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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다마고치 아이돌 20

by 토페 posted Dec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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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집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는 거구나. 지민은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올라오는 길을 지나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고급 개인주택은 차원이 달랐다. 푸른 잔디가 깔린 드넓은 마당과 현관으로 쭉 이어진 돌길. 금방이라도 재벌간의 다툼, 그런 소재를 찍는 감독이 들어와 슛을 외칠 것만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지민은 앞서 걷는 윤기의 뒤통수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맞다, 원래 이런 대단한 사람이었다.

 

 지하 계단을 통해 올라오니 집안은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되어있었다.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숙소보다 몇 배는 더 컸다. 예약해놓았던 호텔 라운지 레스토랑보다도 이곳이 더 값나가지 않을까. 어쩌면 장소를 가기 전에 취소된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거실이었다. 가구들 역시 검은색이었다. 윤기가 리모콘을 누르자 자동으로 커튼이 열리며 커다란 창이 드러난다. 우와아. 지민이 목이 꺾일 듯 감탄했다. 저 이런 집 처음 와봐요! 윤기는 좋아하는 지민을 보며 생각했다. 처음 집에 들인 반려동물이 집에 스스럼없이 적응할 때 주인이 이러한 마음일까? 활발한 게 보기 좋군.

 


편한 옷 줄게. 갈아입고 와.”

 


 윤기는 드레스룸에서 하얀 반팔티와 검은 바지를 꺼내 내밀었다. 지민이 받아 들더니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냈다.

 


. 좋아하는 옷이야? ?”

그게 아니라…저는 맨날 윤기형이 수트 입고 있는 것만 봤었잖아요. 그래서 이런 옷 보니까 너무 신기해요!”

 


 하나라도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원대한 호감이 느껴지는 눈빛에 윤기는 먼저 피했다. 저 방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씻고 와. 다녀올게요! 사라진 지민은 욕실에 들어갈 때도 시끄러웠다. 윤기형 욕실이 제 침실보다 더 큰 거 같아요.

 

 윤기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집이 낯설었다. 적막으로 꽉 찼던 공간에 생기가 스며들어온다. 고작 박지민이라는 사람이 하나 들었다고. 새로운 게 나쁘지 않다. 다른 이였어도 이런 느낌일까. 짧게나마 생각해본 윤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의 집에 들인 적이 없었다. 몇몇 업무적인 관계로 쓰는 고용인들을 제외하고는 혈육조차. 아마 이 이후에도 평생 들이지 않을 것이다.

 

 윤기는 지민이 씻는 동안 본격적으로 요리할 준비를 했다. 고용인이 냉장고에 채워 넣어놓은 재료들을 확인하는 사이, 욕실 문이 열리고 지민이 나왔다. 뽀얀 수증기가 흩어진다.

 


나왔니.”

 


 말하며 지민을 돌아본 윤기는 집었던 주방도구조차 다시 내려놓았다. 이것조차 박지민의 계획 중 일부였을까. 씻고 나온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윤기에게 파급력이 컸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지민이 민망한 듯 쭈뼛쭈뼛 다가온다.

 


형 저 다 씻었는데요. 옷이 이게….”

 


 샤워를 하고 나온 볼에는 홍조가 가득 얹어져 있었다. 윤기의 티셔츠는 지민의 품보다 한참 커서, 헐렁거리는 목 부분으로 한쪽 쇄골과 함께 어깨가 반 이상이나 드러난다. 뽀얀 피부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 같았다. 게다가 급한 마음에 샤워를 하고 물기를 제대로 닦지 않아 옷이 흐릿하게 젖어 언뜻언뜻 살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게 쪼끔 큰 옷인가 봐요.”

 


 웅얼거리며 지민은 빤히 닿아오는 윤기의 시선에 수건으로 닦는 척 잠시 얼굴을 가렸다. 키는 비슷한데 왜 이렇게 된 거야.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헬스장에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웠어야만 했다고 지민은 후회했다.

 


잘 어울리네. 앉아있어.”

 


 지민이 수건을 뗐을 때 윤기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를 훑고 있다. . 보지도 않고 잘 어울리는지 어떻게 알아요. 사실 잘 어울린다는 말이 나오기 힘든 생김새긴 했다. 그렇지만 윤기가 관심이 없는 편이 낫다. 조리대 옆으로 총총 다가온 지민이 윤기 근처에 자리 잡고 얼쩡거렸다.

