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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SF물









우주전쟁이 종식됐다. 500년만의 종전. 새로 발표된 우주협약선언서. 허공에 동동 뜬 화면 속 우주연합장이 길디 긴 연설문을 읽었다.


[이번 새로운 우주협약선언서에 따라 불가침행성이던 지구가 교류행성으로 변환되었습니다. 지구의 80퍼센트를 점령한 생물체 ‘인간’은 지능, 신체능력, 학습력, 환경적응력 등을 고려해 E등급으로 분류되었음을 선언합니다. E등급에 맞게 인간 역시 애완사육 가능하며, 사육시 반려우주생물보호법에 따라 취급됨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난 우주연합장의 목소리가 시끄러워 화면을 꺼버렸다. 이제 정말로 완전히 종전이라는 게 실감났다. 종전…. 누구에게나 반가운 소식이지만 나에게만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내게 종전은 직업상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퇴역군인. 이제는 그것이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까.



“…….”



 삶에 의미가 전부 없어진 것만 같았다.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비며 피에 흠뻑 적셔지는 삶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삶은 내 존재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는 증거.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증거. 태양에 녹아버린 슬라임 종족처럼 침구에 누워있자니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가 무료함에 머리에 총구를 당길 거 같다며 매일같이 드나드는 인물이 한 명 존재했다.



“형 또 하루 종일 이러고 있으려고요?”



 같은 시타족인 남준이 안타깝다는 듯 짙은 한숨을 쉬었다. 저 꼴을 보고 누가 우주영웅인 줄 알겠어.



“윤기 형님 좀 일어나봐요. 형 오늘까지 합하면 한 달 동안 침대에서 꼼짝 않고 있다는 거 알아요? 무덤에 누운 사람도 형보다는 많이 움직이겠어요.”

“뭔 상관이냐. 이제 아무데서도 연락 안 오는데. 가라. 귀찮게 하지 말고.”



 나는 남준으로부터 등을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남준의 예상은 사실이다. 무엇도 내 흥미를 당기지 않는다. 이 미칠듯한 무료함에 어느 날 충동적으로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눌지도 모른다. 남준은 내 말을 들었음에도 나가긴커녕 테이블 의자를 빼고 앉아 본격적인 대화를 걸기 시작했다. 같이 전쟁터 돌아다니며 우주생물 찢어 죽인 건 똑같은데, 나와는 달리 참 인정 많은 놈이다.



“형도 뭘 키워보는 건 어때요. 요즘 힐링이다 뭐다 해서 인기 많잖아요.”

“됐어. 내가 무슨….”



 전쟁터 돌아다니면서 터뜨린 머리가 몇 개인데. 알뜰살뜰 무언가를 돌보는 건 전혀 내 체질에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분명 머지않아 죽이고 말 거다. 내 심드렁한 반능에도 남준은 물러나지 않았다.



“뭘 키우면 분명 달라질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코코 키우기 전에는 내 인생 다 의미 없어진 거 같고 여태 그 동안 뭘 했나 싶고….”



 코코는 남준이 키우는 애완우주생물이었다. 확실히 남준은 종전 전 호출이 잦아드는 순간부터 나와 같이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코코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부터 조금씩 남준의 얼굴에 웃음이 다시 돌아오긴 했었다. 그건 너니까 그런 거지. 여전히 내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자니 남준은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에이 형이랑 내가 뭐가 달라서요. 제가 많이 도와줄게요. 죽일까 봐 그러는 거면 이럼 됐죠?”



 머지 않아 미래가 그려진다. 내가 방치해놓은 애완우주생물을 남준이 떠맡아 데려가는 모습이. 어차피 저런 단호한 말투의 김남준은 내가 무얼 말하든 자기 뜻대로 할 것이다. 역시가 침묵은 긍정이라며 남준이 들떠 이것저것 정하기 시작했다.



“코코처럼 베어구르쪽은 어때요? 음 베어구르쪽은 매일 산책시켜줘야 하긴 하는데…아 알았어요. 다른 쪽으로 생각해볼게요.”

“이거 지금 내가 말하면 의견 반영 되는 거냐?”

