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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럭키 스트라이크 01

by 토페 posted Sep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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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오메가버스 세계관입니당

_뷔민 요소 있습니다~
















 우성오메가 박지민과 우성알파 김태형은 미래를 약속한 사이다. 둘이 정한 것은 아니고, 같은 동네 불알친구로 꼭 서울 가서 성공하자며 의지를 투합한 박사장과 김사장의 약속이었다. 보통 성질이 발현하는 7살에서 9살즈음, 8살 지민이 우성오메가로 발현하고, 8살 태형이 우성알파로 발현한 순간 박사장과 김사장은 술을 거나하게 푸며 호쾌하게 약속했다.



"네 아들이 오메가고, 우리 아들이 알파니까 둘이 혼인 시키면 딱 좋겠네."

"그래, 그러자고!"



 붉어진 얼굴로 허허거리며 약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시장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속이지만, 김사장과 박사장의 위치를 고려할 때 약속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어놨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재벌가들의 만남. 유성그룹과 한울그룹의 병합가능성. 순식간에 이루어진 약속처럼 두 사장은 행동력도 빨랐다. 각 그룹은 기쁜 마음으로 사돈을 맺었다며 다음날 아침 바로 입장을 표명했다. 기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에 한 달간 자리잡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의 입장을 놓고 한국 경제의 미래와 누가 더 유리할지 경영인들은 점치기 시작했다. 우성알파보다 다섯 배는 더 희귀한 우성오메가 집안인 한울그룹이 손해라는 말이 더 많았지만, 두 남자는 허허롭게 흘려들었다. 고작 그런 것으로 깨질 우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민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박사장 손에 이끌려 태형을 처음 만났다. 태형은 자동차로 변신가능한 로보트를 손에 쥐고 놀다 지민이 오니 동작을 딱 멈추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한참 유행인 캐릭터였다. 지민도 그 로봇이 나오는 만화를 알고 있었다.



“지민아 앞으로 너랑 짝 맺어줄 거야.”



 박사장이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찬가지로 태형을 안고 나온 김사장도 웃으며 말했다. 태형아 네 신부다. 어른들의 강압으로 지민은 태형과 처음 만난 날부터 억지로 포옹해야만 했다. 안을 때 태형이 놓지 않은 로보트의 팔이 가슴팍을 찔러 아팠다. 거지같았다. 그런 제 기분도 모르고 김태형이라는 애는 신기한 듯 저를 바라보다가 헤에 웃었다. 로보트를 보는 눈과 지민을 보는 눈이 어딘지 비슷했다.



"너 예쁘다."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대뜸 외치는 태형에 어른들이 이놈 보게나 하며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지민만이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메가로 발현한지 얼마 안 된 꼬마 상남자 지민에게 나름 예쁘장한 외모는 컴플렉스였다. 거지 같은 놈이 뭘 모른다.



"나는 예쁜 게 아니라 잘 생긴 거야!"



 우렁차게 답하며 지민은 태형이 들고 있던 로보트를 바닥에 때려부쉈다.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던 양측 집안에 침묵이 끼얹어졌다. 그 뒤 엉엉 우는 8살 태형과 씩씩거리는 8살 지민의 첫만남은 처참했다.



 갓 오메가로 발현해 뭣 모르던 지민도 점차 크면서 우성오메가의 의미를 깨달았다. 과거, 무차별한 오메가 학살로 크게 오메가의 수가 줄어버렸고, 현재에 와서 그 귀한 우성알파는 오직 우성오메가에게서만 태어난다는 연구 사실이 밝혀졌다. 우성오메가가 없으면 우성알파도 없다. 병아리가 먼저냐, 닭이 먼저냐. 비슷한 논점으로 우성오메가는 우성알파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아니, 그보다 더 했다. 극히 소수라 불리는 우성알파보다 다섯 배는 비율이 더 적었다. 우성오메가의 희귀성은 높아져갔고, 돈 한푼 없는 거지라도 우성오메가로 발현한 순간 인생에 로또가 터진 것과 다름 없었다. 기업가에서는 큰 돈을 주고서라도 우성오메가를 들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남다른 우성오메가와, 태어나자마자 금수저를 물었다 칭해지는 한울그룹 외동아들의 조합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일반 금수저를 크리스탈 금수저쯤으로 올려놓은 셈이었다.



