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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Ella Fitzgerald & Count Basie -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사방팔방 욕을 얻어먹는다면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가령 부모님 안부를 물어보는 글부터 시작해 널 죽이러 가겠다는 소소한 고백과 스스로 목숨을 끊어 땅으로 돌아가라는 친절한 권유 같은 글을 받는다면. 지민은 깔끔하고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와이파이가 없는 지옥을 제 발로 찾아가세요. 반짝거리는 샹들리에 아래 장인이 만들었다는 침대 위. 지민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베개는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또 악몽이다. 이번에는 가로등으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꿈이었다. 아무리 남의 인생 신경 쓰지 않고 막 사는 박지민이라도 등이 축축하게 젖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보나베띠 후기 하나로 치미의 딜리셔스는 망하기 일보 직전 상태까지 몰렸으니까.

 치미의 보나베띠 리뷰 후, 직접 보나베띠의 주인인 윤기가 덧글을 단 그 당시. 지민은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 찾아와서까지 오리라고 말을 정정해주는 끈질김을 보고 혀를 내둘렀을 뿐이다. 와 이 독한 새끼. 오리나 닭이나 그게 그거지. 코웃음을 치며 포스팅을 정정하긴커녕 아이피 주소를 차단하고 덧글까지 삭제했다. 그러나 단순한 짜증으로 손 가는 대로 벌린 일이 문제가 됐다.


[????? 치미 왜 덧삭함?]
[뭐야 조작한 거임?]


 안 그래도 안티를 한 트럭 달고 있는 치미를 향한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첫 번째로는 여태 쓴 리뷰들의 조작을 의심받았다. 네티즌은 멀쩡한 리뷰글까지 와서 테러를 했다.


[여기 존나 맛없는데ㅋㅋ 머리카락 나온 곳 아님? 역시 믿고 거르는 치미 추천]


 사실 여태 치미를 향한 인지도로 맛을 평가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지민은 무시했고, 그렇게 무시하다보니 나중에는 '파워블로거의 행패'같은 타이틀로 여기저기 이슈 포스팅에 등장했다. 포스팅과 관련한 덧글보다 사람들이 놓고 가는 닭 이모티콘과 사진이 300개가 넘어갔다. 그렇게 단 한 번만 테러 받아도 정신이 박살날 것 같은 과정을 겪었으나, 지민은 멀쩡했다. 뭐 그래도 나 사랑해주는 사람은 많잖아.

 그러나 새로운 파워블로거 순위가 집계 된 그 순간, 꿋꿋이 버티던 지민은 태형을 불러 술을 마시며 울음을 엉엉 터뜨렸다.


"태형아, 허엉, 내가, 내가 5위래, 허엉!"


 태형은 어쩔 줄 모르며 지민을 위로했다. 악플로 지민이가 마음 고생을 많이 하는 구나. 생각해보니 더 말랐다. 원래도 뼈대가 가늘어 얇아보이긴 하는데, 지금은 거의 얼굴이 반쪽이 됐다. 처음부터 파워블로거인지 뭔지 한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강제로 좋아하는 일을 그만둬야 하니까 얼마나 슬플까.


"야 지민아 까짓 그런 블로그 같은 게 뭐가 중요하다고. 악플 다는 새끼들이 나쁜 거지 니가 뭐가 나쁘냐. 어? 사람이 실수 한 번은 할 수 있는 거지."
"그게 문제가 아냐. 그건 당연히 걔네가 멍청한 거지."
"…응? 그거 때문에 우는 거 아냐?"
"정기모임 어떻게 가지? 5위 쪽팔린데에."


 지민이 휴지를 코에 대고 훌쩍거리며 말했다. 1위 아닌 세상 다 필요 없어. 태형은 잠시 말을 잃었다. 지민의 등을 쓸어주던 손도 멈췄다.


"…그만할 거 아니야?"
"뭘 그만해."
"파워블로거."


 지민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내가 왜 그만둬?"
"아니…그건 그렇긴 한데…너 막 블로그 들어가면 욕만 보이고…."