“오 형 인간은 어때요? 이번에 지구등급 E로 바뀌었잖아요. 안 그래도 대거 포획해왔다고 하더라구요. 이번에 경매도 열린다던데.”



 저거 봐. 아예 키울 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있다. 남준이 눈을 반짝거렸다. 안 그래도 저 인간 진짜 궁금했거든요. 예전에 태양계 워프이동 하면서 지나갔을 때 스쳐 지나가다 봤었잖아요. 우리랑 비슷하게 생겨서 우주최약체인 게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속사포로 중얼거리는 남준을 무시하며 난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귀를 막았다. 어서 잠에 빠져 이 무료함에서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었다.






***






 김남준의 행동력은 대단했다. 고작 10일만에 그는 케이지와 인간을 분양 받아 내 집을 다시 방문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준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양팔에 가득 들고 있는 짐이며, 손에 들린 케이지며. 흡사 이사라도 오는 수준이다.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챈 남준이 씨익 웃으며 케이지를 대놓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한대 패주고 싶다.



“이게 제일 기본 케이지래요. 요즘 인간이 제일 인기 많아서 이것도 구하기 힘들었어요. 케이지 마저 거의 다 품절이더라고요.”



 그럼 그냥 안 키우면 될 텐데. 대놓고 표정에 내 속마음을 드러냈으나, 남준은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설명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인간을 얼마나 구하기 힘들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괜찮은 인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세상에 양심 없는 놈들이 병 걸린 거까지 은근슬쩍 속이고 팔더라니까요. 그렇게 팔린 거 한 달도 안 됐는데 죽어서 항의 오는 게 태반이래요. 게다가 순수혈통이라더니 다른 종족이랑 교배시켜서 잡종을 속여 파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소문 듣고 암시장까지 가서 프라이빗 경매장 가서 비싸게 주고 사왔어요. 딱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싶어서 데려왔다니까요. 심지어 언어교육도 다 끝마친! 진짜 제 전재산 다 털었습니다, 형님.”



 남준이 제 어깨를 두들기며 생색을 냈다. 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안 키우면 전부 다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분명 눈치챘을 남준은 날 무시한 채 케이지 옆으로 조그마한 박스를 올려놓았다. 커피잔만한 크기였다.



“생각보다 더 작네.”

“그죠. 그래서 더 귀엽지 않아요? 성체가 손바닥에 올려놓을 정도래요.”



 남준이 상상만해도 귀엽다며 실실 웃었다. 조만간 코코 말고 다른 우주애완생물을 데려올 것 같다. 남준은 곧 박스의 옆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옆면엔 네모난 자국이 있었는데, 아마 저 부분이 입구인 모양이었다.



“뭐하는 거야. 그냥 꺼내면 되잖아.”

“안돼요. 인간은 개별자아가 강한 애완생물이라구요. 자율의지가 크게 작용한다고 했어요.”



 그럼 키우기 더 귀찮은 거 아닌가. 이제라도 그냥 네가 키우라고 해야 되나. 고민하는 와중에도 작은 박스의 입구는 열릴 줄을 몰랐다. 난 박스를 가볍게 툭 쳤다.



“아무 반응 없는데? 오다 죽은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없는데…이상하다. 친구야?”



 남준이 결국 입구를 잡아 당겨 열었다. 허리를 굽혀 입구에 눈을 맞추고 안 쪽을 살펴보더니 난감하게 턱을 긁적거렸다.



“겁 먹은 거 같아요.”

“그럼 어떡해?”

“어음…나와봐, 친구야. 괜찮아. 쉬, 옳지. 괜찮다니까.”



 남준이 입구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올라오라는 듯 흔들었다. 아무 효과도 없는지 남준의 얼굴이 더욱 난감하게 물든다. 남준이 말했다.



“생각보다 개체가 개성이 뚜렷하면 말을 잘 안 듣는 경우도 꽤 있다곤 하던데.”

“그럼 반품해야겠네.”



 내가 냉큼 화색을 표했다. 아 형님. 남준이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며 반발했다.



“어쩔 수 없지. 말을 안 듣는데.”

