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HORT

2018.04.17 11:04

[슈짐] 냥냥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루리-어른아이>










 골이 댕댕 울린다. 윤기는 가로등을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신 적은 처음이다. 그놈의 퇴사가 뭐라고. 가장 큰 승리자가 된 걸 축하한다며 동기들이 부어주는 술을 모두 꿀떡꿀떡 받아 마셨더니 머리끝까지 취해버렸다. 억대연봉가를 달성한 잘난 민윤기 인생에서 이런 날은 없었다. 남이 권한 술에 취해 땅바닥이 비틀거리고, 하필 오늘 같은 날 차에 불법주차 딱지가 붙어 끌려가고. 뒤질 거 같다. 도저히 못가겠다. 지하철역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던 윤기는 결국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조금만, 조금만 쉬었다 가자.


 윤기는 주변을 흘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사불성으로 길에 구겨져 누워 경찰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엎어져있는 게 나을 터였다. 컴컴한 길목 가로등의 주홍 불빛, 널부러진 직장인용 수트. 머지않아 수트 사이로 고양이가 머리를 꾸물럭 내밀었다. 뒤지겠다, 뒤지겠어. 밝은 회색빛의 러시안블루였다. 신비한 빛깔의 에메랄드를 닮은 녹색 눈동자는 좀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윤기는 진이 빠져 수트 위에 몸을 말고 털썩 엎어졌다. 어찌나 많이 마신 건지 통 기운이 없다. 찬 바닥에 머리를 대니 술이 좀 깨는 거 같기도 하고.


 이제쯤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그 무렵.



“헉 미친, 밟을 뻔 했어.”



 미안해, 야옹아. 밤이라서 안 보였어. 호들갑을 떠는 시끄러운 목소리가 뇌를 댕댕 울렸다. 감각기관이 아예 마비된 건지 다가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윤기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힘없이 울었다. 냐아…. 해석하자면 이렇다. 시끄러워. 닥쳐봐….



“야옹아? 세상에, 야옹아 아픈 거야?”



 설상가상 안 그래도 울렁거리는데 손길이 몸을 건드린다. 윤기는 절박하게 울었다. 건들지 말라고. 울렁거린다고. 넘길 거 같다고. 손 떼라고. 손은 옆구리를 쓰다듬다 조금 더 올라와 얼굴까지 매만졌다. 꺼져, 꺼져! 콱 물어버리고 싶었으나 입을 열면 그대로 오늘 삼킨 술들이 타고 올라올 것 같았다. 대신 비키라는 의미를 담아 얼굴로 밀어냈다. 손의 주인은 대체 어떤 의미로 알아먹은 건지 치우긴커녕 이마를 살살 매만져왔다. 윤기는 정말 지랄 맞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못 알아먹어? 신경쓰지 말고 가라고.



“많이 아파?”



 어떡하지, 어떡해. 동동 발을 구르던 남자는 손톱을 까득까득 씹었다. 손목에는 집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캔이 봉지에 담겨 달랑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기운이 통 없는 고양이 앞에서 한참이나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다, 어떤 대단한 결심을 한 건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야옹아, 조금만 참아.”



 윤기는 공중으로 붕 뜨는 감각을 느꼈다. 아니야, 이거 아니야. 냐옹, 냐아. 윤기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꼬리로 남자의 손목을 감으며 말렸다. 놔, 놔봐. 결국 윤기는 참지 못하고 남자의 품에 웩 속을 올렸다. 안 돼, 죽으면 안 돼 야옹아! 조금만 참아! 겔겔거리는 윤기를 남자는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남자 동물병원 간판 아래 문을 힘차게 열고 뛰어들었을 즈음, 흔들리는 남자의 품 안에서 모든 것을 게워낸 윤기는 혼절하고 말았다.



“선생님! 고양이가 아파요!”



 닥쳐봐 좀….


 나이 서른, 이직을 결심한 민윤기는 길에서 납치를 당했다.







