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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Woman Believer - Maybe>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지민은 요 며칠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마트에 출근했던 의성도, 문제집을 억지로 끌어안고 있던 정국도 전부 연습실로 돌아왔다. 콘서트 참여는 새로운 원동력이 되었다. 안무 거기부터 다시 해볼까? 커버해서 영상 찍어 볼래? 이런 방식은 어떤지, 저런 방식은 어떤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연습실은 내내 활기가 넘쳤다. 지민은 헤죽헤죽 웃으면서 멤버들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다시 데뷔하는 것만 같았다.



“야 너 몸 안 좋냐?”

“아니요? 날아갈 것 같아요!”

“… 형 얘 아픈가 봐요. 안무 연습 좀 쉬어야 될 거 같은데요?”



 하준이 외면하며 의성에게 일렀다. 네가 쉬고 싶은 거 아니고? 겸사겸사죠. 동생을 팔아먹어? 이런 되 먹지 못한. 의성이 하준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려다, 지민의 표정을 보고는 얌전히 수긍했다. 애정이 부담스러우리만큼 퐁퐁 넘치는 눈빛. 사람 눈이 하트로 만들어질 수도 있나. 평상시 지민을 물고 빨고 다 받아주던 의성도 부담스러우리만치 기쁜 모습이었다.



“…우리 잠시만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숨 좀 고르면서 영상 다시 한번 체크해보자.”



 의성이 냉큼 상황을 마무리했다. 멤버들이 뿔뿔이 떨어져 연습실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던 그때, 문이 덜컹 열리더니 사장이 들어왔다.



“얘들아 잠깐 사무실로 와볼래?”

“…굳이 사무실로요?”



 하준이 물었다. 어차피 그들밖에 없는 회사에서 자리를 옮겨봤자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야. 사장이 알려줄 게 있다며 따라오라 손짓했다. 대체 뭔 일? 멤버들이 눈빛을 주고 받았다. 마지막 앨범이 망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중요한 일이라고 해봐야 월 식비 정산 정도밖에 없었다. 그나마 메이크 콘서트 이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는 있지만 사무실로 따라 올라가 격식을 차릴 필요까지는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순순히 사장의 말대로 자리를 옮겼다. 네, 알겠어요. 사장님. 팬들이 봤다면 울면서 가슴을 칠 모습이었다. 이렇게 착하니 그 망한 컨셉들도 얌전히 다 따랐지.


 지하실에 처박혀있는 연습실로부터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5분정도의 거리가 걸렸다. 이미 에어컨이 고장 났고, 난방 시설 또한 맛이 가버린 사무실은 현재 사장이 숙소로 활용하여 모든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뉴위크의 숙소와 마찬가지로 열악하기 짝이 없는 사무실이었다. 그렇게 다 무너져가는 사무실로 가는 사장의 발걸음이 그날은 어쩐지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다. 뭘까. 지민이 의아하게 보았다.


 그리고 정답은 사무실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두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정갈한 수트를, 그러니까 뉴위크 멤버들이며 사장은 손도 대보지 못할 명품 수트를 입고 있었다. 머리를 하나로 높게 질끈 올려 묶은 여성이 먼저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송예희 실장이라고 합니다.”

“오 뉴위크 분들이군요. 잘 부탁 드립니다.”



 남자는 자신을 매니저라 소개했다. 뉴위크 멤버들이 얼이 빠진 채 사장을 보았다. 이게 진짜인가요? 몰래 카메라가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말로 그들의 옷차림과 태도는 이런 작은 기획사에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대기업 로비를 밟고 다니는 수트 군단 사이에 끼어있어야 할 법 했다. 사장이 놀란 멤버들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너희도 어서 인사 드려야지. 앞으로 우리 식구가 되실 분들이야.”



 아. 급히 멤버들이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위크입니다. 매니저는 뉴위크에게 붙임성 좋게 다가왔다.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네요. 영상으로 봤을 때도 잘생겼는데. 실장은 적당히 인사를 섞고 의성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의성군이 리더라고 들었어요. 잠깐 그룹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네. 의성이 그녀에게 붙잡혀 쇼파에 앉았고, 매니저는 넉살 좋게 멤버마다 말을 붙여왔다. 어느새 그는 친근하게 말까지 트고 있었다.



