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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럭키 스트라이크 14

by 토페 posted Apr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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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한설희-Sunny Day, Rainy Love>













 지민은 금방 기력을 회복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싶더니 달동네 노인정 사랑을 독차지하는 애교 가득한 박지민으로 돌아왔다. 축제에서 있던 일은 말하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며 지민을 걱정하기만 하던 노인들도 원래대로 회복한 지민을 보고 화색을 띄웠다.


 정국이 도맡아하던 집안일도 분업이 이루어졌다. 가스불도 못 찾고 옷을 빨랫줄에 널어놓는 것도 못하던 지민은 이제는 나름 곧잘 집안일을 해나갔다. 청소를 하니 정국을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은 덜 지루했다. 원래 살던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새삼 대단했다. 어떻게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걸 뚝딱뚝딱했단 말이야.


 노인들의 집에 찾아가 음식을 하는 방법도 배웠다. 다만 요리실력은 원체 늘지를 않아 냄비를 태워 먹을 뻔하다 기겁한 정국이 달려와 물을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정국은 주방 출입 금지라 엄포를 놓았고 즉석밥 해동까지가 지민이 손댈 수 있는 영역이었다.



“너 아파?”



 지민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정국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요? 아파 보여요?”

“어. 얼굴 빨개.”

“또 그러나 보죠.”



 열꽃이 핀 것처럼 볼이 붉은 얼굴은 아무리 의학지식이 부족한 지민이 봐도 아픈 사람 행색이었다. 심지어 입술은 창백하다. 이상하네. 종종 정국이 얼굴이 빨개진다는 건 안다. 그래도 다른 때는 저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는데. 한겨울 길거리를 최소 한 시간은 쏘다닌 색이다.



“다른 때보다 더 그런데?”

“괜찮아요. 그냥 피곤해서 그래요. 자게 불 꺼요.”



 지민은 의심스러웠지만 순순히 정국의 말을 따랐다. 다른 때처럼 정국의 옆자리에 파고들어 어설픈 작업을 걸었다.



“넌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왜, 박지민씨가 주게요?”

“너 또 나 무시한다?”

“무시하긴. 어디까지 가능한 거예요?”

“다 돼. 건물 같은 거? 미술관 괜찮겠다. 아, 차도 좋겠다! 아니, 차는 시시하지? 전용기? 이건 어때? 괜찮지 않아? 아무거나 말해봐.”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하는 선물 리스트를 듣던 정국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럼 지구도 되는 거냐, 태양도 되는 거냐 장난치며 묻자 지민이 무시한다며 바락바락거리고 옆구리를 주먹으로 꾹꾹 눌렀다. 어차피 맞아도 안 아프다. 정국은 킥킥 웃음을 유지하며 점점 눈꼬리를 샐쭉하게 올리는 지민을 보고 선심 쓰듯 말했다.



“원하는 대답 있으면 그거 해줄게요. 그거 말해요.”

“…너 진짜 아픈 거 아냐? 전정국 원래 이렇게 안 쉬운데. 엄청 튕기는데.”

“싫음 말고.”

“누가 싫대? 기다려봐.”



 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되기는 또 처음이다. 뭐부터 주지? 그림 좋아하니까 박물관 같은 거 줄까. 투자도 내가 해줘야지. 지민이 눈알을 데굴데굴 바쁘게 굴리며 고민하다 씨익 웃었다. 히죽 음흉하게 웃으며 페로몬을 진하게 피워냈다. 정국은 많이 익숙해진 그 미소에 설마, 했다.



“나 달라고 해봐.”

“뭐요?”

“내가 가진 거 중에 내가 제일 비싸. 나 줄게.”



 이미 줄 준비 되어있다며 눈을 맞춰오는 지민을 보고 정국은 큼, 헛기침을 했다. 눈을 슬쩍 천장으로 올려 피했다.



“그러네요. 예전에 알아봤는데 심장이 1억 오천이고, 신장이 2억 정도 하니까 대충 제일 비싸네요.”