 새붉게 달아오른 눈가로 훌쩍거리던 지민은 이내 휴지를 방바닥으로 팩 내팽개쳤다.


"1위 다시 먹기 전까진 안 그만둘 거야."


 지민은 더 전투력이 화르륵 타오르는 얼굴로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었다. 태형은 그때 예감했다. 박지민이 무슨 일을 치긴 치겠구나.







***






 맛집을 리뷰하는 파워블로거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종종 아는 인맥을 통해 여러 명이 모여 앉아 식당을 방문했다. 사실 오손도손 모여앉아 친목을 다진다기 보단, 서로를 견제하는 우아한 밥그릇 싸움이 좀 더 맞는 말이었다. 오늘의 정기모임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아마 요즘 블로거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제성을 달고 다니는 치미를 보기 위함일 터였다. 원래부터 화제성이 뛰어나긴 했다.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흔하지 않은 남자 파워블로거라는 점에서부터. 치미의 딜리셔스를 밀어내고 랭킹 1위를 따낸 파워블로그 서윤마마 레시피의 주인, 김윤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 참 기대되네요."


 그 중 웃으며 선뜻 답변을 한 사람은 없었다. 김윤미는 누가 봐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치미를 싫어하더니…. 여기저기 뒤에서 치미를 욕하고 다니는 서윤마마를 모르는 블로거는 없었다. 실제로 김윤미는 박지민이 등장하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아니, 아예 쪽팔린다고 등장하지 않으면 더 좋다. 약속시간에서 10분이 지났다. 김윤미가 안타깝다는 연기를 하며 말했다.


"치미님은 안 오시나 봐요. 시간 거의 다 됐는데. 지난 번에 꼭 나오신다고 하셨는데…아쉽네요. 아무래도 사정이 있으시니까요. 저희끼리 먼저 갈까요?"


 딱 김윤미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난 순간. 카페 문에 매달린 새 모양의 종이 딸랑 울렸다. 김윤미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지민이 더욱 화려한 공작새처럼 방끗 웃으며 등장했다. 생로랑 수트재킷을 펄럭거리면서. 누군가는 육성으로 헉, 소리를 냈다. 지민은 미안하다는 눈웃음을 사르르 치면서 다가왔다.


"오는데 길이 좀 막혀서요."
"아 그러셨구나. 괜찮아요.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어요."
"그럼 진짜 다행이네요."


 지민은 능숙하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제가 오늘 식사는 살게요. 와 진짜 오랜만이에요. 요즘 집에만 있었어서 밖에 나오니까 너무 좋아요. 참, 어제가 연아 생일이었죠?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인사까지 하고 다른 블로거의 딸 생일까지 챙겼다. 원래부터 박지민이란 사람이 가진 특유의 다정한 관심은 공기를 말랑하게 풀어놓기 충분했다. 지민이 들어온 후 가만히 앉아 썩은 듯한 미소만 짓고 있던 김윤미가 말했다.


"치미님 오셔서 너무 좋네요. 그럼 이제 슬슬 이동할까요? 오늘 제가 레스토랑 예약해놓은 곳으로 다같이 가시면 될 거예요."
"어머, 너무 수고하셨어요. 어디 레스토랑이에요?"


 김윤미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보나베띠요."


 영원할 것만 같은 정적이 그곳에 흘렀다. 총 9쌍의 눈동자가 지민을 향해 빙그르르 굴러갔다. 보나베띠? 이 사단이 나게 만든 그 보나베띠? 지민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눈을 차분히 깜빡거렸다. 그리고 이내 마찬가지로 눈이 사라지도록 친절하고 따뜻하게 웃었다.


"좋아요. 거기 맛있죠. 빨리 가요. 배고픈데."


 자존심 빼면 시체인 박지민 인생에서 후퇴란 없다.







 꿈에서 내가 보나베띠를 어떻게 했더라. 바위로 부수고 불로 태웠던 거 같은데. 지민은 보나베띠의 간판을 올려다보며 일순 무너지려는 표정을 다잡았다. 자신을 흘끔거리는 시선들만 아니었다면 미소를 잃었을 것이다. 다들 들어가요. 생기발랄한 얼굴로 지민이 제일 먼저 보나베띠의 문을 열고 입장했다.


