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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Duke Ellington - Take the a train>




_현대물. 연예계물.











 간혹 인생은 내리막길만 있는 것 같다. 지민은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골랐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일까? 지민이 속한 5인조 남자아이돌 그룹 ‘뉴위크’는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망했다.


 중소기획사에 캐스팅되어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진 지 어느덧 3년. 소속사는 적자가 쌓여 빚더미에 앉았고, 변변찮은 앨범 마저도 내지 못한 채 팀은 근 1년간 아무 활동도 하지 못했다. 백 명도 되지 않을 팬들은 이제 흔적조차 없이 증발했다.


 지민은 아이돌이 된 이후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았다. 데뷔곡은 나름 반응이 있었다. 독특한 컨셉으로 SNS에서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우주 경찰이 되어 괴물과 싸우는 컨셉으로 광선검을 들고 펑펑 터지는 별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촉수괴물들을 베어댔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끈적거리는 초록색 액체를 뒤집어쓰고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니 사장님의 선택이 맞는 것 같았다.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뜬다. 알았지, 애들아.


 두 번째 곡의 컨셉은 유령이었다. 하얀 실타래 같은, 커튼을 얼기설기 붙여 만든 것 같은 옷을 입고 실제로 유령이 나왔다는 고성을 섭외해 촬영을 진행했다. 가사는 이별하는 내용이었는데, 비트는 강렬한 사운드의 락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전쟁에서 잃고 한이 된 유령. 분노에 가득 차있지만,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지어보라던 뮤직비디오 감독의 말을 지민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또 열심히 했다. 가지고 있는 건 열정과 패기밖에 없는 시절이었으므로. 그러나 반응은 데뷔곡보다 좋지 못했다. 88위를 했던 데뷔곡과 달리 150위에 안착하더니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이때 예상했어야만 했다. 이 길로 가면 망한다고.


 세 번째로 컴백한 곡은 힙합 비트의 곡이었다. 진하고 강렬한 스모키 화장과 함께 단체로 붉은 수트를 입고 활동했다. 가사는 소년이 상대방을 유혹하는 내용이었는데, 한줌 남아있던 팬들마저 기겁을 하며 떠났다. 대체 저 메이크업 뭐야? 파란색 섀도우? 누구세요? 썩은 꽃게 같아요. 그렇게 세 번째 곡도 침몰했다.


 사장이 영혼을 끌어 모아 낸 싱글 앨범. 비트도 댄스곡으로 무난했고, 가사도 무난했고, 의상은 요새 아이돌들이 많이 입는 센 컨셉의 옷이었다. 장점은 무난하다는 것이었고, 단점 역시 무난하다는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이돌 홍수 시대에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컨셉은 바람 앞 촛불처럼 한 순간에 쓸려나갔다. 이 그룹은 뜨느니 내가 먼저 관에 묻힐 듯. 그렇게 말하며 한줌 남아있던 팬들도 사라졌다.


 그렇게 모조리 망한 채 마지막 곡 활동 후 1년의 공백기가 흘렀다.



“…….”



 정녕 답은 해체밖에 없는 걸까? 부정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바짝 코앞으로 다가왔다. 리더 형은 일주일전에 컴퓨터활용능력 시험 책을 샀고, 지민보다 어린 멤버들도 슬쩍 눈치를 보며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불안에 떨었다. 막내 정국은 얼마전 영혼 빠진 눈으로 수능 문제집을 시켰다. 차라리 막노동을 하는 게 나을 거 같다는 막내를 뜯어말리느라 꽤나 고생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럼 뭘 해야 하지…. 평생을 춤과 노래에 바쳐온 지민은 생각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우리 인생에는 기회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다. 똑똑. 누군가 연습실 문을 두들겼다.



“지민이 여기 있니?”

“…사장님!”



 매일같이 연습실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던 지민이 꾸벅 허리를 접어 인사하며 음악을 껐다. 격한 춤 연습을 하느라 가슴팍이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은 머리가 반쯤 벗거져 있었다. 호빵맨에 나오는 할아버지 캐릭터가 사람으로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또 혼자 연습하고 있었어? 어제도 연습실에서 살더니.”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는데 열심히 해야죠.”