“그건 그렇긴 한데…그것도 나름 키우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불량으로 반품되면 폐기처분 된다고 했었단 말이에요.”

“폐기처분?”

“말로는 폐기처분인데…불법으로 운영하는 인간개체번식장 같은 곳에 팔아 넘기겠, 어, 어!”



 남준이 반색하며 흥분했다. 결국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작은 박스 안의 인간이 반응한 모양이다. 옳지, 그래. 옳지. 뭐 그렇게 칭찬할 게 많은지 남준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며 천천히 박스에서 손을 빼냈다.



“귀엽죠? 팅커벨 종족 같죠? 인간 나이로 24살이래요.”



 남준의 손 위엔 인간이 달달 떨며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머리는 노랗고 몸은 하얗다. 확실히 우리 시타족의 생김새를 축소해놓은 모양이었다. 지구와 우리 행성 사이 미의 기준도 같다는 것을 적용해 보았을 때, 남준의 말대로 애완인간은 꽤나 외견만으로도 비싼 값어치를 하는 듯했다. 확실히 인간은 남준이 환장하는 것처럼 자그맣고 귀여웠다. 금색 머리카락이 복실복실하니 우주에서 외견으로 추앙 받는 팅커벨 종족의 느낌도 섞여있었다. 그러게. 귀엽네. 대충 긍정한 뒤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원래 이렇게 울기도 해?”

“뭐…그렇다네요. 인간은 감정표현이 겉으로 잘 나타나는 종족이라고 했어요. 사회화도 가능하고. 그래서 더 인기가 많은 거죠.”



 뭔가 귀찮아질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번엔 눈물을 뚝뚝 떨구며 벌겋게 변한 눈으로 인간이 나와 남준이를 번갈아 가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E급 애완인간의 분노에 반응하는 시타족은 없었다. 남준이는 귀엽다며 여전히 미소 짓고 있기 바빴고 난 귀찮은 짐덩이를 맡게 됐단 생각에 착잡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우주에서 손 꼽히는 전투종족에게 E급은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단순한 애완생물이었다.



“옳지. 이제 집에 가자.”



 남준이 잠시 뒤 인간을 기본 케이지에 넣어놓았다. 인간은 기본 케이지에 들어가자마자 텅 빈 케이지 속 놓여있는 옷을 허겁지겁 꿰어 입었다. 하얀색 상의는 커서 인간에게 맞지 않아 엉덩이부분까지 내려왔고, 하의는 아예 입을 수조차 없는지 흘러내리는 바지의 허리 부분을 꼭 부여잡았다. 그 모습을 본 남준은 아무래도 이 애완인간이 인간 종족에서도 작은 쪽에 속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형 나중에 이거 케이지도 바꿔줘야 돼요. 종류 엄청 많으니까 형 취향으로 잘 골라요.”

“어. 그러니까 일단 밥만 주면 산다는 거지?”

“아 진짜 형님, 이왕 키우는 거 잘 키워보세요. 예? 핸들링도 해주고 좀 놀아주기도 해야죠.”

“알았으니까 이제 가라. 눕고 싶다.”



 남준을 내쫓듯 손을 휘저었다. 남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와중에도 몇 가지 인간과 관련한 주의사항을 늘어놓았다. 사회화는 무작정 시키지 말고 주인과 친밀도를 쌓은 다음 시킬 것, 힘을 써서 핸들링 하면 짜부라질 위험이 있으니 주의할 것. 나는 급격히 피곤해지는 기분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남준을 어서 내쫓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응, 알아서 잘 키울 테니까 걱정 말고.






***






 인간을 담아놓은 케이지는 결국 내 침실 한 구석을 차지했다. 집안일을 관리하기 위해 데려온 일꾼, 캐티 종족 롬이 인간을 보며 입맛을 쩝쩝 다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루 만에 선물 받은 애완인간을 롬이 간식처럼 물고 뜯어 죽었다고 하면 김남준에게 1년 내내 구박받을 것이 분명했다.



“죽었나.”



