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club des belugas - forward>
도로에 온갖 차들이 모여 빵빵거렸다. 뉴욕의 러시아워는 언제나 끔찍했다. 시속 10마일 언저리로 달리는 차들은 개미보다 느렸다. 정체된 도로는 차라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편이 맞았다. 아침 러시아워를 뚫고 뉴욕으로 출근하는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욕을 한입 베어 물을 것이다. 이 미친 도시.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차라리 뛸까? 지민은 입술을 달싹 씹으며 고민하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버스에서 내렸다. 35번가에 스타벅스가 있다고 했어. 그리고 한 블록 지나서 일간지를 사고, 그 다음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사야 해, 그리고 이 모든 일처리를 30분만에 하고 가는 거야. 넌 할 수 있어.
첫 타자는 스타벅스였다. 언제부터 커피가 사람들 필수보급품이었지? 긴 줄에 흐억한 지민은 발을 동동 구르며 줄을 기다리다 차례가 되자마자 외운 주문을 쏟아냈다.
"여기 주문할게요! 라떼랑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라떼는 에스프레소 샷 추가…아니, 더블샷 추가요! 아메리카노는 주시는데요, 시럽 넣어주세요. 그리고 커피 나올 동안 잠시 밖에 다른 곳 좀 들리고 올게요. 가능한 빨리 내주세요!"
지민은 정신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 블록을 미친 듯 질주해 달려간 가판대는 역시나 줄이 늘어서 있었다. 줄을 선 지민은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며 저도 모르게 혼잣말했다.
"아 힘들어…."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힘들다니. 회사로비도 밟지 않았는데! 백수탈출한지가 바로 어제야, 너. 정신 차려. 스스로를 꾸짖은 지민은 마저 일을 처리했다. 레이첼은 워스트리트저널을 포함해서 세종류라 했다. 남은 두 종류를 고르기 위해 일면을 쳐다보고 있는데, 한 가십지 일면에 윤기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있었다. 어거스트의 신임대표, 로아스 시몬과 열애중.
"와…."
사진 안의 윤기는 여성과 함께 호텔에 들어가고 있었다. 상대여성은 지민도 아는 유명한 탑모델이었다. 샤넬의 새로운 뮤즈라 했던가. 연예인에 관해 잘 모르는 지민이 들을 만큼, 최근 모델계에서는 가장 뜨는 모델이라 했다. 지민은 감탄했다. 면접 때 실물로 본 얼굴을 누구나 다 아는 신문 일면에서 만나는 기분은 좀 새로웠다. 대단한 사람이기는 하구나.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르다. 내가 이런 사람 밑에서 일하다니.
"뭐 드릴까요?"
"아…!"
넋을 놓고 신문을 보다 차례가 왔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지민은 현실로 귀환했다. 워스트리트저널이랑요, 타임지랑, 또 투데이 유에스에이요.
"그리고 이것도 주세요."
지민은 윤기가 실린 가십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여기 돈이요! 수고하세요!"
한 다발 일간지를 옆구리에 낀 지민은 또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려 커피를 찾고 약국을 들려 아스피린까지 챙겼다. 어젯밤 잠들기 전 다짐한, 출근하면서 회사로비에서 셀카 찍기도 할 수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려 로비를 주파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선 폰이 징징 울었다.
"네, 레이첼 지금 로비에요.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되…으앗!"
손에 가득한 짐 탓에 전화를 받다 커피를 쏟을 뻔 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별 건 아니고 커피를 쏟을 뻔 해서…그런데 괜찮아요! 손은 데이지 않은 거 같아요."
[손이 안 데였어요? 설마 커피 식었어요?]
"네? 네. 아무래도 길에서 오는 동안 좀 식었나 봐요."
[맙소사.]
하늘이 무너진듯한 탄성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여보세요? 레이첼? 레이첼? 끊긴 전화에 외치며 지민은 뒤통수가 어쩐지 서늘했다. 방금 왠지 내 손이 데였어야 했던 느낌인데. 불안감이 가증된다. 최대한 낼 수 있는 속도는 다 내고, 알려준 9시 출근 시각보다 훨씬 이르게 도착했는데, 일 못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기분이었다. 지민은 머릿속에서 울려대는 비상벨을 진정시키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다.