"어서오세…."


 정국의 눈이 크게 뜨인다. 민윤기의 만행으로 아이디를 차단 당한 뒤, 눈물을 머금고 로그아웃을 한 채 컴퓨터로 볼 수밖에 없던 치미다. 지민은 처음 오는 가게처럼 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8인석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지민은 오픈형 키친에서 프라이팬으로 파스타를 볶던 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놀라는 듯싶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노려보듯 눈을 가늘게 뜬 지민은 팩 고개를 돌렸다. 원래도 편파판정을 통해 리뷰를 올리곤 해서, 딱히 민윤기 때문에 블로그 인생이 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재수가 없는 건 재수가 없는 거다. 정기모임의 멤버가 테이블을 빙 둘러 앉았다.


"메뉴 준비되면 불러주세요."


 정국이 메뉴판을 놓고 떠난다. 지민은 메뉴판을 보자마자 조용히 속으로만 이를 까득 씹었다. 물론 얼굴은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와아 진짜 다 태워버리고 싶다. 김윤미는 슬쩍 메뉴판을 쥔 지민을 살펴보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의도만 포함된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저희 리코타치즈 네 개랑, 연어 까르보나라 두 개랑, 또 스테이크는 스페셜 메뉴로 시킬까요? 아니면 다른 것도 괜찮아요.”


 하루종일 내 기사만 봤냐? 그때 그 메뉴 똑같이 그대로 읊는다. 지민은 무너질 뻔한 얼굴을 다잡은 채 마주 웃었다. 랭킹 1위를 다시 뺏기까지는 태연한 척 해야만 했다.


“네, 그거 괜찮아요. 먹어봤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이걸로 시킬게요.”
“여기 주문할게요.”


 주문마저 박지민이 했다. 김윤미는 짧게 인상을 팍 구겼다. 엿 좀 먹이려고 데려왔더니 뻔뻔하게 받아친다. 온 인터넷에서 욕먹고 있으면서. 덕분에 식은땀이 나는 건 정기모임에 참여한 다른 멤버들이었다. 하하…가게가 좀 춥네요…. 메뉴가 나오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어 까르보나라가 나오고, 스페셜 메뉴가 다 올라왔을 땐 가게의 몇몇 손님이 호기심있게 지민이 앉은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미소만 띄운 채 대화는 나누지 않는 테이블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지민이 말했다.


“맛있겠네요. 다들 드세요. 카메라를 안 들고 그냥 먹으니까 조금 어색해요.”
“그, 그렇네요! 하하!”


 살짝 분위기가 풀린 그 잠시를 못 참고 먼저 소리 없는 총성을 갈긴 건 김윤미였다. 여기요. 모두의 눈길이 김윤미에게 쏠렸다.


“혹시 여기 만드신 셰프님 좀 불러주실 수 있나요?”


 정국은 저도 모르게 지민을 확인하며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렴 어쩌랴. 손님이 시키는데. 머지않아 정국이 퇴장하고 윤기가 오픈형 키친에서 나왔다. 다가온 윤기와 지민의 눈이 마주쳤다. 지민은 팩 고개를 꺾으며 물을 마셨다. 대포 카메라가 손에 없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부숴버렸을 거야. 잘했어, 지민아. 잘했어. 윤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지민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금방 부르는 김윤미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메뉴 재료가 뭔가요?”


 분명히 엿 먹이는 거다. 지민은 훤히 알면서도 티 나지 않는 얼굴로 물잔을 기울였다. 어휴 손에 칼을 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민윤기 쪽은 보는 순간 내장이 꼬일 것 같아 부러 시선을 피했다.


“살치살입니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리가 아주 맛있어요.”