“네가 지민이구나? 직캠 잘 봤어. 춤 진짜 잘 추더라.”

“…직캠이요?”



 지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지민 관련 직캠이라하면 이미 세상에서 사장된 것이었다. 데뷔 초에나 몇 개 있었지, 두 번째 활동 곡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활동 곡에서는 아예 씨가 말라있었다. 예전 걸 보신 건가. 저 데뷔했을 때 직캠이요? 의아해했더니 매니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몰라?”



 매니저가 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지민 앞에 툭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같이 있던 멤버들도 그 앞으로 모여들었다. 화면 안에는 하나의 영상이 담겨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이랬다. 



[관절 다 부수면서 춤추는 상큼 아이돌.]



 누구인데 관절까지 다 부수면서 춤을…? 지민이 어리둥절하게 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매니저가 재생버튼을 누르니 환해진 화면에 나온 인물에 지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정국이 놀라 외쳤다.



“대박. 지민이 형이잖아! 형 직캠 생겼다! 와!”

“지져스.”



 이담이 기계적 리액션을 보였다. 하준은 입을 틀어막은 채 경악했다. 조회수가 10만? 지민이 믿지 못하고 되물었다. 제, 제, 제가 왜 여기 있어요? 진짜 저예요? 수십 번도 눈을 비벼도 자신이 맞았다. 영상 속 박지민은 하늘색 솜사탕 같은 옷을 입고 무대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눈빛으로 중간중간 방긋 웃으며 데뷔곡을 추고 있었다.



“덧글 봐봐요.”



 정국이 스크롤을 쭉 내리자 댓글이 펼쳐졌다.



[얘 누구야? 너무 귀엽다…솜사탕이 열심히 춤을 춰요]

[열정 가득 솜사탕]

[진심 무릎 안 좋은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비명 지르고 있음]

[안무 개빡센데 동작 하나하나 독기 미쳤다 신인인가?]

[와 미친 여기서 뉴위크를 보다니…얘네 신인 아님. 해체인줄 알았는데…소속사 드디어 정신차렸네ㅋㅋ 의상 코스프레옷 아닌 거 처음 본다ㅅㅂㅠㅠㅠㅠ]

[나 이날 갔는데 무대 끝나고 한참이나 울먹거리는 얼굴로 서있더라 얘네ㅠㅠ 누군지도 모르고 왜 이런 듣보가 오프닝이냐고 뭐라고 했는데 그거 보자마자 개미안해지고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됨…그 뒤로 계속 생각나서 직캠 찾아봤는데 있네…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날 노래 아무도 따라 부르는 사람 없었는데 진짜 열심히 하더라 괜히 내가 다 짠했음 꼭 떠라 파이팅]

[이 노래 은근히 좋다 계속 듣고 있음 역주행 가자~~~]



 지민은 직캠의 존재 같은 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라인업에 올라온 그룹 이름만 봐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몇 개의 후기를 찾아보았으나, 뉴위크와 관련된 것은 기자들이 형식적으로 써준 두세 개 정도가 전부였을 뿐이다. 전부 다 그 뒤에 나온 인기아이돌의 기사로 도배되어 밀려나 찾기조차 힘든 편이었다. 그 뒤로 다른 건 아예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백 개가 조금 넘는 덧글에 지민이 멍하니 있자니 정국이 신이나 지민의 어깨를 붙잡고 탈탈 흔들 듯 털어댔다.



“형 봤어요? 봤어요? 우리 노래 좋대요!”

“박지민 다시 무대 오르기 전에 죽일 거냐?”



 하준이 잔소리를 했다. 그러나 지민은 어지러운 시야에도 불구하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른 멤버들 역시 떠들다가도 금세 다시 영상의 덧글로 시선을 모았다. 감동 받은 얼굴이 울멍울멍거린다. 졸지에 폰을 뺏긴 매니저는 잠시 당혹스레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이내 웃으며 등을 두들겨주었다.



“귀엽다, 귀여워. 이런 직캠 하나에 그렇게 감동받을 정도야? 앞으로 너희한테는 이런 게 수만 개는 생길 거야.”

“…그럼 너무 기적일 것 같아요.”

“기적은 일어나라고 있는 거지.”


너희 능력이라면 추우웅분해! 매니저가 호언장담했다. 지민은 손바닥만한 화면 안에서 춤추고 있는 자신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이미 기적은 하나 둘 일어나고 있었다.