 나는 인간이 담긴 케이지를 톡톡 쳐보았다. 케이지는 인간에게 막혀있는 건물로 보이지만 시타족의 눈엔 투명하게 보이는 구조로 제작되어있었다. 인간은 단 하나 있는 방의 구석에서 몸을 웅크려 앉은 채 하루 종일 가만히 있었다. 벌써 3일 내내 저러고만 있었다. 병도 없고 건강한 개체라고 했는데. 고민하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니 귀로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직 안 죽었군. 다행히도 인간의 건강엔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럼 대체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의아함에 남준에게 연락했다. 연락메일을 보내자마자 남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락을 누르니 허공에 커다란 화면이 생성됐다.



[인간이 안 움직인다고요?]

“응. 네가 데려온 날부터 쭉 그래.”



 남준은 인간이 하루 종일 울고만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쉽게 원인을 진단해주었다.



[간혹 슬픈 감정에 깊이 빠진 인간들은 아무것도 못하더라고요.]

“간단한 생존활동조차 거부해?”

[네, 밥은 한 4일정도는 안 먹어도 괜찮긴 해요. 좀 움직인다 싶으면 밥이랑 주세요.]



 남준은 생각보다 내가 신경 써주는 거 같다며 감동의 표정을 보내왔다. 바로 시체 치우는 거 싫어서 그래, 인마. 멋쩍음에 대충 대답하고 끊었다.


 난 다시 인간의 케이지 앞으로 다가갔다. 인간은 밖에서 내가 기웃거리는 걸 느낀 건지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기운 없이 다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음.”



 기운이 너무 없어 보이는데. 내일도 이 상태면 강제로 먹이를 투여하는 수밖에. 생각하며 난 케이지에서 관심을 끄고 침대 위로 기어들어갔다. 대충 노력했는데도 죽으면 남준에게 할 변명이 조금은 생기겠지.






***






 인간은 다행히도 다음날 쪼그려 앉아있던 자세에서 탈출했다. 기본 케이지를 걸어다니다 가운데에 털퍽 주저앉아 진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밥을 주면 받아먹을 듯 하다. 난 남준이 보여줬던 것처럼 케이지 속 문의 집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문을 여니 인간이 공격적인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직 주인이라는 인식이 없는 거 같다.



“밥 먹자.”



 인간이 고개를 팩 돌려버린다. 분명 언어학습을 끝낸 품종이라 내 말이 들릴 텐데. 밥 먹기 싫다는 뜻인가. 가능하면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지만 오늘도 먹이지 않으면 인간의 건강이 위태로워질 거다. 인간을 꺼내기 위해 잡으려 손을 뻗으니 인간은 질색하며 내 손을 피해 도망다녔다.


 으아악! 으악! 인간이 내지르는 비명 사이사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종종 섞여있었다. 너무 싫어하는데. 조그마한 인간쯤 한방에 잡아 꺼낼 수 있었지만 질겁하는 인간에 망설이고 있자니 인간이 내 손을 피해 알아서 집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행이었다. 재빨리 집으로 다시 들어갈까 기본 집의 문을 닫아놓았다.



“롬, 준비해놓은 거 줘봐.”



 롬에게 손을 뻗으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롬이 그릇을 내밀었다. 그릇 속에는 모든 애완우주생물이 좋아한다는 밀이 가득 담겨있었다. 밀은 내 손가락만한 크기의 길다란 하얀 애벌레였다. 꼼지락거리는 밀 세 마리 정도를 집게로 집어 들어 보고 있자니, 인간이 내 쪽을 보고 주춤주춤 뒤쪽으로 물러났다. 난 턱을 긁적거렸다.



“너무 많나.”



 하긴. 밀 한 마리는 인간 키의 반절만했다. 남준이 인간은 많이 먹지 않는다 했으니 세 마리를 한꺼번에 배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양을 덜어 단 한 마리만을 집어 들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만족하며 인간의 옆에 밀을 내려놓았다.


 으아아아악! 인간은 좋아하긴커녕 아까 내 손과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파랗게 질려버렸다. 밥이라고 줬더니 먹진 않고 밀을 보자마자 전속력으로 케이지 구석을 향해 내달렸다. 어찌나 정신 없이 달리는지 중간에 인간이 대충 걸쳐 입고 있었던 바지가 흘러내렸다. 으갹! 인간이 허우적거리며 넘어졌다.