"야, 꺼져. 어디서 잡초 같은 거나 꺾어와선. 네 분수를 알아야지."



 장미와 안개꽃이 섞인 커다란 꽃다발을 들이미는 우성알파를 한 마디로 처단한 지민은 꽃을 바닥에 뭉갰다. 태형과의 약혼 소식이 널리 퍼졌어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들이대는 우성알파는 한둘이 아니었다. 지민은 제 가치를 아주 잘 알았고, 그만큼 콧대가 높았다. 얼마나 자신이 제일 예쁜 꽃이며, 이용가치가 높고, 매력이 높은지 주제파악이 뛰어났다. 만약 좋아서 따라다니는 사람에게 번호표를 뽑고 대기시킨다면 백은 너끈히 찍고도 남을 것이라 지민은 생각했다.

 지민은 칼같이 저 좋다는 사람들을 잘라냈다. 소문은 콧대 높은 박지민이 김태형에게 지키는 지조가 뛰어나다 났다. 김태형은 반대였다. 태형은 약혼이라 해놓고도 저 꼴리는 사람이면 다 만나고 다녔다. 원나잇도 서슴지 않았고, 문란한 파티란 파티는 다 참석하고 다녔다. 덕에 지민에게 들이대는 사람들이 빼먹지 않고 어필하는 점이 김태형처럼 바람둥이는 절대 아니다, 하는 것이었다. 주위에서는 한울그룹의 외동아들이, 우성오메가가 뭐가 못나서 김태형에게 매달리는지 모른다 쑥덕거렸다. 박지민이 김태형에게 단단히 빠졌다. 상류층에 암암리에 퍼진 소문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민은 처음 그 소문을 접하고 너무 어이없어 들고 있던 물컵을 툭 떨어뜨렸다.



"단체로 마약 했대? 아니 걔네가 단체로 파티에서 약하는 건 맞지만. 진짜 돈 거 아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지민은 우스웠다. 누가 김태형이 좋아서 목을 맨다고? 이 내가? 진정으로 어이없었다. 지민은 첫만남에서부터 태형이 눈물 콧물 빼도록 울린 뒤로 태형에게 관심 한 올 없었다. 크면서 무던히도 만날 때마다 넌 내 거라고 주장하는 김태형은 짜증만 날뿐, 연애감정을 느낀 적은 결코 한번도 없었다. 김태형은 재수없다. 객관적으로 얼굴 잘났다는 거 하나만 인정할 뿐이었다. 김태형을 사랑한다니. 차라리 하늘에서 금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우리 지민이, 아구 귀여워. 이 오빠 기다려써요오?"

"아씨 이거 누가 들였어! 김비서! 내가 이거 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내 색시, 울 지민이, 지민아아."

"악! 달라붙지마 김태형! 술 냄새! 이 미친놈 진짜! 술을 퍼마셨으면 곱게 취해야지! 취해도 개처럼 취해선!"

"우리 애는 하나 낳을까, 둘 낳을까. 나는 둘이 좋아. 하나는 외롭잖아."

"미친 새끼. 누가 네 애 낳는다고 했냐?! 네가 퍼마신 거에 술 말고 김칫국도 섞여있었나 보다! 당장 네 집으로 꺼져! 김비서! 이거 갖다 버려!"

"앙탈 그만 부리고 이 오빠 품에 들어와, 응? 지민아."

"망할 김태형! 당장 안 떨어져? 처맞아야 정신 차릴래!"



 지민이 김태형의 배를 주먹으로 쳤다. 시원한 홈런이었다. 태형이 윽 신음하며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지민은 쓰레기 건들이듯 발로 태형을 툭툭 건드리며 김비서를 호출했다.



"이거 버려. 다음부터 김태형 내 방에 들이기만 해봐."



 살벌한 눈초리를 받으며 남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게요, 도련님 약혼자 분이라 거절하면 밖에 보이는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데요. 기자한테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하답니다. 목구멍에 맴도는 말을 삼킨 채 술에 꼴은 태형을 치우는 건 남준의 몫이었다. 지민은 성질이 안 풀리는 듯 남준이 일으키는 태형을 발로 몇 번 찼다. 태형은 자신을 뻥뻥 차대는 지민의 발을 양손으로 붙잡고선 좋다고 히죽히죽 웃었다.