 윤기가 돌아간다. 김윤미의 놀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김윤미는 요리 하나를 먹을 때마다 계속해서 윤기를 불렀다. 아무래도 지민이 창피해하거나, 일그러질 표정을 기대한 모양이다. 이미 해탈한 지민은 뚱한 표정으로 포크로 파스타를 감았다. 질문은 하나같이 쓸모 없었다. 야채는 몇 개를 넣은 거예요? 플레이트가 예쁜데 직접 하세요? 살아있는 가재로 요리한다는데 진짜 살아있었나요? 무려 다섯 번이나 윤기가 지민의 테이블을 방문했을 때였다. 점점 딱딱하게 굳어진 윤기의 표정은 있는 대로 언짢게 구겨져있었다.


"손님."
"네?"
"식사를 원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전 요리사지 점원이 아닙니다. 퀴즈쇼를 진행하는 사회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아니 잠깐…!”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나가주세요."


 정국아 그릇 치워. 마지막까지 무뚝뚝하게 말한 윤기는 고개를 한번 까딱 숙였다. 지민은 벙 쪄 윤기를 올려다보았다. 누군가의 손에서 포크가 덜그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유히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윤기를 보며 지민은 생각했다. 날 기억 못하나 봐…순 자기 마음대로 하잖아? 또라이같은데 멋있어….

 그 날 서윤마마 레시피에 이런 제목을 단 포스팅이 올라왔다. 당분간은 쉴 거 같아요.






***






 보나베띠는 윤기가 꿈 꿔온 희망의 실체화된 가게였다. 언젠가는 돈 모으면 내 가게 차려야지. 접시만 닦으며 주방에서 보조 역할을 할 때부터 그런 꿈을 꿨다. 단지 차리는 게 꿈이 아니다. 그 안에서 요리를 하고, 손님들이 먹고, 자신만의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게 좋았다. 정작 보나베띠의 2층 개인침실에 누워있는 시간이 너무 커 요리개발을 하는 횟수는 몇 없긴 하지만.

 윤기는 모처럼 정기휴무일인 월요일 오전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었다. 주방에는 벌써 세 팩의 우유가 비어있었고, 쓰레기통으로 버린 스테이크는 다섯 덩이를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맛은 있었으나 무언가 조금씩 부족했다. 알바생들도 없는 텅 빈 가게에서 윤기는 홀로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만들었는데 뭐가 문제지? 부족할 리가 없는데. 다시 한번 완성된 우유크림 스테이크를 쓰레기통에 처박을 무렵.

 입구에 달린 보나베띠 새 모양의 종이 울렸다. 어떤 눈 없는 자식이 휴무일이라는 팻말도 안 보고 온 거야. 윤기는 보지도 않고 외쳤다.


"오늘 요리 안 해요."
"안녕하세요."


 윤기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는 한 차례 자신이 단 덧글로 인터넷을 휩쓴 얼굴이 서있었다. 치미라는 그 인간. 정국이 왜 자신의 계정으로 그 댓글을 썼냐며, 차단 당한 거 어쩔 거냐며, 치미가 자신이 한 거라고 오해해서 고소하면 형이 다 책임지라며 성질을 부리게 만든 인간. 윤기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요리 안 하는데요."
"알아요. 알고 온 거예요."


 박지민은 주변을 살피는 고양이처럼 가게를 휙휙 살폈다. 아무도 없네요. 다행이다. 휴 가슴을 티나게 쓸어 내리더니 휴무일이라고 써있는 간판도 무시하고,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민윤기의 말도 무시하고 주방으로 직진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쵸?"


 바로 어제도 와놓고선. 윤기는 어이가 없어 지민을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꼭 길고양이가 집을 간택해 휘적휘적 걸어 들어와 침대에 눕는 걸 보는 것만 같았다. 폴짝거리며 주방 위로 올라온 지민이 헤헤 애교 있게 웃었다. 아무래도 박지민이라는 인간은 한 번의 변덕으로 베푼 호의를 다른 뜻으로 단단히 잘못 해석하고 있는 듯했다.


"요리하고 계셨어요?"


 용건이 있나 본데. 윤기가 만든 요리를 바라보며 지민이 살갑게 말을 붙였다. 와, 맛있어 보여요.


"할 말이 뭔데요."
"저 할 말 있다고 아직 안 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너 같으면 모르겠냐? 윤기는 귀찮다는 듯 지민을 무시하고 프라이팬을 잡았다. 지민이 한발자국 더욱 윤기 옆으로 붙어 쫑알쫑알 말을 걸었다.


