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LONG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BGM 살랑살랑>








 호텔의 스위트룸은 사치스러웠다. 전면 유리창 아래 빌딩숲이 레고처럼 깔려있었다. 햇빛을 받아 금가루 뿌려진 듯 반짝거리는 강과 도시의 조화는 컴퓨터 배경화면에나 나와야 할 것 같았다. 와아, 와아. 지민이 부리 같은 입술을 벌리며 멍하니 감탄했다.



“호텔이 이렇게 넓은지 처음 알았어요. 숙소보다 훨씬 큰 거 같아요.”



 창문에 붙어 뷰를 구경하고 바쁘게 쫑알거리는 지민 곁에서 윤기는 무표정한 안색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숙소도 같이 바꿔줄 걸 그랬나. 박지민이 하도 멤버들 눈치를 보기에 부러 바꿔주지 않고 있었는데. 대놓고 동네방네 스폰하고 있다고 티 내면 불편한 건 박지민일 터였다. 어느새 구경을 마친 건지 지민이 쫄랑쫄랑 윤기의 곁으로 돌아왔다.



“야 너….”



 숙소 높은 곳으로 바꿔줄까? 그런 말을 꺼내려던 윤기는 중간에 말을 멈췄다.



“네? 왜요? 부사장님은 창 밖 구경 안 하세요?”

“…난 됐다. 이미 많이 봤어.”

“아! 그러시겠네요. 여기 송영호텔이니까.”



 자주 오셨겠어요. 해맑은 박지민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햄스터 케이지만한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이 억울하긴커녕 예쁜 풍경에 기분이 좋아 들떠 있었다. 윤기는 대신 쇼핑백을 내밀었다. 전화 한 통에 백화점을 통째로 뒤진 비서가 사다 바친 것이었다.



“이걸로 갈아입고 나와.”

“네!”



 빨리 갈아입고 올게요! 말은 또 잘 듣는 지민이 곧장 총총 욕실로 뛰어들어간다.



“…….”



 애가 많이 단순하다. 꼭 산책 시키는 강아지가 던진 공을 물러 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박지민과 있으니 또 불쑥 치솟는 잡생각을 의식적으로 밀어 넣으며 윤기는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쇼파에 털썩 앉았다.


 어려서 순수한 건가? 문득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스물 한 살 때 뭘 하고 있었더라.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도박과 마약, 그리고 성적 쾌락에 찌들어 사는 머저리들과 어울려보기도 했고 쓰레기같이 인생을 포기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쓰레기처럼은 살지 말라고 한 마디 조언해주고 싶을 정도다. 나이 탓은 아니네.


 박지민은 이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냐. 지루하기만 한 뷰에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길 잠시. 머지않아 뒤쪽에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입고 나왔는데요.”



 윤기가 지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말을 잃고 말았다. 순수해 보이는 건 나이 때문이 아니다. 이건 박지민의 얼굴 때문이다. 메이크업을 지우고 뽀송해진 얼굴은 복숭아 그 자체였다. 적당히 익은 백도. 콕 찌르면 과즙이 줄줄 나올 것만 같은 설익은 분홍색이다. 파스텔 톤의 보라색 후드티는 벙벙한 핏이라 꼭 박지민이 옷에 잡혀 먹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윤기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제 태어났네.”

“네?”

“아니. 안 들어도 되는 말이야.”



 헛기침을 한 윤기가 쇼파에서 일어난다. 안 들어도 되는 게 아니라 들어서는 안 될 말이다. 이만 가자. 박지민을 챙겨 나가려는데, 어째서인지 지민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애가 젊어서 그런지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양이다.



“얼굴이 왜 그래? 새 옷 입혀놨더니 비 맞은 강아지처럼. 옷이 마음에 안 들어?”

“아뇨! 그건 절대 아니에요!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부사장님이 골라주신 건데요.”



 고르긴 비서가 골랐다. 전화로 몇 가지 주문사항만 전달했을 뿐이지만, 어찌됐거나 요새 애들이 잘 입는 걸로 사오라고 지시한 것은 윤기였다. 그럼 뭔데. 재촉하니 지민이 떠듬떠듬 눈치를 본다.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대체 어디가.”



