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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본에 들어간 외전으로, 완본은 소장본에서만 열람 가능합니다.

-모든 장면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외전1. 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데이트 코스란 어떤 걸까. 주말에 간편히 다녀올 수 있는 영화관, 레스토랑,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을 내서 놀이공원. 상류층의 데이트 코스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호화로운 유람선 여행, 극장 전체를 빌려 둘만의 시간 갖기,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지민은 태형과 갔던 장소들을 머릿속으로 주르륵 되짚어봐도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딱 하루 주어진 시간동안 뭘 해야 좋을지 고민고민하다 결국 남준에게 물었고, 남준은 동물원이 어떻냐는 제안을 해왔다. 듣고보니 맞다. 연애를 하면 한 번쯤은 그런 곳에 간다고들 티비에서 봤다. 남준에게 쌍엄지를 치켜세워준 지민은 정국을 끌고 동물원에 입성했다.



“오랜만이네요.”

“뭐야. 너 와본 적 있어?”



 표를 끊고 들어오자마자 정국이 잘 아는 척 동물원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아르바이트했었어요. 저기 저거 보여요? 인형 쓴 사람들?”



 정국이 가리킨 손끝에는 사슴모양 인형탈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는 한편 스트레스 풀이 대상처럼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퍽퍽 맞고 있는 인형탈들은 짠해보였다. 정국은 아련한 눈빛으로 인형탈을 보다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거 했었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도대체 몇 개나 했던 거야.”

“저건 길게 안 했어요. 여름에 하려니까 진짜 죽을 거 같아서. 가요. 쳐다보면 더 불쌍하기만 해요.”



 정국이 지민의 손을 잡고 먼저 이끌었다. 지민은 내심 실망했다. 전정국도 신기해할 줄 알았는데.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던 마음과 기뻐 보이지 않는 정국의 표정에 역시 다른 걸 할 걸, 하고 후회가 됐다.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고 걷던 손에 힘이 쭈욱 빠지자 정국은 지민을 힐끔 내려보았다. 슬쩍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입을 뗐다.



“솔직히 여기 질리긴 하는데….”

“다른 데 갈까?”

“저 때 저기 장소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뭐 그리고.”



 정국이 지민의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지금은 박지민씨가 옆에 있으니까요.”



 낯부끄럽지만 진심이다. 관리실에서 인형탈을 받고 화장실로 들어가 갈아입고 나왔을 때와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지민이 있는 때를 감히 어찌 비교하겠는가. 장난 같은 사랑 섞인 대화는 익숙하지만, 진심을 온전히 꺼내놓는 건 아직까지는 낯선 일이라 정국의 귀가 새붉게 변했다. 지민은 프스스 눈꼬리를 접으며 깍지를 끼고 있는 손을 붕붕 흔들었다.



“전정국 역시 너무 좋아.”

“…듣기 좋으니까 계속해요.”

“전정국 내 꺼라서 엄청 좋아. 아무한테도 안 줄 거야. 누가 껄떡거리기만 해봐.”



 호랑이 흉내 내듯 어흥, 하고 팔짱까지 답싹 끼자 정국이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듯 볼을 살짝 꼬집었다 놓았다. 덩달아 행복해하는 오메가 페로몬이 솔솔 풍겨온다. 정국이 말했다.



“뭐부터 볼까요?”

“아, 우리 그거부터 해야 해!”



 지민이 퍼뜩 생각났다는 듯 정국을 이끌었다. 도착장소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념품점이었다. 지민은 밖에 전시된 머리띠 사이에서 하나를 쏙 뽑아 정국의 품에 안겨주었다. 어서 써보라는 반짝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마주한 정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띠를 내려 보았다. 기다란 하얀색 귀 두 개. 하루만 쓰고 버릴 머리띠는 아무리 봐도 영 쓸모가 없어 보인다. 정국이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도중, 지민이 먼저 검은색 생쥐 머리띠를 쓰고 품에 답싹 안겼다.



“토끼야 같이 놀자.”

“누가 토끼인데요?”

“당연히 너지! 토끼야, 토끼야. 빨리해 봐.”



 그래, 이렇게 하면 또 내가 어쩌겠어. 아무리해도 박지민은 이길 수가 없다. 항복한 정국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토끼 머리띠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지민의 볼을 쿡 찔렀다.



“넌 쥐민이네. 쥐민이”

“…나 다른 걸로 바꿀래.”

“가자, 쥐민아.”

“야 그걸로 부르지 마.”

“왜? 딱인데 쥐민이.”



 정국은 어딘가 기분이 나쁘다 인상을 모으고 있는 지민을 보고 큭큭 웃으며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우리 돌고래쇼나 보러 갈까요? 그거 유명한데.”

