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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처음 밀 배식을 한 이후 나만 보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케이지 근처에만 다가가도 집 안에서 바짝 긴장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자신을 잡아먹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밥을 줬는데 인간이 왜 더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식성에 맞는 음식이 아니라 그런가. 핸들링 좀 하려고 손을 앞에 댔더니 발로 팍팍 차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남준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인간은 그런 먹이를 먹지 않는다며, 먹었다간 밀이 가진 산성에 인간이 통째로 녹아버렸을 거라고 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부드러운 음식들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E등급답게 내장기관도 참 연약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더니 남준이 귀찮은 건지 애완인간 설명서를 보내준단다.


 

[그런데 형 이름은 붙여줬어요?]

 


 막 끊으려던 찰나 남준이 물었다. 예상치 못한 주제였다.


 

…이름? 뭐 어떤 거.”

[주인 맞아? 너무하네. 어떻게 이름 붙여줄 생각도 안 할 수가 있어요.]

.”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우주인이 기르는 애완생물에게 이름을 붙여주긴 했다. 나는 급히 변명했다. 이름 당연히 붙여줄 생각이었지. 신중하게 고민하느라 못 짓고 있었어. 그러나 붙어 다닌 세월이 있어 쉽사리 믿지 않는 남준에게 급히 볼 일이 있단 핑계로 도망치듯 전화를 끊었다.

 

 이름, 이름…. 그런 것도 정해야 하다니. 전쟁터에서 레이저건으로 적의 눈알을 지지면 지졌지, 역시나 생명을 가꾸고 보듬는 일은 나에게 영 어색했다. 결국 방을 뱅뱅 돌며 고민하다 인간의 케이지 앞으로 다가갔다. 인간을 보면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인간은 창문으로 다가오는 날 보고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다시 한번 끌어 올렸다. 어제 케이지 안으로 도로 넣어놨을 때만 해도 바지가 없었는데, 아마 내가 못 본 사이 밖으로 나와 바지를 다시 주워 온 듯했다. 인간이 작게 중얼중얼거린다. 오지마, 미친놈아. 대충 저런 형태의 언어였는데, 인간의 언어는 의미를 모르니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반겨주는 거야?”

 


 쫑알거리던 인간의 입이 딱 닫힌다.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긴 눈빛만 보냈다. 나는 인간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인간은 아예 등을 돌리며 내 손을 외면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강제로 힘껏 인간을 쥐면 인간은 내 손에서 터져버릴 거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케이지에서 손을 뺐다.


 

오늘 네 이름을 지어줄 거야.”

 


 남준이 선물해준 인간은 성체라고 했으니 아마 인간이 지구에서 불리던 이름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이전 행성의 이름까지 굳이 번거롭게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난 인간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아무거나 나열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친숙한 단어들이었다.


 

바주카포?”

 


 등만 보이던 인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음에 안 든단 건가. 나 역시도 딱히 입에 붙지 않았다. 바주카포는 내가 선호하는 유형의 무기도 아니었다. 바로 다른 이름을 꺼냈다.


 

레이저소드?”

 

 이건 나쁘지 않다. 레이저소드는 잘만 쓰면 괜찮은 무기였다. 잘 잤니, 레이저소드야. 밥 먹자, 레이저소드야. 어감도 괜찮은 것 같다. 기대하며 인간을 보니 인간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귀를 후비적거리고 있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안 좋단 건가 보다.

 

 그래도 인간은 관심이 생긴 건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욕을 얻은 나는 열심히 다른 이름 후보들을 꺼냈다. 테이저건? 블래스트밤? 인비저블아머? 어쩐지 이름들을 나열하면 나열할수록 인간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플라잉머신…아니다.”

 


 결국 그 작은 시선에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에게 그나마 친숙한 다른 이름이라면…내 이름밖에 없는데.


 

민…미니?”

 


 인간의 표정이 미묘하다. 그래도 아까처럼 한심스러운 시선은 아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이름을 입안에서 여러 번 굴려보았다. 미니, 미니, 미니. 잘 붙고 괜찮은 거 같다. 내 이름과 비슷하다는 것도 좋았다. 만족하며 인간을 불렀다.