 실상 김태형은 여태 지민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철거머리 중 가장 끈끈한 철거머리였다. 술 마시는 이유의 반절은 지민이었고, 호텔로 같이 기어들어가는 상대는 지민을 닮아있었다. 김태형은 하나부터 열까지 지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하필 아빠와 가장 친한 김사장의 아들이다. 지민은 마음 같아선 김사장 집으로 처들어가 패악질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러나 안하무인, 제 발 아래 세상 있다는 마인드로 사는 지민이라도 사랑하는 제 아빠가 유일한 친우와의 관계를 망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진지하게 파혼을 요청하는 것도 오구구 우리 강아지 하면서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헤벌레 웃는 아빠 앞에만 서면 말이 쏙 들어갔다. 얼굴 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이 태어나기는 집안은 참 잘 골라서 태어났다.

 지민은 결혼을 미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달력으로 결혼 날짜가 6개월 안으로 성큼 다가온 것을 체크하면 아빠를 찾아 명연기를 펼쳤다.



"아빠아…나 아파."

"우리 강아지! 어디가 아파? 응? 배? 머리? 의사 부를까?"

"그게 있지…몸이 아픈 건 아니구…나는 막 아직 아빠랑 같이 살구 싶은데…결혼하면…결혼하면 아빠랑 엄마랑 이제 같이 못 살잖아."



 결정적인 한방은 눈물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지민을 키운 박사장 부부는 지민의 눈물에 한없이 약했다. 하물며 그 이유가 자신들과 떨어지기 싫어서라는데, 박사장은 기꺼이 결혼을 늦췄다. 지민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어 하던 김사장은 아쉬움을 어김없이 내비췄다. 우리 며느리, 우리 며느리 노래를 부르는 김사장은 한시라도 빨리 지민을 태형과 맺어주고 싶어했다. 때문에 아직 어린 우리 지민이를 떼어놓을 수 없다며 박사장이 결혼을 늦추는 대가로 태형의 아버지에게 들이민 선물만해도 이미 몇 백억이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막연히 김태형 쪽에서 미루는 것이라 추측해댔다. 지민은 가련한 해바라기 현모양처 신부였고, 태형은 세기의 바람둥이 나쁜 남자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렇게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혼인하자 맺었던 약혼이, 어느덧 5년이나 더 미뤄졌다. 이제 곧 6년이 될 것이다. 지민은 박사장의 방문을 열었다.



"아빠, 있잖아…."

"응? 우리 강아지 왜?"

"나…아직 준비 안 됐는데, 아빠랑 엄마랑 떨어질 준비…."



 어디를 가더라도 당당함과 싸가지 없음으로 버무려진 지민은 박사장과 문여사 한정으로 애교쟁이였다. 울렁이는 지민의 밤색 눈동자에 박사장과 문여사의 표정도 애틋해진다. 지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망할 약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제 곧 아빠가 자신을 부둥부둥 껴안고 제가 바라는 말을 해줄 것이다. 예상대로 박사장이 지민을 끌어안았다.



"우리 강아지는 어쩜 이렇게 마음씨도 예뻐!"



 지민의 패악질을 매번 접한 남준이 들으면 뒷목을 잡을 말이었다. 바로 이거지. 지민은 박사장의 품에 안겨 아무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흐름 좋고, 각본 좋고, 연기 좋고.



"이 아빠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더구나. 우리 강아지가 밖에 나간다고만 생각하면. 크읍. 그래서 말이다."

"응, 응."

"아빠가 김사장한테 부탁 하나 했지!"



 어서 결혼을 미뤄준다 해줘요, 아빠.



"결혼하고 신혼 3개월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로!"



 뭐? 박사장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지민이 멈칫했다. 각본이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연배우가 다른 대본을 받아왔다. 지민은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아, 아빠 그래두 태형이랑 결혼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그건 감수해야지. 우리 지민이 짝인데. 이 아빠랑 엄마가 그런 것도 못 할까 봐!"

"호호, 우리 아가 예쁜 마음씨 보고 김사장이 안달하는 거라니깐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럼 누구 강아지인데!"