 네가 안 어울리면 그 브랜드 대표모델은 진작 계약해지 당했을 텐데. 윤기는 목구멍 바로 아래에 올라온 말을 내리눌렀다. 박지민의 표정에서 아까와 다르게 조금 무너진 자존감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까는 방방 뛰던 강아지가 왜 이러나. 가만히 기다리니 지민이 방향 잃은 눈동자로 말해왔다.



“저한테 조금…과분한 가격의 옷이라 어색한 거 같아서요. 화장도 지워서…안 그래도 제가 아이돌처럼 생긴 것도 아닌데..”



 스폰서를 만나는 자리에서 잘 꾸미고 나와도 모자랄 판에 맨 얼굴이라니. 지민은 발가벗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썩은 미디어 매체로 스폰서의 개념을 뜯어고치지 못했다. 무조건 아이돌은 반짝거려야 한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다. 가만히 지민이 땅굴을 파는 걸 지켜보던 윤기가 혀를 찼다.



“그냥 착해서 사장이 시키는 건 다 하는 줄 알았더니…너 눈이 발바닥에 달렸네. 그래서 그 우주용사 컨셉 같은 것도 군말 없이 했구나.”

“우주용사요? 그게 무슨…설마 저희 데뷔곡이요? 그거 예뻤는데!”

“발바닥에 달렸네, 발바닥에.”



 그룹 컨셉 이야기에 지민이 묘하게 쫄았던 모습은 내던지고 양 주먹을 꽉 쥔 채 주장했다. 그게 저희 노래 중에서 제일 유명한데…! 그리고 팬분들도 좋아해주셨고 또 차트도 100위 안에 들었고 멋지다고 여기저기 연락도 많이 받았던 곡인데요. 윤기는 지민의 주장에 관심 없다는 의사로 손을 휘저었다. 그래 그래, 알겠어. 그는 진정시키듯 지민의 머리를 헤집었다.



“잘 어울려, 지금 입은 거.”

“…….”

“그딴 회색 빛 우주복도 잘 어울렸는데 이게 안 어울리겠니.”



 보드라운 머리칼을 헤집은 윤기가 손을 빼냈다. 지민은 동그래진 눈으로 방금 닿은 촉감의 근원지를 확인했다. 쓰다듬어 주셨다. 살포시 닿은 손은 커다란 크기에 비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놀란 나머지 데뷔곡 의상을 비하하는 윤기의 말도 놓치고 말았다. 윤기가 시계를 본다.



“이제 가야 돼. 안 그러면 앞부분 못 본다.”



 지민이 얼떨떨하게 방금 손길을 되새김질하는 사이, 윤기가 지민을 흘끔 보며 확실히 덧붙였다.



“그리고 너 화장 지운 게 더 취향이야. 다음부터는 이렇게 와.”



 내뱉고 보니 윤기는 멈칫했다. 취향? 어린 애를 상대로 무슨. 말을 잘못 꺼냈다.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와야 지금처럼 귀찮게 갈아입을 일이 하나 줄어들잖아. 그게 마음에 드는 거야. 그걸 취향이라고 잘못 말한 거야. 그러나 이미 뱉은 말에다, 지민이 어쩐지 홀린 듯한 눈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 있어서 관뒀다.



“네, 다음에도 이렇게 올게요.”



 지민이 쑥스럽다는 듯 살포시 눈꼬리를 휜다. 큼. 윤기는 헛기침을 하며 지민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먼저 걸음을 옮겼다.