 


근데요 형 요리하는 분은 어디 계세요? 인사 드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 앞에 있잖아.”

 


 형 말고는 아무도 없, 까지 대답하던 지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헤 벌렸다.

 


형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진짜요?”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할 인간으로 보여?”

 


 아니라고 외칠 것만 같던 지민이 의외로 눈알만 휘휘 굴렸다. , 이것 봐라. 보통 재벌 집은 요리사도 따로 두고, 정원사도 따로 두고, 키퍼도 따로 두고 막, 그래서 못하실 줄 알았어요. 지민이 나름대로 근거들을 댔다. 윤기도 익숙한 취급이긴 했다. 어디를 가도 받들어 모셔지는 입장이었으니.

 


안심해.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아서 먹고 죽지 않을 만큼은 하니까.”

어렸을 때부터요?”

. 너보다 더 꼬맹이 시절에.”

 


 나보다 더? 10년도 더 넘은 청소년 시절이라는 거다. 지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가족은요? 이어 물으려다 문득 그 언젠가 윤기를 검색했을 때 정보가 기억났다. 송영의 회장, 건강 악화로 장기 입원. 그 아래로는 송영의 주가 폭락과 미래를 논하는 이야기들이 가득 있었다. 그렇지만 그 뉴스조차 몇 년밖에 되지 않았었다.

 

 지민은 자세히 묻는 질문보다는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했다. 아버지가 아픈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 좋으실 텐데. 속상할 윤기의 마음을 괜히 아프게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들어올 때부터 의문이었던 점을.

 


근데요, . 형한테 흑심 많은 날 이렇게 집에 쉽게 데려와도 돼요? 저는 형이 먼저 오라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주방도구만 확인하던 윤기가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하듯 잠시 지민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빠르게 외면했다.

 


양식이랑 한식 둘 중에 뭐 먹을래.”

양식이요!”

 


 냉큼 지민이 해맑게 대답했다. 파스타 해주시는 거예요? 새우 먹니. 아니요. 새우는 별루…. 그럼 뺄게. 쇼파에 앉아서 기다려. 곧 할 테니까. 저는 뭐 할 거 없어요? 없어. 그래도 필요하면 바로 부르세요! 내쫓는 윤기에 거실 쇼파로 돌아나온 지민은 곧 이상한 느낌에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내 흑심 있다는 경고는 못 들으신 건가? 요리를 하느라 바쁘신 모양이라고 지민은 추측했다.

 

 요리는 윤기의 말처럼 금방 됐다. 소고기 스테이크와 토마토 스튜, 봉골레 파스타가 테이블에 차례대로 놓였다. 지민이 접시에 얼굴을 들이박고 감탄했다. 혀엉…진짜 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파스타한테 고백하는 거니? 윤기가 와인과 위스키를 하나씩 꺼내 가져왔다.

 


저도 마셔도 돼요?”

 


 지민은 윤기가 다시 한번 술 마시면 혼낸다는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는 혼자서도 마시지 않고 있었다.

 


나랑 있을 땐 괜찮아.”

그 말은….”

 


 지민이 볼을 발갛게 물들인다.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윤기가 냉큼 덧붙였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고 어른이랑 있어서 괜찮다는 거야.”

 


 그날 회식자리에도 전부 어른만 있었다. 심지어 스태프들 중 반은 윤기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지민이 약간의 의문을 가졌지만 의문은 곧 윤기가 따라주는 잔에 녹아 내렸다. 잘 먹겠습니다. 낭랑하게 외친 지민이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먹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면이 입안에서 꿈틀거려요! 박지민 방송인 다 됐네. 요리프로 가도 되겠다. 히히 웃은 지민이 테이블 아래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뭐라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대화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중간에 윤기의 위스키를 맛본 지민이 목을 부여잡고 켁켁거리며 울상을 짓긴 했다. 왜 독약을 먹어요. 윤기는 구겨진 종이처럼 변한 지민을 웃음기 스민 말투로 위로했다.

 


넌 죽어도 내가 살려줄 테니까 울지마.”

 


 지민이 벌개진 피부로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니이, 진짜아.

 


너무해요. 시도 때도 없이 꼬셔요, . 저는 진짜 안 좋아하려고 했는데, 마음 접으려고 했었단 말이에요.”

취했구나.”

저 한 개도 안 취했는데요? 절 뭘로 보시구.”