 박사장과 문여사가 지민이 기특하다는 듯 도닥거렸다. 지민은 어설프게 따라 웃으며 박사장과 문여사를 끌어안았다. 예쁜 웃음을 머금고 있지만,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윙윙 돌아갔다. 상황이 막장으로 흘러갔다. 지민은 직감했다. 좆 됐다.

 박지민 인생에서 제일 큰 비상사태였다. 6개월 남은 결혼이 제대로 이뤄진다. 그건 정말로 안 될 일이었다. 매일 아침 지민아 하면서 내 색시, 내 색시 노래를 부를 태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골이 아파왔다. 히트사이클을 태형과 보내야 한다고 떠올리자마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김태형을 닮은 애를 낳고, 그 애는 커서 김태형처럼 술을 먹고 꼴아 집에 들어온다. 김태형과 김태형 2세라니. 상상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다. 끔찍하게도 싫었다. 차라리 걷어찼던 우성알파 중 그나마 뒤지고 뒤져서 괜찮은 놈에게, 서로 무관심하게 살자 각서를 받는 것이 낫겠다. 아니면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랑 결혼하거나. 지민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어 머리를 굴렸다.



"그래, 튀자."



 사라진 다음 애라도 떡 하니 가지고 같이 살 사람 구해오면 아빠도 뭐라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상이 중요한 법인데, 상류층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치고 호랑말코 아닌 놈을 보지 못했다. 아빠도 부정하지 못할, 어떻게든 그럴싸한 사람을 데려와야 했다.



"김비서! 김비서!"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우리 가문 역사서 어디 있지?"

"네? 역사서요…?"

"어, 박씨 가문 역사서."

"그거라면…아마 할아버님 댁에 있을 겁니다."

"그래? 짐 챙겨."



 박씨 집안은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할아버지는 21세기에 아직도 시골 기와집에서 살고 있었다. 박사장이 시골은 지긋지긋하단 이유로 서울로 도망 나왔을 뿐, 할아버지는 아직도 한복을 입고 박씨 가문의 품위를 지켰다. 박사장이 서울로 튄 이후 박사장과 할아버지는 척을 졌지만, 지민만은 우리 손주, 우리 손주하며 예뻐했다. 명절날 기와집으로 내려가면 여전히 박사장은 눈엣가시 보듯 호통부터 치지만 지민은 버선발로 튀어나와 반겼다.



"짐이요? 내려가시는 겁니까? 얼마나 머무실 예정입니까?"



 남준은 끽해야 5일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 앞에서는 도시생활 청산하고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말을 뱉는 지민이지만, 실상은 박사장의 피가 더 진했다. 태어나서부터 남이 시중 들어주는 것에 익숙한 지민이 시골에 눌러앉을 일은 결단코 없었다. 방바닥에서 하루만 자도 허리가 뻐근하다고 투덜거리는 지민에게 몰래 파스를 전달해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5개월."

“네?”

“뭐야, 왜. 불만 있어?”

“…아닙니다.”



 남준은 끌어오르는 피눈물을 참았다. 지민이 가는 곳은 제가 가는 곳이었다. 아아 5개월 지방출장이라니. 끔찍했지만 남준은 내색하지 않았다. 남준은 유능한 비서였다.



 남준은 제 도련님이 피가 섞인 한에서 두 얼굴을 가진다는 사실을 애저녁에 파악하고 있었다. 지민이 혀끝이 짧아지는 대상은 세상에 셋이 존재했다. 박사장과 문여사, 그리고 지민의 할아버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더라도, 새초롬한 얼굴로 까탈스럽게 굴던 지민이 방싯방싯 웃는 모습은 면역이 덜 되어 있는 탓에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이, 지민이 왔어요오.”

“어이쿠 이게 누구야! 내 새끼, 왔어?”

“헤헤,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는 지민이 안 보고 싶었어요?”

“이 할애비가 우리 지민이 온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지민은 천연덕스럽게 애교를 피웠다. 이만 사라져야겠다. 남준이 나가려는 찰나였다. 지민이 남준을 향해 입모양으로만 중얼거렸다. 어딜 가, 공부 해야지. 이 시골까지 와서 무슨 공부? 지민은 박사장이 시키는 후계자 수업도 설렁설렁 들었다. 지민 대신 경제학 논문을 쓴 적을 꼽자면 열 손가락도 모자랐다.