“야 너는 지금 그걸 말…하, 전정국 눈치 심각하다.”



 퍽 맥없는 손으로 정국을 친 지민이 인상을 팍 구기며 등을 팩 돌렸다. 무슨 사람이 저렇게 왔다갔다해. 가끔씩 미묘한 눈빛들을 보내는 걸 보면 넘어오는 거 같기도 한데. 뭐 내 심장이랑 신장을 팔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지민은 후드를 팩 뒤집어쓰고 한 바퀴 더 굴러갔다. 베개에서 자지 못 한다 어쩐다 하더니 익숙해진 것인지 최근에는 막 굴러다니며 잘만 잤다. 지민을 놀리던 정국은 훽 돌아간 마른 등을 보고 지민이 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삐졌어요?”

“…….”

“말 없네. 진짜 삐졌어요? 아니면 그새 자요?”

“어! 삐졌어! 말 걸지 마! 잘 거니까! 말 걸면 죽어.”



 지민이 벽 끝까지 한 바퀴 더 굴러가니 손가락조차 등에 닿지 않는다. 정국은 내가 지금 삐졌으니 어떻게든 풀어주거라, 하고 시위하는 듯한 등을 보고 지민 모르게 작게 웃었다. 동그란 후드의 뒤통수마저 귀여워 보인다. 어차피 어쩐지 지민을 자발적으로 끌어안고 잔 날 다음부터 상황은 요상하게 돌아가, 정국 역시 지민이 없으면 잘 때 불편했다.



“아 박지민 가지고 싶다.”



 생각의 자극이 1이라면, 말은 5다. 정국은 제 입으로 말해놓고 보니 심장 소리가 너무 두근두근 뛰는 게 아닌가, 이러다 뽑히지 않을까 하는 허 없는 생각을 했다. 벽 구석에 처박혀있던 지민은 움찔하고는 펄떡 일어났다. 반동에 쓰고 있던 후드까지 젖혀졌다. 정국은 아무렇지 않은 척 제 옆자리를 손으로 탁탁 두드렸다.



“자게 이리와요.”



 지민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정국의 옆으로 몸을 뉘였다. 허리에 감아오는 팔을 보며 심장이 쿵쾅거리면서도 괘씸했다. 누가 봐도 가지고 노는 거다. 너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식으로 지민이 정국의 귓가에 입술이 닿을 듯 붙이고 소곤소곤거렸다.



“정국아 큰일 났어.”

“왜요.”



 후, 가벼운 입김이 먼저 귓불에 닿았다. 그때부터 정국의 머릿속에 위험감지 센서가 돌아갔다. 행동의 자극수치는 10보다 컸다.



“나 섰어.”



 정국이 소스라치게 놀라 뒤집어지듯 일어났다. 이불이 펄럭거리며 날아간다. 얼결에 밀려난 지민은 바닥으로 굴러가 이마를 찧었다.



“악!”



 지민은 욱신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정국을 눈으로 찾았다. 농담 한 번에 상처까지 얻었다. 정국은 지민이 요괴라도 되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저거 웃기네. 지민이 버럭 외쳤다.



“야! 너랑 나랑 힘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정국은 답이 없었다. 뭐야.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 지민이 일어나 다가갔다. 아까부터 붉은 기운이 보이던 얼굴색은 과장을 조금 보태 딸기처럼 새빨간 색이었다.



“정국아 괜찮…저, 정국아!”



 정국은 눈을 감고 지민에게 무너지듯 쓰러져버렸다. 무거운 몸을 들고 휘청거리던 지민이 뒤로 넘어졌다. 쿠당탕거리는 단칸방이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민은 엉덩이가 아픈지도 모르고 쓰러진 정국의 볼을 탁탁 쳤다.



“정국아! 왜이래! 야! 전정국!”



 눈을 감은 정국이 급기야 습한 숨까지 내쉰다. 지민은 순식간에 발밑으로 심장이 침몰하는 기분이었다. 패닉이 된 머릿속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잘생긴 얼굴만 양손으로 잡고 이름을 불렀다. 허둥지둥 지민이 거칠게 흔들자, 정국이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괜…찮, 하아….”

