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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Two Feet - I Feel Like I'm Drowning>










 지민은 어거스트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루 종일 뷔와 게임만 했다. 이런 식으로 일하고 월급 받으면 모노폴리에서 감옥에 갇힌 횟수만큼 현실에서 감옥에 끌려갈지 모른다. 차라리 사무실에서 편지대필이나 할걸. 지민은 쿡쿡 쑤셔오는 양심을 다독였다. 내일부터 야근하면 되지. 앞으로는 쭉 야근이야. 계획을 짜던 지민은 문득 격렬한 허탈감을 느꼈다. 내가 왜 이렇게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게 됐지…. 그럼에도 누군가가 밉지 않은 걸보면 계속해서 이 노릇을 할 모양이다.



“다녀왔어요….”



 응? 진과 레이첼의 책상이 깨끗했다. 이쯤이면 늘 서류나 사진이 난장판으로 어질러있기 마련인데. 당황하여 폰을 확인하니 10분전 도착한 메시지가 있다. 지민, 우리 먼저 퇴근해요.



“어, 그럼….”



 지민은 다소 급한 눈으로 집무실의 전등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켜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망설이는 일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계세요?”



 카우치에 누워있던 윤기가 느리게 몸을 일으킨다. 짜증이 가득 담긴 눈은 지민을 발견하자마자 날카로운 빛을 집어넣었다. 윤기가 흘리듯 무신경한 목소리로 타박했다.



“가라고 말도 안 했는데 거긴 왜 가.”

“퇴근 안 하셨네요.”



 냉큼 불리한 상황은 모르는 척하며 지민이 카우치 반대쪽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사무실이 비어서 가셨을 줄 알았어요. 윤기는 못마땅하게 혀를 한번 차고는 다리를 꼬았다. 아주 불쾌해, 눈으로는 그런 말을 쏘면서도 그는 비꼬는 대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받아.”

“이게 뭐예요?”

“내 집 열쇠.”

“어! 그럼 이제 제가 옷이랑 서류 가져다 놓는 거예요?”



 순식간에 확 밝아진 얼굴로 지민이 일거리를 환영했다. 사표를 한번 제출했더니 생각을 고쳐먹었나 보다. 열쇠 새 걸로 바꾸셨나 봐요. 은색의 열쇠를 이리저리 살펴가며 소중하게 품에 끌어안는 지민을 윤기는 잠시 말없이 지켜보았다. 눈꼬리를 접어가며 웃는 얼굴이 예뻐서 다음 폭탄을 던지기 전 감상시간을 좀 가졌다.



“집 바꿨어.”

“네? 갑자기요? 어디로요?”

“펜트하우스로.”

“그럼 가져다드리기 좀 더 편해지겠네요. 가까워졌으니까.”



 레이첼한테는 이제 제가 한다고 말씀드릴게요. 비서 노릇이 아예 몸에 밴 지민이 의심 없이 웃었다. 다른 일도 더 시켜주세요. 윤기가 말했다. 뭐 어쨌든.



“그렇게 매일 오는 것도 좋고.”

“…….”

“아예 짐 싸서 들어오면 더 좋고.”



 툭 던진 열쇠의 의미가 단순한 직업 있는 백수신세 탈출이 아니었던 거다. 지민은 차근차근 분석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이 살자는 거? 동거 신청? 지민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맨날 중간 과정이 없어요, 미스터 윤은?”

“이게 중간이야. 작정했으면 네 집 밀어버리고 납치했지.”

“…사표 내도 돼요?”

“백번 내봐. 받아주나.”

“진짜 못 됐다….”

“오 칭찬 고마워. 원래 사업가는 못돼먹을수록 성공하거든.”



 윤기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얄밉기 짝이 없었으나 지민은 으, 하고 열쇠만 만지작거렸다. 못 됐다, 진짜 못 됐다. 욕치고는 너무 순한 단어의 반복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거든요? 들은 척도 안 하는 윤기를 보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 어떤 생각이 팍 지민의 머릿속으로 치고 올라왔다. 지민이 외쳤다.



“그러고 보니 그거!”

“뭐.”

“그거 직접 한 거라면서요!”

“그게 뭔데. 알아듣게 말해.”