“할아버지 저 가서 책 읽어두 돼요?”

“물론이지, 내 새끼. 요 열쇠 줄 테니 가서 문 따고 읽어라.”

“할아버지 최고!”



 지민이 뽀뽀세례를 받고 서재로 들어섰다. 남준도 따라 들어갔다. 지민은 서재를 돌아다니며 책을 한 사발 꺼내왔다. 어찌나 많은지 쌓인 책 높이에 지민이 가려질 정도였다. 서재 안의 책을 쓸어 온 지민을 남준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이 책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먼지가 풀썩 일었다.



“뒤져.”

“어떤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 가문이 빚진 은인.”

“네?”

“난 한자 못 읽으니까 김비서가 찾아야 해. 가능한 빨리 찾아.”



 남준은 감당 안 되는 책높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지민은 태연하게 서재를 돌아다니며 책을 더 얹어주었다. 이것도, 이것도. 아 그리고 이것도. 여기저기 팔랑팔랑 돌아다니며 책을 빼오는 지민을 남준은 말릴 수 없었다.



“지민아! 나와서 밥 먹어라!”

“네에, 할아버지! 김비서, 찾으면 나 불러. 알았지?”



 지민이 쏠랑 나갔다. 덩그러니 책과 남겨진 남준은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나는 이 일이 좋아, 나는 대기업에 유일무이한 비서야. 나는 이 일이 좋아, 나는 이 일이 좋아. 주문을 외듯 한참을 중얼거린 남준이 책을 펼쳤다. 정신이 어질거리는 한자의 공격을 버티며 남준이 지민을 다시 호출할 수 있던 건 일주일 뒤였다.



“물에 빠진 우리 고조 할아버지를 구했다라…괜찮네. 수고했어, 김비서. 그럼 이제 여기 후손 찾아봐. 뭐하고 사는 지도.”

“지민아, 내 새끼 어디 있누?”

“할아버지 지민이 여기 있어요!”



 남준은 또 한번 덩그러니 남았다. 난 이 일이 싫, 아니 난 이 일이 좋아. 참을 인자를 새기며 남준은 심호흡했다. 사생활 침해는 그나마 역사책을 뒤지는 것보다는 수월했다. 한울그룹을 등에 업은 지민의 이름을 빌어 남준은 남의 개인정보쯤은 간단히 얻어냈다. 이름, 성별, 심지어 주민번호까지 탈탈 털며 남준은 생각했다. 이런 게 도련님이 왜 필요하실까.

 지민은 보통의 상류층 집안과 다르게 자랐다. 혼외자식은 기본이요, 극도의 암투가 벌어지는 재벌가 특유의 속사정을 몰랐다. 박사장과 문여사의 사랑이란 사랑은 몽땅 받았고, 그 흔한 마약이나 난교파티도 천해 보인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싸가지 없고 다소 사람을 개무시 할 뿐, 권력을 무기 삼아 다른 사람 인생을 조진 적은 없었다. 지민이 이런 명령을 내린 적은 처음이었다. 남준이 살짝의 불안감을 떠안고 구해온 정보를 지민에게 내밀었다.



“으음…그래, 전정국이라…한 살 어리네. 뭐 그 정도쯤은.”



 종이를 살핀 뒤 지민이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비서, 내 짐 싸.”

“서울로 다시 가시는 겁니까?”



 남준이 반색했다. 먼지만 풀풀 나는 서재에서 벗어나 집으로 가고 싶었다. 따뜻한 목욕물에 맥주 한잔이면 모든 세상을 가질 것 같았다.



“아니, 여기로.”



 지민이 종이 안 주소를 가리켰다. 남준은 영문을 몰랐지만 순순히 지민의 명을 따랐다. 어쨌거나 집에 간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서울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교외지역이었다. 지민은 나무 대문을 나서며 마지막 애교를 빼먹지 않았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사랑의 화살까지 쏘는 시늉을 하며 눈웃음 한껏 피어 올렸다. 문에서 돌아서자마자 정색한 얼굴로 거만하게 남준이 차문 여는 것을 대기하는 장면만 뺀다면, 영락없는 애교쟁이 손주였다. 남준이 차를 몰 동안 지민은 계속해서 종이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는 동안 흐흐, 남준이 지민 몰래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집. 집. 지방출장은 이만 끝이다.

