 실험실로 옮겨져 치료되긴 했지만.


 그 뒤로도 비슷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윤기는 너무 괴로웠다. 아 내가 좀만 멍청했더라면…! 결국 찔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양심에 큰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데리고 튀자.


 윤기는 몰래 지민의 방에 들어갔다. 선생님…? 지민은 졸려서 눈을 비비적거리면서도 유순하게 윤기에게 다가가 안겼다. 어느새 키는 가슴팍까지 왔다. 응. 우리 잠깐 어디 놀러 가자. 그렇게 준비한 차량에 지민을 데려가면서 연구소에 불을 냈다. 준비해놓은 새카맣게 탄 시체로 보이는 물체를 방에 밀어 넣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 뒤 결과가 이렇다. 살생관념에 어디 하나 나사 빠진 박지민과 얼결에 만든 생체병기를 사람답게 만들려는 민윤기의 동거.


 윤기는 지민이 들을 수 없도록 방음이 철저히 차단된 제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자 짧은 신호음이 울리고 상대편이 받는다. 다짜고짜 사람 좋은 미소부터 흘렸다.



“하하하 남준아 잘 지냈냐. 오랜만이다. 얼굴 안 본지가 꽤 오래됐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날씨 요새 좋은데 언제 한번 만나서….”

[뭐 부탁하려고요.]

“지민이 흔적 좀 지워주라.”

[형은 어떻게 돌려 말하는 걸 몰라요. 보통 한 박자 쉬고 요구하지 않나?]

“급해서 그래. 한번만 도와줘라. 오늘 뉴스 봤지. 은행에서 일어난 사건. 연구소 쪽에서 들었으면 움직일 거야. 씨씨티비 다 태워줘.”

[아니 어떻게 지민이는 하루라도 사고를 안 치는 날이 없어.]

“야 인마 우리 지민이가 어때서. 요즘 얼마나 말도 잘 듣는데. 그리고 어? 애초 은행을 턴 그 새끼들이 쓰레기지. 안 그래도 지구에 사람도 많은데 좀 죽어도 뭐, 별 거 있냐.”



 조금 뭐라 했더니 금세 박지민 편을 든다. 남준은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윤기가 처음 박지민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 동정한 순간부터 김남준의 운명 역시 민윤기와 같이 불법 루트를 탔다. 원래 해커로 일했으니 하는 일마다 불법이긴 했지만.



[그럼 일 다 하면 연락할게요.]



 남준이 깔끔하게 통화를 종료하려는 순간 윤기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남준아 CCTV 원본은 나한테 보내줘.”

[원본이요? 그건 왜?]

“아니…뭐 별건 아니고…궁금하잖냐. 신분증은 어떻게 또 잘 챙겨왔던데, 번호표도 잘 뽑았을 거 같고. 낯도 가리는 게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눈치 보면서 대기했을 건데, 어? 그게 또 얼마나 기특….”

[끊어요.]



 남준이 매정하게 끊는다. 윤기는 입맛을 쩝 다셨다. 안 보내주려나. 그러나 역시 착한 동생답게 5분도 지나지 않아 영상이 도착했다. 윤기는 흐뭇하게 웃으며 영상을 재생시켰다. 쭈뼛거리며 은행으로 입장한 지민의 모습. 그리고 번호표를 꼭 쥐고 앉아있는 모습. 잘했네, 잘했어. 시키면 다 잘 한다니까. 하면 다 잘해. 팔불출이 되어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길 잠시 강도들이 등장하며 윤기의 안색이 썩어간다. 하필 박지민이 할 때 들이닥치는 건 뭐냐고.



“아니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도 그렇지.”



 윤기는 순순히 강도들의 말을 따르는 지민을 보며 인상을 더 깊게 썼다. 그리고 강도가 지민의 머리를 총구로 치는 순간. 욕을 내뱉었다. 이 개놈들. 그리고 다음 순간 강도를 후려 패는 지민을 보면서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리 애가 맞지 않아서 다행이군.