***








 윤기는 눈을 떴다. 푹신푹신한 감촉은 혼자 사는 오피스텔의 침대보다 딱딱했고, 코에 닿는 어색한 냄새로 다른 이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깬 것도 자발적인 의지는 아니었다. 선생님, 슈가가 아직까지 눈을 뜨지 않는데요? 괜찮은 걸까요? 정말 그냥 탈진이라서 그런 게 맞는 건가요? 한참이나 전화를 붙잡고 있던 남자는 애걸복걸 매달렸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우리 슈가가 위험한 건가요? 윤기는 슈가가 누구인가, 하는 기본적인 의문 대신 울리는 골을 붙잡고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제 납치범이 저새끼였다. 남자는 머지않아 전화를 끊었다. 뒤통수를 뚫을 듯 노려보는 윤기의 시선은 눈치 채지 못했다.



“선생님이 돌팔이인가…그래 좀 수상해. 어떻게 고양이가 술에 취해?”



 다른 병원으로 알아보자. 마침 결말을 내린 남자와 윤기의 시선이 그제야 맞부딪혔다. 단숨에 함박미소를 띄운 남자는 후다닥 윤기의 앞으로 뛰어왔다. 슈가야!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부담스러울 만큼 가깝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자의 입술이 오동통했다.



“괜찮아? 괜찮아 슈가야? 이제 안 아파?”



 누가 슈가인데. 윤기는 제멋대로 이름을 만든 남자를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슈가? 내가?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자니, 남자는 요리조리 윤기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숨소리는 괜찮은 거 같은데. 윤기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의 입술을 앞발로 꾹 밀었다. 숨소리는 오히려 자기가 거칠게 쉬면서. 푹신한 앞발에 막힌 남자는 거부에 불쾌해 하긴커녕 헙, 놀라더니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제 입을 막은 앞발을 내려 보았다. 곧 입매가 말랑하게 풀리더니 헤실헤실 웃는다.



“오늘부터 아빠랑 살자, 이제 혼자 안 돌아다녀도 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허, 윤기는 황당했다. 아빠? 아빠같은 소리하네. 민윤기의 부모님은 저명한 대학교수였다. 소문난 잉꼬부부로 현재는 강원도 쪽에서 농사를 한다. 끽해야 스물 중반이 됐을 외모로 아빠라는 주장은 스물아홉 윤기에게 최대의 헛소리였다. 어디서 이런 정신 나간 인간이 튀어나온 거지? 아니, 헛소리를 분석하기 이전에 이 남자는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아 네 이름이 슈가야.”



 윤기는 얼척이 없어 꼬리만 팔락거렸다. 대답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 남자는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듯 생글생글 눈을 휘었다. 앞발을 톡톡 건드린다. 짜증이 솟구친 윤기가 손을 콱 물어버리는 찰나, 남자가 응? 하고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윤기는 손을 물 수 없었다. 남자가 스산하게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아 시발…이 새끼는 상도덕이 없어….”



 폰을 꺼내면서 명함 하나가 같이 팔락 떨어졌다. 영업 1팀, 박지민. 명함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네, 강대리님. 네, 네. 아 지금요…? 아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지민은 전화를 조심스레 끊고 살벌하게 이를 갈았다. 자살하기 전에 이 새끼 죽이고 간다. 그러더니 금세 표정을 바꾸어 윤기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슈가야 일찍 돌아올게! 쿵, 그렇게 문이 닫혔다.



“…….”



 윤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명함을 즈려밟았다. 박지민의 옷을 훔쳐입고 나가려는데, 문득 방금 밟은 명함에서 어떤 익숙한 단어를 봤다. 회색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러시안블루는 파드득 굳어 명함으로 돌진했다. 대명기획. 윤기에게 이직을 권한 회사의 이름이다. 녹빛 눈알이 바쁘게 굴러간다. 영업 1팀이면, 그러니까…. 납치범은 한 달 뒤 팀장자리를 권유받은 회사의 부하직원이었다.







***








 윤기는 몰래 지민의 옷을 훔쳐 입고 떠나는 대신 고양이 행세를 택했다. 기구한 운명을 탓했으나, 축복으로 바꿔 생각했다. 박지민이 입에 달고 사는 ‘좆같은 회사, 좆같은 강대리, 좆같은 자본주의’를 듣고 나니 미리 회사의 상황을 파악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차하면 연봉테이블을 논하던 계약서를 찢고 도망가리라 결심했다. 어차피 고양이로 일주일을 보내도 문제는 없었다. 배부르고 등 따숩게 박지민이 선사하는 밥과 잠자리를 즐기면 됐다. 물론 문제가 아예 없진 않았다. 문제는 깊으면서도 간단했다.