 헤헤. 지민이 생글생글 웃었다. 독기 가득 연습하던 눈이 금새 순하게 곱게 휘었다. 찌든 연습실에 돌연 레몬즙이 터지듯 상쾌함이 퍼진다. 사장은 몇 년 전 지민을 캐스팅해온 자신을 꼭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런 애가 아이돌이지, 암. 그들은 짧은 잡담을 나누었다. 멤버들은? 지금 숙소일 거예요. 이따 정국이도 연습실에 온다고 했어요. 그래? 열심히네. 마침내 사장이 큼큼, 헛기침을 하며 운을 뗐다.



“그, 지민아 저기 있잖니.”

“네?”



 그게 말이다. 사장이 말을 빙빙 돌렸다. 그게 있잖니. 지민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혹시 안 좋은 소식이에요?”

“아니, 아니! 안 좋을 리가 있니. 그냥 가벼운 소식이긴 한데, 정말 가벼운 소식이야.”



 안 좋군. 지민의 안색이 나빠졌다. 정말 해체인가? 이제는 해체만 남은 건가? 지민이 입술을 꾹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주셔도 돼요. 저희…이제 끝인 건가요?”

“뭐? 아냐! 그건 절대 아니다, 지민아. 다음 앨범 준비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다. 나 너네 포기 안해.”

“그럼 무슨 이야기길래….”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하, 이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사장이 난감하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마침내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혹시 송영그룹이라고 아니?”

“네? 당연히 알죠.”



 지민이 어리둥절한 눈을 했다. 전혀 상관없는 단어의 등장인 탓이다. 한국에서 송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재벌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었다. 보이지 않는 현실판 신분제도에서 따지면 귀족도 아닌 왕족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궁금해하곤 한다. 대체 저 집안에 태어나려면 나라를 전생에 몇 번이나 구해야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게 여기서 갑자기 무슨 상관이지? 지민이 땀이 흥건한 목덜미를 대충 슥 닦으며 순수한 눈망울을 깜빡였다. 그게 왜요? 사장은 그에 죄책감이 더욱 추가됐다.



“거기 계시는 중요한 분이 말이야. 우리 뉴위크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는데….”

“…혹시 사장님 또 팬들한테 협박 편지라도 받으셨어요? 아니면 장난 전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엔 진짜다, 지민아.”



 의심부터 나오는 건 당연했다. 이름도 평생 한번 못 알려본 소형기획사가 대기업의 푸시라니. 믿지 못하는 지민에게 사장이 구구절절 설명했다. 전화도 여러 번 했고 정말 송영그룹의 비서가 맞았어.



“그래서 투자하기 전에 정말 간단한 식사 한 끼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지민이 너를 한번만 만나보고 싶다고….”



 사장은 말을 차마 다 잇지 못하고 꼬리를 흐렸다. 지민이 이번에는 멍하니 벌린 입을 뻐끔거렸다. 객관적으로 송영에서 자신을 찾을 일은 없었다.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비인기 연예인은 광고모델로 아무 짝에 쓸모 없으며, 혹시라도 자신이 대기업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파격적인 전개 역시 없을 터였다. 박지민의 생부와 생모는 아직도 동네에서 손 꼽히는 사이 좋은 한 쌍의 잉꼬부부다.


 연습실에 침묵이 흘렀다. 투자, 식사, 만남. 그러니까…. 연관성이 동 떨어져있는 단어를 종합한 지민이 결과를 도출했다.



“스폰…?”

“아니! 일단 그쪽에서는 가벼운 식사 정도만! 그래, 식사 정도만! 요청했단다. 몇 번이나 그런 건안 한다고 했는데 정말 가벼운 식사 한끼만 하면 된다고….”



 자극적인 단어에 펄쩍 뛴 사장이 후우, 깊은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를 했다.



“…모르겠다, 지민아….”



 스폰이라니. 연예계 생활을 하며 알음알음 건너 들은 소문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소문이었다. 사실 소문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전부 다 sns에서 떠도는 자극적인 뉴스들을 본 것이다. 박지민의 연예계 생활이라고는 연습, 또 연습뿐이었기에 동료라고는 멤버들이 전부였다. 근데 그게 드라마가 아니었어…?



“지민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사장이 아주 조심스레 물었다. 지민은 확고했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순수하게 춤과 노래가 좋아 시작한 가수생활이다. 그런 짓까지 해가며 모든 걸 버리고 싶진 않았다. 그런 일을 하고 어떻게 떳떳하게 부모님을 뵙고, 팬들을 만나고. 스스로의 양심상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릿속 한 편으로는 이것이 다시 오지 않을 최고의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장이 손을 휘저었다.