“구라치지 마! 괜찮긴 뭐가 괜찮아! 기, 기다려봐.”



 지민은 정국을 들고 끙끙거리며 이불로 옮겨와 눕혔다.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급했다. 멀쩡히 놀다 쓰러지니 당황스러움은 두 배였다. 어쩌지. 아픈 사람한테는 어떻게 하더라? 조금만 아파도 주치의가 달려왔던 지민은 어떤 것부터 손을 써야 하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주치의가 오면, 그러니까, 청진기를. 모르겠다. 빠른 포기를 택한 지민은 정국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잠깐만 있어!”



 정국아, 정국아 이름만 되풀이하며 지민은 가장 근처에 사는 윤씨 노인의 집으로 뛰어갔다. 울먹거리는 지민을 보고 놀란 윤씨는 헐레벌떡 지민을 따라왔다. 윤씨는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정국의 이마를 짚어보고 지민에게 물수건을 부탁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지민이 물어왔다.



“할머니 정국이 심각해? 어떻게 해?”

“병원 갈 정도는 아니여. 아마 아가 몸이 힘들어서 그런 거 가튼디…죽 좀 쑤고 먹이면 될 겨.”

“정말? 그럼 괜찮아? 많이 아파 보이는데. 얘가 진짜 픽! 쓰러졌어, 픽!”

“괜찮여. 보니까 숨소리도 편해지고 있고.”

“얼굴은 빨간데?”

“아 괜찮다니께. 아가 많이 놀랐네. 괜찮으니까 걱정 뚝! 내일 아침이면 씻은 듯이 나을겨.”



 윤씨는 몇 가지 조언을 추가했다. 물 찾으면 옆에서 따뜻한 물주고, 이불 덮어주고, 이마 위 수건 갈아주고. 지민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어떤 수업에서 들었던 것보다 섬세히 병간호를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윤씨는 마지막까지 정국 총각은 튼튼하니 걱정하지 말란 말을 남기고 나갔다. 지민은 정국의 곁에 앉아 열꽃이 핀 볼을 손등으로 쓰다듬었다.



“비실비실해서 이게 뭐야.”



 순 야채만 먹어서 그래. 앞으로는 일도 줄여. 내가 다 먹여 살려줄게. 지민은 윤씨가 했던 것처럼 대야에 수건을 넣고 착착 접어 정국의 이마 위로 올렸다. 이렇게 했던 거 같다. 짜지 않은 수건은 물이 축축하게 흘러내려 정국이 누운 베개까지 흘러내렸다.



“아프지 마….”



 차라리 내가 아프고 싶다. 오메가 페로몬이 살살 흘러나와 정국을 감싸안았다. 지민은 정국과 한 이불 안으로 들어가려다 아무래도 볼이 발간 정국이 더울 거 같아 벽 쪽을 선택했다. 새벽은 어김없이 지나간다. 밤을 새우다시피 한 지민이 잠에 빠져들었다.









 정국은 이마를 축축하게 적시며 눈까지 타고 내려오는 물에 눈을 떴다. 이마 위 엉성하게 올려져있는 물수건은 축축해 물이 뚝뚝 떨어진다. 웅크리듯 옆자리에 잠들어있는 지민을 보니 물수건을 누가 올려놨는지 짐작이 갔다. 한결 머리가 가볍다.



“하아….”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좁은 단칸방은 주변을 살필 필요도 없이 한눈에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벽에 붙어 새근거리고 있는 지민이 보인다. 걱정을 얼마나 한 것인지 쓰러진 건 정국인데, 지민의 옷이 식은땀에 젖어 축축하다.



“…….”