 영화관은 사람으로 붐볐다. 과장 조금 보태 모래사장의 모래처럼 많았다. 다 영화만 보러 기어 나오나. 윤기는 안 그래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당장 자리를 뜨고 싶었고, 지민은 무척이나 오랜만인 영화관 로비가 낯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딴 곳에서 굳이 봐야겠니. 평소라면 초 치는 말을 아무렇게나 꺼냈을 민윤기는 설레어 하는 말간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강아지 산책시켜야지. 박지민의 천진한 모습은 민윤기의 괴팍한 인성도 가다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영화관 한 켠에서 고소한 팝콘 냄새가 솔솔 퍼져 나온다. 사람들이 저마다 품에 팝콘과 콜라 등 간식을 들고 돌아다녔다. 지민의 고개가 그리로 자연스럽게 쪼르르 돌아간다.



“먹을래?”



 윤기가 턱짓했다. 먹어도 돼요? 안 될게 있니. 그럼 저 나쵸…. 거기까지 말하던 지민이 돌연 말을 뚝 멈췄다. 몇 가지 단어가 지민의 머릿속에 튀어나왔다. 컴백, 앨범 자켓 사진 촬영, 다이어트. 피할 수 없는 아이돌의 숙명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저 안 먹어도 될 거 같아요. 괜찮아요.”

“이미 침 줄줄 흘리는 얼굴로 그러면 설득력 없어 보이는 건 알아?”

“지, 진짜인데요? 배불러요. 아까 엄청 많이 먹었더니.”



 윤기가 지민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등을 휙 돌려 주문하는 매대로 다가간다.



“저 진짜 안 먹고 싶은데…!”

“누가 너 준다고 했니.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래.”

“아….”



 지민의 볼이 민망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머지않아 윤기의 주문번호가 화면에 뜨고 영화관 세트가 나왔다. 콜라와 나쵸, 팝콘이 한 가득 들어있는 세트였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영화와 콜라보 한 건지 노란 병아리 키링이 붙어있었다.



“자.”

“제가 들어요?”

“어.”



 이상하게도 윤기 본인이 먹고 싶어 주문했다던 음식은 지민의 손에 들려 있게 됐다. 뭐 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 지민이 순하게 윤기의 말을 따랐다. 주인이 방관하는 사이 빨대도 알차게 챙긴다. 그리고 그 사이 전광판에 안내문구가 떠올랐다. 8관 킬링 로망스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평범한 영화관 데이트처럼 조명이 반쯤 켜진 영화간 한 가운데에 착석했다.


 지민이 윤기에게 팝콘을 내밀었다. 윤기는 받을 생각이라곤 전혀 없다는 듯 팔짱을 딱 낀 채 보고만 있었다.



“안 드세요?”

“생각해보니 이런 곳에서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갑자기 안 끌리네.”

“팝콘을…드셔본 적이 없다구요?”

“이딴 곳에서 말이야. 팝콘 자체를 안 먹어봤다는 게 아니고.”



 ‘이딴’이라는 말의 포인트도 놓친 채 지민이 작게 경악했다. 진짜 부자는 다르구나…. 민윤기라는 사람이 인간이 몰리는 곳을 싫어할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오해가 한층 쌓였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가난한 아이돌인 자신조차 영화관을 들락거리며 팝콘을 먹은 추억이 있는데.



“그래도 드셔보는 건 어때요? 맛있는데….”

“그럼 네가 먹고 어떤 맛인지 알려줘 봐.”



 지민이 나쵸를 보며 갈등에 빠졌다. 관리해야 하는데. 그러나 이미 입에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 오늘을 빼고는 매일같이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뜯어먹고 살았더니 물려있는 입에서는 어서 이 나트륨을 밀어 넣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고민하는 지민 옆에서 윤기가 거들었다.



“네가 안 먹으면 다 버려야지 뭐.”



 지민이 결국 과자를 집어 들었다. 와삭 베어먹자마자 눈에 전구 켜지듯 빛이 반짝 들어온다.



“맛있어요! 치즈맛이고 또 엄청 바삭바삭하고.”

“그래? 잘됐네.”



 윤기의 목소리에 작은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깃들었다. 꼭 간식 잘 먹는 강아지 구경하는 주인 같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한번 과자를 입안에 넣은 후, 집어먹기 바쁜 지민은 듣지 못했다.



“부사장님도 드셔보세요.”