 


 말과 달리 지민의 눈동자는 반쯤 풀려있었다.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맛본 뒤부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취한 사람이 안 취했다고 보통 주장하지. 고개가 비척거리는 지민을 본 윤기는 슬슬 자리를 접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잔 이리 내라.

 


근데요, 윤기 형 저랑 만나면 엄청난 장점이 많아요.”

  


 윤기는 지민의 잔을 빼앗으며 픽 웃고 말았다. 술 좀 마시니 어른스러운 척은 다 갖다 버린 모양이다. 그래 그래. 뭐가 있는데. 잔을 기울이며 윤기가 맞춰주듯 물었다. 지민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한다. 열심히 고민하듯 미간이 모인다. 윤기는 끽해야 춤 잘 추고 노래 잘 해요, 하는 귀여운 말이나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민이 찾았다는 듯 밝게 아! 외쳤다.

 


“저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

섹스요.”

 


 마시던 위스키가 그대로 역류할 뻔했다. 괜찮아요? 휴지, 휴지. 지민이 잽싸게 일어나 거실을 돌아다닌다. 집이 너무 커서 휴지가 안 보여요. 힝힝거리는 지민을 윤기가 됐다고 손짓해 돌아오게 했다. 골이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어디서 그딴 말을 배워와서.”

인터넷에서 처음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구 봤는데….”

 


 윤기가 처참하게 인상을 썼다. 폰을 압수할 수도 없고 이걸. 지민은 나름 장점이랍시고 말했는데 반응이 좋질 않으니 고민에 빠졌다. 그럼 혹시….

 


윤기 형은 처음이 아닌 게 좋은 거예요?”

 


 하. 갈수록 가관이라 윤기는 말을 잃었다. 뒷골이 땅긴다. 어디까지 하나 보듯 팔짱을 낀 채 지켜본다. 잠깐의 침묵에 지민이 연신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해결했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도 방법이 있어요! 맡겨만 주세요.

 

그것도 몸으로 하는 일이니까 배우면 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랑 해서….”

배우긴 뭘 배워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윤기가 딱 잘라냈다. 다른 사람은 무슨. 거기까지 들으니 속이 미묘하게 긁힌다. 엔터 회사에 성교육 과정도 추가해야 하나. 윤기는 은근히 요동치는 감정을 갈무리했다. 술 마신 어린 애를 상대로 화낼 수는 없다. 그럴 권리도 없고. 그러나 속에 무언가가 치받는 건 그대로다. 그는 딱 잘라 단언했다.

 


가만히 있어.”

?”

함부로 너 주지 말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라고.”

…….”

그리고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마. 엄한 새끼들 붙는다.”

 


 물론 붙으면 윤기는 제 손으로 죽여버릴 자신이 있었다. 방법이야 여러 개다. 사회적으로 무덤에 묻거나, 경제적으로 목을 조이거나. 무시무시한 생각은 아무렇지 않게 떠올리면서 지민에게는 낮고 조곤한 어조로 말했다.

 


알아 들었니.”

…네.”

 


 지민이 홀린 듯 대답했다. 심장이 콩콩 뛰었다. 윤기가 묵직한 톤으로 이야기하며 눈을 맞추기만 해도 그랬다. 방금 박지민이 민윤기에게 다시금 일편단심을 맹세했다는 사실을 민윤기는 추호도 몰랐다. 그래. 대답 잘하네. 윤기는 마지막으로 위스키를 다 털어 마셨다. 다 먹었으면 이만 치우지.

 


가서 영화 틀어놔.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치우는 거 도와드릴게요!”

재미있는 거나 신중히 골라. 검사할 거야.”

 


 윤기가 지민을 밀어낸 뒤 그릇을 들어 옮긴다. 지민은 미어캣처럼 윤기의 뒤만 바라볼 뿐이었다. 심장이 닳아 없어질 만큼 좋았다.