 

미니야.”

 


 알아들은 건지 인간이 대답처럼 목소리를 냈다. 중간중간 '여기서도 작다고, 재수없는, 네 맘대로 해라' 같은 언어들이 끼어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반응을 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든다는 의미 같았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미니야. 인사를 건네며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괜찮은 이름을 지어준 거 같다.

 



 

 

***

 




 

 롬이 식탁 위로 종이뭉치들을 내밀었다.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식사를 하고 있던 나는 바로 식기를 내려놓고 롬이 가져온 종이를 집어 들었다. 가장 첫 번째 종이에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애완인간사육장 엄선 100>


 

수고했어.”

 


 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기분 좋게 갸르릉 거리는 롬에게 이제 그만 그릇을 치워달라고 했다. 식사를 더 안 하냐는 눈빛으로 보기에 종이뭉치를 흔들었다. 이거 보려고. 롬이 새삼스럽단 눈빛을 보낸다. 그도 그럴만했다. 나조차 내가 다른 생물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신기했으니까. 괜한 민망함에 재빨리 방으로 사라졌다.

 

 종이뭉치를 펼쳤다. 첫페이지의 사육장은 전부 다 방이 한 칸짜리였다.


 

<기본 세트>

가성비 특급! 기본생활 가능한 사육장! 저렴한 값에 애완인간을 키울 수 있습니다. 임시보호자에게 추천. 인간 수컷과 암컷 합사시 개체번식이 빠릅니다.

주의사항

-인간 성체 키 175cm 이상 사용 불가능

 


 남준이 사준 기본 케이지보다 조금 좋은 수준이었다. 인간이 있는 케이지를 잠시 바라보았다. 집에 아무런 가구도 들여놓지 않아 인간이 바닥에 쭈그리고 누워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맨 뒷페이지 쪽으로 넘겼다. 지금 사육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화려한 사육장들이 쫙 깔려있었다.


 

<도시 세트>

애완인간을 여럿 키우는 분에게 적합합니다. 인간이 지구에서 생활하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주의사항

-애완인간 사이 범죄 유발, 차별 등이 발생하여 인간이 자살하거나 살해당할 수 있습니다.

 


 애완인간을 여럿 사들이는 사람들을 위하는 모델들이 많았다. 어차피 미니 말고는 더 들일 생각이 없으니 해당이 되지 않는다. 조금 더 페이지를 앞쪽으로 넘겼다. 드디어 미니에게 어울리는 사육장들이 조금씩 보였다. 애완인간을 하나만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페이지였다.


 

<자립형 세트>

무기력한 애완인간에게 안성맞춤! 하나하나 애완인간이 손수 가꿔나가는 사육장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애완인간의 능력을 단 시간 내에 빠르게 개발시킬 수 있습니다.

주의사항

-지능이 극도로 낮을 경우, 반대로 애완인간의 무기력증이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미니는 지능이 낮은 편은 아닌 것 같았다. 밀을 보고 도망 다닐 줄도 알았고, 위급상황에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지도 알았으며, 맨 살을 드러내는 데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도 했다. 난 고개를 들어 케이지를 확인했다. 누워있던 미니가 어느새 일어나 창문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니 움찔하며 다시 창문 쪽에서 후다닥 멀리 떨어진다. 역시 지능이 낮진 않다.

 

 자립형 세트의 세부목록을 살폈다.


 

<구성품>

직접 만드는 뜨개질 옷 세트

직접 만드는 전등 세트

직접 만드는 테이블 세트

직접 만드는 침대 세트

직접 만드는 의자 세트

직접 만드는 냉장고 세트 (감전주의요망)

직접 만드는….

 


 알찬 구성이다. 게다가 자립형세트는 사육장 안에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밭도 갈고 인간이 식물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집 안에 박혀 있는 미니만 보는 게 아니라, 밖을 돌아다니는 미니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손을 내밀어도 바로 바로 올라올 수도 있지 않을까. 미니가 손에 올라왔을 때 닿은 따뜻한 체온을 다시 되새김질하며 자립형 세트를 주문했다.