“먹이라고 인식을 못하는 건가?”



 가만히 같이 지켜보던 롬이 공감하는지 꼬리를 살랑거렸다. 다시 줘봐야겠다. 난 친절하게 밀을 잡아 다시 한번 넘어진 인간의 옆에 놓아주었다. 밀이 천천히 꼬물거리며 인간을 향해 기어갔다. 히이익. 아예 창백하게 질려버린 인간은 이번에도 도망가려는지 헐레벌떡 몸을 일으켰다. 바지가 벗겨진 것도 상관하지 않고 또 뛴다. 결국 케이지의 막다른 벽에 도착하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까지 질끈 감은 채 밀을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게 싫나. 까다로운 입맛의 인간에 한숨을 쉬며 인간의 앞으로 손을 뻗었다. 김남준은 왜 이런 걸 준 거야. 차라리 던져놓으면 알아서 크는 애완생물로 가져다 주지. 오늘은 이만 넣어놓고 다른 먹이를 구해봐야겠다.


 또 인간이 올라오기 싫어할 테니 강제로 쥐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감았던 눈을 뜬 인간이 내 손을 보더니 허겁지겁 올라왔다. 내 엄지손가락을 생명줄 마냥 꼭 붙잡는다. 인간과 닿아있는 부분으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달달 떠는 인간을 느끼며 난 천천히 손을 내 얼굴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



 얼굴이 눈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인간은 그렇게 내 손 위에 앉아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 하나만을 의지하고 있었다. 슬쩍 뒤쪽으로 케이지를 내려다 본 인간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돌아다니는 밀을 보고 좀 더 내 손바닥에 바짝 붙어왔다. 양팔로 내 엄지손가락을 더욱 단단하게 꽉 붙잡았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어떤 것이 울렁거렸다. 뭔가 낯선 감정이었다. 이런 게 바로 김남준이 애완생물을 키우면서 느꼈단 감정인가. 여태 무기력했던 삶 속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거부하며 밥도 안 먹던 인간이 얌전히 내 손바닥 위에 올라와 앉아있는 모습은, 뭐랄까. 약간 벅찬 감정이라고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새로운 애완생물에 대한 책임감이거나.



“…….”



 케이지를 바라보던 인간이 얼굴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인간은 소매를 당겨 눈물을 벅벅 닦더니 곧 옷자락을 최대한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아예 등을 돌려 앉았다. 사회화가 가능한 애완생물이라 그런지 드러낸 하체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왜 우주인들이 인간을 애완생물로 키우는지 알 거 같다. 하는 짓이 꽤 귀엽다. 난 케이지에서 밀을 꺼내 다시 먹이통에 넣어버리고 손을 케이지 바닥에 내려두었다. 인간이 재빠르게 내려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방을 통통 튀어다니며 다시 아까처럼 왁왁 인간의 언어로 무어라무어라 말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언어는 학습한 적이 없기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롬 애완인간 용품 관련해서 자료 좀 찾아줘.”



 밀이 담긴 통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던 롬이 고개를 끄덕였다. 덧붙여 강렬히 요구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온다.



“그건 너 먹어.”



 롬이 인간을 위해 가져왔던 먹이통에 얼굴을 박고 밀을 통째로 씹어먹었다. 나는 다시 아까 인간이 손에 올라왔을 때의 감촉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김남준은 천재인 게 분명하다. 인간을 보는 사이 오늘 내내 느꼈던 무력감이 사라져있었다. 애완인간에 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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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민이 맞아요...(...)...불량식품 같은 맛으로 빠르게 써 볼 예정이에요 허허...휴먼월드는 1인칭이 재밌을 거 같아서 1인칭으로 썼는데 처음 써봐서 그런지 어렵네요 중편으로 짧게 완결을 목표로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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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융기해 2020.05.14 01:13 SECRET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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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리썬 2020.05.14 08:43 SECRET

    "비밀글입니다."

  • ?
    다진 2020.05.14 09:22
    왁왁왁왁왁!!!(너무 기뻐서 소리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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