***






 뉴위크의 일상은 또 다르게 변화를 맞이했다. 새로운 직원들이 생긴 것과 동시에 컴백 예고를 받았다. 멤버들은 불신했다. 혹시 사장님 어디서 또 사기 당하신 거 아닌가요? 멤버들이 걱정스레 지난번에도 투자사기 때문에 경찰서에 다녀올 뻔한 일을 언급했다. 그 말에 매니저와 실장은 알만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이런 애들을 데리고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매니저의 옆구리를 실장이 퍽 쳐서 중단시켰다. 다행히 사장은 흥분에 들떠 그 말을 듣지 못했는지 힘차게 스케줄표를 펼쳐놓았다. 우리, 컴백한다.


 어안이 벙벙했던 멤버들도 본격적인 스케줄표를 보고 컴백 사실을 실감했다. 일정은 쉴새 없이 바빠졌다. 3개월 뒤에 있을 컴백을 대비해서, 그간 놓았던 안무연습과 보컬레슨이 꽉 찼고 식단관리와 함께 헬스트레이너가 붙었다. 하루 24시간도 부족했다. 유명한 엔터테이먼트에 다니는 연습생 스케줄의 이럴까 싶다.



“잠시 쉬겠습니다.”



 안무 트레이너가 외치자마자 멤버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사람들처럼 연습실 바닥에 그대로 뻗어 누웠다. 지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온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연습한 안무의 박자를 세고 있었다. 점프하면서 들어가는 안무를 할 때 조금 더 높이 뛰어야 할 거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대뜸 정국이 지민의 배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억!



“나의…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아라….”

“지민이 형 요새 개그감이 많이 죽었네요.”

“…재미없었어?”



 지민이 머쓱하게 콧등을 긁었다. 어렸을 때는 툴툴거리면서도 곧잘 따르더니만. 요새는 사춘기가 왔나. 생각하면서도 지민은 차분한 손길로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빼 정국의 이마를 꾹꾹 눌러주었다.



“정국아 땀 좀 닦으면서 해. 거의 샤워한 수준이야. 내 옷….”

“근데요, 형. 이상하지 않아요?”



 아예 듣질 않는구나…. 익숙해진 지민은 수건을 건네 받아 대충 슥슥 닦는 정국에 다시금 수건을 들었다. 머리를 닦아야 내 옷이 안 젖지 않겠니? 막내야. 정국은 다시 한번 들은 척도 안 했다. 지민이 포기한 채 끙끙대며 정국을 옆으로 밀었다. 목이 조금 말라 생수병을 집어 열었다. 생각에 빠진 건지 허공을 보며 흐음, 하고 꼭 탐정 같은 추임새를 보였다.



“행사가 어떻게 잡혔을까?”

“풉.”

“악 더러워!”


 정국이 비명을 질렀다. 사레가 들린 지민이 켁켁거렸다. 켁, 미, 미안. 정국이 지민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일부러 그랬죠.”

“설마 내가 그랬겠니…정국아 너한테 붙잡히면 나는 한 방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단다.”



 정국이 의심하듯 지민을 보다 순순히 항복하며 양손을 허공으로 번쩍 드는 지민에 이번만 용서해주겠다는 아량을 베풀었다. 고맙다…. 물을 닦아낸 정국이 다시금 의문을 표했다.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우리가 거기 올라갈 급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새로 오신 실장님이랑 매니저 형도 이상해. 어떻게 우리 회사에 왔을까요? 나 같으면 망한 회사 절대 안 올 거 같은데. 인생 망칠 일 있어요?”

“…정국아 난 가끔 생각해. 네가 하준이 형보다 막말을 잘하는 거 같아….”

“뭘요. 사실인데.”



 그리고 아무리 해 봤자 하준이 형은 못 이겨요. 지민은 연습실 바닥에 퍼져 여기가 바로 내 묫자리라고, 쉬는 시간 동안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고 선포해놓은 하준을 흘끔 바라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방금 부활한 좀비 같기도 했다. 이기려면 조금 더 분발해야겠는데…. 지민이 중얼거렸다. 정국은 지민의 헛소리는 익숙한 듯 무시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진짜 뭔가 이상한 거 같단 말이지….”

“…나?”