 순식간에 우리 애 어화둥둥 모드가 켜진 윤기는 슬그머니 방문을 살짝 열었다. 아직도 들고 있으려나. 틈 사이로 무릎을 꿇고 앉은 지민이 보인다. 꼼수를 부릴 만도 한데 말은 또 잘 들어서 계속 들고 있는다. 내 새끼 이렇게 순수해서 세상 어떻게 내보내. 방금까지 지민이 세 명의 머리통을 뚫었단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윤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생 옆에 끼고 살아야겠다.



“반성 다 했어?”



 윤기가 방문을 닫고 나오자 지민이 고개를 든다. 급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응응, 나 다했어.



“앞으로 또 이럴 거야?”

“아니!”



 형 말 매일매일 들을게. 지민이 다짐하듯 크게 말한다. 그러냐. 약속했다. 다음부턴 얄짤 없어. 몇 번의 소용없는 경고를 하고 윤기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지민의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이리와.”

“혀엉!”



 지민이 날 듯 윤기의 품에 퐁당 뛰어든다. 생체병기 목적으로 태어났으면서 애교는 상상초월이다. 윤기가 지민의 등을 끌어안아 토닥거리니 지민이 어깨에 얼굴을 부비작거린다. 이런 애로 생체병기는 무슨 생체병기. 가만 보면 매의 유전자는 쏙 빠진 듯 싶다. 윤기의 기분이 풀린 걸 눈치채자마자 지민은 더 대놓고 애교를 부렸다.



“형 나 팔 아파.”



 고작 그 조금 들고 있었다고 생체병기가 팔이 아플 리 없다. 그냥 부려보는 투정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윤기는 자연스럽게 지민의 팔뚝을 조물락조물락 주물러주었다. 여기? 웅, 거기. 지민이 눈웃음을 배시시 흘린다.



“형이 주물러주니까 하나도 안 아프다.”



 형 손이 제일 좋아. 형이 만져주는 곳은 다 좋아. 윤기와 눈을 마주친 지민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윤기는 순식간에 귀끝이 벌개질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시험관에서 태어나 접촉한 사람이 열손에 꼽을 만큼 작아서 그런 건지, 학습이라곤 사람 머리 터뜨리는 전투동작 말고 다른 걸 못 배워서 그런 건지 지민은 늘 솔직했다. 내 손에 자랐는데 어떻게 이런 애가 됐지.


 윤기는 괜히 마른 헛기침을 하며 먼저 시선을 피했다. 이러면 안 된다 민윤기. 박지민은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애다. 박지민은 키가 나와 같지만 5년밖에 안 살았다. 민윤기 넌 인간 쓰레기로 전락하면 안 된다. 홀로 심각한 윤기의 사정을 모르는 지민이 아 맞다, 하더니 심각하게 말한다.



“근데 형 나 이제 어른 못 돼? 통장 있어야 어른이라며.”

“괜찮아. 내 꺼 써. 그럼 어른이야.”



 정말? 나 어른이야? 지민이 윤기에게 다시 달려든다. 그럼 나 이제 형이랑 똑같아? 지민아 이렇게 오면 형 부러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윤기는 얌전히 지민에게 곁을 내주었다.



“그래. 그러니까 형이랑 평생 살아. 알았지.”

“진짜?”

“어.”

“그럼 나…사실….”



 지민이 미적거리며 말꼬리를 늘린다. 뭔데 말해봐. 윤기가 부드럽게 얼렀다. 편안한 분위기에 혹한 지민이 순순히 말한다.



“나 아까 팔찌 잃어버렸어.”

”…….”

“그리구 신발에 있던 것도 뿌개고….”



 어제 손 봐서 달아준 능력제어팔찌와 위치추적센서를 부쉈단다. 기기를 돈으로 환산한 윤기가 조용히 지민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10분간 손 더 들고 있어.”

“혀엉!”



 애 키우기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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