“슈가야! 아빠 왔다!”


 웅웅, 우리 슈가 잘 있어쪄요? 지민은 돌아오자마자 윤기를 붙잡고 뽀뽀세례를 날렸다. 코에도 쪽, 이마에도 쪽, 앞발에도 쪽. 귀찮아진 윤기가 앞발로 동그란 이마를 꾹 밀어내면 그것도 좋다고 지민은 히히 웃었다. 우리 슈가 너무너무 귀여워. 우리 슈가는 솜방망이도 왜 이렇게 귀여워? 아구 귀여워. 냐아, 꼬리를 까딱거린 윤기가 저리 떨어지라는 의미를 담아 성의 없이 울어도 지민은 눈치 없이 반겨주는 거냐며 감격했다. 윤기는 포기했다. 그래…눈치 없는 게 축복이지….


 문제는 박지민이었다. 박지민은 윤기의 생각보다 더 ‘슈가’를 예뻐했다. 웅냥냥, 우리 슈가. 평소 멀쩡한 인간처럼 굴다가도 제 옆만 오면 박지민은 혀가 반토막이 됐다. 아빠 보고시퍼쪄요? 그래쪄요? 아빠, 해보자. 아빠! 함박 웃으면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지민의 배를 윤기가 꾹 밟고 지나가도 지민은 헤죽 웃었다. 슈가 아빠한테 왔어? 심심해? 툭하면 끌어안고 분홍색 발바닥을 꾹꾹 누르며 귀찮게 만지작거렸다. 수인이라고는 털끝만치도 눈치 못 챈 주제에 인간 아기 다루듯 어화둥둥 얼렀다. 그때부터 남다른 박지민의 고양이 편애를 알아봤어야했다. 처음 보는 고양이가 옷에 질펀하게 토를 싸질러놨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때부터.



“슈가야 조금만 기다려. 아빠 옷 입고 와서 밥 줄게.”



 지민은 장차 30분 동안 윤기를 물고 빨고 설친 끝에 씻고 옷을 갈아입겠다며 일어났다. 물소리가 난다. 윤기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쇼파 아래로 폴짝 내려갔다. 그래도 따지자면 박지민은 나쁜 주인이 아니었다. 좋다고 헤벌쭉 웃고 있는 떡같은 얼굴을 미워하기란 아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람이 고양이보다 더 끼를 잘 떨었다. 매일 밤 자기 전 단단하게 끌어안는 팔에서 빠져나가는 게 힘겹긴 해도, 어쩔 땐 따뜻한 게 꽤 기분 좋기도 했다. 뭐, 그냥, 오랜만에 수인모습으로 있으니까 고양이 습성이 강해졌나 보지.


 어느새 뽀송해진 얼굴로 후드티를 입은 지민이 등장했다. 하얗고 탱탱한 볼을 보면서 윤기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빠는 무슨.



“우리 슈가 밥 얼마나 먹었나 보자.”



 지민은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윤기의 밥그릇부터 확인했다. 냐, 윤기는 니 밥이나 먹어, 하고 대꾸하며 지민의 곁으로 다가갔다. 지민이 폭 한숨을 내쉰다. 



“슈가야 왜 이렇게 밥을 안 먹었어.”



 내가 곰이냐? 밥을 세 끼를 한 번에 줘놓고선. 걱정마, 인마. 윤기는 너 지금 헛짓하고 있다는 의미로 도장 찍듯 지민의 허벅지를 꾹꾹 눌렀다. 반바지로 훤히 드러난 지민의 허벅지를 생각해 발톱은 집어넣었다. 지민은 걱정하며 윤기를 끌어안았다가, 곧장 으윽, 하고 심장을 쥐어잡으며 윤기의 코에 입술을 쪽 붙였다. 너 왜이렇게 예쁜 거야, 슈가야. 쪽쪽 배에 까지 입술이 내려온다. 윤기는 반항하며 지민의 손등을 팍 쳤다.



“아, 알았어. 안 할게.”