 지민이 눈을 데룩데룩 굴렸다. 음. 나는. 정국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지민의 의견을 기다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마냥 지민은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렸다.



“살다 보면 가끔 운이 좋은 날이 있을 수도…있지 않을까?”



 왜 길에서 가끔 돈도 줍잖아. 정국이 지민을 대놓고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난 지금 진지한데 형 또 장난 칠 거예요? 씩씩거리는데, 얼굴은 순해서 토끼가 권투글러브를 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민이 우물쭈물 말을 돌렸다. 글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우리한테 나쁜 것도 아니고….”

“그건 또 그렇단 말이지.”



 정국이 납득했다. 이때다. 지민이 냉큼 여러 말을 덧붙이며 변호했다. 그래. 어차피 좋은 거니까, 우리가 엄청 하고 싶어했던 일들이잖아? 잘되면 좋은 거지. 그리고 컴백 준비로도 정신 없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어. 또 봐봐. 벌써 한 달 가까이나 지났는데 사장님 멀쩡하시잖아. 또 사기 당하셨다고 경찰서에서 전화도 안 오고, 매니저 형이랑 실장님도 좋은 분들이시잖아. 다 우리를 위해 힘써주시는! 순식간에 메인래퍼 포지션으로 돌변한 지민을 정국이 멀뚱멀뚱 보다가 작게 칭찬을 건넸다.



“형 엄청 말 잘하네요. 그건 또 그렇긴 하니까…뭐….”



 정국은 영 찝찝한 듯했으나 지민의 설득에 넘어간 건지 더는 묻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안무 연습을 할 때보다도 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던 지민이 한숨 돌렸다. 자자. 다시 연습해볼까. 네! 선생님! 때마침 들려오는 안무 트레이너의 외침에 벌떡 도망가듯 튀어나갔다.


 지민도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었다. 단순한 행운이라고 하기에 이 망한 소속사에 일어나는 기적은 너무나도 큰 것들이었다. 집도 없이 생활하는 사장 형편을 볼 때 이만한 규모의 투자라면 복권당첨이라도 돼야 말이 됐다. 이것 역시 하얀 얼굴의 스폰서가 해주는 것들이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소속사에 들어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만큼 지민은 눈치가 느리지 않았다. 콘서트도, 그리고 컴백도. 모두 다 그의 손에 의해서 일어나는 기적들이다.


 지민은 안무 연습 다음 이어진 운동 스케줄에서 땀에 푹 절은 운동복을 갈아입으며 한숨을 폭 쉬었다. 그는 대체 왜 이런 혜택들을 주면서 불러주지는 않는 걸까? 웃긴 상황이 됐다. 스폰서는 평생 남처럼 살자는 듯 부를 생각 하나 없는데, 스폰을 받는 사람만 이제나 불러주려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사장님은 정말 내가 아예 안 보고 싶으신 걸까?



“…….”



 나는 보고 싶은데…. 윤기를 만나 열심히 소개하고 싶었다. 저 열심히 컴백 준비하고 있어요. 부사장님이 또 도와주신 거죠? 해주신 덕분이에요. 꼭 멋진 무대를 보여드릴게요. 이렇게도 했고, 저렇게도 했다고 선보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지민은 제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사장을 통해 먼저 연락을 보내는 둥 건방진 일은 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또 하나의 위험이 더 있었다. 멤버들 중 제일 단순한 사고방식을 지닌 정국이 요즘 일어나는 사건들을 의심한다는 건 다른 멤버들도 어느 정도 의심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왜 우리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지? 다들 당장 다가오는 컴백과 무대가 기뻐 언급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눈치 챌지도 모른다.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한 명이라도 알면 재난이다. 절대. 몰래 스폰을 하러 나갔다고 한다면 멤버들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물론 흔히 스폰에서 안 좋게 그려지는 이미지의 일들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민은 윤기와의 만남은 평생 비밀로 가져가기로 마음 먹었다.



“형 뭐해요? 집에 안 가요?”

“어, 어?”



 정국이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윤기 생각에 넋을 빼고 있던 지민이 냉큼 고개를 흔들었다.



“가야지. 안 갔다간 푸쉬업 100개 더 할지도 모르는데. 다른 형들은?”

“먼저 갔어요.”

“정국이 너만 나 기다려준 거야?”