지민은 도망치듯 정국이 표를 끊으러 가자 혼자 남아 입술을 씰룩거렸다. 







***








 정국은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고서야 안심했다. 됐다. 안 그래도 오메가 페로몬만으로도 이성은 간당간당했다. 정국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아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

 알파 발현 초기엔 흥분하면 페로몬이 너무 많이 나와 오메가한테 좋지 않습니다. 관계 중 심지어는 정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지민을 생각할 때마다 술렁이는 몸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더니 의사는 간단한 알파 페로몬 억제제와 함께 오메가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게 좋다는 처방을 내려놓았다. 말하면 걱정할 게 빤해 숨기고 있건만 박지민은 추후도 생각 못하는지 더욱 애교를 부리며 자꾸만 이성을 무너지게 한다. 여봐란듯이 오메가 페로몬을 내뿜으며 몸 위로 기어 올라올 땐 정말이지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정국은 이제 세상 웬만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욕실에서 나오는 물소리가 뚝 그쳤다. 정국은 부러 뒤로 돌아 욕실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나왔어요? 빨리 씻고 나올 테니까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요.”

“정국아. 여기 안쪽에 수건 더 없는데.”

“없다고요? 그럼 룸서비스….”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 정국은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맙소사. 들고 있던 수화기가 툭 떨어진다. 지민은 샤워가운 앞섶을 죄다 풀어헤쳐놓은 걸로도 모자라 머리에는 생쥐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아 박지민. 탄식한 정국은 날아가려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정말 간신히 붙잡았다.



“…시켜야겠네요.”

“거짓말이야. 사실 안에 수건 있어.”



 눈 돌려야 하는데. 지금 못 멈추면 끝인데. 생각과 다르게 눈은 이미 지민으로부터 떨어지질 못했다. 








***







 정국이 올테면 와라, 하고 긴장한 심장이 무색하게 박노인은 펜션주인같은 태도로 지민과 정국이 무얼하든 멀리서 지켜만봤다. 접촉이라고 해봐야 첫날 장기를 둘 수 있냐 묻더니 가능하다 하자 침묵의 장기를 세 판 둔 게 고작이다. 심지어는 밥상에서조차 묵묵히 숟가락질만 한다. 정국은 불안해져, 급기야 일거리를 찾아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키지도 않은 장작을 패고, 나무의 잔가지를 정리하고는 곧장 마당까지 쓸었다. 때문에 정국이 일을 자처하면 자처할수록 심통이 나는 건 지민 쪽이었다.



“그냥 나랑 놀자니까.”

“안돼요.”

“뭐만 하면 맨날 안 돼요, 싫어요. 질린다, 질려. 연못 바닥청소를 왜 너가 하는데!”



 지민이 다리와 팔을 걷어붙이고 연못 안에서 돌바닥을 밀고 있는 정국이 답답하다는 듯 발을 세게 굴렀다. 정국 주변으로부터 멀리 도망간 비단잉어들이 입을 뻐끔거렸다.



“혹시 할아버지가 나 몰래 너한테 시켰어?”

“그래주면 너무 좋겠는데. 이거 말고 다른 일도 잘하니까 가서 말 좀 해봐요.”

“너 무슨 면접이라도 봐?”

“따지면 면접 맞죠.”

“여기 청소부로 취업할 거냐는 소리거든?”

“월급 괜찮으면 뭐.”



 정국은 아예 지민을 보지도 않고 연못 반대쪽으로 휘적휘적 나아갔다. 비단잉어들이 다치지 않게 청소를 하는 손길이 부드럽다. 하, 어젯밤에 내가 같이 자자고 문 두드렸을 때 열어주지도 않던 놈이. 괘씸하다. 지민은 내가 잉어보다 못하냐며 연못에 손을 넣어 정국 쪽으로 물을 튀겼다. 정국이 미간을 찡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유치하게.”

“유치? 유치이? 그건 어제부터 밥만 먹고 계속 사라진 너가 할 말은 아니거든? 니가 무슨 전설 속 동물이야? 툭하면 사라지게.”

“그럼 와서 같이 청소하던가.”



 정국이 수세미를 내민다. 지민은 못마땅하게 내밀어진 수세미를 쳐다보다 에이씨, 하고는 팩 낚아챘다. 신을 아무렇게나 휙휙 던져 벗고 팔과 다리 옷자락을 올렸다.



“넌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두 돼. 나한테 연못청소 시킬 수 있는 사람 너밖에 없어.”

“박지민씨도 자부심 가져도 좋아요. 내가 무보수로 일하는 거 처음이니까.”