“런칭파티요. 그때 다 같이 피자집 갔을 때 갑자기 출장 만들고 진한테 막 술이랑…!”



 가만 생각해보면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숙취로 몇 달이나 준비한 출장을 못 간다는 게. 어거스트의 비서라면 약이라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고 갔을 거다. 하물며 오너가 다녀간 자리에서 떡이 되도록 마실 만큼 진이 미친 사람도 아니었다. 찌릿 눈을 가늘게 뜨고 윤기를 노려보았다.



“일부러 그러신 거죠?”

“기억 안 나는데.”

“모르는 척 하지 마요. 모르는 척 한다고 맨날 말했으면서.”

“그랬어?”



 윤기는 런칭파티, 런칭파티 되새겨보더니 곧 차분한 어조로 아아, 했다. 그때 그거?



“여태 몰랐어?"



 보기보다 많이 순진하네. 악당 같은 대사를 날린 윤기는 아무 일도 아닌 양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네. 그런 일이 있었지. 눈치가 느려? 여태 몰랐냐고? 지민이 어이없다는 듯 와, 하며 반박했다. 어디 한번 잘 말했다.



“너무 뻔뻔하신 거 아니에요? 대체 왜 그러셨어요?”

“취조하는 거야? 그건 아직 판사 앞에서도 안 당해봤는데.”

“진짜 나쁘다.”

“왜? 친절하게 다 대답해주고 있는데.”

“그때 엄청 힘들었다구요. 어떻게 하루 만에 그걸 다 외우라고 하고, 막 이만한 걸…!”



 백과사전만한 두께의 초대손님 책을 그리며 지민이 분개했다.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갑자기 바꾸시면 너무 당황스럽다구요. 또 그런 큰 자리는 저는 처음인데, 그래서 그때 그렇게 실수했잖아요. 윤기는 어떤 리액션도 없이 듣다가 딱 한 마디로 맞장구쳐줬다. 입도 못 떼게 노려보던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고생했네.”

“설마 할 말이 그게 전부는 아니죠?”

“뭐가 더 필요한데.”



 너를 어쩜 좋니. 아니 그냥 포기하자. 지민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감이지만. 윤기는 평이한 어조로 대화를 추가했다.



“어떻게 보상해줄 수는 없는데 다시 돌아가도 그럴 거야.”

“…….”

“덕분에 너랑 이러고 있잖아.”

“…….”

“너랑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뭐든 할 거야.”



 윤기는 숨길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지민은 납득했다. 눈앞의 사람에 홀렸다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맞긴 하지. 가서 고생도 했지…그런데 민윤기가 도와주기도 했고…안 갔으면 이렇게 같이 마주 앉아있는 일은 없었겠지. 또 넘어가고 말았다. 지민은 결국 잔기침을 내뱉으며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하고 소득 없는 심문을 마쳤다.



“그런데 언제 퇴근하실 거예요?”

“이미 했는데.”

“…네?”

“하고 너 만나잖아. 기다리고 있던 거야.”



 그 말까지 듣고는 더 이상 지민도 일만 논할 수 없었다. 지민은 다소 쑥스럽게 목을 긁적거렸다.



“그러면…그럼 어디 다른 곳 갈까요?”

“어디.”



 그러게. 어디가 좋을까. 아직 아침처럼 도시 불빛이 환한 맨해튼 거리는 갈 곳이야 많았다. 나가서 밥을 같이 먹어도 좋을 테고, 사람 붐비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한 편 봐도 좋을 테고. 정국과 갔던 것처럼 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거다. 음 민윤기는 사람 많은 곳이나 그런 건 별로라고 할 테니까. 뭐가 좋지. 윤기는 애써 의견을 내지 않았고, 지민이 고심하며 고민에 잠기니 집무실은 금방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다.



“…….”

“…….”



 집무실 불이 꺼져있다면 정말 서운할 뻔했다. 눈만 깜빡거리며 서로를 바라본다.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를 꾸역꾸역 뚫고 지민이 말했다.



“아니면.”

“…….”

“다른 하고 싶은 거….”



 지금 순간 하고 싶은 거. 몇 번가의 파스타집 위치정보는 자연스럽게 지민의 머릿속에서 삭제됐다. 누군가의 목울대가 꿀렁 울렸다.


