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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Perez Prado- The Peanut Vendor>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드림을 가지고 빌딩을 쌓아 올린 곳. 하늘보다 높은 꿈을 꾸며 지은 건물들은 어느 샌가 세상의 중심이 됐다. 빌딩숲 사이를 돌아가는 노란 택시를 타고 중심부에 내린 지민은 식당에 앉아 정국을 기다렸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친절한 종업원의 안내가 오늘따라 더 상큼하게 들린다. 지민은 정중히 일행이 있다 거절한 뒤 폰을 두들겼다. 민윤기 회장님. 저장한 이름위로 액정을 뿌듯하게 문질렀다.



"이 번호가 회장님 번호겠지."



 흐흐, 지민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헤죽헤죽 웃었다. 혼자 앉아 히죽거리는 폼이 남들의 눈에 보기 좋을 리 없어, 급히 입꼬리를 내리 눌렀지만 솟는 광대까지는 내리지 못했다. 아 어떡하지. 나 진짜 취업했어. 내 상사가 어거스트의 대표라니. 땅거지에서 황제의 신하로 특급승진한 격이다.

 입을 헤 벌리고 지민은 망상에 빠져들었다. 찬란한 황금빛 미래. 번듯한 직장, 안정된 소속감, 보장된 휴가기간. 더는 집세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지 않아도 되고, 비싼 국제통화료에 벌벌 떨며 한국에 있는 가족과 전화하지 않아도 되고, 좋아하는 펍의 가수에게 팁을 줄 때마다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상상 속에서 지민은 황금색으로 깔린 카펫 위에 발을 디뎠다. 그 옆으로 황금빛 폭죽이 팡팡 터진다. 아아 행복한 인생.



"형 입에 파리 들어가겠어요."



 헙 입을 닫으며 지민이 민망해 뒷목을 작게 긁었다. 왔어? 황금빛 망상에 빠져있느라 정국이 식탁 맞은편에 앉은 지도 몰랐다. 문자 한 통을 받고 급하게 뛰어온 정국은 물부터 들이켰다. 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들려있었다. 다른 불합격 때처럼 세상의 끝에 다다를 기세로 마실 줄 알고 미리 사온 술들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갑자기 합격이라니?"

"그게 말이지, 어쩌다 보니 음…내가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는 판단이 들었나 봐. 나중에 전화가 왔어. 출근하래."



 지민은 적당히 말을 조절했다. 알고 보니 내가 맞먹으려고 든 사람이 직장상사더라고. 그래서 면접장에 발 들이밀기도 전에 짤릴 뻔 했는데, 그 직장상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간신히 붙여줬어. 이런 한심한 종류의 사건은 구태여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국은 술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거스트 같은 회사에서도 신입 뽑는데 실수 같은 거 하나 보네요."

"하하 그러게. 일단 시킬까? 여기 주문할게요! 뭐 먹을래?"

"형 먹고 싶은 거 시켜요."

"내가 취업 기념으로 사는 건데 네가 먹고 싶은 거 시켜. 오늘만큼은 내 지갑 네 거 해도 돼."



 지민이 에헴, 하며 으스댔다. 진짜요? 그럼 막 시켜도 된다 이거죠? 정국이 작정한 듯 메뉴판을 맹렬한 기세로 뒤적거렸다. 메뉴판 메뉴를 전부 달라할 기세라, 물론이라며 기를 피던 지민이 한 소리 했다. 야 근데 이거 시키면 다 먹어야 된다. 사뭇 긴장한 눈의 지민에 풋 웃은 정국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와 스테이크 두 덩이를 시키는 것으로 양보했다.



"신기하단 말이야. 이렇게 많이 먹는데 넌 왜 살이 안 찌지."

"운동해요, 형도."

"아우 됐어. 안 그래도 힘든데 몸을 힘들게 해서 뭐해."



 지민이 질색하며 도리질을 쳤다. 책상에 앉아서 숨쉬기 운동하는 걸로 족해. 답하며 지민은 부럽다는 듯 정국의 어깨를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잔근육이 붙은 어깨는 뭇 여성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의 몸이었다. 지민은 정국을 볼 때마다 신이 불공평하다 느꼈다. 높은 아이큐에, 창의력에, 살도 안 찌는 몸에. 운동을 조금만 해도 근육이 훅훅 붙는단다. 심지어 얼굴도 빠지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정국은 잘생긴 동양인으로 유명했다. 자신은 그 잘생긴 동양인 옆에 따라다니는 엑스트라로 유명했고.



"형 그럼 이제 이사가요?"