"제가 다시 써드릴게요."
"뭘요."
"리뷰요!"
"필요 없어요."
"왜요!?"
"발로 쓰잖아요."


 잠시 말이 없다. 돌아보니 지민이 부리같이 입술을 쭉 내밀고 인상을 모으고 있었다. 해석하면 개자식아, 정도로 해석되는 듯 했다. 얘는 얼굴로 욕하네. 윤기는 요리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그게 할말 전부면 나가요."
"아 왜요. 진짜 잘 써드릴게요."
"관심 없어요."
"그럼 셀카나 하나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셀카? 윤기는 지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SNS따위 모르는 윤기라도 척 보면 눈치챌 수 있었다. 이렇게 시커먼 속셈을 대놓고 드러내는 애는 처음 봤다. 얼굴 팔리는 건 질색이다. 서바이벌 요리프로에서 우승 후 보낸 삶이 얼마나 귀찮았는가. 윤기는 지민을 대차게 씹고 불을 키고 다시 야채를 볶았다.


"같이 서로 친해지면 좋잖아요? 가게도 나랑 잘 해결됐다고 하면 더 홍보효과도 있고! 그렇죠? 생각해보니까 내 말이 다 맞지 않아요? 우리 꽤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근데 윤기씨 제 말 듣고 있어요?"
"……."
"어, 이게 뭐예요. 만들고 있던 거예요? 그때 메뉴판에선 못 봤는데."
"……."
"저 먹어봐도 돼요?"


 어차피 버리려던 거니까 상관이 없긴 했다. 실패작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이미 박지민은 스테이크를 잘라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지민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성깔은 상종하고 싶지 않은데 요리는 정말 잘한다.


"와 요리는 진짜 잘하시네요."


 요리는? 요리 빼고는 다 못 하냐? 지민이 윤기의 불편한 심기를 모르고 다시 스테이크를 잘랐다. 이만 지민을 쫓아내기로 마음 먹은 윤기가 프라이팬까지 놓고 접시를 뺏을 무렵, 스테이크를 씹어 삼킨 지민이 중얼거렸다.


"근데 여기다가 파프리카 같은 야채 넣으면 더 맛있을 거 같은데. 후추? 그런 거 넣어도 맛있겠, 아!"
"됐으니까 이제 그만 가요. 난 박지민씨가 원하는 거 들어줄 생각 없습니다."


 지민은 주방 아래로 윤기에게 떠밀렸다. 아 진짜, 셀카 한 방만 같이 찍으면 안 돼요? 제가 정말 잘 찍어드릴 수 있어요. 인생샷, 인생샷. 날 진짜 이렇게 보내는 거예요? 우리 사이 좋아진 거 아니었어요? 잠시만요, 아니 잠깐 등 좀 그만 떠밀, 무슨 힘이 이렇게 세! 결국 지민은 질질 떠밀리다시피 입구 밖으로 까지 밀려났다. 쾅 문이 닫힌다. 윤기는 바로 그 뒤 지민의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저기요? 이렇게 가요? 사람을 이렇게 밀면!

 깔끔하게 지민을 내쫓은 윤기는 아무 의자나 빼 앉았다. 몇 분 상대하지도 않았는데 피곤했다. 그런데 박지민이 내뱉었던 맛 평가가 떠올랐다. 파프리카 같은 야채 넣으면 더 맛있을 거 같은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꽤 괜찮을 거 같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윤기는 깜빡 눈을 느리게 뜨며 미간을 찡그렸다. 박지민 말대로 하긴 싫은데 맞는 말이다. 다시 주방으로 올라가 프라이팬을 잡았다.

 설마 정말 맞을까. 인지도로 파워블로거 맛 정하는 사람 미각이 과연 정확할까? 의심하면서도 윤기는 파프리카를 썰어 넣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우유크림소스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 본 순간.

 그날 민윤기는 정국에게 물어 블로그 아이디를 만들어 치미의 딜리셔스를 방문했다. 비밀덧글을 달았다. 다음주 월요일에 가게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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