 누가 먼저라 잴 수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전투적으로 달려든 윤기가 휙 볼을 잡아 입술을 붙이고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지민도 마찬가지로 팔을 두르고 윤기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헤집었다. 들고 있던 열쇠가 짤랑거리며 집무실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성욕과 식욕은 비슷하다고. 살을 비비고 숨을 탐하는 행위의 전초전만 겪었을 뿐인데도 지민은 서로를 잡아먹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밀리고 밀려 카우치에 등이 닿은 지민이 움찔 떨었다. 윤기가 입술을 떼고 지민을 잠시 바라보았다. 어떤 색안경을 낀 기자가 까칠하고 차갑고 무관심한 남자라는 평을 씌워놓았더라. 지민은 긴장감을 못 참고 입술을 혀로 쓸었다. 윤기의 시선이 따라간다. 대화가 없어도 다음 순간 어떤 상황이 찾아올지 그 자리에 선 두 사람 모두 예감할 수 있었다.


 윤기가 지민이 입고 있던 재킷을 훽 벗겨냈다. 셔츠 단추를 끄르며 목에 자국을 남겼다. 지민 역시 지지않고 윤기의 옷을 벗겨냈다. 잘 풀리지 않는 셔츠 단추에 지민이 애를 먹고 있는 동안, 윤기는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헉, 놀라 숨을 삼키고 굳어버렸다. 곧 윤기가 달래듯 또 입술을 찾아 물고 쪽쪽거린다. 파르르 눈꺼풀이 떨린다. 지민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민윤기랑, 이대로…잠깐, 이대로?



“미, 미, 미스터 윤!”

“…싫어?”

“그게 아니라 여기는, 여기는 좀 그렇지 않아요!?”



 지민은 부랴부랴 합리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아니 오히려 더 솔직하게 싫기는커녕 다시 둘만의 세상에 빠져들고 싶은 쪽이다. 저도 정말 분위기 깨기 싫은데요. 진짜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객관적으로 상황이 그랬다. 씨씨티비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으며, 카우치는 넓긴 해도 성인 남성 두 명을 받쳐줄 크기가 되지 못했다. 하물며 잠금장치를 걸어놓지 않은 문은 누구라도 열고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이 늦은 시간 회장의 개인집무실을 벌컥 열 정신 나간 사원은 없을 테지만, 정사를 치루기 위한 장소로는 너무도 부적합했다.



“우리 앞으로 시간은 많이 있잖아요?”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주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잠시만 진정을 해보시고…. 바닷가 수상안전요원같은 멘트를 날리며 지민이 진정하라는 뜻으로 윤기의 가슴을 톡톡 노크하듯 두들겼다. 카우치 위 겹쳐 누워진 자세로는 썩 설득력이 없는 몸짓이었지만, 윤기는 순순히 손을 빼주고 기울였던 상체를 폈다. 지민은 민망함에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 풀린 단추를 꼬물꼬물 채웠다. 짧은 사이에 많이도 풀려있었다.



“나갈까요?”

“…어.”



 윤기는 대답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새로 옮긴 펜트하우스와 어거스트 타워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 거리는 괜찮다. 내일의 스케줄이 문제였다. 하필 뺄 수 없는 주주총회가 잡혀있었다. 아무리 스케줄을 밥 먹듯 빼고 미루는 윤기라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영역이었다.


 두 가지의 생각이 윤기의 머리에 떠다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렇다. 고작 하룻밤 따위가 뭐라고 스케줄을 변경해. 그러나 곧장 좋게 말해서는 감상적으로, 다르게 말해서는 비합리적으로 바로 그렇게 흘러가듯 보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욕구가 치솟아 오른다. 윤기는 생각을 포기했다. 이제는 모든 합리적인 생각에 오류가 발생하면 그 아래에 한 줄만 더 적으면 된다. 그러면 오류는 자연스럽게 용납될 수 있다. 원인, 박지민.



“근데요.”



 마찬가지로 고민에 잠겨있던 지민이 말을 걸어왔다.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윤기는 생각을 끊었다. 뭐.



“키스는 괜찮지 않아요?”

“…….”

“그건 침대가 필요 없으니까….”



 부끄러워하면서도 솔직했다.



“좀 아쉽지 않아요? 아니에요?”