"잠시만요, 같이 가요!"
닫히던 문이 열리고 사람이 탔다. 양팔 가득 서류를 들은 진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어제 면접 보신 분이시네요. 축하 드려요. 그 자리 노리는 사람 진짜 많은데. 그런데 이름이…."
"아 박지민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헤헤 지민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손에 한 가득 들린 짐 탓에 악수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이해한다는 듯 진이 괜찮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진이라고 부르면 돼요. 한국이름은 김석진. 한국인, 맞죠?"
"네! 저도 한국이 고향이에요!"
역시 한국인이 맞았구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지민은 존경 어린 눈으로 석진을 올려다봤다. 석진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다. 먼 땅에서 같은 고향이라는 점만으로도 친근감이 생긴다. 같은 회사에, 같은 상사를 모시고, 같은 고향.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호감의 조건이다.
"저 열심히 할게요. 알려주시는 거 전부 다 잘 배울 자신 있어요, 진. 아 저…선배님이라 불러도 될까요?"
"선배님?"
석진이 놀란 듯 눈을 열었다. 선배님…선배님…. 몇 번 이채롭게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지민은 별빛 먹은 눈으로 머리가 떨어져나가라 끄덕거렸다. 네, 선배님이요. 싫어하지 않는 듯한 표정에 지민이 눈치를 보다 살금 불렀다.
"불러도 될까요? 선…배님…?"
"다시 한번만 불러 줄래요?"
"선배님."
"다시 한번만…!"
"네, 선배님!"
석진이 감동 어린 목소리를 냈다. 아아, 드디어 내 밑으로 신입이 생겼어. 손에 가득 들린 종이뭉치만 아니었다면 손으로 입으로 틀어막을 기세로, 전세계가 극찬한 감동영화를 본 사람 같은 반응이었다. 크윽. 오래 버티긴 했구나. 그래, 오래 버텼어. 수고했다, 석진아. 석진아 수고했어. 잘했어. 잘 참았어. 그 동안 고생한 과거가 스쳐 지나가는 듯 중얼거리는 석진을 지민은 헤헤 웃으며 바라봤다.
"참 마음에 드는 사람이 들어왔네요, 이번에. 미스터 윤이 제대로 뽑았어."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꼭 오래 버텨줘요."
"물론이죠! 선배님 밑에서 열심히 배울게요!"
"꼭, 오래."
석진이 강조했다. 예의상 던지는 말 보다는 시사 프로에나 어울릴 법한 어투가 진지했다. 제발, 이라는 말이 들린 것도 같았다. 얼떨결에 지민도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거의 도착할 때 즈음 석진이 기도하듯 묵념했다.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기를."
왜 회사를 출근하면서 생존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지? 의아했으나 지민은 석진이 너무 진중해 보여 묻지 않았다. 띵, 마침내 출근 첫날의 엘리베이터가 직장에 도착했다. 레이첼이 문 앞에 서있었다.
"지민!"
"레이…."
반가운 얼굴로 입을 뗀 지민은 마지막까지 다 말하지 못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 지민의 손에서 신문과 아스피린을 챙긴 레이첼이 지민을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 방금 회사 왔는데. 지민이 밀리자 놀란 건 진도 마찬가지인 행색이었다.
"미스터 윤 도착 전까지 10분 남았어요. 지금 내려가면 늦지 않으니까 빨리 다녀와요."
"네?"
시계를 가리키며 레이첼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민은 더듬더듬 레이첼이 시켰던 심부름 목록을 나열했다. 혹시 뭐 빠진 게 있나요? 커피도 사오고, 아스피린도 사오고, 신문도 사왔는데. 소심한 저항에 레이첼은 정말 그걸 모르겠냐는 듯한 표정을 띄웠다. 레이첼의 냉대에 석진이 나서서 지민을 보호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쌓은 친밀도가 벌써부터 빛을 발했다.
"에이, 레이첼. 왜 그래요. 지민이 실수할 수도 있죠. 왜요, 뭔 실수를 했는데 그래요?"