 지민이 나쵸를 잡아 윤기의 입가에 내밀었다. 먹여주는 건 좁은 숙소에서 살면서 생긴 습관이었다. 사람은 많고 접시는 하나다 보니, 넓은 테이블에서 분주히 멤버들의 그릇에 반찬을 올려주고는 했었다. 윤기가 작은 손가락에 들린 과자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윤기가 받아먹지 않자 지민이 한번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진짜 맛있어요.”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지민이 아, 하고는 멋쩍게 손을 내렸다.



“역시 좀 그러시겠죠.”



 이런 과자는…. 지민이 멋쩍게 손을 내리려는 순간 윤기가 지민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그는 그대로 과자를 베어 물었다. 윤기의 미간이 처참히 뭉개진다.



“짜.”

“앗, 여기요!”



 지민이 곧장 들고 있던 콜라를 내밀었다. 이번에 윤기의 앞으로 다가온 건 커플 빨대가 끼워진 콜라였다. 커플 빨대가 꽂힌 콜라를 먹여주겠다고 들고 있는 어린애. 아까보다 더욱 기묘했다. 윤기는 이번에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거 마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대로 시선을 박지민에 둔 채, 윤기가 빨대를 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화관의 조명이 탁 꺼졌다. 순간적으로 검게 변한 스크린에 이어, 화면이 밝아지면서 박지민의 얼굴이 다시금 눈앞에 들어온다. 다시 밝아진 윤기의 시야 안에서 지민은 헤헤 웃고 있었다.



“부사장님 고양이 같아요. 저희 멤버 형도 고양이를 키우는데 거기 애기도 자기 입맛에 안 맞는 거 먹으면 막 이렇게 고개를 휙 돌리고….”



 지민이 말을 줄였다. 순간적으로 들떠버렸다. 스폰서와 아이돌 사이에 오갈 만한 말은 아니다. 다 떠나서 나이만 놓고 봐도 그렇다. 죄송해요, 하고 짧게 덧붙인 지민을 윤기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내 짤막한 말 한 마디만 던진 채 눈을 감았다.



“…끝나면 깨워.”



 영화를 보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의아해하면서도 지민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깨워 드릴게요.







 영화는 대충 고른 것치고는 괜찮았다.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돌려 그 장소로 가는 내용이었다. 결말은 마지막으로 연인을 살리고 남자가 죽은 채 끝났다. 쓰레기 같은 결말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관 곳곳에서는 욕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지민은 남자가 죽는 순간, 울멍울멍한 눈으로 감동을 흐느끼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야. 사랑은 이런 걸까? 한껏 여운에 빠져있는데, 돌연 옆 좌석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이렇게 슬픈 이야기에 무드 없이…. 삐딱하게 울망거리는 눈으로 돌아보니 눈감고 잠들어있던 윤기가 어느새 깨서 지민을 보고 웃고 있었다.



“…언제 일어나셨어요.”

“이게 그렇게 감동적이야? 나참.”



 영화관에도 몇몇 사람들은 지민처럼 울고 있었다. 모두를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심지어는 액션 영화 대신 윤기가 보자고 한 영화였다. 지민이 소매로 글썽거리는 눈매를 훔쳤다. 밀려온 감동을 깨부순 윤기가 원망스러웠으나, 차마 무어라 발언하지 못한 채 입안에 말만 굴렸다. 부사장님이 이상한 거예요….



“중간에 주무셔서 그런가 봐요.”

“그럴 수도 있고. 뭐 원래도 감정의 폭이 크진 않아.”



 윤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봐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이런 건 감정이입이 안돼. 동정심 같은 건 단 한 조각도 들지 않아.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 주변은 다 동의할걸.”



 당장 수행비서만 해도 격하게 동의할 터였다. 이래도 뚱. 저래도 뚱. 십 년이 넘도록 붙어 지냈지만 이렇게나 곁을 안 내주는 사람이 또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친척, 또는 민윤기를 아는 모든 사람은 모조리 동의하다 못해 보증을 서고도 남는다. 그러나 눈앞의 때 묻지 않은 아이돌, 박지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여러 차례 깜빡거렸다.