 

 

 

 

 

 

 

 윤기는 부러 테라스에 나가 잠깐의 시간을 가졌다. 박지민과 있으면 민윤기는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게 지민의 작전이라면 잘 먹힌 것 같았다. . 나른한 숨을 쉬며 그는 며칠 전의 자신이 우스웠다. 적당히 하고 잘라내? 퍽이나. 약간의 자괴감과 죄책감이 그의 안에 작은 소용돌이를 만든다. 이 앞에 깔린 밤에는 정말 지민과 아무 일도 없으리라 결심하며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면을 꽉 차지한 커다란 스크린에는 요즘 화젯거리라는 영화가 틀어져 있었다. 액션 영화로 남자주인공이 비행기에서 떨어지고, 총을 쏘고,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등 멋진 액션씬을 선보였다. 엄청난 소음들이 영화관 못지않은 사운드 바로 재생되고 있었다. 뭇 사람이라면 극장이 따로 없다며 좋아했을 성능이었다. 그러나 그 혜택들을 누려야 할 딱 한 명의 관람자는 쇼파 위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키친에서 돌아온 윤기는 새근새근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팍을 보며 허, 헛웃음을 쳤다.

 


흑심이 많은, 뭐가 어쩌고 어째.”

 


 어이가 없다. 실컷 위험하지 않겠냐느니 떠들어놓고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잔다. 윤기는 쇼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자니. 남 속은 심란하게 뒤집어 놓고.

 

 어두운 공간 속 화면이 만들어내는 불빛이 지민의 얼굴에 닿는다. 대충 구겨져 자느라 반쯤 짓눌려있었다. 통통한 입술도 뭉개진다. 그에 저도 모르게 윤기의 입꼬리가 들썩인다. 얘는 뭐 자는 것도 귀엽게 잔다. 피곤하긴 했을 터다. 컴백 준비로 하루도 빠짐없이 안무 연습하고 피팅하고 녹음한 데다가, 데이트랍시고 긴장을 가득 했었으니 쓰러지듯 자도 무리는 아니었다.

 

 윤기가 화면을 껐다. 고요해진 공간. 그는 그대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곤하게도 잔다. 이렇게 자고 있으니까 영락없이 온순한 앤데. 이런 애가 자기 좋다고 졸졸 따라와서 처음이라느니, 능숙하게 해오겠다느니 지껄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들어가서 자자.”

 


 윤기는 지민을 안아 들었다. 흐응. 방해 받은 지민이 코에 걸린 잠투정을 부린다. , 잠깐이면 돼. 잠깐만. 다정한 저음에 지민이 잠결에도 말을 듣는 것처럼 얌전히 안긴다. 제 침실에 도착한 윤기가 지민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장인이 영혼을 갈아 제작한 침대는 서넛이 누워도 남을 만큼 컸다. 그리고 윤기가 허리를 일으키려는 그 순간.

 


으응….”

 


 체온이 마음에 든 건지 지민이 꼬물거리며 윤기에게 떨어지기 싫다는 듯 안겨왔다. 그 미약한 움직임에 윤기의 행동이 멈췄다.

 


…….”

 


 품 안에 갇혀있는 건 지민인데, 움직이지 못하는 건 윤기였다. 따끈하고 말랑하다. 왜 단내가 나는 것 같지. 분명 자신의 집에서, 자신과 똑같은 제품으로 씻었을 텐데도 그랬다. 윤기는 조금 얼굴을 뗐다. 말랑한 입술이 보인다. 이미 그는 그 안에서 맛본 숨이 얼마나 달고 뜨거웠는지 알고 있었다. 그 아래 헐렁한 반팔 티 사이로 파인 쇄골이 보인다.

 


으….”

 


 지민이 인상을 찡그린다. 그러더니 들린 허리가 불편한 건지 옆으로 데구르르 굴러가고는 만족했다는 듯 밝게 펴진다. 기분이 좋은지 베개에 다시 꼬물거리며 파고든다.

 


…….”

 


 윤기는 스스로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술 기운이 도나. 아니면 진짜 홀리기라도 하는 건가. 황당한 기분이다. 윤기는 고개를 흔들어 털며 지민의 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는 거실로 돌아 나와 다시금 위스키를 꺼냈다. 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차라리 취했다는 변명을 붙이고 싶었다.

 

 그 어린 애는 자기가 좋아한다고 덤비는 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 윤기는 지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보여준 적이 없다.

 

 이 우습고 같잖은 연애놀이에 고작 한번 어울렸을 뿐인데. 정말 딱 한 번. 그의 안에 작은 의심에 감정이 싹을 틔웠다. 만약. 정말 만약. 이 한 달이 지나 있으면 무언가 달라져 있을 수도. 집주인은 쇼파에서 밤을 지새우고, 손님은 당당히 침대를 차지한 채 깊은 밤이 저물고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