선배님…. 석진의 등에 날개가 달린 환상이 보인다. 너무 멋있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석진에 대한 찬가가 줄줄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석진이 제 편을 들어줄 것만 같은 신뢰가 생겼다. 하루 만에 지민을 싸고도는 석진을 보고 레이첼은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커피를 턱짓했다.
"커피가 식었어요."
"뭐요! 지민, 왜 그랬어요. 어서 다녀와요."
너무나도 빠른 태세전환이었다. 어, 어라? 석진은 다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닫힘 버튼을 연타하기까지 했다. 10분이면 여기 앞 스타벅스에 도착할 시간은 되니까 빨리 가요. 세상에, 커피가 뜨겁지 않다니. 레이첼이 전화로 하늘이 무너진 듯한 목소리를 들려줬다면, 석진은 하늘에 구멍이 난 듯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쪽은 제가 처리할 테니 어서 회의실 쪽 처리하세요."
레이첼이 책상 쪽을 가리켰다. 맡길게요, 레이첼. 석진은 생명이라도 부탁하는 것처럼 절박하게 말하고는 쌩 사라졌다. 지민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보며 멍청하게 생각했다. 왜지? 왜? 커피가 뜨겁지 않으면 지구가 터지기라도 하는 거야? 커피의 미스터리에 관해 황당해하고 있는데, 돌연 문이 다시 열렸다. 문 앞에는 다소 창백한 안색의 레이첼이 서있었다.
"미스터 윤이 도착했어요."
망했어요. 내려와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그 옆으로 석진이 달려왔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있는 둘을 따라 지민도 나란히 섰다. 전쟁직전의 긴장감이 가득해서, 지민은 커피가 식으면 일어나는 일을 물으려다 참았다. 모두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죄수들 같은 태도였다.
지민은 내심 레이첼과 진이 오버한다 생각했다. 아무리 윤기가 성격이 더럽다 해도, 고작 커피가 식었다는 이유로 하루를 망치겠는가. 어거스트도 하나의 회사고 사회다. 무릇 모든 사람에게는 상식이 있는 법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가 있는데. 뭐 다음부턴 잘 하라는 말 한 마디 정도겠지. 일층을 찍은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차츰 올라올수록 사무실에도 긴장감이 증가했다. 석진이 작게 명복을 빈다는 마지막 안부인사를 늘어놨다.
"굿럭."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는 과정이 지민의 눈에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비춰졌다. 드디어 첫날 출근으로 만나는 것이다. 잘 보여야지. 첫날이 중요한 거야. 꿀꺽 침을 삼키는 사이, 느리게 열린 문 사이로 민트색 머리카락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그 아래로 하얀 얼굴 위에 구찌 선글라스가 걸쳐있다. 검은 목티에 매치한 베이지색 톰포드 코트는 척 보기에도 고가였다. 어거스트의 주인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고압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을 법했다. 과거의 자신은 정신을 놓아버린 게 틀림없다. 내가 어떻게 저런 사람한테 겁도 없이 말을 걸었을까. 타이밍을 재던 지민은 엘리베이터에서 한 발작 윤기가 걸어 나오자마자 인사했다.
"안녕하…."
"오늘은 참 재미있는 소식이 천지군. 내 회사의 공장이 생산마감일을 어겼다지? 그래서 지금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배에 들어있어야 할 창고가 텅 비어버렸고. 거기 책임자는 누구야? 기획팀만 멍청한 줄 알았더니. 아 혹시 둘이 친구인가? 내가 직업을 잘못 선택했군. 이럴 줄 알았으면 선량한 기업인이 아니라 러시아 마피아를 할 걸 그랬어. 그럼 진작 이렇게 골치 아플 일이 없을 텐데. 당장 두 책임자 다 말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꿔보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게 더 내 적성에 맞을 거 같아."
윤기는 바람처럼 지민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 뒤를 익숙하다는 듯 진과 레이첼이 따랐다. 못 보셨나? 엘리베이터 문앞에 서있어서 못 봤을 리는 없는데. 어리벙벙하게 서있던 지민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고는 석진의 뒤로 냉큼 눈치 있게 따라붙었다. 진과 레이첼이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꿈틀했다. 뭔가 방금 태풍이 친 거 같은데. 식은땀이 등 뒤로 주륵 흐른다. 사무실로 거침없이 직행하던 윤기가 발걸음을 뚝 멈췄다. 뒤로 시선이 돌아가고, 그 자리엔 지민이 있었다.