 정국은 잠든 지민의 곁으로 다시 다가가 누웠다. 어쩐지 달콤한 향이 더욱 잘 느껴진다. 은은하게 느껴지던 향이 이번에는 아예 복숭아를 갈라 그 사이에 코를 박고 있는 것만 같았다. 좋다. 향을 마신다. 정국은 지민을 꽉 끌어안고 아직은 뻐근한 몸 상태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미세하게 정국으로부터 흐른 알파 페로몬이 오메가 페로몬에 섞여들었다. 알파 페로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










 지민은 정국을 임산부 대하듯 지극정성을 다했다. 내가 할게! 너 아프면 안 되니까. 또 쓰러질 거야. 정국이 한사코 괜찮다 해도 노인정에서 바리바리 음식을 싸와 정국의 입에 밀어 넣었다. 무조건 많이 먹으라는 무식한 간호에 헛구역질을 한 번 하고나니, 지민은 사색이 되어 떨리는 손으로 정국을 끌어안았다. 고기가 아직도 부족 한가…? 돼지는 역지 별로지? 소고기가 좋겠어? 아니면 그래, 고래고기? 대답할 가치도 못 느낀 정국이 지민의 볼을 잡고 마구 늘리고서야 지민은 아픈 볼을 어루만지며 유난을 접었다.


 지민은 늘 그렇듯 정국 앞에서 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 갈아입었다. 정국이 식겁하며 하얀 몸을 두고 뒤돌았다. 정국의 목 부분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박지민씨는 그렇게 아무 데서나 옷 훌렁훌렁 벗어요?”

“이게 왜 아무 데서야. 집인데.”

“…….”



 너무 맞는 말이었다. 집 아니면 어디서 옷을 벗고 다니겠는가. 정국을 한 방에 케이오시킨 지민은 정국의 티셔츠 목 부분으로 머리를 끼워 넣었다. 샵을 털어 옷은 이미 충분했지만, 지민은 정국의 옷을 선호했다. 정국의 체향이 알파 페로몬처럼 느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옷을 갈아입은 지민은 만면에 미소를 걸고 정국에게 매달렸다.



“왜? 나 보면 꼴려?”



 지민이 야살스럽게 눈웃음을 쳤다. 반달로 접힌 눈꼬리가 고왔다. 정국은 언제 붉어졌냐는 듯 평소처럼 강철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살짝 붉어진 귀는 감추지 못했다.



“아니요.”

“너 진짜 고자지? 고자 맞지?”



 지민이 짙은 의심을 피웠다. 정국은 달라붙은 지민을 떼어내며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너 진짜 나 보면 막 어떤 생각도 안 들어?”

“네.”

“뭐 속으로 불경이라도 외워? 왜 이렇게 날 경건하게 대하는 거야. 어우씨, 넌 자제력이 너무 높아!”



 지민이 투덜거렸다. 정국이 얼척 없는 눈으로 지민을 응시했다. 지민은 한술 더 떠 정국의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네 안에 있는 짐승을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하 내가 무슨 늑대인간이에요? 잠이나 자요.”



 피, 지민은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정국을 흘겨봤다. 섭섭해, 아주 내가 섭섭해. 웅얼거리면서도 정국의 품에 안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정국을 꼬시는 데에는 시간이 아마 조금 더 걸리나 보다. 지민은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며 정국의 향을 깊게 들이마시었다. 매번 자기 전마다 지민이 하는 행동이었다.



“아씨, 짜증나.”

“갑자기 왜요.”



 정국은 지민이 아래에서 짜증 부리자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지민은 정국과 눈을 마주치고는 입술을 오물오물거렸다. 말은 하고 싶은데, 말하면 안 좋을 거 같을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지민은 가늘게 눈을 뜨고 정국을 살피더니 팩 다시 고개를 묻었다.



“아니야. 자.”

“왜요, 뭐 문제라도 있어요?”

“없어.”