 아이 우리 막내. 내 새끼 기특해애. 지민이 정국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겨주었다. 정국이 기겁했다. 아 뭐하는 거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지민은 타격 없이 히히 웃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형이 사줄게.”

“진짜요?”



 나 과자도. 더 활발해진 정국이 의욕적으로 벌떡 일어나 지민을 잡고 문 쪽으로 이끌었다. 형 빨리! 아 알았어. 봉제인형마냥 질질 딸려가던 지민의 발걸음을 돌연 울리는 진동이 막았다. 지민의 폰이었다.



“잠깐, 잠깐만. 사장님한테 전화 왔다.”

“갑자기?”



 정국의 말대로 뜬금없는 연락이긴 했다. 오늘은 운동으로 모든 스케줄이 끝났다. 그러게. 지민이 전화를 받았다. 어어, 지민이니. 네. 지금 막 운동 끝나고 집 가려고요! 전화는 짧게 끝났다. 사장의 전달내용은 간단했다. 잠깐 가기 전에 사무실에 들리라는 말이다.



“사무실로 오라는데?”

“지금요? 왜지?”

“글쎄.”



 막 정국와 함께 문을 나서려던 찰나였다. 지잉 짧은 진동이 하나 더 오더니, 화면에 문자가 떠있었다.


[혹시 멤버들이랑 같이 있으면 혼자 오렴.]


 지민이 발을 멈췄다. 혼자. 사람은 으레 어떤 기운을 감지하는 기관이 있다고 한다. 전등에 불이 반짝, 들어오는 것처럼 지민의 감지센서가 켜졌다. 이 연락은.



“왜요?”

“…정국아, 어, 나 혼자 다녀올게. 별일 아니라서 혼자 갔다 오면 될 거 같아. 아이스크림 사서 먼저 숙소 가. 너 피곤하잖아.”

“같이 가도 괜찮은데.”

“아니!”



 지민이 냉큼 반박했다가, 눈을 굴리고는 다급히 뒷말을 이어 붙였다.



“나 개인 상담할 것도 있어서.”

“…형이요?”

“어어. 요새 좀 고민이 있어서. 별 건 아닌데! 같이 하기는 좀 민망한 거라….”



 정국은 말없이 지민을 빤히 보았다. 지민은 침을 괜히 꿀꺽 삼켰다. 그러나 이내 정국은 별 다른 질문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다녀와요. 대신 나 아이스크림 말고 과자도.”

“자 카드.”



 지민이 정국의 손에 카드를 척 맡겼다. 마음껏 먹어! 그리고는 착하다며 정국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준 지민이 헬스장 밖으로 나섰다. 은근히 빠른 발걸음에서 신남이 엿보인다.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새 뜀박질까지 해서, 지민의 뒷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게 됐다. 정국이 턱을 작게 긁적였다.



“…갑자기 뭔 신나는 일이라도 있나.”



 사장님이랑 만나는데 신나는 일이 왜 있지? 따로 뭐 밥이라도 사주신다고 했나. 예전 콘서트에 선다고 들었을 때와 같이 꺼림직한 기분이 몰려왔다. 이 기분은 형들과 내기에서 졌을 때나 느끼는 그런. 그러나 그는 곧 지민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주의를 흩트렸다. 어차피 사장님한테 가는 건데 큰 위험이 있으리라고. 그 어떤 상상도하지 않은 채 느긋이 헬스장을 떠났다.








 사장은 고민했다. 며칠 전, 송영으로부터 연락이 다시 왔다. 계약을 해 사람을 보내겠다고 한 이후, 완전히 기획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쪽에서 들이미는 옵션들이 워낙 화려하니 얌전히 고집이 꺾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심지어 자식처럼 아끼는 멤버가 가져온 기회이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그쪽의 선택들이 자신이 했던 예전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장은 완전히 노예처럼 스폰서로부터 오는 연락에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기 바빴다. 자존심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렴. 다시 내 새끼들이 잘된다는데.


 따라서 이번에도 온 비서의 연락에 사장은 전화를 받기 전부터 저자세를 유지하며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전화를 받았다. 예예, 연락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일로 또…. 그는 추측했다. 또 어떤 통보성 발언을 하고 끊을지. 그러나 늘 일 이야기만 사무적으로 꺼내던 비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왔다.


 지민씨와 한번 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만.