"그 커피는 내가 먹으라고 들고 있는 거야, 아님 네가 먹을라고 들고 있는 거야?"
"미, 미스터 윤께 드리려고 사온 커피입니다."
지민은 공손히 커피를 내밀었다. 그 손에 석진과 레이첼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원자폭탄을 누르는 버튼을 쳐다보는 사진에 합성하면 딱 맞을 법했다. 그럼 내 커피 좀 내놓지? 윤기는 지민의 손에서 커피를 낚아채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늘 회의 끝나고 비행기 띄워. 직접 찾아가야겠어. 다들 월급을 날로 처먹으니 직접 가주는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런칭파티 규모 더 키워. 고작 500만달라라니. 실망스럽네. 내가 분명 이 뉴욕을 다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들이라고 했는데 말이지. 내가 아는 뉴욕은 도시야. 어디 시골에 있는 흔한 개집이 아니고. 파티초대장 시안 확인했는데, 디자이너 고용한 거 맞아? 길가에서 주워 온 싸구려 전단지를 카피한 건가? 아아 또 내가 러시아 마피아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군."
폭포처럼 말을 쏟아낸 윤기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윤기의 말을 받아 적던 레이첼의 펜도 멈췄다. 그리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지민은 뒤를 쫑쫑 쫓다 다같이 멈춘 발걸음에 멈칫하고는 같이 멈췄다. 윤기의 고개가 한 번 더 뒤로 돌았다.
"러시아 마피아로 업종 변경기념 첫 총알의 주인을 여기서 찾을 줄이야."
한심하다는 눈길이 지민에게 머물렀다. 나 지금 살해협박 당한 건가…. 어리벙벙한 지민이 찬 눈초리를 무방비하게 받아냈다. 윤기가 커피 입구를 한 손으로 쥐고 짧게 흔들었다. 레이첼이 냉큼 커피를 회수해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바닥에 커피가 추락했을 타이밍이었다. 가게 가서 주문하는 법까지 가르쳐 써야하다니, 아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네. 혀를 차는 윤기의 면박을 먹은 지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대신 석진이 나섰다.
"죄송합니다, 미스터 윤. 바로 다시 대기시키겠습니다."
"언제? 내가 전용기를 타고 있을 때? 샤워할 때? 아니면 오늘 밤 자기 전? 제발 내가 월급 주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회의실로 바로 갈 거야. 서류는?"
"회의실에 준비해뒀습니다."
"좋아. 어디 한번 가볼까. 내 월급도둑들을 잡으러."
말을 마친 윤기가 코트와 선글라스를 벗어 뒤로 던졌다. 어어? 지민은 날아오는 선글라스를 붙잡고,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코트를 간신히 받아내며 휘청거렸다. 으븝, 코트를 받아내며 까맣게 변한 시야에 잠시 허우적거렸다. 코트를 얼굴에서 떼어냈을 때 윤기는 이미 석진을 뒤에 달고 회의실로 가고 있었다. 레이첼이 애물단지 취급하는듯한 얼굴로 지민에게 일렀다.
"코트 잘 걸어놔요. 그리고 여기서 오는 전화 잘 받고요. 한 통도 빠뜨리면 안돼요. 그건 할 수 있죠, 지민?"
"네, 네."
"난 지금부터 공장 쪽에 연락하고 비행기 띄울 준비할 테니까 찾지 마요."
"레이첼, 그럼 모르는 게 있으면 연락은 어떻…."
쌩하니 멀어지는 레이첼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민은 점차 말끝을 흐렸다. 어떻게 하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제가 알아서 처리해볼게요…. 보기만해도 아찔한 높이의 힐을 신고 달리다시피 걷는 레이첼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한바탕 태풍이 휘몰아친 것만 같은 사무실에 남은 건 지민 혼자였다. 정국의 말이 이명처럼 맴돈다. 옛말로 따지자면, 그거 폭군 아니에요? 지민은 출근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후회했다. 내가 왜 그때 정국이 말을 부정했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집 냉장고를 떠올렸다. 정국이가 술을 몇 병 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