"응?"

"어거스트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쪽에 있잖아요."

"어…그, 그렇지…연구소는 거기 있지."



 정국은 당연히 지민이 연구소 쪽으로 취업했다 생각하고 있다. 그게 말이야, 정국아. 지민이 말을 고르며 손가락으로 식탁을 톡톡 두들겼다.



"사실 있지…."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절묘하게 웨이트리스가 중간에 등장했다. 알고 보니까 뭐요? 정국이 물었지만, 지민은 아무래도 밥을 다 먹은 다음 말하는 게 좋다 판단했다. 밥부터 먹자. 네 얘기 먼저 해봐. 배고파 죽겠다. 파스타를 포크에 감으며 지민이 말을 돌렸다. 정국은 지민을 빤히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의심 없이 넘어갔다. 이미 뉴욕에서 지민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걸 훤히 알고 있었다. 정국이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아 하고는 입을 뗐다.



"거기 어거스트 최근에 취임한 대표 말이에요."



 풉! 지민은 먹던 파스타를 뿜을 뻔했다. 사실은 전정국이 독심술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형 애기도 아니고 왜 질질 흘려요. 놀리듯 웃으며 정국이 넵킨을 뽑아 건넸다. 입을 추스리며 지민은 괜찮다는 표시로 정국의 손을 두드렸다. 응, 그래서, 그 대표가 뭐.



"형이 어거스트에서 일한다고 해서 제가 좀 알아봤거든요. 연구소 쪽은 워낙 멀어서 소식이 안 모이는데, 여기 본사 쪽은 일하는 선배가 한 명 있더라구요."

"본사면 저기 있는 거?"



 지민이 창밖에 꼭다리만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민윤기 성격처럼 뾰족한 끝을 가진 빌딩은 어거스트의 건물이었다. 정국이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곧 이직할거라면서 알려줬어요. 듣기로는 언론에 나오는 거보다 성격이 더 더럽다고 하더라구요. 완벽주의자에다가 어찌나 부려먹는지. 선배도 한번 까였대요. 정말 내가 이 지구상의 마지막 쓰레기구나 싶을 정도로 독하게 사람 깐다던데. 선배는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대요."

"지구상 마지막 쓰레기…."



 지민이 중얼거렸다. 지구상 마지막 쓰레기. 오늘 십분 만에 그 기분을 조금 맛본 거 같긴 했다.



"뭐 근데 그 방법에도 항의할 순 없는 건 그만큼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 있을 법도 한데 다 쥐 죽은 듯 따른대요."

"그래…?"



 지민도 얼핏 듣긴 했다. 고작 스물여섯 나이에 취임해, 꼭두각시로 윤기를 내세우고 회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을 다 박살낸 전적은 유명했다. 무수히 많은 열애설을 뿌리고, 건방진 행동이 언론을 타도 매장당하지 않는 건 다 그 출중한 능력 덕이었다.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베스트 기업인 1위. 청년층 선호 롤모델 1위. 뉴욕에서 가장 부러운 남자 1위. 각종 잡지타이틀을 거머쥐고, 무서운 판단력과 실행력으로 어거스트의 주가에 날개를 달아준 그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거스트의 신임대표가 타고난 기업가라는 건, 상류층에 관심이 없는 지민의 귀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래도 성격이 얼마나 나쁘면 사람이 거의 다 일주일도 못 가서 일을 그만둘까요? 선배가 말도 말라면서 두 달에만 비서가 열명이 바뀌었대요."

"……."

"지금 새로운 사업 확장한다면서 일 바빠져서 한 명 더 구하는 거라던데, 선배 예상으론 아마 뼈만 남을 때까지 일 시킬 거라는데. 아 이게 너무 웃긴 거예요. 다들 하겠다고 달려드는데 막상 체험해보니까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기어 나온다는 게."



 정국이 코미디 프로를 시청하듯 낄낄 웃었다. 파스타 면을 감는 지민의 포크질이 느려졌다. 하하 그렇구나…안됐네, 그 사람 참. 맞장구를 치면서 속으로 지민은 불안에 떨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맛보기 체험했잖아? 왜 또 쫄고 그래. 뭐 시켜봤자 얼마나 시키겠어. 아무리 그래도 사람 아니야. 사람이 이해 가능한 선에서 시키겠지. 정국은 그치지 않고 들어온 소식들을 풀어놨다.



"도무지 그 신임대표 생각이 뭔지 모르겠어요. 이름이 뭐더라. 입양 할 때 성도 안 바꿨다면서요. 민…민…아 뭐더라."