 사실 아주 많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국의 향에서 다른 오메가 냄새가 언뜻언뜻 묻어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 중 있나보다 했다. 그런데 같은 향이, 그것도 관심 있다고 티내는 오메가 향이 날이 갈수록 대놓고 진해지고 있었다. 우성오메가인 자신이 매일 밤 덕지덕지 자신의 페로몬을 정국에게 묻혀놓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떤 개념 없는 오메가야. 우성도 아닌 주제에 우성인 자신이 표시해놓은 것에 깔짝거렸다. 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한판 뜨고 싶은 욕구가 매일 밤마다 찾아왔다.


 지민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번 몰래 공사장 현장에 찾아간 뒤, 정국은 집에 와 정색했다. 막무가내로 키스했을 때만큼이나. 절대 다시 찾아오지 말라며 몇 번이고 딱딱하게 말하는데, 지민은 어쩔 수 없이 알았다 수긍했다. 하지 말라 놓은 엄포를 지민은 착실히 잘 지키고 있었다.



“왜요, 말해 봐요.”

“별거 아니라니까.”

“별거 아니라면서 이렇게 미간이 구겨져 있어요?”



 정국이 엄지손가락으로 지민의 미간을 꾹 눌렀다. 이판사판이다. 이렇게 뺏기고는 못 산다. 지민은 정국의 모든 것을 가져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 양이 아주 미세해도, 다른 오메가의 것이라면 싫었다.



“나 너 알바하는데 가볼래.”

“그거 안 된다고 지난번에 말….”

“아니 거기 말고. 술집.”

“…술집이요?”

“어, 거, 거기 사장이 먹을 것두 많이 줬잖아. 인사라도 한 번 하는 게 어떤가 싶어서….”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힐끔 정국을 살피니 딱히 의심하는 표정은 아니다. 지민은 그 거짓말로 밀고 나갔다.



“몇 달이나 줬잖아. 한 번 정도는 괜찮지! 거기서는 얌전히 있을게. 아니면 네 일이라도 돕던가. 거기 가면 접시 나르기 그런 거 하지 않아? 들고 걸어 다니기만 하면 되잖아. 나 그건 잘할 수 있어.”

“그렇긴 한데….”

“어? 너랑 내가 결혼할 건데 눈도장정도는 찍어줘도 괜찮지.”

“누가 결혼이에요?”

“너. 그리고 나.”



 정국은 속뜻을 파악하려다 뻔뻔한 지민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공사장과 달리 술집은 작다. 한눈에 지민을 감시할 수 있었다.



“알았어요. 대신 내일 좀 늦게 와요. 일 정리될 즈음.”

“걱정 마!”



 가서 찍소리도 못하게 눌러버릴 테다. 지민은 정국의 품에 얼굴을 묻고 전투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더불어 정국에게 자신의 페로몬을 가득 풀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지민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선보였다.



“앗, 정국이 사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해요. 그간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샐샐 지민이 눈꼬리를 휘어 접었다. 정국은 두 번째 보는 예의 바른 박지민이 적응되지 않아 큼 헛기침을 했다. 박지민과 존댓말은 영 어색했다. 존댓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이 세상에 박지민 말고는 없을 것이다. 정국은 지민을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장에게 소개했다.



“어제 말씀드렸던 제 룸메이트입니다.”

“아아! 정국이랑 거의 세달 전부터 방 같이 쓰는?”

“네! 사장님 요리 솜씨 완전 좋으세요!” 

“그, 그런가요? 좋다하니 그거 참 쑥스럽구만.”



 술집사장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장은 칭찬에 취약했다. 날카롭게 캐치한 지민은 칭찬 폭격을 퍼부었다. 그 계란찜 있잖아요. 제 소울푸드라니까요. 그리고 야채볶음도 완전 맛있고, 사장님한테 요리 배우고 싶어요. 후계자 두실 생각 없으세요? 사장은 입이 귀에 걸쳐 껄껄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사장님 저 여기 일 도와드려도 될까요? 정국이 따라서 잘할 수 있어요!”

“하하 물론이죠! 아 거참 지민씨 같은 사람만 세상에 가득하면 세상에 법이 필요 없을 거예요.”

“에이, 과찬이세요.”