 차가 도착한 곳은 달동네였다. 새벽녘에서야 도착했다. 서울 근처에 이런 시골이 또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촌구석이었다. 비포장도로에 차가 덜컹덜컹거린다. 바퀴가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할 즈음에 차가 멈췄다. 산처럼 쌓아진 계단 아래였다. 지민은 선글라스를 끼며 차 문을 열었다. 남준이 따라 내리려는데, 지민이 아 하고는 말했다.



“김비서는 내릴 필요 없어. 그리고 아빠한테는 잘 말해. 나는 할아버지 집에 계속 있는 거야. 5개월동안 쭈욱. 알았지?”

“네? 도련님, 하지만….”

“서울 가지 말고 아무 곳이나 다 가도 돼. 아빠 눈에만 띄지마. 말 잘해놔, 알았지?”



 지민이 바람처럼 차에서 내렸다. 남준은 돌처럼 굳어있다 핸들에 머리를 묻었다. 내가 바란 건 고작 집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는데, 강제 가출을 필두로 박회장에게 거짓말하라는 명까지 떨어졌다. 집은 그렇다 쳐도, 박회장에게 거짓말이 들킨다면 무사하지 못한다. 흡사 조선시대에서 사약이라도 한 사발 들이키라는 명을 받은 심정이었다.



“…난 이 일이 싫어.”



 드디어 사표를 쓸 때가 왔나 보다.









***









 전정국은 성실한 베타 청년이다. 성실함 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할 만큼 성실했다. 그리고 정말 어이없게도, 부모님은 진정 어린 정국에게 성실함 빼고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았다. 부자도 3대면 망한다 했던가. 어렸을 적 제법 잘 살았던 정국은, 딱 정국의 아버지가 3대째 부자였다. 4살,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던 정국은 다세대 아파트로 들어섰다. 5살 때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이 사라졌다. 6살, 어머니가 차리기 시작한 밥상에서 고기가 빠지기 시작하고 나물만이 올라왔다. 7살, 밥을 굶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8살, 더 이상 밥상을 차려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 날 문을 열고 나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물만 먹고 버티며 살던 정국은 2주일이 될 때쯤에서야 옆집에서 썩은 내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로 경찰의 손을 붙잡고 고아원에 들어섰다.

 고아원을 나온 것은 열넷이었다. 자립보다는 원생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눈칫밥을 얻어먹다가 방 빼듯 쫓겨났다는 게 맞았다. 부모님이 그립다는 마음은 현실 앞에 녹아내렸다. 슬퍼하기에는 현실이 차디 찼다. 14살 청소년을 써주는 곳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마음씨 좋은 공장주인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꽁꽁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공장에 딸린 3평짜리 숙직실에서 정국은 4년을 보냈다. 의무교육인 중학교 과정이 끝나고 고등학교는 당연히 스킵했다. 공장주인이 다니라 권했지만 돈이 있을 턱이 만무했다. 대신 돈을 벌었다. 나이가 점점 자람에 따라 돈벌이가 되는 곳이 늘어났다. 악착같이 벌었고, 다크서클을 눈 밑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딱 다섯평짜리 집을 살 정도의 돈이 모였을 때, 불행이 닥쳐왔다.



“네가 우리 돈 떼먹은 그 놈 새끼냐?”



 껄렁껄렁 침을 뱉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일단 발길질부터 시작했다. 얼굴과 몸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력을 정국은 몸을 둥글게 말고 버텨냈다. 맞으면서 든 감정은,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불행이 안 끝났다니. 부모가 죽고, 고아원에 버려졌다는 걸로 불행이 끝인 줄 알았다. 불량배들은 종이 하나를 피떡이 된 정국의 앞에 툭 던지고 떠났다. 부모가 남겨준 유품이라면 유품이었다. 10억의 빚. 정확히는 9억 8천 200만원이었다. 4년간 모아놓은 돈을 제한 값이었다. 허탈한 심정으로 누운 정국은 공장주인에게 주려 통장이 아닌, 방 한구석에 숨겨놨던 200만원을 꺼내 백 만원을 챙겼다. 다음날 공장주인은 텅 빈 방을 발견했다. 핏자국이 남아있는 바닥은 덤이었다.