"민윤기…."

"아 맞아요. 그 이름. 형 면접 본다고 공부 열심히 했네요. 그 사람이 이번에 손대는 게 영화사업부분이잖아요. 전대표는 어거스트는 문화사업에 관심 없더니 왜 쓸데없는 밥그릇까지 건드리는 건지…이상해요. 그렇게 경영천재소리 듣는 사람이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게 최근에 유명하긴 했지."



 어거스트가 영화 쪽 사업을 건드린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언급됐다. 언론사 또한 운영하긴 했지만, 어거스트의 중점은 금융사업에 있었다. 새로운 사업으로 뛰어드는 행동은 마이너스적인 요점이 더 컸다. 그것도 취임이 5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선. 더러는 민윤기 회장의 자질을 의심하며 오점이라 기록될 것이라 욕했고, 더러는 뜻이 있을 거라 외치며 윤기를 지지했다. 아 그래서 비서를 한 명 더 뽑은 건가. 그쪽 일 시키려고. 퍼즐이 천천히 짜맞춰진다. 나 근데 영화는 하나도 모르는데. 철저한 공부벌레 지민은 가증되는 불안감에 파스타가 목구멍에서 막히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형이 연구소로 가는 건 참 다행이에요. 새로 사업 들어가는 거면 뻔하잖아요. 작정하고 일 시키겠다는 거. 분명 개처럼 구를 거예요. 내가 볼 때 그 사람은 좀 미친 사람 같아요. 머리색도 그러고 다니고, 회사 대표인데 남의 눈치 따위 전혀 신경 안 쓰고. 옛말로 따지면 그거 아닌가. 폭군. 그렇지 않아요?"

"그런가…."



 하하 개처럼 구르겠지. 내 첫 직장이. 뼈만 남도록. 생각하며 지민은 면을 말던 포크를 내려놨다. 식욕이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어, 형 더 안 먹어요? 그럼 제가 먹을래요. 정국이 파스타 접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간다. 신나게 정국이 파스타 면을 포크로 돌돌 말 때, 지민은 머뭇거리다 조금은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국아. 아까 말하려다 만 거 말인데."

"네."

"내가 그 사람 밑에서 일해."

"네?"



 정국이 입 가까이 포크를 가져오던 자세로 정지했다. 눈까지 크게 확장된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동그랗게 열리니 놀란 토끼를 연상케 했다. 지민이 어거스트 건물이 보이는 창문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나 저기서 일해. 비서로.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거든."

"……."

"그러니까…민윤기 회장님 밑에서."



 두달만에 열명이 나간거면 내가 열한번째인가. 정국의 포크에서 면발이 접시로 후드득 미끄러진다. 지민이 작은 억지미소를 걸치고 열심히 반론을 시작했다. 어쨌든 현재 윤기는 자신을 백수의 위기에서 탈출 시켜준 은인이었다.



"내가 오늘 면접 봤으니까 아는데, 꽤 괜찮은 사람이야. 많은 대화는 못했지만 자기 일에 열정도 있고. 그 정도 되는 사람 아니면 누가 그 나이에 그렇게 큰 회사를 감당할 수 있겠어. 아 그리고 배울 점이 많아 보이던걸?"



 날카로운 판단력이나 말 잘하는 법이나 그런…정국이 너도 알잖아. 내가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라는 거. 지민이 말을 하면 할수록 정국은 놀란 얼굴에서 석연치 않다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십분 만에 그걸 어떻게 형이 다 알아요?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뜨끔한 지민은 말문이 막혔다가 어물쩡 말꼬리를 잘라 넘겼다.



"아무튼,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야. 언론들 원래 좀 과장해서 내보내잖아."

"…글쎄요."



 정국이 머리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불신했다. 그사람 딱 봐도 성격 좋아보이는 사람은 아닌데.



"야 넌 내가 말하면 좀 믿어라. 어? 전정국 너 이젠 형 말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됐어."

"일주일 동안 다니고 나서 그사람에 대해 지금이랑 똑같이 말하면 믿어줄게요. 얼마나 일하는 거예요?"

"글쎄…가면 알겠지."

"계약서에 도장도 안 찍었어요? 나참. 아 근데 난 좀 반댄데. 형이 그거 하면…."



 정국은 못마땅했다. 박지민은 착했다. 착하고, 유순하며 감성이 풍부하다. 이름난 폭군인 민윤기 아래로 들어간다면 필시 며칠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버티는 동안 사람이 너덜너덜해지거나. 뭐, 내가 뭐. 지민은 발끈하자 정국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에요. 지민은 정국을 째릿 노려보다 양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두고 봐. 꼭 난 성공할거야."