“아니다. 너한테 어떻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하겠니. 미안하구나. 방금 이야기는 없던 이야기로 하자. 내가 잠깐 돌았었나 보다. 연습 마저 하렴.”



 사장이 등을 돌렸다. 자신이 자식처럼 키우는 아이에게 그런 일을 권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송영을 거절하면 생길 불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걸음이 묵직했다. 지민은 멀어지는 사장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라이브 방송을 해도 100명도 채 모이지 않는 시청자수. 망돌이라며 쏟아지던 조롱. 여태까지 뒷바라지를 하며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부모님. 해체라는 불안감에 떠는 같은 그룹의 멤버들. 한치 보이지도 않는 미래. 이 생활이 끝나 더는 춤과 노래를 하지 못한다는 공포. 집이며 차며 다 팔고 이젠 매일같이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친아빠 같은 사장님.



“사장님!”



 지민이 뛰어가 사장을 붙잡았다.



“저 할게요.”

“아니, 지민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너 희생해서 나는 우리 그룹 띄울 생각 없어. 얼마든지 우리한테는 기회가 있고….”

“없잖아요.”



 현실적으로. 지민이 단호하게 사장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예의가 유독 발라 단 한번도 사장의 말을 끊은 적이 없던 아이였다. 사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저도 알아요. 우리 많이 힘들다는 거. 그런데 지금 그걸 살릴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조곤조곤한 말씨는 차분했으나 냉정했고, 간절했다.



“그 기회, 제가 만들어 올게요.”



 나갈게요. 만나게 해주세요. 지민이 결연히 말했다. 이미 자신은 지금 낭떠러지 앞에 있었다. 아니, 이미 떨어져 추락하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게 썩은 동아줄이어도 필요했다.






***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연락을 하자마자 송영에서는 이번 주 금요일 저녁 8시로 약속장소를 정해 통보했다. 사장은 울멍거리는 햄스터처럼 지민에게 매달렸다. 지민이 혹시 마음 바꿀 생각은 없니? 있다면 지금이라도 무르면 되니까…. 네, 없어요. 사장님 저 그때 샵 좀 잡아주세요. 단호한 지민에 사장은 결국 그 뜻을 꺾지 못하고 이것저것 불법적인 루트를 막는 방법을 찾아와 들이밀었다. 그럼 이건 꼭! 명심해야 된다.


 술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기. 주먹을 휘두르거든 몰래 빠져 나와서 도망가기. 낌새가 수상하면 녹취하기. 물론 지민도 사장의 정성을 생각하여 주의 깊게 들었다. 꼭 위험하면 도망 칠게요. 상대가 생각보다 더 개새끼면 소속사가 망하든 말든 상관 없으니 도망치라는 말에 지민은 조금 감동을 받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로드매니저, 컨텐츠 기획자, 대표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사장이 지민을 픽업하러 나왔다. 괜찮겠니? 마지막까지 묻는 사장에게 지민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하고 올게요. 아니 굳이 그런 일을 잘할 필요는 없어 지민아…. 그래도 이왕 하려면 잘 하는게 낫죠. 지민은 예의상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탔다.


 8개월만에 방문한 샵은 예전과 똑같았다. 무수히 많은 망돌 사이에서 샵의 스탭은 다행히도 지민을 기억하고 있었다. 약간은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사장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어떤 컨셉이에요?”



 항상 기상천외한 컨셉과 메이크업을 부탁하는 아이돌 그룹이었으므로 그녀는 오늘도 고난을 예상했다. 좀비 컨셉이라도 들고 온 건 아닐까. 오늘은…. 사장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지민이 대신 말했다. 



“평범하게 해주세요!”



 스탭이 살짝 놀라 지민과 사장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나보군. 대충 그런 뜻이 느껴지는 얼굴 표정이었다. 스탭이 산뜻하게 말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



 지민이 떠나는 스탭을 붙잡았다. 민망한지 살짝 귀끝이 발개져 있었다.



“오늘 좀 주, 중요한 촬영이라서…예쁘게 해주세요.”



 이런 상큼한 애를 데리고 그동안 왜 그런 컨셉을…. 약간의 측은지심을 느끼며 그녀는 목표의식을 불태웠다. 그리고 세명의 스탭과 함께 돌아와 지민에게 달라붙어 꾸미기 시작했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끝내고 옷까지 갈아입고 나니, 그곳에 연습실에서 땀에 찌들어 있던 박지민은 없고 완벽한 아이돌 박지민이 있었다.