 

 

 

 

 

 배달 왔습니다! 자는 와중에 큰 목청이 울려 잠이 깼다. 나는 엉망이 된 머리를 정돈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슬리퍼를 직직 끌고 밖으로 나왔다. 우주화물 배송직원이 커다란 박스를 옆에 끼고 날 보고 있었다.


 

애완인간 사육장 주문하셨죠?”

.”

여기 수령 싸인 좀 해주세요.”


 

 아직 잠이 덜 깨 한쪽 눈은 찡그린 채 대충 싸인을 휘갈겼다. 됐나요. , 확인 완료되셨어요. 물건 안쪽으로 옮겨드릴까요? 아뇨. 제가 할게요. 나는 애완인간 사육장을 옆구리에 끼웠다. 이상하게 배송직원이 떠나지 않고 앞에서 미적거렸다. 뭐 문제라도 있나 바라보니 배송직원이 긴가 민가 하는 얼굴로 물어왔다.

 


저…혹시 민윤기 함장님이세요?”

…아 예…일단은….”

진짜요!? 그 전설의 스로크 함대!”

 


 우주인들은 퇴역하기 전 내 함대를 저런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곤 했다. 예, 뭐…. 민망함에 목소리가 작아졌다. 배송직원이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우와, 팬이에요! 월루펜 행성에서 블랙홀 입구 닫으신 거 진짜 멋있으셨어요. 함장님 덕분에 우리 행성이 안 날아가고 살았어요. 어머니께서 이민종족 되는 건 아니냐고 맨날 걱정하셨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쏟아지는 칭찬이 민망해 고개를 대충 숙이며 끄덕였다. 예예, 감사합니다. 종종 이렇게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아직도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모르겠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배송직원은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은퇴하셔서 못 만나 뵐 줄 알았는데 역시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나는 헛기침을 하며 하루 내내 떠들 것 같은 배송직원의 말을 끊어냈다.


 

제가 이만 바빠서….”

, 잠시만요! 싸인 하나 더 해주세요. 혹시 다섯 개는 안 되나요? 아니면 세 개만이라도….”

 


 배송직원은 입이 귀까지 걸려 싸인을 받아갔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힘차게 배송직원이 사라지자마자 곧장 집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또 알아보는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

 


 



 애완인간 사육장을 챙겨 방으로 들어오니 미니가 창문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커다란 박스의 등장에 이번에는 미니도 바로 도망가지 않고 궁금증을 드러냈다. 나는 자신감 있게 새로운 사육장을 기본 케이지 옆으로 꺼내놓았다. 기본 케이지 속 집의 문을 열고 미니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당연하게도 미니는 내 손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조금 난감했다. 강제로 미니를 잡는 건 자제하는 편이었다. 발버둥치다 미니의 팔이나 다리나 부러질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계속 안 좋은 사육장에서 살게 둘 순 없으니까. 나는 미니를 조심스레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악! ! 미니가 손에서 발버둥을 쳤다. 조금 세게 힘을 주니 바로 약한 신음을 내며 몸에서 힘을 뺀다. 미니의 눈에 눈물이 조금 고인 것처럼 보여, 급히 새로운 사육장에 미니를 놓아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미니가 이게 뭐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게 귀여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앞으론 여기서 살면 돼. 좋지.”

 


 쾅. 미니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사육장의 집 문을 닫고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로 문을 여는 걸 보니 잘 적응할 거 같다. 내일 미니가 얼마나 많은 가구들을 만들어 놓을지 기대가 됐다.

 

 

 

 

 다음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미니의 사육장으로 갔다. 일어나도 침대에만 하루 종일 누워있던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얼마나 집을 만들어 놨을까. 침실은 다 만들었나. 그리고 머지 않아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다. 이럴 수가. 미니가 지능이 낮은 편인 건가. 집은 텅 비어있었다.