 사장은 지민에게 단단히 속아 큰일 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속속 쏟아냈다. 정국은 조용히 생각했다. 세상에 박지민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무법도시일 텐데. 역시 박지민. 사람 손에 쥐고 흔드는 건 도사다. 지민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을 무렵, 주방 안쪽이 궁금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누구예요, 이분은?”

“아아 다들 인사해. 정국이 룸메이트 분이래. 지민씨.”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지민은 생글생글 웃었다. 즙이라도 톡 터질 것처럼 상큼했다. 눈웃음이 마르질 않는다. 시연은 지민을 보자마자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저 상큼하고 예쁜 연하남은 뭐지. 잘생긴 사람은 잘생긴 사람과 어울린다더니, 혼자만 있어도 빛나는 정국과 세트로 빛이 났다. 시연뿐만이 아니었다. 가게의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은 어머, 하며 절로 반가운 웃음을 걸쳤다.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은 순한 인상의 지민에게 호감을 느꼈다. 우성오메가의 끼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웃지 않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오메가, 채윤이었다. 지민은 골고루 쳐다보는 척하며 오메가 향이 느껴지는 곳을 정확히 응시했다. 너구나, 감히 내꺼 탐내는 낯짝 두꺼운 오메가가. 당장에라도 미쳤냐며 팔팔 뛰고 싶었지만 지민은 속을 꾹 누르고 더욱 상큼한 웃음을 얼굴에 걸쳤다.



“오늘 하루 일하게 됐어요. 잘 부탁드려요!”

“지민씨 몇 살이에요?”

“저 스물여섯이요!”

“어머, 나보다 어리네.”

“그럼 누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지민이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여우가 끼를 부린다. 끼를 부리니 사람이 넘어간다. 시연은 칙칙한 가게 분위기가 여름 해변으로 바뀌는 것만 같았다. 야자수 잎들이 산들거리고 상쾌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지민이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헤헤 누나. 저 서빙하는 방법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됩니다, 되고말고요. 안 되는 상황이라도 되게 만들어야 한다. 황홀한 표정으로 시연은 자연스럽게 박지민 팬클럽에 합류했다.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다소 딱딱한 정국의 목소리였다.



“시연 누나가 알려주실 거예요? 오늘 일 밀려서 누나 힘들지 않아요?”

“응? 아니 괜찮은데? 힘이 아주 펄펄 난다. 지민 동생, 이 누나가 차근차근 알려줄게요.”

“앗! 완전 좋아요!”



 따라 나가려는 지민을 일순 정국이 붙들었다. 술집사장이며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도 흐뭇하게 지민을 바라보다 정국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



 시선이 쏠린 가운데 정국은 살짝 당황하더니 구석에 걸린 옷을 가리켰다.



“…유니폼 입고 나가야죠.”

“아 그러네. 지민 동생 입고 나와요.”

“네, 누나!”



 아르바이트생들은 인상 좋은 지민을 뒤로하고 홀로 나갔다. 정국이 느릿느릿 움직여 앞치마를 꺼내왔다. 정국이 앞치마를 내밀자 지민은 눈만 깜빡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해줘.”

“못 해요?”

“당연하지. 난 이런 거 해본 적 없어.”



 정국은 지민의 목에 앞치마를 걸고 허리를 숙였다. 앞에 서서 손을 뒤로 뻗어 매듭을 묶었다. 뒤로 돌아가서 해도 됐지만, 정국은 부러 앞에서 맸다.


 또 이런다. 지민이 다른 사람들이랑 말을 하는 것을 보는데, 또 짜증이 기어 올라왔다. 공사장에서 느꼈던 기분이다. 아니, 평소 하던 대로 하지 왜 잘 보이려고 하는 거야. 동료들 앞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지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민을 밖으로 내보내기가 싫었다. 정국이 넌지시 던졌다.



“서빙 안 해도 되는데. 귀찮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사장님한테 말해서 하지 않는다고 해도 돼요.”

“야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한다고 한 일을 안 한다고 해?”