 지민은 거울 앞에 섰다. 얇은 소재의 하얀 셔츠에 은색 체인 팔찌와 목걸이를 차고, 청바지를 입으니 허리가 유난히 더 말라 보였다. 얇은 천 덕분에 움직일 때마다 가는 몸의 실루엣이 살짝씩 보인다. 끔찍한 색조 메이크업을 거둬낸 얼굴은 제 나이답게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이런 평범한 컨셉과 메이크업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어색하게 옷 매무새를 만졌다.



“사장님 이제 출발해요.”



 꼭 이렇게 다시 멤버들과 컴백해야지. 샵을 나서며 지민은 양 주먹을 쥐고 꼭 다짐했다.










 벤을 타고 도착한 곳은 고급스러운 한정식 식당이었다. 한옥을 테마로 지어진 음식점은 소담스러운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 화려한 무늬의 비단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곳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이 곳을 예약하려면 날고 기는 연예인들도 몇 달 전부터 예약을 잡아야 할 거다. 정원을 지나 용 무늬가 새겨진 문을 가만히 입 벌린 채 보고 있자니 사장이 결연한 햄스터처럼 말했다.



“지민아 꼭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거라. 알겠니?”

“큰 일은 없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곧 정국이 시험 끝나고 나오잖아요. 가서 픽업해주세요.”



 마냥 걱정된다는 사장에 지민이 작게 웃어주었다. 어서 가보세요. 지민이 등을 떠밀자 사장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떠나면서도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는 폼에서 불안이 느껴진다. 지민이 밝게 손을 흔들고 용 무늬가 새겨진 문을 조심스럽게 여니, 한복을 입은 점원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마중 나왔다.



“성함을 말씀해주시면 예약 명단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아 박지민입니다….”

“네,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안내 받은 곳은 프라이빗 룸이었다.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의 특징을 살려 도자기와 병풍이 장식되어 있었다. 지민이 통통한 입술을 멍하니 벌렸다. 꼭 박물관에 식탁이 있는 것만 같은…. 점원이 인사하며 문을 닫았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지민이 마찬가지로 꾸벅 인사했다.



“…….”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어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린 지민은 어정쩡하게 식탁 앞에 앉았다. 하나같이 다 비싼 값일 게 뻔한 이곳에서 자신이 가장 값싸게 느껴졌다. 장소만으로도 지민은 기가 죽었다.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체할 것 같다. 부자들은 이런 곳에서 돈을 물쓰듯 쓰는 걸까?


 지민은 사라지는 용기를 애써 북돋았다. 심호흡을 하며 최면을 걸었다. 그냥 눈만 딱 감았다가 뜨면 돼. 별 거 아냐.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잖아. 거기까지 생각하다 지민은 정정했다. 따지자면 굴에 잡혀 간 게 아니라 제물로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거긴 한데…. 식은땀이 나고 손이 축축해지는 건 지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저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미 머릿속에는 느와르 영화의 불법적인 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백발이 무성한 변태 중년 남성이 허벅지를 주물럭거리고, 방에는 이름 모를 환각제 연기가 자욱하고, 약에 취해 동공이 풀린 모습들.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능만하다면 오늘 하루를 빨리 감기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렸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지민에게 인사했던 점원의 똑같은 말이 들려왔다. 그에 지민이 놀란 병아리가 파드득 날갯짓 하는 것처럼 움찔 떨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

“…….”



 지민의 눈이 동그래졌다. 들어온 이는 무척이나 젊은 남자였다. 상상 속에 그리던 백발이 무성한 중년 남성이 아니었다. 하얀 피부에 블랙 컬러의 수트가 그린 듯 잘 어울렸으며,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남자는 언젠가 지민이 꿈꿔본 어른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그대로 눈을 마주친 남자와 지민은 서로를 관찰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연 건 남자였다.



“…박지민씨?”

“네, 네!”



 지민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서서 허리를 꾸벅 90도로 접어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뉴위크의 지민입니다. 한참이나 지민을 뜯어보던 남자는 그에 눈매를 작게 구기며 중얼거렸다. 상냥한 답인사는 아니었다.



“미성년자라고는 안 했던 거 같은데?”



 미성년자…? 나…? 지민은 당황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도 그랬다. 붉고 푸른 섀도우를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고 활동했으니 사람들은 지민의 나이를 추측하지도 못했다. 지민이 멀뚱히 있자니, 남자가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는 지민을 가까이서 보고는 더욱 기가 막힌다는 듯 하, 했다.