 지민은 순순히 물러났다. 지독하게 괴롭혀 한번 발톱을 세웠더니 적당히 자제를 배운 모양이었다. 윤기는 지민이 또 다가올까 지민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쇼파 위로 멀찍이 도망갔다. 괜찮아, 우리 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슈가는 귀여우니까. 자애로운 미소를 한껏 발사하던 지민은 곧 피폐한 안색으로 변해 노트북을 꺼냈다. 반려동물과의 힐링타임이 끝났으니 남은 업무를 끝내야만 했다.


 도망가면 지구 끝까지 따라올 거 같더니만. 윤기는 쌩하니 일로 빠진 지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싱겁게 놓을 리가 없는데. 프로젝트 초안 기획서? 신입이 하면 어차피 다 쓰레기통으로 처박힐 텐데. 왜 하고 있어. 살그머니 일을 하고 있는 지민의 곁으로 한발 두발 옮겼다. 냐, 윤기는 울었다.



“응, 아빠 이거 좀 할게.”



 지민이 윤기의 머리를 대충 한 두 번 쓰다듬었다. 뚝 떨어져나간 손길은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겼다. 윤기는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방금 전까지는 귀찮았는데. 굳이 다시 쓰다듬어 주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냥 어딘가 마음에 안 든다. 지민을 빤히 노려보던 윤기는 살랑살랑 기척 없이 다가가 사냥 노리듯 지민의 노트북 위로 풀썩 드러누웠다.



“악! 저장 못 했는데!”



 냐아.



“이씨, 슈가 너, 너…!”



 냐.



“하씨…진짜 귀엽네….”



 지민은 윤기의 가슴털에 얼굴을 묻었다. 그거 말고 머리 쓰다듬어 달라고. 윤기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듯 꼬물거리며 지민의 손에 머리를 척 올려놓았다. 허윽, 슈가야 아빠 심장 멎을 거 같아. 지민이 카메라를 꺼내든 뒤, 보고서는 그 뒤로 단 한 자도 채워지지 못했다.








 윤기는 책상에 엎어진 채 기절한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일은 마무리 안 됐고, 이 자세로 뻗어 자면 분명 아침에 목 아프다고 할 거고. 고민에 빠져 고개를 갸웃하던 러시안블루 고양이는 지민의 곁에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오랜만에 사람으로 변하니 조금 어색하다. 윤기는 빠르게 지민을 쇼파 위로 올렸다.



“슈가야….”



 끄응, 뒤척거리며 지민이 잠꼬대를 한다. 그래그래, 슈가 여기있다. 여기. 아니, 내가 왜 슈가야. 집고양이 노릇 얼마나 했다고. 스스로 어이가 없어 짧게 웃은 윤기는 지민을 내려놓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주인이 일을 못했으니 고양이가 해줘야지 뭐. 노트북을 켰다. 지민이 엉망으로 써놓은 기획서를 살피며 혀를 쯧쯧 찼다.



“일을 어마어마하게 잘 하는 건 아니네.”



 윤기는 미간을 모으며 고민했다. 뭐가 좋을까? 박지민을 도울 방법이. 머지않아 윤기의 눈이 번뜩 빛났다.







***







 눈물겨운 취업준비 기간을 걸쳐 대기업 입사만 하면 모든 게 끝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다름 아닌 사수다. 지민은 인생 최악의 모든 불운을 면접을 통과하고 맛보았다. 강대리, 이 시발놈. 그 개자식은 지민의 실적을 모두 자신이 낸 것처럼 빼앗아갔고, 작은 흠이 발견되면 쥐 잡듯 지민을 달달 볶았다. 이걸 지금 보고서라고 쓴 거야? 입사한지가 몇 달인데 아직도 이런 거 못해. 어제까지만 해도 보고서의 폰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별 트집은 다 잡아댔으면서 지민이 낸 아이디어를 쏙 가로채 팀장에게 칭찬과 보너스를 받았다. 정말 강대리 개자식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개자식이라, 지민과 조금 친한 사람 모두 입을 모다 그의 성이 강씨인 이유도 강아지라서, 개자식이라서가 틀림없다고 했다.


 심각하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까지 하던 그런 우울한 인생에 햇볓이 떴다. 해는 달달한 이름을 가진 러시안블루 고양이였다. 슈가! 지민은 고롱고롱 자는 슈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헤죽 웃었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갈게. 우리 슈가 오늘은 뭐 하고 있으려나. 요즘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애완동물을 볼 수 있다는데. 그거라도 설치해볼까 싶다.