“아 그러니까 하지말자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요. 옆에서 떠들기만 해도 좋으니까.”

“전정국 약았어. 내가 자기 좋아한다는 거 맨날 이용하기만 하구.”



 지민은 툴툴거리면서도 연못으로 발을 담갔다. 












외전2.SEXUAL METHOD










 병원은 복잡한 진료가 필요하지 않았다. 의사는 한두 가지만 체크하고는 바로 정국의 상태를 진단했다.



“일방적 각인이군요.”



 몇 초간 진료실은 말이 없었다. 지민과 정국은 알고 있는 일방적 각인의 정의를 떠올려보았다. 한쪽에서 다른 쪽을 각인한 상태. 알파가 오메가에게 각인을 했을 땐 더없는 집착욕을 느끼는 때. 서로가 처음인 오메가와 알파 커플은 얼떨떨한 표정을 선보였다. 그게 이거라고? 놀라는 기색도 없이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알파와 오메가를 놓고 의사만 난감하게 헛기침을 했다.



“일방적 각인이란 정의는 알고 계십니까?”



 한 쌍의 커플은 눈만 깜빡깜빡거렸다. 의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하려는 참이었다. 지민이 펄쩍 뛰었다.



“왜!? 일방적이라구? 어째서! 어째서 일방이야?”

“지, 진정하세요. 지금 설명해 드리려는 참이었습니다. 아마 비정상적 발현이라 본능적으로 몸이 꺼리는 거 같군요. 물론 오메가분께서 하고 싶으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마는.”

“내가 지금 각인도 못 하는 등신 오메가라는 거야?”

“예? 그, 그런 말이 아닙니다. 각인은 예민한 문제이니만큼 이성과 달리 신체가 따르지 않을 수도….”



 지민은 의사를 쪼았다. 의사는 난감해하며 아무래도 힘들 거 같다는 결과를 더듬더듬 풀어놓았다. 눈이 가로로 가늘어진 지민이 병원장을 불러오라는 억지를 쓰기 전, 정국이 유연하게 끼어들어 지민을 빼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읍읍거리는 지민을 끌어안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다. 지민은 충격 받은 어조로 넋두리했다.



“내가 각인을 못 하다니…각인을 못 하다니….”

“뭐 그럴 수도 있죠.”

“안 되겠어. 잠깐 각인 끊어봐. 다시 하자.”



 정국은 택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됐어요.”







***








 개자식. 지민은 오피스텔이 아닌 원래 자신의 방으로 와서 침대를 부실만큼 데굴데굴 굴렀다.



“구제불느응!? 내가, 내가 뭘 제멋대로 했어!”



 지민은 이불을 퍽퍽 차도 분이 풀리질 않았다. 내가 제멋대로 한 거? 뭐 전정국 오피스텔에 내 짐 넣어놓은 거? 그건 자기도 좋다고 했으면서! 차 선물하려고 한 거? 싫다고 해서 못 줬잖아. 전정국이 스키 못 타는데 스키장 가자고 한 거? 아니면 새벽에 영화관 가고 싶어서 전정국 몰래 나가려다 걸린 거? 그것도 아니면 장 볼 때 술만 몽땅 담아온 거?



“…에이씨.”



 정국과 한판 붙을 뻔했던 사건들을 떠올리다 냉큼 머릿속에서 쫓아냈다. 정국의 몸에서 나던 담배냄새와 미약한 페로몬들은 생각만 해도 발가락 끝에서부터 열이 뻗쳐온다.



“그래도! 그래도 난 다른 알파 쳐다도 안 봤는데!”



 지민은 폰을 확인했다. 연락도 안한다 이거지? 잠잠한 문자와 전화 아이콘을 보니 거센 분노가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너만 그런 거 갈 줄 아냐? 나도 필요해서 갈 수 있거든? 내가 못 갈 줄 알아? 마지막으로 정국이 짓고 있던 굳은 표정이 생각할수록 괘씸해, 지민은 충동적으로 일을 쳤다. 이를 박박 갈며 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비서, 파티 하나 열어. 내 이름으로. 오늘 당장.”



 주최자 이름에 박지민이 찍힌 순간부터 파티의 정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감되었다. 그 박지민. 파혼하고 잠적이라도 탄 것처럼 조용한 박지민. 비밀 아닌 비밀로 만나고 있는 정국의 존재를 다른 이들은 몰랐다. 무려 그 박지민이 여는 파티 소식으로 사교계가 떠들썩했다.