 내 첫 직장을 위하여. 의욕으로 불타는 지민을 보던 정국은 안타깝다는 듯 봉투를 내려다봤다. 형, 그럼 이건 필요 없겠네요. 취업했으니까.



"아 맞다. 내일은 첫 출근이니까 마시기 좀 그렇네. 냉장고에 넣어놓을 테니까 다음에 같이 먹자."



 지민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여기 계산이요. 흔쾌하게 카드를 긁은 지민은 밥을 대충 먹어도 배가 불렀다. 행복으로. 황금빛 미래로.

 

그리고 정확히 하루 만에, 지민은 정국에게 술을 받아온 과거를 칭찬했다. 딱, 덜도 더도 말고 하루 만에 술이 필요했다.









***









 지민은 잠자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잠은 어렸을 적부터 대학 때까지 늘 부족했다. 머리가 컸을 때부턴 고모할머니를 조를 수 없어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돌았고, 대학교 때는 주중에 공부, 주말에도 공부, 그리고 휴일은 화상통화로 영어교육 아르바이트에 모든 걸 투자했다. 백수가 되면서부터 잠에 나름 관대해졌지만, 첫 출근 날은 처음이니만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도록 알람을 설정해두었다. 잘 보여야지. 첫 직장이니까. 뿌듯한 얼굴로 다짐하며 6시 반으로 시계바늘을 감았다.

 그러나 이불에 파묻혀 새근새근 자고 있는 지민을 흔든 것은 알람이 아니었다. 가열차게 울어대는 폰이었다.



"아으…."



 지민은 막 태어난 새끼강아지처럼 반쯤 뜬 눈으로 끙끙거렸다. 아침부터 누가 대체. 허우적거리며 이불을 헤집다 커튼 사이를 발견하고선 말을 정정했다. 해도 안 뜬 새벽부터 누가 대체…? 한쪽 눈은 감은 채 찡그린 지민이 주섬주섬 알람 옆에 놓은 폰을 들었다. 잠긴 목소리는 좀비마냥 쩍쩍 갈라져 나왔다.



"여보세요…."

[지민, 미스터 윤이 기획팀이 준비한 내년 상반기 일정을 전부 취소시켰어요. 긴급회의가 잡혔어요. 눈 떴으면 전화 녹음해요. 받아 적을 시간도 없으니까.]

"노, 녹음이요…?"



 네, 빨리요.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한 지민은 버벅거리며 녹음버튼을 눌렀다. 잠이 덜 깬 지민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였다. 레이첼은 그 시간마저도 아깝다는 듯 와르르 폭포처럼 주문을 쏟아냈다.



[오면서 스타벅스 들려서 라떼 한잔이랑 아메리카노 한잔 사오세요. 라떼는 에스프레소샷 더블로 추가하고, 아메리카노는 시럽 넣어서요. 그렇다고 절대 달면 안돼요. 달면 그날 하루는 망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커피는 절대 뜨거워야 해요. 아시겠죠? 가판대에서 파는 일간지 사오고. 워스트리트저널은 꼭 포함해서 세 종류 이상이어야만 해요. 가십지는 일면에 회장님이 있으면 사오고, 없으면 빼시고요. 다 사면 약국에 들러서 아스피린도 챙기세요. 제 생각에 오늘 회의가 반드시 좋게 끝나지 않을 거 같거든요. 한바탕 소리를 높이고 나시면 예민해지셔서 두통을 호소하시니까 필요할 거예요. 아 이건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할게요. 커피는, 꼭 뜨겁게. 맡길게요, 지민.]



 순식간에 전화가 끊겼다. 멍청히 서서 듣던 지민은 띠띠 끊긴 기계음을 내뱉는 폰을 얼빠진 채 내려보기만 했다. 레이첼이 이렇게 말이 빠른 사람이었나…. 어제 저녁 자세한 사항을 전화로 알려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지금 대체 몇 시인데 이런 전화를 하는 거야. 새벽과 아침 사이에 걸친 창밖을 내다보고 울리지 않은 자명종을 확인했다. 고장이라도 났는지 의심이 갔다. 자명종 안에 적힌 시간을 본 지민이 이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6시 10분…?"



 스물스물 어제 느낀 불안감이 발목을 감아왔다. 두 달 만에 그만둔 비서가 열명. 아, 아니야, 난 달라. 난 할 수 있어. 불안감을 떨치듯 머리를 좌우로 턴 지민은 황급히 출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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