 정국은 백만원으로 고시원을 전전했다. 눈감고도 좋은 고시원의 방 조건을 줄줄 읊을 만큼 떠돌이생활이었다. 그럼에도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어쩜 그렇게 제가 있는 곳을 잘 찾아내는 것인지, 자리를 옮기는 곳마다 쫓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국의 돈을 모조리 긁어갔다. 사람 찾을 때는 이 사람들한테 맡기면 제격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멍청한 생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 사람들이 납치해가는 거일 텐데.

 흠씬 두들겨 맞고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있을 때가 성인이 된 날이었다. 성인이 된 정국은 제 불행과 타협했다. 포기였다. 어차피 쫓아올 사람들인데 덜 맞는 게 이득이었다. 꼬박꼬박 달마다 200만원을 상납했다. 노숙생활을 전전한지 1년즈음 되었을 때, 정국은 달동네 한쪽에 자리잡은 방 한 칸을 살 수 있었다. 노숙생활 동안 꽃거지인지 뭔지가 유행하면서 방송에 얼굴 한번 비추고 탄 20만원과 매달 몰래 꿍쳐놓은 돈을 합쳤더니 가능했다.



 불행이란 불행은 다 끌어 모은 어린 시절에도, 정국은 바른 짠돌이 청년으로 자라났다. 생필품은 무조건 다 만원 이하로 사고, 나쁜 일 한번 하지 않고 공사판과 아르바이트 인생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불량배들마저 순순히 돈을 준비해놓는 정국에 주먹질을 멈추고 반갑게 인사했다. 이자율도 줄여줬다. 2퍼센트 정도. 불량배들은 너 같은 고객들만 있으면 행복하다며 직업의 애환을 쏟아놓기도 했다.

 정국은 꿈도 있었다. 이 돈을 다 갚고 자유를 사는 것. 앞으로 20년정도만 악착같이 벌면 된다. 남들이 미쳤냐는 말을 할 생각이라도, 이룰 자신이 있었다. 집이 없을 시절 꿈이 집을 가지는 것이었고, 지금 어엿하게 방 하나와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집을 얻지 않았는가. 물론 집이 금방이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점이 있지만 그 정도쯤은 괜찮았다.



 정국이 쉬는 시간은 새벽녘이 유일했다. 낮에는 공사판에 나가 벽돌을 나르고, 저녁에는 술집 아르바이트를 했다. 해가 뜰 때에는 우유를 배달했다. 5시간이 하루에서 온전히 정국의 시간이었다. 때문에 정국은 잠을 방해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다행히 집에 찾아올 사람 없어 주변 집에서 싸우는 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새벽은 아늑했다.



“…….”



 아늑했는데, 분명 아늑했는데. 쾅쾅 문을 박살내기라도 할 듯 거센 노크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정국은 졸음이 가득 찬 얼굴로 일어섰다. 기상시간보다 30분 일찍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야. 삐걱거리는 문을 열자 찬 아침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누구세요.”



 정국은 반쯤 멍한 정신으로 물었다. 반 뼘은 작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하얀 얼굴이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네가 전정국이야?”

“그런데요?”

“드디어…!”



 지민은 종이 안 사진과 똑같은 얼굴을 확인하며 박수를 짝짝 쳤다. 까치집인 머리만을 제외하면 똑같았다. 지독한 길치인 지민은 이미 여러 군데나 헛곳을 짚었다. 문을 열 때마다 드러나는 생소한 얼굴들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 김비서를 다시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이딴 동네 다 갈아버릴 거라며 이를 부득거리다 이 집이 마지막 집이라는 생각으로 연 참이었다. 이 내가 고작 집 따위를 못 찾을 리가 없지. 뛰어난 능력에 혼자 감탄하며 지민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야 너 나랑 결혼 좀 하자.”



 새벽바람보다 찬 냉수가 정국의 뒤통수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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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표류기 펑크나면 에떼보이에 이거 들고갑니다,,(눈물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