“…….”

“전 아쉬운데….”



 왜 또 말이 없대. 민망해진 지민은 아니면 나가도 돼요,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을 한 차례 깜빡이는 순간. 작은 손을 잡아채 붙잡고 돌린 윤기와 지민의 입술이 맞닿아있었다. 다시금 카우치에 등이 부딪힌다. 지민은 윤기의 목을 끌어안았다. 키스는 달콤했다. 부딪히고 섞이고, 또 쪽쪽거리며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지민은 스치듯 생각했다. 이런 게 사랑인가? 흔히 영화에서 보는 죽고 못사는 커플의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하더라. 막연한 로맨스의 판타지를 가질 때는 그 사람 주변에 빛이 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냥 홀린 듯 닿고 싶고, 닿으면 정신이 아찔해지고. 모르겠다. 민윤기도 사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고, 자신도 사랑이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는데. 그저 지금 순간이 좋았다.


 너무 좋았다.







***







 레이첼은 최근 직장생활에 평점을 부여한다면 10점 중 8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부여했다. 근래 악명이 파다하게 퍼진 상사가 유순해졌다는 게 이유다. 마음에 품은 누군가와의 연애사업이 순풍을 타면서 어거스트 사무실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너른 마음으로 하루아침 부하직원을 배려해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멋대로인 상사가 출근길 단순한 변덕으로 그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겠다는 발언을 자제하는 수준이다. 일거리 역시 퇴근을 해도 부여잡고 있어야 할 만큼 많긴 해도 레이첼은 딱 지금만 같으면 윤택한 비서생활을 누리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유난히 완벽한 하루였다. 정시퇴근을 했고, 진과 먹은 쌀국수도 괜찮았다. 오늘도 어제만 같으면 좋으련만. 화장을 마친 레이첼은 커피가 담긴 컵을 가져와 여유로운 손짓으로 태블릿을 켰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은 무서운 조회수를 자랑하는 기사 하나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어거스트 대표의 은밀한 만남 포착



 싸구려 삼류가십지에 어울리는 제목을 단 기사였다. 레이첼은 지난번처럼 신도 찾을 수 없었다. 신은 죽었다. 존재한다면 이런 기사를 허락할 수 없다. 어둑어둑한 강가 근처의 두 사람이 찍힌 대표사진부터 가관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붙이고 있고,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고. 밖에서 이런 형편없는 짓거리를 저질렀을 리가. 레이첼은 분노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불행히도 매일 얼굴을 보는 두 사람이 맞았다.


 기사는 여러장의 사진을 담고있었다. 가지각색이었다. 마트에서 같이 장을 보는 사진, 레스토랑에서 웃으면서 밥을 먹는 사진, 마지막으로 대표사진으로 선정된 브루클린 브릿지 근처의 사진. 그중 역시 제일 가관은 운전석에 앉아있는 윤기와 허리를 숙인 지민의 입술이 닿기 전 사진이었다.


 지난 번 기사를 낸 곳은 이미 제 손으로 직접 정리했는데 대체 어떻게? 기사를 확인하니 다른 소형 언론사다. 레이첼은 기가 막혔다. 그런 별거 아닌 기사에도 힘을 쓸 만큼, 어거스트가 날을 세우고 예민하게 대처한다는 건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을 터였다. 소식 하나하나에 민감한 어지간한 언론사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그 협박을 알아차렸을 거고. 그럼에도 건드린다는 건 그런 의미다. 뒤에 업고 있는 배경이 대단하니 둘 중 하나는 죽자는 의미.


 레이첼은 차분하게 치솟는 불길을 다스리며 기사를 읽었다.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욕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애틋하고 행복한 연인으로 묘사해놓은 기사는 모든 게 쓰레기 같았지만 마지막 줄이 그중 가장 으뜸이었다.



「그는 현재 어거스트에서 비서로 근무 중이다.」



 레이첼은 태블릿을 거칠게 끄고 가방에 쑤셔 박았다. 일반인의 얼굴을 대놓고 다 까발린 건 물론이고, 신상까지 다 공개하는 언론사라니. 아주 작정을 했다. 킬힐을 신고 전화를 걸었다. 한시가 급하다.



“진, 당장 회사로 와줘요.”



 재앙이 일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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