“이렇게나 따뜻하고 좋은 분이신데요?”



 무해한 믿음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존재한다. 눈이 발바닥에 달린 건 저만이 아닌 거 같은데요? 지민은 윤기의 주변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망해가는 그룹도 아무런 대가 없이 살려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팝콘도 사주시고…. 점점 뒤로 갈수록 단순해지는 이유지만, 어쨌거나. 선의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윤기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퇴장 부탁 드리겠습니다.”



 영화관 직원이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윤기는 어느 샌가 또 지민을 버린 채 먼저 훌훌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뒤를 익숙하게 지민이 따랐다.









 지민은 왜 자신의 품에 아이스크림이 안겨있는 건지 골몰해보았다. 이게 대체 왜 나한테…?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윤기는 지민의 뒷목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집어 넣었다. 아이스크림 좋아하지? 사줄게. 들고가. 대체 왜인지도 모르게, 그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결제해 지민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급한 마무리를 짓듯 바로 폰을 켜 소속사 사장에게 데리러 오라는 연락을 넣었다.



“불렀으니 곧 올 거야. 오면 타고 가.”



 잘 가. 안녕. 윤기는 마무리 짓듯 인사했다. 늘 마지막은 말 붙이기 무섭게 사라진다. 주차장에 쭉 늘어선 차량에 몸을 싣는다. 지민이 급히 닫으려는 차문을 덥석 붙잡았다. 저…!



“다음은! 다음은 언제 볼 수 있어요?”

“…뭐 상황 보고. 알다시피 내가 한가한 사람이 아니잖아.”



 지민의 눈매가 시무룩해진다. 지난 나날들이 떠오른다. 날 잊은 건 아닌가 윤기의 연락만 기다리던 그 시간들. 다음이라는 말이 오가긴 했는데, 어쩐지 영 신뢰가 가질 않는다. 말만 그렇게 하고 안 불러주시지 않을까. 톡 튀어나는 부리 같은 입술에 윤기가 시선을 뒀다.



“넌 강아지랑 병아리 사이에서 태어났니. 이종교배종 같은 거.”

“…네?”



 뭔 소리지? 지민이 이해하지 못했다. 윤기가 다시금 헛기침을 했다. 아니다. 그는 텐션이 조금 쳐진 지민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피한 채 툭 말했다.



“너도 활동해야 하잖아.”

“…….”

“스폰서는 그 이후에 보면 되는 거지.”

“…….”

“지켜보고 있을게.”



 대화를 하는데 사람 눈은 보지 않는다. 그런데 또 하는 말은 응원이다. 혼자 말을 끝낸 윤기가 지민의 손을 턱짓했다.



“할 말 다 했으니 이제 문 좀 놔줄래? 오래 열어두면 부숴지거든. 비싼 차라서.”



 값비싼 문이 부숴질 일은 없겠지만 지민은 순순히 차 문을 놓아주었다. 탁 가볍게 문이 닫힌다. 지민이 창문을 노크했다. 또 뭐. 윤기가 귀찮다는 얼굴로 창문을 살짝 내렸다.



“운전 조심하세요! 그리고….”

“…….”

“오늘 너무 멋지고 행복한 하루였어요…!”



 감사합니다! 지민이 꾸벅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윤기는 동그란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 말 없이 창문을 올렸다.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지민이 가방을 꼭 쥔 채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지민의 아담한 광대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머지않아 사장이 벤을 이끌고 도착했다. 지민아! 괜찮니? 갑자기 이게 무슨 극장이야! 그리고 이 옷은 또 뭔…. 후드티에 말랑해진 얼굴에 사장이 식겁했다. 지민은 오늘 있던 일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한 마디로 정리했다.



“저 활동 열심히 할게요, 사장님.”

“응? 갑자기?”

“네.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1등할 거예요.”

“그럼 좋지….”



 사장은 무언가 말을 더 얹고 싶었으나, 행복해 보이는 지민의 표정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지민이 네가 행복하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