“박지민씨가 일을 잘 못 할 수도 있고 뭐…그리고 서빙도 은근 어려운 일이에요. 접시가 보통 무거운지 알아요? 몇 번만 나르면 팔 빠질 거 같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걸 수도 있어요.”

“괜찮아. 나 팔 힘 강해.”



 말은 더럽게도 안 듣는다. 눈치는 어디다 팔아먹고 왔는지 못마땅해 하는 정국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쌓인 아르바이트 경력으로 삼십초면 거뜬히 묶을 매듭을 정국은 아주 느릿느릿 묶었다. 오늘따라 잘 안 묶이네요. 말까지 덧붙여가며 몇 번이나 풀었다 묶기를 반복하자 되려 지민이 정국을 재촉했다.



“빨리해, 빨리.”

“가만히 있어 봐요. 잘 안 묶이잖아요.”



 지민은 밖에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 지민은 철저한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중이었다. 정국은 매일 아르바이트를 올 것이고 자신은 정국을 매번 따라다닐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자신의 편을 만들어 놓으면 것이다. 자신 대신 건방진 오메가가 정국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할 편을.



“됐어?”

“…네.”

“나 간다. 일 열심히 해.”



 나도 열심히 그 오메가 떼어내러 가야지. 남의 떡에 눈독들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마. 의지투합하며 지민이 나가려는데, 정국이 또 앞을 막아섰다. 지민이 작게 눈을 찌푸렸다.



“왜.”

“나한테 배우는 건 어때요? 처음 만난 사람이랑 하면 아무래도 힘들잖아요. 만약 일하다 실수해도 나랑 하면 덜 쪽팔리고, 내가 바로 해결해줄 수도 있고. 불편하지도 않고.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네. 어때요? 더 괜찮죠?”

“안 돼. 이미 하겠다고 했잖아.”

“내가 가서 말할게요. 제가 하기로 했다고.”

“뭘 말해. 내가 괜찮다니까?”



 빨리 전쟁터에 합류해야 하는데, 정국이 자꾸 방해하니 지민은 조바심이 났다. 시간은 오늘로 한정되어 있었다. 곧 히트사이클이 온다. 지금을 놓치면 며칠 뒤에나 가게에 출석을 찍을 수 있었다. 얘 오늘따라 왜 이래?



“걱정 마. 너는 너 할 일 해.”



 아예 지민은 정국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정국은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지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럼 주방일 하는 건 어때요?”

“하아? 야 전정국.”



 지민이 황당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너 여기 가게 싫어해? 다 태워 먹고 싶어? 이거 순 불량일꾼이네. 너 땡땡이 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응? 나랑 있으면 일 알려주는 거라고 하면 되니까.”



 다 알고 있어. 지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정국의 가슴팍을 꾹꾹 찔렀다.



“양심 여기 있어? 어, 전정국 양심 안 보인다. 가서 양심 좀 찾아와.”

“박지민씨 양심보다 훨씬 똑바로 있거든요?”

“안 보이는데? 안 보이는…어, 보인다. 완전 시꺼메. 나 간다!”



 누가 누구의 양심을 논하는 건지. 지민은 정국이 또 붙잡을세라 냉큼 빠져나갔다. 시연 누나 저 왔어요, 하고 쪼르르 달려가 눈웃음을 치는 게 보인다. 남은 정국은 한손으로 거칠게 머리를 털었다. 소꿉놀이 장난 같은 단순한 배역 놀이도 아니고, 정국이 지민에게 질척하게 달라붙다 까였다. 하아, 한숨을 쉬며 정국은 주방에서 빠져나왔다. 보통이라면 마무리될 시간인 가게가 어쩐 일인지 아직도 바빴다. 테이블마다 손님이 가득했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건너다니며 활짝 웃고 있는 지민이 온 정신을 앗아갔다. 대체 손님한테는 왜 웃는 거야. 정국의 인상이 풀릴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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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오랜만이죠....ㅠㅁㅠ 앞으로 자주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