 

 미니는 고작 테이블과 의자를 하나 만들어 놓은 채 바닥에 웅크려서 자고 있었다. 침대는 기본으로 만들어놨을 줄 알았는데. 누워있는 미니 주변으로 건축도구와 부자재들이 굴러다니고 있긴 했다. 반쯤 풀린 털뭉치도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옷과 침대를 만들다 중간에 자버린 듯싶었다. 가만 보고 있자니 미니가 꾸물꾸물 눈을 뜨며 일어났다. 그러더니 널부러진 주변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뻗어 누워버린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

 


 나는 그래도 미니가 침대까지는 만들고 그 위에서 잤으면 싶었다. 바닥을 잠자리로 삼는 건 인간에게도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남준이 보내준 애완인간 설명서의 지구에선 집이 없는 가난한 인간이나 어쩔 수 없이 길거리 바닥에서 잠이 든다고 했다.


 

미니야, 일어나봐.”

 


 나는 한 번 더 노력해보라는 의미로 뻗어 있는 미니에게 톱을 들이밀었다. 미니가 눈을 번쩍 떴다. 제 목 가까이 다가와 있는 톱을 발견하고는 또 목청을 높였다아악으악밀을 봤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왜 이러지? 만들라는 게 싫은 건가? 비명만 꽥꽥 지르며 뒷걸음질을 친다. 만들기 싫다는 뜻인 거 같다. 포기하고 톱을 내려놓았다그 순간이었다.


 씩씩 거친 숨소리를 내던 미니가, 돌연 톱을 쥐더니 내 손을 향해 돌진했다. 톱이 엄지손가락을 푹 찔렀다. 난 미니가 찌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의미지? 미니가 나에게 먼저 다가온 적은 처음이다. 미니는 가만히 있는 나를 보더니 놀라 톱을 손에서 놓쳤다. 나는 눈을 굴리며 열심히 접촉의 의미를 추측했다.


 

놀아달라는 거야?”

 


 자. 아예 더 잘 찌르라고 손을 활짝 펴 대주었다. 어차피 찔려봤자 펜으로 손 끝을 콕콕 찌르는 수준에 불과하지 않았다. 애완인간은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 건가미니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찡그려진다. 그러더니 곧 반응해주는 내 손을 무시하곤 시무룩한 얼굴로 톱을 내려놓고 바닥에 힘없이 털퍽 주저앉았다. 미니는 아까보다 더욱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집으로도 옮겨주고, 밥도 제때 제때 챙겨주고, 놀아주기까지 하려는데 미니는 죄다 거부하기만 하고 날 따르지 않는다. 더 만들어보라고 강요하는 것도 싫다고 하니 바로 물리지 않았는가. 이정도 노력이면 어지간한 애완생물은 이미 주인이라고 백 번은 넘게 따랐을 거다. 약간 짜증이 났다.


 

뭐가 문제야.”

 


 나는 미니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미니는 매번 작게 꿈틀거리던 반응도 없이 가만히 그대로 앉아있었다.


 

…….”

 


 오히려 미니가 더 생기를 잃는 거 같다. 하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실망감으로 피곤해진 나는 조용히 사육장 앞에서 자리를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애완인간은 키우기 참으로 까다로운 존재다.

 

 



 

***

 



 

 

 나는 롬이 가져다 줬던 종이뭉치를 다시 펼쳤다. 당분간 볼 일이 없을 줄 알고 구석에 처박아 놨어서 찾기 힘들었다. 귀찮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미니의 사육장을 다시 고른다고 생각하니 거부감이 없었다.

 

 사육장을 고르는 기준을 다시 정했다. 모든 게 완성되어 있어야 할 것. 지능이 낮아도 괜찮을 것. 주의사항이 없을 것. 이번에는 반드시 미니의 마음에 들 만한 사육장을 목표로 종이뭉치를 한 장 한 장 정독한 끝에 미니와 딱 맞는 사육장을 발견했다.