“그때는 아예 핏덩이였겠군. 내가 이런 어린 애…됐다.”

“…네, 네?”

“꼬마 지금 몇 살?”



 아예 어린 취급에 지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민이 급히 부정했다. 오해하시고 있는 게 있는데요.



“저 미성년자 아니에요. 성인…인데요.”

“성인이라고? 몇 살인데?”

“스물한 살….”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뭐 방송나이? 그런 거 써? 거짓말 안 해도 돼. 꼴에 망해도 관리하는 소속사라고 그런 걸 시키나 보네.”

“지, 진짜 스물 한 살인데요?”



 남자가 눈을 가늘게 좁힌다. 지민이 억울해진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예요.



“…뭐 그렇다면 일단. 그래요. 성인이라니 다행이네요.”



 그는 여전히 믿지 않는 눈초리였다. 그것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남자는 아예 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메뉴판을 지민 앞으로 넘겼다. 비싼 식당은 메뉴판조차 받기 황송하게 고급스러웠다.



“먹고 싶은 거 골라요.”

“…네.”

“쓴 거나 매운 거 못 먹으면 말해도 됩니다.”



 아예 애 취급이다. 더는 주장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아 지민은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주민등록증을 가져왔어야 했나. 생각하며 메뉴판 첫 장을 넘기던 지민은 문득 이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나 지금 스폰하러 온 건데…? 메뉴판 대신 남자를 흘끔흘끔 보았다.


 이 사람은 아닌 거 같다. 돈으로 연예인을 불러서 스폰을 하는, 그런 부류로는. 아직 사람을 많이 겪어보지 못해 보이는 대로 믿는 지민은 겉모습과 분위기로 쉽게 판단했다. 젊고 멋지게 생겼는데 굳이 나 같은 남자 아이돌을 돈으로…? 게다가 대기업의 임원이라면 나이도 많을 텐데. 혹시 비서 그런 건가?


 가만 떠올려보니 사장님도 전화를 비서가 걸었다고 했다. 또 자기가 스폰 해줄 아이돌의 나이조차 모르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을 마친 지민은 남자가 스폰 상대가 아니라고 확신을 지었다. 눈을 도르륵 굴리며 눈치를 보던 지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그분은 언제 오세요?”

“…그분?”

“절 보고 싶다고 하신….”



 뭐라고 하지? 스폰서? 너무 직접적인 거 같다. 당신의 상사. 이렇게 말하면 버릇 없는 거 같기도 하다. 긴장한 상태에서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한 지민이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주, 주인님…?”

“…….”

…아니, 그, 투자 해주시는 분이요.”



 창피함에 하얀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기상천외한 호칭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지민을 가만 바라보았다. 지민이 혀끝을 씹었다. 차라리 주인공이라고 할걸. 민망해진 공기에 지민이 부랴부랴 말했다.



“저희 사장님한테 전화해주신 비서 분 아니신…가요? 사장님이 비서 분이 약속을 잡았다고 하셨어서요.”

“…….”

“저는 어, 무척 능력 있게 보이셔서….”



 말꼬리는 줄어들다 아예 삭제됐다. 어색한 침묵이 공포로 바뀌려는 순간, 남자가 헛웃음을 치며 작게 픽 웃었다. 어이없다는 듯, 또는 재미있다는 듯. 그리고는 메뉴판에서 손을 떼고는 턱을 작게 긁적였다. 음.



“소개를 안 한지 오래돼서 명함이 없네요.”



 잠시 고민하던 그는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해 지민의 앞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지민이 어리둥절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포털 사이트에 인물정보와 프로필 이미지가 떠있었다.


 민윤기. 기업인. 송영바이오 총괄부사장. 가족관계. 송영회장 아들.


 지민이 어벙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화면에 박힌 이미지와 눈앞의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똑같이 생긴, 아니 실물이 더 잘생긴 남자가 그대로 앞에 앉아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통통한 지민의 입술이 점점 넋이 빠진 것처럼 벌어진다.



“호칭은 주인님 말고 부사장님이라 불러요.”



 저음으로 던지는 윤기의 가벼운 인사에 지민이 쩡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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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지민이 윤기가 다마고치하는 내용입니다...ㅋㅋ
슈짐온을 목표로 완결내려는데...빨리빨리 써볼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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