 지민은 퇴근시간만을 바라보며 메일함을 열었다.



“어.”



 또다. 처음 보는 익명의 메일주소로 메일이 와있다. 메일은 며칠 전부터 오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S’, 딱 한 글자다. 단순한 스팸이라면 차단하겠지만, 메일의 내용은 여태껏 지민이 받아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지민은 메일을 클릭했다. 프로젝트 설계서의 초안. 실현단계 위험가능성. 보고서를 쓸 때마다 지민이 과외라도 하듯 헷갈리는 부분만 콕콕 잡아 알려주었다. 


 대체 누구지? 이런 일을 할 사람이라곤…. 지민은 고심 끝에 최근 회사에서 실시한 마니또를 떠올렸다. 누구람, 대체. 에스면. 신대리님? 머쓱해진 기분에 지민은 파티션 너머 신대리를 흘끔 바라보았다. 대리님두, 진짜 참. 아휴, 사랑합니다. 지민은 헤헤거리며 보고서를 슥슥 써나갔다. 신대리님이 이렇게까지 일을 잘 하는 줄은 몰랐다.


 받아적으며 보고서를 완성한 그때, 지민은 올려놓은 폰의 진동을 느꼈다. 동물병원이었다. 살그머니 눈치를 살피고 휴게실로 빠져나갔다. 



[박지민씨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어제 남겨주신 문자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선생님이세요?”

[네, 고양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요.]



 지민은 어제 문의를 남겨놓았던 동물병원을 기억해냈다. 선생님 우리 슈가가 밥을 늘 깨작깨작 먹고 남겨요. 혹시 버려졌던 기억이 다시 나서 그러는 게 아닐까요? 보시면 연락 부탁드려요. 한 가득 걱정을 돌팔이로 의심했지만, 슈가를 유일하게 만나본 의사라 믿어보기로 했다.



[자세한 건 아마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 거 같은데. 예약 잡고 오세요.]

“네, 언제가 괜찮을까요?”

[흠, 수인은 따로 오전에만 진료받고 있으니 오전에 같이 오세요.]

“네? 수인이요? 그럼 슈가는 오후에 가야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곤란합니다. 수인은 오전에 진료를 진행해야 오후에 방문하는 동물들의 진료가 편리합니다.]

“그러니까 슈가는 오후에 가야죠.”

[…아니, 박지민씨. 병원 방침상 수인은 오전에 봅니다만.]

“그러니까….”



 역시 돌팔이다. 지민은 답답해하며 외쳤다. 아니 우리 슈가는 수인이 아니잖아요. 전화 반대편의 병원에서도 복장 터진다는 듯 허,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슈가는 수인입니다만.]

“…네?”

[모르셨습니까?]



 잠깐만, 잠깐만. 뭐? 수인? 아니, 잠깐만. 여보세요, 저기 잠시만요. 지금 수의사 면허 있다고 말 함부로 하시고 그러나본데. 지민은 의사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의사는 쯧쯧거리며 태연히 설명했다. 그럼 고양이가 자발적으로 술에 취해있겠어요? 수인입니다.



[자세한 진료는 더 해봐야 알겠지만 성인 남성입니다.]



 서, 성인 남성. 우, 우, 우리 슈가가요!? 아기, 아기 아니에요!? 아니 근데, 근데. 지민은 에러 난 로봇처럼 버벅거리며 간신히 되물었다. 면허 걸고 대답해주세요.



“노, 농담이시죠?”

[끊습니다.]



 의사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 끊었다. 평소라면 마찬가지로 돌팔이 새끼라고 욕이라도 해줬겠지만, 패닉에 빠진 지민은 스르르 유령처럼 자리에 귀환해 넋을 빼고 있었다. 강대리가 나까지 같이 잘리게 하고 싶어서 환장했냐하고 면박을 줬지만 그저 죄송합니다, 되풀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슈가가? 수인이라고? 수인이면 나한테 말하지 않은 건가? 아니 우리 슈가는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수인이야. 하참, 말도 안 되지. 우리 슈가는 길거리에서 떠돌던 상처 많은 고양이라고. 얼마나 애달프게 처음에 만나서 매달렸는데. 우리 슈가가 어떻게 수인이야. 슈가가 나를 속인 거라고?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지민은 하하 웃으며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 의사가 맛이 간 거야, 맛이 간 거지.