 호텔 최상층을 통째로 전체 빌린 파티장은 완벽했다. 짧은 시간에 모든 일처리를 완벽하게 처리한 남준의 솜씨는 보통 이상이었다. 한울그룹 박지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려했다. 한쪽은 티비 브라운관을 점령한 유명 연예인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다른 한쪽은 정계쪽 인사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뿐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입 떡 벌어지는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지민은 파티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이 천막처럼 둘린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들어온 순간부터 얼굴에 박히는 시선을 몇 개나 무시한 건지 셀 수도 없다. 파티장의 모두가 조명 안쪽의 쇼파자리를 노렸다. 홀로 남겨진 황금티켓을 노리는 알파들과 안면이라도 트고 싶은 오메가들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지민은 패기롭게 파티장을 들어온 뒤부터 급격히 의욕이 하강했다.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이 파티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서로를 찾아 구애하듯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온갖 페로몬이 뒤섞여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약을 아직 안 했는데도 이 정도란 말이야? 파티가 본격적으로 무르익으면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미간을 찌푸린 지민은 차마 들어오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술잔만 들이켰다.


 전정국 보고 싶다…아니, 이게 아니지. 그딴 놈 보고 싶을 게 뭐야. 오던 말던!














외전3.LUCKILY EVER AFTER











 한울그룹 본사는 강남바닥에서도 유명했다. 꽉꽉 서울시에서 지정한 높이까지 꽉 채워 알차게 지어놓은 빌딩은 다른 많은 대기업 사이에서도 우뚝 솟아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굴지의 대기업, 그 안에서 화젯거리인 인물은 과연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일까. 한울그룹을 세운 박사장, 아니면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햄스터같은 신입사원들, 그것도 아니면 사내에서 가장 헬게이트라 불리는 비서직. 슈퍼스타는 다름 아닌 새로 전무 명함패를 받은 인물이었다.



“전무님, 말씀하신 대로 미팅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예, 수고하셨어요.”



 몸에 딱 맞는 수트를 입은 남자는 45층 사무실을 홀로 쓰고 있었다. 남자는 전무라는 직책에 비해 과도하게 어려보인다. 빈틈없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휘적휘적 서류를 넘기는 손은 프로였다.


 뭇 연예인 얼굴을 동경하는 젊은 세대가 로비나 엘리베이터에서라도 마주치면 오늘 하루 계 탔다 외치는, 손마저도 잘생긴 남자. 초고속 엘리트 코스로 승진을 이룩한 남자. 그러나 철벽이 워낙 심해 다가갈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그림의 떡인 남자.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남자는 능력으로도 사원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무슨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대박을 터뜨려. 경영계의 이단아라니까.


 남자는 서류를 보던 동작을 중지하고 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전정국!]



 남자, 정국은 펜을 내려놓았다.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 위로 매력적인 웃음이 걸쳐진다. 그의 연인으로부터 온 전화다.



“어떻게 됐어요?”

[계약 못 했어. 쓸만한 모델이 한 명두 없어.]



 만났고, 각인을 했고, 그 뒤로 4년이 지났다. 강처럼 흐른 시간은 제법 길어서, 남준과 전문적으로 붙어 모든 일을 코치 받던 정국은 박사장으로부터 전무라는 자리까지 떡하니 받아내었다. 능력시험 보듯 던져준 프로젝트를 모두 해결하자 MBA 과정까지 초고속으로 준비를 시키는 걸 보면 얼추 박사장의 의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단칸방에서부터 단독주택. 빚쟁이에서 대기업 전무. 소년과 청년 중간 즈음에서 오메가를 가진 성숙한 알파. 수많은 게 바뀌고, 바뀌는 중이다. 완벽한 페로몬 조절은 물론, 태생부터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한 정국에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게 딱 한 가지 존재했다. 마음의 온도. 마음은 연인을 향해 푸른 불길처럼 화르륵 타올랐다.



“이번엔 왜요.”

[워킹 그렇게 할 거면 그냥 길에 있는 마네킹 데려다가 옷 입혀서 쇼 진행하겠다. 통나무가 움직이는 줄 알았어.]



 지민이 투덜거렸다. 정국은 뿔이 난 지민을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밥 안 먹었죠? 앞으로 갈게요. 한 15분쯤 걸릴 거 같은데.”

[미팅 있다고 하…그거 권력 남용이야, 너.]

“이 맛에 권력 가지는 거죠.”

[우리 아빠 회사 망하면 어떡하지?]

“망하면 내가 다시 살려내면 되고. 기다려요. 금방 갈 테니까.”

[보고 싶으니까 빨리 와.]



 정국은 끊기 전에 수화기로 들려오는 쪽 뽀뽀 소리에 광대를 누르지 못했다. 정말 여전했다. 연인을 향한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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