 사장은 기겁했다. 물론 그날 이후 지민의 설명에 따르면 성상납을 요구하는, 그런 미친 스폰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돈도 잃고 명예도 잃고 집까지 잃어본 경험을 비춰볼 때 사람이란 생물은 쉽게 믿을 것이 못 됐다. 마음이라는 것이 원래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다. 혹시라도 마음을 바꿔 사랑스러운 제 새끼한테 어둠의 손길을 뻗는다면? 거기다 이미 투자를 한 것들까지 있으니, 현장에서 지민이 스폰서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더욱 어려울 터였다.


 영 내키지 않았다. 이미 스폰서와 연결된 일부터 모순이지만, 가능하면 사장은 지민이 이제부터라도 얌전한 울타리 안에서, 더 이상은 이런 접촉 없이 지냈으면 싶었다. 그…예, 당장은 답변이 힘들고요. 제가 한번 상황을 보겠습니다, 예예. 가능한 말을 돌리고 돌려 끊은 후 그는 결심했다. 지민의 의사가 부정적이라면 결코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더해 겁도 없이 또 나간다고 하면 설득이라도 해볼 요량이었다. 지민아 이제 그런 자리는 가능한 자제하는 게 어떻겠니.


 똑똑.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지민이 들어왔다. 사장님 저 왔어요오.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해서인지 유독 더 어려 보였다. 성인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다. 어 왔니. 지민이 조금 급한 발걸음으로 사장에게 다가왔다. 사장은 지민의 눈이 다른 때보다 조금 초롱초롱 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오늘 운동이 좋았나?



“하실 말씀이란 게 뭐예요.”

“어어.”



 괜히 또 목이 탔다. 그래도 아예 처음 스폰을 권했을 때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이게…그쪽에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말이다.”



 사장이 냉큼 뒤의 조건들을 덧붙였다.



“지민이 네게 부담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단다. 혹시라도 꺼려지는 부분이 단 한 개라도 있으면 내가 그쪽에 말을 잘 둘러댈 테니 지민이 너는 편하게 거절의사만 전달….”

“정말 부사장님이에요? 제가 보고 싶으시대요?”

“…응?”



 사장이 당황하여 하던 말도 잊고 버벅거렸다. 지민이 대놓고 반짝거리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사무적인 전화를 상기하며 사장이 얼결에 순순히 답했다.



“그런…말은 하지 않으셨는데.”

“아….”



 지민이 급격히 실망한다. 그렇구나…. 뭐지? 왜 내 순수한 아이돌이 스폰서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만 같지? 사장은 당황하면서도 평소 습관대로 지민을 오구오구 달래주었다.



“…그렇지만 비서 분이 연락 주셨으니 그렇지 않을까?”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 애초 스폰이란 게 그런 의도가 있잖니.”



 그래서 안 좋은 거고. 사장은 뒷말을 삼킨 채 핀트가 엇나간 대화를 정상으로 되돌리려 했다.



“그래서 지민이 네 의사는 어떠니? 내 입장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이런 만남은 가능하면 피….”

“갈래요.”

“…….”

“가고 싶어요. 갈래요.”



 부사장님 만나고 싶어요. 지민은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애초 갈 거냐, 말 거냐는 질문조차 필요 없는 듯했다. 진심 가득한 지민의 눈을 보니, 준비해왔던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연설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차마 말릴 수 없는 태도였다. 대체 그 짧은 두 번의 만남 동안 애를 뭘로 꼬셨길래…?



“언제 만나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 그건 아마 의사를 전달하면 연락 주시겠지…?”

“그렇구나…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순수한 애정이 투명하게 엿보인다. 사장은 말을 잃었다.



“다른 하실 이야기는 더 있나요?”

“연습 열심히 하고…숙소 조심해서 들어가라….”

“네! 사장님도 좋은 꿈 꾸세요!”



 지민이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 듯 사무실을 들떠 빠져나갔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사장은 연신 지민의 표정을 되새겼다. 계속 만나게 두면 뭔가 일이 날 것만 같은…아니. 무슨 소리야. 우리 지민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관계에서. 허참. 사장은 혼돈스러운 기분에 지민의 강단 있는 성격과 높고 바른 도덕심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동시에 비서에게 연락을 남겨놓았다.


 네, 날짜 정해주시면 바로 자리 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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