 지민은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입이 바짝 말라왔다. 슈가를 위한 고양이 사료를 주문한 게 어제다. 그런데 슈가가 나랑 똑같이 말을 하고 키도 크고 걸어다니면…그럼…. 지민은 애써 복잡한 생각을 하하 웃으며 꾸깃하게 접어 머릿속 끝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 슈가는 그냥 흔한 러시안블루 고양이인데 왜 이딴 걱정이나 하고 있어. 생각과 달리 커다란 심호흡을 거쳐 지민은 현관문을 열었다.


 냐아. 푸른 회색빛의 고양이가 어떻게 안 건지 현관 앞에서 얌전하게 앉아 지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민은 바로 눈을 반짝 빛내며 달려가 끌어안으려다, 멈칫했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 때문이다. 수인인데요, 모르고 계셨습니까? 



“슈, 슈가….”



 냐.



 슈가가 고개를 갸웃한다. 댕그란 눈도 함께 무슨 일 있냐는 듯 바라본다. 심각하게 귀여웠다. 내 고양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슈가는 세계미묘대회에 나가면 1등도 모자라 2등 3등까지 혼자 다 하고 돌아올 거다.



“슈가야! 아빠 보고 싶어찌? 웅웅, 나두”



 이 귀여운 게 어떻게 사람이야. 지민은 슈가의 입에 쪽소리나게 입맞춤했다. 우리 이렇게 벌써 뽀뽀두 백 번은 넘게 했는데 말이야. 그치?






?
  • ?
    진태령 2018.04.17 11:29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아저씨 2018.04.17 15:23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만월 2018.04.17 23:48 SECRET

    "비밀글입니다."

  • ?
    필연 2018.04.18 02:19 SECRET

    "비밀글입니다."

  • ?
    sis4321 2018.04.22 22:33 SECRET

    "비밀글입니다."

  • ?
    깅꼬 2018.04.22 22:40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민구 2018.04.23 00:14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외딴섬의티거 2018.04.23 00:46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쏘쏘 2018.04.23 01:08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말랑 2018.04.23 01:51 SECRET

    "비밀글입니다."

  • ?
    개맹이 2018.04.24 10:55 SECRET

    "비밀글입니다."

  • ?
    굥기 2018.06.01 13:20 SECRET

    "비밀글입니다."

  • ?
    그냥고양이 2018.07.30 00:32 SECRET

    "비밀글입니다."

  • ?
    2오리 2018.07.30 01:07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메어 2018.07.30 03:29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빨강 2018.07.30 13:59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오드 2018.07.31 00:18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멍멍 2018.07.31 22:45 SECRET

    "비밀글입니다."

  • ?
    유자95 2018.07.31 23:51
    아 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토페님 ...(오열)
    이 뒤 이야기도 있겠지요..?8ㅡ8 천년이라도 기다릴 테니 있다고 해주셔요...ㅠㅠㅠ 아흐흑!!!
    토페님 슈짐 아 이게 정말 얼마만입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진자...
  • ?
    아이쿠야 2018.08.04 15:15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난해 2018.08.20 05:39 SECRET

    "비밀글입니다."

  • ?
    qazwsx0309 2018.10.04 22:07 SECRET

    "비밀글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SHORT 토페 2016.08.10
13 [슈짐] 보나베띠 中下 5 토페 2018.11.11
12 [슈짐] 보나베띠 中上 17 토페 2018.09.02
11 [슈짐] 보나베띠 上 17 토페 2018.08.12
10 [슈짐] 슈팅가드 37 토페 2018.07.26
9 [국민] 고백왕 4 토페 2018.04.22
» [슈짐] 냥냥냥 22 토페 2018.04.17
7 [국민] WARM NIGHT 19 토페 2017.08.06
6 [슈짐] COLD WARNING 27 토페 2017.08.06
5 [뷔민] 쿨사이다 톡소다 下 23 토페 2017.07.03
4 [뷔민] 쿨사이다 톡소다 上 8 토페 2017.07.03
3 [국민] BLACK OUT 17 토페 2017.06.10
2 [국민] 거지왕 25 토페 2017.04.12
1 [뷔민] 1%의 미묘함 11 토페 2016.08.28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