 


<환상 세트>

풍경을 취향대로 가상으로 만들어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애완인간은 사육장 바깥을 볼 수 없고 주인이 설정한 풍경을 봅니다.

주의사항

-없음.

 

<구성품>

쇼파 (3인용)

옷 여벌 (하얀색 반팔, 스웨터, 하얀 바지, 검은 반바지 총 2)

-우리 아기 한글 첫걸음

-SNS스타! 당신도 할 수 있다!

-수능특강 화학

담요

망원경 (지구에서 직접 공수)

그 외 기본생활 소품 약 46가지

 

 가상 풍경설정 기능. 이 기능이면…. 잠시 미니를 떠올리며 고민해보던 나는 구성품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환상세트를 주문했다.

 

 



***



 

 

 

 환상세트는 아주 빠르게 배송되었다. 다행히도 지난번에 온 배송직원이 아닌 다른 직원이 왔다. 감사합니다, 수취확인 완료됐습니다. , 수고하세요. 나는 지난번 자립세트보다 더 커다란 박스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미니에게 여태 내가 본 것 중 가장 예쁜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육장에 새로 단 인공태양조명도 시간에 맞춰 뜨고 지게끔 조절했으며, 밤 시간의 천장은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우주로 설정했다. 수백 년간 이 광활한 우주를 떠돌면서 만난 우주 중 가장 예쁜 우주였다. 별을 촘촘하게 박아 어디를 봐도 찬란히 빛나게 했다.

 

 거기에 커다란 창문은 열면 드넓은 푸른 바다가 나타나게 했다. 우주에서 아름답기로 손 꼽히는 티르타 행성에서 본 풍경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 위로 잘게 쪼개진 빛 알갱이들은 우주의 별과 비슷하면서도, 오직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별이었다. 그것들을 미니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미니야. 새 집이야.”

 


 설정하는데 하루를 다 썼다. 나는 들뜬 얼굴로 새로운 사육장을 놓았다. 미니는 눈에 띄게 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미니를 조심스레 집어 새로운 사육장에 내려주었다한번 겪어서 그런지 손에 쥐었을 때 커다란 반항은 하지 않았다.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또 무슨 짓, 이 또라이. 내려놓으니 이젠 곧잘 미니가 환상세트에 세워진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설정해놓은 풍경을 작동시켰다. 인공태양조명이 꺼지고 밤이 되었다. 주변이 어두워지니 놀란 미니가 창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하늘을 확인한 미니의 얼굴이 잠깐 멍해진다. 까만 밤하늘을 보던 미니가 급히 집의 옥상으로 뛰어올라왔다. 미니의 작은 가슴팍이 바쁜 호흡으로 들썩거렸다.

 

 좋아하겠지. 미니가 방긋 웃는 걸 보고 싶었다. 얼마나 좋아할까. 기대하며 미니의 반응을 기다렸다.


 

―으흐….

 


 그러나 미니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왜지. 갑자기 어디가 아픈가. 그러나 눈은 똑바로 밤하늘을 향하고 있으니, 신체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 게 확실했다. 어떡하지. 애완인간 안내서엔 인간이 극도의 감정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미니가 슬픈가? 처음 집에 왔을 때처럼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지 않으니 아니니 그도 아닌 듯하다. 그럼 왜 우는 거야. 아직 인간이 널리 알려진 애완생물이 아니라 모아진 정보가 부족한 것 같았다.

 

 미니가 고요히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도대체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 우선 같은 시타족이 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같은 종족조차 달래본 적이 없으니, 이 자그마한 인간을 데리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도통 잡히지 않았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그러나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어떻게든 해보려 손만 어정쩡하게 뻗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담요를 집어 미니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노란 담요에 파묻힌 미니는 여전히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미니의 곁을 가만히 지켜주었다. 눈물이 그치고 미니가 잠이 들 때까지.

 

 잠이든 미니를 소중히 들어 침대 위로 옮겨주었다. 한참이나 잠이 든 미니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미니에게 전염된 건지 알 수 없이 울렁거리는 감정을 느끼면서. 정말 한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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